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7화
“왜, 왜 그래, 솔아?”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수겸이 토끼 눈을 뜨고 한솔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뒤에서는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으니, 그가 왜 이러는지 도저히 감도 오지 않았다.
수겸의 고민이 깊어질 즈음, 그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안 좋아하겠어?”
이어서 한솔의 대답이 돌아왔다. 차가운 밤공기를 따스하게 가르는 음성이었다.
수겸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놀랐던 마음이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다만, 업혀 있느라 한솔의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얼굴을 볼 수는 없어 아쉬웠다.
“있잖아, 솔아.”
“응. 말해.”
“우리 팀 꼴찌인 걸까?”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중요하지. 이러다가 통편집당하는 거 아닌가 몰라.”
한솔의 타박에도 수겸은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비록 진짜 귀신의 장난 때문에 큰일을 당할 뻔했지만, 그 와중에도 방송 분량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이제 어느 정도 아까의 충격이 가시고 살 만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형이 안 다친 게 제일 중요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만 쓰레기 된 것 같잖아.”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하여간, 정한솔. 말도 예쁘게 해.”
수겸은 흐뭇하게 한솔을 칭찬하며 그의 예쁜 정수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솔은 불퉁한 목소리로 하지 말라고 했지만, 펌 때문에 복슬복슬한 머리의 감촉이 좋아 자꾸만 손이 갔다.
“하지 말라고 했다.”
“그치만 자꾸 손이 가. 중독성 있어.”
“무슨 머리통에 중독성이 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기가 막힌다는 한솔의 말에 수겸은 킬킬거리면서 손을 거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만지고 싶었지만, 자신을 업어주는 것만으로 힘들 한솔을 더 이상 괴롭게 할 수는 없었다.
“오오, 저기 불빛 보인다! 나 내려줘!”
저 멀리 조명과 함께 스태프의 인영을 발견한 수겸이 폴짝 한솔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제대로 서기도 어려웠던 아까와 달리 다리의 힘도 완전히 돌아왔다. 하지만 수겸은 무전으로 귀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최대한 가여운 표정을 짓고 한솔의 옆에 찰싹 붙었다.
수겸이 왜 저러는지 영문을 모르는 한솔은, 방금 전까지 괜찮았던 수겸이 한순간에 태세를 뒤바꾸었음에도 그가 아직도 무서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어어, 두 사람 왔다!”
“수겸 씨, 한솔 씨 괜찮아요?”
“왜 무전에 대답을 안 해요?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요.”
때마침 스태프들 역시 두 사람을 발견했다. 막내 PD를 비롯한 작가며 메인 PD까지 달려 나왔다.
“수겸 씨, 무슨 일 있어요? 상태가 영 말이 아닌데?”
수겸의 연기가 먹혔는지 메인 작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겸을 살펴보았다. 수겸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도리질을 쳤다.
“저 죽을 뻔했어요!”
“네?”
수겸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놀란 메인 작가가 되물었다. 그러나 수겸이 뒷말을 잇기도 전에, 태원과 이겸, 유찬이 달려왔다.
“뭐? 수겸아, 무슨 일이야?”
“야, 송수겸! 너 괜찮아?”
“형, 괜찮은 거예요? 왜 그래요?”
멤버들의 걱정에 수겸은 한층 더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눈썹은 팔자로 축 늘어뜨리고, 울음을 터뜨릴 듯 눈가는 촉촉해졌다. 입술을 파르르 떠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갈림길이 나와서 무전을 했더니 어떤 여성분이 왼쪽으로 가라는 거예요.”
“갈림길…… 아니, 잠깐 왼쪽이요?”
메인 작가는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이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자 수겸은 여전히 그렁그렁 물기가 맺힌 눈을 한 채로 붕붕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왼쪽이요…….”
“그럴 리가요! 거긴 우리가 짜둔 코스가 아닌데!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우리는 애초에 수겸 씨 무전을 들은 게 없어요. 오히려 하도 잠잠하길래 잘 가고 있는지 몇 번이나 물어봤다고요.”
