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6. 만남 (16/18)

06. 만남

“메이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리는 듯했다. 몇 번이고 그리고 그렸던 목소리였다. 메이브는 이번에도 또 허상처럼 들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벌써 몇 번인지, 옆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 들리는 저 목소리가 이제는 싫었다.

허상이라고 깨닫고 나면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으니까 말이다.

“메이브 님, 괜찮으십니까? 절…… 봐 주실 수 있습니까?”

슬픔에 잠겨 있는 것 같은 목소리에 두 눈을 감고 있던 메이브의 눈꺼풀이 움찔 떨려 왔다. 이렇게 슬픈 목소리는 처음 들어 봤다.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 주었을 뿐, 다른 목소리는 없었다. 그런데 왜…….

“메이브 님.”

뚜벅뚜벅.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허상일 텐데, 분명 허상일 것이다. 그런데 꼭, 진짜 같았다. 메이브는 눈을 뜨는 것이 무서웠다. 눈을 뜨고 나서 눈앞에 있는 것이 다비드가 아니라면 정말 너무 슬플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절 보세요.”

날카로운 쇳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을 때, 메이브는 그것이 자신의 손목과 발목을 연결하고 있는 쇠사슬이 아니라 저 앞의 창살에서 들린다는 것을 알았다.

무서워서 눈을 뜨고 싶지 않았던 메이브의 두 눈이 크게 떠지며 창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너무 힘주어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지,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미 두 눈은 눈물이 가득 채워졌는지, 몇 번이나 눈을 깜박여도 앞이 흐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비드…… 님?”

눈앞이 흐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서러웠다. 메이브는 눈을 문지르며 눈앞을 제대로 보려고 했다. 깔끔한 옷은 보이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울고 울면서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창살로 다가갔다.

“네, 메이브 님.”

언제나 그렇게 떠올리고 이명처럼 들려왔던 그 목소리였다. 메이브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창살로 걸어갔다. 그마저도 코앞에서 침대에 묶여 있는 사슬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창살 안으로 손이 들어와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쥐는 그 손의 감각이, 이 사람은 정말 허상도, 거짓도 아닌 진짜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다비드…… 다비드 님.”

이 사람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에 물이 계속 차올랐다. 문지르고 문질러도, 눈앞에 있는 다비드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투박한 손길로 눈가를 문질러 주면서도 몇 번이나 메이브를 안정시키듯, 괜찮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메이브는 결국 끅끅, 울음소리를 죽이며 울었다.

“흐…… 끕…….”

“메이브, 절 봐요.”

얼마나 못생겨 보일까, 오랜만에 만난 다비드가 이 추한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도 들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얼굴은 우느라 못생겨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너무 안정이 돼서, 이제 그가 왔다는 사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몸을 좀먹어 가던 불안감도, 공포심도 점점 사라지고 그 안에는 안도감이 서서히 차올랐다. 예쁘게 웃어 주면서 이제 왔냐고, 너무 기다리게 만든 거 아니냐고 툴툴거리며 장난이라도 치고 싶었다.

근데,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안 돼서 메이브는 소리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따듯한 두 손이 얼굴을 감싸 쥐고 살살, 눈물이 흘러내리는 눈가와 눈두덩을 문질렀다.

너무 다정한 손길에 소리를 죽이고 울던 메이브가 결국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왜……. 왜 이제…… 끕…… 왔어여…….”

억눌려진 목소리로 울면서 말하자 흐릿한 다비드가 작게 웃었다.

“너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제…… 제가…… 얼마나 흡…….”

제대로 말하고 싶었다. 울음기가 진득하게 묻어난 말투가 아니라, 장난이 뒤섞인 투로 말하고 싶었다. 근데 너무 힘들어서, 그가 왔다는 안도감에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그에게 묻는 말투 또한 원망하는 감정이 묻어나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와 주지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제대로 묻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계속 울다가 기절하겠어요. 메이브, 울지 말고 저를 봐요.”

“……흐으. 안…… 보인단 말이에요…….”

“울고 있으니까 안 보이죠. 울지 마요. 이제 괜찮으니까.”

