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55화 (56/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55화

* * *

찬바람이 휘이 불어 감겼다. 깊은 산속에 있는 폐가는 산 것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스산한 분위기에 차 안의 유피트 일동은 침묵한 채로 마른침만 삼켰다.

공포 리얼리티 촬영일인 오늘, 유피트는 도심 외곽에 있는 인적 드문 산으로 향한 참이었다. 자정부터 이루어지는 촬영인 만큼, 촬영장에 도착한 것도 밤늦은 시간이었다.

제작진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촬영을 위해 환히 조명을 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가 자체에서 풍기는 흉흉한 분위기를 지울 수는 없었다.

수겸은 마른침을 삼키며 차 문에 바싹 붙어 창문 너머로 제작진의 동태를 살폈다. 촬영을 앞두고 바쁜지 두어 명의 스태프가 바쁘게 뛰어다녔다.

“내리자.”

“으으, 정말 싫다.”

태원의 말에 수겸은 투정을 부리면서도 기어코 밴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언제 칭얼거렸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커다란 목소리로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수겸의 인사에 제작진들이 돌아보았다. 그들은 크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목례를 하기도 하고, 또 소리 내어 ‘안녕하세요, 수겸 씨!’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아까 바삐 뛰어다니던 제작진이 특히 입술을 헤벌쭉 벌리고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있었어요?”

오제현 PD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수겸을 비롯하여 유피트 멤버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네, 잘 지냈어요. PD님은요?”

“저도 잘 지냈어요.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쁘네요.”

“저희도요.”

짧은 인사를 건네던 중간, 수겸은 대각선에서 시선을 느꼈다. 힐끔 고개를 돌려보니 창백한 얼굴의 미형인 남자가 수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무속인분이세요. 그, 왜…… 지난번의 일도 있고 그래서요.”

제현은 슬쩍 남자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수겸은 무속인까지 부를 정도인가 싶어 적잖이 놀랐지만, 절벽에서 고꾸라질 뻔한 걸 생각하면 무속인을 부른 게 과장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수겸이 제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남자는 눈을 돌리지 않고 뚫어져라 수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 괜스레 섬찟하고 등줄기가 서늘했다.

수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부러 밝게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

남자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서도 시선만큼은 수겸을 올곧게 향하고 있었다. 수겸은 오싹해지는 기분이라, 슬그머니 몸을 돌려 남자와 등을 지고 섰다.

“사실 여기는 흉가가 아니라 폐가예요. 흉가와 폐가의 차이는 아시죠? 폐가는 그냥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고 흉가는 흔히 말하는 안 좋은 일이 있던 집이에요.”

제현의 설명에 유피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마 불길한 일이 있던 곳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집주인분께서 직접 2년 전까지 거주하셨고, 지금은 다른 집에서 잘 지내고 계세요. 그런데 이 집이 워낙 오래되었고, 관리가 되지 않았다 보니 공포 촬영지로 적절할 것 같아서 직접 제보해 주셨어요.”

그는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들으면 들을수록 수겸의 두려움이 한 꺼풀씩 벗겨 나가는 듯했다.

겉보기에는 귀신이 있어도 열댓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건물이라는 사실이 수겸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었다.

“이번에는 위험한 일은 없도록 최대한 만반의 준비를 했어요. 물론 저쪽으로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제현이 턱 끝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물론 제현의 설명대로라면 딱히 영적으로도 특별한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속인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수겸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이크 착용하시고 촬영 준비하실게요.”

“넵!”

유피트는 제각기 대답하고는 두툼한 외투를 벗었다. 금세 차디찬 산기슭의 밤공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두려움이 많이 걷혔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외투를 벗고 촬영에 임하려고 하니 알 수 없는 오싹함이 온몸을 덮쳤다.

“차이겸, 옆에 조금만 붙을게.”

수겸은 차이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와 팔을 맞대고 붙었다. 맞붙은 지점을 중심으로 체온과 체온이 더해져 온기가 감돌았다. 그나마 팔이라도 덜 추우니 조금은 살 만한 것 같았다. 수겸은 만족스러워하며 이겸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고마워.”

“내가 무슨 네 난로냐?”

“너도 춥잖아,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좋기는 무슨.”

