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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91화 (93/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91화

이놈의 재앙의 주둥아리 같으니라고.

수겸은 뒤늦게 제 입을 탓해보았지만, 이미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들은 사람이라도 적으면 잘못 들으신 거라고,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박박 우겨보기라도 할 텐데 지금은 무려 쇼케이스 중이었다. 들은 귀만 수천 개였다.

예전 같았다면, 그러니까 멤버들이 수겸이 한 말을 오해하여 고백을 하기 전 말이다. 그때였다면 지금의 반응을 기회 삼아 더 신이 나서 떡밥을 뿌려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하면 스스로를 지금보다 더한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전처럼 신나서 셀프 비게퍼가 될 수는 없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깊은 고심 끝에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수겸은 결국 ‘아무것도 몰라요’를 시전했다.

“아하하, 그럴 리가요. 멤버들이 질투를 왜 해요. 너네 질투해? 아니지? 봐봐요, 아니래요. 그럼 다음 질문 가볼까요?”

수겸은 멤버들이 대답해 줄 틈도 주지 않고 물어보자마자 스스로 대답하고는 재빠르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럴 때는 철면피가 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

수겸은 MC를 바라보며 한 번 더 ‘다음 질문 주세요!’ 하고 외쳤다.

결국 MC는 무언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등 떠밀리듯 질문 박스에 손을 넣었다. 손을 크게 휘저은 그는 오래지 않아 질문 카드 한 장을 뽑았다.

“이번 질문은…… 유찬 씨 질문이네요! ‘유찬이 성인 되어서 가장 좋은 점은 뭐야?’라고 물어봐 주셨어요. 유찬 씨 대답 부탁드려요.”

다행히 이번 질문은 유찬과 관련된 것이었다. 수겸은 내심 안도하며 유찬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찬과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유찬은 수겸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어 오른손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입을 열었다.

“어른이 된 거.”

“아니, 유찬 씨. 성인이 되어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답이 ‘어른이 된 거’라니요!”

“맞아, 그게 뭐야!”

MC의 질문에 수겸은 큭큭 웃는 리액션을 하며 질문을 보탰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수겸은 유찬의 답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에 수겸은 멈칫하고 말았다.

“형들이 저를 아이 취급하는데, 이제 더는 아이가 아니잖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요.”

“누가 우리 유찬 씨를 그렇게 아이 취급을 했어요, 누가 그랬어요?!”

“전 아니에요!”

“저도요!”

“저도 아니에요.”

한솔에 이어 태원과 이겸이 빠르게 부정했다. 물론 수겸 역시 빠지지 않고 냉큼 끼어들었다.

“저도 아닌데?!”

“하지만 수겸 씨, 유찬 씨가 지금 수겸 씨를 보고 있는데요?”

그러나 MC는 유찬의 시선까지 꼬집으며 수겸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에 당황한 수겸은 잠시 토끼 눈을 뜨고 있다가 이내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니, 아이 취급한 게 아니라 유찬이가 저희 막내잖아요. 너무 귀엽고 소중해서 그랬죠. 우리 막냉이 서운했어요, 오구오구. 그랬어요~?”

“에이, 그렇네. 유찬 씨, 원래 막내는 형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예요. 그러다 보면 아이 취급처럼 느껴질 수도 있죠.”

다행히 MC는 수겸의 뻔뻔함에 자연스럽게 응수해 주었다. 그가 수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유찬을 바라보자, 유찬이 불만스럽게 눈매를 찡그렸다.

“하지만 수겸이 형은 제가 다른 연예인분께 연락처도 못 드리게 해요. 아, 물론 남자분이에요. 제가 막내라는 이유로 말이에요.”

유찬은 말을 하다가 팬들의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고는 얼른 덧붙여 부연 설명을 했다.

연락처를 주지 못하게 한 상대의 성별이 남자라는 것을 안 팬들은 안도하는 듯했다.

수겸 역시 쇼케이스에서 같은 그룹의 멤버가 열애설에 휩싸이는 끔찍한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덩달아 안심했다.

