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 네 번째 밤 (6/18)

05. 네 번째 밤

시간이 흘러 창밖의 환한 햇빛이 들어올 때쯤, 기절하듯 잠들었던 메이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왔다.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시선에 메이브는 눈을 몇 번이고 느릿하게 깜박였다.

졸음이 물러가고 어느 정도 수마에서 깨어나자 온몸이 불편했다. 잠을 자기 전까지만 해도 편안했던 몸은 어느새 두 팔이 등 뒤에 묶여 있는 불편한 자세였다.

메이브는 아마, 자신이 잠든 사이에 다비드가 팔을 묶어 준 것 같다 생각하며 힘을 주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읏…….”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적지근하면서도 뜨듯한 무언가가 가슴 근처를 치는 느낌이 들었다. 메이브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불룩 튀어나온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불룩하게 튀어나온 유두에 이상하게 생긴 집게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몇 분, 어쩌면 몇 시간을 집어 놓았는지, 분홍빛 유두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주변도 퉁퉁 부어 있었다.

아픈 부분을 보고 나자, 그 부분이 열에 덴 것처럼 뜨거우면서도 따가웠다.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약간 흔들었지만, 유두를 집고 있는 집게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파…….”

몸을 움직일수록 양쪽 유두를 집고 있는 집게와 연결된 작은 사슬이 가슴을 두드렸다. 사슬이 두드릴 때마다 그 작은 충격이 가슴을 타고 유두까지 도달하는 것 같았다.

웅웅, 진동이 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누가 손가락으로 유두를 비틀어 당기는 것처럼 아려 오고 따가웠다.

가슴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돌려 다른 쪽을 보았지만, 이미 아프게 집혀 있던 유두를 보았기 때문인지, 보지 않아도 그 부분이 아팠다.

그러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비드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일어났어요?”

“으…… 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던 다비드가 반쯤 열린 문을 닫고 메이브에게 다가왔다. 몸을 움츠린 채로 어쩔 줄을 모르는 메이브를 내려다보고, 두 손을 뻗어 유두를 집고 있던 클립을 조심스럽게 풀어 선반에 내려놓았다.

“많이 아프셨나요?”

다비드의 손끝이 부어 있는 메이브의 유두 주변을 스치듯이 건드렸다. 메이브는 그 행동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앓는 소리를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아프지 않으면 이상했다. 이러다가 젖꼭지가 뜯겨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비드의 부드러운 손길에 반쯤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픈 유두를 집고 있던 집게가 전부 떨어졌다.

집고 있던 집게가 사라졌다고 아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따가우면서도 아픈 감각이 가슴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교육이 끝나고 약을 얻을 수 있으면 아픈 부분에 발라 드릴게요. 메이브 님.”

“……괜찮아요. 놔두다 보면 금방 나을 거예요.”

“아프면, 치료를 해야 하는 겁니다. 혼자 끙끙 앓는다고 다 낫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말이 맞는 말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지금 아픈 부분이 찢어서 피가 나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비틀린 것처럼 집혀 있었기에 아픈 것뿐이었다. 만약 치료가 필요하다면 차가운 얼음을 가져다 대고만 있어도 괜찮아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메이브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다비드의 모습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마 이 말을 꺼내면 다비드가 어쩌면 자신의 몸을 관리 못 한다고 혼을 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여기서 약을 구하는 것이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 미쳐 버린 신전에서 무언가를 요청했을 때 주기는 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옷조차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고, 지키지 못한 자는 사실상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처럼 취급되는 이곳이 요청한 대로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달라고 말해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었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메이브는 그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걱정하는 다비드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 세 번, 아니면 네 번의 교육밖에 남지 않았다. 어쩌면 길고 긴 시간일 수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일 것이 분명했다. 메이브는 이제 자신의 몸을 생각하면서도 어디로 숨어서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다비드에게 마주 웃어 주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전에 말했던 숲속의 오두막으로 들어가야 할까 고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이 빙의하기 전에 메이브라는 인물이 미친놈에 또라이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는 거였다. 아무리 연기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예의 바랐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느릿하면서도 다정한 다비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오늘 하루도 힘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눈앞에 있는 다비드에게 몇 번은 웃었다.

***

이곳에 온 지 벌써 4일이었다. 이제는 아침밥을 먹고 화려한 잔에 들어 있는 물과 그 안에 정액을 쏟아 내는 일상이 익숙했다. 이러다가 정말 이곳에서 벗어나도 이 일상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교육을 받기 위해 홀로 걸어갔다.

홀 입구는 여전히 화려하기 짝이 없는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젯밤과는 다르게 사람이 더 없어진 것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두 번째 교육 때처럼 살짝 떨어져 있는 부분에 매트가 깔려 있고, 그 앞에 작은 상자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저번에 교육 때 앉았던 자리에 가서 앉으세요.”

앞쪽에 자리 잡고 있던 신관이 홀 안으로 들어온 다비드와 메이브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에 메이브가 고개를 돌려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그 당시 눈에 안대를 끼고 있었기에 메이브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서 교육을 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의 어깨를 살짝 감싸며 전에 앉아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다비드가 멈추어 선 자리에 메이브는 주춤, 다리를 움직이다가 앞에 깔린 매트에 궁둥이를 붙이며 주저앉았다.

“……그때 상자군요.”

“상자요?”

다비드가 매트 근처에 있던 상자를 바라보며 말하자, 메이브는 그 상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그저 상자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전에 교육이 끝났을 때, 다니엘 신관님이 주었던 상자예요, 메이브 님.”

“상자요? 안에 어떤 게 들어 있어요?”

메이브의 고개가 기울어지며 상자를 노려보듯이 바라보았다. 신전에서 준 거라면 분명 이상한 물건이 들어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네 번째 교육을 듣는 이 순간에 상자가 있다는 건 분명, 안에 있는 물건을 교육 때 사용할지도 몰랐다.

“자리에 있는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세요.”

메이브가 생각했던 가설이 사실이었는지,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에 서 있던 신관이 상자 안의 물건을 꺼내라고 말했다. 그에 메이브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입에 고인 침을 꿀꺽 소리 내게 삼켰다.

그런 메이브를 한번 쳐다보던 다비드는 손을 뻗어 상자를 들어 올리고는 고리로 록이 걸린 부분을 풀어 뚜껑을 서서히 열었다.

상자 안에는 바늘이 없는 집게 형식의 유두 피어싱과 면봉 정도 크기의 요도 플러그가 담겨 있었다.

“…….”

“…….”

다비드나 메이브 둘 중,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특히 메이브는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물건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붉게 부어 있는 자신의 유두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아픈 부분을 다시 집으면 얼마나 아플지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 메이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를 귀엽다는 듯이 한번 쳐다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홀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나, 있는 사람이 상자에서 꺼내는 물건을 훑어 보였다.

신관이 건네준 상자 안에는 모두 제각기 다른 물건이 들어 있었는지, 다비드가 들고 있는 상자 안에 있는 물건과 비슷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쟁취한 자가 지키지 못한 자에게 사용해야 합니다.”

신관은 느릿하게 물건을 사용하라고 말하고는, 메이브처럼 달갑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 갔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신관의 말에 몇몇 사람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금세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경우 지키지 못한 자들은 끌려가게 될 겁니다.”

어디로 끌려갈 것이라는 말은 없었으나, 그게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메이브는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런 메이브를 바라보던 다비드는 퉁퉁 부어 있는 메이브의 유두를 힐끔 보더니 신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신관을 노려보아도 그가 했던 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에 다비드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상자를 노려보는 메이브를 바라보았다.