“흡…… 아…… 안 멈춘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눈이 퉁퉁 부어 버리겠어요.”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이 이따금 멈추었다. 메이브는 눈을 들어 올려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힘주어 눈을 감았다가 뜨면 그가 제대로 보일까 싶어 그렇게 했지만, 메이브는 자신이 눈물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감았다가 떴지만, 금세 눈에 눈물이 차올라 앞이 흐려졌다. 그를 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아 서러웠다. 하지만 걱정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라서, 메이브는 울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괜찮아요. 괜찮아…… 메이브.”

울면서 웃는 메이브를 지켜보던 다비드는 자신이 더 아프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손목과 발목에 두꺼운 족쇄가 달려 있고,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침대에 묶여 있는 메이브의 모습에 다비드는 알란에 대한 화가 온몸에 피어올랐다.

하지만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서 눈물을 흘리는 메이브의 모습에 결국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얼마나 거칠게 문지르는지, 붉게 물들어 퉁퉁 부어 버린 눈두덩이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다비드는 손을 뻗어 메이브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픈 곳은 없는지, 그동안 힘들지 않았는지 찾고 찾았다. 다행히 이곳에 있으면서 배를 곯은 적은 없는지 살이 빠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비드는 그것에 안도해하며 한참을 울고 있는 메이브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너무 울다가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이제 눈물을 그치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저 몸을 끌어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저 봐요.”

눈물이 가득 차오른 눈이 오롯이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눈물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 살짝 튀어나온 입과 찌푸려진 눈썹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이 한없이 귀여워서, 다비드는 품에 안아 주지 못하는 메이브를 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날 봐, 메이브.”

욕심은 점점 커다랗게 변해 갔다. 금방 오지 못했다는 미안함보다, 눈앞에 메이브가 있는데도 만지지 못한다는 것에 상실감은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었다.

다이브는 곧 그와 함께 온 자가 알란을 데리고 올 것을 알았으나, 지금 당장 저 문을 열어 메이브를 안고 싶었다.

다비드는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칼로 자물쇠를 부수자고 생각했다.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메이브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떨어트리려 했다. 그러자 메이브가 놀란 얼굴로 불편한 두 손을 움직여 다비드의 손을 붙잡았다.

“시…… 싫어요. 가…… 가지 마요…….”

다비드가 떠날까 무서워하면서 우는 메이브의 모습에 다비드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움직여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메이브의 두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어디 안 가요. 문 열려고 하는 거니까 걱정 마요. 흐려도 제가 어디 있는지는 보이죠?”

“…….”

불안한지 손가락을 꼬물거리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메이브의 모습에 다비드는 그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메이브, 당신을 혼자 놓고 어디도 안 갈 겁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절 믿어 주겠습니까?”

메이브의 손가락이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비드의 말을 믿는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손을 떨어트렸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무서워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들어 올리지 못하는 메이브의 모습에 다비드는 그저 자유로워진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창살 안에 집어넣었던 손을 빼냈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어 문을 잠가 놓은 자물쇠 고리에 날카로운 칼날을 억지로 집어넣었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뒤틀며 고리에 걸린 칼을 비틀어 보았으나, 얼마나 단단한 쇠를 사용한 건지 가각, 쇠가 긁히는 소리만 들릴 뿐 자물쇠가 끊어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비드가 데리고 온 자가 얼마 안 있으면 이곳에 도착할 테지만, 다비드는 차라리 자신이 힘들어도 이 자물쇠를 망가트리고 저 안에서 겁에 질린 메이브를 안아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후.”

낮은 숨과 함께 다비드가 칼을 더더욱 비틀었다. 자물쇠에 흠집이 생기고, 날카로운 칼날은 이가 빠지기 시작했다. 몇 번 더 칼을 비틀어 보았으나 이러다가는 하루가 지나도 끊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다비드는 이가 빠져 이상하게 변한 칼을 칼집에 대충 쑤셔 넣었다. 그리고 선반에 놓여 있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말 모양의 장식을 들고 와 자물쇠에 내리치기 시작했다.

“읏…….”