왼쪽으로 가라는 말이 귀신의 장난이었다는 건 이미 아는 바였다. 그 순간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메인 작가를 통해 자세한 내막을 들으니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상상해 보니 진짜 무서운 일이었다. 한쪽에서는 무전을 보냈고 답까지 들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니.
“정말이에요. 왼쪽으로 가라고 해서 왼쪽으로 갔어요…….”
“세상에! 괜찮았어요? 거기는 그냥 산길일 텐데, 캄캄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 길을 어떻게 갔어요?”
“낭떠러지였어요…….”
“네?!”
“뭐?”
수겸의 말에 메인 작가는 물론, 뒤에 있던 다른 멤버들마저도 기겁하며 되물었다.
수겸은 다시 생각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오싹한 기분이라, 제 팔을 손으로 몇 번이나 쓸었다.
“맞아요. 낭떠러지였어요. 저는 무전을 못 들었는데, 형이 왼쪽으로 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왼쪽에 있는 산길로 들어가더라고요. 한참을 걷는데 절벽이 나왔어요. 떨어지기 직전에 제가 잡았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요.”
잠자코 있던 한솔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수겸에 비해 비교적 차분한 한솔의 말에 메인 작가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멤버들 역시 충격에 빠진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이어지는 수겸의 말에 메인 작가의 낯이 희게 질렸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 역시 조용히 수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겨우 낭떠러지를 피해서 되돌아오는데, 갑자기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무슨 소리요?”
“맞아, 그랬다며. 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던 거야?”
메인 작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한솔 역시 궁금한지 대답을 채근했다.
수겸은 돌아오는 길에 들은 귀신 목소리를 한솔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 그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만 했다.
사건이 있던 자리 근처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찜찜하기도 했고,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할 내용이니 한 번에 하는 편이 그나마 덜 무서울 것 같아서였다.
“‘왜 돌아와? 더 갔어야지. 아깝다.’ 이런 소리가 수십 번은 반복됐어요.”
“세, 세상에!”
“꺄아악.”
“으아, 소름 끼쳐!”
“진짜요? 진짜 그랬어요?”
“미쳤다, 무슨 일이야.”
“나 소름 돋았어.”
수겸의 말에 곳곳에서 비명 섞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갔더라면 죽었을 게 분명했다. 귀신은 이를 알고 더 갔어야 했다며, 아까워했다. 수겸을 길동무로 삼으려던 게 틀림없었다.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밀려드는 공포심과 오싹함에 한동안 굳은 듯 서 있었다.
“잘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유찬이 수겸의 손을 잡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찬이 먼저 제 손을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수겸은 적잖이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기댔다. 그러자, 유찬은 수겸을 품에 안고 토닥거려 주었다.
“나 너무 무서웠어, 유찬아.”
진심이기도 했지만, 카메라를 의식한 발언이기도 했다.
이 부분이 실제로 방송에 나갈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공포라는 면에 있어서는 이슈를 끌 수 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자칫하면 출연진이 크게 다칠 수도 있던 일이기도 했다. 잘못하면 스태프 없이 출연진만 담력 테스트에 보낸 제작진이 원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방송 여부는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공포를 소재로 한 방송에는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딴지를 거는 이들이 존재했다. 방송에 이 장면을 그대로 냈다가는 다 짜인 대본이라며 비난을 할 사람도 있을 터였다.
수겸의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가급적이면 제작진이 자신들에게 올 화살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길 바랐다. 방송만 탄다면 분명 대박이 터질 수 있는 사건이었으니까.
물론 이걸 대본이라며 비난하는 반응을 본다면 억울하기는 엄청나게 억울할 테지만.
“이게 방송에 나갈 수 있을까요?”
수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작진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제작진에서는 누구 하나 섣불리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들 역시 해당 장면이 방송에 나가면 돌아오게 될 여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수겸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좋은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깊은 생각에 잠겼던 수겸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그…… 혹시 방송에 내기 어렵다면, 너튜브 클립 영상 같은 걸로 내면 안 될까요……?”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요.”
작가 중 한 명이 수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 말을 신호탄으로 제작진끼리 자연스럽게 뭉쳐 회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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