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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75화 (76/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75화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수겸은 마른침을 삼키며 선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욱은 그런 수겸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도톰한 입술을 느른하게 늘리며 미소 지었다.

“수겸아, 어디 가려고?”

“어, 그게…….”

선욱의 물음에 수겸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당황해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휙휙 돌아가는 눈동자를 본 선욱이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 다정한 눈으로 수겸을 응시했다.

그 눈빛에 묘한 감정을 느낀 수겸은 마음이 급해졌다. 더 이상 이 묘한 감정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튀어야만 했다.

그러나 앞은 막혀 있고, 그러니 갈 곳은 뒤뿐이었다.

“어, 어어……!”

수겸은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현관 문턱에 걸려 휘청거렸다. 선욱이 수겸을 잡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의 행동을 본 수겸은 다급하게 입을 열어 외쳤다. 그가 지금 잡아주면 왠지 수많은 로맨스 작품에서 나왔던 야릇하고도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아서였다.

“잡지 마세요! 넘어질 거예요! 넘어질, 으아아!”

당연히 수겸을 잡아주려던 선욱은 수겸의 말에 멈칫했다.

그사이에 수겸은 야무지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넘어질 작정을 하고 있어서인지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단, 쪽팔리기는 했다. 민망해진 수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수겸이가 몸개그를 노리나 보구나.”

선욱은 장난스럽게 말한 것에 이어, 자연스럽게 수겸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잡고 일어나라는 뜻인 게 분명했다.

수겸이 아무 생각 없는 평소 상태였다면 넙죽 잡고 일어났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이사님이 자신을 좋아할 리는 없었다. 결코, 절대로, 그럴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괜스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역시 괜한 소리를 들어서였다.

수겸은 선욱의 손을 못 본 척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도망을 치려던 계획은 여전히 현관에 서 있는 선욱 때문에 틀려먹고 말았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현관문만 바라보는 수겸을 눈치챈 선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수겸이가 오늘 많이 이상하네.”

“제가요? 그럴 리가요. 하하하.”

“수겸아.”

“네? 네? 아, 잠이 오네요. 자야겠다.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서 자겠습니다.”

밖으로 튀는 것이 불가능해진 수겸은 안으로 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 상황에 갑작스럽게 자겠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뇌 수준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게 이 정도인 걸 뭐 어쩌겠는가.

“잠깐, 수겸아. 있어봐.”

안타깝게도 이사님은 수겸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수겸의 손목을 잡았다.

갑자기 손이 잡힌 수겸은 놀란 토끼가 되어 고리눈을 떴다. 그 모습을 본 선욱이 살짝 미간을 구겼다.

“태원아, 수겸이 오늘 왜 이래?”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태원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그 대답에 선욱이 잠시 물끄러미 태원을 바라보다가 다른 멤버들을 쭉 둘러보았다.

“아는 사람 없어?”

“…….”

돌아오는 답이 없자, 선욱은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씩 찬찬히 훑어보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당장에라도 방 안으로 튈 것만 같은 수겸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수겸은 발만 동동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지금은 마냥 귀여워해 주기에는 분위기 자체가 묘해도 너무 묘했다.

“흐음……. 이상하네.”

“저, 소, 손 좀 놓으시고…….”

“이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 그러니까 이사님, 이 손 좀…….”

“얘들아, 너희 수겸이한테 무슨 말 했어?”

선욱은 수겸의 말을 못 들은 척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의 말에는 묵직한 중압감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눈치챈 네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순간 다섯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아무리 눈치가 없는 수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드러내 놓고 기 싸움을 하는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묘한 기류에 불안감은 점점 현실감을 띠어갔다. 네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사님까지 그사이에 자연스레 끼어 있으니 문제였다. 정말 그가 자신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수겸은 절로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라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수겸이 반응이 꼭…… 누가 잡아먹으려는 것 같네.”

“……헙.”

정곡을 찔린 수겸이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키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반응을 본 선욱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네 사람을 훑었다. 그러나 네 사람 역시 지지 않고 선욱을 마주 보았다.

“얘들아, 수겸이 놀랐잖아. 왜 그랬어.”

“그러는 이사님은요.”

“뭐?”

차이겸이 차갑게 물었다. 소속사 이사님에게 할 만한 말투는 절대 아니었다. 마치 적을 대하는 듯, 적대적이었다. 저러다가 차이겸이 무슨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수겸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차이겸이 걱정되었다.

“언제까지 아닌 척하실 건데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럼 계속 모르고 계세요.”

“야, 야. 차이겸, 너 미쳤어?”

놀란 수겸이 신발을 팽개치듯 벗고 선욱의 손을 뿌리치듯 떼어놓고는 차이겸에게 다가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물론 실제로 그럴 생각도 있었다. 이 이상은 위험했다.

차이겸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같은 멤버로서 정든 게 있는데 그가 냅다 소속사 이사님에게 덤비다가 잘려서 유피트에서 퇴출당하는 결말을 바라지는 않았다.

“이겸아. 너희가 정확히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껴도 괜찮겠어?”

“…….”

“정말 그래도 되겠어?”

그러나 선욱이 화를 낼 것이라는 섣부른 수겸의 짐작과는 달리, 그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재미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을 단순히 재미로 즐기고 있는 사람 같았다.

“자신 있어?”

“…….”

이겸은 선욱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분이 섞인 듯한 이겸의 반응에, 수겸은 이겸이 당장에라도 선욱의 멱살을 잡으러 달려들기라도 할 것 같아서 초조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러다 이내 제힘으로 이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은 수겸이 태원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태원 역시 무섭게 굳은 얼굴로 이사님을 노려보고 있었기에 수겸은 금세 제 바람을 접어야만 했다.

태원으로는 이겸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수겸은 이번엔 한솔과 유찬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두 사람 역시 평소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결국 수겸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문득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일을 저지르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섯 명인데, 왜 자신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일었다.

“모르겠고, 저 들어갈래요. 잘 거예요.”

수겸이 불퉁하게 말을 던졌다. 그러자 다섯 사람의 시선이 일시에 수겸에게 쏠렸다. 수겸은 그 눈빛에 순간적으로 흠칫했지만, 그보다는 억울함에서 기인한 울컥함이 더 컸다.

왜 자신이 이렇게 마음을 졸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은 마음 편하게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 것이 아닌 감정들로 인하여 고통받아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왜들 무섭게 그러는 거예요. 저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는데…….”

“수겸아, 울어?”

“야, 왜 울어.”

“형, 우는 거야? 울지 마.”

“형, 왜 그래요, 미안해요. 울지 말아요.”

“수겸아, 왜 그래, 괜찮아?”

수겸이 중얼중얼 불만스럽게 웅얼거리자, 다섯 사람이 흠칫한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달라진 공기를 눈치챈 수겸은 이 기세를 몰아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할 수만 있다면 서럽게 울어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그럴 만큼 감정적인 연기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대충 울먹거리는 척은 할 수 있었다.

한동안 혼자 훌쩍거리는 듯 감정을 다스리는 척하던 수겸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선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선욱이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는 수겸이 말릴 틈도 없이 와락 수겸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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