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89화
이후로도 수십 개는 달린 댓글에 수겸의 얼굴에는 미소가 활짝 번졌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반응이 훨씬 더 좋아서였다.
이대로라면 전생에서는 1위 후보에서 그쳤던 미니 2집이, 이번 생에서는 1위까지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쭉쭉 올라가는 공식 뮤직비디오 조회수에 수겸은 흡족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직 공식 음원이 공개되기 전이라, 사람들은 뮤직비디오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아직 뮤직비디오가 오픈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보는 사람의 대부분은 흔히 말하는 일반인이 아닌 유피트의 팬인 오르비스이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K-pop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입될 터였고, 이들로 통해 흥행의 승패가 갈리게 될 터였다.
물론 음원이 나와서 성적을 까보기 전에는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법이지만, 확실히 뮤직비디오만큼은 전생보다 조회수 추이나 댓글 반응이 더 좋았다.
수겸은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금 자신이 나오는 장면을 되감기했다. 결과물은 상당히 섹슈얼하고 야릇하면서도 아련했다. 촬영 현장에서는 잠에 취한 상태라 하도 정신이 없이 찍어서 이런 결과물이 나올 줄 몰랐다.
솔로 신을 찍기 직전까지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 큭큭 웃음이 터진 수겸은 욕조에서 나와 걸어가는 장면에서 멈춤 버튼을 누르고는 키득거렸다.
“으아아아, 완전 좋아!”
수겸은 좋은 반응에 새삼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어쩌지 못해 부르르 몸을 떨며 외쳤다. 그러자 뒤에서 목소리가 이어졌다.
“뭐 해?”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차이겸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수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은 불퉁한 표정인 듯했지만, 뭐가 불만인지는 감조차 오지 않는 수겸인지라 그를 따라 덩달아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런 표정이야?”
“내 표정이 뭐가 어때서?”
“뭔가 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잖아.”
이겸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잡아뗐지만, 그마저도 진심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수겸을 속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당연히 수겸의 눈매가 불만스럽게 가늘어졌다.
“내가 언제.”
“지금!”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무튼 아니야.”
“으, 짜증 나!”
방금까지의 행복감이 순식간에 싹 지워진 수겸이 새카만 머리를 손으로 흩뜨리며 짜증을 냈다. 그러나 정작 수겸을 이토록 분노하게 한 차이겸은 뻔뻔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수겸이 씩씩거리는 동안, 차이겸은 말릴 틈도 없이 마우스에 손을 올리더니 뮤직비디오가 떠 있던 창을 꺼버렸다.
“뭐 하는 거야?!”
“뮤직비디오 껐어.”
“아니,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왜 갑자기 내가 보고 있는 걸 끄냐고!”
“나 컴퓨터 할 거야, 비켜.”
“나 지금 하고 있잖아!”
“이제까지 했잖아, 그러니까 비켜.”
숙소에 컴퓨터는 한 대뿐이었다. 노트북이 한 대 더 있기는 했지만, 화면이 작다 보니 뮤직비디오를 감상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다.
이겸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갑자기 하던 컴퓨터를 빼앗아 가려는 게 야속하기만 했다. 물론 이제까지 내내 컴퓨터를 붙들고 있던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기는 했지만, 사실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리 오래 컴퓨터를 독차지하고 있던 것도 아닌데 싶어서 억울할 따름이었다.
“차이겸 진짜 짜증 나.”
“그러든가.”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수겸은 ‘으으으’ㅠ 하고 투덜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딴에는 회심 어린 불만의 표현이었는데, 이겸이 아무런 대미지도 받지 않은 것 같아 바짝 약이 올랐다.
“너 미워.”
“나는 너 좋아해.”
“…….”
상황에도 맞지 않게 툭 튀어나온 갑작스러운 고백에 수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조금 전까지 파르르 끓던 속이 거짓말처럼 푸시시 김이 빠졌다. 대신 원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민망함이 가득 차올랐다.
“왜 아무 말도 없어?”
“그, 그렇게 갑자기 고백을 하는데 무슨 말을 해?”
차이겸의 말에 수겸이 벌게진 얼굴로 되물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차이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너 좋아해.’ 뭐 이런 말?”
“내, 내가 왜!”
“아직 아니야? 그럼 말고.”