“……아프지 않을 겁니다.”

다비드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메이브는 분명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착용하면 아플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손끝만 스쳐도 아픈 유두에 저것까지 달아 놓으면 얼마나 아플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차라리 벌을 받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나, 벌을 받게 되었을 때 아픈 부분을 건들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무섭지 않을 겁니다.”

무서운 게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아픈 것을 알기에 무서운 걸지도 몰랐다. 메이브는 결국 다비드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아프지 않게 해 줘요.”

메이브가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플 것이 분명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했나? 하지 않았나? 수많은 고민이 메이브의 머릿속에 차츰차츰 채워지기 시작했다. 메이브의 앞에 있을 다비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메이브는 혹시 그 아파 보이던 집게를 아프지 않게 다비드가 이미 자신의 유두에 집어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메이브는 본인의 손가락 하나가 유두에 스치는 것도 아프다고 느낄 지경이었기에, 다비드가 상자 안에 있던 물건을 아직 자신의 몸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이브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나, 의아함을 품고 질끈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다비드 님?”

메이브는 흐릿한 시선을 몇 번 깜박이며 눈앞에 있는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귓불과 양 볼이 상기된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다비드의 모습이 보였다.

메이브의 목소리에 다비드의 입술이 벌어지더니 작은 한숨을 쉬었다.

“아프지 않게 해 드려야죠.”

아프지 않게. 그 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메이브는 갑자기 얼굴이 살짝 일그러져 있는 다비드를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딱히 말실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다비드의 표정은 마치 화난 것처럼 보였다. 꼭 화를 참으려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것처럼 말이다.

“……저 믿습니까?”

느릿하게 묻는 다비드의 목소리에 메이브는 홀린 것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왜인지, 그때 보았던 ‘내 남자를 꼬실 수 있는 101가지 방법’, ‘내 남자의 화를 풀어 주는 100가지 방법’을 쓴 작가의 또 다른 차기작, ‘내 남자의 언어를 알자 77가지 방법’에 나와 있던 말투 같았다.

‘오빠 믿지?’

그 말을 하는 남자는 믿을 수 없는 남자이니, 믿지 말라고 글에 적혀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믿을 수 있는 말일지도 몰랐다.

메이브는 잠시 멍하니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눈앞에 있는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믿어요.”

책 속의 내용이 뭐가 중요할까. 그 안에서는 남자는 늑대고, 믿으라고 하면 믿으면 안 된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다비드는 그런 남자들과는 다를 터였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자신을 배려해 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믿으니까……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하아.”

메이브에게 중요한 건 단 하나였다. 상자 안에 있는 물품을 써야 했고, 그게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아프지 않게 해 달라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메이브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다비드가 한숨을 낮게 내쉬었다.

그런 다비드의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그 손아귀 안에 들어 있던 유두 클립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맞물리는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아프지 않게 해 드리죠.”

다비드가 낮은 한숨과 함께 눈앞에 있는 메이브를 바라보는 순간, 메이브의 눈은 공포를 담고 상자 안에 있는 유두 클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 메이브의 표정을 살피듯이 쳐다보던 다비드의 시선이 그 몸을 훑어보듯 천천히 내려갔다.

밤부터 아침까지 유두 클립에 집혀 있던 메이브의 유두는 퉁퉁 부어 유륜까지도 붉게 물들어 있는 듯 보였다.

그걸 물고 빨면 메이브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다비드는 한순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의 스치듯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메이브가 정말 도망갈 것 같다 생각하며, 손에 주던 힘을 풀고 아귀에 있던 집게를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그러곤 집게를 벌려 불룩하게 부어 있는 메이브의 유두로 가져갔다.

“……메이브 님.”

“…….”

다비드의 부름에 대답도 하지 못할 만큼, 메이브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메이브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비드는 다른 손을 뻗어 그 볼을 부드럽게 감싸듯 붙잡았다.

“눈 뜨고, 저를 쳐다보세요.”

다비드의 힘 있는 목소리에 메이브의 몸이 움칠 떨려 왔다. 곧 메이브는 낮게 한숨을 쉬며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메이브의 시선에 짙게 가라앉은 연녹색 눈동자가 보였다. 몽글몽글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이마에 맺혀 있는 땀에 젖어 얼굴에 들러붙는 것까지.

“아프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계속 저만 쳐다보고 있으세요. 눈 감지 말고.”

다비드의 다정한 듯 힘 있는 목소리에도 메이브는 솔직히 무서웠다. 하지만 저 시선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처럼, 홀린 듯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자색 눈과 그 연한 녹색의 눈이 뒤섞이는 것 같았다. 메이브는 자신이 다비드의 눈동자에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모습으로 비치는 걸 보았다.

숨을 천천히 들이켜고 내쉬면서, 눈앞에 있는 다비드를 쳐다보는 메이브는 속에 남아 있는 불안감을 떨치려 했다.

하지만 점차 다비드의 손이 자신의 유두로 다가왔다. 그 손가락 사이에 걸려 있는 집게가 보이자 두 눈이 흔들렸다.

“메이브 님.”

다비드는 메이브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 쥔 상태로 바라보았다. 그러곤 반쯤 고개를 숙인 채 집게를 들고 있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는 메이브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보셔야죠.”

“으…….”

메이브도 다비드의 말처럼 그를 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 눈을 쳐다보려 해도, 그 안에 비치는 모습이 짐승한테 곧 잡아먹힐 듯한 자신의 모습이었고, 그 아래 천천히 부어 있는 유두로 다가오는 집게 때문에 다비드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차라리 고통을 기다리면 안 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때, 결국 다비드가 한숨을 낮게 내쉬며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메이브의 눈에 가득, 그 연한 다비드의 눈이 보였을 때 다비드는 고개를 살짝 틀어 파르르 떨리는 메이브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흡!”

메이브가 놀란 듯 커다랗게 떠진 눈으로 다비드를 멍하니 쳐다보자, 다비드는 이 세상에 오롯이 메이브만 있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다비드의 손이 빠르게 움직여 메이브의 유두에 집게를 걸었다. 부어 있는 유두가 반쯤 눌리며 툭 튀어나왔다. 붉게 물들어 있던 유두가 더욱 발갛게 물드는 듯 보였다.

아픈지 메이브의 두 눈망울에 물이 차오를 때쯤, 다비드는 내밀었던 고개를 천천히 물렀다. 부드럽게 입술에 닿아 있던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다.

“……많이 아팠습니까?”

일그러진 얼굴과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이 보이는 메이브 때문에 다비드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곤 걱정하는 얼굴로 메이브의 얼굴을 살폈다.

방금까지 다비드의 입술과 서로 부딪치고 있던 아랫입술을 짓누르듯이 깨물며 눈물을 삼키는 듯 메이브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다비드가 조금 더 조심스레 메이브를 살펴보려 할 때였다.

“빨리…… 다른 것도 채워요.”

아픈지, 고통이 섞여 있는 목소리로 툭 내뱉는 말에 다비드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다비드는 속으로 미칠 것 같았다. 분명 메이브가 아무런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일 텐데도 그에 반응하니 말이다.

메이브가 하는 말이 반대편의 유두에도 집으라는 말일 텐데, 다비드는 이 순간 이 신전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마 그랬다면 편하게 살게 해 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메이브가 어디든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신전이 아니었다면 그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니, 지금 순간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후.”

