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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122화 (124/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22화

“일단 퇴근 실패하셨고요, 방송 분량 채워주세요.”

부러 얄밉게 말하는 듯 메인 PD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수겸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메인 PD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잠시뿐, 수겸은 이내 제 운명을 수긍하고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뭐 할까?”

“그러게, 뭐 하지?”

멀뚱히 서로를 바라보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수겸 역시 대체 뭘 하면서 방송 분량을 채워야 할지 난감했다.

수겸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멤버들이 무언가 대답을 내놓기만을 기다리다가, 이내 제작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라도 주세요. 하다 못해 공이라도 던져주세요!”

수겸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아무리 방송 분량을 채우라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하려니 막막해서였다.

“알아서 채워보세요.”

“너무해요!”

하지만 메인 PD는 단호했다.

수겸은 볼멘소리를 내며 칭얼거리다가 이내 빠르게 포기했다. 제작진과 입씨름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방법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최근 유피트가 출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팬들뿐만 아니라 팬이 아닌 사람들도 많이 보고 있었다.

유피트가 앞으로 더 성공하기 위해서는 팬들의 호응을 넘어서, 대중들의 호감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팬들이라면 유피트가 방송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귀여워하겠지만, 이외 대중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방송 분량을 채워야만 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라도 하자.”

수겸이 준비되어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멤버들은 수겸에게 무슨 생각이냐고 묻지도 않고 순순히 수겸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우리 그거나 하자.”

“뭐?”

“깻잎 논쟁.”

“아아.”

수겸의 말에 한솔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태원과 이겸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찬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예요?”

“애인이랑 친구, 그리고 유찬이 셋이서 밥을 먹고 있는데 친구가 깻잎무침을 먹으려고 해. 그런데 깻잎이 딱 붙어서 안 떨어져. 이때 애인이 깻잎을 떼줘도 된다, 안 된다?”

“그야 당연히…….”

“스톱. 일단 팀을 나눠서 하자. 그래야 공평하지.”

유찬이 대답하려고 하자, 수겸이 얼른 끼어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러자 한솔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은 생각이야.”

“데덴찌로?”

태원의 말에 수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와 동시에 유피트는 손을 들어 팀을 나눌 준비를 했다. 눈짓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유피트는 어느 순간 촉이 오자마자 입을 모아 외쳤다.

“데덴찌!”

손바닥 셋, 손등 둘로 팀이 나뉘었다. 손바닥을 보인 쪽은 태원과 이겸, 유찬이었고 손등은 한솔과 수겸이었다.

“가위바위보 이긴 쪽이 깻잎 논쟁 방향 정하자.”

“오케이.”

“콜.”

“좋아.”

“네.”

수겸의 말에 멤버들이 제각기 대답했다. 그러고는 가위바위보를 할 대표를 뽑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래지 않아 손바닥을 보인 팀에서는 태원이 나왔고, 손등을 보인 팀에서는 한솔이 앞으로 나섰다.

“가위바위보!”

“앗싸!”

“으아아! 형, 미안해!”

가위바위보로 인해 팀의 희비가 갈렸다.

태원은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했다. 반대로 한솔은 기가 죽어 수겸에게 사과했다.

“괜찮아, 괜찮아.”

사실 썩 괜찮지 않았지만 수겸은 풀이 죽은 한솔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태원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우리가 가위바위보 이겼으니까 어느 쪽으로 할지 정하면 되지? 우리는 깻잎을 떼주면 안 된다!”

“알았어. 우린 깻잎을 떼줘도 된다! 그럼 시작!”

수겸의 말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태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깻잎을 떼주는 것 자체가 상대한테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게 문제라는 거야.”

“아니지. 그냥 눈앞에서 깻잎을 떼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게 거슬린 거지.”

한솔이 얼른 방어했다. 그러면서 손가락 검지와 중지로 젓가락 모양을 만들더니 과장되게 깻잎을 떼는 시늉을 했다.

“자, 봐! 이렇게 깻잎을 못 떼면 막 깻잎을 떼려고 할 거 아니야? 그럼 양념이 사방에 튀어, 막. 그리고 얼마나 거슬려? 눈앞에서 이러고 있는데!”

