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67화
일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수겸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당연히 누가 듣더라도 당황할 법만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 정도는 돼야 제대로 어그로를 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 뭔가 이상한가요?”
수겸은 부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조명호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아니에요. 이상하긴요. 그럴 수 있죠. 아~ 수겸 씨는 유찬 씨의 입술을 훔치고 싶으시구나. 하하하, 어디 보자, 유찬 씨 입술이…… 그래요, 훔치고 싶긴 하네요.”
“그쵸? 그쵸?!”
조명호의 말에 수겸은 마치 동의를 구하는 듯 신나서 되물었다. 물론 이 역시 계산된 행동이었다. 수겸은 해맑은 얼굴로 유찬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막상 그를 본 수겸은 내심 움찔했다.
팬들의 주접 멘트에도 면역이 없어서 가장 당황하던 유찬이기에 자신의 말에도 당연히 당황할 줄 알았는데, 유찬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굳어 있었다.
혹시 저 때문에 기분이 상했나 싶어, 수겸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었다. 인터뷰 중인지라 차마 대놓고 묻지는 못하고, 힐끔힐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았다.
“유찬 씨는 어떤가요? 수겸 씨가 유찬 씨 입술을 훔치고 싶다고 했는데. 유찬 씨는 유피트에서 내가 봐도 멋있다, 귀엽다, 잘났다, 예쁘다 등등! 아무튼 그런 멤버가 있으실까요?”
리포터의 물음에 수겸은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유찬의 기분이 상한 것 같았기에 그의 대답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꼭 수겸 자신을 지목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발 유찬이 인터뷰를 하면서 기분 나쁜 티를 내지는 않기를 바랐다.
“……저는 태원이 형이요.”
“오, 태원 씨의 어떤 점이 멋있을까요?”
“형인 점이요.”
“네? 형인 점? 아아~ 나이를 훔치고 싶다? 이거 뭔가요? 나이 많은 큰형을 먹이는 막내의 도발인가요?”
“야! 도유찬, 너 그런 거야?”
유찬의 말에 조명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과장되게 웃었다. 그러자 유찬은 당황한 듯 도리질을 쳤고, 태원 역시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에 지켜보는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뇨,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다른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지만, 나이가 주는 분위기만큼은 제가 어떻게 해도 따라할 수가 없잖아요. 그게 부러워요.”
“아, 형으로서의 면모? 형이 주는 포스?”
조명호는 유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유찬은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태원은 보란 듯이 미심쩍은 눈빛이다가 이내 뿌듯하게 웃으며 촬영장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수겸은 밝아진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유찬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수겸의 섣부른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힐끔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유찬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수겸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결단코 유찬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남자를 좋아하는 유찬의 입장에서는 제 말이 장난을 치는 것 같아 불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이 오해를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데, 이어서 조명호가 태원에게 질문을 했다.
“태원 씨는 어떤가요? 같은 멤버지만 내가 봐도 멋있는 멤버, 정말 괜찮다 싶은 멤버가 있을까요?”
“저는 이겸이요.”
“오, 이겸 씨요? 그쵸, 이겸 씨 정말 제가 봐도 멋있는데요. 이유는 역시 외모?”
“아, 뭐랄까…… 신경 쓰여요.”
“네? 신경 쓰인다고요?”
“좀 견제하게 된달까요?”
“아하,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조명호는 태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수겸은 그의 말에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 태원과 이겸의 불화설이 있었던 터라, 태원이 차이겸을 견제한다는 말이 좋게 들릴 리 없었다.
수겸은 마른침을 살피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차이겸은 힐끔 태원을 보는가 싶더니 금세 정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수겸은 전생에 두 사람이 다투어서 논란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했는데 왜 이번 생에서까지 서로를 견제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나 답답한지 원망까지 될 지경이었다. 이번 생에서까지 논란이 생긴다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속상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폭 한숨을 내쉬는데, 그걸 발견한 조명호가 눈을 빛냈다.
“수겸 씨가 갑자기 한숨을 쉬시네요. 질투? 역시 질투인가요? 다른 멤버들이 수겸 씨를 지목하지 않아서 그런가요?”
“아, 그게…… 네…….”
자신의 의지로 한숨을 쉰 것이 아니기에, 수겸은 처음에 조명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뇌에 버퍼링이 걸려 있던 그는 오래지 않아, 자신이 한숨을 내쉬었다는 걸 깨달아서 빠르게 그의 말에 동의했다. 달리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하하하, 아직 한솔 씨랑 이겸 씨가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두 분의 답을 들어보죠. 먼저 태원 씨에게 지목받은 이겸 씨부터!”
