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첫 번째 밤
“앞으로 성년식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만들 때까지 교육을 받게 됩니다.”
“교육…… 교육이 무엇인지는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작게 중얼거리며 상상해도 성년식을 치르기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조금도 알 수가 없었다. 다니엘의 등 뒤를 어정쩡한 자세로 따라 걸으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미리 알게 되면 성년식을 치를 자격을 만든다는 의미를 잃게 되니, 말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그의 등 뒤를 따라 걸었다. 다리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허벅지의 살결 위로 오스스 소름이 돋아났다. 덜렁거리며 흔들리는 성기는 무언가를 받쳐 주는 것이 없어 불편한데, 그런 자신의 등 뒤에서 따라오던 다비드가 옆에 서며 같이 걸었다.
“지금, 처음으로 자격을 만드는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것인데 그것 또한 알려 주실 수 없습니까?”
다비드의 덤덤한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수많은 문 앞에 신관들이 서 있었고, 문이 열리며 자신과 똑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방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무릎까지 옷이 가려져 있었고, 어떤 사람은 티셔츠 한 장만 입은 것처럼 성기를 드러낸 상태로 방 밖으로 나왔다.
사람의 키와는 상관없이 모든 옷의 기장은 동일한 것 같았다.
“쟁취하세요.”
“예?”
다니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주변을 둘러보던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앞에서 걷던 다니엘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자신과 두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가지고자 하는 것을 쟁취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키세요.”
“그게 무슨 소리…….”
“쟁취하지도, 지키지도 못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 도착했으니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퍼뜩 정신을 차려 다니엘의 등 뒤를 바라보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커다란 문이 보였다.
다비드가 먼저 걸음을 옮기며 걸어가 손을 내밀어 문을 열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았다. 빨리 오라고 하는 것 같아 주춤, 다리를 움직여 다니엘을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순결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누군가의 순결을 빼앗아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
작으면서도 빠르게 속삭여 주는 다니엘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작은 미소가 머금어지더니 자신을 보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메이브 형제님께 신의 축복이 찾아오기를.”
“메이브 님?”
주춤,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옮기며 웃고 있는 다니엘을 한번 쳐다보다가 자신을 부르는 다비드에게 걸어갔다. 반쯤 열려 있는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원형의 홀이 보였다. 사방은 벽 대신에 창문으로 되어 있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은 홀 안을 따듯하게 비추었고, 고개를 들어 올려 정면에 위치한 벽 끝부분에는 처음에 몸을 씻어 냈던 분수대에 있던 석상과 비슷하게 생긴 석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쥔 다비드가 구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듯하면서도 뜨거운 듯한 체온에 움칠, 몸을 떨었다.
그런 자신의 몸을 붙잡으면서 구석으로 자신을 데려다 놓은 다비드는 바로 옆의 벽에 기대어 석상 쪽을 바라보았다.
“…….”
마지막, 홀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다니엘이 했던 말뜻을 알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교육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성년식을 치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고 뒤가 찜찜할 정도로 무언가가 이상했다.
성기를 덜렁거리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로 홀이 어느 정도 가득해졌다. 이 많은 사람이 전부 성년식을 치른다는 것에 놀라기도 전에, 천천히 열려 있는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앞으로 일주일간 성년식을 치를 여러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닫혀 있는 문 앞에 서 있던 신관이 천천히 하얀색 카펫을 밟으며 석상 앞까지 걸어갔다. 구석진 벽에 기대어 신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석상 앞에 멈추어 선 신관은 몸을 돌려 주변을 천천히 훑어보듯 둘러보았다.
“먼저 일주일간 성년식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교육을 하게 된다는 것은 여러분을 담당해 주는 신관에게 들었을 겁니다.”
천천히 내뱉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힘 있게 홀 안에 퍼져 나갔다. 기대어 있던 등을 살짝 떨어트리고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려 하자 그런 자신의 앞에 다비드의 팔이 뻗어져 앞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다비드 님?”
“우선, 첫 번째 교육이 무엇인지 궁금할 겁니다.”
자신이 다비드를 의아하게 쳐다볼 때도 신관의 목소리는 홀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커다란 돔으로 생긴 건물의 모양 때문인지 신관의 목소리는 크고 넓게 울려 메아리처럼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여러분께 일주일 동안 성년식의 자격을 얻을 교육을 진행하기 전, 주의 사항을 먼저 말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신관이 천천히 품 넓은 소매에서 긴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두 손으로 펼친 양피지를 눈으로 읽는 듯싶더니 곧 입을 벌려 그 안의 내용을 말해 주기 시작했다.
“하나,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반박 또는 박설은 받지 않습니다.”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반박하는 걸 받지 않는다는 말이 이상했다. 저 말은 분명, 교육이 시작하는 그 순간 안 좋은 말이 나온다는 것과 똑같았다.
