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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86화 (88/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86화

* * *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 출연을 마지막으로, <소원 꽃잎>의 활동기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물론 오래 쉴 수는 없었다. 애초에 <소원 꽃잎>은 미니 2집에 수록된 곡인데, 본격적인 미니 2집 활동을 하기 전에 디지털 싱글 앨범으로 먼저 활동을 한 셈이었으니까.

약 2주간의 휴식기 끝에 타이틀곡으로 컴백할 예정이었다. 말이 휴식기지, 컴백 준비를 하기에 바빴다.

다행인 점은 유피트의 컴백 시기와 사전에 촬영한 예능 프로그램의 방영 시기가 겹치게 되었다. 컴백과 동시에 공중파 예능에 출연하는 셈이니 홍보 효과가 더 좋을 터였다.

“저 또 탈색해요?”

미용실에서 수겸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송화가 그런 수겸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큭큭 웃었다.

“요정님, 이제 탈색 안 하셔도 돼요.”

“헉, 진짜? 진짜요? 지연이 누나, 저 진짜 탈색 안 해도 돼요? 송화 누나가 장난치는 게 아니고?”

송화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수겸이 헤어 담당인 지연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가득 차서 물었다. 그러자 지연은 흐뭇한 듯 미소 지었다.

“응, 진짜. 수겸이가 탈색하기 싫어한다고 이사님한테 말씀드리니까, 흑발로 활동하라고 하시더라? 우리야 땡큐지.”

“와, 대박!”

지연의 말대로 수겸의 입장에서는 땡큐도 그런 땡큐가 없었다. 지연은 지연대로 탈색과 염색, 그것도 나름대로 균일하게 분홍색 톤을 유지해야 하는 세심하고도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수겸은 번거로운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번에 아예 까만색으로 확 덮을 거야.”

“넵!”

수겸은 기대감에 젖어 대꾸했다.

물론 전생에서도 미니 2집 활동을 할 때 흑발로 활동을 하기는 했다. 문제는 잠시나마 걸렸던 남자병 때문에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팬덤은 반 토막 났고, 이어서 연이어 줄줄이 터진 병크로 유피트는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그렇기에 수겸 역시 지금부터는 앞날을 알 수 없었다. 수겸의 남자병이라는 유피트 탈덕의 시발점 자체가 없어졌으니, 이전과는 결과 역시 분명 달라질 테니까.

탈색한 머리 위를 까맣게 덮는 단계였기에 평소보다 염색 시간이 오래 걸렸다. 좀이 쑤셔 저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거릴 때쯤, 마침내 머리 스타일링이 끝났다.

“오오…….”

수겸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자연 흑모가 아닌 염색으로 만든 까만색이라 그런지 원래의 머리 색보다 훨씬 더 까맸다. 그동안 잦은 탈색과 염색으로 환한 머리 색만 보다가 어두워진 머리 톤을 보니 마냥 낯설게 느껴졌다.

짝, 짝, 짝.

“와아……. 미쳤다, 요정? 선녀? 아니, 천사? 대체 뭐지?”

어디선가 난데없는 박수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송화의 주접이 시작되었다.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주접 멘트에 수겸이 낯을 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화의 주접 멘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예 머리를 새까맣게 바꾸니까 하얀 피부가 대비돼서 더 하얘 보이네. 미쳤다. 우리 수겸이 확신의 겨쿨이구나!”

“겨쿨이요?”

“겨울 쿨톤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까 진짜 백설 공주가 따로 없네.”

“그, 그만해요…….”

송화의 말은 이미 수겸이 수용할 수 있는 주접의 한계치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수겸이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벌써 스타일링이 끝난 유찬과 눈이 마주쳤다. 유찬은 빛 아래서는 파란빛이 도는 블루블랙으로 염색을 했다.

늘 까만 머리 색이었던 유찬의 머리에서 푸른빛이 묻어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수겸은 바싹 유찬의 앞에 다가갔다.

“와, 진짜 잘 어울린다. 너는 어떻게 이런 머리 색이 어울려? 예뻐서 그런가?”

“이제껏 내내 분홍 머리였던 형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아하, 그렇지.”

유찬의 말에 수겸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유찬은 그런 수겸이 귀여운지 손으로 입매를 가리고 웃었다.