그 소리가 메이브가 갇혀 있는 벽에 부딪히며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메이브는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여, 틈 없이 닿아 있는 손을 움직였다. 턱에 꽃받침 모양으로 손바닥을 가져간 메이브는 겨우 검지로 귀를 틀어막을 수 있었다.

소리가 조금 작아지기는 했으나, 시끄러운 소리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들릴 때면, 이곳에서 웃으며 눈을 가리고 창살을 두드리던 알란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메이브가 무서워하는 것을 본 다비드는 잠시 말 모양의 장식을 들고 자물쇠를 두드리던 행동을 멈추었다. 무서워하는 것이 뻔히 보였기에 다비드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물쇠를 망가트려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밖에서 그저 메이브를 진정시켜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다비드조차 메이브를 품에 안고 싶었다.

“메이브, 무서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비드는 다정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장장이가 칼을 만드는 소리라고 생각해 보세요.”

“…….”

“커다란 철을 큰 망치로 두드리고 있는 겁니다. 제가.”

귀를 막고 있느라, 메이브의 귓가에는 다비드의 목소리가 너무도 작게 들려왔지만,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은 메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하고 있습니까?”

“……네.”

“제가 내리칠 때마다, 그 커다란 철이 예쁘게 제련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소리가 무서운 게 아닙니다.”

다비드는 메이브를 쳐다보며 말 장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물쇠에 힘을 주어 내려쳤다. 깡, 날카로운 소리가 메이브가 갇혀 있는 안에 크게 울려 퍼졌으나, 조금 전과는 달리 메이브가 공포를 덜 느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말 장식에 점차 흠집이 생기고 망가지기 시작할 무렵, 자물쇠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준비조차 얼마나 철저한지, 한 개를 망가트려도 두 개의 자물쇠가 남아 있었다. 다비드는 목이 날아가고 몸통이 남아 있는 말 장식으로 자물쇠를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까앙, 깡.

날카로운 소리가 감옥에 울릴 때마다, 메이브는 검은색 작업복을 입고 있는 다비드가 큰 망치로 철을 두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을 두드리고 그 큰 철이 점점 모양이 잡혀 가는 모습과 열기에 땀이 흐르는 다비드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던 메이브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흔들며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렇게 흐르던 것이 멈추고 나자, 흐릿했던 세상이 또렷하게 보였다. 이마에 땀이 맺혀 볼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리는 다비드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두 눈은 자물쇠에 닿아 이상한 돌처럼 생긴 무언가로 자물쇠를 내려치는 모습을 보았다.

메이브는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귀를 막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떨어트렸다.

“다비드…… 님.”

또렷하게 보이는 다비드의 모습에 온몸은 안도감과 함께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주춤, 바닥에 주저앉는 그 순간 다비드가 마지막 남은 자물쇠를 망가트리고 굳게 닫혀 있던 창살의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

메이브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그의 다리가 굽혀지고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다비드는 두 팔을 벌려 메이브의 몸을 힘주어 끌어당겼다.

따듯한 품에 안기자마자 메이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었다. 다비드 또한 메이브가 자신의 품에 안겼다는 사실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다시는…… 제가 당신을 혼자 두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비드는 천천히 숨을 내쉬는 메이브의 몸을 힘주어 끌어당겼다. 이제야, 메이브가 자신의 품에 안겼다는 사실에 다비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알란을 무너트리기 위해 걸린 시간이 말이다. 그사이 고통스러워했을 메이브를 생각하면 다비드는 가슴 한쪽이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아팠다.

별것 아닌 행동으로 메이브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고는 다비드도, 메이브도 알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그날, 분수대에 메이브를 두고 간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 때문이었다. 주변에 그를 지키는 사람을 두었다는 말과 함께 떠난 건, 그가 다시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 도망갈지, 아니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보기 위해서였다.

만약 다비드가 미래를 보았고, 메이브를 혼자 분수대에 두고 갔을 때 그가 납치될 것을 알았다면 그는 절대로 그곳에 메이브를 두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메이브를 품에 안은 지금도, 그때를 후회했다. 다시 도망갈 거라 의심하지 말 걸 그랬었다. 의심한다고 해도 그를 데리고 갔어야 했다.

