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03화
* * *
“한솔아, 너 눈이 왜 그러냐?”
“자, 잠을 못 자서…….”
민성의 물음에 한솔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대꾸했다. 당연히 민성은 그 말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솔을 노려보았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지금?”
“네에…….”
한솔이 말꼬리를 질질 늘이며 대꾸하자, 민성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수겸은 곤란에 빠진 한솔을 도와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얼른 한솔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어제 같이 밤새웠거든요.”
“둘이?”
“네.”
“……그래, 수겸이 너는 못 잔 거 같아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쟤는 왜 운 것 같냐, 이 말이야.”
“글쎄요……. 기분 탓인가?”
“이게, 누굴 바보로 알고.”
“에이, 설마요.”
민성의 말에 수겸은 재빨리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민성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이내 웃음을 추스른 민성은 다시금 한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가 한솔 옆에 꼭 붙어 있는 수겸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뭐, 됐다. 어제보다 분위기는 좋아 보이니까. 화해했구만?”
“화해라뇨, 저희가 뭐 싸운 것도 아닌데.”
“됐고, 얼른 차에 타셔.”
수겸은 억울함에 항변하려 했으나, 민성이 말을 탁 끊어버리는 바람에 별말을 하지 못하고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해소하지 감정에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으려니, 따스한 손이 수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힐끔 돌아보니 한솔이었다.
“고마워.”
“고맙긴. 뭐, 이 정도야.”
한솔의 말에 수겸은 방금 전의 억울함도 잊고 금세 새물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한솔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걸렸다. 퉁퉁 부은 눈 때문에 한솔의 웃음은 평소보다 훨씬 순박하게 느껴졌다. 그게 어찌나 귀여운지 수겸은 큭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 왜 웃어?”
“너 너무 귀엽다. 왜 이렇게 순박해?”
“뭐? 놀리지 마! 안 그래도 민망해 죽겠는데.”
“놀리는 게 아니라, 귀여워서 그런다니까.”
수겸의 해명에도 한솔은 민망한지 벌게진 볼로 서둘러 밴에 올랐다. 얼굴까지 발갛게 익자 순박함은 배가되었다. 수겸은 한솔을 따라 밴에 오르면서도 내내 큭큭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차에 타보니, 언제 먼저 탄 건지 유찬이 앉아 있었다.
수겸은 얼른 유찬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유찬은 수겸이 자신의 옆에 앉을 줄 몰랐던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겸을 바라보았다.
“우리 유찬이 옆에 앉아야지.”
수겸은 그런 유찬이 들으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유찬은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다가, 이내 생긋 해사하게도 웃었다.
“잘 잤어?”
“네, 뭐……. 형은 하나도 못 잤나 봐요?”
“헉, 어떻게 알았어?”
“피곤해 보여요.”
“그럼 어깨 좀 빌려줄래? 기대서 자게.”
“……그럼요.”
놀란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유찬은 이내 어깨를 내어 주었다. 곱상한 얼굴과 달리 넓디넓은 직각 어깨를 소유한 유찬은 팬들 사이에서도 어깨 깡패로 유명했다.
수겸은 얼른 유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유찬의 손 하나를 제 허벅지로 끌어와 마디마디마다 깍지를 꼈다.
“내 마음.”
수겸의 유찬의 어깨에 기대느라 코앞에 있는 유찬의 귀에 작게 귀엣말을 했다. 그러자 유찬의 몸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유찬은 정신을 차리고 수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유찬은 수겸이 왜 이러는지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어제의 감정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수겸의 진심을 다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짧지만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이 느껴지는 말을 했다.
수겸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유찬에게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확실히 밤을 새워서인지 졸음이 몰려들었다. 수겸은 이동 시간 내내 유찬의 어깨에 기대어 달콤한 잠을 잤다.
* * *
“아니, 한솔아. 얼굴이 왜 이 꼴이니?”
리허설을 앞두고 메이크업을 하려던 송화가 한솔의 얼굴을 보고는 기겁하며 물었다. 한솔은 차에서 내내 얼음주머니를 눈에 대고 있었지만,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메이크업으로 안 되겠는데? 선글라스 써야겠다, 너.”
“그러게요…….”
한솔은 민망한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송화는 연신 혀를 차며 ‘아니, 눈이 이렇게 부어서 어떡해? 대체 뭘 한 거야? 울었어? 야식 먹었니?’ 하며 한솔을 추궁했다.