다비드의 입에서 더운 한숨이 내뱉어졌다. 붉게 부어서 짓눌려 있는 유두, 무서워하면서도 곧잘 느끼는 것처럼 메이브의 양 볼에 올라온 홍조, 그리고 가늘게 떨리는 메이브의 몸에 달린 성기가 발기된 상태로 흔들리는 그 모든 것이 다비드에게는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방 해 드리죠.”

다비드는 차라리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이 유두 클립과 요도 플러그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저 뻐끔거리는 구멍 안에 성기를 꽂아 넣고 흔들었으니 말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눈앞에 먹음직스럽게 몸을 떨고 있는 메이브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

다비드는 무서운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피하는 메이브의 얼굴을 붙잡아 다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게 만들고 싶었다.

저 보석과도 같은 자색 눈동자가 오롯이 자신을 향하기를 바랐다. 이 세상에 오직 자신만 남은 것처럼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가둬 버리고만 싶었다.

다비드는 목구멍에서 울컥울컥 올라올 것 같은 열기를 삼켰다. 그 열기가 온몸에 퍼져 아랫도리를 욱신거리게 했다.

당장 단단해진 성기를 움켜쥐어 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어 흔들고 싶었다. 그러면 저 안의 부드러운 살결이 수축하며 자신의 성기를 조여 올 테니 말이다.

다비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쪽으로 채우려 해도, 그 크기를 키웠다. 나중에는 눈앞에 있는 메이브를 바라보며 아무도 없는 무인도 같은 섬에 가둬 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비드 님?”

메이브의 떨리는 목소리에 다비드가 정신을 차리며,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남은 유두 클립을 허전해 보이는 반대편에 조심스럽게 집었다.

움찔, 메이브의 몸이 가늘게 떨려 왔다. 흔들리는 시선을 천천히 내린 메이브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짓누르는 하나하나를, 다비드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이제 이것만 하면 됩니다.”

다비드는 손을 움직여 상자에 남아 있던 작은 요도 플러그를 꺼내 들었다. 면봉 정도의 크기였지만, 그 사이사이 불룩불룩 튀어나온 둥근 원형의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다비드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어쩔 줄 모르는 메이브를 지켜보며, 다른 손으로 작게 꺼덕이며 점차 크기를 키워 가고 있는 메이브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

이렇게 물을 질질 흘리고 있으니 아프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 다비드의 목구멍에 턱 걸려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았다. 이 말을 하게 되면 눈앞에 있을 메이브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당황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사람 좋게 있었기에, 끝까지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비드는 자신의 손가락에 축축하게 묻어나는 쿠퍼액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메이브가 싫어하고 무서워했지만, 그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금방 넣을 겁니다. 보고 있으면 무서울 테니 저를 쳐다보세요.”

다비드는 손가락을 살살 움직여 메이브의 여린 귀두를 벌리고 그 속에 작은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그 크기가 너무 작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플러그 또한 작아서, 그것이 크게 보일 지경이었다.

다비드는 고개를 살짝 들어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메이브를 바라보았다.

“그…… 그게 들어…… 들어가요?”

떨리는 메이브의 목소리에 다비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다비드는 자신이 입을 열면 메이브가 경악할 만한 말을 꺼낼 것 같았으니 말이다.

“……들어갑니다.”

다비드의 목소리가 어쩐지 떨리듯이 메이브에게 들려왔다. 그것이 다비드가 자신의 욕망을 침과 함께 삼키느라 떨렸다는 것을 메이브는 알지 못했다.

외려 혹시 다비드도 넣는 것이 힘들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메이브는 생각했다.

메이브는 이미 감각이 사라진 유두가 무서웠다. 이러다가 툭, 조그마한 꼭지가 떨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꼭지가 도망가 버리는 건 아닐까.

지금은 그것에 대한 걱정보다 다비드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이상하게 생긴 길쭉한 것 때문에 더더욱 무서웠다.

메이브는 지금 다비드의 손에 자신의 성기가 붙잡혀 있어서 더더욱, 이 공포감을 쉬이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가 여린 살을 벌려 보이는 작디작은 그 구멍과 손에 들려 있는 저 흉흉한 것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 들어갈 것 같은데…….”

메이브는 생쥐 구멍으로 숨어 버린 생쥐처럼, 작디작은 목소리로 다비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 작은 목소리를 다비드는 들었으나 듣지 못한 것처럼 입에서 튀어나오는 열기를 삼키고 손에 들려 있던 요도 플러그의 입구를 메이브의 귀두에 가져다 댔다.

“자, 잠, 잠깐!”

-만요……! 전부 내뱉지도 못한 목소리가 입 안에 맴돌았다. 메이브는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헛숨을 들이켜고 불편한 자세로 주춤주춤 엉덩이를 이용해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 금세 다비드의 손에 종아리가 붙잡혀 다시 다비드에게 끌려 내려왔다.

“그걸 보려고 해서 무서운 겁니다. 그러니까.”

다비드의 얼굴이 사뭇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도 잠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천천히 숨을 내쉬고는 조금 전보다 풀어진 얼굴로 메이브를 쳐다보았다.

“제 얼굴만 보시죠.”

다비드의 말에 메이브는 밑을 최대한 보려고 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고개를 들어 올리고 다비드만을 바라보려 했다. 눈에 닿는 다비드의 몽글몽글한 솜사탕 같은 머리색과 그 진득한 눈동자까지, 밑에 있는 감각을 떨어트리려 그의 얼굴에 집중하려고 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반듯하게 내려온 콧대를 보고 있으니, 아까 그 불룩불룩하고 흉흉한 것이 떠올랐고, 타액으로 축축해 보이는 입술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고 그 흉흉한 끝을 귀두 선단에 대고 있는 그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그게 느껴졌다.

다비드의 말대로 보지 않으려 했다. 근데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그 작은 구멍에 들어갈 모든 것이 싫었다. 이렇게 무서운데 아래는 열이 오른 것처럼 불끈불끈하니, 그게 더 미칠 것 같았다.

메이브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다. 떨리는 시선이 이리저리 돌아가더니 그 눈 안에 금세 물기가 차올랐다.

벌겋게 변하기 시작하는 눈가가 따갑기 그지없을 때, 메이브는 숨을 삼키고 고개를 내밀어 눈앞에 있는 다비드의 어깨에 눈두덩을 짓누르며 얼굴을 기댔다.

“보……는 거 무서운데…… 보이니까 이대로 있을래요.”

“…….”

“바, 바동거리지 않을게요.”

“…….”

“그, 그러니까…… 진짜 아프지 않……게 해 주셔야 해요.”

메이브가 무서워서 내뱉는 별것 아닌 말이, 다비드에게는 그의 욕망에 기름을 붓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쑤셔 넣는 것과 같았다.

다비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화려하기 짝이 없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미쳐 버릴 만큼 아랫도리가 욱신거려 왔다. 아직은 메이브의 몸이 그렇게 가까이 있지 않아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것도 이제 한순간이었다.

점차 크기를 키워 가는 성기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핏줄이 도드라진 성기 끝에서 투명한 물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비드는 이 순간, 믿지 않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열을 죽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프지 않게 해 주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당장이라도 그 여린 구멍에 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을 쑤셔 넣고, 메이브의 등을 짓눌러 그 여린 구멍을 헤집을 것만 같았다.

“……아프지 않게 해 드릴 테니, 아무 말 하지 말고 저한테 기대고 있으세요.”

그 작은 입에서 툭툭 내뱉는 말이 다비드의 정신을 흔들리게 했으나, 다비드는 그 잠깐의 시간이라도 듣고 싶지 않았다.

