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97화
더 진하고 야한 거……? 이미 충분히 진하고 야한 것 같은데 여기서 더?!
수겸의 충격에 빠져 입을 떡 벌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욱이 번지는 미소를 감추기 위해 손을 들어 자연스럽게 입가를 가렸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수겸은 그저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는 더 진하고 야한 것의 향연에 휩쓸려 수치사에 빠졌다. 머릿속이 온통 ‘삐---’ 하고 ‘삐---’ 한데다가 ‘삐---’ 하고 있었다.
수겸은 이런 제 생각을 들킬까 봐 황급히 도리질을 치며 머릿속에 가득한 음란 마귀를 몰아내기 위해 애썼다.
“무슨 생각 해?”
“아, 아무것도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요?!”
선욱의 질문에 수겸은 손사래까지 치며 외쳤다. 그럴수록 선욱의 얼굴에 더 환한 미소가 번지는 것도 모르고.
“그, 그럼 이제 그만 갈까요?!”
수겸의 짧은 생각으로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뿐이었다. 수겸은 허둥지둥하며 급히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선욱은 그런 수겸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은 이쯤 해두는 편이 좋겠다 싶어 가만히 두었다.
너무 밀어붙이면, 아무리 얼레벌레 넘어가는 수겸이라고 하더라도 엇나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선욱은 도망치듯 종종종 뛰어가는 수겸의 뒷모습을 보며 큭큭 소리 죽여 웃었다.
“나 왔어!”
“무슨 이야기 하다가…….”
급히 룸 안으로 들어선 수겸은 일시에 제게 쏠리는 네 쌍의 눈동자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그러나 네 사람의 표정이 전에 없이 흉흉한 것이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수겸은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네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입술이…… 부었네?”
태원의 물음에 수겸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수겸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물론 정확히 3초 뒤에 제 행동을 후회했지만.
그게 무슨 소리냐며 뻔뻔하게 나갔어야 했는데, 놀란 티를 너무 대놓고 내버리고 말았다.
“와, 미치겠네. 진짜.”
한솔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뜨러뜨렸다. 그는 당장에라도 누구든 붙들고 드잡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 누구가 대충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수겸은 얼른 한솔에게 달려가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안 돼, 솔아, 안 돼!”
“형, 나 지금 돌기 직전이니까 내버려 둬. 아무리 형이라도 이건 못 참겠어.”
“아니, 아니야. 솔아. 이게 그게 아니야. 오해야, 오해.”
“무슨 오해인데요?”
이번에는 유찬이 기가 막히다는 듯 끼어들었다. 수겸은 짧은 순간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굴렸다. 살면서 이렇게 급히 머리를 굴려본 것은 처음이었다. 뉴런들아 힘내, 뭐라도 해보라고!
“어, 그, 그게 아무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건 없었어.”
“우리가 생각하는 게 뭔데요?”
“그거 말이야, 그거.”
“그게 뭐냐고요.”
“아, 아무튼 그거!”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평소의 유찬이었다면 순순히 물러섰을 텐데, 지금의 유찬은 아닌 모양이었다. 대충 이 정도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 줄 거라 믿었는데, 유찬은 싸늘한 표정으로 수겸의 말에 되물을 뿐 넘어가 주려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수겸은 바짝바짝 마르는 입안을 달래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워낙 손이 떨려서인지 컵을 입가에 가져다 대기도 전에 가슴팍에 반은 흘려 버렸다.
“으, 으아아, 차가워, 아니, 뜨겁잖아!”
“괜찮아?”
“그거 물 아니잖아!”
“형, 잠깐만!”
“형, 괜찮아요?!”
수겸이 쏟은 것은 컵에 따라 먹는 갈비탕 국물이었다. 팔팔 끓여 나온 것은 아니다 보니 엄청나게 뜨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멍한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는 되었다.
물론 적대적인 분위기였던 멤버들을 누그러들게 할 정도도 되었고.
유피트 멤버들은 황급히 수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한솔은 얼른 수겸에게서 갈비탕 국물이 반쯤 남은 컵을 빼앗았다. 유찬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형, 괜찮아요?’ 하며 물었다.
“옷부터 벗어.”
