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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41화 (42/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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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꽃잎> 녹음 당일, 유피트는 이른 아침부터 숍으로 향했다.

디지털 싱글 앨범인 만큼 원래는 뮤직비디오 촬영이 없었다. 하지만 수겸이 조르고 졸라 노래를 녹음하는 장면을 간단하게라도 촬영해 뮤직비디오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고, 선욱은 결국 그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평소였다면 거지 깽깽이 같은 꼬라지로 녹음을 했을 테지만, 오늘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은 다음 녹음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섯 명이나 되다 보니 메이크업에 걸리는 시간도 꽤 길었다. 수겸은 꾸벅꾸벅 졸면서 메이크업을 받았다.

“우리 요정이님께서는 간밤에 뭘 했길래 이렇게 피곤해할까?”

“부끄러우니까 그런 말 하지 마요…….”

송하의 말이 귓가를 스쳤지만, 수겸은 무거운 눈꺼풀을 뜰 수 없었다. 대신 입으로만 중얼중얼 불평을 했다.

“투덜거리는 것도 귀엽네, 수겸이는.”

물론 수겸의 자그마한 투덜거림 정도에 굴할 송하가 아니었다.

송하는 주접에 특화되어 있는 인물로 유피트 모든 멤버에게 수시로 주접 멘트를 날려대었지만, 그중에서도 수겸을 가장 예뻐했다. 가장 귀엽다나 뭐라나.

그러는 사이 수겸의 메이크업이 끝났다. 무대 메이크업과 달리 한 듯 안 한 듯, 가벼운 메이크업이었다.

곧이어 머리 손질이 시작되었다. 머리는 데뷔 때부터 함께한 수진이 담당했다.

“그새 뿌리가 많이 자랐네. 수겸이 모근아, 그만큼 탈색을 하고 염색을 했으면 이제 그만 알아서 핑크로 자라렴.”

수진이 끌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수겸 역시 내심 공감했다. 매번 탈색과 염색을 반복하는 게 지겨운 탓이었다.

“오늘은 그냥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게 컨셉이니까 머리도 한 듯 안 한 듯 할 거야. 그렇다고 안 한 건 아니니까, 차에서 잘 생각은 하지도 마.”

“넵.”

수겸이 차만 타면 태원의 무릎을 베고 잔다는 걸 아는 수진이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수겸은 달리 변명할 것도 없어 짤막하게 대꾸했다. 수진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아는 탓이었다.

“수겸이는 흑발일 때도 진짜 예뻤는데. 사람들이 흑발일 때 수겸이를 못 봐서 아쉬워 죽겠어. 나는 핑발 수겸이도 좋지만, 흑발로도 활동했으면 좋겠어. 세상세상 그렇게 청초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어.”

“대공감. 나도 인정. 흑발일 때 수겸이는 저세상 미모야. 진짜 예뻐.”

“그치그치. 역시 언니는 안목이 있다니까. 나는 진짜 수겸이 처음 봤을 때 혼성 그룹인 줄 알았다니까.”

“나는 웬 요정이 아이돌을 하려나 싶었잖아.”

“나는 선녀가.”

수진의 혼잣말에 송하가 끼어드는가 싶더니, 금세 두 사람의 대화는 주접 배틀로 이어졌다.

가운데 낀 수겸의 귓불이 부끄러움에 발개지든 말든, 두 사람의 배틀은 끝날 줄 몰랐다.

“끝났다.”

마침내 헤어 손질이 끝나고, 수겸은 끝없는 주접이 불러오는 민망함에서 탈출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의상은 청바지에 아이보리색 후드티였다. 목도리는 버건디색이었고, 아우터로는 다소 박시한 크기의 베이지색 떡볶이 코트였다. 후드티 소매가 긴 편이라 손등을 살짝 덮는 길이였다.

수겸은 자신이 봐도 꽤 귀여운 코디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유피트는 전생에서도 의상 논란은 없던 그룹이었다. 그만큼 스타일리스트인 송하의 센스가 돋보였다.

수겸은 흡족하게 웃고는 이미 준비를 마쳐서 옆에 서 있는 차이겸을 살펴보았다.

그는 온통 검은색이었는데,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목티를 입고 그 위에 검은색 무스탕을 입었다. 하지만 무스탕의 안쪽은 흰색이라 답답해 보이지는 않았다.

“뭘 그렇게 봐?”

“내 눈으로 내가 보는데, 안 돼?”

전날의 앙금이 채 가시지 않은 수겸은 앙칼지게 대꾸했다. 그러자, 차이겸은 ‘마음대로 해라’ 하고 중얼거렸다.