다비드는 이러다 정말 눈이 돌아가 메이브를 짐승처럼 짓눌러 범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네.”

하지만 그런 다비드의 마음과는 다르게 메이브에게 그의 목소리는 낮고, 어쩐지 무뚝뚝하게 들려왔다. 메이브는 혹시 자신이 무서워서 투정한 모든 것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다비드도 힘들었을 텐데, 너무 그에게 의지해서 그가 귀찮아진 것 같았다. 메이브는 더 투정 부리지 말자고 생각하며 무서움을 꾹 참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으니 차가운 듯 미지근한 무언가가 귀두 사이에 문질러지고 있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게 아까 보았던 그 흉흉한 거라는 것을 알았다.

메이브는 당장 다비드의 어깨에서 고개를 떨어트리고 몸을 돌려 도망가고만 싶었다. 다른 것은 전부 괜찮았지만, 저건 이상하게 무서웠다.

“쉬이, 힘 빼요.”

그런 메이브의 귓가로 다비드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려왔다. 그 말이 긴장하던 몸에 힘을 풀게 만들었다.

메이브는 지금 자신의 성기에 닿아 있는 것이 흉흉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차라리 말랑말랑한, 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강아지가 물고 노는 공이 바닥을 굴러서 자신의 성기에 닿았다고,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도, 그나마 무서움은 가시는 것 같았다.

“아……욱!”

한순간 밑에부터 느껴지는 따가움에 메이브의 고개가 다비드의 어깨에서 들어 올리려 했다. 그 순간 다비드의 손에 메이브의 뒤통수가 눌리며 어깨에서 고개를 떨어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고통에 움찔움찔 떨고 있는 메이브를 내려다보던 다비드는, 자신의 손에 의해 천천히 그 작은 구멍 안으로 밀려들어 가는 요도 플러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끝의 손잡이를 붙잡아 살살 돌려 밑으로 집어넣으니, 그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던 쿠퍼액이 울컥울컥 그 작은 구멍에서 흘러내렸다.

“흐…… 으.”

다비드의 손에 의해 플러그가 점점 안으로 파고들어 갈수록, 메이브의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비드는 멈추지 않았다. 외려 지금 멈추면 더 힘든 것은 메이브일 테니 말이다.

결국 손잡이 부분만을 남기고 성기 안에 그 둥글둥글한 플러그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야 다비드는 메이브의 뒤통수를 잡고 있던 손을 느리게 놓아 버렸다.

“……아프지 않았습니까?”

다비드는 잠시 숨 쉬는 것을 멈추고 뒤늦게 더운 숨을 내쉬며 메이브에게 물었다.

그런 다비드의 시선에 두 손은 등 뒤로 묶인 채, 바닥에 앉아 있는 메이브의 모습이 보였다. 양다리는 훤히 벌어져 있었고, 귀두에는 둥근 보석이 끝에 달린 플러그를 전부 요도에 삽입한 채 성기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로 천천히 시선을 올리니 화려한 유두 클립이 메이브가 가늘게 몸을 떨 때마다 부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아래를 욱신거리게 만드는 그 야한 모습에 다비드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며 메이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흐읏…….”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르겠는 얼굴로 메이브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면서도 그 시선의 끝은 자신의 성기에 닿아 있었다.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의 모습을 지켜보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주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쟁취한 자가 그냥 나가 버려 끌려간 걸지도 몰랐고, 이미 수업이 끝나서 돌아갔는지도 몰랐다.

다비드의 고개가 움직여 저 앞에 서 있는 신관에게 닿자, 신관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꼭 물건의 사용을 다 했으니, 나가도 된다는 것처럼 보였다.

“메이브, 메이브 님.”

느릿한 목소리로 메이브의 이름을 부른 다비드는 여전히 가늘게 떨고 있는 그 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몸은 마치 맛있게 익은 과실처럼 보였다. 손가락으로 툭 건들기만 하면 터질 듯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흐…….”

“메이브 님.”

다비드가 물었지만, 그의 눈에도 메이브가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고 해도, 금세 주저앉을 것처럼.

“방으로 가요.”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했으나, 메이브가 제대로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다비드는 손을 뻗어 메이브의 오금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조금 얇아진 것 같은 다리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등을 둘러 어깨를 붙잡고 메이브를 번쩍 안아 들었다.

솔직히 안아 들기 전에 메이브의 유두를 집고 있는 클립과 요도 구멍에 박혀 들어간 플러그를 뽑아서 갈 법도 했지만, 다비드는 그것을 가만히 둔 상태로 메이브를 품에 조심스레 안고 홀에서 빠져나왔다.

“흐……아.”

다비드의 걸음걸이에 메이브의 몸이 실긋실긋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메이브의 유두에 걸려 있는 클립이 흔들리며 작은 소음을 만들었고, 발기되어 있는 채로 핏줄이 도드라진 성기는 위아래로 꺼덕이며, 그 위에 달린 둥근 보석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곧 도착할 겁니다.”

다비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걷는 속도를 좀 더 늦췄다. 느릿하게 걸으며 사람이 보이지 않는 텅 빈 복도를 천천히 나아갔다.

메이브가 끙끙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 때마다 다비드의 걸음이 멈추었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메이브가 당황해하며 아랫입술을 짓누르고 가만히 몸을 굳히고 나서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메이브는 정말 다비드가 화가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방에 도착했을 테니 말이다.

“도착했네요.”

몇 분이 흐르자 방문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것처럼 메이브는 녹초가 되어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를 내려다보며 방문을 어깨로 밀어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메이브를 내려놓았다.

“읏.”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리는 메이브를 힐끔 쳐다보던 다비드는 잡고 있던 메이브의 둥근 어깨를 손끝으로 살살 문지르고는 손을 느리게 떨어트렸다.

“잠시 다니엘 신관님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네, 네?”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세요.”

메이브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다비드는 메이브를 홀로 남긴 채 방 안에서 빠져나갔다. 그러자 혼자 남은 메이브는 천천히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다, 다비드 님?”

듣는 사람이 없는 그 이름을 중얼거리며 메이브는 황망한 얼굴로 그가 나가 버린 문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등 뒤로 묶여 있는 두 손을 움직이려 했다.

“읏.”

꽉 묶어 놓은 손이 풀어질 리 없었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몸을 들썩거리니, 유두 클립이 위아래로 흔들려 부어 있는 유륜 주변을 툭툭 건드렸다. 미약한 아픔과 함께 알싸한 열기가 느껴지자 입에서 순간적으로 작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에 당황하기도 전에 욱신거리는 아래 때문에, 아랫입술을 짓누르듯이 깨물었다. 작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귀두에 박혀 있는 듯 보이는, 반짝이는 보석이 흔들렸다. 속에 들어 있는 그 흉흉한 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안이 빡빡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귀두의 보석 위로 송골송골 넘쳐흐르는 애액에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빠…… 빨리 오세요…….”

메이브는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최대한 다리를 오므리려고 해도, 유두에 집혀 있는 클립도, 발기된 성기 위로 보이는 작은 보석까지, 그 무엇도 숨기지 못했다.

다비드가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은 것 같았는데,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두 손이 묶인 채로 이러고 있으니 정말 변태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이곳에서 다비드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메이브는 그만큼 자신을 배려해 주던 다비드가 고마우면서도, 왜 이번에는 이렇게 나가 버렸는지 조금은 원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다비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간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자신의 성기에 꽂혀 있는 저 이상한 것만 빼 주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흐…….”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메이브는 어깨를 움츠린 채 불편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귀만 기울이며 다비드가 빨리 방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났는지, 문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 메이브의 시선에 다비드가 원형의 통 하나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 죄송합니다, 메이브 님. 제가 풀고 갔어야 했는데.”