“둘, 성년식을 진행하는 동안 여러분들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신전에서 지급해 주는 옷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전부이며, 해당 옷은 매일 빨아서 다시 입어야 합니다. 옷이 찢어지거나 너무 더러워질 경우, 지급해 준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이곳에 오기 전 음욕을 덜어 내는 방에 들어가 자신의 더러운 하얀 액을 잔에 담는 것을 매일 아침 반복해야 합니다.”
신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옷은 어떻게 이해를 해 보려 해도, 아까 그 방 안에 들어가 잔에 있는 성수를 마시고, 그 안에다 혼자 자위를 해 정액을 넣는 걸 매일 아침 반복해야 한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셋, 식사 시간은 지키도록 하며, 지키지 못할 시엔 문제를 고칠 때까지 벌을 받게 됩니다.”
“벌?”
신관의 말을 들으며 멍하니 작은 목소리로 그 말을 중얼거렸다. 어쩌다 일이 있거나 정말 실수로 늦잠을 잘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벌을 받는다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넷,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위치가 정해집니다. 그 후 위치는 바꿀 수 없으니, 첫 번째 교육에서 제대로 정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합시다.”
신관의 말에 다니엘이 말했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순결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누군가의 순결을 빼앗아야 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전부 남자였다. 남자의 순결을 빼앗으라는 말은 오직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첫 번째 교육에서 말하는 정해진 위치는, 박을 건지 아니면 박힐 건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쟁취하지도, 지키지도 못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다니엘의 말이 신관의 말을 듣다 보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 자신에게 최고의 힌트를 알려 줬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성년식이 이렇게 진행된다는 말은 놀라우면서도 소름 끼쳤다.
“다섯, 일주일. 성년식을 치르는 날까지 해당 교육과 규칙을 제대로 이수해 주세요. 해당 교육과 규칙, 주의 사항을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징벌을 받게 됩니다.”
신관은 펼쳤던 양피지를 말아 다시 소매 춤에 집어넣고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런 모습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고, 입 안은 바싹바싹 말라왔다. ‘벌’이 무엇인데 계속 강조하는지, 도대체 교육은 무엇을 교육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일주일간 조용히 지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해당 주의 사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성년식을 포기하고 돌아가면 됩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신관의 말에 아무도 성년식을 포기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홀에 만족했는지 신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아무도 없으니, 주의 사항은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첫 번째 교육하는 수업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관은 웃는 얼굴로 홀에 중간, 그리고 벽에 서 있는 사람을 한 명 한 명 놓치지 않고 지켜보듯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러다 문득, 자신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느껴졌을 때 다물어져 있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될 룸메이트를 만났을 겁니다.”
신관의 말에 메이브가 고개를 살짝 돌려 옆에 서 있는 다비드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신관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그자가 누구인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메이브는 다비드를 쳐다보던 시선을 돌려 다시 신관을 바라보았다.
“그자의 순결을 빼앗으세요. 자신의 순결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그자를 억눌러 제 순결을 지켜야 할 겁니다.”
신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홀 안은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첫 번째 주의 사항의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주변이 소란스러웠으나, 그 누구도 신관에게 따질 수가 없었다.
분명 신관은 조금 전 주의 사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성년식을 포기하라고 선택지를 주었으나,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성년식을 진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솔직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성년식을 치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 존중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였다. 그러니 선택지를 준 것처럼 말했다 한들, 그것은 결국 이미 정해진 선택지를 선택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 거였다.
“그자의 순결을 쟁취해야 할 겁니다. 자신의 순결을 지키지 못한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죠.”
고민하며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천천히 말하던 신관은 마치 타락한 사람처럼 잔뜩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또한.”
신관의 말이 이어지자, 당황해하며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신관을 바라보았다.
“순결을 쟁취하거나,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과 같이 같은 방에서 생활하게 될 겁니다.”
신관은 그 말을 끝으로 석상 근처에 있던 나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 모습이 꼭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처럼 보였고, 신관이 아니라 유흥을 지켜보는 악마에게 심장을 판 것같이 타락한 것처럼 보였다.
메이브는 한편으로 신관의 말이 이상했다. 순결을 쟁취하거나, 또는 빼앗겨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있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만약 빼앗기게 되거나, 쟁취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거였다. 애초에 신전의 규칙 또한 이상하기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
“그래서, 제대로 들었습니까?”
귓가에 다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메이브는 주변을 살피는 것이 더 급했다. 일단 메인수인 데이비드가 이곳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분홍색 머리카락을 아무리 찾아도 그렇게 튀는 색이 지금 옆에 서 있는 다비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시종은 오늘 실베스타 데이비드. 메인수도 같이 성년식을 치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분홍색 머리카락은 다비드를 제외하면 단 한 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메이브.”
