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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133화 (135/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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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컴백일이 결정되었다.

단독 콘서트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활동 기간은 3주로 정해졌다. 이제까지 활동 기간에 비하면 정규 1집치고는 짧아서 아쉬웠지만, 콘서트 일정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짧은 기간을 조금이나마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더블 타이틀로 활동하기로 했다.

녹음까지 마치고 나니, 곧바로 안무를 짜야 했다. 안무를 맡아줄 안무가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모처럼 정규 활동인 만큼 안무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메인 댄서인 한솔을 주축으로 유피트 멤버들 각자의 의견을 종합해서 안무를 짰다.

“으아아…… 나는 창작에는 적성이 없어.”

수겸은 장기간의 아이디어 회의로 쥐가 날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쥐며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런 수겸을 본 멤버들은 저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를 너무 썼어……. 당 떨어져.”

“뭐 사 올까?”

수겸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이겸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더없이 반가운 제안에 수겸은 눈을 빛내며 이겸을 바라보았다.

“헉, 정말? 이겸아, 사랑해, 진짜.”

수겸이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차이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겸은 놀란 듯한 눈으로 수겸을 바라보더니 이내 살짝 붉어진 얼굴로 수겸의 시선을 피했다.

“엥……. 다들 어디 가?”

직후,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네 사람을 본 수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도 사 오겠다고 한 건 차이겸이었는데 왜 다른 멤버들까지 일어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단 거 사 올게.”

“나는 달고 시원한 거.”

“달고 시원하고 맛있는 거 사 올게요.”

태원에 이어 한솔과 유찬까지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이어 대꾸했다.

놀란 수겸이 왜들 이러나 싶어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는데, 물어볼 틈도 없이 멤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습실을 뛰쳐나갔다.

“나…… 그만큼 못 먹는데…….”

수겸은 이미 멤버들이 떠나 버린 연습실에서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오래지 않아 멤버들이 저마다 양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돌아왔다.

도넛, 초콜릿 크림과 비스킷, 아이스 초코, 아이스크림, 빙수, 츄러스까지. 다양한 메뉴가 금세 연습실 바닥을 가득 채웠다. 연습실에서 소속사 스태프들이 모여 회식이라도 하려나 싶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와……. 우리 회식해?”

“아니.”

수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수겸의 기대가 틀렸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형, 회식하고 싶어요?”

“헉, 아니,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장에라도 스태프가 있는 방에다가 회식하자고 톡을 보낼 기세인 유찬을 본 수겸이 기겁하며 손까지 내저었다.

이제야 왜 이 사달이 났는지 알 것 같았다. 수겸이 별생각 없이 한 말에 멤버들이 반응한 것이었다.

“……잘 먹을게.”

수겸은 앞으로는 입조심하자고 다짐하며 애써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쨌든 음식을 사 온 정성은 고마운 것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멤버들이 사 온 것이 다 수겸의 취향이기도 했고.

뷔페라도 온 것 같은 기분에 다양한 주전부리를 한 입씩 바꿔 먹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징징 울려대었다.

수겸에게 연락 올 사람이라고는 멤버들과 스태프들 아니면 선욱밖에 없었다. 그중 멤버들은 같이 있으니 아닐 테고, 스태프 아니면 선욱으로 좁혀진 후보에 둘 중 어느 쪽일까 궁금해하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이사님]

액정 화면에 뜬 이름에 수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요 며칠 바빠서 선욱의 얼굴을 잘 보지 못해서였다.

“네, 이사님!”

-응, 수겸아. 회의는 잘되어가?

“으아아아, 그런 거 묻지 마세요.”

수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내자, 휴대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옆에서도 웃음소리가 났다. 민망해진 수겸이 뜨끈하게 달아오른 뺨을 긁적거렸다.

-끝나고 저녁 먹어야지.

“사 주실 거예요?”

-당연하지. 뭐 먹고 싶어?

다정한 대답에 수겸은 헤벌쭉 웃었다. 동시에 저녁 메뉴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바삐 돌아갔다.

지금 달달한 걸 워낙 먹고 있으니, 저녁은 조금 더 가볍고 담백한 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멤버들의 의견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휴대폰에 대고 ‘잠시만요’라고 말하고 휴대폰을 슬쩍 떼었다.

