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15화
* * *
“어? 저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음악 방송에 이어 라디오 스케줄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수겸은 창문으로 보이는 낯선 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네 이사했어.”
“네……?”
민성의 대답에 수겸은 제 귀를 의심했다. 어제까지도, 아니, 아침까지도 그런 말은 없었는데 도대체 한나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사를 했단 말인가. 그것도 당사자가 모르는 이사가 가능한가 싶어 수겸은 멀뚱히 커다란 눈만 끔뻑거렸다.
“이사를 했다고요?”
“어. 나도 당황스러우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묻지 마.”
태원의 물음에 민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대꾸했다. 그 말이 거짓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민성조차 모르게 정해진 일이니, 그에게 따져 물어봤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형은 언제 안 거예요? 누가 말해준 거예요?”
“나는 뭐, 이사님이 말씀하시니까 알았지. 나도 너네 라디오 할 때야 들었어. 이사 중이니까 예전 집 말고 새집으로 가라고 하시더라.”
“와…….”
설명을 듣고 보니 더 황당해서 두 눈을 끔뻑거렸다.
물론 당황스러운 것은 수겸만은 아닌 듯했다. 다른 멤버들을 쳐다보니, 그들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네.”
그때 태원이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가 싶어 수겸이 놀란 눈으로 태원을 쳐다보았다.
태원은 수겸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마주치고는 보란 듯이 싱긋 웃었다.
“괜찮아, 걱정 마.”
“아니, 뭐 걱정하는 건 아닌데…….”
더 넓은 숙소로 가는 게 싫을 리는 없었다. 다만 갑작스럽게, 그것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더불어서 선욱이 이유 없이 이런 일을 꾸미지는 않았을 테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 그러셨을까?”
“조급하셨나 봐.”
수겸이 조심스럽게 묻자, 태원에게서 가벼운 대꾸가 돌아왔다. 하지만 수겸은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급하다니, 선욱이 조급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설령 그가 조급하다고 하더라도 그게 왜 갑작스러운 이사로 이어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겸이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에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유피트를 태운 밴은 번쩍거리는 대형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단지 외관부터 눈이 부담스러울 만큼 화려하게 생겼다. 앞으로 이런 곳에서 사는 건가 싶어 얼떨떨했다.
“너네 숙소 다 다른 거 알고 있지? 예전처럼 같은 숙소 쓰는 거 아니야.”
“네, 얼핏 들었던 것 같아요.”
수겸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선욱이 멤버들 각자 숙소를 다 구해주겠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나도 니네 호실 다 못 외워서, 단톡에 보내놨어. 그거 보고 알아서 들어가라.”
“넵.”
민성의 말에 수겸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차에서 내렸다. 멤버들도 뚱한 얼굴로 밴에서 내려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수겸이 혼자 동이 다르네.”
“어, 그러게?”
톡방에 있는 호실을 확인하던 수겸은 혼자 건물 동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멤버들은 층이 각자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동이었는데 말이다.
“나 혼자 뚝 떨어지다니……. 싫다.”
물론 동 하나 차이기 때문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기는 하지만, 혼자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혼란함이 꽤 컸다.
“갈게…….”
수겸은 한숨을 폭 쉬며 자신의 숙소인 A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럽게 이사라니, 도대체 이사님은 무슨 생각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멤버들이 나누어진 B동과 C동에 빈집이 없으니 자기 혼자 A동으로 이사를 보낸 것일 테지만, 혼자만 따로 떨어지려니 괜스레 우울했다.
수겸은 단톡에 있는 비밀번호를 보고 건물에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시무룩하게 엘리베이터에 기대어 있는 사이, 금세 엘리베이터는 수겸의 숙소가 있는 11층에 도착했다.
“어? 이사님?”
엘리베이터에 내린 수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선욱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수겸은 반가움에 눈을 빛내다가, 불쑥 떠오르는 원망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사님, 왜 갑자기 이사예요? 말씀도 안 해주시고!”
“활동 중에 바쁜데 굳이 말해서 신경 쓰이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이사는 업체가 다 알아서 해주는데 뭘.”
“그건 그렇지만……. 이사 때 버려야 할 물건도 있고……. 우리 물건도 막 섞여 있을 텐데 어떡해요?”
