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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52화 (53/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52화

지하 주차장에 내려온 수겸은 E구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선욱이 어떤 차를 타고 왔을까 이리저리 추측해 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욱은 자동차가 너덧 대 정도 되었다. 그 때문에 차 종류로 그를 찾아내기란 어려운 문제였다.

“여기야.”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선욱이 창문을 내리고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오늘 그가 끌고 온 차는 방패 모양 로고가 있는 하얀색 자동차였다. 차에 대해서 잘 알기는커녕 면허조차 없는 수겸이었지만, 그 브랜드의 자동차가 비싸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수겸은 선망 어린 눈으로 그의 차를 살펴보다가 차 문이 열리자 조심스레 올라탔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체가 납작하여 앉을 공간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타보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자신은 언제쯤 이런 차를 살 수 있을까 생각하던 수겸의 표정이 일순간 흐려졌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헉,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래?”

“저는 언제쯤 이런 차 살 수 있을까 싶어서요.”

“차 가지고 싶어?”

“그건 아닌데……. 사실 타고 다닐 곳도 없기도 하고. 그치만 멋있잖아요.”

“사 줄까?”

“헉,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 하시면 저 정말로 설레요. 그런 말 마세요.”

수겸은 정말로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난인 걸 알지만, 선욱은 장난을 장난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장난 아닌데.”

“그럼 저는 빨간색으로 사 주세요. 멤버들은 무슨 색 사고 싶은지 제가 물어볼게요.”

“그래, 알았어.”

뭘 알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선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수겸의 눌린 머리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잘 잤어?”

수겸은 선욱의 물음에 민망한 듯 웃었다. 이미 그와 통화할 때부터 자다 깬 걸 들키기는 했지만, 막상 그가 이렇게 물어보니 괜스레 부끄러운 탓이었다.

“뭐 먹고 싶어?”

“음……. 깊게 고민 좀 해볼게요.”

“그래. 편안히 생각해.”

선욱의 말에 수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언제나 여유로웠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급하게 구는 선욱을 상상할 수 없었다. 수겸은 여유 속에서 무엇을 먹을지 천천히 고민했다.

“고기 먹을까요? 아냐, 아냐, 고기는 얼마 전에 먹었는데……. 하지만 고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잖아요?”

수겸의 물음에 선욱은 소리 없이 웃었다. 수겸은 그것을 동의라고 생각하고 떠오르는 말을 재잘거렸다.

“하지만 낮에 돈까스를 먹어서 깔끔한 게 먹고 싶기도 한데……. 으으으음.”

깊게 고민하겠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는 듯, 수겸은 정말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었다. 선욱이 자주 밥을 사 주기는 하지만, 그가 사 주는 밥을 매일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더욱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수겸의 고민이 길어지는데도 선욱은 조금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에 잠긴 수겸을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고기를 먹을까, 회를 먹을까, 아니면……. 으, 음…….”

“둘 다 먹고 싶어?”

“네, 그래서 고민이 커요.”

“그럼 내가 도와줄까?”

후보가 두 가지로 추려지자, 선욱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정식 먹으러 가자. 고기도 나오고 회도 나오니까.”

“헉, 좋아요!”

선욱의 말에 수겸은 해답을 찾은 듯 밝은 표정이 되었다. 겨우 식사 메뉴 하나 고른 것뿐인데, 수겸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여서 크게 반색했다.

마침내 두 사람이 탄 자동차가 지하 주차장을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빠져나갔다.

* * *

“잘 먹겠습니다!”

정갈하게 담긴 음식을 보는 수겸은 행복감에 젖어 외쳤다. 선욱이 말한 고기와 회 말고도 다양한 반찬이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었다.

2인 상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상에 빈틈없이 차려진 음식을 보는 수겸의 눈이 반짝거렸다. 선욱은 그런 수겸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얼른 먹어.”

“감사합니다.”

상큼한 샐러드와 담백한 죽을 시작으로 수겸은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잡채를 집는 손길에서는 숨길 수 없는 설렘이 느껴졌다.

“흐읍, 너무 맛있어.”

“맛있으면 맛있는 거지, 왜 울고 그래.”

“너무 맛있어서요.”

“수겸이는 아기 고양이 같네.”

“네?”

