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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78화 (79/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78화

“괜찮아요, 형. 그럴 수도 있죠.”

토닥토닥, 유찬이 수겸의 등을 두드렸다. 수겸은 그 손길을 느끼며 축 처진 눈으로 유찬을 올려다보았다.

“그럴까? 하지만 감독관님께서 이런 일은 처음이래.”

“다른 경험은 많이 있으실 거예요.”

유찬의 위로에 솔깃한 수겸이 훌쩍 코를 들이마셨다.

“킁, 그럼 다행이고. 유찬아, 너는 몇 점으로 합격이었지?”

“저…… 100점이요.”

“……아, 맞다. 그랬지……. 저리 가주라.”

우울해하는 수겸을 위로하려던 유찬의 노력은 단숨에 무위로 돌아가고,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유찬이 만점으로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잠시 간과했던 수겸은 이내 더욱 우울해지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는 멤버들은 물론, 제작진들마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 * *

촬영이 마무리되고, 멤버들을 태운 차는 선욱이 기다리고 있는 소고기 전문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위별로 소고기를 구워주는 곳으로,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했다.

면허 시험 결과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수겸은 음식점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

“어? 뭐가?”

“기분 말이야.”

태원의 물음에 수겸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제 감정을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수겸의 표정을 빤히 지켜보던 태원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네 감정은 모르는 게 더 이상해. 이렇게 투명하게 보이는데.”

“정말……?”

“응, 정말.”

태원의 말에 수겸은 민망해져서 뒷덜미를 벅벅 긁었다. 그러는 사이 밴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먼저 내려. 차 대고 갈게.”

“넵! 맛있게 드세요!”

멤버들이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수겸은 아까 주워들은 말을 떠올리며 민성에게 인사했다. 얼핏 듣기에 민성은 다른 스태프들과 따로 예약한 방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고, 유피트 멤버들과 선욱만 다른 방에서 식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선욱이 기다리는 방으로 향한 수겸은 문앞에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선욱과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된 탓이었다.

그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도 그 상대가 소속사 대표라니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솔이 그런 수겸의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 질투 나잖아.”

“어어?”

하다 하다 긴장하는 것에까지 질투를 한다는 게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이 여과 없이 전해지는 기분이라 수겸의 뺨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수겸이 뜨거워진 뺨을 식히는 사이에, 한솔은 문을 열더니 수겸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 어라…….”

수겸이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수겸은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한솔의 팔을 쳐낼 만큼 싫지는 않았다. 사실 수겸은 스킨십에 익숙한 편이었으니까.

방 안에 있던 선욱이 두 사람을 보고 눈매를 살짝 찡그리고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선욱이 입을 열려는 순간, 한솔이 더 빠르게 말했다.

“형, 여기 앉아.”

이미 한솔에게 어깨를 내어 주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제 옆에 앉으라고 말하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수겸은 얼결에 그의 옆에 앉았다. 덕분에 수겸은 오른쪽에는 한솔이, 왼쪽에는 벽을 낀 채로 앉게 되었다.

더불어서 선욱과는 대각선 끝에 앉게 된 셈이었다.

선욱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그와 먼 거리에 있는 수겸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어서 방에 들어온 멤버들은 잠시 자리를 보는가 싶더니, 한솔을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한솔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아니, 오히려 뿌듯한 얼굴로 기분 좋게 웃을 따름이었다.

유찬은 재빨리 수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어서 자리를 잡은 건 이겸이었다. 테이블 두 개를 연결하여 각각 자리에 3명씩 앉을 수 있도록 세팅이 되어 있었는데, 이겸은 아무렇지 않게 선욱 쪽에 있던 식기를 가져와 수겸이 있는 테이블로 옮겼다. 덕분에 태원은 선욱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태원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이겸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이내 씩 웃으며 선욱을 바라보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멤버들이 가장 견제하는 사람은 이사님이었다. 공공의 적인 이사님을 수겸과 최대한 멀리 떼어놓을 수 있다면 지금 자신이 한발 후퇴하는 것 정도는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었다.