“이사님이 저녁 사 주신대. 저녁 뭐 먹고 싶어?”

“네가 먹고 싶은 거.”

“너 먹고 싶은 거 먹어도 돼.”

“나도, 형이 먹고 싶은 걸로 말해.”

“저도요.”

빠르게 돌아오는 대답에 수겸은 고마운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에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나 네 사람은 진심인 듯한 표정이었다.

수겸은 결국 짧은 고민 끝에 다시금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저 좀 담백한 거 먹고 싶어요.”

-담백한 거? 회? 아니면 한식?

“음…….”

둘 다 만족스러운 메뉴였다. 수겸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메뉴에 고민하다가, 회 코스 요리에 나오는 칼칼한 매운탕을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요!”

-알았어. 그쪽으로 예약할게.

“넵! 감사합니다.”

-이따 6시까지 민성이 보낼게.

“넵!”

수겸은 쾌활하게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래지 않아 긴 듯 짧았던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금 안무 회의에 돌입했다.

그나마 단 걸 많이 먹어서인지 아까보다는 살 것 같았다. 머릿속이 번뜩거리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수겸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가사가 여우니까 뭔가 여우 꼬리 같은 걸 흔들면 어때?”

“오, 그거 재밌을 것 같아. 여우 꼬리 같은 거라……. 그런 거 팔지 않아?”

한솔의 맞장구에 용기를 얻은 수겸은 얼른 휴대폰으로 여우 꼬리 장식을 검색했다. 가짜 퍼 장식이 줄지어 나왔다.

“이런 거 어때?”

“괜찮네. 이걸로 안무 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근데 안무할 때만 이걸 꺼내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한솔이 적극적으로 묻자 수겸은 반대로 기가 죽었다. 아무 생각 없이 떠오르는 의견을 말한 건데, 정말 반영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손수건은 어때요?”

가만히 듣고 있던 유찬이 의견을 냈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모습이 꼭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손수건이면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도 괜찮을 테고, 아니면 이걸로 계속 안무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유찬의 말에 한솔은 그의 손수건을 건네받더니 즉석에서 간단히 안무를 짰다.

유찬이 먼저 보여주었던 손수건으로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안무에서부터 손수건으로 몸을 전체적으로 훑어내리는 안무까지 선보였는데, 즉석에서 짠 것치고는 꽤 완성도가 있었다.

“오오, 괜찮다, 괜찮다!”

수겸이 박수까지 치며 기뻐했다. 그러자 한솔은 민망한 듯 웃었다. 그렇게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간은 술술 갔고, 마침내 6시가 되었다. 시간에 맞춰 민성이 유피트를 데리러 왔다.

선욱이 자주 회를 사 주던 일식당으로 향한 유피트는 예약된 방으로 들어갔다. 민성은 스태프들이 있는 다른 방으로 향했다.

“수겸이 왔어?”

선욱이 반갑게 수겸을 맞이해 주었다. 수겸은 꾸벅 인사하며 선욱이 손짓하는 대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홀린 듯 선욱의 옆에 앉았다.

뒤늦게 아차 싶어 멤버들을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다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겸과 가까운 자리에 앉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안무 짜는 건 어때? 힘들지 않아?”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오늘 좀 방향이 잡힌 것 같아요.”

선욱의 물음에 수겸이 자랑스럽게 대꾸했다. 선욱은 수겸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그래? 안무팀 외주 안 넘겨도 되겠어? 힘들면 안무팀들 외주 줘도 괜찮은데.”

“아니에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까지 해보고 싶어요. 물론 결과물이 영 아니다 싶으면 모르겠지만…….”

“그래, 그럼 기대할게.”

수겸을 예뻐하는 것만큼 유피트의 활동 자체에서도 좋은 결과를 안겨주고 싶은 선욱이었다. 그렇기에 무리해서 멤버들을 고생시킬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수겸이 괜찮다고 하니 조금 더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선욱과 유피트는 정규 1집과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긴 코스 요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선욱이 수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번에 컴백하면서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컴백하면서요? 딱히……. 아, 굳이 따지자면 하나 있어요.”

“뭔데?”

선욱은 수겸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그러나 막상 이어지는 대답에 그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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