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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82화 (83/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82화

자신이 낸 소리를 태원이 들었을까 싶어 수겸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그렇게 크게 냈는데 안 들었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테지만, 희망 정도는 가져도 되는 것 아닌가.

“수겸아.”

“으, 응?”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한껏 긴장하고 있던 수겸은 생각지도 않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웬 선택지란 말인가. 이 상황에서 뭐 선택할 게 있나 싶어서 커다란 두 눈만 끔뻑거리고 있으려니 태원이 말을 이었다.

“이대로 자연스럽게 침대에 가는 거랑, 부자연스럽게 침대에 가는 거.”

“……어? 응?”

“선택해.”

“그게…… 자연스럽게 돼?”

“궁금하면 골라봐. 되나 안 되나.”

“그래…… 가 아니라. 뭔 소리 하는 거야, 지금!”

뻔뻔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태원의 말에 수겸은 홀린 듯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할 뻔했다.

수겸이 씩씩거리며 태원을 밀쳐내어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태원은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가만 안 둬. 장난치지 마!”

“장난치는 거 아닌데. 진심이야.”

태원의 진지한 대답에 수겸의 낯이 희게 질렸다가 이내 붉게 익었다. 그 투명한 반응에 태원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아, 그럼 더더욱 안 되지!”

수겸이 기겁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둥지둥 제 방으로 향했다. 물론 손에는 태원의 휴대폰을 꼭 쥔 채로.

“어우, 진짜. 호로록 잡아먹히는 줄 알았네.”

침대에 누운 수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로록 잡아먹혀? 누구한테?”

“으와앗, 소, 솔아.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아까부터 쭉 여기 있었지.”

한솔이 불만 섞인 눈으로 수겸을 보았다. 그 눈빛에 수겸은 지은 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원이 형이 형 잡아먹으려고 했어?”

“그, 게…… 뭐 장난이었을 거야.”

거짓말에는 영 재능이 없는 수겸이 하하 웃으며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하자, 한솔이 코웃음을 쳤다.

“장난 아닐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

“뭐?”

한솔의 말에 놀란 수겸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한솔은 말릴 틈도 없이 수겸의 침대 위로 올라왔다.

수겸 혼자 자기에 딱 맞는 싱글 침대에 남자 두 명이, 그것도 한솔처럼 체격이 큰 남자가 올라오자 수겸은 본의 아니게 한솔과 밀착할 수밖에 없었다.

“야, 야! 내려가!”

“싫어, 나 형이랑 같이 잘래.”

“야, 이게 자는 거야? 낑기는 거지!”

수겸이 질색하며 부정하는데도 한솔은 큭큭 웃으며 수겸을 와락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그의 품에 안기게 된 수겸은 버둥버둥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한솔의 긴 팔다리가 수겸을 밧줄처럼 꽁꽁 에워싸듯 안았다.

“야, 정한솔!”

“와, 좋다. 진짜 행복해.”

한솔은 정말로 행복한 듯 중얼거렸다. 겨우 포옹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행복해하나 싶어서, 수겸은 그를 밀어내려던 것도 잊고 멈칫했다. 그러자 한솔이 그 틈에 수겸을 제 품에 안았다. 덕분에 수겸은 한솔의 가슴팍에 폭 파묻혔다.

탄력 있으면서도 폭신한 가슴에 얼굴이 닿자, 수겸의 얼굴이 타는 듯 붉어졌다.

팬들은 한솔이 베이비 페이스와 반전되는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 좋아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정말 한솔은 생각보다 가슴이 컸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컸다.

그 큰 가슴에 얼굴을 묻게 된 지금의 현실이 뭐랄까…….

“이, 이게 뭐, 뭐야?!”

굉장히 민망하고 당황스러웠다.

“왜, 예전에는 잘만 안아줘 놓고.”

“그야……!”

한솔의 말에 수겸은 대번에 대꾸하려다가 이내 말끝을 흐렸다.

그때는 비게퍼로서의 열일하기 위해 먼저 치대고 들이대고 스킨십까지 해댔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솔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상황이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필요에 따라 그를 이용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자, 차마 아까처럼 성을 내며 그를 밀쳐낼 수가 없었다.

“……미안해.”

“갑자기 뭐가?”

