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0화
* * *
치이이이-
먹음직스러운 소리와 함께 선홍빛 소고기가 불판에 올라갔다. 수겸은 젓가락을 들고 눈을 반짝이며 고기가 익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수겸아, 고기가 네 눈빛에 익겠다.”
“진짜 그러면 좋겠다. 레이저로 치지직.”
태원의 장난에 수겸이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수겸으로서는 진심 어린 말이었지만, 태원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제 익지 않았을까? 원래 소고기는 살짝만 익혀서 먹는 거잖아.”
“수겸아, 아무리 소고기가 살짝 익혀 먹는 거라지만 이 정도면 육회야.”
“킁…….”
수겸은 태원의 핀잔 아닌 핀잔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내내 고기를 향하고 있었다.
수겸이 워낙에 조급히 굴다 보니 태원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서 애꿎은 고기만 집게로 꾹꾹 눌렀다.
“이 정도면 타다끼는 되겠다.”
“앗싸! 땡큐!”
태원은 겉면만 겨우 익은 고기를 집어 수겸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그러자 수겸은 냉큼 집어 먹었다. 투쁠 한우라 그런지, 생고기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이제 대충 익었겠다. 알아서 집어 먹어.”
수겸이 씹는 사이 계속 고기를 뒤적거린 태원이 말했다. 그러나 알아서 집어 먹으라는 말과 달리 태원은 계속해서 익은 고기를 집게로 집어 수겸의 앞접시에 놔주었다.
태원이 수겸만 챙겨주는 게 다른 멤버들에게는 서운할 법도 한데, 저 모양새가 익숙한지 불평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제각기 수겸을 챙겨주느라 바빴다.
“수겸이 형, 사이다 마셔요.”
“오, 고마워. 유찬아.”
유찬은 잔에 사이다를 가득 따라 수겸에게 내밀었다. 수겸은 얼른 사이다를 받아 단숨에 반 컵을 비웠다.
“크으윽, 시원하다.”
따끔거리는 탄산에 괴로워하면서도 흡족해하는 수겸의 행동에 한솔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겸은 수겸이 좋아하는 감자샐러드를 앞에 밀어놔 주었다. 내내 고기에 집중하느라 반찬이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수겸은 감자샐러드 접시가 코앞에 들이밀어지고 나서야 샐러드를 발견했다.
“샐러드도 있었네.”
얼른 샐러드를 떠서 맛본 수겸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마요네즈에 버무린 으깬 감자 특유의 부드러움이 입안에 감돌자, 행복감에 부르르 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나는 이게 왜 이렇게 맛있지?”
“초딩 입맛이라 그래.”
“감자샐러드가 왜 초딩 입맛이야?”
수겸은 이겸의 딴지에 불만스럽게 대꾸하면서도 또다시 감자샐러드를 한 젓가락 가득 집었다.
그러는 사이 한솔은 소고기를 세 점을 넣어 쌈을 싸더니, 수겸의 입가에 가져갔다.
“형, 아~ 해.”
“쌈이 뭐 이렇게 커?”
“형을 사랑하는 만큼 싸서 그래.”
“에이, 그럼 너무 작은 거 아니야? 날 사랑하는 만큼이면 더 크게 싸줘야지.”
“아, 상추가 너무 작아서 그래. 형을 사랑하는 만큼 싸기에 상추가 못 따라가 주네.”
수겸이 눈을 찡긋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한솔 역시 커다란 눈을 반으로 접고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반응에 수겸은 큭큭 웃으면서 쌈을 받아먹었다.
입안 가득 들어찬 고기 쌈 때문에 한껏 부풀어 오른 뺨으로 힘겹게 우물거리고 있던 수겸이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왜 그래요?”
“애 다드 나마 바? 아 머거?”
‘왜 다들 나만 봐? 안 먹어?’
다 뭉개지는 발음인데도 유찬은 용케 알아들었는지 옅게 웃었다.
“먹고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리 봐도 다들 고기는 뒷전이고 저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유찬이 먹고 있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수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전히 입안에 가득한 쌈을 씹는 데에 집중했다.
“잘 먹네, 우리 수겸이.”
태원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어 줄 기세로 손을 뻗어오기에 수겸은 자그마한 머리통을 날렵하게 피했다.
“머리 눌려!”
겨우 쌈 하나를 삼킨 수겸이 앙칼지게 말했다. 그러나 태원은 허허 웃으면서도 기어코 수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머리 눌린다니까!”
“괜찮아, 내 머리 아니니까.”
“뭐가 어째?!”
수겸의 동그란 눈이 뾰족하게 변하는 걸 본 태원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수록 수겸의 눈에는 더 큰 원망이 어렸지만, 여전히 태원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익은 고기를 집어 수겸의 앞에 놓아줄 뿐이었다.
“먹어, 먹어.”
“참나, 안 그래도 먹을 거거든.”
투덜거리면서도 고기만은 포기하지 않는 수겸 덕분에 태원의 광대는 내려갈 줄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겸은 씩씩거리며 고기를 집어 먹었다.
“열받으니까 술을 먹을 테야.”
“말도 안 되는 핑계 잘 들었습니다.”