다비드는 그날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파한 메이브에게 죄스러웠다.

오직 그에게 뛰는 심장이었다.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자신의 실수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한 거였다.

다비드는 메이브의 등과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무릎에 걸리는 차가운 쇠사슬의 느낌에 다비드는 작게 이를 갈며 자신이 목을 졸라 죽여 버리고 싶은 알란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미 약속을 한 문제가 있기에 다비드는 알란을 죽일 수 없었다.

“흠, 눈물겨운 모습이군.”

낮게 울리는 짐승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다비드는 메이브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늦었군요.”

다비드는 새로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몸을 작게 떨고 있는 메이브의 등을 툭툭, 힘을 빼고 두드렸다.

“아아, 생각보다 개새끼가 꼭꼭 숨어 있더군.”

다비드의 품에서 살짝 고개를 움직인 메이브는 문 쪽에 서 있는 사람을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온몸이 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두웠다. 메이브에게는 익숙한 색이었을지도 몰랐다.

검은색 머리에 검은색 눈, 한여름의 따가운 햇볕에 온몸을 그을린 것 같은 어두운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어쩌면 사나워 보이면서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보이는 무뚝뚝한 얼굴에 메이브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던 시선을 천천히 내렸다.

검은색이 좋은 건지, 입고 있는 옷조차 심연처럼 어두웠다. 그러다 남자의 손에 붙잡혀 있는 익숙한 머리카락을 보았을 때, 메이브는 헛숨을 들이켰다.

“알……란?”

메이브의 작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을 때, 그 표정 없던 남자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남자는 알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의 손에 잡혀 있던 알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남자는 다리를 움직여 알란의 머리를 발로 짓밟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하얀색 케이스를 꺼낸 남자는 익숙하게 그것을 열어 종이로 감싼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약속한 것은 잊지 않았겠지?”

“……당연히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

남자는 틱틱, 소리 나는 부싯돌을 쳐서 들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남자가 입에 물고 있는 담배 끝이 타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매캐한 향이 방 안에 맴돌았다.

깊게 숨을 들이켰다 내뱉는 남자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가 신기루처럼 부서져 사라질 무렵, 남자는 몸을 굽혀 알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몸을 바로 세웠다.

“열쇠는 여기.”

남자는 주머니에 케이스를 집어넣으며 열쇠 꾸러미를 하나 꺼내 창살 안에 던졌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열쇠 꾸러미가 떨어졌다. 그리고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남자는 그대로 알란의 머리를 움켜쥔 채 몸을 돌려 방 밖으로 걸어갔다.

메이브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서서히 입을 벌렸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예요?”

처음 보았는데 익숙한 모습에 메이브는 의아한 얼굴로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그에 다비드는 남자가 던진 열쇠를 가져와 메이브의 손목과 발목에 채워져 있던 족쇄를 풀며 입을 열었다.

“……에보니 아더입니다.”

“……누구요?”

“당신이 납치당한 영지의 주인이 될 자 말입니다.”

다비드는 그 말을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메이브를 천천히 안아 들었다. 족쇄를 풀어낸 손목과 발목은 다치지 않게 하기라도 한 듯, 붕대로 두껍게 감겨 있었다.

그것에 혀를 낮게 찬 다비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메이브를 쳐다보며 그 진득한 감정이 묻어나는 듯한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데요?”

궁금해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메이브는 자신을 괴롭게 했던 알란을 데리고 간 그 흑곰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비드와 흑곰인 아더가 이곳에 같이 왔는지, 그가 왜 알란을 데리고 갔는지 말이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

드디어 길고 긴 이야기가 다비드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메이브가 사라진 사실을 알고 나서 다비드는 급히 그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에보니에서 벗어난 것인지, 그 증오스러운 알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비드는 그길로 메이브를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자신의 사람을 다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다비드는 메이브를 만나기 전, 제가 꿨던 그 오두막을 떠올렸다. 그 악몽과도 같은 꿈속에서, 메이브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비드는 분명, 그 안에 무슨 열쇠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 꿈속에서는 자빠져 있는 저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메이브의 모습만이 기억날 뿐이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다비드는 어느 날, 메이브가 알란에게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가듯 떠올랐다.

