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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59화 (60/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59화

수겸은 유찬의 시선에 당황하여 아래로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텐데, 왜 구태여 알고 싶어 하는지 원망이 들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때, 수겸의 마음을 읽었는지 선욱이 짤막하게 덧붙였다. 그 말에 수겸은 진심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선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 이야기는 제쳐두고, 기왕 온 거 나가서 술이나 먹자.”

“네?”

예기치 못한 선욱의 말에 멤버들은 물론, 수겸 역시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일제히 몰린 시선에도 선욱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왜, 문제라도 있어?”

“아니……. 문제는 아닌데…….”

음주에 엄격한 선욱이 먼저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다니,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술을 마실 때는 회식을 하다가 분위기를 타서 자연스럽게 술도 마시게 된 것이지, 애초에 술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던 선욱이 먼저 술 얘기를 꺼냈으니, 멤버들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멤버들은 선욱의 눈치를 살피며 제자리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선욱은 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해서 나와.”

“어…… 넵.”

수겸은 여전히 당황한 듯한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선욱의 말에 대답했다. 선욱은 수겸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여유롭게 웃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갑자기 웬 술이지?”

선욱이 집을 나서자마자 한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모두가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밖에서 선욱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고민하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거 내 옷 아니야?”

다들 갸우뚱거리며 일단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문득 태원이 수겸에게 물었다.

“맞아. 하지만 형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내가 형 옷 입었다고 뭐라고 하지 마.”

수겸은 새초롬히 태원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그런데 태원은 불쾌한 기색은커녕 외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거 너 줄게.”

“엥?”

“줄 테니까 자주 입어.”

제 옷을 허락도 없이 입었다고 타박을 할 거라 예상했던 수겸은 전혀 다른 태원의 반응에 고리눈을 떴다.

“갑자기?”

“싫어?”

“아니, 뭐…….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럼 입어. 산 지 얼마 안 된 거니까 새 옷이나 마찬가지야.”

“새 옷이나 마찬가지인데 나 줘도 돼?”

“응. 완전.”

“알았어, 땡큐!”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보기에도 새 옷처럼 깨끗하고, 상태도 좋은 옷을 얻게 되었으니 이득이었다. 수겸은 고마움을 담아 태원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짧은 대화 끝에 수겸은 서둘러 갈아입을 옷을 찾았다. 청바지에 아이보리색 맨투맨을 입고, 베이지색 숏패딩을 걸쳤다. 후다닥 갈아입고 멤버들을 살펴보니, 멤버들은 벌써 옷을 갈아입고 수겸을 기다리고 있었다.

“헉, 늦어서 미안! 얼른 가자.”

수겸은 눈치껏 사과하고 종종걸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선욱은 벌써 주차장으로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수겸을 비롯한 멤버들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겸이랑 유찬이, 한솔이는 내 차 타고 태원이랑 이겸이는 택시 타고 와. 주소는 문자로 찍어줄게.”

“네.”

선욱이 태원에게 카드를 내밀며 한 말에 유피트는 순순히 대답했다. 오늘 선욱이 몰고 온 것은 검은색 커다란 SUV였다. R마크가 적힌 차는 얼핏 보기에도 부내가 줄줄 흘렀다.

“수겸이가 앞에 타.”

“넵!”

앞좌석에 탈까, 뒷좌석에 탈까 고민하는 수겸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선욱이 먼저 말을 해주었다. 수겸은 활짝 열린 앞좌석에 냉큼 올라탔다. 유찬과 한솔은 조용히 뒷좌석에 올랐다.

세 사람을 태운 선욱이 부드럽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비싼 값을 하는 듯, 소음조차 없이 조용히 달리는 차 안에서 수겸은 괜한 어색함을 느꼈다.

“음악 켜도 돼요?”

“응. 저 버튼 누르면 돼.”

수겸은 선욱이 일러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금세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우리 노래네요? 이사님, 평소에도 저희 노래 들어요?”

“그럼. 나 스트리밍도 해.”

“으하하. 에이, 거짓말.”

능청스러운 선욱의 말에 수겸이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스트리밍을 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괜스레 웃음이 번졌다.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진짠데?”