수겸은 곤경에 처한 한솔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헤어 스타일링을 하고 있는 중이라 꼼짝할 수 없었다. 지연은 어느새 길어진 수겸의 앞머리를 눈썹을 덮도록 차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덮수겸’ 하자.”
지연이 신이 난 듯 경쾌하게 말했다. 수겸은 ‘덮수겸’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연의 안목을 잘 아는지라 그저 ‘넵’ 하고 짤막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뭐? ‘덮수겸’을 한다고?!”
그런데 지연의 말에 흥분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송화였다.
송화는 방금까지 한솔을 타박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얼굴이었다. 거울을 통해 송화의 표정을 본 수겸은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덮수겸’ 완전 좋아! 오랜만에 보는구나, ‘덮수겸’. 머리도 까만색이니까 연습생 시절 같겠다. 어휴, 너무 이쁘겠다. 어떡해, 정말.”
송화는 눈을 반짝거리며 진심으로 행복에 겨워했다.
연습생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수겸은 앞머리는 물론 전체적인 머리를 차분하게 내린 생머리 느낌의 스타일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습생 시절에는 데뷔 때 머리를 어떻게 만질지 모르기에 최대한 자연모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수겸은 태생적으로 직모였기에, 당시엔 자연 흑모가 자연스럽게 눈썹을 덮었었다.
“그때 수겸이 진짜 너무 예뻤는데. 그때도 또 볼에 젖살도 있었잖아. 아기 같았지. 청초한데, 귀엽고. 확신의 요정상!”
“지금 앞머리 긴 김에 해야지, 이때 아니면 언제 해?”
“역시, 안목 끝내준다니까.”
송화는 지연의 말에 손바닥으로 짝짝 박수까지 쳐가며 말했다.
두 사람이 신이 날수록 수겸은 민망해서 몸을 배배 꼬았다. 이제 이런 주접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 내성이 생기려면 먼 모양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덮수겸’ 이야기가 나온 후로 송화는 내내 연습생 시절의 수겸이 어찌나 귀엽고 예뻤는지를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덕분에 한솔을 추궁하는 것은 저 멀리 잊힌 듯했다.
본의 아니게 한솔에게 도움을 주게 되었지만, 그만큼 본인이 불편해진 수겸은 어색하게 웃으며 면전에서 쏟아지는 자신의 미모 찬양을 들어야만 했다.
“됐다!”
마침내 영겁처럼 길기만 하던 헤어 스타일링이 끝났다. 수겸은 용수철처럼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어서 이 민망한 상황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서둘러 인사를 한 수겸은 화장실로 튀었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도착하고 난 후에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휴…….”
수겸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 세면대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까 헤어 스타일링을 할 때는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만지는 데도 머리 모양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민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결 편해진 덕분에 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겸은 데뷔 후 주로 앞머리를 한 쪽만 내리거나, 아니면 앞머리를 일부만 살짝 내리는 등의 스타일을 주로 했다. 이렇게 앞머리를 다 내린 스타일링은 오랜만이었다.
물론 숙소에서야 되는 대로 늘어진 앞머리를 하고 살았지만, 집에서 대충 말려서 늘어진 앞머리와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만진 앞머리가 같을 리 없었다.
“뭐……. 괜찮네.”
수겸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맨날 보는 얼굴이니 수겸의 입장에서는 이래 보나 저래 보나 비슷하기는 했지만, 오늘이 조금 더 나은 것은 사실이었다.
헤어와 얼굴을 확인한 수겸은 의상도 점검해 보았다. 목에는 초커를 달고 있었고, 초커는 가슴에 한 하네스와 체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얀색 통이 넓은 셔츠에 검은색 초커와 은색 사슬이 묘하게 어울렸다.
노출은 전혀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금욕적인 야릇함을 강조한 의상이었다.
그러나 수겸은 그보다 다른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치렁치렁하게 달린 사슬이 수겸 눈에는 아무리 봐도 중세 시대 범죄자를 포박한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 태원이 형!”
그때, 스타일링을 마친 태원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수겸은 반가운 마음 반, 거울 속 제 모습의 치미는 불평 반을 담아 태원을 불렀다. 그러자 태원이 묘한 눈으로 수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수겸은 그런 태원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나 좀 봐. 이건 거의 감금룩 아니야? 어디다가 줄만 매어놓으면 딱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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