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11화
수겸은 바쁘게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호박죽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반면 굉장히 열 받게도 차이겸 이 자식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다른 멤버들이나 이사님은 표정이 영 좋지 않은데 말이다.
“잘 먹었습니다…….”
“다 먹었어? 왜 그것밖에 안 먹어. 더 먹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연 수겸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차이겸은 뻔뻔하게도 아무 일이 없다는 것처럼 굴었다. 수겸은 원망 섞인 눈으로 이겸을 노려보았다.
“됐어, 다 먹었어.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겠…….”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수겸아.”
선욱이 수겸의 말을 끊었다. 수겸은 차마 다 하지 못한 말을 뒤로 삼키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아, 안 먹어도…….”
“조금만 먹어. 맛만 봐도 좋으니까.”
“……넵.”
수겸은 선욱의 말에 결국 힘없이 수긍했다. 이사님이 직접 아이스크림까지 사 오셨는데 그걸 안 먹겠다고 재차 거절하고 방에 들어가 버릴 만큼 패기가 넘치지는 않았다. 결국 수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알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이스크림 꺼낼게.”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이겸이 먼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수겸은 얄밉기 짝이 없는 차이겸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차이겸이 시선을 느꼈는지 수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자식이 진짜.
수겸은 마음속으로 주먹을 몇 번이나 흔들었다. 미친놈아, 파친놈아를 외치며.
“거실에서 먹을까요? 식탁은 치우려면 시간 좀 걸릴 것 같아서요.”
“좋을 대로.”
이겸의 물음에 선욱이 대꾸했다. 왜 저렇게 적극적인 것인지, 얄미워죽겠다. 수겸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 거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유찬아?”
“잡아줄게요, 걷기 힘들어 보여서.”
유찬이 수겸의 손을 깍지 껴서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유찬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을 도와주려는 행동이기에 수겸은 고마움을 느꼈다.
“고마워.”
“아니에요.”
“이제 놔도 되는데…….”
부엌에서 거실로 나가기까지 몇 걸음이나 되겠는가. 금세 도착한 거실에 수겸은 유찬에게 잡힌 손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잡고 있을게요. 이건 제가 잡고 싶어서.”
담담하게 제 속내를 이야기하는 유찬 때문에 수겸은 멍하니 입술만 달싹거렸다.
언제부터 유찬이가 이렇게 뻔뻔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예전에는 수겸과 어쩌다 몸이 닿더라도 기겁하던 유찬이었는데, 지금의 변화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유찬에게 손을 잡힌 탓에 수겸은 자연스럽게 유찬과 나란히 앉았다. 반대쪽에는 언제 온 건지 태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유찬은 수겸의 손을 놓아주었다. 얼핏 자신의 옆에 앉기 위해 손을 잡아준다는 핑계를 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설마 간악한 차이겸도 아니고 순진무구한 유찬이 그럴까 싶어 도리질을 쳤다.
이겸이 쟁반에 받쳐서 가져온 아이스크림의 뚜껑을 열었다. 평소였으면 환장해서 먹었을 테지만, 지금은 입맛이 없었다. 수겸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안 되겠어요.”
난데없는 한솔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수겸은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뭘 안 된다고 하는 것인가 싶어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으로 한솔을 바라보았다.
“그냥 먹죠.”
엥……? 아이스크림 말하는 건가?
수겸은 그걸 왜 저렇게까지 결연하게 말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한솔에게 내밀었다.
“여기, 먹어.”
그러자 한솔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아이스크림 스푼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입 모양으로 ‘고마워’라고 말하고 생긋 웃었다.
“먹는 건 먹는 건데, 순서는 어떻게 갈 건데.”
“그래, 그게 문제지.”
태원의 말에 선욱은 좋은 지적이라는 듯 맞장구를 쳤다.
수겸은 눈을 끔뻑거렸다. 아이스크림이야 그냥 떠먹으면 되는 거지, 순서가 필요하단 말인가. 언제부터 이런 걸 먹는 데 순서까지 필요했던가 싶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끼리 백날 이래봤자, 당사자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알고들 하는 말이죠?”