“저는 송수겸이요.”
“오오, 수겸 씨 들으셨죠? 질투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이겸 씨가 수겸 씨를 지목했잖아요.”
“하하, 그러게요.”
이겸의 대답에 수겸은 적잖이 놀랐다. 별명이 남신일 만큼 잘생기고 잘나 빠진 차이겸이 자신을 멋있는 멤버로 지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은근히 기대가 되어서 이겸을 바라보았다.
“이겸 씨는 수겸 씨를 지목했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이유 좀 말해주세요.”
“괜찮은 멤버인 것 같아서요.”
“괜찮은 멤버?”
“네, 아까 리포터님이 정말 괜찮다 싶은 멤버 말씀을 하셔서요. 송수겸이 저한테 그래요.”
“아아, 어딘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괜찮다 이 말이죠?”
조명호의 말에 차이겸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수겸은 그의 대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게 불쾌했다. 그가 자신을 괜찮은 멤버로 지목하기는 했지만,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서였다. 비록 자신이 딱히 잘생긴 외모도 아니고, 몸이 좋지도 않긴 하지만 괜찮은 멤버로 뽑은 이유를 꼽으라면 고르지 못할 정도는 아닐 텐데 싶었다.
서운한 마음에 굳어가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 올리는데, 차이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웃는 게 예뻐요.”
“아, 수겸 씨가 웃는 게 예쁘다? 어디 한번 봅시다. 수겸 씨,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주세요.”
예기치 못한 말에 당황한 수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카메라를 향해 프로페셔널하게 웃어 보였다. 차이겸이 제 웃는 얼굴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할 줄은 미처 몰랐다.
“와, 정말 제가 봐도 수겸 씨는 웃는 모습이 예쁘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솔 씨! 한솔 씨가 지목한 괜찮은 멤버! 내가 봐도 눈이 간다 하는 멤버!”
“저도 수겸이 형이요.”
“오오, 수겸 씨 두 표나 받으셨어요.”
“와, 대박!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겸은 비록 지목은 이겸과 한솔에게 받았지만, 방송용 리액션을 위해 부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자 조명호를 비롯한 스태프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한솔 씨는 왜 수겸 씨를 지목했을까요? 잠깐, 우리 같은 이유는 좀 빼고 합시다. 물론 수겸 씨가 웃는 모습이 예쁘긴 하지만, 다른 이유 없을까요?”
“아, 자꾸만 눈이 가는 멤버라고 하셔서 수겸이 형을 뽑았어요. 수겸이 형이 외모 자체가 화려하고 눈이 가잖아요. 게다가 귀엽기도 하고…….”
“이야, 거의 사랑 고백이네요?”
“아하하, 그런가요? 맞아요, 사실 사랑 고백이에요.”
한솔은 조명호의 말에 동조하며 수겸을 바라보았다. 수겸은 자신을 바라보는 한솔과 눈이 마주쳐서 싱긋 웃어 보였다.
난데없이 사랑 고백을 받게 되었지만, 팬들에게 떡밥을 던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 되었다. 내심 흡족해하는데, 유난히 한솔의 시선이 오래 따라붙는 것 같았다. 수겸이 그 시선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한솔이 조용히 웃었다.
“이어서 다음 질문 들어가겠습니다!”
조명호는 밝은 목소리로 새로운 질문을 이어나갔다. 첫인상이 별로였던 것과 달리 조명호는 인터뷰를 잘 이끌어내었다. 과연 유명한 리포터일 만했다.
능란한 조명호 덕분에 유피트의 인터뷰 역시 순조롭게 끝이 났다. 촬영의 끝을 알리는 슬레이트 소리가 나자마자, 유피트는 벌떡 일어나 사방에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또 보자.”
조명호는 처음과 달리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는 촬영장을 벗어났다. 수겸은 인사를 마친 스태프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혼란한 와중에 다급히 유찬을 찾았다.
홀로 걸어가던 유찬을 발견한 수겸은 서둘러 그에게 달려갔다.
“유찬아, 유찬아!”
“……왜요?”
수겸은 아까 인터뷰 촬영 중에 그의 굳은 표정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제 말을 같잖은 장난으로 여기며 불쾌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유찬아, 내가 아까 한 말…….”
“알아요, 장난인 거.”
역시나 유찬은 제 말을 장난으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진심으로 한 말도 아니었지만, 그를 놀리려거나 장난을 치려고 한 말은 절대 아니었다. 수겸은 다급한 마음에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거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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