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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53화 (54/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53화

“……좋은 생각이네.”

“그쵸? 엇, 근데 이사님 어디 안 좋으세요? 표정이 안 좋으신데…….”

좋은 생각이라는 말과는 달리 선욱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그의 변화를 알아차린 수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특유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선욱인지라 지금 그의 얼굴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수겸이었다.

“그래 보여?”

“네……. 걱정돼요.”

“우리 수겸이한테 걱정도 받고, 내가 잘못했네.”

“헉,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선욱의 말에 수겸이 도리질을 쳤다. 그러자 선욱이 옅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나서야 수겸은 조금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먹어.”

“넵!”

수겸은 선욱의 말에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쾌활하게 대꾸했다. 음식에 시선을 고정한 수겸은 바삐 젓가락을 놀렸다.

* * *

“안녕히 들어가세요!”

숙소에 도착한 수겸은 선욱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선욱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수겸을 배웅했다.

수겸은 멤버들을 위해 추가로 주문하여 포장한 떡갈비와 갈비찜을 양손에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 솔아?”

흥겹게 걸음을 옮기던 수겸은 엘리베이터 옆에 기대서 있는 인영을 보고 놀랐다. 한솔이 왜 여기 있는지 의아하면서도 반가웠다.

“왜 나와 있어?”

“형 기다렸지.”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려!”

“내가 형 한정으로 레이더가 있잖아. 지금쯤 올 것 같아서 내려왔지.”

수겸의 걱정스러운 말에 한솔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 말을 듣고도 수겸은 한솔을 향한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 특유의 추위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그의 건강이 걱정된 탓이었다.

“안 추웠어?”

“금방 내려왔어, 금방.”

“정말?”

“응, 정말. 이리 줘, 내가 들게.”

수겸의 물음에 한솔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동시에 수겸의 손에 들린 짐을 빼앗듯 가져갔다. 한데 순간적으로 스친 한솔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놀란 수겸이 기겁하며 한솔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손이 엄청 차갑잖아! 오래 기다렸네!”

“맞아, 나 사실 엄청 오래 기다렸어.”

“왜 그랬어! 그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한솔은 별일 아니라는 듯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수겸은 속상한 마음에 울상이 되었다. 그러자 한솔이 자연스럽게 수겸에게 붙어 팔짱을 꼈다.

“나 추워.”

“어휴, 그러니까 왜 나와서 기다렸어.”

“조금이라도 형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랬지.”

한솔은 곰살맞게 웃으며 수겸에게 기대었다. 수겸은 그런 한솔의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겨주며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머리카락마저 차갑잖아. 대체 얼마나 나와 있었던 거야.”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어. 그냥 지하 주차장이 추워서 그런 거야.”

“그 추운 곳에 있었으니까 문제지.”

“이사님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수겸의 타박에 한솔은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수겸 역시 그가 말을 돌리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이만하면 그를 충분히 나무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별말 안 했어. 그냥 밥만 먹었지.”

“에이, 그래도 무슨 말을 했을 거 아냐. 아무 말도 안 하고 밥만 먹었다고?”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무슨 말을 했는데?”

수겸은 한솔의 물음이 다소 집요하다고 느꼈다. 유들유들하고 부드러운 성격인 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집요하게 구는 걸까 고민하던 수겸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한솔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한솔이 수겸 혼자 이사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질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수겸은 자신의 처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솔아.”

수겸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한솔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그 반응을 본 수겸은 역시나 한솔이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이 오해를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응, 말해.”

“네가 충분히 오해할 만한데…… 그런 거 아니야.”

고민 끝에 수겸은 정공법으로 나가기로 했다. 한솔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

그러자 한솔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소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수겸은 역시 제 추측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네가 질투할 만한 상황인 거 나도 알아.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도 충분히 기분 상할 만한 일이야. 하지만 정말 그런 건 아니야. 그래도 오해하는 일 없게 나도 앞으로 더 조심할게.”

“혀,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다 알지, 네 마음을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

수겸의 말에 한솔은 정말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리기까지 했다.

그의 반응을 보자, 수겸은 괜스레 더 미안해졌다. 얼마나 질투를 하고 마음 고생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놀라나 싶어서였다.

“정말 미안해, 솔아.”

“……언제부터? 언제부터 알았는데?”

“어?”

“내 마음을 언제부터 알았냐고, 언제부터, 대체…….”

한솔은 한숨까지 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수겸은 한솔이 왜 이렇게까지 당황하나 싶었으나, 곧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니 자신이라도 누군가를 질투한다는 걸 타인이 알아차린다면 굉장히 민망할 것 같았다.

“나도 지금 알았어. 진작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

“…….”

수겸의 대답에 한솔은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그의 반응에 수겸 역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숙소가 있는 15층에 도착했다.

“……내리자.”

수겸이 열린 엘리베이터 문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한솔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반응을 본 수겸은 당황스러웠다. 그 정도로 제 말이 충격이었나 싶고, 또 한편으로는 한솔이 걱정되었다.

“솔아, 괜찮아……?”

“형, 그러면…… 그러면 답은?”

“어? 무슨 답……?”

생각지도 않은 물음에 수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을 몰랐다. 아니, 애초에 수겸은 지금 한솔이 하는 질문의 저의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커다란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려니, 한솔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 마음을 알았다면서, 그럼 형의 생각을 말해줘야지.”

“어……? 내 생각……?”

한솔의 추가 설명을 듣고 나서도 수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청히 되묻기만 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는데, 도대체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 타도 돼요?”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놀란 수겸이 돌아보니, 한 여자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자신들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수겸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헉, 네! 타시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수겸은 그 사람이 탈 수 있도록 한솔의 팔을 잡아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난 후에야 수겸은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으아아, 죄송해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한솔은 여전히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수겸만을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다시금 수겸의 머리가 팽팽 돌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답변을 바라고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 잘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응, 미안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어.”

고민 끝에 수겸은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괜한 거짓말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솔직하게 나가는 편이 적절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한솔은 수겸의 이런 대답을 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실망한 듯했다.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솔아?”

“……응.”

“미안해. 계속 고민해 봤는데…… 도저히 모르겠어서…….”

수겸은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러자 한솔은 씁쓸한 눈이었지만 옅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어떻게 바로 알 수 있겠어. 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운걸.”

“거절……?”

“응. 거절하는 건 아니지?”

“어, 그건 아니긴 한데…….”

“그럼 됐어.”

영문 모를 말이었다. 거절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수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거절할 것은 없기에 구태여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들어가자.”

한솔은 쓰게 웃더니 앞장서 걸었다. 유독 그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수겸은 멀어지는 한솔의 뒷모습을 차마 뒤쫓지 못하고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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