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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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치킨의 퍽퍽살을 좋아하는 한솔과 촉촉살을 좋아하는 수겸을 위해 닭가슴살 순살 치킨과 닭다리살 순살 치킨을 포함하여 총 여섯 마리의 치킨을 시켰다.
수치상으로는 1인 1.2닭이지만, 실제로는 태원이 수겸이 못 먹는 분량까지 먹어 평균을 맞춰주기에 주문 가능한 양이었다.
프라이드치킨보다 양념이 묻은 치킨을 선호하는 수겸은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로 간이 된 치킨 한 조각을 들고 눈을 빛냈다. 먹음직스러운 자태에 입안에 진득하게 침이 고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을 한 입 하기 위해 입을 벌리던 차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
수겸은 치킨을 시키기 전에 멤버들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노라고 운을 던져둔 상황이었다. 뭐, 치킨의 자태에 홀리는 바람에 할 말을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차이겸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수겸이 아쉬운 눈길로 치킨을 바라보다가 앞접시에 슬그머니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러자, 태원이 ‘먹어. 괜찮아, 먹고 말해도 돼’라며 수겸을 달래주었다.
그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수겸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순살 다리살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으우으우음!”
“한국말 해라.”
“맛있다고!”
이겸의 타박에 수겸이 원망스럽게 외쳤다. 그러나 설움을 느낀 것도 잠시, 금세 입안에 감도는 치킨의 맛에 행복해졌다.
행복감에 젖은 표정을 본 차이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단순해.”
“뭐지,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대체 어떤 인간이 한국인이 치킨을 먹는 중인데 시비를 털지?”
목표물이 분명한 수겸의 저격에 차이겸은 입을 다물었다.
하여간, 이뻐해 주고 싶어도 이뻐해 줄 수가 없는 놈이었다. 이겸의 다소 양아치스러운 소원 도둑질이 있기는 했지만, 분명 지난 생에서 나름 즐거웠던 기억이라 녀석을 향한 애정이 퐁퐁 샘솟던 차였는데, 지 손으로 차오르는 애정을 퍼내고 있다.
“아무튼, 내가 하려던 말은! 우리 이번에 컴백하는 곡 소원꽃잎으로 하면 어떤가 해서.”
“수록곡이 아니라, 메인 곡으로 하자는 말이죠?”
유찬은 놀란 듯했지만, 수겸의 의견이 퍽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의 표정은 꽤 밝았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한솔 역시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찬성! 완전 찬성.”
한솔이 적극적으로 수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 반응에 용기를 얻은 수겸이 나름대로 결연하게 운을 떼었다.
“디지털 음반으로 내고 미니 2집 나올 때 컴백할 때 다만 몇 번이라도 무대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시기적으로도 그때쯤 되면 초봄일 것 같아서 잘 어울리지 않을까?”
“뭐, 나는 상관없긴 한데 다른 분들이 어떠실지 모르겠네.”
“이사님한테 오케이 받았어.”
“어? 언제?”
태원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이사님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말을 한 건데, 오히려 태원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금세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수겸은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의 물음에 답했다.
“아까 슬쩍 다녀왔지.”
“혼자서?”
“그럼. 나 혼자서도 이사님을 잘 설득했지.”
“거길 왜 혼자 가?”
“어……. 그냥……? 혼자 가면 안 되는 건 아니잖아……?”
그의 물음에 수겸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사님을 혼자 설득해 낸 것에 대해 잘했다고 칭찬해 주리라 기대했는데, 그의 반응은 칭찬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타박 같기까지 했다.
“안 돼.”
“에? 안 된다고?”
“어, 안 돼.”
수겸은 단호한 태원의 대답에 놀라 되물었다. 그런데도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당황한 수겸은 태원이 자신을 놀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고민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이사님이 싫으시대.”
“아, 진짜? 나한테는 그런 내색 없으셨는데! 따로 말씀하신 거야?”
“……으응.”
다소 반 박자 느린 대답이었지만, 분명 ‘으응’이라고 말했다. 태원은 그러고서 벌컥벌컥 사이다를 들이켰다.
수겸은 아직까지도 진짜인지 아닌지 감이 오지 않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태원을 바라보았다.
“진짜예요.”