“……너희 정말 귀엽다.”

“감사합니다!”

어이없어하는, 반어법이 분명한 선욱의 말에 태원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선욱은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이 어린아이들과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민망하고 부끄러울 지경이었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멤버들은 수겸과 함께 24시간을 생활하지만, 자신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에 선욱은 꽤 오래전부터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숙소를 이사할까 하는데, 어때?”

“네? 갑자기요?”

밑반찬으로 나온 감자 샐러드를 먹고 있던 수겸이 고리눈을 뜨며 되물었다. 의도한 것인지 뭔지 공교롭게도 한솔과 태원이 듬직한 몸으로 수겸을 가리고 있어서 겨우 빼꼼 얼굴만 보였다.

선욱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었지만, 슬슬 짜증이 일었다. 귀여운 아이들 같으니라고. 그는 느른하게 웃으며 생각만 하고 있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너희도 이제 클 만큼 컸고, 방 같이 쓰기 불편할 것 같아서.”

“딱히 불편하지 않는데요.”

이겸이 딱딱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욱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건물에 마침 매물이 하나 나왔더라고. 우리 집 바로 아래층인데, 방이 여섯 개야. 욕실은 세 개고. 각자 방 하나씩 쓰고, 하나는 옷방으로 쓰면 될 거야. 욕실도 세 개니까 지금보다 준비하기도 훨씬 편할 거고.”

“헉, 대박.”

선욱의 말에 수겸은 반짝 눈을 빛냈다. 다른 멤버들의 낯빛이 어두워진 것은 새집 이야기에 홀린 수겸이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이 아니었다.

“진짜 좋아요. 아, 물론 지금 숙소도 좋지만, 욕실 세 개인 게 진짜 마음에 들어요!”

“그렇지? 그럴 것 같아서 준비했어.”

“어…… 근데 너무 비싸지 않을까요? 저희 수준에 너무 과한 건 아닌가 싶어서…….”

“내가 돈 없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닌데…….”

선욱의 말에 수겸은 말끝을 흐렸다.

선욱이 자신의 재력을 내세우면 수겸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 그의 집안은 대대로 철강 회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자신이 하는 돈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싶어졌다. 수겸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어진 편안함이나 즐겨야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수겸이 그를 바라보았다.

“헉, 그러면 이사님은 거기서 혼자 사시는 거예요? 방 여섯 개에, 욕실이 3개나 되는 집에?”

“아니.”

“헉, 그럼 다른 분이랑 같이 사세요?”

대번에 돌아오는 선욱의 대답에 수겸이 놀라 되물었다.

“왜, 실망했어?”

“헉, 아뇨아뇨. 제가 왜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으셔서 놀라서 그런 거죠.”

선욱은 싱긋 웃으며 눈가를 샐그러뜨렸다. 그는 수겸이 귀여워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수겸은 그 미소에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라 하릴없이 콧잔등을 쓸었다.

“우리 집은 꼭대기 층이라 2층으로 되어 있어서 방이랑 욕실 수가 더 많아.”

“헉. 말로만 듣던 펜트하우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수겸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혼자서 방 여섯 개짜리 집에 산다고 해도 놀라운데, 그보다 더 방이 많은 집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는 드라마에서 보았던 펜트하우스가 펼쳐졌다. 얼마나 호화로운 집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방 많으니까 수겸이 거기서 답답하면 우리 집 와.”

“헉, 정말요?”

“응, 정말.”

“아, 헙, 헉, 아니에요.”

수겸은 선욱의 말에 눈을 빛내며 기뻐하다가, 이내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자신의 말을 철회했다. 그러자 선욱은 또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

“참, 수겸이 오늘 면허 시험 봤다며.”

“…….”

“반응이 왜 이래, 떨어졌어?”

“…….”

선욱의 물음에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수겸은 젓가락마저 내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멤버들은 번지는 웃음을 갈무리하기 위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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