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64화
<소원꽃잎>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박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 만했다. 팬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유피트를 각인시켜 주었다.
흔히들 아이돌은 비슷비슷한 댄스곡만 부른다고 여기곤 하지만, 유피트는 이번 <소원꽃잎>을 통해 발라드곡도 잘 소화한다는 이미지를 주었다.
“와, 신기하다.”
한솔이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겸은 그가 뭘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다가가 고개를 쭉 뺐다.
“뭐 봐?”
“어? 어어, 그냥 우리 순위.”
수겸의 물음에 한솔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수겸은 그 반응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 한솔이 보고 있는 것은 음원차트 순위였다. <소원꽃잎>은 무려 7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안 믿겨. 이렇게 좋은 성적이 나왔다는 게.”
“그러게, 나도 넘 신기해.”
수겸은 한솔의 말에 씩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수겸은 그에게 그가 미래에 폭행을 저지른다고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자신이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을 넘겨짚어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안했다. 무엇보다 수겸 역시 이렇게 다정하고 착한 한솔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비록 그게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솔아, 있잖아.”
“……응, 말해.”
마치 한솔은 수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는 듯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겸은 그 얼굴을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도톰한 입술만 달싹거렸다.
“괜찮아, 말해도 돼.”
“아니, 그냥 내 말에 너무 신경 쓰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서…….”
수겸은 미안한 마음에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한솔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가 너무도 밝고 예쁘기만 해서 수겸은 더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모르겠어. 형의 말을 듣고 많이 생각했거든. 내가 정말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일까. 아, 물론 형의 말을 안 믿는다는 건 아니야. 그냥, 그만큼 여러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한솔은 수겸이 오해할까 봐 걱정이 되는 듯 얼른 뒷말을 덧붙였다. 수겸은 그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아, 무슨 뜻인지.”
“알아줘서 고마워.”
“아니야. 고맙기는 무슨.”
이쪽이 한없이 미안한 와중에 외려 한솔이 고맙다고 하니 수겸은 어쩔 줄 몰라 손사래까지 쳤다. 그러자 한솔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에이, 내가 고맙다는데 형이 왜 아니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노력인 게 훤히 보이는 태도에 수겸은 그를 따라 웃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나머지 가슴 한편이 찌르르 울릴 지경이었다.
“아무튼, 계속 고민해 봤어.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내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건 나도 그래! 절대로 네가 아무 이유 없이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해.”
“정말?”
“당연하지!”
확신에 찬 수겸의 말에 한솔이 싱긋 웃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쁜 듯했다.
“고마워, 믿어줘서.”
“야, 뭐 그런 걸로 고맙다고 해? 평소에 네가 어떻게 했는데. 솔직히 나도 안 믿겨. 그 정도로 네 이미지가 얼마나 좋은데.”
“형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 좋다.”
수겸은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말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편해진 마음만큼 자세 역시 편해져서는 한솔의 어깨에 툭 제 머리를 올려놓고 기대앉았다.
그의 너른 어깨가 수겸의 자그마한 머리통을 안정감 있게 받쳐주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편해지자, 잠이 솔솔 왔다.
수겸은 무겁게 내리눌리는 눈꺼풀을 거부하지 않고 감았다.
“형, 자?”
“응, 자.”
“편하게 자지, 왜 그렇게 자.”
“지금이 편해.”
수겸은 잠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듣던 한솔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가 웃는 바람에 몸이 가볍게 떨렸지만, 그 떨림마저도 수겸에게는 마냥 편하기만 했다.
“있잖아, 솔아…….”
“응.”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네 편이야.”
“……정말?”
“응. 정말.”
“……감동이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지난 생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너무 당황스러워서, 여러 일이 쉴 새 없이 터져 버리는 바람에 한솔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못했다.
누구보다 그를 믿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에게 차마 괜찮냐고 묻지도, 그를 위한 말을 해주지도 못했다.
그게 못내 한으로 남았다.
사실 한으로 남은 줄도 모르고 살았다. 워낙 많은 일이 벌어져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였다.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렸다.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시기에 하는 것. 그 사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한 번의 죽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수겸은 이번 생에서만큼은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후련해진 마음에 수겸은 흐뭇하게 웃으며 한솔의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한솔은 고양이처럼 비벼오는 수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나른해지는 기분에 스르륵 잠이 들려던 찰나였다.
“송수겸.”
“으어어…….”
수겸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괴상한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단잠을 방해한 상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흘겨보자, 그 상대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상대는 차이겸이었다.
“왜 웃어?”
“얘기 좀 해.”
“싫어, 나 잘 거야.”
“지금 자면 밤에 잠 못 자.”
“내가 뭐 애기냐? 지금 잔다고 못 자게?”
“대충 비슷해.”
“뭐시라.”
수겸은 차이겸의 난데없는 시비에 눈을 치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이겸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 재수 없음에 수겸은 울컥 오기가 치밀었다.
“뭔데, 말해!”
“여기서 말고.”
“으으, 정말 짜증 나.”
수겸은 투덜거리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한솔이 이겸을 굳은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잠을 뺏긴 수겸은 툴툴거리느라 한솔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차이겸을 졸졸 따라 베란다로 향하면서도 수겸은 여전히 그가 불러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차이겸을 따라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서였다.
약간은 한기가 드는 베란다에 서자 수겸은 마지막 한 점 남은 잠마저 완전히 달아났다. 멀쩡해진 정신에 수겸은 다시 자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얼른 말해.”
“열애설 그거 진짜 아니야.”
“뭐?”
“누구랑 열애설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아니야.”
“…….”
“정말이야.”
차이겸의 말에 수겸은 질끈 눈을 감았다. 저 자식이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처럼 사람을 불러다가 한다는 말이 겨우 저거라니. 싸우자는 건가? 울컥 치미는 화를 꾹꾹 내리누르며 수겸이 그를 노려보았다.
“뭐가 됐든 오해야.”
“……알았어.”
수겸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순간 그가 너무도 간절해 보여서 차마 생각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억울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간절하게 말할 필요는 없을 텐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마.”
뭐가 오해인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일단 지금 차이겸의 말이 거짓 같지는 않으니까 알았다고는 했지만, 모르는 일 아닌가. 지금 당장은 연애 상대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는 충분히 바뀔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순식간에 올라오는 감정인데.
“일단은 알았어. 알겠는데, 그렇다고 치자고.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는 않아. 오해가 있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내게 누군가를 좋아하든 그걸로 너를 탓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을 거야. 열애설만…… 터지지 않게 해줘.”
사실은 섹스 스캔들이지만.
수겸은 뒷말을 삼키며 강조했다. 그러자 차이겸은 굳은 표정으로 수겸을 바라보았다. 수겸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생각나는 말을 했다.
“나도 솔직히 그 상대는 기억이 안 나. 왜냐면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뭐, 누구든 간에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지금은 네가 아무도 안 좋아한다고 해도 미래에는…….”
“내가 지금 아무도 안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
“어?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차이겸의 불퉁한 말에 수겸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차이겸은 뚫어져라 수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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