메이브는 그 말을 듣고 다비드가 일부러 이렇게 놓고 간 것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정말 급하게 무언가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살짝 열려 있는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온 다비드는 메이브가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침대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비드는 한 손에 원형의 통을 들고, 다른 손은 메이브의 유두를 집고 있는 클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메이브의 유두를 아프게 짓누르고 있던 클립을 빼냈다.

“읏…….”

불룩 튀어나온 유두에 집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퉁퉁 부어 있는 유두가 흔들리며 가슴 주변이 울리듯 했다.

메이브가 몸을 움츠리고 고통에 몸을 떨고 있으니, 다비드는 다른 쪽 유두를 집고 있던 클립마저 빼내어 한쪽 선반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약부터 발라 드리겠습니다.”

다비드의 말에 메이브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이 연고라는 것을 알았다. 멍하니 다비드가 연고 통을 열고 있는 것을 보며, 성기에 꽂혀 있는 저것부터 빼 주면 안 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혀가 굳은 듯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 제대로 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처럼,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사이 다비드가 연고 통을 열고 손가락으로 약을 한껏 퍼서, 퉁퉁 부어 아파 보이는 메이브의 유두 주변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흐……읍.”

다비드의 손가락 사이에 유두가 문질러지고 은근히 손톱으로 툭툭 건드리는 감각에 메이브의 허리가 움칠 떨려 왔다. 그에 발기된 성기도 위아래로 흔들려 둥근 보석에 맺힌 투명한 애액이 툭 이불보로 떨어져 내렸다.

“부어 있어서 제대로 발라야 하니까, 조금만 가만히 있으세요.”

“으…… 네…….”

메이브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만 갔다. 다비드가 자신을 치료해 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그가 손가락으로 유두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입을 다물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신음을 꾸욱 눌러 담았다. 길지 않은 손톱으로 부어 있는 유두가 툭툭 건드려지다가 그것이 끝날 쯤에는 불룩 튀어나온 다비드의 손가락 마디 사이에 유두가 걸려 문질러졌다.

이제 끝이 났나 싶었을 때는, 다비드가 양쪽 유두를 아프지 않게 손가락으로 붙잡고 둥글게 살살 돌리다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약은 제대로 발라진 것 같네요.”

혹 대답하다가 열기가 뒤섞인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 메이브는 그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끝냈다.

메이브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다비드는 딱히 상관이 없는 것처럼 반 이상 사라진 연고 통 뚜껑을 닫았다.

다비드의 손에는 너무 많은 연고를 퍼서 그런지, 손에 가득 연고가 묻어 미끄러워 보였다.

“이제, 이것도 빼 드리겠습니다.”

다비드의 시선이 메이브의 성기 끝에 달린 요도 플러그로 향했다. 그건 메이브도 좋아할 만한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성기를 뚫어져라 보는 것은 부끄러웠지만, 빨리 저 이상한 것을 뽑고만 싶었다.

그런 메이브의 마음을 아는 건지 다비드는 연고가 가득 묻은 손으로 둥근 보석을 움켜쥐었다.

“아, 이런.”

“……흐읏.”

연고가 가득 묻은 손가락으로 보석을 붙잡았으니, 당연히 제대로 잡힐 리가 없었다. 다비드의 손에서 한순간에 미끄러져 빠진 보석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그 안에 박혀 있던 그것이 크게 진동하듯이 흔들렸다.

“흐……아!”

메이브의 입에서 결국 높은 신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몸을 들썩이며 놀란 메이브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메이브도 놀랄 만큼 속이 울리는 그 감각은 기묘하면서도 간지러워 높은 신음이 튀어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프지 않다는 것에 놀란 것도 있었다.

“연고 때문에 뽑는 게 좀, 오래 걸릴 것 같네요.”

“그…… 으…….”

“조금만 버틸 수 있습니까?”

“……네.”

메이브는 빨리 뽑아 달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비드의 손에 묻은 연고 때문에 뽑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다비드가 자신의 퉁퉁 부은 유두를 치료해 주려던 것이기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까 그 작은 원망도 솔직히 흐지부지 사라졌다.

다비드가 원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그도 자신이 다친 것을 먼저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고를 가지러 간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신전에서 무언가를 요청했을 때 쉬이 주지 않았을 텐데, 다비드가 이렇게 얻어 온 것만 해도, 메이브는 다비드에게 말 못 할 정도로 고마울 뿐이었다.

“힘, 주지 마세요. 메이브 님.”

미끄러운 연고에 범벅이 된 다비드의 손이 다시 둥근 보석을 움켜쥐었다. 힘을 주는 것처럼 손등 위로 핏줄이 불룩불룩 튀어나왔으나, 둥근 보석은 그런 다비드를 비웃듯 좀처럼 잡혀 주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를 해도 보석이 크게 흔들리며 속에 박혀 있는 플러그만 흔들릴 뿐, 단 1cm도 성기에서 뽑혀 나오지 않았다.

“아……읏. 자, 잠깐만요!”

“……예?”

“이, 이불로 뽑으면 되잖아요. 손이 미끄러우니까…….”

생각해 보면 참 쉬운 방법이 있었다. 메이브의 말처럼 손에 연고가 가득 묻어 요도 플러그를 붙잡아 뺄 수 없으면 수건이나 다른 물건으로 그 부분을 붙잡아 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비드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는지, 한순간 메이브가 보지 못한 시선 아래 다비드의 표정이 약간 불만족스럽게 변했다. 그마저도 금세 사라져 메이브를 다정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제가 미처 그것까지 생각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메이브 님.”

느릿한 어조로 말하던 다비드는 한쪽에 밀려 있는 이불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메이브의 성기 쪽으로 이불을 가져와 잡고는 그 작은 보석을 함께 움켜쥐었다.

메이브의 말처럼 이불과 함께 보석을 붙잡으니, 아까와 달리 제대로 잡혀 왔다. 한순간 보석을 뽑으면 됐을 테지만, 다비드는 쉬이 요도 플러그를 뽑지 않고 천천히 잡힌 보석을 둥글게 굴렸다.

“아……!”

메이브의 입에서 높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둥글게 생긴 그것들이 속의 여린 살을 헤집은 느낌이었기에, 거친 숨과 함께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금세 두 눈에 투명한 물이 차올라 눈앞이 흐려졌다. 메이브는 당황한 얼굴로 흐린 시선에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속이 빡빡해서 그냥 뽑으면 다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처럼 녹아 버린 연고와 보석 밖으로 울컥울컥 쏟아 내던 애액을 생각한다면 분명 한순간에 뽑아도 빡빡하지는 않을 터였다. 다만, 다비드는 왜인지 속이 배배 꼬인 것처럼 쉬이 메이브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으으…… 아, 알겠어요…….”

지금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메이브는 다비드의 말을 믿었다. 정말 자신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러리라 생각했다.

순박한 메이브를 바라보던 다비드는 속으로 한숨을 되삼켰다. 정말 이러다가 어디서 납치당해도 자신이 납치를 당한지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다비드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혹여 이런 생각을 말하면 정말 메이브가 저 순하기 짝이 없는 머리를 굴려 어디론가 숨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원래 똑똑한 사람은 찾기 힘들다 해도, 그건 돈이면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순수한 뇌로 숨으면 단순하게 숨었는지, 멀리 숨었는지 알 수 없으니 돈으로 찾아도 오래 걸릴지 모르니 말이다.

