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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79화 (80/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79화

“괜찮아, 떨어질 수도 있지.”

유피트 멤버들의 반응을 보고 결과를 눈치챈 선욱이 달래주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수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좀처럼 사라질 줄 몰랐다.

“왜 그래? 뭐 어떻게 떨어졌길래? 안전 벨트를 안 했어?”

“아뇨…….”

“그럼?”

“그…… 불법…… 유턴이요.”

“오…….”

선욱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입가를 가렸다. 어지간한 답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불법 유턴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면서 수겸이 본인이 불법 유턴을 해놓고도 얼마나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을지 그 모습이 상상되어 슬그머니 웃음이 번졌다.

“……웃으시는 거 아니죠?”

“에이, 아니지.”

“손 좀 치워주실래요……?”

“어어, 고기 왔다.”

선욱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 난감해할 때, 때마침 직원이 고기를 들고 들어왔다. 수겸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이기는 했지만, 금세 윤기가 감도는 고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빛이 반짝반짝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고기를 사 주길 잘했다 싶었다.

치이익.

노릇노릇하게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수겸은 젓가락을 입에 물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불판을 바라보았다. 소고기라 금방 익는다는 걸 알면서도 고기가 익는 걸 기다리는 시간이 천년 같았다.

“이제 드셔도 돼요.”

직원이 친절한 안내와 함께 육즙이 살아 있는 고기를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그때부터 수겸의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체해.”

한솔의 걱정에 수겸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빵빵해진 볼에 쉴 새 없이 음식을 밀어 넣었다. 고기, 감자 샐러드, 고기, 또 감자 샐러드, 고기…….

“이거라도 마셔요.”

이번에는 유찬이 사이다를 한 잔 내밀었다. 수겸은 사양하지 않고 잔을 받아 들어 마셨다. 꿀꺽꿀꺽 사이다를 들이켤 때마다 목구멍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반면에 답답했던 가슴은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한창 행복하게 고기를 먹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수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피트 멤버들을 제외하고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수겸이었다. 제게 연락을 할 사람들은 지금 이 자리에 죄다 모여 있으니, 당최 누가 연락을 한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수겸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나 액정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금세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망할놈]

‘망한다’는 좀처럼 험한 표현을 쓰지 않는 수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주였다.

수겸은 실제로 망돌이 되어 망해보았기에, ‘망한다’는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함부로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하라고 할 정도의 상대라면 그럴 만한 놈이라는 뜻이었다.

“왜요, 누군데 그래요?”

수겸의 정면에 앉아 있던 유찬이 그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수겸은 그제야 황급히 표정을 갈무리하며 애써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 아, 있어. 저 잠깐 통화 좀 할게요.”

수겸은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찬이 있는 자리에서 이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다.

방 밖으로 나와 복도 끝 구석으로 향할 때까지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일부러 느릿느릿 걸었는데도, 이 망할 놈은 끈질겼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예요, 신명현.

알고 있다, 이 자식아. 수겸은 주머니 속에서 남몰래 중지를 치켜들었다. 아무리 신명현이 통화 중이라 수겸이 중지를 든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연예인으로서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니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드러내 놓고 뻐큐를 할 수는 없어서였다.

-바빴어요? 전화를 늦게 받네요.

“아, 네, 뭐……. 밥 먹고 있었어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빨리 용건만 말하고 끊어야겠네요.

“예, 뭐……. 무슨 일이세요?”

수겸은 최대한 떨떠름한 기색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 만나서 밥이나 먹을까 해서요. 많이 바쁘면 커피라도 좋고.

“아, 그게…….”

-바쁘면 천천히 일정 잡아도 돼요. 그냥 수겸 씨랑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그래요.

“네에, 뭐…….”

-이번 주 바쁘면 다음 주는 어때요? 음방 있을 테니까, 음방 없는 요일로 잡으면…… 월요일 어때요?

신명현의 제안에 수겸은 진심으로 고민했다. 이 자식을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론 마음 같아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자식이 전생에 어떤 식으로 유찬을 꼬여냈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생에서는 신명현이 유찬에게 어떤 해코지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할 수 없게 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전생에서의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라도 물 한 번은 먹이고 싶었다.

“좋아요. 시간은 확인해서 연락드릴게요.”

-와, 정말요?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수겸의 대답에 신명현은 기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반응에 수겸은 휴대폰 액정을 향해 날름 혀를 내밀어 메롱했다.

-그럼 밥 마저 먹어요.

“넵. 들어가세요.”

수겸은 짤막하게 예의상 건네는 인사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도 여전히 찜찜한 기분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투덜거리며 방으로 향했다.

“누구랑 통화했어?”

“있어, 어떤 이상한 남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차이겸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수겸은 신명현을 입에 담기도 싫어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이상한 남자?”

태원은 곧바로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수겸은 다시금 고기를 먹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다가 태원의 낮은 목소리에 이상함을 느끼고 그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렇게 봐?”

“이상한 남자라며. 뭐가 어떻게 이상한 남자인데? 누군데? 왜 이상한 남자가 너한테 전화를 해?”

순식간에 여러 개의 질문이 쏟아지자 수겸은 당황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뭐부터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맛만 다시는데, 태원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뭐 하는 놈인데?”

“뭐 하는 놈…… 이냐면 가수인데…….”

다시 묻는 말에 일단 대답하기는 했는데, 태원이 저렇게까지 정색하는 걸 보니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나 싶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수겸은 도움을 요청할 요량으로 옆에 있는 한솔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솔 역시 무섭게 굳은 표정이었다. 그런 한솔에게 도움을 구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이번에는 유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한솔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차이겸에게는 애초에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으니 넘어가고, 남은 사람은 선욱 한 명뿐이었다. 수겸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선욱이기에 수겸은 기대에 차서 그를 바라보았다.

선욱은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고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선욱의 표정에 놀란 수겸이 토끼 눈을 떴다.

“그렇게 심각할 건 없고요……. 블랙A라는 그룹의 신명현이라는 사람인데…….”

“저번에 형이 번호 줬던 그 사람이요?”

수겸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찬이 추궁하듯 물었다. 수겸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으, 응.”

“그 사람이 왜 전화를 해요?”

“한번 보자고…….”

수겸은 딱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혼이 나는 기분이라 풀이 죽었다. 그래서 불쌍하게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말꼬리를 질질 늘였다.

“왜요?”

“어?”

“왜 보자고 하냐고요.”

“그……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그러고 보니 그 이유까지는 묻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물어보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밥을 먹자는 상대에게 ‘왜요?’라고 물어본다는 것은 시비를 거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말이다.

“수겸이가 번호를 줬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선욱이 끼어들었다. 그는 입만 웃고 있었다. 차라리 아예 웃지 않는 편이 나을 만큼, 그의 미소는 소름이 끼쳤다.

“주, 주려고 준 건 아니고요…….”

“무슨 소리야, 형이 먼저 유찬이는 휴대폰 없다면서 자기 번호 줬잖아.”

한솔이 득달같이 끼어들었다. 당황한 수겸이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제 편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선욱이 수겸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내밀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멀뚱히 눈만 끔뻑거리고 있으려니 선욱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휴대폰 압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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