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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77화 (78/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77화

“야, 근데 나 지금 숙소에 들어가면 또 그 이상한 분위기인 거 아냐?”

순순히 차이겸을 따라 집으로 향하던 수겸은 문득 깨달은 사실에 멈칫했다.

“이상한 분위기?”

“응, 이상한 분위기.”

“뭐…… 무시해.”

“야! 그게 되냐!”

수겸은 울컥 치미는 짜증에 차이겸을 노려보았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아닌가 싶어 얄밉기도 했다.

“어쩔 수 없잖아.”

“뭐?”

“너를 좋아하는 건 우리 마음이고, 그걸 강요할 생각은 없어. 물론 빨리 답변을 듣고 싶지. 네가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고, 당장 사귀자고 대답해 주면 좋겠어.”

이겸은 자조적으로 웃는가 싶더니,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욕심인 거 알고 있어. 당장 네 감정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무시해.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두자면, 나도 그렇지만 다른 멤버들도 너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어.”

“……응, 고마워.”

“뭐가 고마워. 좋아해 줘서 고맙다느니, 뭐니 그딴 소리 하면 확 벗겨 버린다.”

“미, 미친, 벗기긴 뭘 벗겨!”

“패딩 말이다, 패딩. 뭘 생각하는 거야?”

수겸은 기겁하며 양팔을 교차하여 가슴팍에 엑스자를 그리다가, 이내 돌아온 이겸의 대답에 ‘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이맛살을 팍 구기며 이겸을 노려보았다.

“보통은 그런 걸로 협박하지 않거든?!”

“그래? 하지만 나는 하니까 받아들여.”

차이겸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수겸은 씩씩거리며 그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오래지 않아 숙소 앞에 도착했다.

수겸은 마른침을 삼키며 문앞에서 멈칫했다. 늘 아늑하기만 했던 공간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들어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질질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어쩌어찌 지금은 피하고, 오늘을 피할지라도, 앞으로 멤버들을 아예 만나지 않을 리는 없었다. 거기에 더하여 이사님 역시 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상황이었다. 그게 지금이라는 게 못 견디게 싫기는 했지만, 피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아는 이상 그냥 맞부딪쳐야만 했다.

수겸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이겸을 제외한 멤버들 3명과 이사님이 앉아 있었다. 수겸은 슬슬 눈치를 살피며 안으로 들어섰다. 차이겸이 수겸을 뒤따라 들어서는 게 느껴졌다.

일시에 다섯 쌍의 시선이 수겸을 향했다. 이제껏 무대에 오르면서, 방송 촬영을 하면서 훨씬 더 많은 수의 시선을 받아왔지만 지금처럼 두근거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겸은 옥죄는 가슴께를 꾹꾹 누르며 호흡을 골랐다.

“저, 저는……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라서……. 그래서 저한테 어떤 답변을 바라신다면 아직은 제가 어떤 말도 해드릴 수 없어요.”

수겸은 선욱을 의식해서 존댓말을 하다가 이내 멤버들을 보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제껏 자신이 비게퍼 노릇을 하느라 수없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 다 진심으로 보였다는 생각에 민망해진 탓이었다.

“무, 물론 내가 이제껏 플러팅이 과…… 했던 것 같기는 해. 오……해를 했다면 그건 미안…….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 절대로.”

더듬더듬 사과를 한 수겸의 말에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지만, 세 사람은 제각기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만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미칠 노릇이었다.

“알았어. 기다릴게.”

선욱이 먼저 그 특유의 느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겉으로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사실 티는 안 나지만 그 역시 그답지 않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약자가 되는 법이니까.

“그, 그럼 저는 이만…….”

수겸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거덕거리며 부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넨 후 서둘러 방에 들어왔다. 누가 붙잡을세라 서둘러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오늘처럼 방을 혼자 쓰고 싶은 날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태원과 한솔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가만히 이불을 덮고 있으려니, 콩닥콩닥하는 심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어 누군가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수겸은 숨죽인 채 자는 척만 했다.

콩콩 뛰는 심장, 괜스레 오른 열 때문에 유난히 길고도 긴 밤이었다.

* * *

며칠간 수겸은 숙소에서는 최대한 방 안에서 쥐 죽은 듯이 있었고, 무대를 할 때는 그나마 대화를 주고받을 일이 없으니 무대 위에서만 방긋방긋 웃고 내려오면 서둘러 차에 숨기 바빴다.

하지만 오늘은 버라이어티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멤버들과 마주 보고 함께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오늘 촬영은 운전면허 도로 주행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짬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어찌어찌 운전 연수도 받고 기능 시험도 쳤다.

