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31화 (32/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31화

* * *

“후, 하. 후하후하.”

수겸은 떨리는 마음에 깊게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이나 깊게 숨을 몰아쉬는데도 도저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수겸이 반쯤 포기한 채로 노크를 하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렸다.

“뭘 앞에서 그러고 있어?”

“하, 하하.”

선욱의 말에 수겸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달리 변명할 말이 없어서 웃음으로 무마하며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

“방송 봤어. 괜찮아? 다친 곳은 없고?”

“아, 네네. 괜찮아요. 좀 놀라기는 했는데, 다친 곳은 없어요.”

수겸이 자리에 앉자마자 선욱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수겸은 그를 안심시키려 부러 명랑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안타깝게도 선욱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이사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어어, 말해.”

“저희 이번 디지털 음원이요, 다른 곡 하면 안 돼요?”

“어?”

“그…… 물론 지금 곡도 너무 좋긴 한데…… 더 좋은 곡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변명하듯 덧붙이는 말이 길어질수록 선욱의 표정은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선욱의 반응에 수겸은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곡을 바꿔달라는 것이니, 선욱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만도 했다.

하지만 수겸으로서는 꽤 진지한 요청을 한 것이었다.

이번에 준비하는 디지털 음원은 이후 나올 미니 2집 앨범의 수록곡이었다. 전생에서는 아이돌 그룹인 만큼 빠른 템포의 댄스곡인 <돌아와>를 디지털 음원으로 냈다.

타이틀 곡 역시 마찬가지로 비슷한 성격의 댄스곡이었다. 그리고 전생에서 팬들은 타이틀 곡이 다른 곡으로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었다.

물론 이 아쉬움은 비단 팬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음원 차트에서도 디지털 음원으로 냈던 곡이나 미니 2집의 타이틀 곡보다 수록곡이었던 발라드곡의 순위가 훨씬 더 높았다.

차트를 통해 음원을 먼저 들은 사람들은 무대 영상을 찾아보다가 해당 곡의 무대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아쉬워했었다.

만일 그때 수록곡이었던 그 노래로 활동을 했더라면 더 많은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어쩌면 더 빨리 유피트가 대중의 눈에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그건 왜? 그리고 아직 다른 곡은 작업 중일 텐데?”

“아…… 그게, 제가 소원꽃잎의 가이드를 들어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걸로 활동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소원꽃잎? 아, 그거. 그 노래 좋지. 근데 그 노래 발라드곡이잖아. 유피트가 활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텐데?”

“그…… 렇긴 하지만, 곡이 워낙 좋으니까요. 나중에 그 곡이 미니 2집으로 나오면 음반 판매량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수겸은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나름대로 제 주장을 굽히지 않고 해나갔다.

제목부터 달달하다는 평을 들었던 <소원꽃잎>은 미니 2집이 나오는 3월과 시기적으로도 곡 분위기가 맞물렸다.

전생의 일정대로라면 디지털 음원을 내고 2주 후에 미니 2집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소원꽃잎>으로 먼저 활동을 하다가 미니 2집을 내면 <소원꽃잎>으로 얻은 대중들의 관심을 그대로 미니 2집으로 끌어가기에도 좋을 터였다.

“음…… 좀 어려운 문제인데.”

선욱이 고민이 되는 듯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결정을 코앞에 둔 디지털 음원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 그리 쉽게 결정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비록 디지털 음원이기는 하지만, 아이돌이 발라드곡으로 컴백을 한다는 것 자체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흔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모험성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한테는 물어봤어?”

“아뇨, 아직……. 우선 이사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네…….”

수겸의 말에 선욱은 미간을 좁히고 침묵했다. 수겸의 제안을 고민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수겸은 조금이나마 선욱이 빠르게 고민을 끝낼 수 있도록 다시금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른 곡이라면 모를까, 소원꽃잎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게다가 시기적으로도 꽃이 피는 3월이랑 잘 맞지 않을까요?”

“그 곡이 그렇게 좋아?”

“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예요. 팬들도 그럴 거고, 대중들도 그렇고요.”

“제법 자신 있나 본데. 뭐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아, 그…… 뭐, 그만큼 곡이 좋으니까요. 하하…….”

선욱의 말에 수겸은 어색하게 웃으며 둘러대었다.

물론 그는 전생의 기억으로 실제 소원꽃잎에 대한 반응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수겸아.”

