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1화
“야, 네가 얘기해.”
수겸은 차마 부끄러워서 자신은 말할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그건 안무 짜주신 선생님 의견이었어요.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차이겸은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수겸 역시 차이겸의 저런 성격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저희 아이디어였어요’ 같은 식의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수겸은 흐뭇해져서 이겸에게 말을 받아 이었다.
“아, 그게 저희는 진짜 몰랐거든요? 그게 그렇게 보일지는……. 그런데 그게…… 저희도 나중에 보니까, 그게 어, 그렇게? 그러니까, 아무튼 그 좀 오해를 살 만하게 보이더라고요……?”
물론 개뻥이었다. 당연히 키스하는 것처럼 보일 줄 알았다. 그렇기에 전생에서는 곧 죽어도 하기 싫다고 박박 우겨서 안무를 바꾸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라요’가 더 은근하고 현실감 있게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일부러 그렇게 대답했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키스’를 언급하는 대신 ‘그게 어, 그렇게? 그러니까, 아무튼 그 좀 오해를 살 만하게’ 이런 식으로 돌려서 표현하니 더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연출이 되었다.
이런 수겸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 댓글 반응은 더욱 난리가 났다.
[미쳐따 진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몰ㄹ랐대ㅠㅠㅠㅠㅠㅠ어떻게 그걸 몰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하긴 그러니까 수겸이지ㅠㅠㅠㅠㅠㅠ]
[안무 선생님 어느 방향에 계십니까 절 올립니다]
[안무 선생님 선구안에 이마 빡빡 칩니다..... 2탄도 기다릴께요]
[오해를 살 만하게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나 반응은 열렬했다. 수겸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진짜맛있다 님께서 유찬이에게 성인이 된 소감을 물어봐 주셨어요.”
태원의 물음에 유찬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수겸 역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유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수겸의 시선을 느꼈는지 유찬은 수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덕분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찰나였지만 말없이 시선만 오가는 상황이 낯부끄럽게 느껴졌다. 유찬의 검은 눈동자 안에 담긴 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민망해진 탓이었다.
유찬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은 제가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는 않아요.”
“아, 당연하지. 성인 된 지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한솔이 우습다는 듯 대꾸했고, 다른 멤버들은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수겸 또한 멤버들을 따라 웃었다.
멤버들의 웃음이 잦아들고 나서야 유찬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지나면 실감이 날 테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성인이 되는 게 무섭기도 했어요. 성인으로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자, 이제부터 너는 성인이야’ 이런 느낌이라서 어색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진지한 유찬의 말에 모두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들 겪어보았기에 더 공감이 가는 것일 터였다.
수겸 역시 그랬다. 성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데, 단순히 십의 자리 숫자가 일에서 이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달라진 사회의 대우와 시선이 버겁고 낯설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늘어났으니 기쁘기도 했지만, 그만큼 두렵기도 했다. 그 감정을 알기에 유찬의 말에 더더욱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어젯밤에 수겸이 형이 많이 응원해 줘서 괜찮아졌어요.”
유찬의 말에 수겸이 고리눈을 떴다. 그가 어제의 이야기를 말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그의 성격상 이 이상으로 자세하게 어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지는 않을 터였다. 수겸은 기왕 유찬이 화두를 던진 김에 슬쩍 낚시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수겸이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손부채질까지 했다. 마치 이야기해서는 안 될 어떤 일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뭐야뭔데 무슨 일이 있던건데]
[자세히 말좀해봐 얘들아 같이 알자.....]
[태원이 얼굴 오늘도 열일하네.. 울 태원이 얼굴이 열일하니까 누나는 월루해도 되겠다]
[송수겸 왜 부끄러워하는데!!!!!!!!!!]
[부끄러운 송수겸도 옳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 창에는 또 불이 났다. 다른 멤버들도 동그래진 눈으로 수겸과 유찬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수록 수겸은 뺨까지 붉혀가며 열연을 펼쳤다.
“아,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니에요, 그런 거.”
누구도 ‘그런 거’가 무엇인지 말한 적 없는데 수겸이 먼저 입에 올리자, 댓글 창은 불타올랐다.
[그런거라니 그런거라니 그런거라니!!!!1]
[그런거가 뭔데...나 진짜 돈다 수겸아 얼른 말해]
[나 지금 현기증 나]
[English plz : ) ]
[ㅡㅡ아니 한국 방송에서 한국 연옌이 한국말하는데 뭔 잉글리시 플리즈야]
[지금이라도 방송 19딱지 붙이고 다 터놓고 이야기하자...]
[나 돈다 얘듀라... 돈다고...]
수겸은 지금이 한발 물러나야 할 때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한창 가열되어 있었을 때 슬그머니 발을 빼면 궁금증이 증폭될 테니까.
“아니, 저는 어른이잖아요. 형이기도 하고……. 유찬이를 아끼는 마음에 조언이랍시고 이야기 좀 해줬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꼰대 같았어요. 아악, 다시 생각하니까 진짜 부끄럽네.”
수겸은 그렇게 말하면서 유찬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생방송으로 이 모든 장면이 중계되기를 바라면서.
“뭐야, 밤에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우리만 빼놓고. 이러기 있어?”
태원의 말에 한솔이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장난스럽게 웃어넘겼지만, 차이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 알아차린 수겸이 곧바로 차이겸의 어깨를 툭 쳤다.
“뭐야, 차이겸.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어. 너 혹시 질투해?”
“아냐, 질투는 무슨.”
“에이, 질투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거 아니야.”
원래 차이겸은 과묵하기도 하고, 인터뷰나 생방송 자리에서는 더더욱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수겸은 마치 그가 질투하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자, 댓글 창에서도 ‘흑겸이 질투하네ㅠㅠㅠ’라며 난리가 났다.
이어서 근황을 묻고 답하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예정했던 방송 종료 시간이 다가왔다.
“그럼 아쉽지만 저희는 이만 들어갈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우리 팬분들, 감기 조심하세요!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기, 약속!”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태원을 시작으로 차이겸, 한솔, 유찬까지 모두 인사를 마쳤다. 수겸은 두 손을 카메라를 향해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금방 돌아올게요! 또 만나요!”
수겸의 밝은 인사를 끝으로 방송이 끝났다.
방송이 다 종료되고 나서도 한동안 멤버들은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오류로 화면은 꺼졌는데, 자신들의 대화 내용이 송출되는 등의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민성이 방송이 완전히 종료된 것을 확인하고는 움직여도 된다고 사인을 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 역시 하나둘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친 멤버들은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수겸 역시 앞서 나가는 멤버들을 종종걸음으로 따라나섰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따라붙은 차이겸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야, 송수겸.”
“왜?”
얼른 옷을 갈아입고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인데, 차이겸에게 붙잡히니 약간 짜증이 일었다. 수겸이 불퉁하게 튀어나오려는 목소리를 애써 부드럽게 가다듬으며 물었다.
“너…….”
정작 붙잡은 차이겸은 쉽사리 운을 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멤버들은 물론 스태프까지 모두 회의실을 나서고 단둘만 남게 되었다.
“빨리 말해. 왜 불렀는데?”
참다못한 수겸이 대답을 채근했다.
한동안 입술을 달싹거리던 차이겸이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송수겸, ……너 진짜 어젯밤에 유찬이랑…… 뭐 했어?”
“에?”
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란 말인가.
수겸은 놀란 눈을 끔뻑거렸다. 커다란 눈이 깜빡거리며 숱 많은 속눈썹이 너울거렸다.
“그러니까 너…… 어젯밤에 유찬이랑 대체 뭘 한 거냐고.”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