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5화
셀카를 올리고 공식 팬카페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태원이 들어왔다.
태원은 방에 들어오다 말고 멈춰 서서 수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난기가 가득한 눈빛을 알아차린 수겸이 안 그래도 좁은 어깨를 움츠리며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왜 그래?”
“수겸아.”
“응, 왜?”
“볼 좀 꼬집어봐도 돼?”
“아, 되겠어?!”
태원의 진지한 물음에 수겸이 미간을 좁히며 성을 내었다. 그러나 태원은 이미 눈이 반쯤 돌아간 듯 수겸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당장에라도 볼을 모짜렐라 치즈처럼 쭉쭉 잡아 늘릴 기세로.
“하지 마, 하지 마!”
“그럼 안 꼬집고 찔러만 볼게.”
“싫어, 하지 말라 그랬어……!”
쿡쿡, 태원의 굵은 검지가 수겸의 볼을 찔렀다. 원래라면 보조개가 파여 있어야 할 위치였지만, 하도 탱탱 부어 있어서 보조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살살 찔러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제 얼굴을 장난감처럼 찔러대는 게 즐거울 리는 없었다.
수겸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태원을 올려다보는데, 태원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순수하게 즐거운 표정이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수겸아, 너 엑스레이 찍으면서 다른 사랑니도 봤어?”
“응. 봤지. 망했어, 남은 세 개도 다 누워 있대. 언제 또 발치해야 할지 몰라. 시한폭탄이야, 완전.”
“저런…….”
“……그런데 왜 형 표정은 즐거워 보이지?”
“기분 탓이야. 얼마나 애도하고 있는데.”
수겸은 태원의 표정을 찬찬히 다시 한번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 잘게 경련이 이는 입가는 번지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 떨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뽈록 솟은 광대는 숨길 수 없었다.
“아, 진짜!”
아파 죽겠는데 웃어대는 게 얄미워서 수겸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러나 진짜 태원을 때리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숱한 경험에 근거하여 알게 된 사실인데, 어차피 자신이 때려봤자 태원은 별로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그래서 수겸은 방법을 바꾸었다.
꽉 쥔 주먹을 풀고, 대신 열 손가락으로 태원의 옆구리를 간지럽히기로 했다.
“아악, 하지 마, 송수겸, 으하하하, 악, 송수겸!”
제아무리 태원이 근육 덩어리 인간이라고 해도 간지러움까지 참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수겸의 생각대로 태원은 괴로워하며 몸을 틀었다.
수겸은 작전이 성공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워하며 더더욱 집요하게 태원을 간지럽혔다.
“아하하학, 하지 마, 송수겸, 하지 말라고 했어, 경고했어, 으하하학!”
“경고하면 뭐 어쩔 건데!”
태원의 말에 수겸은 호기롭게 외쳤다. 어차피 주도권은 자신이 잡고 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태원은 순식간에 수겸의 양팔을 한 손에 잡아 제압한 뒤에, 자신의 어깨 위로 둘러메었다.
“어, 어, 내려줘!”
“형한테 덤비면 혼나는 거야, 수겸아.”
놀란 수겸이 버둥거리자, 태원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한순간에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힘으로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치사해! 체급 차이 몰라?”
“그러게 경고할 때 들었어야지. 왜 말을 안 들어?”
“아, 경고도 두 번은 해줘야지! 옐로우 카드도 두 장은 받아야 퇴장인데, 한 번 만에 이러는 거 너무 야박하다!”
수겸은 태원의 어깨에 둘러메진 상태로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다. 태원은 그런 수겸의 반응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수겸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앞으로 말 잘 듣는다고 해.”
“진짜 세상 치사하다.”
“싫어?”
“으아아아악, 알았어! 할게!”
태원은 수겸을 둘러멘 상태로 빙빙 돌았다.
태원이 자신을 떨어뜨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겸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태원의 옷을 꼭 그러쥐었다.
억울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의 반항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인정한 수겸이 빠르게 꼬리를 내렸다.
“앞으로 형 말 잘 들을게! 잘 듣는다고! 이제 내려줘! 나 피 쏠려!”
완전한 항복 선언을 듣고 나서야 태원은 수겸을 제 침대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수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반항을 시도했다. 드러난 태원의 목덜미를 냅다 물어버렸다.
