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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22화 (23/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2화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수겸은 정적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룸 안이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몇 초간 흘렀다.

“야! 송수겸, 나는? 나는 왜 없는데? 나는 안 좋아해? 나만 따로 살아? 너무하네!”

얼큰하게 취한 민성이 서운한 듯 언성을 높였다.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침묵은 아마 한동안 더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업, 그렇네. 민성이 형을 빼먹었네. 맞아, 나 민성이 형도 좋아해. 그리고 재현이 형도 좋아하고, 민기 형도 좋아하고…… 송하 누나도 좋아하고…… 아이 참, 난 왜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거야.”

다른 매니저 형들을 비롯해 스타일리스트 누나까지 모조리 언급한 수겸이 스스로를 한탄했다.

여전히 공간 안에는 묘한 기류가 감돌았지만 수겸과 민성, 단 두 사람만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있잖아요, 이사니임…….”

“응, 말해. 수겸아.”

“저희 연애 금지는 언제 풀려요?”

난데없는 연애 타령에 룸 안에 있는 시선이 다시금 모조리 수겸에게로 쏠렸다.

일동의 놀란 듯한 눈빛에도 취한 수겸은 아랑곳하지 않고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선욱을 응시할 뿐이었다.

“수겸이, 연애는 갑자기 왜? 연애가 하고 싶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눈이 가는 사람?”

선욱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어딘지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아니이, 그런 건 아닌데…… 뭔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그런 거 있잖아요…….”

취한 와중에도 선욱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느낀 수겸이 변명하듯 웅얼웅얼 대꾸했다. 그러자, 선욱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왜, 말해도 돼. 좋아하는 사람 있는 거면 일단 들어보고 결정할게. 얘기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없어요, 없어.”

취해서 정신이 없는 수겸은 조금 전까지 다 좋아한다고 한탄하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없어?”

“그렇다니까요……. 생기면 이사님한테 일등으로 말할게요.”

“알았어. 꼭 그래야 해.”

“네, 꼭 그럴게요.”

“그래, 착하다.”

“맞아요, 저 착해요.”

선욱의 칭찬에 수겸은 주눅이 들었던 것도 잊고 금세 헤헤 웃었다.

그러나 웃음도 잠시였다. 수겸은 이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있잖아, 차이겸…….”

수겸이 입을 가린 채로 웅얼거리며 옆의 차이겸을 불렀다.

“왜.”

“나 토할 거 같, 웁…….”

“아 씨, 왜 이럴 때만 나를 찾고 난리야. 야, 삼켜, 삼켜!”

이겸은 다급하게 외치며 순식간에 수겸을 둘러업고 화장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장실에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 이겸이 수겸을 화장실 칸 안으로 밀어 넣기 전에 사고는 일어나고 말았다.

* * *

그날에 일 중에 수겸이 멀쩡히 기억하는 것은 차이겸의 등에 업힌 채로 토를 하고 말았다는 게 전부였다. 난생처음 마셔본 술에 제대로 꽐라가 되었으니 세부적인 대화 내용까지 기억할 리 없었다.

“……그래, 차이겸 네가 반대하는 건 이해할게. 하지만 형은 왜! 솔이 너는 왜! 유찬이 너는 또 왜!”

억울한 마음에 수겸이 태원, 한솔, 유찬 세 사람을 차례로 돌아보며 절규하듯 외쳤다.

정말 놀랍게도, 그날 수겸이 사고를 쳤지만, 선욱은 무슨 생각에선지 몇 가지 조건을 걸고 유피트의 금주령을 해제해 주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다른 멤버들은 주량이 꽤 많은 것 같으니 술을 마셔도 된다. 하지만 수겸은 안 된다. 단, 수겸이 멤버 전원의 허락을 받으면 술을 마셔도 된다는 조건이었다.

고로, 다른 멤버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수겸은 아니었다.

물론 멤버들 역시 수겸을 혼자 떼어놓고 술자리를 가지기에는 미안한지 아직까지 수겸만 빼놓고 술을 마신 적은 없었다.

“형, 사이다에 콜라 섞어줄까? 아니면 미린다?”

“장난하냐?”

“진심이야. 차라리 폭탄산을 마셔.”

한솔의 말에 수겸의 눈매가 매서워졌다가, 이내 시무룩 어깨가 처졌다.

물론 수겸도 숙취로 다음 날 내내 기어 다녔던 경험은 끔찍했다. 하지만 음료수만으로는 낼 수 없는 특유의 술맛이 그리웠다. 그런데 이렇게 멤버들이 한마음으로 반대를 하니 혼자 힘으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이다랑 미린다랑 콜라랑 다 섞어줘.”

“알았어!”

결국 반쯤 포기한 수겸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더니, 한솔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정말로 음료수 잔에 탄산을 종류별로 모조리 때려 넣어 알 수 없는 액체를 만들어내었다.

“오, 색깔이 제법 구린걸.”

“맛은 탄산 맛일 거야.”