“두 장, 세 장씩 먹으라고 해, 그냥. 뭘 떼려고 해. 깻잎 하루 권장량이 180장이래. 한 번에 181장 먹을 거 아니잖아. 한 번에 덩어리로 먹고 짜면 밥 먹어.”

이겸이 한솔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솔직히 이겸은 다른 팀인데도 깻잎의 하루 권장량이 180장이라는 드립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수겸은 터지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끅끅거리며 웃음을 겨우 참는데, 옆에서 한솔도 웃음을 참는지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크, 흡. ……치, 친구가 이미 집에서 깻잎을 178장 먹고 왔으면 어쩔 건데! 세 장이 붙어 있어서 181장을 먹게 되는 거면?”

“그럼 그냥 죽으라고 해. 나는 깻잎을 181장씩 먹는 친구는 필요 없어. 그 정도면 깻잎 멸종시키려는 거야. 환경에 못 할 짓을 하는 거라고.”

웃음을 참아낸 한솔이 수겸이 듣기에도 무논리한 말로 억지를 부렸지만, 이겸이 싸늘한 대꾸로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 애인이 상대방한테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것 같아서 별로예요.”

잠자코 있던 유찬이 입을 열었다. 수겸은 이대로 자신의 팀이 밀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맞받아칠 말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반짝 떠오른 생각에 눈을 빛냈다.

“아, 봐봐. 이겸아. 네가 친구랑 밥을 먹고 있는데, 내가 깻잎을 떼줬어. 그럼 나한테 화낼 거야?”

“……아니.”

수겸이 최대한 무해하고 가여워 보이게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불쌍한 목소리로 묻자, 이겸은 짧은 한숨 끝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봐! 그럼 괜찮은 거네!”

이겸의 대답에 수겸은 쾌재를 불렀다. 그러자 제작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하. 그럼 수겸 씨가 친구고 애인은 다른 사람이면요? 이겸 씨 애인이 수겸 씨 깻잎을 떼주면요?”

메인 PD가 시원하게 웃는가 싶더니,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물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겸의 표정이 굳었다.

“당연히 안 되죠.”

“아하하하하. 그럼 그냥 수겸 씨가 문제네!”

“결론이 그렇게 된다고요?”

수겸이 메인 PD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제작진들은 곳곳에서 웃었다.

수겸으로선 여전히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유쾌한 반응을 보니 방송 분량은 뽑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 깻잎을 떼주는 사람이 나면 괜찮고, 깻잎을 떼임당하는 쪽이 나면 안 괜찮은 걸로 결론 내.”

수겸이 큼큼 목을 가다듬고는, 부러 거들먹거렸다. 멤버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면서도 이내 웃음을 터뜨렸고,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자, 사실은 저희가 방송 분량을 채우실 수 있도록 미션을 준비한 게 있어요.”

“아, 진작 말씀해 주시지!”

“덕분에 재미있었잖아요.”

한참 웃던 메인 PD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배신감을 느낀 수겸이 씩씩거렸지만, 그는 이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첫 미션은 종이 옮기기입니다. 유피트가 5명이니까, 곱하기 2해서 10장. 100초 동안 10장을 넘기시면 돼요.”

“헉. 설마……. 종이 옮기기라는 게…….”

“맞습니다. 입으로 옮기시면 돼요.”

놀란 태원이 말을 잘 잇지 못하자 메인 PD가 말을 이어받았다.

수겸 역시 입으로 종이 옮기기 게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손을 쓰지 않고 입으로 종이를 빨아들이며, 그 상태로 옆 사람에게 건네면 옆 사람 역시 종이를 빨아들여 뒷사람에게 건네는 게임이었다.

“미션 성공하시면 퇴근 시간 1시간 당겨 드릴게요.”

“대박, 대박! 이거 순서가 되게 중요해.”

1시간 조기 퇴근 선언에 수겸이 기대감에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 역시 수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겸은 머릿속으로 멤버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어떻게 하면 종이를 잘 옮길까 고민하기 바빴다.

그런데 그때 멤버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멤버들 역시 어지간히 칼퇴근이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고 수겸이 생각하던 찰나, 때마침 제작진이 테이블 두 개와 종이를 가져왔다.

그 모습을 본 수겸의 낯이 희게 질렸다. 이내 수겸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잠깐! 종이가 습자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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