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1화
“민성아, 술 좀 시켜. 종류별로.”
“예, 알겠습니다.”
선욱의 말에 민성은 재빠르게 벨을 눌러 술을 시켰다. 한우를 판매하는 고급 소고깃집인 만큼 갖춘 술도 다양해서, 꽤 고급주도 있었다.
“와아, 처음 보는 술들이다.”
아무리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고 한들, 여기저기 광고뿐만 아니라 지나다니면서 맥주, 소주는 지겹게 보았다. 음식점에 널린 게 술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런 술을 시킬 줄 알았는데, 직원이 가져다준 것은 수겸이 난생처음 보는 술들이었다.
병의 디자인부터가 고급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잔마다 동그란 얼음과 레몬이 띄워진 술도 있었다.
“처음 마시는 술인데 좋은 거 먹여줘야지.”
선욱은 싱긋 웃더니, 동그란 얼음이 담겨 있는 술잔을 내밀었다. 수겸은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얼른 잔을 받아 들었다. 그를 따라 멤버들도 하나씩 제 몫의 술잔을 들었다.
“이건 이름이 뭐예요?”
“하이볼. 음료수 같은 거야.”
선욱의 설명에 수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말간 눈으로 선욱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린 선욱이 입술을 길게 늘였다.
곧 선욱이 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비록 술을 마셔본 전적은 없지만 어디서 본 것은 있는 멤버들이 선욱을 따라 잔을 들었다.
선욱과 미성년자인 유찬을 제외한 유피트 멤버 4명, 그리고 민성의 몫까지 여섯 개의 잔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흔한 건배사조차 없는 담백한 건배가 끝나자마자 선욱은 입을 열었다.
“마셔. 그렇다고 너무 빨리 마시지는 말고. 주량도 모르는데 취할라.”
“넵!”
“네, 알겠습니다.”
“그럴게요.”
“네!”
선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유찬은 잠잠한 눈빛으로 그들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모두 처음 마시는 것이기에 제각기 들고 있는 술잔을 조심스레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수겸만 빼고 말이다.
난생처음 술을 마시는 수겸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다 처음 술을 먹는 초심자의 근거 없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곁들여진 상태였다. ‘안 마셔봤지만, 나는 주량이 셀 거야’라는 자신감 말이다.
그렇기에 수겸은 선욱의 경고도 무시하고, 겨우 한두 모금을 홀짝거리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꼴깍꼴깍 잔의 반을 비웠다.
“취할 텐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진짜 음료수 같아요. 술맛 하나도 안 나고.”
“그래?”
“네. 와, 진짜 맛있다. 그치, 태원이 형!”
“그러게. 맛있다. 진짜 음료수 같아.”
수겸은 술맛에 감탄하며 옆에 있는 태원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동의를 구해냈다.
태원은 순식간에 반쯤 비워진 수겸의 잔을 발견하고는 그의 얼굴과 술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천천히 마셔. 주량도 모르잖아, 너.”
“에이, 아무리 모른다지만 이건 완전 음료수잖아. 설마 이거에 취하겠어?”
“응, 왠지 너라면 그럴 것 같아.”
“아, 아니거든!”
태원의 말에 수겸은 근거 없이 높기만 한 자신감에 손상을 입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일부러 보란 듯이 남은 술을 순식간에 비웠다.
“캬, 이거 봐. 멀쩡하잖아.”
“불길한데…….”
지켜보던 한솔일 말을 보탰다.
“뭐? 뭐가 불길해?”
한솔의 말에 수겸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자, 한솔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아냐, 그냥 혼잣말이야.”
“참 나. 됐고, 이사님! 저 한 잔 더 마셔도 되죠?”
“마음껏 마셔. 취하면 길바닥에 버리고 갈 거니까 조심하고.”
“에이, 안 그런다니까요.”
선욱의 경고에도 수겸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멤버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수겸은 정말 멀쩡했다.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았다.
기분이 아주 조금 더 좋아진 것 같기는 했지만, 취기 때문은 아닐 터였다. 그저 처음 술을 마신다는 설렘과 기쁨 때문일 것이다.
수겸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다른 술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복분자에 사이다 섞어 줄까?”
“에이, 원액으로 마셔야죠. 사이다 섞으면 그게 술이에요?”
“흠……. 그래, 그럼.”