“그래야지. 음료수가 맛마저 없으면 울어버릴 거야.”

수겸은 투덜거리면서도 한솔이 내미는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톡 쏘는 음료수가 입안은 물론 목구멍까지 자극했다.

“오…… 별로인데.”

“기분 탓이야. 기분 탓.”

한솔은 수겸의 매서운 눈길을 피하며 대꾸했다. 수겸은 소리 없이 입 모양만으로 구시렁거리다가 고기라도 열심히 먹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내려놓았던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그렇게 마시고 싶어요?”

유찬의 말에 수겸이 얼굴이 그를 향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마치 한 줄기 희망 같았다. 수겸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저는 찬성이에요.”

“야, 도유찬!”

한솔이 기겁하며 유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유찬은 어깨만 으쓱할 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한솔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었다.

“야, 너 무슨 생각으로…….”

“수겸이 형이 마시고 싶다고 하잖아요.”

“그치만…….”

“형이 좋다고 하면 저도 좋아요. 한솔이 형은 아닌가 봐요?”

“뭐?”

유찬의 말에 한솔이 되물었다. 일순간 한솔의 표정이 굳었지만, 그는 힐끔 수겸의 눈치를 살피더니 금세 굳은 표정을 풀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형이 좋다고 하면 당연히 나도…….”

“헉, 솔아. 그럼 너도 찬성인 거네?”

“아, 아니, 그게…….”

“내가 좋으면 너도 좋다며!”

수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솔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한솔은 당황스러운 듯 이마를 감싸는가 싶더니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형 좋을 대로 해.”

앗싸, 두 명 성공. 이제 두 명 남았다!

마침내 한솔의 허락까지 받아낸 수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 남은 두 명이 태원과 차이겸이라 함락시키기 어렵기는 하지만, 절반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벌써 성공한 기분이었다.

“태원이 혀엉.”

“안 돼.”

“형도 나 좋아하잖아, 아니야?”

“나한테는 그 논리 안 먹힌다.”

역시 태원은 강적이었다. 수겸이 무어라 제대로 말을 해보기도 전에 태원은 차갑게 그의 말을 차단했다.

눈마저 마주치지 않고 고기 굽는 데만 열중하는 태원을 보고 있으려니, 수겸은 없던 승부욕마저 생기는 기분이었다.

수겸은 슬쩍 태원의 팔에 제 몸을 기대었다.

“에이, 그럼 나 안 좋아해?”

“그 논리 안 먹힌대도.”

“나는 형 좋아하는데.”

“…….”

“형도 나를 좋아하면 좋겠는데.”

“와……. 송수겸 이거 언제 이렇게 여우가 됐지?”

“에이, 여우라니. 그저 진심을 말한 것뿐인데.”

태원의 반응에 수겸은 새물거리며 웃었다. 보아하니 그 역시 반 이상 넘어온 모양이었다. 수겸은 이 기세를 몰아 쐐기를 박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형 좋아하는 만큼 형도 나 좋아해 주라. 응?”

“미치겠네, 진짜.”

좋아한다는 게 결국 술 좀 마시게 해달라는 것에 불과한 대화였지만 태원은 머리를 흐트러뜨릴 만큼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형, 이런 거에 넘어가면 안 돼.”

차이겸이 흔들리는 태원의 마음을 다급하게 붙잡고자 했다.

그러나 이겸이 잡기에는 태원이 이미 수겸의 손아귀에서 잡혀 지나치리만큼 휘둘리고 난 후였다.

“그래, 뭐 좀 마신다고 죽냐? 마셔라, 마셔.”

“앗싸, 형 사랑해.”

마침내 떨어진 허락에 수겸은 태원에게 손 키스까지 날려가며 사랑 고백을 했다.

일순간 공기가 얼어붙었지만, 이미 기쁨에 젖은 수겸이 그걸 알아차릴 리 만무했다.

“야, 잠깐.”

“왜?”

“지금 술 마셔도 된다고 허락 좀 해줬다고 사랑한다고 하는 거야?”

“응, 그런데?”

기가 차다는 듯한 차이겸의 반응에 수겸은 뭐가 문제냐는 듯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 태도에 차이겸은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쉬운 사랑 아니냐?”

“내 사랑이 쉽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 왜, 너도 내 사랑이 받고 싶니?”

차갑게 투덜거리던 수겸은 도중에 차이겸의 허락도 받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재빠르게 태세 전환을 했다. 처음엔 퉁명스럽더니 중간부터는 마치 그를 유혹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목소리를 나긋나긋하게 하고는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기까지 했다.

“…….”

당황한 듯 차이겸이 눈을 피하는 것을 본 수겸은 이대로 밀고 나가면 되겠구나 싶어 자신감을 찾았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수겸이 차이겸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맞구나? 차이겸, 너도 내 사랑이 고프구나? 짜아식, 말을 하지. 야, 기분이다. 우리는 공식이니까 너는 특별히 손 키스가 아니라 진짜 키스까지 해줄게. 어때,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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