이어서 이전보다 조금 더 밝은 갈색 머리를 한 한솔과 이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이겸, 그리고 머리 옆으로 스크래치가 추가된 태원이 수겸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무언가 홀린 듯 멍하니 수겸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약간은 돌아 있었기에 수겸은 저 인간들이 왜 저러나 싶어서 괜히 쫄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는데, 뒤에 있던 송화가 다시금 박수를 치며 외쳤다.

“송수겸 색기 대박! 아주 그냥 다 홀려 버리자!”

어라…… 이게 아닌데……?

어째선지 송화의 말이 저놈들의 돌아버린 눈빛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수겸은 마른침을 삼켰다.

* * *

스타일링을 마치자마자 유피트는 앨범 재킷 사진을 찍었다. 사실 요즘은 앨범이 앨범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화보집과 다를 바 없었기에, 사진을 찍는 데에 한껏 공을 들였다. 덕분에 촬영이 꽤 길어졌다.

수겸은 피곤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촬영이 끝나고 돌아오는 밴에서 한껏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태원이 수겸의 자그마한 머리통을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고마워.”

갑작스러운 태원의 행동의 놀라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그에게 기대는 게 일상이었던 수겸은 금세 새물거리며 웃었다.

“얘들아, 너네 많이 피곤해?”

“왜요?”

민성의 말에 한솔이 물었다. 그러자 민성은 힐끔 백미러로 한솔을 보더니 다시금 앞을 주시하며 대꾸했다.

“이사님이 너희 머리 새로 한 거 보고 싶으시대. 밥 사 주겠다고 오라고 하시는데, 어때?”

“아…….”

“야, 뭐 그렇게 싫은 티를 내냐? 이사님이야, 인마. 정신 차리자, 어?”

“……네.”

떨떠름한 한솔의 대답에 민성이 타박을 하자, 한솔은 마지못해 대꾸했다. 그러자 민성은 만족스러운지 흡족하게 웃고는 다시금 물었다.

“그러면 가겠다고 말씀드린다?”

“네!”

“뭐야, 이것들이 왜 수겸이 빼고는 대답이 없어?”

당황한 수겸이 놀란 눈으로 멤버들의 눈치를 살폈다. 아마 이사님을 견제하는 것일 테지만, 어쨌거나 상대는 소속사 대표님이었다. 사회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대 말이다.

수겸은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얼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다들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싫어서 대답을 안 한 거겠어요. 설마? 그냥 무언의 긍정, 그런 거죠, 뭐.”

“하긴, 그렇겠지. 니네가 싫어 봤자, 뭘 어쩌겠어.”

“맞아요, 맞아.”

수겸은 민성의 말에 과장될 정도로 맞장구를 쳤다. 그런 수겸의 행동에 미심쩍은지 민성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지만,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오래지 않아 유피트를 태운 밴은 익숙한 일식집 앞에 멈춰 섰다. 선욱이 몇 번 밥을 사 주었던 곳이었다.

민성은 스태프들용으로 예약된 다른 방으로 향하고, 유피트는 선욱이 있는 방으로 갔다.

직원이 열어주는 문 안으로 들어서자, 선욱이 앉아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이사님!”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선욱을 향해 수겸은 꾸벅 인사를 했다. 선욱은 답지 않게 당황한 듯 수겸의 인사를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겸은 그가 왜 저러나 고민하면서도 냉큼 자리에 앉…… 으려 하다가, 이겸이 팔을 잡아당기는 덕분에 그의 옆에 앉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수겸이 커다란 두 눈을 끔뻑거리는 반면, 이겸은 흡족해 보였다.

한 명, 두 명 수겸을 중심으로 먼저 자리를 채운 멤버들이 마침내 빈자리에 모두 앉았다. 그때까지도 선욱은 평소와는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수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사님, 왜 그러세요?”

“아아, 별거 아니야. 큰일 난 것 같아서.”

“엥?”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 큰일 난 것 같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말이란 말인가.

수겸은 고개를 더더욱 혼란스러워져서 멀뚱히 선욱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욱은 꽤 진지한 표정으로 ‘큰일인데’ 하고 중얼거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롭기만 하던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수겸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무슨 큰일이요……? 혹시 어떤 문제라도 생겼어요……?”

“문제라, 그래. 문제지.”

선욱은 수겸의 물음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쯤 되니 수겸은 이제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선욱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무서울 지경이었다.

“수겸아.”

“네?”

“너 그냥 활동 접자.”

“네?!”

날벼락과 다를 바 없는 소리에 수겸이 기함하며 되물었지만, 선욱은 진지한 표정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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