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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72화 (73/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72화

“아니지, 수겸 씨한테 물어보기 전에 다른 멤버들께 물어봐야 더 긴장감이 넘칠 것 같네요.”

당장에라도 곤란한 질문을 쏟아낼 것만 같았던 양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러섰다.

예기치 못한 그의 행동에 수겸은 더 불안해졌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이렇게 질문을 질질 끌면 더 긴장되는 법이었다.

“먼저 태원 씨, 지금 유피트는 숙소를 같이 쓰고 있죠?”

“네, 맞아요. 같이 쓰고 있어요.”

“방도요?”

“네, 방도요.”

양림은 태원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씩 웃었다. 불길함을 느낀 수겸과 마찬가지로 태원 역시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양림은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방을 누구랑 같이 쓰고 있죠?”

“저는 한솔이랑 수겸이랑 같이 쓰고 있어요. 유찬이랑 이겸이가 같이 쓰고요.”

태원은 불안해하면서도 침착하게 대꾸했다. 수겸은 불안한 눈으로 양림과 태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양림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럼 태원 씨는 방을 혼자 쓰고 싶으시겠네요? 뭐, 지금은 여건이 안 되지만,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요.”

“뭐…… 그렇죠.”

태원은 마치 유도신문에 걸려든 듯 대답했다. 양림은 그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씩 웃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차이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겸 씨도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혼자 방을 쓰는 게 편하니까?”

“그렇죠. 혼자 쓸 수 있다면 그편이 낫죠.”

양림은 이겸의 대답에 짝짝 박수까지 쳤다. 그러더니 이어서 한솔과 유찬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두 사람 역시 양림의 능숙한 유도신문에 같은 대답을 했다.

“그렇군요, 유피트 멤버들은 전체적으로 혼자 방을 쓰고 싶어 하는군요.”

양림은 자신이 했던 질문을 정리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수겸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다른 멤버들은 혼자 방을 쓰고 싶다는데, 수겸 씨는 어때요?”

당연히 다른 멤버들에게 했던 것처럼 ‘혼자 방을 쓸 수 있다면, 혼자 쓰고 싶겠네요?’ 하는 식의 유도신문을 할 줄 알았더니, 수겸에게 돌아온 대답은 미묘하게 달랐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할 수 있었던 멤버들과 달리 수겸에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좋은 기회를 날려먹을 수야 없지.

수겸은 내심 흡족해하며 늘 그렇듯 연기를 시작했다. 마치 양림의 질문이 대단히 부끄러운 것이라도 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부끄러운 듯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보이는 라디오이기에 수겸의 행동은 생방송으로 팬들에게 그대로 전송되었다.

“아…… 저는 겁이 많아서 혼자 방을 못 써요. 누가 옆에 꼭 있어야 잘 수 있거든요. 하하…….”

민망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수겸의 태도에 양림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수겸은 미리 짜둔 예상 질문을 점검하며 여전히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었다.

“그럼 수겸 씨는 멤버들이랑 다 자봤겠네요? 아닌가? 같이 방을 쓰는 태원 씨랑 한솔 씨랑만 자봤어요?”

“아, 아뇨……. 연습생 때부터 따지면 다 자봤어요.”

“오, 그럼 수겸 씨. 수겸 씨가 자본 멤버 중에 누가 제일 좋았어요?”

양림의 질문에 일시에 네 쌍의 형형한 눈동자가 수겸을 향했다.

여기서 물어보는 ‘자다’란 당연히 ‘sleep’의 의미였다. 이 사실을 양림도 알고, 수겸도 알고, 다른 멤버들도 물론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방송을 듣고 있을 팬들 또한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괜스레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뭐, 프로 아이돌의 능숙한 어그로에 불과했다. 물론 이 판을 짠 사람은 수겸이 아닌 양림이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수겸의 몫이었다.

“저는…… 아, 어려운 질문이네요. 다들 좋긴 했는데, 아무래도 태원이 형이랑 자는 게 제일 좋아요. 형이랑은 계속 자고 싶어요.”

“오~ 이유가 있을까요?”

“음……. 형이 잘 놀아주거든요.”

“어디서요? 잠자리에서?”

“네, 침대에서 잘 놀아줘요.”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수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맑게 대꾸했다. 수겸의 대답에 태원은 진심이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수겸은 그가 왜 그러는지 알면서도 영문을 모르는 척 대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야, 수겸 씨는 좋겠어요. 침대에서 잘 놀아주는 형도 있고.”

“아하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이상하네요.”

“이상하긴요, 같은 멤버끼린데.”

“하하, 그건 맞아요.”

수겸은 부러 먼저 민망한 척했다가, 양림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웃어넘겼다. 너무 야릇한 분위기로만 몰고 가면 오히려 팬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한 번씩 선을 그어주는 것도 중요했다.

수겸은 오늘 방송의 여파를 상상하며 흡족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아니나 다를까, 커뮤니티 반응은 뜨겁다 못해 용암이 따로 없었다. 공식 커플링인 겸겸에서 태겸으로 옮겨 가겠다는 팬도 한 무더기였다.

