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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101화 (103/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01화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내가 너무 쓰레기 같다고…….”

차이겸이 괴로워하며 아까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수겸으로서는 이겸이 대체 무슨 고통과 싸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커다란 눈을 깜빡거려 보아도, 차이겸은 제 머리를 감싸 쥐고 긴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그럴수록 수겸의 호기심은 한계를 모르고 몸집을 불려갔다.

“아, 뭔데! 말해줘!”

“진짜, 하…….”

“말 안 해주면 나도 앞으로 네가 뭘 궁금해하든 이야기든 안 할 거야.”

결국 수겸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으름장을 놓았다. 협박이라면 협박이고, 경고라면 경고였다. 차마 같은 멤버인데 얼굴을 안 본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말을 안 할 거라고 겁박했다.

그러자 차이겸이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수겸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들으라는 식으로 푹푹 한숨까지 내쉬었다. 하라는 말은 안 하고 땅이 꺼질 듯 한숨만 쉬어대는 차이겸을 수겸은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진짜 들어야겠어?”

“응. 들어야겠어.”

“하……. 그럼 약속 하나만 해.”

“무슨 약속?”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에 수겸은 이겸이 얄미웠던 것도 잊고 고리눈을 떴다.

토끼처럼 동그랗고도 순진무구한 눈빛에 이겸은 또다시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건…… 전생의 나니까 욕하려면 전생의 나를 욕해. 이번 생의 나는 안 그럴 거니까, 전생의 내가 쓰레기라는 거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미워하지 마.”

“이게 뭔 소리래…….”

“아, 알았어, 몰랐어?”

“그래, 알았어.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럴게.”

수겸은 이겸의 재촉에 결국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전히 이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러든 저러든 지금 수겸은 이겸이 어떻게 전생의 스캔들 상대를 바로 알아차렸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했다.

“봐.”

“뭘?”

“사진을 보라고.”

차이겸은 아까처럼 수겸의 코앞에 휴대폰 액정 화면을 들이밀었다.

수겸은 뭘 보라는 건지 의문스러우면서도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이겸의 스캔들 상대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너무 예뻤다, 이거야? 보자마자 눈이 환해질 정도로 예뻤다, 뭐 이런 뜻이야?”

“아, 그게 아니잖아!”

기가 찬 수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어보자, 이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반응에 수겸은 화륵 짜증이 일었다. 지금 정말 언성을 높이고 성질내고 싶은 사람이 누군데, 차이겸이 왜 성질이란 말인가. 결국 이 여자가 이상형이라거나, 예뻐서 그랬다는 얘길 할 거면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굴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예뻐서 그런 거 맞구만! 네 취향이 이런 여자냐?”

“아,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럼 뭔데!”

결국 수겸은 두 주먹까지 불끈 쥐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자 차이겸은 미치겠다는 듯 제 머리를 두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꼭 감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너랑! ……너랑 닮았잖아.”

“……어?”

“아, 진짜 미치겠네. 이 새끼 이거 완전 쓰레기 아냐? 미쳤나, 진짜? 미쳤지, 제정신이 아니지. 돌았어, 완전. 미쳤다고. 뭐 이런 쓰레기 새끼가 다 있지?”

수겸이 당황스러워서 얼을 타는 사이, 차이겸은 전생의 자신을 향해 갖은 욕을 쏟아부었다.

본래 말을 곱게 하는 편은 아닌 차이겸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상스러운 욕을 해대는 편도 아니었기에 수겸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욕의 대상이 다름 아닌 차이겸 본인이기에 더 그랬다.

또 놀란 와중에도 차이겸이 화면 속 여자를 수겸과 닮았다고 한 게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겸은 멀뚱히 화면 속 여자를 바라보았다.

보조개가 깊이 들어가도록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는 자신이 보기에도 예뻤다. 그런데 그 여자랑 자신이 닮았다고……?

“내, 내가 이 여자랑 닮았다고……?”

“웃을 때 입매랑 보조개 들어가는 위치랑,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닮았잖아.”

