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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69화 (70/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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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유피트는 공중파 음악 방송을 마쳤다. 활동 첫 주인 만큼 음악 방송 순위 자체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꽤 좋은 반응이었다.

촬영을 마친 유피트가 이어지는 라디오 스케줄을 향해 이동하려던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의 인사에 수겸은 뒤를 돌아보았다.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친 낯익은, 그러나 꼴보기 싫은 얼굴에 수겸의 미간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상대는 블랙A였다.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좁은 아이돌 바닥에서 활동을 하는 만큼 강제로 그들에 대해 알게 된 정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블랙A 역시 유피트와 활동기가 겹친다는 점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유피트는 이제야 디지털 싱글 앨범 활동을 시작했지만, 블랙A는 지금이 미니 2집의 활동 막바지라는 것이다. 다음 주를 끝으로 미니 2집의 활동이 끝이 난다고 했다.

블랙A 자체에 싫은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생에서 유찬을 괴롭게 한 신명현이 속한 그룹이라는 것만으로도 수겸이 그들을 싫어할 이유가 충분했다.

비록 표정 관리는 실패했지만,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할 수는 없었기에 수겸은 뒤늦게 구겨진 미간을 펴며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번에 컴백했다면서요, 축하해요.”

블랙A의 멤버 중 한 명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워낙 진하게 아이라인을 그리고 있어서인지, 수겸은 그마저도 찝찝하게 느껴졌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거린 수겸은 본능적으로 유찬을 제 등 뒤로 잡아끌며 숨겼다. 물론 유찬의 키가 수겸보다 한참 더 크기 때문에 그가 숨겨질 리 만무했지만.

“감사합니다.”

수겸을 제외한 다른 유피트 멤버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수겸은 마지못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데뷔 시기도 비슷한데, 우리 좀 친해져요. 나중에 같이 밥이라도 먹어요.”

“네, 좋아요.”

인사치레에 불과한 말일 테지만, 블랙A 멤버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는 태원이 예의 있게 대꾸했다. 그 역시 인사치레로 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겸은 울컥 치미는 불만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

“그럼 저희가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겸은 행여나 진짜로 식사 약속이라도 잡힐세라 재빠르게 끼어들어 대화를 끊었다.

잠자코 있던 차이겸이 수겸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지만, 수겸은 그의 상황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저 얼른 유찬을 데리고 신명현의 앞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멤버들은 군말 없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우리 저번에 연말에 만났는데, 기억해요?”

조용히 있던 신명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 수겸은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겨우 관리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신명현의 시선은 수겸과 유찬 두 사람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서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네, 기억…….”

“아, 그랬었나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죄송해요. 그날 워낙 많은 분을 뵈었어서.”

유찬이 먼저 입을 열었지만, 수겸이 얼른 끼어들어 유찬의 말을 가로채었다. 수겸은 정말 미안하다는 듯, 그러나 조금도 너 같은 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쉽네요. 그때 두 분 바쁘신 것 같아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못 했거든요. 계속 어긋나는 것 같네요. 다음에 정말 시간 한번 제대로 맞춰봐요.”

“아하하, 저희가 워낙 바쁘기도 하고, 블랙A도 바쁘잖아요. 그래서 계속 그런가 봐요. 아쉽네요, 거참.”

신명현의 제안에 수겸은 바쁘다는 말로 에둘러 거절의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신명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간을 맞춰봐야죠. 연락처 교환할까요?”

신명현은 아예 휴대폰까지 꺼내 들이밀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신명현뿐만 아니라 블랙A 멤버 전체가 있는 상황에서 그에게 무례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돌에게는 이미지가 생명이었고, 특히 신인 그룹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블랙A가 유피트에 비해 선배 그룹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피트의 소속 회사인 DP엔터테인먼트가 신생 그룹인 데에 반해 블랙A는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소속사였다. 그러니 알고 있는 선배 가수도 많을 터였다. 블랙A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가는 자칫하면 유피트의 이미지 자체가 실추될지도 몰랐다.

힐끔 돌아보니 유찬이 휴대폰을 꺼내고 있었다. 놀란 수겸이 재빠르게 제 휴대폰을 신명현에게 내밀었다.

“저요! 저랑 교환해요!”

“……네?”

“아, 저랑 연락해요. 제가 번호 받고 싶어요. 하하, 하하하.”

유찬과 신명현이 단둘이 연락하지 못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전생에서 저 사악한 놈이 순진한 유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알았어요. 송수겸 씨가 생각보다 적극적이네요.”

“저요? 아, 제가 그런 말 좀 들어요. 하하.”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싶으면서도 수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겼다. 신명현과 번호를 교환한 수겸은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유찬 씨도…….”

“아, 저희 유찬이가 막내라서 휴대폰이 없어요.”

“네?”

“미성년자였잖아요. 회사 방침이에요.”

수겸은 생각나는 대로 대꾸했다. 뭐, 진짜 유찬에게 휴대폰이 있는지 없는지를 신명현이 알아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어쨌든 지금을 모면하는 게 중요했다.

다만, 수겸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보기는 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들에게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것보다 신명현으로부터 유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개의치 않았다.

“저한테 연락 주시면 돼요.”

“좋네요. 수겸 씨라고 불러도 되죠?”

“아, 뭐……. 네, 그러세요.”

안 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웃으며 겨우 승낙을 해준 수겸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유피트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얼른 가자. 아까 민성이 형이 빨리 오라고 했잖아.”

“어어, 그래.”

“알았어.”

“응, 그래.”

“네, 가요.”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수겸의 말에 다행히 멤버들은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수겸은 내심 안도하며 블랙A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형, 아까…….”

“응, 왜?”

블랙A와 한참 멀어진 후, 유찬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수겸은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유찬을 바라보았다.

“왜 그랬어요? 왜 형이 번호를 줘요?”

“그래, 네가 그 사람한테 번호를 왜 줘?”

유찬의 물음에 차이겸 역시 까칠하게 물었다. 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굳은 얼굴이었다. 수겸은 잠깐 동안 머리를 굴리며 대꾸할 말을 찾았지만, 썩 좋은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솔직한 게 답이었다. 물론 백 프로 솔직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네가 그 사람한테 번호 주는 게 싫어서.”

그 이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수겸의 말에 유찬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차이겸은 수겸의 답변이 마음에 차지 않는지 미간을 구겼다.

“왜? 그럼 안 돼?”

수겸은 고개를 살짝 쳐들고는 눈을 새초롬하게 치떴다. 뻔뻔한 수겸의 태도에 가만히 있던 태원과 한솔마저 불쾌한 듯 인상을 굳혔다.

“형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않아?”

“맞아, 유찬이한테 달라고 한 번호를 왜 네가 줘. 그건 아니지.”

“내가 그럴 수도 있지. 말했잖아, 유찬이가 그 사람한테 번호 주는 게 싫었다고.”

한솔과 태원의 물음에도 수겸은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물론 남들이 봤을 때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쯤은 수겸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멤버들에게 다소 이상해 보일지라도 신명현의 마수로부터 유찬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니까 왜 네가 그걸 싫어하는데.”

차이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일렁거렸다. 솔직히 수겸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던 것치고는 차이겸의 기세에 적잖이 겁을 먹기는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야 내가 유찬이를 좋아하니까.”

수겸의 말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네 쌍의 시선이 무겁게 수겸을 향했다. 수겸은 그들의 시선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유찬이는 유피트의 소중한 막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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