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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4화 (5/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4화

가슴이 한계 이상으로 벅차오르자,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수겸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한 발씩 딛고 올라갔다.

“수겸이 형, 조심해요.”

수겸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그의 뒤에서 계단을 오르던 유찬이 수겸의 허리를 잡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막상 본인이 해놓고는 제 행동에 놀라기라도 한 듯 빠르게 손을 거두었다.

그런 유찬의 행동에 수겸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고마워, 유찬아.”

수겸은 유찬이 왜 저러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기에 그에게 더 고마웠다.

팀 내 가장 막내인 유찬은 아직 19살에 불과했다. 오늘 밤이 지나야 스무 살로 성인이 되는,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어린 유찬이 남모르게 품어왔을 고민을 알기에 수겸은 더욱 힘을 내기로 다짐했다.

이번만큼은 유피트를 지켜내겠다. 그렇게 해서 끝까지 유찬의 곁에 남고야 말겠다.

무대에 올라선 유피트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수겸과 차이겸 역시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두 사람은 종이로 만든 벽 뒤에 섰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남은 세 명의 유피트 멤버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무대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강렬한 비트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가장 먼저 무대의 가장 오른쪽에 있던 태원의 랩이 시작되었다.

-Na Na Na Na Na 나는 Not Bad

나쁘지 않아 다치지 않아 아프지 않아

누가 뭐라 해도 떠들어 봐야 신경 쓰지 않아

연말 가요대전 무대인 만큼 축제 분위기가 나도록 편곡을 해서 원곡보다 한층 빠른 템포였다.

이어서 유찬의 보컬로 노래가 이어졌다.

-오늘이 오기까지

기나긴 길을 홀로 걸어왔어

누구도 잡아주지 않는 손에

가끔은 주저앉고도 싶었어

맑은 미성의 유찬의 목소리가 반주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이제 차이겸과 수겸의 차례였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킨 건

내 안의 꿈 바로 너였던 거야

너를 위해 싸워볼게

나를 위해 버텨낼게

이 순간이 내게 준 선물 같은 너를 위해 오늘을 또 살아갈게

두 사람은 종이 벽 뒤에서 평소처럼 안무를 했다.

거울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의 안무 중 하나는 ‘선물 같은 너를 위해 오늘을 또 살아갈게’ 가사가 나오는 순간 상체를 같은 방향으로 틀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서로를 끌어안듯 팔을 벌리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다른 점은 앞에 종이 벽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종이 벽이 가리니 두 사람의 안무는 그림자로만 보였다. 게다가 평소보다 한 발자국 정도 더 가까이서 안무를 하고 있었던 게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고개를 틀자, 두 사람의 실루엣은 얼핏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순히 이곳에 있는 유피트 팬들만의 환호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관객들이 분위기를 맞춰주기 위해 예의상 반응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야외무대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진심으로 내지른 비명이었다.

수겸은 예상보다도 더 폭발적인 반응에 흡족하게 웃었다.

그에 맞춰 두 사람은 종이를 찢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 나만의 시간이야

꿈을 이루는 순간이야

무너져도, 다쳐도 나쁘지 않을

내 꿈에 나를 바칠 거야

메인 보컬인 수겸이 빨간색으로 커스튬된 마이크를 잡고 고음 구간을 안정적으로 소화해 냈다.

이어서 다시금 태원이 후렴구 랩을 이어받았다. 수겸은 그에 맞춰 멜로디를 맞아 후렴구를 풍성하게 만들었고, 리드 보컬인 차이겸이 화음을 넣어주었다.

-Na Na Na Not Bad

내 앞에 걸리는 모든 장애물도

Na Na Na Not Bad

내 꿈인 네게 달리는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게 괜찮아 So Wonderful

Na Na Na Not Bad

1절이 끝난 후에 편곡을 하며 댄스 타임이 들어갔다.

메인 댄서인 한솔이 가운데서 군무를 이끌어 나갔고, 나머지 네 명의 멤버는 그에 맞춰 춤을 췄다.

이때 수겸은 멤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눈을 찡긋하며 눈짓을 보내거나, 아니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분히 계획된 행동이었다.

약 1분간의 긴 댄스 타임 끝에 2절은 한솔의 보컬로 시작되었다.

-지금이 되기까지

끝없는 시간의 틈 속에 갇혀

힘없이 도와달라고 외쳐보며

때로는 도망치고도 싶었어

노래 중간 한솔이 주저앉는 모습을 형상화한 안무를 할 때, 원래 수겸의 안무는 그런 한솔의 뒤에서 그를 다독이는 듯한 모션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독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넘어서서 실제로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한솔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눈을 곱게 접으며 웃어 보였다. 수겸 역시 그를 따라 환하게 웃었다.

어느덧 무대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폭죽이 터지며 꽃가루가 흩날렸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떨어지던 붉은색 꽃가루가 수겸의 왼뺨에 내려앉았다.

수겸은 제 뺨에 뭐가 묻은 줄도 모르고 무대에 열중했다. 마지막 후렴부만을 남긴 상황이었다.

-내 꿈인 네게 달리는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게 행복해 So Beautiful

수겸은 후렴구를 부르며 옆에 있는 차이겸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차이겸이 수겸의 뺨에 붙은 꽃가루를 떼어주었다.

