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36화
“어……?”
“상대방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
수겸의 질문에 태원은 한동안 입술만 벙긋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는 이윽고 벌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아, 안 써봐서 모르겠는데.”
“아, 그래……? 아쉽다, 궁금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태원의 얼굴은 터질 듯이 붉어졌지만, 정작 말을 한 장본인인 수겸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태원은 몇 초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에게는 몇 초가 억겁처럼 길었다. 잠시 후, 태원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겸은 이미 그의 대답에 대해서 관심이 시든 지 오래였다. 여전히 거대하기까지 한 거시기는 신비롭기는 하지만, 언제까지고 남의 좆만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겸은 제 거시기를 가리는 데에 집중하며 샤워기를 틀었다. 기본 좋은 온도의 온수가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렸다. 수겸은 따뜻하게 전신을 감싸는 온기에 만족하며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철퍽.
샴푸로 머리에 한껏 거품을 내놓았을 때였다. 젖은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아랫도리가 시원해졌다. 수겸은 얼른 제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흠뻑 젖은 수건이 보였다.
“으아아.”
조용히 주울 것이지, 왜 소리를 냈을까. 수겸은 자신의 기행이 스스로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모두의 시선이 수겸에게로 쏠린 것이었다.
기분 탓이었는지, 쏠린 시선은 모두 수겸의 중심부를 향하고 있었다.
“보, 보지 마! 보지 말라고!”
수겸은 무서운 속도로 수건을 집어 들며 애절하게 외쳤다.
* * *
촬영을 앞두고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수겸은 당장에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사우나에서의 쪽팔림이 떠오를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그 욕구를 참아내기란 보통 힘든 게 아니었지만, 다행히 수겸에게는 망돌 탈피라는 중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다.
“자, 그럼 유피트 촬영 준비해 주세요.”
제작진은 수겸의 속도 모르고 쾌활하게 촬영 시작을 알렸다. 수겸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웃었다.
“저희가 사전에 팬분들께 유피트에게 궁금한 점을 말해달라고 요청드렸어요. 거기서 질문 몇 가지를 뽑아보았으니까, 뽑기에서 나온 질문들 대답해 주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메인 PD의 말에 유피트는 입을 모아 대답했다. 제작진은 질문 뽑기가 든 투명한 아크릴 상자를 내밀었다.
“그럼 이제 들어갑니다.”
제작진의 말에 한솔이 손바닥을 부딪치며 슬레이트를 쳤다. 이로써 촬영이 시작되었다.
“저희는 옷을 갈아입고 약간의, 그러니까 아주 약간의 변신을 했습니다.”
수겸은 엄지와 검지를 모아 겹쳐 자그마한 하트를 만드는 것처럼 제스쳐를 하며 ‘약간’을 강조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태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웃은 거야. 갑자기 웃음이 나서.”
수겸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특유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대본에는 없던 질문을 태원에게 던졌다. 그러자, 태원은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특유의 센스로 맞받아쳤다.
“참 나, 차라리 내가 귀여워서 웃었다고 해라. 그게 더 믿을 만하겠다.”
수겸이 태원을 향해 눈을 흘기는 모습은 한 마리의 아기 고양이 같았다. 나름의 예민함을 표현했지만, 대미지가 없다 못해 하찮기만 했다.
물론 수겸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장면이 편집될지, 아니면 방송에 나갈지 모르겠지만 방송에 나가게 된다면 팬들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좋아할 터였다.
“싸우지들 말고, 빨리 질문이나 뽑아.”
한솔이 중재 아닌 중재를 했다. 수겸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도 손은 그가 말한 대로 얌전히 뽑기 통에 손을 넣었다.
‘제발, 제발 재미있는 질문, 통편집을 피할 수 있는 질문 나와라. 제발.’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빌어 마침내 질문지를 뽑은 수겸이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쳤다. 이내 종이를 본 수겸의 얼굴이 밝아졌다.
멤버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걸 느끼며 수겸은 쾌활한 목소리로 질문을 읽었다.
“‘멤버들이 생각하기에 상견례 프리패스상이랑 문전박대상 궁금해요’라는 질문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수겸은 말을 이어나갔다.
“상견례 프리패스상이랑 문전박대상이 뭔지부터 이야기해 보자. 다들 알지?”