‘흑곰이 사냥개를 물어뜯으러 올 거예요.’

그때 메이브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알란은 분명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던 얼굴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화가 난 음성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냈었다.

‘흑곰은 지금 사냥개가 하려는 일을 막고 있어요.’

‘흑곰이 사냥개의 목을 뜯으러 올 테니, 조심하세요.’

흑곰, 그자가 열쇠였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화가 난 얼굴을 지었던 알란이었으니, 그와 겹치는 무언가가 있는 거였다.

다비드는 그길로 머리를 잠시 굴렸다. 아놀드 알란이 사냥개라 불린 이유는 그의 이름의 뜻이 사냥개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피에 미쳐 버린 사냥개. 미친개라고도 은연중에 뒤에서 그를 부르는 말이었다.

다비드는 분명 흑곰 역시 그 이름을 가진 자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다비드도 제대로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에 다비드는 더 고민하느니, 정보상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그곳에서 다비드가 원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에보니 아더.

그자가 이 상황을 쉽게 풀어 줄, 자라는 것을 말이다. 다비드는 그길로 곧장 에보니가로 향했다. 하지만 에보니 아더는 쉽게 만나기 힘들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다비드는 결국 머리를 굴렸다. 알란이 아더를 싫어하는 만큼, 아더 역시 알란을 싫어할 터였다. 그것을 이용하자고 생각한 다비드는 그길로 에보니 아더에게 보낼 편지를 입구를 지키는 기사에게 넘겼다.

‘그자는 분명 관심을 가지겠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이용해야 했다. 그렇기에 다비드는 차라리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며 에보니가 근처에 있는 숙소에 머물렀다.

그날 밤 다비드가 묵고 있던 영지에 에녹가의 문양이 박혀 있는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가 찾아왔다.

‘도련님이 기다립니다.’

그 말을 하며 몸을 돌리는 기사를 따라 에보니가로 향했다. 에보니 영주는 어디에 간 것인지, 에보니 백작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집안 자체가 삭막하다 못해 너무도 조용했다.

발걸음 소리와 칼과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것이 이 집을 더 삭막하고 기묘하게 만들었다.

기사가 집무실 문 앞에서 멈추어 섰을 때, 다비드는 이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을 느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테이블 앞에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아더의 모습을 본 다비드는 입을 다물었다.

나른하고 지루한 얼굴로, 두꺼운 시가를 입에 물고 있던 아더는 집무실에 들어온 다비드를 쳐다보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쿵, 소리로 반쯤 열려 있던 집무실 문이 닫혔다. 그러자 아더는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손가락에 걸고 두꺼운 재를 재떨이에 털어 내며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원하는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원하는 거라…… 그걸 내가 왜 들어줘야 하는지 모르겠군.”

“당신도 만족스러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보낸 편지를 읽고 저를 이곳에 부른 것이 아닙니까.”

“그래, 생각보다 재미있었지.”

아더는 재를 털어 낸 시가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쓰읍,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더의 입이 벌어지며 깊은 연기가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매캐한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울 때, 아더는 반쯤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 안에 조금의 흥미와 즐거움을 담고 있는, 무감각해 보이는 눈동자가 드러났다.

“개새끼에 대한 거였으니.”

아더는 의자에 기대어 있던 상체를 들어 올리고 테이블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반쯤 구겨진 편지를 들어 올렸다. 다비드는 그 편지가 자신이 아더에게 보냈던 편지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흠…… 그래, 네 사람이 납치되었다고.”

“……예, 당신의 영지에서 말입니다.”

아더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낮게 웃었지만, 그 웃음에 기분이 나쁘다는 그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그 개새끼가 결국 일을 쳤군. 서로의 영지에서는 그딴 짓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의자 손잡이를 편지를 들고 있는 손으로 툭툭 두드리던 아더가 테이블에 올렸던 다리를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입에 물려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몸을 돌려 집무실로 걸어갔다.