“정말요?”

“그럼. 모니터링도 다 하는데, 스트리밍은 당연히 하지.”

진심이라는 듯한 선욱의 말에 수겸은 놀란 눈을 뜨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선욱이 자신들의 노래를 스트리밍하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가 정말 그렇다고 하니 고맙기는 했다.

수겸이 이 바닥 소문에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소속사 대표 중에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소속 가수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알고 있는 대표도 많았고, 소속 가수로 돈을 벌면서도 그들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이도 많다고 들었다.

그에 비해 선욱은 천사가 따로 없었다.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워낙 기본적으로 부유해서 그런지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만큼 지원도 잘해주고, 심지어는 진심으로 유피트를 아끼는 것까지 느껴졌다. 새삼 복 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삶을 두고서 고집을 부렸던 전생을 떠올리면 절로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머리 아파?”

“아니요. 쌩쌩해요.”

“그런데 왜 그래?”

“전생이 후회된달까…….”

“무슨 소리야?”

“있어요, 그런 게.”

아까 무속인이 한 말에 대해 궁금해했기에 슬쩍 운을 떼보았는데, 역시나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역시 말을 하더라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수겸은 괜히 입맛만 다셨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선욱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수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자동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선욱은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열쇠를 맡겼다. 때마침 태원과 이겸 역시 도착했다.

유피트와 선욱이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은 선욱이 보여준 카드 같은 것을 확인하더니, 그들을 가장 안쪽에 있는 방 안으로 안내했다.

방 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었다. 한쪽 면에는 바형 테이블이 있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또 있었다. 멤버들이 폭신한 소파에 앉자,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화려한 안주와 술이 들어왔다.

심지어 직원 한 명은 바형 테이블 뒤에 자리를 잡고 현란한 손길로 칵테일을 만들었다. 실제로 칵테일을 만드는 모습을 처음 본 수겸은 놀란 눈으로 칵테일을 만드는 모습을 구경했다.

“수겸이도 마셔.”

“하지만…….”

“오늘은 내가 허락하는 거니까 괜찮아.”

선욱의 말에 수겸이 곧바로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자, 선욱이 먼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수겸은 내심 행복하기는 했지만, 멤버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기에 기분 좋은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예쁘고 화려한 색색의 칵테일이 멤버들 앞으로 하나둘 올라왔다. 알록달록한 칵테일 중에 어떤 걸 마시면 좋을까 싶어 수겸은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나 먼저 골라도 돼?”

“마음대로 해.”

다른 멤버들이 먼저 고르기를 잠자코 기다리던 수겸이 좀처럼 고를 생각을 않는 멤버들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차이겸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에 수겸은 거절하지 않고 곧장 눈을 빛내며 컵에 파인애플이 한 조각 꽂힌 노란 빛깔의 칵테일을 제 앞으로 가져왔다.

수겸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하나둘 칵테일을 골라 갔다.

“마셔.”

“넵!”

수겸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잔을 들어 칵테일을 한 모금 머금었다. 파인애플 맛이 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칵테일에서는 코코넛 향이 진하게 풍겼다. 코코넛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수겸이 미간을 찌푸리며 슬그머니 잔을 내려놓았다.

“왜, 별로야?”

수겸을 지켜보고 있던 이겸의 물음에 수겸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이겸이 자신이 골라 가져갔던 칵테일을 수겸에게 밀어주곤 수겸의 것을 제 앞으로 가져갔다.

“바꿔 마셔.”

“응!”

이겸의 배려에 수겸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이겸이 내민 칵테일을 들어 홀짝거렸다. 처음에는 단맛이 번지는가 싶더니, 이어서 미묘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수겸의 표정 역시 복잡미묘해졌다.

“왜 그래?”

“이걸 뭐라 그래야 하지…… 어, 음…… 음…… 그러니까…… 청년…… 아, 아니…… 청년 말고 조금 더…… 아, 그래. 아저씨 맛이 나…….”

수겸의 말에 차이겸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리려던 찰나, 선욱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맛도 알고, 먹어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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