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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93화 (95/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93화

* * *

무사히 사전 녹화를 마치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에 팬사인회 장소로 이동했다. 모처럼 만의 팬사인회였기에 수겸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늘도 레전드 갱신해야지.”

성공을 향한 야망으로 불타는 수겸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누가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정작 수겸은 너무나 진지했다.

마음을 다지고 대기실로 돌아온 수겸은 휴대폰을 하고 있던 한솔에게 다가갔다. 한솔은 너튜브로 다른 아이돌의 안무 영상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하네.”

한솔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안무 영상에 집중 중이었다. 수겸은 그런 한솔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한솔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영상을 정지하고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왜 그래?”

“나 셀카 찍고 싶어서.”

아직까지도 휴대폰을 돌려받지 못한 수겸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한솔의 얼굴과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솔이 큭큭 웃었다.

“알았어, 빌려줄게. 대신 셀카 나랑도 좀 찍어줘.”

“아, 그럼! 당연하지!”

한솔의 제안에 수겸은 고민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한솔은 개구지게 웃으면서 휴대폰 카메라 어플을 켰다. 두 사람은 나란히 붙어 앉아 셀카를 찍기 위해 포즈를 잡았다. 한솔은 자연스럽게 수겸에게 고개를 기울였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찰칵찰칵,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솔은 앨범을 켜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공식 팬카페랑 SNS에 올릴 사진 골라봐. 뭐가 마음에 들어?”

한솔의 물음에 수겸은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아 휴대폰 액정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고 사진을 골랐다.

“뭐야, 둘이 왜 그렇게 꽁냥거려?”

송화의 물음에 수겸은 놀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에 반해 송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추궁을 이어갔다.

“둘이 수상해. 뭐 있는 거 아니야?”

“아, 있긴 뭐가 있어요!”

놀란 수겸이 기겁해 외치는데, 송화는 수겸의 반응에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육식동물처럼 눈을 번뜩거렸다.

“뭐야. 우리 천사님 반응이 제법 수상한데?”

“아우, 천사님은 또 뭐예요! 수상할 거 하나도 없어요.”

한솔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수겸으로서는 그녀의 추궁에 양심이 찔리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같은 멤버끼리 정분이 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 정한솔. 너, 내가 경고하는데 우리 수겸이는 아무나 못 줘. 알아?”

“그걸 왜 누나가 정해요?”

“야, 덕후의 마음은 덕후가 정하는 게 아니라 하늘에저 점지해 준 거야. 알아?”

억울하다는 듯한 한솔의 볼멘소리에 송화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수겸이 갸웃거리며 하늘이 점지해 준 덕후의 마음이 대체 뭘까 고민하는데, 송화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아무튼 우리 수겸이는 공공재야. 누구 한 사람만의 것이 될 수 없어. 모두의 것이라고.”

“아, 제가 왜 공공재예요!”

“씁, 아이돌이란 원래 그런 거야.”

“그건 물론 그렇지만!”

수겸은 송화의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부정을 하지는 않았다. 차마 공공재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의미로 따져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겸은 이번 생에서 성공하는 게 목적이지, 연애와 같은 부차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아이돌에게 연애란 부차적인 정도인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기 십상이었다.

데뷔 연차가 쌓이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언젠가는 연애를 할 수도 있긴 하지만, 유피트 같은 신인 그룹에게 연애란 있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걱정 마요, 누나. 저 연애 안 해요. 제 사전에 그런 건 없습니다!”

“그래, 좋은 자세야. 아주 훌륭해.”

송화는 수겸의 말에 흡족한 듯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은 입씨름이 일단락된 후에야 수겸은 한솔의 휴대폰을 빌려 셀카를 찍었다. 고개를 살짝 틀어 왼쪽 얼굴이 잘 보이게 찍기도 하고, 정면을 바라보며 찍기도 했다.

수차례 사진을 찍은 수겸은 수십 장의 비슷비슷한 사진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몇 장의 사진을 추렸다. 그는 능숙하게 SNS 어플을 켜서 사진을 첨부했다.

[사진]

안녕하세요~ 올빗 여러분!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저는 사녹 잘 마치고 참치찌개 먹었어요~^^

이따 팬싸에서 봐요~!

오지 못하신 분들도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저녁에 라이브 할게요!