“원래 이삿짐은 살면서 정리하는 거야. 지내면서 하나씩 처리하며 되지.”
“……그것도 그렇지만.”
선욱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진 수겸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더 좁고 안 좋은 숙소로 이사간 것도 아니고 넓고 큰 숙소로 이사를 온 데다가 이삿짐을 싸는 고생스러운 일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좋게좋게 생각하면 될 터였다.
“근데 저 혼자 A동이라서 조금 쓸쓸해요.”
“혼자라고 누가 그래?”
“네?”
수겸은 선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선욱이 싱긋 다정하게도 웃었다.
“나도 여기 사는데?”
그러면서 선욱이 검지를 위로 가리켰다. 그 손짓에 수겸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밝아졌다.
일전에 선욱이 펜트하우스에 산다고 했었는데, 그게 같은 동일 줄이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두 사람은 어느덧 수겸의 집 앞에 도착했다. 수겸은 단톡방에 적혀 있는 비밀번호를 눌렀다. 비밀번호는 수겸의 생년월일이었다.
“비밀번호 바꿔야지.”
“이대로도 괜찮을 거 같아요. 누가 알 것도 아니고…….”
“멤버들이 알잖아.”
선욱이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선욱이 그러거나 말거나 현관에 들어선 수겸은 내부의 화려함에 시선을 빼앗겼다. 현관장이 세로로 누워도 될 만큼 넓었다.
이곳이 새 숙소라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눅이 들기도 해서 수겸은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곧 조심조심 중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선 수겸은 입을 떡 벌렸다.
“와…… 너무 좋은데요? 엄청 비쌀 것 같은데, 괜찮아요?”
기쁜 와중에 슬그머니 걱정이 올라왔다. 물론 선욱에게 돈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싶어서였다. 이런 숙소를 혼자 써도 될 만큼 벌어다 줄 자신이 없었다.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아무튼 비밀번호 바꾸자. 멤버들이 불쑥 들어오면 어떡해?”
“뭐,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내가 싫어서 그래.”
선욱은 정말 싫은지 그답지 않게 미간까지 찌푸렸다.
멤버들끼리 왕래가 잦으면 좋은 일일 텐데, 왜 선욱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일까. 설마…… 질투?
문득 떠오른 생각에 수겸은 놀란 눈으로 선욱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차마 이사님에게 ‘질투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볼 패기는 없는 수겸인지라, 그저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걔네들이 네 숙소에 막 들어오면 애써 갈라놓은 보람이 없잖아.”
묻기도 전에 선욱이 순순히 이유를 말해주어서, 수겸의 낯이 발갛게 익었다. 괜스레 민망한 탓이었다.
“얼굴 빨개졌네.”
“그, 그게……. 아, 아무튼 이사님은 맨 위층에 사신다는 거죠?”
“응. 오고 싶으면 아무 때나 와.”
“네…….”
수겸은 민망함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선욱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피곤할 텐데, 씻고 쉬어.”
“넵.”
“혹시 혼자라서 무서우면 연락하고.”
“에이, 제가 애도 아니고!”
장난기 어린 선욱의 말에 수겸이 발끈해서 대꾸했다. 선욱은 즐거운 듯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 놀리려고 한 말이 분명했다.
수겸이 씩씩거리며 세모눈으로 선욱을 노려보아도 선욱은 한층 더 즐거워 보일 따름이었다.
결국 얻은 것 없이 눈만 따가워진 수겸이 촉촉해진 눈가를 비비는데, 선욱이 수겸을 가볍게 안았다가 놓아주었다.
“잘 자.”
“네, 네에…….”
금세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른 수겸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선욱을 배웅했다.
중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리고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그제야 수겸은 고개를 들어 현관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선욱은 나간 후였다.
수겸은 빙글 돌아 집 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혼자 쓰기에는 사치스러운 집이었다. 수겸은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전한 느낌도 들어서 입술을 삐죽거리며 거실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그때였다.
♩♪♩♪♩♪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놀란 수겸은 비디오폰 앞으로 다가섰다. 문앞에 서 있는 얼굴을 본 수겸이 얼른 문 열림 버튼을 눌렸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