그러나 수겸의 편안한 마음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수겸 씨, 유찬 씨가 다른 남자 연예인이랑 친분 좀 쌓아보려고 하는데, 왜 그걸 막은 거예요? 유찬 씨가 다른 남자 연예인이랑 친한 게 싫어요?”

“아, 그게 아니라……. 싫다기보다는…….”

MC의 질문에 수겸은 당황스러워서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이미 멤버들이야 유찬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팬들이 있는 쇼케이스에서 그런 이야기는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었다.

수겸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적절한 답변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에 눈을 반짝 빛냈다.

“질투 나잖아요. ‘다 전부 내 거’인데!”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약은 전부 다 내가 먹자.

수겸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허허실실 웃었다. 팬들은 자지러지며 즐거워했고, MC 역시 시원하게 웃었다.

이내 MC는 수겸이 한 말을 강조하며 한 번 더 수겸에게 사약을 먹여주었다.

“아하하하, 맞네요, 맞아. 유피트 멤버들은 다 전부 수겸 씨 건데. 에이, 유찬 씨가 나빴네. 유찬 씨는 수겸 씨 건데 왜 수겸 씨 허락도 안 받고 번호를 주려고 해요?”

* * *

멤버들의 오해를 조금이나마 잠재우기 위해서 앞으로 비게퍼 노릇은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이리되었으니 글러먹었다. 결국 수겸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쇼케이스를 마쳤다.

다행인지 수겸의 마음 상태야 어떠하든 쇼케이스 자체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 증거로 음원이 공개되는 자정에 음원 순위 톱 10에 《Listen To》의 6개의 수록곡 중에 4개가 차트인에 성공했다. 게다가 타이틀 곡인 <그리다>는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지금이야 팬들이 가장 열성적으로 음원 스트리밍을 돌리고 있을 시간이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기에, 날이 밝아 출근 시간이 되면 음원 순위는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생에서는 최고 순위가 4위에 그쳤기 때문에, 확실히 이번 생에서의 앨범 반응이 훨씬 좋다고 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 역시 조회수가 잘 나오는 중이니, 유피트의 미니 2집 활동은 그야말로 안정적인 출발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음원이 이제야 막 공개된 상황이니 결과를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출발이 전생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점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수겸은 분 단위로 리셋되는 음원 차트를 계속해서 새로고침하면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휴대폰은 없고, 그렇다고 태원과 한솔이 자고 있는 방에서 노트북을 하는 건 민폐인 것 같아서 거실에 나와 홀로 어둠 속에서 F5 버튼만 계속 눌러대었다.

“안 자요?”

“으와앗, 깜짝이야!”

수겸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러다가 목소리의 주인공이 유찬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유찬이구나.”

“네,  뭐해요?”

“음원 순위 확인해.”

“벌써 새벽 3시예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유찬은 시간을 일러주며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있는 수겸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수겸은 어둠 속에서 노트북 화면의 약한 조명에만 의지한 채 유찬과 나란히 앉아 있으려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쇼케이스에서 했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하고, 괜스레 그가 신경 쓰였다.

“너는 왜 안 자?”

“형이 안 자니까요.”

“…….”

유찬의 말에 수겸은 대꾸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분위기 자체가 요상했다. 눈치 없는 수겸이 느낄 정도라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확실히 분위기가 묘한 게 맞았다.

수겸이 분위기가 더 깊어지기 전에 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타이밍만 재는데, 안타깝게도 유찬이 더 빨랐다.

“형, 저 이제 성인이에요.”

“어, 어어? 아, 알아.”

눈치코치 없는 수겸이라고 하더라도, 유찬이 난데없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히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지금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 어우, 졸리네.”

수겸은 삐거덕거리며 들으라는 식으로 혼잣말을 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유찬이 수겸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은 탓이었다.

“이제 저, 성인이에요. 어른이라고요.”

“……유, 유찬아.”

“그러니까 뭐든 할 수 있어요.”

“그, 그렇다고 손이 너무 자유로운 거 아니니…… 흣…….”

옆구리를 부드럽게 지분대는 손에 수겸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가 재빨리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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