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96화
깜빡깜빡. 수겸의 커다란 눈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의아하면서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내가 지금 너한테 키스 마크를 만들면, 나를 미워할 거야?’라는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럼 잘못 듣고말고. 이사님이 그런 말을 하셨을 리가…….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수겸아.”
선욱은 수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수겸의 생각을 정정해 주었다.
수겸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선욱을 바라보다가, 이내 당황한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와 동시에 수겸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뜨겁게 열이 오른 얼굴을 느낀 수겸은 서둘러 손부채질을 했다. 그럴 리 없건만 열기에 얼굴이 펑 터져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대답 안 하면 그냥 할 거야.”
“자, 잠깐만요!”
이어지는 선욱의 말에 수겸이 기겁하며 외쳤다. 당장에라도 그가 키스 마크를 남기려 사납게 들이댈 것만 같아서 수겸은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선욱의 입술이 유난히도 또렷하게 보였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듯, 그의 입술에만 시선이 쏠렸다. 그럴수록 얼굴에는 더 열이 오르는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수겸아. 대답해야지.”
선욱의 재촉에도 수겸은 그의 입술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기 좋게 도톰한 입술이 호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조금씩 다가왔…….
“으아아아아, 잠깐만요! 잠깐만!”
“대답 안 했잖아.”
그의 말은 묵직하게 사람을 내리누르는 힘이 있었다. 결국 수겸은 급한 대로 떠오르는 말을 주절거렸다.
“그, 그게! 미, 미워하지는 않겠지만, 그, 그 뭐랄까, 이, 이사님을 보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수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벌렁거리는 가슴께를 내리눌렀다. 여전히 얼굴은 타는 듯이 뜨거웠다.
“우리 수겸이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 그게 아니라…….”
“미워할 거라고 하면 그까짓 미움쯤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텐데.”
선욱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자 수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말았다.
물론 선욱과 그렇고 그런 관계로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고,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이후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키스 마크라니, 이 무슨 남사스럽기 짝이 없는 말인가. 그와 자신 사이에 도저히 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선욱이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보니 이건 이거대로 싫었다. 가슴이 아프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는데, 너는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거구나.”
“헉, 그런 뜻이 아니라……!”
선욱은 더없이 쓸쓸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수겸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졌다. 바로 조금 전까지의 시뻘건 얼굴은 그의 것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금세 하얗게 질린 수겸이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사님, 절대 그런 게 아니라…… 저도 당연히 이사님이 없으면 안 되죠, 안 되고말고요. 제가 이사님 없이 어떻게 살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돌 송수겸일 때의 이야기잖아.”
“그, 그게…….”
정곡을 찔린 수겸이 당황하여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선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서글픈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옆모습이 말도 못 하게 슬퍼 보여서 수겸은 가슴이 저릿했다.
“그러니까 전생에서도 나를 떠난 거겠지.”
“그걸 어떻게……!”
수겸은 고리눈을 떴다. 물론 그에게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붙잡는 그를 한사코 거절하고 소속사를 떠난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선욱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내가 너를 그냥 보냈을 리가 없으니까.”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수겸은 벙긋거리던 입을 다물었다. 선욱은 그 스스로 알지 못하는 전생을 확신할 만큼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감정이 진지하다는 뜻일 터였다.
그의 고백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던 수겸은 이 사실을 깨닫자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미안해졌다.
선욱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고민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당황스럽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될 뿐이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했던 과거가 부끄러워 수겸은 미안함에 울 듯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가 있었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늘 그가 있었다. 전생에서 남자병에 걸린 자신을 말리는 그의 조언을 몇 번이나 무시하고, 결국 유피트가 처절하게 망했을 때 수겸은 그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선욱을 떠났고, 이후 몇 번이나 자신을 찾아온 선욱을 그냥 돌려보냈다.
전생에서도, 지금도 수겸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했다. 그런 자신을 이토록 좋아해 주다니, 고맙다 못해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이, 이사님…….”
“…….”
대답 없는 선욱의 반응에 수겸은 용기를 내었다. 그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입부터 주절거린 게 문제였지만.
그리고 선욱은 수겸의 떨리는 목소리에 수겸 몰래 작게 미소 지었다.
계획대로 되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주 약간 그의 순진함을 이용하기는 했다.
상처받은 척, 슬픈 척 그의 순진함에 약간만 불을 지폈더니, 수겸은 금세 넘어왔다.
“키, 키스 마크까지는 소, 솔직히 그, 너무 빠른 것 같고요…….”
수겸의 말에 선욱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다시금 수겸의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오,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제, 제가 절대 사, 사귀기 전에 스킨십을 막,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요…….”
“…….”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성 한 자락이 ‘그만해, 미친놈아!’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서글퍼하는 선욱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혀가 자유자재로 나불거렸다.
“뽀, 뽀 정도는…… 흡.”
수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욱의 입술이 다가왔다. 내쉬는 호흡이 그의 입술에 먹히고 말았다.
놀란 수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물론 자신이 먼저 ‘뽀뽀’라는 말을 입에 담았지만, ‘쪽’ 하고 떨어지는 입맞춤 정도를 생각했던 수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얼음처럼 굳은 수겸의 입술을 부드러운 혀가 가르고 들어왔다. 수겸의 입안을 탐하는 혀가 농밀하게 움직였다.
선욱의 혀는 수겸의 반듯한 치열을 훑고, 단단한 입천장을 간지럽혔다. 어찌할 바 몰라 굳은 수겸의 혀를 휘감아 희롱했다.
체온을, 타액을, 호흡을 훔치는 입맞춤이었다.
“흐, 응…….”
여리디여린 볼살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혀에 수겸은 저도 모르게 비음을 흘렸다. 마주한 입술 사이로 입맞춤의 열기만큼 뜨끈한 호흡이 새어 나왔다.
그의 키스는 농밀하고 진득했다. 능수능란하게 수겸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맞댄 입술을 시작으로 수겸의 몸에 점차 열이 올랐다. 수겸으로선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달뜬 몸을 바르작거리자, 선욱의 손길이 수겸의 몸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선욱의 손길이 닿는 대로 수겸은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으, 읏.”
참으려고 해도 야릇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안 그래도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부끄러움에 더욱더 붉게 익었다.
긴 입맞춤에 수겸의 호흡이 부족할라치면 선욱은 능숙하게 잠시 입술을 떼고 수겸이 숨을 들이마실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수겸의 호흡이 가다듬어지면 곧바로 다시금 그의 입술이 찾아들었다.
수겸은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짜릿한 놀이기구를 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킨십에서 오는 쾌락을 처음 느껴보기에 그것이 쾌락인지도 모르는 수겸은 그저 미지의 감각에 집어삼켜진 채 잘게 몸을 떨 뿐이었다.
“하, 아…….”
길고 긴 입맞춤이 끝이 났다. 선욱이 천천히 멀어졌다. 탐스러운 그의 입술이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걸 보자, 쾌락에 밀려나 있던 수치가 뒤늦게 밀려들었다.
“나한테는 이게 뽀뽀야.”
“……그, 그게 무슨…….”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수겸을 보며 선욱이 야릇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직한 목소리가 진득하게 수겸의 고막에 감겨들었다. 채 가시지 않은 열기가 다시금 수겸의 몸을 휘감았다.
어쩔 줄 몰라 데굴데굴 눈알만 굴리고 있던 수겸의 눈과 그를 올곧게 바라보던 선욱의 눈이 맞닿았다. 마치 조금 전까지 그들이 나누었던 입맞춤처럼.
선욱이 느른하게 웃으며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키스는 더 진하고 야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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