“헉, 진짜? 나한테는 그런 말씀 없으셔서 전혀 몰랐어. 알려줘서 고마워.”
이번에는 유찬까지 거들고 나섰다. 그제야 수겸은 태원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있었다.
이사님이 언제 자기를 빼놓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의아하기는 했지만, 다른 이도 아닌 유찬까지 동조하는 걸 보니 태원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뭐야, 송수겸. 너 왜 내가 말할 때는 못 믿다가 유찬이가 말하니까 바로 믿어?”
“어……. 형은 좀 그짓부렁을 할 것 같은 이미진데 유찬이는 아니거든.”
“……와, 너무하네.”
“그치만 사실인걸.”
태원의 물음에 수겸은 단 1밀리그램의 악의도 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딱히 태원이 거짓말을 잘한다고 비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원은 워낙 장난기도 많고, 툭 하면 수겸을 놀리려는 데에 비해 유찬은 진중한 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두 사람 중에서는 유찬의 말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자업자득이랄까. 아무튼 내 마음이 그렇대.”
억울한 듯한 태원에게 수겸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까지 으쓱여 보이고는 새로운 치킨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차이겸, 너는 소원꽃잎으로 디지털 싱글 내는 거 어떻게 생각해?”
“나도, 뭐 별 상관은 없어. 그 노래 좋더라.”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수겸은 이겸의 대답에 흥분하여 맞장구를 쳤다.
비록 이겸에게는 같이 눈꽃을 맞으며 소원을 빌던 기억 같은 건 없을 테지만, 수겸은 혼자만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아련해졌다.
수겸은 만일 그토록 아련한 추억을 함께 만든 당사자가 자신과 다른 의견이었다면 서운했을 것 같았다.
“그럼 이사님께는 내가 말씀드릴게.”
“아니야, 그냥 내가 할게.”
“내가 제안한 사람이니까 내가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차이겸의 말에 수겸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이겸이 말해주는 편이 훨씬 더 편하고 귀찮은 일도 덜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에 주장한 당사자가 쏙 빠지는 것은 다소 양아치스럽지 않은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누가 하나 똑같지, 뭐. 어차피 나 이사님한테 갈 일 있었어.”
“아, 그래? 그럼 뭐……. 혼자 가? 그럼 내가 같이 가줄까?”
“어?”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차이겸 때문에 수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반응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이사님이 혼자 오지 말라 그랬다며. 너 같이 갈 사람 없으면 내가 같이 가준다고.”
“태원이 형이랑 가기로 했어. 그렇지, 태원이 형?”
“어? 어어. 그랬지.”
이겸의 물음에 태원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찰나에 두 사람 사이에서 눈빛이 오갔지만, 수겸은 정신의 반이 치킨에 쏠려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누는 무언의 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았어, 그럼 나야 좋지 뭐.”
그제야 수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내가 가서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차이겸이 귀찮은 일을 대신 해주겠다는데 굳이 고집부릴 이유는 없었다.
수겸은 만족하며 치킨 한 조각을 집어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귀찮은 일을 덜었다는 생각에 안 그래도 맛있는 치킨이 한결 더 맛있게 느껴졌다.
* * *
수겸의 주장 덕분에 결국 첫 디지털 싱글 앨범의 곡은 소원꽃잎으로 낙점되었다. 당연히 실무진의 반대도 있었지만, 선욱이 발 빠르게 정리해 준 덕분에 실무진의 반대는 유피트의 귀에 들어오지조차 않았다.
덕분에 수겸은 선욱의 노력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의 의견대로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며 대단히 흡족해했다.
파트 분배를 받은 수겸은 제 파트를 한 시간째 듣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 이미 제 파트는 자다가도 부를 수 있을 정도니까 사실 열심히 들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수겸은 그저 노래 자체가 좋아서, 그리고 이런 곡을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행복할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일반 음반에 수록된 곡은 아무리 좋아도 타이틀곡이 아니고, 무대를 하지 않는 이상 일반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기는 힘든 법이었다. 수겸은 이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소원꽃잎을 디지털 싱글 앨범 곡으로 주장한 것이었다.
결국 원하던 대로 됐으니, 당연히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 집중해서 또다시 제 파트를 재생하고자 할 때였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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