“……메이브 님.”

“네, 네에…….”

“……잠깐 아플 겁니다.”

“네?”

다비드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못 한 듯 메이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자신은 메이브를 좋아하는데, 그런 자신을 피해 도망가려는 듯한 메이브에 대한 작은 심술일 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다비드는 이불과 함께 손가락으로 요도 플러그의 보석을 단단히 붙잡고, 메이브의 어깨를 붙잡았다. 힘을 줄 것 같은 모습에 메이브도 곧 다가올 아픔을 깨달았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다비드를 올려다보았다.

“자, 잠, 잠깐만요……!”

다급한 메이브의 외침과 함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준 다비드가 한순간 메이브의 요도 구멍 안에 파고들어 가 있던 플러그를 뽑아냈다.

“아…… 아아!”

높은 교성과 함께 메이브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미리 차올랐던 눈물을 흘리며 크게 입을 벌린 메이브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런 메이브를 품에 안고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다비드는 움켜쥐고 있던 이불을 한쪽으로 던지듯 치웠다.

그 안에 숨겨 있던 메이브의 성기가 위아래로 꺼덕이고 있었다. 붉게 부은 것처럼 보이는 귀두 사이에서 하얀 정액을 물처럼 질질 흘리면서.

“아프지는 않았습니까?”

아팠는지, 어쩌면 쾌감이 강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기도 했다. 크게 뜬 눈에서는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멈추지 않고 투명한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벌겋게 물들기 시작한 눈두덩과 제대로 된 숨조차 못 쉴 만큼, 가늘게 떨고 있는 메이브의 모습에 다비드는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메이브.”

이렇게 힘들어할 것 같았다면, 다비드는 메이브의 성기에서 거칠게 요도 플러그를 뽑아낼 생각이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눈물은 어찌나 흘리는지. 결국 다비드는 한숨을 속으로 몇 번 뒤 삼키고 벌어진 메이브의 입술에 입을 부딪쳤다.

물컹한 입술이 서로 맞닿자, 돌처럼 굳어 있는 메이브의 혀를 건드리며 그 작은 입 안을 혀로 휘저었다.

“우……으…….”

다비드는 정신을 차린 건지 몸을 떨며 고개를 뒤로 물리려는 메이브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 쥐며 그가 도망갈 수 없게 만들었다.

몇 분의 숨 막힐 듯한 키스가 끝나자, 메이브는 지쳐 쓰러져 기절하듯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메이브를 감싸 안은 다비드는 두 눈을 감고 미세하게 경련하는 메이브의 몸을 내려다보며 작게 혀를 찼다.

“메이브.”

몇 번 더 메이브의 이름을 불렀으나, 반쯤 열려 있는 메이브의 입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 주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를 끌고 와서 근처에 앉았다.

“이상한데.”

다비드는 한쪽 다리를 꼬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깊게 잠든 메이브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곳에 와서 다비드는 단 한 번도 메이브가 식사할 적에 부실하게 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아랫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올 만큼 밥을 먹였다.

그런데 처음 만남 때와 비교해서 메이브의 몸이 생각보다 많이 작아진 것 같았다. 두 손이 묶여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근육이나 몸집이 줄어드는 것이 빠르다고 느꼈다.

먹는 양이 좀 부실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하도 저 구멍에 박으며 온몸을 혹사해서 먹는 것보다 소모되는 열량이 많은 걸지도 몰랐다.

다비드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곧 식사 시간이었다. 아까 연고를 받으러 다니엘을 만나러 갔을 때, 이번 식사는 다니엘이 가져오는 것으로 서로 이야기가 되었으니, 급하게 메이브를 깨울 필요도 없었다.

다비드가 천천히 방문을 열자, 마침 문을 열려던 것처럼 손을 뻗고 있던 다니엘이 멍청하게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금세 뻗었던 손을 돌리고 음식이 든 트레이를 방으로 끌고 들어오려 했다.

“이것만 두고 나가.”

“말씀드렸듯이, 신전에 규칙이.”

“어차피 그 규칙, 제대로 지킬 필요 없잖아.”

벼린 말투로 다비드가 다니엘에게 말하며, 그가 끌고 들어오려던 음식이 담겨 있는 트레이 끝을 움켜쥐었다.

“만약 그 규칙을 제대로 지켜야 했으면, 당신이 이 신전이 성년식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은 안 했겠지.”

메이브가 잠든 사이, 다비드는 자신의 성격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가 이렇게 얌전히 있던 것도 메이브 때문이었다.

다정하게 웃고 있던 표정이 거짓인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석고상처럼 표정이 없어 보이는 다비드의 모습에도, 그 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 다니엘의 입가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그래도 그 이야기가 도움이 되셨잖아요?”

“설마 그 쓸데없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솔직히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필요 없는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된 것이 맞았다. 그 때문에 메이브가 자신의 몸은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다비드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메이브가 그것을 바랐기에 그렇다 했을 뿐, 누군가가 내게 피해를 준다면 다비드는 그자의 머리를 짓눌러 지르밟고 지나갈 수 있는 자였다.

그렇기에 눈앞에서 여상하게 웃고 있는 다니엘의 정보는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려 그보다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냥개가 제대로 된 정보를 물어다 줄 터였다.

“제가 드린 연고로 메이브 님을 치료하셨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너를 이 지옥에서 구해 주기로 했지.”

“…….”

“다니엘, 잘 생각해야지. 당신이 이렇게 귀찮게 군다면 그 끝에 우리가 당신을 구해 주겠어?”

무심한 목소리로 툭툭 내뱉는 말에 여상하게 웃고 있던 다니엘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 않나. 그냥 이 음식만 두고 가라는 것. 그 한 가지인데.”

다비드는 그 말을 끝으로 눈앞에 있는 다니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런 다비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다니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상 지금 이 순간 다니엘이 다비드에게 무슨 말을 꺼낸다 해도, 다비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만약 다비드가 이곳이 성년식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 이야기로 다비드를 협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미 다니엘은 다비드에게 자신의 카드를 전부 보여 준 상황이었다. 특히나 다비드와 메이브가 마지막 날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쉬울 사람은 다니엘뿐이었다.

그 상황을 다니엘도 알고 있는지, 다비드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린 채 트레이를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방 안까지는 안 들어갈게요. 다만, 저도 돌아갈 수는 없으니 방문 앞에서 기다리는 걸로 하죠.”

“음.”

“이 정도는 저도 많이 양보한 거예요, 다비드 님. 저 역시도 신전에 지금 묶여 있는 몸이라 규칙은 지켜야 하니까요.”

다니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다비드가 눈앞에 있는 그를 잠시 쳐다보았다. 다니엘의 말대로 원래 밥을 먹을 때마다 누구 한 명씩은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이 신전에서 신관의 규칙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쟁취한 자도, 지켜지는 자도 신전의 규칙에 묶여 있었다. 쟁취한 자야 자유롭다지만,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지켜지는 자가 이곳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 알지 못한 그 안에서 무언가가 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다니엘이 그것까지 말을 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았다. 이곳이 성년식을 하는 신전이 아니라는 말도.

신전에서 벗어나 호숫가에서 지나가듯 말하고, 제대로 된 설명은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니 어쩐지 그 규칙 때문에 신전에서 최대한 떨어져 급하게 말하고 사라진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는 그 말, 꼭 지켜야 할 겁니다.”

“……당연하지요.”