차이겸은 투덜거리면서도 수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수겸은 마음껏 그의 팔에 기대어 체온을 만끽했다.

“자, 촬영 들어갑니다. 준비해 주세요.”

메인 작가의 말이 밤공기를 가르며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촬영 준비를 마친 유피트는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카메라에 붉은빛이 들어오며 촬영이 시작되었다.

“What’s this planet?”

“안녕하세요, 우리는 유피트입니다!”

태원의 선창을 시작으로 멤버들의 후창이 이어졌다. 수겸은 힐끔거리며 모니터에 뜬 대본을 확인했다.

<수겸 : 저희가 지금 야심한 밤에 산속에 와 있는데요, 여기가 어디죠?>

<한솔 : 여기는 고양시에서 유명한 폐가인데요, 2년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해요.>

<일동 : 무서워하는 리액션>

한솔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걸 확인한 수겸은 그를 올곧게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한솔이 수겸을 보며 환하게 입꼬리를 늘였다.

“저희가 야심한 밤에 산속에 와 있는데 말이죠, 여기가 어딜까요?”

수겸이 한솔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한솔은 자연스럽게 큐시트에 적힌 대사대로 답변했다.

그의 대답에 따라 무서워하는 리액션을 취할 차례가 되자, 수겸은 마침 옆에 있던 차이겸의 팔을 주먹으로 콩콩 때렸다.

“으아아아, 폐가라니, 폐가라니!”

차이겸은 힐끗 수겸이 제 팔을 때리는 걸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겸은 계속해서 작은 주먹으로 이겸의 팔을 톡톡 쳤다. 그는 몇 대 더 가만히 맞아주는가 싶더니, 이내 수겸의 손목을 잡아채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수겸은 놀란 눈으로 차이겸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가 팬 서비스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닫고는 얼른 차이겸의 손가락에 하나씩 깍지를 꼈다.

그러자 차이겸이 놀란 눈으로 수겸을 바라보았다. 수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예, 오늘도 한 건 해냈다!’

흐뭇함에 수겸의 입꼬리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차이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수겸은 다음 목표물을 물색하느라 그의 반응을 받아줄 겨를이 없었다.

‘이번에는 솔이한테 붙어볼까나.’

“오늘은 저희가 이 폐가를 방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으아아아아! 싫어어!”

때마침 유찬이 유피트가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수겸은 싫다고 소리를 지르며 한솔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한솔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듯 묻었다.

“폐가라니, 벌써 무서워!”

수겸의 말에 한솔은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수겸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수겸은 흡족해하며 그의 품 안에서 카메라 몰래 씩 웃었다.

“오늘은 두 분, 세 분으로 나누어서 들어갈 거고요, 폐가 안에서 제작진이 숨겨둔 아이템을 꺼내서 나오시면 됩니다. 먼저 아이템을 다 찾아 나오시는 분들만 야식을 드실 수 있어요.”

“헉! 야식이라니! 나 이기고 싶어! 이길 거야, 이길래!”

“아직 팀도 안 나눴어. PD님, 팀은 어떻게 나눠요?”

수겸의 말에 이겸이 쯧쯧 혀를 차더니 제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제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태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OB팀, YB팀 하자.”

“반대, 반대!”

“싫어요.”

한솔과 유찬이 곧바로 거절을 하고 나섰다. 태원의 말대로 OB팀과 YB팀으로 나누면, OB팀은 태원과 이겸, 수겸 세 명이 한 팀이 되고 YB팀은 한솔과 유찬으로 두 명이었다.

수겸은 두 명이서만 팀이 되는 게 싫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형으로서 어린 동생들을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아, 그럼 내가 YB팀에 갈게.”

“그런 게 어딨어?”

“어딨기는 여깄지. PD님 그래도 되죠?”

태원의 물음에 수겸은 앙칼지게 대꾸하고는 제현을 향해 허락을 구했다. 태원이 뭐라 해도 PD가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제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편한 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YB팀 먼저 입장하세요.”

수겸은 훅훅 깊게 숨을 골랐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달래 가슴께를 쓸어내린 후에 오른팔에는 한솔의 팔을, 왼팔에는 유찬의 팔짱을 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