“그렇죠…… 아무래도. 그치만…… 이사님께서 결정해 주시면 다른 부분은 사실 다 정리할 수 있잖아요…….”

수겸이 선욱의 거절 섞인 말에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설령 실무진이 반대한다고 치더라도, 선욱이 밀고 나가면 결국은 그의 뜻대로 될 수밖에 없었다. DP엔터테인먼트 자체가 그의 회사니까. 그렇기에 마지막에 수겸을 유피트의 멤버로 넣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흠……. 알았어, 일단 긍정적으로 고민해 볼게. 하지만 그렇다고 오케이한다는 뜻은 아니야.”

“넵! 알겠습니다.”

“나는 나대로 고민할 테니까, 수겸이 너는 멤버들한테 이야기해 봐. 다른 멤버들 의견도 중요하니까.”

“네, 그럴게요.”

비록 선욱이 선을 긋기는 했지만, 수겸은 이미 그가 반 이상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겪은 바에 따르면, 그는 아예 생각이 없는 일에는 거절 의사를 밝히는 편이지, 괜한 희망 고문을 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거고, 뭐 불편하거나 하고 싶은 말은 없어?”

“음……. 없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수겸은 도리질을 쳤다. 그러자, 선욱이 느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꼭 이야기해. 혹시나 이상한 남자라도 꼬이면 그것도 바로 말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면서 앓지 말고.”

“넵! 알겠습니다.”

선욱의 말에 수겸은 쾌활하게 대꾸하기는 했지만, 내심 왜 자신에게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 이상한 남자가 꼬인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비록 대외적인 이미지는 수이자, 오른쪽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자신도 남자인데 말이다. 뭐, 솔직히 말해서 다른 멤버들처럼 체격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자라는 점만은 변치 않는 사실 아닌가.

수겸은 의아했지만 구태여 무슨 소리냐고 묻지는 않았다. 대답을 듣든, 듣지 않든 간에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뺏어서 죄송해요.”

“아냐, 우리 수겸이라면 그깟 시간쯤 얼마든지 낼 수 있지.”

“헤헤, 감사합니다.”

선욱의 다정한 말에 수겸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전생에서도 느끼기는 했지만, 선욱은 참 자신을 예뻐하는 것 같았다. 대표이사의 예쁨을 받다니, 행운이었다.

수겸은 비교적 성공적인 의견 피력을 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대표실을 나섰다.

멤버들을 찾아가면서 수겸은 보컬 연습실에 들러 소원꽃잎의 가사를 인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구태여 인쇄까지 하지 않아도 전생의 기억이 있는 수겸으로서는 이미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가사였지만, 지금의 멤버들에게는 낯선 가사일 테니 말이다.

수겸은 A4 용지에 인쇄된 가사를 찬찬히 눈으로 읽어보았다.

<소원꽃잎>

너와 나의 봄날은 꽃잎 같아

찰나에 피고 지니까

그래서 더 설렜었나 봐

네 손바닥 위에 내리는 꽃잎이 되고 싶었어

But 번번이 난 널 벗어나고 말았어

엇갈리는 계절처럼.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왔어

햇살이 내리쬐는 푸른 봄날이야

꽃바람이 불어오고

흩날리는 분홍빛 소원들이

꽃잎처럼 내려앉은 날

이번만은 네 소원꽃잎이 되고 싶어

내 소원은 오직 너니까

우리의 봄날은 꽃잎 같아

놓쳐도 또다시 돌아오니까

그래서 더 믿게 되었나 봐

네 손바닥 위에 내리는 꽃잎이 되고 싶었어

But 번번이 난 널 벗어나고 말았어

차디찬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왔어

따스한 바람이 부는 고운 봄날이야

나는 네게 뛰어들어

너는 나를 받아들어

너와 나 우리 둘 마치 기적 같아

다 이루어질 거야

다 이루어줄 거야

더 이상 소원이 아니야

이루어진 현실이 될 테니까

너만이 나의 소원이야

너만이 나의 기적이야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게 해준

푸른 봄날에 감사해

꽃망울이 속삭이는 분홍빛 봄날

설렘이 피어나고

나부끼는 사랑빛 소원들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날

이번만은 네 소원꽃잎이 되고 싶어

내 소원은 오직 너니까

“다시 봐도 가사 끝내주네, 진짜.”

수겸은 가사와 맞물려 떠오르는 전생의 아련한 기억에 희미하게 웃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