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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9화 (10/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9화

도르륵도르륵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이상스레 조용해진 아침 식사 자리의 눈치를 살피던 수겸이 어색하게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냥 팬들이 한 말 따라 한 거야.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민망해진 수겸은 괜스레 따라진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차이겸이야 엉뚱한 소리를 들은 당사자이니 그렇다 치지만, 왜 다른 사람들까지 조용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태원과 한솔, 유찬의 눈치를 살피니 세 사람은 묘한 표정이었지만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뭔가 찜찜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굳이 캐물어 분위기를 더 요상하게 만드는 것보다 모른 척하는 게 백번 나았다.

“잘 먹겠습니다.”

“……김치랑 같이 먹어.”

아무 말도 없던 차이겸이 정갈하게 자른 김치 접시를 내밀었다. 수겸은 배추김치의 하얀 부분보다 이파리 부분을 좋아하는데, 수겸의 취향에 맞추기라도 한 듯 이파리만 가득했다. 준비된 듯한 김치의 모양새에 수겸은 흡족하게 웃었다. 얼른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떡국 위에 올려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었다.

“헉, 맛있어.”

뽀얀 국물에서는 깊은 맛이 났다. 쫄깃한 떡도 국물이 잘 배었는지 간간하고 맛있었다.

무엇보다 뜨겁지 않아서 좋았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면 혀가 아파서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먹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음식 고유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수겸은 만족스럽게 떡국을 오물거리며 먹었다.

가장 나중에 일어난 수겸이 떡국을 먹는 사이에 이미 다른 멤버들은 다 먹고 그릇을 비웠지만, 누구 하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근데 수겸이 너는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엥, 지금 열한 시 아니…… 네.”

“이겸이한테 또 속았나 보군.”

태원의 물음에 여상하게 대꾸하던 수겸은 부엌에 달린 시계가 여덟 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말꼬리를 흐렸다.

원망 섞인 눈으로 차이겸을 노려보는데, 정작 차이겸은 어깨만 으쓱거릴 뿐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수겸이 씩씩거리며 떡국을 떠먹는 걸 본 태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수겸이 귀여워 죽겠네.”

“놀리지 마.”

“놀리는 거 아닌데? 진심이야.”

태원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수겸은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태원을 추궁하는 것은 뒤로 미뤘다. 지금은 태원보다 먼저 상대해야 할 놈이 따로 있었다.

수겸의 매서운 눈매가 차이겸에게로 옮겨 갔다.

“왜 이렇게 일찍 깨운 거야?”

“새해 첫날인데 떡국은 아침에 먹어야지.”

“열두 시 전까지는 다 아침이거든? 열한 시도 충분히 아침이라고!”

아침잠이 많은 수겸은 오전 스케줄도 없는 날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이 못내 억울했다.

물론 숙소에서 대부분의 요리를 담당하는 차이겸이 밥을 주는 시간에 맞춰야 하는 게 기본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먹는 것을 좋아하는 수겸이라도 아침만큼은 잠이 먼저였다. 그러니 평소에도 아침밥을 먹기보다 잠을 택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잘만 먹는구만.”

“억울해서 그런다! 못 잔 내 아침잠이 아깝고 억울해서! 억울해서라도 두 그릇 먹을 거야! 한 그릇 더 떠놔!”

이거 먹는 동안 식혀야 하니까!

수겸은 뒷말을 하는 대신 전투적으로 숟가락질을 하며 떡국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 * *

공식 팬카페와 보도자료에 쓸 한복 화보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수겸은 군말 없이 제 몫의 분홍색 한복을 입었다. 전생이었다면 머리도 분홍색인데 옷마저 분홍색이면 너무 별로지 않겠느냐며 핑계를 대면서 싫다고 했을 테지만, 이번 생에서는 코디를 담당하는 송하 누나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제 한복을 골랐다.

하얀색 저고리에 코랄빛이 섞인 분홍색에 가운데에는 꽃 장식까지 있는 배자를 입었다. 바지는 연한 민트색이었다.

거울 속 제 모습을 본 수겸이 눈을 돌려 다른 멤버들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하얀 저고리는 모두 공통이었지만, 배자와 바지 색은 각기 달랐다.

태원은 검정색 배자에 회색 바지를 입었다. 차이겸은 남색 배자에 노란색 바지였고, 한솔은 옥색 배자에 남색 바지였다. 마지막으로 유찬은 상아색 바탕에 하늘색 포인트가 들어간 배자와 짙은 파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수겸 혼자만 눈에 띄는 파스텔톤의 컬러였지만, 어차피 수겸의 위치는 가운데 자리기 때문에 특별히 튀는 느낌이 들지는 않을 터였다.