잠자코 있던 유찬의 말에 공간 안이 싸늘해졌다. 이때까지도 수겸은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못 들었어? 먹으라고 했잖아.”
“그건 너무 억지스럽죠. 지금도 봐요, 자기가 뭘 먹으라고 했는지도 모르고 있잖아요.”
한솔의 말에 유찬이 곧바로 맞받아쳤다. 수겸은 그제야 그들이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어……. 지금 내 이야기 하는 거야……?”
“이거 봐요.”
수겸이 조심스럽게 묻자, 유찬이 한솔에게 거보라는 듯 말했다.
수겸은 혼란스러웠다. 한솔의 말에 먹으라고 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건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왜 이렇게들 심각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이건 유찬이 말이 맞아. 쟤 봐봐, 아무것도 모르잖아.”
태원이 덧붙이는 말에도 수겸은 커다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수겸이한테는 직접적으로 말해야 해. 아니면 못 알아들어.”
“내, 내가 뭘!”
수겸은 태원의 말에 발끈했다. 그러자 태원이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겸아, 우리가 너 잡아먹어도 돼?”
“어……?”
“아, 잡아먹는다고 하면 또 못 알아들을라. 그러니까 우리랑 섹…….”
“스토옵, 스토옵!”
수겸은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붉어진 얼굴이 타는 듯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아이스크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 무슨 의식의 흐름이란 말인가. 수겸은 기겁하며 태원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거봐, 갑자기래잖아. 우린 아까부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 아까부터……?”
“응. 아까부터.”
태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수겸은 한솔이 말한 ‘그냥 먹죠’가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잠깐! 나, 나는 사귀기 전엔 안 해!”
“키스도 하고, 키스 마크도 남기는데 안 한다고?”
한솔이 기가 찬 듯 되물었다. 수겸은 할 말이 없어 잠시 입술만 벙긋거렸다.
그러자 한솔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지. 앞뒤가 안 맞잖아.”
“뭐, 뭐가 안 맞아! 그, 그…… 내, 내가 어? 그리고 키……스를 언제 했다고 그래? 키스 마크…… 도 남겼다고, 누, 누가 그래?”
역시나 들킨 모양이었다. 수겸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하고서도 차마 인정할 수는 없으니 아니라고 잡아떼었다.
그러자 한솔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수겸은 양심이 쿡쿡 찔리다 못해 구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여기서 아니라고 발뺌하면 나 진짜 돌아, 형.”
그러나 이어지는 한솔의 으름장에 흠칫하고야 말았다.
한솔은 으르렁거리듯 말을 이었다.
“우리 바보 아니야. 다 알아. 그러니까 아니라고 하지 마.”
“…….”
수겸은 한솔의 경고에 차마 거짓말을 두 번은 할 수 없었다.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던 수겸은 빠져나갈 구석이 떠올라, 얼른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무튼 그건 사귀기 전에는 안 한다고!”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것만큼은 사귀기 전에는 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 것 말이다.
“그럼 사귀자.”
“어?”
“사귀자고. 일단 사귀고…….”
“야! 사귀는 게 어?! 그렇게 간단히 되는 거야? 미쳤어? 우리 아이돌이거든!”
“이 와중에 형은 지금 그게 문제야? 막말로 우리가 다른 그룹인 것도 아니고, 기왕 사귈 거 같은 그룹 내에서 사귀는 게 낫지. 안 그래?”
“그거야 그렇지만…… 이 아니라, 지금 너도 남자, 나도 남자! 들키면 그냥 스캔들이 아니라고! 동성 스캔들은 더 난리 나!”
순간 한솔의 말에 설득당할 뻔했던 수겸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남자끼리의 스캔들이라니, 그 여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때 태원이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겸아, 우리나라는 편견이 가득해서 우리가 카메라 앞에서 혀 섞으며 키스하지 않는 이상, 같은 그룹 멤버들끼리 스캔들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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