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02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방에 들어가니, 이제 막 일어났는지 태원이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수겸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둘러댈 말을 고민했다.
“안 잤구나?”
그러나 수겸보다 태원의 말이 빨랐다.
“어, 어떻게 알았어?”
“네가 이 시간에 일어날 리가 없잖아.”
“어떻게 다 알지…….”
수겸은 이겸에 이어 태원까지 알고 있는 사실에 괜스레 민망해져서 콧잔등을 쓸었다. 그만큼 자신이 일찍 일어나는 쪽과는 거리가 먼가 싶어서였다.
그러는 사이, 태원이 수겸에게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수겸은 민망해져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원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어? 뭐가?”
“어제 우리 때문에 못 잔 거잖아.”
“…….”
차마 긍정할 수도,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말에 수겸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려니 태원이 희미하게 웃었다.
“앞으로 조심할 테니까, 잠은 자. 알았지?”
“……으응.”
태원은 그 대답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지금 씻는 사람 없지? 나 씻으러 간다?”
“어……. 차이겸이 씻나? 모르겠네.”
“차이겸 새끼, 하여간 늙은이도 아니고, 아침잠이 없어요.”
“하하, 맞아.”
장난스러운 태원의 말에 맞장구를 치니 그가 개구지게 웃었다. 그러고는 더는 별말 없이 방을 나섰다.
수겸은 이겸에 이어 태원과도 문제없이 잘 푼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남은 건 유찬이랑 솔인가……?”
“내가 뭘?”
“으아아, 깜짝이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수겸은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에 놀라서 기겁하고 말았다. 소리가 난 발원지를 쳐다보니, 한솔이 약간은 불퉁한 표정으로 2층 침대에서 수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막 깼어.”
수겸의 물음에 한솔은 잠시 멈칫하더니 대꾸했다. 그 모습에 수겸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솔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한솔은 눈치가 보이는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역시 이상함을 느낀 수겸은 곧바로 방의 불을 켰다.
“눈부시잖아!”
한솔이 당황한 듯 손으로 얼굴을 얼른 가렸다. 그 행동에 역시나 뭔가 이상하다는 걸 확신한 수겸이 천천히 한솔에게 다가갔다.
한솔은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한 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오지 마, 오지 마!”
“왜?”
“어, 그, 그게…… 나, 감, 감기 걸린 것 같아. 옮을 수도 있어.”
“뻥치지 마. 어제까지 멀쩡했잖아.”
“일어나 보니까 몸이 이상해서 그래! 아무튼 오지 마. 감기 걸린다?”
“싫은데? 싫은데?”
수겸은 당황해서 뒤로 몸을 쑥 빼며 물러서는 한솔을 향해 다가갔다. 한솔은 침대 구석까지 숨어버렸는지 1층에서는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수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2층 침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아, 형!”
“왜?”
“진짜 그러다가 감기 옮는다니까? 콜록콜록! 이거 봐! 기침도 하잖아.”
연기임이 틀림없는 하찮은 기침 소리에 수겸이 콧방귀를 뀌었다.
수겸은 힐끔 한솔의 침대 위를 훑어보았다. 잘 보니, 침대 한편에 티슈 한 갑과 다 쓴 휴지 뭉텅이가 쌓여 있었다.
“야, 정한솔.”
“왜…….”
“너 울었지?”
“아, 아냐!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그럼 저 휴지는 다 뭐야?”
“가, 감기라고 했잖아! 코 풀어서 그런 거야. 울어서 그런 게 아니라.”
“으이구, 퍽이나 그렇겠다.”
여전히 한솔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수겸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얼굴 좀 보여줘.”
“시, 싫어. 눈부셔서 그래.”
“형광등 켰다고 아직까지 눈부시면 병원에 가봐야지. 이상 있는 거 아냐? 얼른 얼굴 좀 보여줘. 네 얼굴 보고 싶어, 솔아.”
“…….”
수겸은 타박하다가 이내 부드럽게 한솔을 달래주었다. 그러자 한솔은 멈칫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수겸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응? 솔아, 솔아아. 나 네 얼굴 보고 싶단 말이야.”