저 입이 벌어져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니엘이 다비드를 동하게 할 이야기를 꺼낸다면 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 테지만, 다니엘은 분명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조금 전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다른 이야기도 해 주었을 테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못 하는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다비드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다니엘이 말하지 못하면, 그 멍청한 사냥개를 굴려 알아 오게 만들면 되는 거였고, 그 사냥개마저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 오지 못한다면 이곳에 돈을 던져 그 짐승 같은 놈들을 굴리면 되는 거였다.

“그럼, 기다려.”

다비드는 그 말을 끝으로 음식이 담겨 있는 트레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 반쯤 열려 있는 틈으로 다니엘을 쳐다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러곤 몸을 돌려 음식이 담겨 있는 트레이를 메이브가 잠든 침대까지 끌고 갔다. 어차피 보는 사람이 없으니 메이브가 누워 있는 상태로 밥을 먹이든, 자리에 앉혀 먹여도 상관없었다.

다비드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메이브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 흔들었다.

“메이브 님, 메이브.”

느릿하게 메이브의 이름을 속삭이듯 말하며 다비드가 잠든 메이브를 깨웠다. 비몽사몽의 얼굴로 천천히 눈을 뜨는 메이브의 눈두덩은 퉁퉁 부어 있었다. 아까 그렇게 울었으니 보지 않으면 이상한 거였다.

“밥 먹고 다시 자는 거 어때요?”

“아…….”

메이브가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의 어깨를 붙잡아 반쯤 일어난 몸을 다시 앉도록 했다.

“지금은 신관이 없으니 앉아서 드셔도 됩니다.”

“하…… 하지만…….”

잠에서 막 깨어난 메이브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메이브 역시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갈라져 이상한 것 같아 입을 꾹 다물려고 했다. 그런 메이브를 보며 다비드는 금세 물 잔에 물을 따라 메이브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신관이 보지 않았으니, 메이브 님이 제 것을 넣고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는 알지 못할 겁니다.”

다비드가 다정하게 하는 그 말이, 어쩐지 메이브의 어깨에 힘을 빠지게 했다. 다비드는 메이브를 생각해서 안에 넣지 않고 밥을 먹이려 한 거였으다. 그러나 메이브는 그것이 다비드가 자신에게 그런 것을 하는 걸 싫어하게 되어 저렇게 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것이 메이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교육이 끝나면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으면서, 그전에 다비드의 마음이 떠나는 것 같으니 불안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좋아한다더니, 잠이 덜 깨서 그런지 메이브는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메이브는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다비드가 먹여 주는 물을 마시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다비드 님.”

“네?”

다비드의 마음이 떠난다면 솔직히 메이브에게는 좋은 거였다. 그러면 쉬이 메인수였던 다비드의 눈을 피해 메이브가 원했던 힐링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이상하게 메이브는 다비드가 원래 하던 행동과 다르게 자신을 대하자 속이 뒤집어지는 듯했다.

왜 갑자기 이렇게 해 줘요? 수많은 질문이 목구멍에 걸려 금세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꾹꾹 입 안의 침을 모아 삼키며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같이 삼켜 냈다.

“……감사합니다.”

메이브는 그 말을 끝으로 다비드가 하나하나 입으로 가져다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다비드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메이브에게는 좋은 거였으니 말이다.

메이브는 한순간, 신전에 있을 때까지는 다비드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을 걸 무서워한 걸까 고민했다. 그것과는 다른 마음인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그 마음을 고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이 마음은, 기댈 곳이 없는 이곳에서 다비드에게만 기댈 수 있어 생긴 마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메이브 자신은 떠나야 할 사람이고, 다시는 눈앞에 있는 다비드를 보지 말자며 다시 한번 다짐하듯 속으로 읊조렸다.

메이브는 혹시 자신이 미쳐서 정말 원작처럼 될까 무서웠다. 눈앞에 있는 다비드를 오두막에 가두는 것을 할까 봐.

“한숨 더 주무세요.”

다비드가 먹여 주는 것을 전부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음식 트레이에 담겨 있던 음식은 어느 것 하나 남지 않았다. 멍하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다비드를 메이브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어깨를 만지는 손길, 가까이에 앉아 있어 몸에 닿는 그 뜨듯한 숨결과 체온까지. 무엇하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메이브는 자신의 옆에 다비드가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고된 일상에 몸이 힘들었는지, 힘이 쭉쭉 빠지고 온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메이브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쥔 다비드가 느긋하게 그 몸을 침대에 눕혀 주었다.

“피곤하잖아요. 조금 더 자고 일어나요, 메이브.”

다비드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메이브의 눈꺼풀이 느릿느릿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에 다비드는 천천히 손을 뻗어 메이브의 눈을 감기고, 부어 있는 그의 눈두덩을 지그시 눌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메이브가 고른 숨을 쉬기 시작했을 때 다비드가 메이브의 눈에 올렸던 손을 치워 냈다.

그러곤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진 메이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메이브 님.”

잠시 편하게 쉬게 해 주려고 누워서 밥을 먹이려는 순간, 다비드는 살짝 당황해하며 일그러진 메이브의 표정을 떠올렸다. 다비드가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저 동정이고 착각이라 말했던 메이브였다. 그런데 다비드가 메이브를 편하게 쉬게 해 주려 하니 그가 당황해하며 자신을 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다비드는 속에서부터 뜨거운 열이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당황한 표정은 금세 갈무리되었으나, 그 표정을 다비드는 똑똑히 보았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다비드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좋아합니다.”

느릿한 어조로 당사자가 듣지 못할 말을 조용히 내뱉었다. 다비드의 눈이 짙게 가라앉은 그 순간까지. 다비드는 눈앞에서 잠이 든 메이브를 어떻게 묶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까 생각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그릇만 남은 트레이를 잡고 방문으로 걸어갔다. 다비드가 문을 열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니엘은 그가 밀어주는 트레이를 건네받았다.

“……다음번에는.”

다니엘이 다비드를 바라보며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글쎄, 말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 당신이 제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없을 텐데요.”

“다비드 님, 착각하시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다니엘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고 표정 없는 인형처럼 자신을 지켜보는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다비드 님이 지키고 있는 메이브 님이 벌을 받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라는 걸요.”

“이런.”

다비드는 눈앞에서 자신이 지키려는 메이브를 걸고넘어지는 다니엘 때문에 입가에 비뚤어진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숙여 다니엘의 귓가에 가까이 얼굴을 내밀어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그 끝에 저희가 다니엘 당신을 구해 주는 일 또한 없겠지.”

더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무는 다니엘을 보며 다비드는 속으로 비웃었다.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을 긁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저 모습이 우습지 않은가.

다비드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가만히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다니엘 역시 다비드를 건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는지, 말없이 트레이를 붙잡고 몸을 돌렸다.

“서로 같이 살자는 거잖아요. 이 정도는 제가 이해해 드렸으니 다비드 님도 이해를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런, 다니엘. 저희가 얻는 것보다는 당신이 얻는 게 더 많을 텐데, 그걸 더 이해해야겠습니까?”

“…….”

“욕심이 너무 크면 얻을 수 있는 것도 얻지 못할 겁니다.”

“……이만 저는 가 보도록 하죠. 하지만 다음번에는 식사 때 이렇게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세요.”

다니엘 역시 더는 양보하지 못하겠는지, 굳은 얼굴로 다비드에게 빠르게 말하고 저 복도 끝으로 급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모습이 다비드에게는 꼭, 꼬리에 불이 붙어 도망가는 망아지처럼 보였다.

“쯧.”