차이겸은 자포자기한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도 순순히 설명해 주었다.

수겸은 그의 설명을 듣고도 납득이 되지 않아 액정 속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혼란했던 머릿속이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자신과 닮았다. 그래서 차이겸이 이 여자랑 섹…… 스 스캔들까지 났다는 거다, 지금.

“……와.”

“…….”

“차이겸, 이거 완전 쓰레기네!”

정리를 마친 수겸이 저도 모르게 질색하며 마음의 소리를 외쳤다. 그러자 차이겸이 괴로운 듯 마른세수를 했다.

“아, 나도 알아, 안다고! 하지만 그건 전생의 나야. 지금의 나는 아니니까 미워하지 마. 전생의 나는 마음껏 욕해도 돼. 아니지, 욕해도 되는 게 아니라 욕해야지. 쓰레기가 맞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나라고. 지금의 내가 아니야!”

차이겸은 자신의 전생의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이번 생과 전생의 자신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 눈물겨운 노력이 무색하게도 수겸은 세상에 이런 쓰레기가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차이겸을 쳐다보았다. 눈동자 하나에 ‘경’ 다른 눈동자 하나에 ‘멸’이 쓰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제발. 나도 알아. 전생의 내가 정말 쓰레기였다는 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 알면 알수록 내가 더 쓰레기라는 게 증명될 뿐이니까. 하지만 그건 전생의 나야. 지금의 내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하지만 그 여자분께 죄송하지도 않냐!”

“당연히 죄송하지! 그러니까 내가 쓰레기라는 거 아니야! 변명 안 해. 할 말도 없고. 그렇지만 다시 말하는데, 그건 전생의 나야. 내가 기억도 못 하는 전생의 나. 그러니까 좀 봐주라.”

“허…….”

수겸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들을수록 설득이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차이겸이 쓰레기인 것은 맞지만 그건 전생의 차이겸이지, 지금의 차이겸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둘 다 차이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기억도 못 하는 전생과 당장 살아내고 있는 현생은 꽤 큰 차이가 있었다.

“너, 너 진짜 쓰레기인데 한 번만 봐준다. 전생이니까.”

“……고마워.”

차이겸은 그제야 안도가 된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생의 차이겸과 현생의 자신 구분 짓고 나니 불편했던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자, 잠깐.”

“왜?”

당황한 듯한 수겸의 목소리에 차이겸은 불안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또 무슨 말을 하며 자신을 탓할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차이겸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수겸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화면 속 여자는 예뻤다. 수겸이 보기에도 예쁘다는 말이 절로 생각날 만큼. 그런데 그 여자랑 자신이 닮았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예쁘다고……?”

“……정말 새삼스럽게도 묻는다.”

물론 수겸도 태원이 형과 한솔에게 자신이 예쁘냐고 물어본 적이 있긴 했다. 그때 두 사람은 수겸이 예쁘다고 했다. 송화 누나와 팬들 역시 매일같이 수겸에게 예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차이겸은 아니었다. 한 번도 수겸에게 예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그런 차이겸도 사실은 전생에서부터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스레 민망해지고 부끄러워졌다.

“왜, 왜 말 안 했어?”

“말하면 뭐, 네가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좋아할 인간이냐?”

“그, 그거야 그렇지만…….”

차이겸은 거보라는 식으로 끌끌 혀를 찼다.

수겸은 그제야 뺨이 뜨끈해지며 얼굴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민망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어쩔 줄 모르겠는 게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보다는 민망함이 더 컸다.

“나, 나 갈 거야, 이 쓰레기야!”

“아, 그 이야기 끝난 거 아니었어?!”

“안 끝났거든! 쓰레기, 쓰레기! 차이겸 쓰레기!”

수겸은 민망함에 괜히 이겸을 욕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자 차이겸은 다시금 어쩔 줄 몰라 하며 괴로워했다. 수겸은 그 틈에 얼른 제 방으로 도망쳤다. 등 뒤에서 차이겸의 ‘아, 진짜 전생의 나 새끼 왜 그랬냐!’ 하고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모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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