그럼 안녕~~

#오늘_점심은_참치찌개 #사녹_끝 #오르비스 #올빗_사랑해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업로드를 눌렀다.

수겸이 글을 쓰자마자 좋아요가 수십 개는 눌리는가 싶더니, 댓글도 우르르 달렸다.

[semi_sin020330] 엥..? 이거 한솔오빠 계정인데? 뭐지

[minzyyy_kimo_o] 어ㅓㅓㅓ??? 뭐지???????

[roorooS2ooroor] 둘이 머야 먼데 왜 솔이 계정으로 수겸이가 글을 써?

몇 개의 댓글을 확인한 수겸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계정을 확인해보니 한솔의 계정이었다. 화들짝 놀란 수겸은 재빨리 삭제 버튼을 눌러서 게시글을 지웠다.

“헉.”

“왜 그래?”

“솔아, 미안해…….”

“무슨 일 있어?”

영문을 몰라 하는 한솔의 표정에 수겸은 시무룩해졌다.

사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한솔의 휴대폰이니 당연히 한솔의 계정으로 로그인되어 있을 것이라는 걸 어째서 간과했는지 자책이 되었다. 그저 어서 빨리 예쁜 사진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 네 계정으로 사진 올렸어. 바로 지우기는 했는데, 본 사람들도 있어.”

“에이, 뭐 그런 거 가지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진짜 괜찮아. 그냥 둬도 되는데 왜 지웠어? 나도 보고 싶은데.”

“너무 놀라서…….”

괜찮다는 한솔의 말에 수겸은 안도했다. 일단 당사자인 한솔이 괜찮다고 하니 큰 문제는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초보적인 실수를 한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내가 어제 잠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고민 끝에 나온 답은 수면 부족이었다. 잠이 부족해서 정신이 팔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한솔은 그런 수겸이 귀여워죽겠다는 듯 웃었다.

얼마 후,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팬들과 가까이서 만나는 자리인 만큼 수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사인회장으로 들어섰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팬사인회 참석 인원은 200명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소극장을 빼곡하게 채운 팬들을 보며 수겸은 흐뭇하게 웃었다.

“What’s this planet?”

“안녕하세요, 우리는 유피트입니다!”

태원의 선창을 따라 유피트는 익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수겸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팬들을 향해 여러 방향으로 손을 흔들었다.

간단한 인사말 후에 타이틀곡 <그리다>를 부르고 본격적인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팬들은 안내 요원의 가이드에 따라 한 명씩 줄을 서서 왔다.

한참 사인을 하던 수겸은 누군가를 보고는 멈칫했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학생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수겸을 보고 있었다.

“이름이…….”

“유하나요, 유하나!”

수겸이 앞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려는데, 학생이 먼저 답했다.

유하나, 기억을 파고드는 이름에 수겸은 잠시 굳었지만, 아이돌답게 유하나가 수겸의 이상한 기색을 알아차리기 전에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이름 예쁘다.”

“꺄, 감사해요!”

수겸의 말에 유하나는 두 주먹을 꼭 쥐고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흔들었다. 수겸은 그녀를 보며 아련하게 웃었다.

유하나, 전생에서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 자신을 알아보았던 여자의 이름이었다. 티켓팅을 하던 대학생 말이다. 고등학생 때 자신의 팬이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수겸은 회귀하게 된 계기 중 조금은 그녀의 덕이 있는 것 같아서 고마움을 담아 정성스럽게 사인을 했다.

“고마워요.”

“저도요! 아, 아니, 근데 뭐가요?”

“그냥요, 여기 와줘서요.”

“제가 감사하죠!”

유하나는 뭐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대꾸하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사인을 받은 앨범을 들고 옆에 있는 한솔에게로 이동했다.

“수겸아, 안녕!”

“안녕하세요!”

다음 사람은 다소 텐션이 높은 쾌활한 팬이었다.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더니, 이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수겸아, 아까 텀블러에 마시던 거 뭐야? 커피?”

“헉, 아니요. 미숫가루요. 이겸이가 타줬어요.”

“이겸이가 타줬다고?”

“네!”

팬의 물음에 수겸은 민성에게 대답했듯, 묻지도 않은 미숫가루의 제작자까지 밝혀주었다. 그런데 팬은 답변을 듣자마자 화색이 돌더니 눈을 반짝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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