수많은 서류가 뭉쳐 있는 곳에서 새하얀 종이를 꺼내 든 아더는 다시 원래의 자리에 주저앉아 테이블에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무엇이지?”

“당신에게 알란의 목줄을 드릴 테니, 제 사람을 구하는 걸 도와주시죠.”

“개새끼의 목줄이 내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가 당신의 일을 방해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 트러블이 끊임없이 생긴다는 것도.”

아더는 자리에 앉지 않고 묵묵히 서 있는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사람을 빼앗긴 것 때문인지 화가 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더 역시 기분이 나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미친개와는 서로의 영역은 건들지 말자고 협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가 하는 일과 알란이 하는 일은 너무도 달랐기에, 아더가 끊임없는 싸움에서 내놓은 협약이었다. 물론, 그 협약을 얻어 내기 위해 알란의 소중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훔쳐 왔지만 말이다.

그러다 그가 숨기던 더러운 행위까지 찾았으니 운이 좋았었다.

그런데 그 협약이 일 년도 되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켰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으려야 나쁠 수밖에 없었다.

“내게 떨어지는 것이 무엇이지?”

아더는 의자에 편하게 기대어 앉았다. 나른하게 풀린 눈으로 다비드를 쳐다보고 있으니, 다비드는 그런 아더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다리를 움직여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실베스타 가문이 에보니 가문의 뒤를 봐줄 겁니다.”

“흐음, 그건 썩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 같은데.”

“당신이 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압니다. 어두운 뒷골목의 일이라는 것도.”

“그런데 도와주겠다고?”

“예, 그러니 제 사람을 구하고, 그자가 제 사람을 건들지 못하게 막아 주시는 것이 제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아더는 반쯤 눈을 감고 다비드가 숨기는 것이 없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가라앉은 눈은 깊은 화를 숨기고 있었고, 그 안에서 진득한 감정이 순간 비추어졌을 때, 아더는 크게 소리 내며 웃었다.

“그 깨끗한 실베스타 가문이 우리 뒤를 봐준다니, 괜찮군.”

아더에게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 에보니 가문을 조금씩 잡아먹고 있었다.

가만히 있었어도 그에게 떨어질 가문이었으나, 아더는 그것이 늦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 또한, 그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아더가 하는 일은 별것 아니었다. 어두운 뒷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일 뿐이었다.

살인이면 살인, 독이면 독, 노예라면 노예 그 모든 것을 다뤘다.

멍청한 개새끼는 살인을 즐기면서도 독과 노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더의 사업을 방해했었다. 그런데 지금 실베스타 가문이 뒤를 봐준다 했으니, 아더에게 손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비드가 찾으려는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실베스타 가문도 아더의 가문처럼 백작 가문이었으나, 그 힘은 실베스타 가문이 조금 더 강했다.

또한, 공작가와 맞먹는 힘을 가진 가문이었기에, 그 가문이 불법 거래를 눈감아 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다만.”

아더는 종이에 깃펜으로 거칠게 휘갈기며 글을 적었다. 방금 다비드가 했던 말을 적은 아더는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적으며 입을 열었다.

“그 개새끼의 목숨은 내가 쥐여야겠거든.”

“…….”

“그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보여서 말이야. 근데, 말 안 듣는 개를 교육하는 것도 난 즐거워서 말이지.”

“그자가 제 사람을 다시는 찾아오지 않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팔다리를 분지르고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힘줄을 자른다면,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겠지.”

“……왜 그자를 교육하려 하는 겁니까?”

다비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더를 쳐다보았다.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지어지는 그의 얼굴은, 꼭 다비드가 메이브를 쳐다보던 그 시선과 비슷했다.

“자기 잘난 줄 알고 살던 녀석의 뒷구멍을 먹는 것도 꽤 괜찮지 않나.”

“…….”

“그 자존심으로 채워진 얼굴이 일그러질 걸 생각하니, 난 벌써 즐거운데 말이야.”

다비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더가 알란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거였다. 다비드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아더는 알란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깔고 뭉개고 그가 깔린 뒤에 표정을 상상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서로 원하는 것이 맞는 것 같군요.”