작게 혀를 찬 다비드는 한 손을 들어 머리를 거칠게 넘기고는 다니엘이 사라진 복도를 노려보듯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자는 메이브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한참 동안 잠든 메이브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잠버릇에 이불을 발로 차 한쪽으로 밀어낸 것을 다시 제대로 덮어 줄 무렵이었다.

똑똑.

규칙이 있는 것처럼 무겁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다비드는 또 다니엘이 찾아왔나 싶어 인상을 찌푸린 채 방문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쉬이 좋은 말로 보내지 않겠다 생각했다. 이참에 기를 죽여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뭡니까?”

방문 앞에는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알란이 서 있었다. 다비드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눈앞에 서 있는 알란의 모습을 한번 훑어보았다.

알란은 그런 다비드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거칠게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듯 헤집고는 다비드의 손에 지키지 못한 자들이 끼고 있는 검은색 목줄을 쥐여 주었다.

“이건.”

다비드가 손에 들린 검은색 목줄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알란을 쳐다보았다. 그에 알란 역시 어깨를 살짝 으쓱하며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이 목줄을 끼고 있는, 지키지 못한 자가 다시 신전으로 끌려온다고 말했지?”

“아아.”

다비드는 한 손에 검은색 목줄을 구기듯이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보아라, 다니엘이 말하지 않는다 해도 저 멍청한 사냥개가 좋은 정보를 물어오지 않았나.

결국 신은 다비드에게 손을 들어 주었다.

“그래서, 확인은 해 본 건가?”

“신전을 벗어난 호수 끝에서 이 목줄을 집어 던져 봤는데, 딱히 신전으로 끌려 당겨지지는 않던데.”

“착용한 자가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않나?”

“내가 그렇게 멍청한 것 같아? 당연히 산에서 토끼 한 마리를 잡아 목줄을 걸고 놓아줬지.”

“그래서?”

“호수 건너 반대편 숲으로 잘 도망가더라고.”

알란의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다비드의 얼굴이 굳어지는 듯싶더니 곧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은 것처럼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토끼는?”

“한참을 지켜봐도 신전으로 끌려오지 않았어. 나중에 다시 잡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았고.”

알란이 하는 말뜻은, 지금까지 사람 좋은 척하고 자신을 살려 달라 말하던 다니엘이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끌려오는 것이 이상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믿었다는 게 멍청한 거였다.

다비드는 작게 헛웃음을 짓는 듯싶더니 눈앞에 있는 알란을 쳐다보았다.

“또 다른 건?”

“나한테 뭘 맡겨 놓은 것처럼 말하는데.”

“더 없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와.”

“이봐!”

알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으나, 다비드는 들고 있는 목줄을 움켜쥔 상태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러자 쿵쿵 소리 내며 알란이 문을 두드리다 열리지 않는 것에 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갈 때까지, 다비드는 문 앞에서 알란이 문을 못 열게 꽉 쥐고 있었다.

그리고 알란이 사라진 후에야 움켜쥐었던 목줄을 내려다보았다.

“짜증 나는군.”

하나부터 열까지, 이곳에서 제대로 된 정보라고는 직접 찾지 않는 이상 알기는 힘들 것 같았다. 저 멍청한 놈이 자신의 지키지 못한 자를 버린 것이 다행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돌아다니면 그자가 피해를 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는지도.

그렇다 해서 다비드가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것이 아니라며 메이브에게 올 것 같으니 말이다.

다비드는 움켜쥐고 있는 목줄을 메이브가 보지 못할 곳에 숨겨 놓고, 의자를 끌고 와 깊게 잠든 메이브를 내려다보았다.

‘호수 끝에서 이 목줄을 집어 던져 봤는데, 딱히 신전으로 끌려 당겨지지는 않던데.’

‘토끼 한 마리를 잡아 목줄을 걸고 놓아줬지.’

‘한참을 지켜봐도 신전으로 끌려오지 않았어.’

메이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바로 전에 알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비드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목줄을 손끝으로 살살 문질렀다.

메이브에게 이 신전에서 도망간다 해도 끌려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니면 이 이야기를 속으로 숨긴 채 말하지 말지에 대해 고민이 되었다.

결국 다비드는 그 끝에 메이브에게 이 말을 하지 말자고 혼자 답을 정했다. 만약 이 이야기를 하고 나면 메이브가 어디로 도망가 버릴지도 몰랐다.

지금은 메이브가 다비드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밖으로 나간다면 그건 다르게 변할지도 몰랐다. 다비드가 자신의 직위로, 메이브에게 보다 편하게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으나 그걸 거부했으니 말이다.

“메이브, 당신은 도대체 누굽니까.”

악몽처럼 찾아와 미친 듯이 웃었던 그 모습이 맞는 건지, 아니면 토끼처럼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꾹꾹 숨기려 하는 모습이 맞는 건지. 그 둘 중 무엇이 맞을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다비드는 왜인지 후자가 더 자신이 알고 있는 메이브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차라리 메이브가 정말 돈도 없고 집도 없는 노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메이브를 돈을 주고 사서 화려한 철창 안에 갇힌 건지도 모르게 가둬 놓았을 테니 말이다.

“……메이브, 에녹 지역에서 왔다 했으니.”

에녹 메이브. 아직 에녹 지역에서 평민으로 성도 없어 에녹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다른 성이 있는지, 그도 아니라면 에녹가의 장자일지도 몰랐다.

다비드는 수많은 생각과 가설 중에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만에 하나, 그럴 리 없다 해도 정말 메이브가 에녹가의 장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에녹 메이브.”

다비드는 천천히 메이브의 이름을 혀로 눌렸다. 이 앞에 자신의 성인 실베스타를 붙여 실베스타 메이브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비드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신에게 바쳐졌다라…….”

웃기지 않은가. 이 미쳐 버린 신전에서 신에게 바쳐져 열광시킨다는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의미가 너무 와닿아서 다비드는 말없이 메이브를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손을 움직여 목선을 지나 살이 조금 빠진 메이브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듯 매만졌다.

“메이브, 제게서 도망칠 수 없을 겁니다.”

메이브가 원치 않는다 해도, 다비드는 끝까지 메이브를 찾으리라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다짐했다. 그 끝에 메이브가 싫다 할지라도 말이다.

다비드는 굳게 감겨 있는 눈두덩에 숨어 있는 그 화려한 자색의 눈을 떠올렸다. 눈물을 머금고 공포를 머금은 상태로 오롯이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을 말이다.

“그러니.”

다비드는 상체를 느긋하게 숙여 메이브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 눈, 그 귀로 오롯이 저와 제 목소리만 들어 주세요, 메이브 님.”

어두운 밤이 시나브로 지나갔다. 다비드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이 틀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전날 교육을 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방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상자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던 다비드는 결국 작은 소리를 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네.”

상자 안에는 그 무엇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늘 밤은 지키지 못한 자를 쉬게 해 준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돌아올 교육이 더 심한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다비드의 웃음은 비뚤어졌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단 하나 메이브 빼고는 이곳의 모든 게 진저리가 났다.

‘5일째.’

벌써 이곳에 온 지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아 이제는 아쉬울 지경이었다.

다비드는 손을 펴고 손가락을 느리게 움직였다. 앞으로 많아야 이틀. 그게 메이브와 다비드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비드는 나중에라도 메이브와 함께 있을 생각이었으나, 눈앞에서 누가 데려가도 모를 정도로 자는 메이브가 언제, 어디로 숨을지 알 수 없으니 잠시는 떨어져 있어야 했다.

“……메이브 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다음 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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