아니면 말고 식의 고백에 수겸의 낯이 일그러졌다. 민망했던 것도 싸그리 잊혔다. 고백이란 자고로 조금 더 진지하고 분위기도 있게 해야 하는 법 아닌가!
“야, 누가 고백을 그렇게 해?!”
“그럼 어떤 식으로 해?”
“그야 조금 더 진지하고, 어? 분위기도 잡고…….”
“오케이, 접수.”
“어? 어어?”
수겸이 나름 고백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설파하는데, 마치 차이겸은 수겸이 이런 말을 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당황한 수겸이 토끼 눈을 뜨고는 상황 파악을 하고자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는데, 차이겸이 씩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좋은 정보 감사.”
“으엉?”
“다음에는 진지하게 제대로 분위기 잡아서 고백할 테니까, 그때는 받아줘.”
“어?”
이 흐름이 아닌데?
눈치 없는 수겸이 느끼기에도 요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뭔가 상황이 묘했다. 차이겸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느른하게 웃는 차이겸이 끝내주게 잘생겨서 수겸은 내심 억울했다.
저 얼굴 저렇게 쓸 거면 나나 주지, 싶어서.
그러는 사이 이겸은 언제 수겸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비켜, 나 컴퓨터 하게.”
그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온 수겸이 씩씩거리며 컴퓨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무리 봐도 차이겸은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힐 리가 없으니까.
수겸은 치미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차이겸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힘껏 때리고는 제 방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차이겸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 * *
며칠 후, 미니 앨범 2집 《Listen To》의 쇼케이스가 있는 날 아침이 되었다. 쇼케이스 무대가 끝나고 자정이 되면 음원이 공개될 터였다.
수겸은 쇼케이스 자체도 떨렸지만, 그보다 자정에 공개될 음원의 반응이 궁금해서 제 심장이 콩닥거리는 게 귀에 들릴 지경이었다.
“뭐야, 우리 수겸이 검정이 이렇게 잘 어울려? 도대체 안 어울리는 게 뭐야?”
긴장감에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 때쯤, 검은색 슈트를 위아래로 차려입은 수겸을 본 송화의 주접이 시작되었다.
“누가 우리 수겸이한테 초크 매줄 생각을 했지요? 누구긴 누구야? 이 몸께서 했지요. 잘했어, 나야. 아주 칭찬해.”
송화는 자문자답을 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 뻔뻔하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수겸은 결국 작게나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덕분에 한계까지 치달았던 긴장감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수겸은 하얀색 셔츠를 받쳐 입고, 그 위로 검은색 슈트를 입었다. 그 위로 가슴팍에는 가죽 하네스를, 목에는 초크를 했는데, 두 개가 여러 가닥의 은색 체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휴, 우리 수겸이 조심해. 누나가 와락 잡아가기 전에.”
“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 웃네? 진심인데.”
큭큭거리는 수겸을 본 송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장난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송화의 눈빛이 순간순간 광기로 빛나는 것 같아서 수겸이 저도 모르게 슬쩍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다.
그때였다. 대기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서 문이 열렸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헉, 이사님! 안녕하세요!”
문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선욱이었다. 유피트를 비롯하여 대기실에 있던 스태프까지 모두 제각기 인사를 건넸다.
선욱은 여유롭게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받는가 싶더니 자연스럽게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쇼케이스 보러 왔는데, 괜찮죠? 말도 없이 와서 미안해요.”
“헉, 아닙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오실 수 있죠.”
선욱의 사과에 지연과 송화가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그러자 선욱은 다행이라며 미소 지었다.
선욱은 스태프들과 짧은 인사를 마친 후에, 준비를 마친 유피트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수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알아챈 송화가 얼른 선욱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이사님, 수겸이 장난 아니죠? 죽이죠? 엄청 나죠? 올킬이죠?”
“……그러게요.”
“뮤비에 젖은 느낌 살려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머리도 살짝 젖은 느낌으로 표현하고 피부도 촉촉하게 했어요. 물에서 막 나온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 위에 하네스와 초크를 끼얹은! 섹시하면서도, 아주 그냥 어디론가 잡아가서 냉큼 잡아먹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
송화는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늘 듣는 그녀의 주접이었지만, 선욱 앞에서 듣고 있으려니 괜스레 더 민망해져서 수겸의 귓불이 발갛게 달아오를 즈음이었다.
선욱이 뚫어져라 수겸을 바라보다가 낮게 읊조렸다.
“정말…… 정말 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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