“내가…… 나 잘 먹고 잘살려고 널 이용한 것 같아서.”

정확히는 유피트를 흥하게 해보려던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잘살기 위해서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망돌이 되어 비참한 하루하루를 살았기에 이번 생에서만큼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한솔을 이용했다. 아니, 한솔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까지 모두를 필요에 따라 써먹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자 양심이 쿡쿡 찔리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사과할 것 없어. 난 좋았으니까.”

“어……?”

“마음껏 이용해. 필요한 만큼 써먹어. 앞으로도 나를 더 꼬시고 미치게 해줘.”

한솔의 성격상 수겸을 책망하거나 원망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졸지에 양아치 짓을 독려받은 수겸은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게 써먹을 대로 써먹다가, 한 번씩 내가 이렇게 들이대면 못 이기는 척 받아줘.”

“야…….”

“그거면 돼. 물론 어느 날에는 더 욕심을 낼지도 몰라. 그날이 오면 뭐…… 그때도 못 이기는 척 받아주라.”

“뭐가 어째?”

한솔의 따스한 말에 받았던 감동이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라, 수겸이 모난 눈으로 한솔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한솔이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그의 품에 안긴 수겸의 몸 역시 잘게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솔은 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포옹도 슬쩍 받아주고, 뽀뽀도 받아주고, 그러다가 섹…….”

“미쳤냐아악! 아니, 얘가 어린 게 못하는 말이 없어.”

“형이랑 나랑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어린애 취급이야? 알 거 다 알거든요.”

“나는 몰라, 짜샤! 알고 싶지도 않고!”

“아!”

수겸이 한솔의 가슴을 ‘짝!’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한솔이 아파하는 소리를 냈지만, 수겸은 그를 흘겨보기만 할 뿐, 사과는커녕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안 어린 건데? 미성년자 탈출했으면 됐지. 그리고 형이 어린 게 좋다며.”

“아, 그거는!”

“해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도 알지. 못 이기는 척 한번 박혀봐.”

“……와, 솔아. 너 안 그렇게 봤는데 말하는 거 엄청나다.”

“침대 위에선 더 더럽게 말할 수도 있어.”

뻔뻔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수겸은 혀를 내둘렀다. 이제껏 자신이 알던 한솔의 이미지가 일순간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한솔이 싫어졌다거나, 불편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알던 한솔이 아닌 것만 같아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 형을 그만큼 좋아한다는 거야.”

그러나 다정한 말과 함께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수겸이 알던 한솔이 맞았다. 그 차이에 묘한 괴리감을 느끼면서도 수겸은 그의 손길에 머리를 내맡겼다.

얌전히 한솔의 손길을 받는 동안에도 가슴은 갑작스러운 고백에 콩닥콩닥 뛰어댔다. 수겸은 민망함에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한솔이 기분 좋게 웃는 게 몸의 떨림으로 전달됐다. 그 떨림이 유난히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형을 좋아해서 행복해.”

“……갑자기 그런 고백 하지 마.”

“왜, 떨려?”

“…….”

“그럼 계속해야지. 형이 떨릴 수 있게.”

“참 나…… 웃겨.”

사실은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오히려 한솔의 말에 수겸은 자못 진지해졌다. 정말 그의 말대로 가슴이 떨린 탓이었다.

이런 순간이 한 번, 두 번 계속 더해지면 그때는 정말 자신도 모르게 섹…….

“으아아아,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왜 그래?”

수겸의 다급한 말에 한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차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는 수겸은 입을 다물었다.

“하여간, 귀여워.”

한솔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수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정한 손길이 피부로 따스한 체온을 전하니 슬슬 나른해졌다. 이대로 잠이 드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잠에 취한 수겸은 나른한 목소리로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맹세코 어떤 의미를 담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졸리니까 자고 싶었다. 자신을 안고 있는 한솔의 품에서.

“솔아…… 나 너랑 자고 싶어…….”

수겸이 잠결에 한솔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수겸을 한고 있던 한솔의 몸이 드러날 정도로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이상함을 느낀 수겸은 몰려오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놀란 눈으로 한솔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 배에 단단한 것이 닿았다. 그러니까, 닿으면 안 될 게 닿았다…… 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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