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98화
* * *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분위기는 내내 똥이었다.
수겸은 서늘한 분위기에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멤버들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였다면 한솔이나 태원이 시시껄렁한 농담이라도 했을 텐데, 두 사람마저 아무 말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원래 과묵한 편인 유찬과 이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숨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릴 만큼 묵직한 정적이 수겸의 숨통을 옥죄었다.
수겸은 도망칠 곳도 없는 좁은 밴 안이라 더 숨이 막히는 기분이라,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택시를 타고 갈걸’ 하고 후회했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너네 싸웠냐?”
민성 역시 이상함을 느꼈는지 백미러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수겸은 그럴 리 없건만 이 거지 같은 분위기가 자신이 예민해서 느낀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는 한편, 민성마저 알아차릴 만큼 개똥 같은 분위기가 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왜 답이 없어? 진짜 싸운 거야? 그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다. 싸워도 좋으니까 풀기만 해. 괜히 꽁하게 담아뒀다가 나중에 탈 나지 말고.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다 풀어야 해. 해결하지 못한 갈등은 너네 사이에 실금을 만들어. 그 위로 뭘 자꾸 뭐가 쌓이면 와장창 깨지는 거야. 캬, 내가 말했지만 멋있다. 안 그러냐?”
“……싸운 거 아니에요.”
민성의 말에 수겸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그러자 민성은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싸웠다고?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래? 이사님한테 혼났어?”
“혼나긴요……. 이사님이 언제 저희 혼낸 적 있어요?”
“뭐…… 그거야 그렇지. 너무 혼을 안 내셔서 문제지.”
수겸의 물음에 민성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했다. 그러다가 금세 고개를 쳐들고는 백미러를 통해 수겸을 노려보았다.
“그럼 뭐야? 왜들 이래?”
“그…… 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야, 인마들아. 너네 왜 그래?”
“…….”
“어휴, 됐다, 됐어. 무슨 일이든 오늘 중으로 해결해. 내일까지 이러고 있으면 혼날 줄 알아.”
“…….”
“대답 안 해?”
“넵.”
수겸은 아무리 봐도 대답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멤버들을 대신하여 눈치껏 대꾸했다.
하지만 그것은 민성이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는지, 그는 외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이상의 추궁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수겸은 일단은 그 사실에 안도하며 찜찜한 마음을 달랬다.
* * *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수겸은 밴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절망에 빠졌다. 민성이 유피트를 데려다주고는 곧장 제 갈 길을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데뷔 초에는 매니저와 함께 숙소를 쓰는 아이돌이 흔한 편이지만 유피트는 매니저 형들과 숙소를 따로 썼다. 그러니 윤성이 가버리는 것도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인데, 아까는 워낙 숨이 막히다 보니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민성이 떠나 버리고 나자, 수겸은 육식동물 소굴에 내던져진 한 마리의 토끼처럼 오들오들 떨며 네 사람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숙소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네 사람의 흉흉한 기운에 압살당하는 줄 알았다. 수겸은 답답한 가슴께를 주먹으로 콩콩 때렸다.
“다, 다들 잘 자…….”
수겸이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고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네 사람에게 막혀 멈춰 서고 말았다.
“왜, 왜 그래?”
“왜 그러긴.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잖아.”
태원의 말에 수겸은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커다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도움을 줄 만한 상대를 찾아보았지만, 다른 세 사람의 눈빛 역시 무서울 정도로 싸늘했기에 이내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하, 할 말 없는데…….”
“송수겸.”
“응?”
“하나만 물어보자.”
차이겸의 말에 수겸이 푹 수그렸던 고개를 들었다.
차이겸은 안 그래도 사나운 얼굴을 한껏 굳히고 있었다. 수겸은 지은 죄도 없는데 찔리는 기분이라 자꾸만 작아졌다.
“너, 이사님이랑 사귀어?”
“어? 아니?!”
수겸은 생각지도 않았던 차이겸의 말에 거칠게 도리질을 쳤다. 그러자 일순간 내내 굳어 있던 차이겸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평소보다는 무서운 얼굴이었기에 수겸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럼 사귈 거예요?”
“아, 아니? 어…… 그러니까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유찬이 물었다. 수겸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부연 설명을 했다.
비록 이사님과 뽀뽀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귄다거나 뭔가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니 자신이 굉장히 쓰레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정작 이사님 역시 사귀자는 말은 없지 않았는가.
“사귀지 마.”
한솔의 말에 수겸은 기겁했다. 얼핏 들으면 어린아이의 생떼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한솔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해 보여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사귀지 말라고.”
“그…… 그게…….”
“사귀지 말라니까? 사귀지 마. 이사님이랑 사귀지 마.”
“아, 알았어…….”
애초에 사귈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으니, 한솔이 이렇게까지 진지한 얼굴로 졸라대는데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없었다.
일단 한솔의 말에 알았다고는 했지만 께름칙한 기분에 수겸은 쓴 입맛을 다셨다.
물론 당장 이사님과 뭘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앞날이란 모르는 법인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약속이야.”
“그, 그래. 약속.”
“약속 안 지키면 깽판 치고 탈퇴할 거야.”
“야 이, 미친놈아! 뭔 말을 그렇게 하냐!”
한솔의 말에 수겸이 기겁하며 주먹까지 허공에 내지르며 외쳤다. 그러나 한솔은 진심인 듯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장난하는 거 아니야. 진심이야.”
“야!”
“그러니까 이사님이랑 사귀지 마. 그리고 키스도 다시는 하지 마.”
수겸은 한솔의 입에서 ‘키스’라는 말이 나오자, 그대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어……?”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수겸의 멍청한 되물음에 한솔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 역시 되물었다. 그 순간 수겸의 뺨이 발갛게 익었다. 부끄러움과 민망함, 난감함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또 그러면 나 정말 미쳐 날뛸지도 몰라.”
한솔은 살벌한 경고를 끝으로 휙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겸은 멀어지는 한솔의 뒷모습을 보며 허망하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는 사이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제 방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한솔이 설마하니 저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생에서 스태프를 때리던 한솔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걱정을 하게 되었다.
정말 한솔이 그때처럼 미쳐 날뛴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수겸은 더럭 무서워졌다.
단순히 유피트에 피해가 가서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한솔의 앞날이 걱정되어서였다. 그리고 그런 한솔과 멀어지게 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니 싫었다.
한솔을 잃고 싶지 않았다.
사실 한솔뿐만이 아니었다. 태원이 형도, 차이겸도, 유찬이도 모두 잃고 싶지 않았다. 누구 한 명이라도 없는 미래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수겸은 처음으로 제 행동 때문에 멤버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우주에 혼자 동떨어진 것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졌다.
이제껏 유피트의 성공을 위해 멤버들을 이용해 왔던 자신이었다. 멤버 개인의 소중함보다는 자신의 미래가 더 소중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미래에 이들이 있어야만 완성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닫자, 일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신의 실수 한 번에 소중한 멤버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건 싫었다.
수겸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고개를 푹 꺼뜨렸다.
이제껏 아무 생각 없이 멤버들을 이용했던 과거가 처음으로 후회가 되었다. 물론 자신만 잘되자고 한 짓은 아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니 자신 때문에 멤버들은 물론 이사님까지 끼어서 서로를 견제하고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런 결과 따위는 바란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저 성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성공을 위해 무책임하게 저질렀던 과거의 행동이 업보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수겸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덩그러니 거실에 덩그러니 앉은 수겸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어떡하지…….”
답 없는 질문이 허망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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