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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112화 (114/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12화

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용이었지만, 수겸은 나름대로 그의 말에 수긍이 되어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수겸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이런 식으로 홀랑 넘어가 버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뭐가 문제인데?”

“그, 그게…….”

태원의 물음에 수겸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게, 뭐가 문제일까.

막무가내로 문제라고 하기보다, 뭐가 문제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사귀기 전에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이사님과 차이겸이 마음에 걸렸다. 두 사람을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두 사람의 향한 마음이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 남다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제게는 그만큼 소중했고, 또 좋아했으니까.

다만, 비 맞은 강아지처럼 불쌍하게 키스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태도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달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동정만으로 키스를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키스를 한 후에 감정은 꽤…… 좋았다.

헉, 잠깐만. 나 쓰레기잖아?

깊이 생각에 빠져 있던 수겸은 무언가를 자각하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모습을 본 멤버들과 선욱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수겸은 아랑곳하지 않고 충격에 빠져 있었다.

이사님과 키스를 했을 때도 좋았는데, 차이겸과 키스를 하고도 좋았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각기 다른 두 명과 입을 맞추고 둘 다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대단히 큰 문제가 있었다.

양심이 없는 수준을 떠나서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었다.

수겸은 자신이 구제불능의 핵폐기물 쓰레기라는 사실을 깨닫자,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나름 이 험한 세상에서 양심을 지키며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동안의 자부심이 송두리째 사라질 만큼 쓰레기스러운 생각을 했다.

“어, 어떡하지…….”

초조한 마음에 속으로만 생각하던 게 기어코 혼잣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멤버들과 선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수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겸이 시뻘게진 얼굴로 연신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중얼거리는 걸로 보아 뭔가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어떤 방향인지 감이 오지 않아 문제였다.

“내가 쓰레기였다니…….”

그러다가 수겸이 덧붙인 혼잣말에 모두 갈피를 잡았다.

한솔이 먼저 나서서 풀 죽은 수겸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은데, 그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솔이 네가 어떻게 알아?”

“얼굴에 다 쓰여 있는걸.”

“……저리 가. 나 지금 되게 심각해.”

수겸은 머리를 뒤로 슬쩍 빼며 한솔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자신은 이렇게 다정한 한솔의 위로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둘도 없는 천하의 쓰레기니까 말이다.

“수겸아, 그거 아니야.”

이번에는 선욱이 입을 열었다.

수겸이 축 늘어진 눈매를 하고서 고개를 들었다. 선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수겸에게 위로가 될 리는 없었다. 오히려 키스를 한 장본인인 선욱이 그러니 더 미안해질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그거 아니라니까, 수겸아. 삽질하지 말고 지상에 있어. 파고들어 가지 마.”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는 쓰레기야!”

한없는 다정함 앞에서 사람은 제 과오를 더 잘 깨닫는 법이었다. 수겸은 결국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삽질하지 말고 지상에 있으라는 선욱의 말이 무색하게도 수겸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서 지구 내핵을 향해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어떡해……. 네가 사람 새끼야? 사람 새끼니? 어떻게 두 명이랑 키스를 하고 둘 다 좋았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 게다가 다른 멤버들도 좋다는 생각까지 해? 이 양심도 없는 놈아!”

수겸은 동그란 머리통을 제 손으로 몇 번이나 퍽퍽 때렸다. 얼얼해서 아픈데, 차라리 아프니까 마음은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이래서 죄지은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해진 것 역시 잠시뿐이었다. 이사님을 비롯한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르자, 다시금 견딜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이 밀려들었다.

수겸은 베개에 대고 얼굴을 퍽퍽 내리쳤다. 폭신한 솜 베개라 다칠 일은 없었지만, 어찌나 세게 박아대었는지 콧대가 얼얼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형, 수겸이 형.”

그때 한솔이 문을 두드리며 수겸의 이름을 불렀다. 수겸은 시큰거리는 콧대 때문에 눈물 맺힌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지 마…….”

“형 울어?”

하지만 한솔은 벌컥 문을 열었다. 게다가 찰나의 순간, 수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용케도 보고는 한달음에 수겸의 앞에 섰다.

당황한 수겸이 얼른 눈물을 훔쳤다. 이건 베개에 얼굴 처박다가 콧대가 아파서 우는 거라고,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해 줘야 하는데 한솔이 수겸을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속상하게 왜 울고 그래……. 형이 미안할 건 아무것도 없어. 형한테 부담 준 것도 우리고, 우리가 형을 좋다고 한 거야. 그런데 왜 형이 쓰레기야, 왜 그렇게 생각해…….”

“솔아, 그게 아니라 내가 왜 울었냐면…….”

“형이 이러면 내가 진짜 미안해지잖아……. 형은 아무 잘못 없어. 오히려 같은 멤버인 형을 좋아한 우리가 나쁜 거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러니까 형이 쓰레기라는 둥, 그런 자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이미 몇 차례 해명할 순간을 놓친 수겸은 한껏 가라앉은 한솔의 말에 할 말을 잃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물론 눈물을 흘린 것에는 오해가 있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 이 상황 전체에 있어서는 한솔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맞았으니까.

“그래도 미안해……. 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러려던 건 아닌데…….”

“있잖아, 형. 형은 내가 좋아?”

“어, 어?”

한솔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수겸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러자 한솔이 수겸을 안고 있는 팔을 조심스럽게 풀고는 수겸을 마주 보았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기대감에 젖은 한솔의 눈을 보고 있으려니, 수겸은 가슴 한구석이 괜스레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대답해 줘. 내가 좋아? 아니면…… 싫어?”

“그, 그야 당연히…….”

“당연히?”

수겸은 입술을 벙긋거렸다. 당연히 좋았다. 싫다는 감정은 손톱만큼도 없으니 차치하기로 하고, 단순히 같은 멤버로서 좋은지, 아니면 그 이상의 감정인지까지는 확신이 없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좋다’였다.

“……조, 좋아.”

더듬거리며 답을 한 수겸의 낯이 붉어졌다. 동시에 한솔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형이 자책하는 이유는 그래서지? 나도 좋은데, 이사님도 좋고, 이겸이 형도 좋고. 태원이 형도 좋고, 유찬이도 좋아서.”

“…….”

한솔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거론하니 수겸은 더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한 명도 아니고 이게 대체 몇 명인가. 무려 다섯 명이었다. 양다리도 아닌, 다섯 다리였다.

“물론 형이 나만 좋아해 주면 좋겠어. 내 솔직한 감정은 그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 사항이고……. 나는 형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

“……솔아.”

“나만 그런 건 아닐걸. 다른 멤버들이나 이사님이나 다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니까 형이 미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어.”

“그래도…….”

“물론 첫키스도 뺏기고…… 키스 마크도 뺏기고…… 그래서 착잡하긴 해.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이야. 내 욕심이고. 당연히 형의 첫 번째가 되고 싶지. 좋아하니까. 그런데 첫 번째가 아니라도 형의 사람 안에 내가 있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한솔은 차근차근히 제 감정을 풀어놓았다.

수겸으로서는 사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는 이 상황이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괜찮은 것인지 말이다.

그런데 한솔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주 조금은 편해졌다. 여전히 지상까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핵에서 외핵까지는 나왔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그런 말 할 거 없어. 내가 고맙고 미안하지. 뭐, 다른 사람들 편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다들 같은 마음일 거야.”

한솔은 뒷말은 다소 투덜거리듯 덧붙였지만, 수겸을 향해 다정하게 웃어 보이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형, 하나만 더.”

“뭘?”

“나랑도 키스 한 번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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