화보 등 중요한 자리에서 수겸은 언제나 가운데였는데, 소속사 이사님의 지시 사항이었다. 키와 비주얼적 측면에서 봤을 때 수겸이 가운데 있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했다.

“수겸이는 진짜 옷 입힐 맛이 난다니까.”

스타일리스트 송하는 수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지 박수까지 쳤다.

제 눈에는 특별히 나은 것을 모르겠는데, 상대가 좋다고 하니 수겸은 부끄러운 척 웃었다.

“쟤네들은 이런 화사한 톤이 잘 안 어울려. 뭐, 유찬이는 애가 하얘서 잘 받는 편이기는 한데 워낙 덩치가 크니까 아기자기한 맛은 없단 말이야.”

절레절레 고개까지 저어가며 아쉬움을 표하는 송하의 말에 수겸은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맞장구를 치기도,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애매한 탓이었다.

“근데 오늘따라 우리 수겸이가 쪼끄만 것 같은데 요정이라 그런가?”

수겸에게 송하의 주접은 익숙한 일이었다. 그녀는 유찬과 수겸을 대상으로 팬들이 할 만한 주접을 아무렇지 않게 떨었다. 그렇기에 주접 자체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문제였다. 오늘따라 키가 작아 보이는 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씁쓸한 이유가 있었다.

“……갓신에 깔창이 안 들어가요.”

“아.”

송하는 충격을 받은 듯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반응에 수겸은 쓰게 웃었다.

갓신 자체에 나름 굽이 있기는 했지만, 이제껏 신발 굽+키 높이 깔창의 효과를 누리던 것을 생각하면 평소보다 확실히 작기는 할 터였다.

음울해진 수겸은 근처에 있는 멀대처럼 큰 멤버들을 노려보았다.

“괜찮아, 어차피 절하고 앉아 있는 모습 위주로 찍는다고 했어.”

“넵.”

근본적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수겸에게 송하의 말은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대충 동의하기로 했다.

“그럼 저 먼저 촬영장에 가 있을게요.”

“알았어. 뭐 흘리거나 묻히지 말고 조심해. 알았지?”

“넵. 조심하겠습니다.”

송하의 당부에 수겸은 빠르게 대답한 후에 대기실을 나와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에 선 수겸이 한갓지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겸과 죽이 잘 맞는 태원과 한솔은 아직 준비 중이었다. 차이겸도 아까 대기실에서 봤을 때는 마무리 단계기는 했지만, 아직 촬영장에 도착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때문에 짝을 잃은 수겸은 덩그러니 촬영장에 서 있었다.

곳곳에 틀어놓은 조명 때문인지 더워서 목이 탔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지만, 촬영장에는 음료수뿐이었다. 음료를 마실까 하다가 의상까지 다 차려입은 상황에서 괜히 색깔 있는 음료를 먹다가 흘리면 큰일이 날 것이기에 물로 타협을 보았다.

수겸은 물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향해 다가갔다. 언제 대기실에서 나온 건지 수겸의 모습을 본 송하가 멀리서 ‘우리 요정님 안 날고 걸어가신다’ 하는 주접을 떨어대는 통에 민망해진 수겸의 뺨이 붉어졌다.

“아이참, 요정이 뭐야, 요정이.”

“왜요, 요정 같은데.”

구시렁거리던 수겸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낯간지러운 말을 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찬이었다.

“너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그럼요. 할 줄 알죠. 물 마시려고요?”

“응. 너도 마실래?”

확실히 유찬은 예전과는 달라졌다. 아침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수겸이 바로 옆에 와 있어도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을 터였다.

달라진 막내의 모습에 흐뭇함에 번지는 미소를 애써 감추며 아이스박스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유찬이 더 빨랐다. 유찬이 먼저 아이스박스를 열어서 물 한 병을 꺼냈다. 그러더니 아이스박스 옆에 걸려 있던 뚜껑 펀치를 이용해서 뚜껑에 빨대 구멍을 뚫었다.

잘 흘리고 덤벙거리는 편인 수겸은 의상을 차려입고 있을 때는 혹시나 액체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항상 빨대를 이용해서 음료를 마셨다.

반면에 수겸에 비해 유찬은 깔끔하고 세심한 성격인 유찬은 병째 먹어도 흘리는 일 따위는 좀처럼 없었다.

그런 그가 웬일로 빨대로 물을 마시나 싶어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유찬이 들고 있는 물을 수겸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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