수겸이 방바닥에 드러누워 흡족하게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하며 웃을 때였다. 벌컥, 거칠게 방문이 열렸다.

“아잇, 깜짝이야! 차이겸, 뭐야? 왜 그렇게…… 어, 다들 왜 그래?”

문을 연 차이겸을 선두로 태원과 한솔, 유찬까지 기묘한 기류를 풍기며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놀란 수겸이 고리눈을 뜨며 제자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안 그래도 자신보다 한참이나 큰 사람들인데, 앉아서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까마득하게 커 보이면서 위압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수겸은 눈치를 살피면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왜들 그래……?”

“송수겸.”

“응?”

“더 이상 못 참겠어.”

“뭘? 뭘 못 참는데?”

차이겸의 말에 수겸이 미간을 좁혔다.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더 이상 못 참겠다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말에 수겸의 낯이 희게 질렸다.

“선택해. 네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어……?”

“맞아요, 이제 더는 못 참겠어요. 혼란스러워서 못 견디겠어요. 형의 마음을 도저히 모르겠어요.”

늘 차분하기만 하던 유찬마저 격앙된 목소리로 덧붙이자, 수겸은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라니?

“나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은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 몸이야, 아니면 나야?”

“어어? 어?!”

태원의 말에 수겸은 기겁하며 되물었다. 네가 좋아하는 게 내 몸이야, 나야라니. 이게 같은 멤버에게 할 만한 질문이란 말인가.

“형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잠도 못 자겠어. 밥도 못 먹겠다고.”

마지막으로 한솔까지 말을 보탰다. 다들 흔들림이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와 달리 수겸은 눈을 이리저리 흔들리며 당혹스러운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뭔가, 뭔가 아주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약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얘들아. 내 말 좀 들어주지 않으련?”

수겸은 앞에 선 네 명의 남자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이 제각기 맛이 간 것 같았다.

원래 멤버들의 눈빛이 이랬었나? 수겸은 평소 그들의 눈빛을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워낙 충격적이라 그런지 막상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저 지금 자신이 좆 됐다는 것만 머리에 가득했다. 멤버들의 눈이 절로 뒷걸음질을 치게 되는 안광을 빛내서 수겸은 슬슬 뒤로 물러섰다.

“뭐가 오해라는 거야?”

“맞아요, 형이 이제까지 어떻게 했는데, 그게 오해가 될 수 있어?”

“같이 자자며.”

“형이 제 입술이 탐난다고 했잖아요.”

네 명이 동시에 다그치니 수겸은 당황하여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는 동안 네 사람은 조금씩 수겸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아무튼, 오해야. 나는 그저 우리 그룹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미친놈들아, 스톱, 스토옵! 멈춰!”

브레이크라고는 없는 놈들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네 사람 때문에 수겸이 기겁하여 뒷걸음질 쳤다. 답지 않게 욕지거리까지 내뱉게 될 만큼 긴박했다. 그러나 다급히 움직인 탓이었을까, 얼마 못 가 침대에 다리가 걸려서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져 눕고 말았다.

“이거 진짜 오해야. 정말! 나는 유피트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내 캐릭터를 받아들인 거뿐이라고!”

“그러니까 이것도 받으라고.”

“미, 미친, 그, 그걸 어떻게, 아, 아니, 왜 받아!”

이겸이 턱짓으로 제 앞섶을 가리켰다. 경악한 수겸이 입을 떡 벌리고 엉덩이 걸음으로 침대 뒤로 물러서며 도망쳤다.

“형이 나 좋다고 했잖아. 어린 게 역시 힘이 좋다고.”

“그, 그건 그냥 방송에서 한 말이지!”

한솔의 말에 당황한 수겸이 손까지 내저어가며 외쳤다. 이게 그게 아니라고, 방송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 하겠는가, 아이돌이 먹고살아야 하는데!

“나한테 같이 자자고 했던 건?”

“아, 그건 말 그대로 슬립! 잠! 그냥 밤에 자는 거!”

태원까지 합세하자 수겸의 언성은 더 높아졌다. 물론 방송이다 보니 뉘앙스를 약간 야릇하게 하기는 했다. 팬들이 좋아하게끔 일부러 오해할 소지를 남기면서. 그러나 결코 다른 의미는 없었다. 진짜 자자는 걸 표현만 그렇게 했을 뿐.

“형이 제 입술이 탐난다고 했잖아요. 훔치고 싶다고.”

“그거야 그냥 인터뷰에서 물어보니까 그렇게 대답한 거지!”

인터뷰에서 다른 멤버의 신체 중에 탐나는 곳이 있냐고 물었을 때 했던 유찬을 상대로 했던 대답이었다. 이것 또한 일부러 묘한 여지를 남기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게 진심일 리가 있겠는가! 그냥 입술 예쁘다를 조금 더 과장해서 했던 말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수겸의 끊임없는 항변에도 네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리를 좁혀왔다.

“미친놈들아, 저리 가! 저리 가! 다가오지 말라고!”

인생 2회차, 송수겸. 망돌이 되는 것을 막아 보려다가 인생이 망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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