태원이 다급하게 수겸의 옷을 벗겨주었다. 수겸은 태원이 벗겨주는 대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덕분에 졸지에 식당에서 반라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화상을 입는 것보다야 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겸이 얼른 차가운 물수건을 챙겨 수겸의 가슴팍을 닦아주었다. 찬기운 때문에 수겸이 움찔거리며 잘게 몸을 떨었다. 다른 것은 다 참을 만했는데, 유두 끝에 차가운 물수건이 닿자 저도 모르게 허리가 곧추서며 신음이 흘러나왔다.
“흣!”
“…….”
“…….”
“…….”
“…….”
수겸의 짧은 신음 끝에 룸 안에는 긴 정적이 내려앉았다. 당황한 수겸이 손을 내저으며 되는 대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게 그게 아니라…… 절대 내가 뭘 느꼈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 아니,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상한데, 지금 아무튼 그거 아니야. 아니라고. 제발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부탁할게.”
말을 하면 할수록 얼굴이 타는 듯이 익었다. 수겸은 뜨끈해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어찌나 민망한지 가슴께가 덴 것도 잊었다.
그때였다. 또다시 차가운 물수건이 수겸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예기치 못한 찬기운에 놀란 수겸이 번쩍 눈을 떴다.
차이겸이 붉어진 얼굴로 다시금 수겸의 가슴팍을 조심스레 닦아주고 있었다.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수겸은 밀려드는 수치심에 혀를 깨물고만 싶었다.
“내, 내가 할게.”
“아니야. 내가 할게.”
“아냐, 제발, 제발 내가 하게 해줘. 부탁이야. 내가 할게.”
수겸은 거의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대로 자신의 맨가슴을 차이겸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다행히 차이겸 역시 무언가 이상하기는 한지, 주춤거리며 물수건을 내밀었다.
수겸이 안도하며 물수건을 건네받는 찰나였다.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선욱이 모습을 드러냈다. 룸에 들어선 선욱이 본 장면은……. 반라의 수겸 주위에 유피트 멤버 네 명이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수겸의 가슴팍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데다, 심지어 얼굴까지 발갛게 익어 있었다.
선욱은 잠시 제 눈을 의심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과 입을 맞추고 있던 수겸이 이곳에서는 헐벗을 상태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아, 그, 그게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퍽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수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설명하자면 간단한데,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수겸 스스로도 크게 놀란 탓이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차이겸이 입을 열었다. 수겸이 그래도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는데, 차이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수겸이가 뜨거운 짓 좀 했어요.”
“야 이, 미친! 그,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전후 맥락 없이 뜨거운 짓 좀 했다니. 그것도 이렇게 헐벗고 있는 상황에 말이다.
수겸은 기겁하며 차이겸의 팔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하지만 수겸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차이겸이 말한 ‘수겸이가 뜨거운 짓 좀 했어요’보다 수겸이 말한 ‘그,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가 더 이상한 뉘앙스로 들린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선욱의 얼굴은 더욱 무섭게 굳었다.
“그, 그게 아니라……. 제가 사, 고를 좀 쳤는데요……. 태원이 형이 도와주려고 옷 벗겨주고, 이겸이가 몸을 닦아주고…….”
당황한 나머지 횡설수설하는 수겸의 말에 선욱은 자신도 모르게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끓어오르는 속을 식히기 위해서였다.
비록 마주한 상황이 아무리 봐도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지만, 설마하니 수겸이 다른 곳도 아닌 식당에서 멤버들과 무슨 짓을 할 리는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은 글쎄……. 생각보다 자신은 참을성이 그리 많은 어른이 아니기 때문일까.
“약은 안 발라도 되겠어요?”
유찬의 말이 아니었다면, 룸 안은 끝 모를 정적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유찬이 부어오른 수겸의 가슴팍이 걱정되어 입을 열어주어 다행이었다.
그제야 선욱의 시선이 수겸의 벌건 가슴에 닿았다. 자세히 보니 수겸 주변으로 뭔가 액체도 쏟아져 있었다. 한솔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을 들고 있었고.
선욱은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안도감이 밀려드는 한편으로 짜증이 일었다. 이 어린애들을 상대로 이토록 동요하고 경계하는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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