“아, 그럼. 알지. 누가 상견례에서 어른들에게 예쁨받을지, 아웃일지인 거잖아.”
“그치그치. 전문 용어로 나가리.”
태원이 대답하자, 수겸은 재빠르게 맞장구를 쳤다.
“전문 용어가 왜 거기서 나오죠?”
한솔은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본 수겸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만약에 내가 결혼을 한다고 쳐. 그러면 우리 부모님이 봤을 때 상견례 프리패스상을 뽑는다면 나는 한솔이에 한 표.”
“어?”
“왜?”
놀란 한솔의 말에 수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이내 태원이 약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보통은 내가 결혼을 한다고 치는 게 아니라, 내 자식이 한다고 치지 않아?”
“아, 그런가? 그, 그치만 있지도 않은 내 자식을 상상하는 건 너무 어렵잖아! 그리고 내 자식이면 이 중에서 누구랑도 결혼 안 시켜! 나이 차가 몇 살인데!”
수겸은 당황한 듯 연기를 하다가, 이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태원이 침착하라며 수겸을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침착해. 그래, 나도 네 자식이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 없어.”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솔이는 성격이 좋잖아. 근데 그걸 떠나서도 웃는 상이라서 상견례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아. 순해 보이기도 하고.”
“그건 인정.”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겸의 말에 태원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한솔이 끼어들어 냉큼 감사 인사를 건넸다. 수겸은 슬슬 토크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걸 느끼면서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다음은 태원이 형.”
“나?”
“응, 형.”
태원은 의외라는 듯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수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꾸했다.
“형은 원래 인상은 좀 사납긴 한데…… 상견례 자리인데 설마, 안 웃고 있겠어? 웃으면 또 별로 무서운 느낌은 안 준다?”
“음…… 그렇지. 그리고 좀 듬직한 인상이기도 하고.”
“맞아맞아.”
한솔이 끼어들어 토크를 이어나갔다. 수겸은 대화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끼어든 한솔을 내심 대견해 하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상견례 문전박대상은 누구일까요? 두구두구두구.”
딱히 긴장감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수겸은 양손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효과음을 내었다. 그러자, 한솔 역시 얼른 수겸을 따라 바닥을 두드렸다. 거기에 더해 태원은 찜질방 베개를 어깨에 메고 카메라인 척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따라 움직였다.
“차이겸입니다!”
“뭐?”
“아하하하, 인정!”
수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이겸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언성을 높여 되물었지만, 태원은 박수까지 쳐가며 웃음을 터뜨렸다. 유찬 역시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는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어어, 유찬이 웃는다! 자기 아니라고 안심했나 봐.”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는데?”
수겸의 말에 유찬은 당황한 듯 손사래까지 치며 부정했다. 그러자, 태원이 합세해서 유찬을 몰아세웠다.
“안심했다기보다는 뭐…… 아무래도 문전박대상은 좀 그렇잖아요.”
“좀 그렇대, 하하하하. 귀여워.”
유찬이 변명하듯 한 말에 수겸은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솔이 신이 나서 끼어들었다.
“자, 그럼 이겸이 형. ‘좀 그런 것’이 된 소감 좀 말씀해 주시죠.”
“뭐?”
“아이고, 무서워라. 이거 봐봐, 인상 쓰는 거! 이러니까 문전박대상이지!”
이겸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자, 한솔은 엄살을 부렸다. 수겸 역시 냉큼 한솔과 합세했다.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로 문전박대상은 차이겸을 뽑아보았습니다. 올빗 여러분, 여러분들도 아시겠죠?”
수겸은 카메라를 향해 찡긋 눈웃음을 치며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태원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차이겸, 얼굴 굳은 거 봐. 자기가 될 줄 몰랐나 봐. 우리는 다 알고 있었는데.”
“아니, 왜 나냐고. 나는 진짜 아니지.”
“그럼 너 아니면 누구인 것 같은데?”
“일단 형. 형부터 아니야.”
“나? 나라고? 나 아까 2위 한 거 못 봤어?”
“아니, 그러니까 왜 형이 2위냐고. 이해가 안 가.”
투덕거리고 있는 태원과 이겸을 본 수겸이 의미심장을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태원을 향해 윙크를 말했다.
“그야 내가 태원이 형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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