갑자기 웬 고양이 타령? 수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팬들이 수겸을 상대로 오만 동물을 다 갖다 붙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팬이 하는 말이었다.

선욱에게 아기 고양이 같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에 수겸은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아기 고양이들이 그런대. 너무 맛있는 거 먹으면 운다더라.”

“헐, 진짜요?”

“응, 진짜.”

“와, 너무 귀엽다.”

선욱의 대답에 맛있는 간식을 먹고 그렁그렁 울고 있을 아기 고양이를 생각한 수겸이 심장께를 부여잡았다.

“그러니까.”

선욱은 그런 수겸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 분명 그 역시 아기 고양이가 귀엽다고 한 것일 텐데, 시선 끝이 수겸을 향하고 있어서인지 수겸은 마치 그가 자신더러 귀엽다고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괜스레 민망해진 수겸은 더욱 가열차게 젓가락을 놀렸다. 황금빛 튀김옷을 입은 길쭉한 튀김을 젓가락으로 집은 수겸은 튀김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으, 아…….”

튀김옷에 감추어진 내용물의 맛을 느낀 수겸은 씹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홍삼튀김이었다.

쓴 음식은 쥐약인 수겸인지라 괴로워하며 씹던 홍삼튀김을 물과 함께 애써 삼켰다.

“하하하하.”

그 모습을 본 선욱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겸은 입안에 남은 쓴맛을 없애기 위해 다른 반찬을 허둥지둥 집어 먹었다. 선욱은 하하 웃으며 수겸의 앞으로 다른 반찬들을 밀어주었다.

“으아아, 살았다.”

한참 만에 쓴맛을 지워낸 수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욱은 그런 수겸을 바라보며 느른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수겸이 스캔들 났더라?”

“네?!”

놀란 수겸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이게 무슨 무서운 소리란 말인가. 허둥지둥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선욱이 말을 이었다.

“데이트했다고 난리도 아니던데?”

“네? 아, 아아……. 깜짝이야. 저 진짜 놀랐어요. 스캔들이라니, 그 무슨!”

“왜, 찔리는 거 있어?”

“헉, 아뇨!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하니까 더 놀란 거예요!”

수겸은 선욱의 말에 도리질까지 치며 대꾸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이돌로 성공하기도 바쁜데 이 중요한 시점에 스캔들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연애 생각은커녕 누구를 만날 생각조차 없는데 스캔들이 웬 말이란 말인가. 이제 한창 유피트가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 지금 스캔들이 난다면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아니, 똥 뿌리기 수준이었다. 수겸은 스캔들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선득해지는 기분이라, 몸서리를 쳤다.

“차이겸이랑 데이트한 거 말씀이시죠?”

“……응, 맞아. 둘이 데이트한 거. 수겸이도 데이트라고 하는 거 보면 정말 데이트였나 보네?”

“에이, 저희는 공식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러죠. 겸겸 커플!”

수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갈비찜의 부드러운 살코기를 젓가락으로 콕 찍어 앞 접시로 가져갔다. 야들야들한 살코기를 한입 가득 입에 넣은 수겸은 행복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욱은 그런 수겸을 묘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원래 둘이 카메라 밖에서도 그렇게 친했나?”

“아,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오늘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제가 중간에 시간이 붕 뜬 참에 차이겸을 만났거든요. 그래서 같이 점심 먹고 시간 보냈어요. 아, 이겸이가 인형 뽑기로 인형도 뽑아줬어요. 걔 인형 뽑기 되게 못해요.”

수겸은 번번이 인형 뽑기에 실패하던 이겸을 떠올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선욱은 옅게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수겸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평소에 보여주던 미소와는 상당히 다른 웃음이었다. 그러나 눈치라고는 개미 발가락만큼도 없는 수겸이 이 사실을 알아차릴 리 만무했다.

“나름대로 얼굴 잘 가리고 다닌다고 했는데, 팬분들이 알아보실 줄은 몰랐어요. 근데 막상 알아봐 주시니까 기분은 좋은 거 있죠. 저희 이제 꽤 성공했나 봐요!”

“……그러게. 기분 좋다니 다행이네.”

선욱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수겸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얼핏 팬분들 반응 찾아보니까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역시 공식이라면서. 가끔 일부러라도 차이겸 데리고 나가서 데이트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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