“그래, 좋아. 널 도와주지.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거야. 그 녀석의 목숨은 내가 쥘 거라는 걸.”

“……예.”

그 질척한 감정은, 그 언젠가 다비드가 처음 꿈에서 메이브가 자신을 향해 보여 주었던 감정과 비슷했다. 진득하고 무거우면서도, 끝없는 집착과도 같은 어두운 감정에 다비드는 숨을 죽였다.

다비드는 어차피 메이브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알란의 두 팔과 다리의 힘줄이 끊어져 인형처럼 생활하든, 지금 눈앞에 있는 자가 거칠게 그를 안아 주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하지만 아더와 말을 하면 할수록 그 모습이 떠올라 속을 매스껍게 만들었다. 다비드는 아더가 다 적어 놓은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관계로 유지되었으면 좋겠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겁니다.”

다비드는 고개를 숙이고 그 무거운 공기가 맴도는 방 안에서 빠져나왔다. 알란이 미친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는 정말 미쳐 있는 거였다. 저 추악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 자가 벌린 커다란 입에 계속 머리를 넣었다가 빼며 장난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다비드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작게 흔들곤, 고요하고 삭막한 그 집에서 벗어났다.

***

다비드는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아더가 원하는 것이 알란의 몸인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더가 어쩐지, 알란에게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도 말이다.

그런 무거운 감정이 묻어난 이야기를 뺀 다비드는 그저 아더가 하는 사업을 자신이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만 말하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에 사업을 도와주는 것으로 이렇게 왔다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메이브는 고개를 들어 다비드를 쳐다보려 했으나,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의 얼굴을 가슴에 누르며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메이브도 왜 다비드가 그렇게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코끝에서 비릿한 철 냄새가 계속 맡아졌으니까 말이다. 코가 마비되도록 진득하고도 비릿한 냄새에 메이브는 어쩌면 이 안에 있는 자들이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다니엘이 생각난 메이브는 다비드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며 입을 벌렸다.

“이 안에…… 그…… 다니엘이 있었는데…….”

“아, 그자는 아까 알란과 함께 붙잡혔습니다.”

다비드는 잠시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메이브가 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의 상황이었다. 피에 절은 검을 흔들며 산책하듯이 천천히 걸어가던 아더가 알란의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그때 방 안에서 가운을 입고 있던 알란이 다리를 뻗고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고, 그 다리를 주무르던 다니엘이 있었다. 다비드는, 다니엘이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왔을까를 생각하기도 전에 빠르게 안으로 들어간 아더가 다니엘의 목을 틀어잡고 테이블에 내리꽂았다.

사람이 부딪혀서 저렇게 큰 소리가 나기도 한다고 생각했을 때, 당황한 표정의 알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그것도 머리채를 움켜쥐고 침대로 집어 던지는 아더의 행동에 알란은 반항조차 하지 못했었다.

‘뭐 하는 거지? 네 사람을 찾으러 가야 하지 않나.’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말하던 아더가 검은색 넥타이를 잡아 내리며 다비드를 향해 말했었다. 그길로 이 집안을 샅샅이 뒤져 메이브를 찾아냈던 다비드였으나, 그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다비드 님?”

“아…… 알란과 같이 아더가 데리고 갔을 겁니다.”

다비드는 다니엘이 분명 아더의 손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더는 다비드가 메이브에게 느끼는 소유욕보다도, 더 진득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너무 무겁고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말이다. 알란이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제 그들이 당신을 찾으러 오지 않을 겁니다.”

메이브는 무언가 다비드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으나, 다비드가 더 말하려 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따듯한 향이 비릿한 향에 묻혀 제대로 맡아지지 않았으나, 메이브는 그 향이 진하게 난다고 생각했다.

반쯤 뜨고 있던 눈을 감고 다비드의 따듯한 품에 안겨서 메이브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 이제야 몸이 소리치는지 온몸이 나른해졌다.

“……잘 자요. 메이브.”

잠이 들기 전에 작게 속삭이는 다비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메이브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조금만…… 자고 일어……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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