자신감 어린 수겸의 말에 선욱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기왕 허락한 거 어정쩡하게 제약을 걸고 싶지 않아서였다. 의외로 수겸이 술이 세서 주량이 많을 수도 있는 거고, 저렇게 좋아하는데 굳이 말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수겸이 취한다고 한들, 뭐 얼마나 주사를 부리겠느냔 말이다.
선욱은 가볍게 생각하며 복분자주를 따라 수겸에게 내밀었다. 수겸은 기꺼이 복분자주를 받아들더니 홀짝홀짝 금세 잔을 비웠다.
그렇게 마시고, 채우고, 새로운 술을 주문하고. 유피트의 첫 음주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형, 괜찮아요?”
유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수겸을 바라보았다.
수겸이 점점 방싯방싯 웃는 빈도가 늘어난다 싶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 역시 조금씩 언성이 높아지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아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일순간 수겸이 잘 먹던 술을 팽개치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야야, 송수겸. 괜찮냐?”
차이겸 역시 갑작스러운 수겸의 행동에 마시던 잔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주변이 그러는 동안에도 막상 당사자인 수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어깨를 들썩거렸다.
“뭐야, 너 울어……?”
이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겸은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른 어깨를 잘게 떨고 있었다.
“수겸아, 수겸아?”
선욱마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수겸을 불렀다. 냅다 울어버리는 주사를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수겸이 그런 과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마시게 두지 않았을 거라고 자책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수겸의 어깨가 점점 더 크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형, 혀엉. 괜찮아? 혀엉.”
한솔 역시 부어라 마셔라 해댄 터라 취기가 돌아서인지 처음보다 발음이 꽤 뭉개지기는 했다. 그러나 수겸이 울고 있다는 걸 모를 만큼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한솔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수겸을 바라보았다.
“흐…….”
“수겸아, 겸아, 왜 그래?”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에 수겸의 옆에 앉은 태겸이 그의 마른 어깨를 토닥거렸다.
싸늘한 정적이 룸 안을 가득 채웠다.
민성이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순간,
“흐,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수겸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내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눈물이 슬퍼서 흘린 게 아니라는 것쯤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기분 진짜 좋다, 와. 최고다, 이거!”
숨이 넘어가라 웃던 수겸이 박수까지 치며 외쳤다.
선욱은 그가 우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모두가 걱정하는 동안에 내내 웃고 있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져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겸아, 뭐가 그렇게 좋아?”
“그냥요, 다 좋아요. 이사님이랑 이렇게 술 마시는 것도 좋고…… 이사님이랑 고기 먹는 것도 좋고…… 또…… 이사님이랑 술 마시는 것도 좋고…… 이사님이랑 고기 먹는 것도 좋고…… 아, 이 말은 아까 했나? 그럼 이사님이랑 술 마시는 것도 좋고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헤실헤실 웃는 수겸 탓에 선욱은 벌어지는 입매를 손등으로 가렸다.
“수겸아, 나랑 술 마시고 고기 먹는 게 그렇게 좋아?”
“네! 완전 좋아요. 대박, 진짜, 최고, 짱.”
수겸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로 붕붕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욱은 그런 수겸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겸아. 나랑 술 마시는 것도 좋고 나랑 고기 먹는 것도 좋으면 내가 좋은 거네?”
“헉,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럼, 그렇게 되지.”
선욱의 말에 수겸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발개진 얼굴 탓에 그가 놀란 토끼처럼 보일 정도였다. 선욱은 큭큭 웃음을 터뜨리며 수겸이 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아, 그렇구나……. 그런가 봐요, 그럼. 나 이사님 좋아했네, 그랬네.”
깊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수겸이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반응에 선욱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멤버들은 수겸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지, 수겸이가 날 좋아하는 거지.”
선욱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맞장구를 치자, 수겸은 목이 부러져라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그런 거예요. 제가 이사님을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아하하하, 수겸아. 널 진짜 어떡하냐.”
“근데요, 이사님.”
“응, 말해.”
일순간 자못 진지해진 수겸의 눈빛에 선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취기에 눈이 반쯤 풀려 있는 탓에 그마저도 귀엽게 보일 뿐이었지만.
“저는 태원이 형도 좋아하고, 차이겸…… 쟤는 좀 재수 없는데 그래도 좋아하긴 하거든요……? 그리고 우리 솔이, 우리 솔이도 좋아하고…… 유찬이도 좋아하는데 어떡해요?”
“어……?”
“헤헤. 우리 그냥 다 같이 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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