둘이 그러는 사이 태원이 나타났다. 그는 회색 맨투맨과 다소 어두운 느낌의 청바지 위에 야상 느낌이 나는 녹색 패딩 코트를 입고 있었다.

“수겸이 눈빛이 뜨거운데.”

“당연하지, 나는 형한테 쌓인 게 아주 많은 사람이야.”

수겸의 말에 태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수겸을 내려다보았다.

“아이고, 우리 수겸이는 뭐가 또 불만이실까?”

“내가 어제 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는지 알기나 해?!”

“엥, 무슨 소리야?”

수겸의 원망에 태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제 방을 나선 후에 곧장 연습실에 가서 춤 연습을 했다. 연습이 끝나 돌아왔을 때는 늦은 새벽이었고, 이미 수겸은 자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자신이 떠난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리가 없었다.

“말도 마, 아주 서러운 인생이었으니까.”

“뭐야, 너네 수겸이 구박했어?”

“구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

수겸의 말에 태원이 이겸을 추궁하자, 그는 담백하게 대꾸했다.

태원은 잘 모르겠지만, 잡소리를 안 하는 이겸이 저런 말을 할 정도인 걸 보니 수겸이 잘못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수겸이 구박하지 마.”

정황상 수겸이 구박받을 짓을 한 것 같기는 했지만 태원은 수겸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한껏 날카로웠던 수겸의 눈매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솔과 유찬도 준비를 마쳤는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한솔은 하얀색 바탕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니트를 입고, 하의는 다소 연한 색깔의 청바지를 입었다. 그 위로 회색 숏패딩을 입었다. 마무리로 머리에는 분홍색 비니를 썼다.

그 옆에 유찬은 박시한 연회색 니트에 검정색 면바지를 입고 그 위에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었다. 러프한 니트 탓에 쇄골이 살짝 드러나며 시선을 끌었다.

“캬, 오늘도 우리 애들은 옷 입힐 맛이 나.”

송하가 유피트를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더니 한솔의 앞으로 가서 무슨 일이 있어도 비니는 벗지 말라고, 오늘 패션의 가장 포인트니까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유피트는 곧장 녹음실로 향했다. 녹음실로 입장하는 장면부터 찍을 것이기에, 내부에는 카메라가 세팅되어 있었다.

수겸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이제까지는 비록 세부적인 내용이 달랐을지언정, 큰 줄기에서 보았을 때는 전생과 같았다. 그렇기에 이미 다 겪어본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소원꽃잎이 디지털 싱클 앨범 곡이 된 것도 제 의지로 바꾼 것이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 또한 그러했다.

겪어본 적 없는 시간을 향한 한 걸음은 언제나 떨리는 법이었다. 수겸은 오른손으로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유찬이 수겸의 왼손을 잡았다.

“어?”

“손잡아줄게요.”

“고마워.”

수겸이 유찬의 배려에 환하게 웃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으려니 정말 떨리는 가슴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자, 그럼 준비하시고, 입장하는 장면부터 찍을게요.”

“넵!”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이 크게 두 번 박수를 쳐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멤버들은 제각기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이어서 카메라의 빨간 불이 들어오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녹음은 1명씩 녹음실에 들어가서 자신의 파트를 녹음하고, 이어서 단체 파트에서는 함께 녹음을 하는 것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따로 녹음하고 기계로 입히는 방식도 있지만, 아무래도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서는 함께 녹음을 하는 장면이 들어가 주는 편이 좋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한솔의 파트로 녹음은 시작되었다.

한솔이 녹음을 하는 동안에도 카메라 한 대는 대기하는 멤버들을 찍고 있었다. 수겸은 대기 중에 뭘 하면 팬들이 좋아할 떡밥이 생길까 고민하다가 반짝 눈을 빛냈다.

그는 벗어두었던 목도리를 가지고 와서는 유찬의 목에 감아주었다. 유찬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수겸이 감아준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더니 예쁘게도 웃었다.

“고마워요.”

녹음실 내부는 결코 춥지 않았지만, 유찬은 수겸이 감아준 목도리가 만족스러운지 풀지도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수겸 역시 괜스레 기분이 좋아 유찬을 마주 보고 웃었다.

개인 녹음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역시 녹음이 진행되는 것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수겸은 밖에서 대기하는 내내 일부러 멤버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건다든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옆에 있는 멤버들의 어깨를 만진다든가 하는 떡밥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수겸이 분위기를 풀어준 덕분에 뮤직비디오 촬영 역시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남은 장면은 단체 녹음뿐이었다. 멤버들은 단체 녹음을 위해 마이크가 추가로 설치된 녹음실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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