태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수겸의 말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태원에게 말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은 수겸은 목표물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겸과 한솔, 유찬을 차례로 바라보던 수겸은 이겸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나마 태원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차이겸인 것 같았으니까.
“이겸아, 나…….”
“사이다나 마셔.”
“아, 왜!”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잘린 수겸이 억울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나, 차이겸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수겸은 도움을 구하기 위해 한솔과 유찬을 돌아보았으나, 두 사람마저 슬그머니 수겸의 눈빛을 피했다.
“왜, 왜 그러는데! 나 성인이야. 술 좀 마시자고!”
수겸은 졸지에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억울함이 밀려들었다.
성인이 된 지도 무려 2년이나 지났다.
지금이 무슨 활동 기간도 아니고,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 긴 했지만, 어? 추태도 부리긴…… 했지만 어?!
그래도 뉴스 사회 면에 나올 짓은 하지 않았는데!
“형, 진짜…… 술은 안 돼…….”
“왜 안 돼, 왜?”
“왜긴……. 알잖아…….”
언제나 수겸의 말이면 다 들어주던 한솔마저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에 수겸은 씩씩거리면서도 제 편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겸은 반쯤 남은 사이다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그러니까, 회귀하기 전에 수겸은 딱 한 번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사실 수겸으로서는 당시의 일이 반 토막밖에 기억나지 않았지만, 멤버들이 학을 떼더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 * *
3개월 전, 선욱의 생일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울 이사님~ 생일 축하합니다~! 와아아아!”
수겸은 아이들 율동처럼 양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선욱은 그 모습에 웃음을 참기 힘든지 시원스레 웃었다.
“이사님, 모자 쓰세요. 모자.”
한솔이 씩 웃으며 동그란 폼폼이가 가득 달린 무지갯빛 고깔모자를 내밀었다. 수겸의 재롱에 환하게 웃던 선욱은 모자를 보더니 언제 웃었냐는 듯 미간을 좁히며 곤란해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제가 골랐어요!”
“귀엽네. 딱 수겸이 너 같은 거 골랐다.”
수겸의 말에 선욱이 ‘너무하지 않아?’라고 하려던 말을 빠르게 바꾸었다.
물론 주체를 수겸으로 바꾸어도 여전히 너무한 센스이기는 했지만, 수겸이 이 모자를 고르고 있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번진 탓이었다.
“이사님, 모자 써주세요, 네?”
“그래, 알았다.”
심지어 수겸이 동그란 눈을 빛내며 부탁까지 하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뭐, 딱히 그 말을 한 상대가 수겸이라서가 아니라…… 아니, 사실 수겸이라서는 맞았다. 다른 사람의 부탁이었다면 절대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선욱은 왁스를 발라 깔끔하게 넘긴 포마드 헤어 위로 휘황찬란한 고깔모자를 썼다. 기묘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만 멤버들은 고개를 돌려 제각기 웃음을 참느라 바빴다. 수겸만 빼고.
“아하하하하, 대박!”
자기가 고른 모자를, 자기가 쓰라고 해놓고서 웃음을 참을 성의조차 없는 수겸이었다. 뻔뻔한 수겸의 행동이 얄미울 법도 한데 선욱은 그를 따라 미소 지을 뿐이었다.
“왜, 어울려?”
“하하하하, 네, 대박이에요. 역시 얼굴이 다야. 이사님이니까 이만큼 소화하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웃기기만 했을걸요.”
“수겸아, 이미 충분히 웃고 있는데?”
“에이, 저는 이사님이 좋아서 웃는 거고요.”
“정말? 정말 내가 좋아?”
수겸의 웃음기 어린 대꾸에 선욱이 한 번 더 되물었다.
“아, 뭐 그런 걸 물어보세요. 그렇게 당연한 걸!”
수겸은 한층 진지해진 선욱의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선욱은 그런 수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어, 왜 그렇게 보세요?”
“그냥, 내가 우리 수겸이 얼굴 좀 볼 수 있지.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할 말이 없는지 수겸은 뒷말을 흐렸다. 그러다가 이내 반짝 하고 커다란 눈을 빛내고는 한껏 기대감에 차서 선욱을 바라보았다.
“이사님, 이사님.”
“응, 말해.”
“오늘 좋은 날인데 금주령 좀 해제해주시면 안 될까요?”
구체적으로 언제까지라는 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선욱은 막 데뷔한 유피트에게 금주령을 걸어두었다. 연예인이 술을 먹고 사고를 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보니 내려진 조건이었다.
특수한 상황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연예인이 술을 마셔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이 선욱의 지론이었다.
그 때문에 미성년자 시절부터 선욱의 밑에서 데뷔를 준비했던 수겸은 술을 한 입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선욱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수겸이 얼마나 술을 마셔보고 싶을지 이해가 가기는 했다.
“네……? 이사님,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애절한 부탁에 선욱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유피트가 성인인 이상 영원히 금주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데뷔 연차가 쌓여도 머리가 커져서는 제멋대로 굴려고 할 테니까.
선욱이 알기로는 수겸은 아직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처음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짧은 고민을 마친 선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수겸이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뭐. 한 번쯤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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