“아악! 송수겸!”
“아아악, 내 강냉이!”
물린 태원은 태원대로 아파했고, 발치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이를 쓴 수겸은 수겸대로 아파했다. 승자 없는 싸움이었다.
태원은 제 뺨을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내는 수겸을 침대에 내버려 둔 채 벽에 걸린 거울 앞에 다가가 물린 곳을 살폈다. 목덜미에는 잇자국이 선명했다.
“와, 송수겸. 잇자국 봐라. 이게 사람이냐? 어? 네가 사람이야?”
“사람이니까 그 정도지, 내가 동물이었어 봐. 형 벌써 저 세상이야.”
“넌 진짜…… 내가 너와 달리 지각 있는 사람이라 봐주는 줄 알아. 어휴, 송수겸. 징글징글해.”
태원은 물린 곳을 쓸며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지각이라는 게 있는 성인 남자가 사람을 냅다 깨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상상도 못한 기행에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우리 팬들은 네 얼굴에 속고 있는 거야.”
“내가 뭘!”
“네가 이런 애라는 걸 알아야 할 텐데.”
“그럼 팬들한테 말해라! 내가 깨물었다고! 나도 다 이야기할 거야. 형이 나 둘러메서 괴롭히다가 침대에 메다꽂았다고.”
수겸은 날름 혀를 내밀며 태원의 약을 올렸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태원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런 태원의 반응에 수겸은 자신이 승리했다는 걸 직감했다.
수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이 유치하고 영양가 없는 장난이지만, 태원과는 종종 이런 짓을 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태원은 언제나 먼저 물러섰고, 이기는 쪽은 수겸이 되었다.
“됐고 내 침대에서 나오기나 해.”
“형이 여기다 갖다 놓은 거다? 내 발로 온 게 아니라?”
“그럼 내가 다음에라도 또 널 내 침대에 갖다 놓으면 얌전히 있을 거야?”
“아, 그럼. 내 발로 온 것도 아닌데 절대 순순히는 못 비키지.”
태원은 수겸의 논리 없는 주장에 황당해서 한 말이었는데, 수겸은 덥석 그 말을 물었다. 그러자, 태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말 꼭 지켜라.”
“사나이 송수겸 절대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지.”
수겸은 태원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고양감에 젖어 그의 표정이 기묘해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호방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 * *
다음 날 아침, 수겸은 자신을 깨우려는 차이겸과 긴 실랑이 끝에 패배하여 식탁 앞에 앉았다.
차이겸이라고 매번 자는 수겸을 깨워 아침밥을 먹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나름의 어떤 기준이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수겸은 아직 그 기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쨌든 차이겸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 식탁에 앉은 수겸은 여전히 퉁퉁 부은 뺨을 부풀리며 단잠을 깨운 그를 노려보았다.
“와, 형 볼 터지겠다.”
안 그래도 부은 뺨이 더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자, 한솔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어째선지 그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차이겸을 노려보는 데에 정신이 팔린 수겸은 한솔의 웃음을 보지 못했다.
“미역국이야. 밥 말아서 먹으면 씹을 만할 거야.”
차이겸은 푹 끓인 미역국과 약간은 진밥을 내어 주었다. 발치 후, 입안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수겸을 위해 최대한 자극이 가지 않는 메뉴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수겸은 미역국의 온도가 미지근하다는 걸 확인하고는 밥을 말았다.
대체 몇 시간을 끓인 건지 미역국의 미역은 씹을 것도 없어 보였다. 덕분에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미역국이 훌훌 넘어갔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미역국에 감탄하며 수겸은 행복에 겨워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맛있어?”
“어, 엄청!”
“다행이네.”
차이겸이 옅게 웃었지만, 미역국에 정신이 팔린 수겸은 그의 미소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라, 태원이 형, 목은 왜 그래요?”
“어, 그러게. 모기라도 물렸어? 근데 지금도 모기가 있나?”
유찬의 물음에 한솔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잇자국은 많이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묘하게 불긋하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태원은 전날 수겸의 기행이 떠올라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갯짓으로 수겸을 가리켰다.
“송수겸 짓이야.”
그의 말에 식탁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수겸은 갑자기 묘해진 공기를 느끼지 못하고 미역국을 한 숟가락 가득 떠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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