그제야 자신의 얼굴에 꽃가루가 붙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수겸이 민망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유난히 길었던 무대가 끝이 났다.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겸은 찰나의 순간,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곳곳에 <수겸이는 겸댕이라 수겸이니?>, <송수겸 사랑해>와 같은 플래카드가 보였다. 휴대폰 액정에 띄운 전광판도 보였다.

그토록 꿈꾸던 무대였다. 다시 한번 설 수 있기를 그토록 바라고 바랐다.

기적이 일어나 마냥 꿈같았던 지금을 이루어낸 수겸은, 벅찬 감정에 눈가가 촉촉이 달아올랐다. 수겸은 짧은 시간이나마 객석을 각막에 새기듯 젖은 눈으로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수겸이 형, 가요.”

“으, 응.”

수겸은 한솔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아쉬움이 남아 힐끔힐끔 계속 객석을 돌아보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렇게 한눈을 팔다 보니 수겸이 넘어질 뻔하기도 했는데, 한솔이 얼른 잡아주어서 무사할 수 있었다.

“야, 돌았다. 찢었어. 커뮤 반응 난리도 아니야.”

“진짜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매니저인 민성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수겸은 내심 기다렸던 그의 말에 눈을 반짝 빛냈다. 흥분감 때문인지 추위마저 잊은 수겸이 얼른 민성의 옆에 붙어 그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각종 아이돌 팬들이 서식하는 대형 커뮤니티였다. 듣기로는 가입 절차도 까다로운 사이트인데, 민성이 형은 용케도 가입을 해내었다.

[야 방금 무대 뭐였냐

잠깐 사이에 뭐가 너무 휘몰아쳐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분홍머리 걔 이름이 뭐라고?

일단 내 마음에 감금 좀 시켜놓을래 존나 요망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찢었다 찢었어

내 마음을 찢었다 송수겨어어어엄 유죄다 유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와쒸벌 아닐걸 알지만 그림자 바짝 붙었을 때 찐으로 키스하는 줄 알앗자나;;;;;;;

존나 더 큰 대한민국 만세다 게이득!!

└아닐걸 알긴 님이 뭘알아요 우리 애들 진짜 했어요

└아무튼 함 내가 드론 쏴서 봤음

└님 드론 촬영분 공유 좀요]

[꽃가루 떼주는거 봤냐? 뷰리풀 나오는 순간에 꽃가루를 빰

존나 뷰리풀해 진짜...]

[핑발이 어깨 토닥거리니까 금발이 ㅇ놀라서 눈 땡그랗게 뜨다가 웃는거 본 사람은 없냐

나 거기서 찐을 느꼈다... 이건 찐이야 정말이라고]

[핑발 뭔데 생긋생긋 계속 웃는데 ㅡㅡ그러면 내가 설렐 줄 아냐?

틀렸어 설레긴 뭐가 설레ㅡㅡ 얘들아 근데 저승도 와이파이 잘 터진다

└그러게..요즘 저승 좋다. 심지어 5G도 터지더라]

[꽃가루 새끼 눈치 없어

왜 수겸이 뺨에 떨어지고 지랄이야

뺨이 아니라 입술에 떨어졌어야지

└댕미님 그럼 그거 이겸이가 입술로 떼주나요?

└당연한 말 묻지 말아요]

[오늘부터 겸겸 커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겸겸 커플은 진짜기에 우리가 옆에서 부채질하면 안 돼 걔네 진짜란 말야;;;; 우리가 숨겨줘야 함

└인정함미다;; 내가 다 식은땀 낫자나 모른척해줘야함 진심]

[현장에 있었는데 마지막에 핑겸이 내려갈 때 넘어질 뻔한거 솔이가 잡아줌

└진심???

└ㅇㅇ진짜 아마 찍은 사람도 있을걸

└솔이 스윗해...

└핑겸이는 그러게 하루에 5끼씩 먹으라니까ㅠㅠㅠㅠ내 새꾸 그러케 말랐으니까 휘청거리는거자나ㅠㅠㅠㅠ누나 맘 찢어진다]

[흑겸이가 핑겸이 꽃가루 떼줄 때 핑겸이 웃는거 보신 분?

1004 에인절 선녀 조각상 또 뭐있냐 아무튼 돌았음 반박 안 받음

└핑겸이 예쁜 걸 누가 반박함? 차라리 지구가 동그랗다는 걸 반박하는 게 더 쉬움]

핑겸과 흑겸은 팬들 사이에서 머리색으로 수겸과 차이겸을 구분하여 부르는 일종의 별명이었다.

수겸은 흐뭇하게 웃었다. 예쁜 캐릭터를 받아들이니 팬들도 좋아하고 수겸 스스로도 마음이 편했다.

그 외에도 얼핏 읽은 SNS 반응이 난리도 아니었다.

다른 커뮤니티 반응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무대 영상과 짤이 돌기 시작하면 어디든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반응이 올 터였다.

계획대로 되었다. 이제 앞으로 이 흐름을 쭉 이어가기만 하면 된다.

수겸은 다음엔 또 어떤 폭탄을 던져볼까 고민하여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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