조르는 듯한 말투에 한솔은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조심스레 팔을 내렸다. 그러자 퉁퉁 부은 눈가가 눈에 들어왔다. 수겸은 하마터면 웃음이 픽 터질 뻔한 걸 애써 참았다.
“미안해…….”
한솔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어제의 일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단순히 미안한 정도를 넘어서 그렇게 성질을 내놓곤 방 안에서는 눈물이나 찍어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퍽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진심은 아니었어……. 너무 화가 나서…… 아니, 형한테 화가 났다는 건 아니고……. 질투가 나서 그랬어.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데, 형이 유피트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럼 너는?”
“어?”
“너는 아니야? 너한테는 유피트가 아무것도 아니야? 나에게만 소중해?”
비 맞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며 사과를 해오는 한솔의 모습을 보고 이미 화가 다 풀린 지 오래였지만, 수겸은 일부러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솔이 복슬복슬한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도록 거칠게 도리질을 쳤다.
“아니, 아니야. 나도 유피트가 소중하고 중요해. 나한테도 그래. 형은 물론이고 태원이 형도, 이겸이 형도, 유찬이도 모두. 스태프 누나, 형들도 다 소중하고. 나는 유피트가 정말 소중해…….”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해?”
“……미안해.”
한솔은 변명할 말이 없다는 듯 앵무새처럼 사과의 말만 되풀이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짠해 보였다. 수겸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눈물만 흘려대었을 한솔을 상상하니, 마음 한구석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있잖아, 솔아. 나에게 유피트가 소중하듯 너에게도 소중하다는 거 알아. 네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유피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연습생 시절을 봤잖아. 너는 누구보다 데뷔를 하고 싶어했고, 열정적이었으니까. 그러다가 함께 데뷔가 확정되었을 때 행복해하던 너를 잊을 수가 없어.”
수겸은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에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데뷔가 확정되던 날, 한솔은 누구보다 크게 기뻐했다. 본래부터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을 했던 한솔이기에 더더욱 데뷔가 정해졌을 때 행복했을 터였다.
수겸은 그 순간을 되짚으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유피트는 네 꿈 그 자체였잖아. 그러니까 나 때문에, 아니, 내가 아니라 다른 그 어떤 이유로라도 네 꿈을 망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형.”
“정말이야. 무슨 이유에서든 네게 소중한 걸 스스로 놓으려고 하지 마. 그건 결국 너를 다치게 하는 일이잖아. 나는 솔이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소중한 걸 지켰으면 좋겠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스스로를 위해서.”
수겸은 차분하게 말을 끝맺었다.
곧이어 한솔의 퉁퉁 부은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 한솔은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형…….”
한솔은 코맹맹이 소리로 사과를 이어갔다.
수겸은 침대 한구석에 처박혀 눈물을 찍어대는 한솔을 달래주기 위해 2층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갔다. 그러고는 한솔에게로 무릎으로 기어가 두 손으로 한솔을 꼭 안아주었다.
“알면 짜식아! 잘하란 말이야, 알았어?”
“응, 응! 잘할게, 미안해…….”
“아이구, 눈 다 부어서 어떡해. 너 오늘 선글라스라도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미안해, 형. 진짜 고마워……. 나 형 없으면 못 살아. 사실 다 거짓말이었어. 유피트 없으면 못 살아, 나는…….”
“알아, 다 알아. 그러니까 그만 울어. 여기서 눈 더 부으면 어쩌려고 그래?”
“혀엉…….”
토닥토닥, 다정하게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이 감동인지 한솔은 더욱 서럽게 훌쩍거렸다.
수겸은 새삼 한솔이 덩치만 크지, 아직은 어린애구나 싶어서 마음이 찡했다.
이렇게 유피트가 소중한 한솔인데, 전생에 유피트가 산산조각 나고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답할 수 없는 물음이 수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많이 슬프고 괴로웠을 그를 상상하니 수겸 역시 덩달아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것만 같아서 두 눈을 부릅뜨며 눈물을 참았다.
“나 정말 잘할게…… 내가 미안해, 미안해…….”
한솔은 한참 동안이나 수겸의 품 안에서 눈물 맺힌 마음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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