사실 수겸은 기능 시험에서 한 번 떨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과속 구간에서 긴장한 나머지 액셀을 힘껏 밟고 과속을 한 탓이었다.

운전면허 강사님이 기능 시험장이 고속도로인 줄 아냐며 극대노를 하셨다.

어쨌든 도로 주행 시험 자체도 떨리기는 하지만, 멤버들과 함께 있을 생각을 하니 더더욱 숨이 막혔다. 긴장감에 욱신거리는 위통을 느끼면서도 수겸은 제작진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밝게 웃었다.

“자, 들어갈게요!”

“네! 슬레이트 칠게요!”

제작진의 말에 한솔이 쾌활하게 대꾸했다. 그러더니 순간적으로 수겸과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어 보였다. 놀란 수겸이 화들짝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한솔은 그마저도 좋은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What’s this planet?”

“안녕하세요, 우리는 유피트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우리는 유, 유피트입니다!”

수겸은 하도 많이 외쳐서 이제는 입에 붙다 못해 자면서도 할 수 있을 인사말을 버벅거렸다. 그만큼 당황하고 긴장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멤버들은 웃음기 어린 얼굴로 수겸을 놀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원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수겸이가 긴장이 많이 됐나 봐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러니까요, 형. 왜 이렇게 긴장을 했어?”

“긴장 풀어요, 잘될 거예요.”

이 뻔뻔한 인간들.

수겸은 입술 언저리까지 올라온 말을 꾹꾹 눌러 삼키며 손사래를 치면서 애써 환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 긴장 안 했어요!”

“긴장 안 하기는 무슨, 엄청 긴장했는데.”

“아무튼 아니라니까? 아니야, 아니라고!”

수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억울한 듯 과장되게 행동하자, 멤버들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자, 오늘은 사실 운전면허 도로 주행 시험이 있는 날이에요!”

태원이 큐 카드를 본 뒤 밝은 톤으로 말했다. 그러자 멤버들이 각자 리액션을 하며 놀란 척했다.

“그거 아세요? 수겸이가…….”

“야, 야! 말하지 마!”

이겸이 입을 열자, 수겸이 기겁하며 그의 입을 막고자 동동거렸다. 그러나 키가 큰 것은 물론 코어 근육도 좋은 이겸이 이리저리 상체를 움직이며 수겸의 손을 피했다.

“수겸이는 기능 시험 한 번 떨어졌대요! 과속해서!”

“야잇! 차이겨엄! 아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과속을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다음 시험은 바로 붙었습니다.”

수겸은 차이겸에게 울컥 성을 내다가, 이내 카메라를 바라보며 갑자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 모습에 제작진마저도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오프닝 촬영은 즐겁게 진행이 되었다.

오프닝에 이어서 도로 주행 시험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시험에 들어간 멤버는 유찬이었다. 유찬은 무려 만점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이어서 이겸, 태원, 한솔까지 차례로 시험을 쳤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 차례가 되고 만 수겸은 배가된 긴장감에 발을 동동 굴렀다.

긴장감 때문에 입안이 바짝 말라 사막이 되어갈 때쯤, 드디어 수겸의 차례가 되었다.

수겸의 뒤에는 시험 참관자로 한솔이 탔다. 한솔은 씩 웃으며 수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형, 잘해!”

“응, 고마워.”

그의 손길에 움찔하면서도, 격려에 조금이나마 힘을 얻은 수겸은 깊게 심호흡을 하며 차에 올랐다.

안전 벨트를 메고 차분히 시험을 준비했다. 하필이면 코스는 연습 때 가장 어려워했던 B코스가 걸렸다. 설상가상이라고 생각하며 수겸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 * *

약 20분 후, 수겸과 유찬이 탄 차가 천천히 학원으로 되돌아왔다. 결과를 궁금해하는 멤버들이 고개를 쭉 빼고 수겸을 기다렸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다가오는데, 수겸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웠고, 한솔은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웃음을 참느라 요상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됐어?”

“…….”

“떨…… 어졌어? 왜, 어쩌다가? 또 과속했어?”

태원의 물음에 수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멤버들을 지나쳐 털레털레 걸었다.

한솔은 수겸이 어느 정도 멀어진 것을 확인하자 헛기침을 두어 번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불법 유턴했어.”

“어어어어?”

“시험 중에 불법 유턴을 했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는 유찬의 말에 한솔이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흡, 큭, 어. 그래서 감독관님도 무지 화내셨어. 살다 살다 도로 주행 시험 중에 불법 유턴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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