딱딱한 목소리로 경칭이 아닌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는 것에 놀라 주변을 살펴보던 메이브가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살짝 웃고 있는 다비드가 자신의 가슴 쪽을 막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리고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다비드 님?”
다비드, 다비드. 분명 처음 들었던 이름인데 이상하게 익숙했다. 아까 방에서 다비드의 이름을 듣고 나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이 난장판인 상황에서 이상하게 그 이름이 거슬렸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겁니까?”
“……예?”
“지킬 겁니까? 아니면 바칠 겁니까?”
덤덤하게 말하는 다비드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주춤 뒷걸음질하자 바로 등 뒤에 딱딱한 벽에 가로막혀 더는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눈앞에 있는 다비드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다 천천히 목구멍에 누르고 있던 말을 꺼냈다.
“혹시 다비드 님…….”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데이비드의 모습과 지금의 다비드의 모습은 달랐다. 소설책에 있던 삽화에 수의 모습은 분명 선이 조금 가늘었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몸은 운동을 많이 한 것처럼 벌어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키도 분명 메인수인 데이비드가 집착광 공인 메이브보다 작다고 쓰여 있었는데, 지금 앞에 있는 다비드는 자신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야 했다.
분명 데이비드가 아닐 텐데 이 안에 분홍색 머리의 존재가 없다는 말은, 눈앞에 있는 다비드가 데이비드라는 거였다.
“……실베스타 가문의 데이비드 님인가요?”
말끝이 살짝 떨려 왔다. 다비드의 등 뒤로 사람들이 서로 몸을 엉겨 붙으며 싸우고 있었다. 그나마 다비드의 듬직한 몸과, 원래 공이었던 만큼 몸에 근육이 잡혀 있는 자신에게는 아직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그게 중요합니까?”
눈앞에 있는 다비드의 눈꺼풀이 살짝 일그러지더니 천천히 풀어졌다. 한 걸음, 몸의 틈이 없이 붙은 다비드의 숨결이 이마에 닿았다. 어깨를 살짝 움츠리려다 꼿꼿하게 펴고 있는 상태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예.”
중요했다. 만약에 메인수라고 하면, 자신이 운이 나쁘다 못해 저 깊은 땅으로 처박힌 것과 같았다.
지키든, 바치든 다 떠나서 다비드의 품 안에서 도망갈 수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이 돌고 돌아 방으로 돌아가면 다비드와 한방에서 일주일을 지새워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비드가 데이비드라고 대답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최대한 친절하게 하자고 생각할 뿐이었다.
“……맞습니다.”
다비드의 눈꺼풀이 꿈틀거리며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을 알려 주자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러면 왜 데이비드가 아니라 다비드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지킬 겁니까? 바칠 겁니까?”
“……지킨다는 건 제가 다비드 님한테 제 순결을 지키는 것이겠고…… 바치는 것은 제가 당신한테 바친다고 말하는 건가요.”
“신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다비드의 말에 메이브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이 지킨다고 말하면 저 큰 다비드가 다리를 벌리는 걸까, 잠깐 고민했다.
메이브는 제가 보았던 원작과 달리 몸집이 커진 다비드의 몸을 잠시 쳐다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큰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에서 불룩불룩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만지면 딱딱할지, 부드럽게 살결이 쥐어질지 궁금했으나 굳이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당연히.”
천천히 벌어지는 입에서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브, 네가 내게서 순결을 지킬지, 아니면 내게 순결을 바칠지 그것을 묻는 거지.”
“……뭐라고요?”
메인수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어지기 힘든 말이었다. 놀란 눈은 커다랗게 떠지고 벌어진 입술 끝은 파르르 떨려 왔다. 다시 한 걸음 물러나고 싶었으나 발뒤꿈치가 벽면에 닿으면서 몸을 작게 움찔 떠는 것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어차피 답은 하나라는 걸 알고 있잖습니까?”
“……왜 그 답이 제가 다비드 님께 안긴다는 걸로 가는 거죠?”
다비드와 자신의 세상만 동떨어진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니 고통스러운 비명과 울고불고 난리 치는 울음소리, 그리고 안도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잡아먹혔고 누군가는 살았다는 기쁨의 환호성과도 같았다. 너무도 엉망진창이었다. 그 모든 소리가 꼭, 진흙탕 속에 빠져 버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감옥에 갇힌 기분을 들게 했다.
“다비드 님과 저, 둘 다 순결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서로 지킬 수 있을 텐데요?”
이해가 가지 않아 다비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비드는 한참 동안 자신의 눈을 바라보더니 몸을 살짝 비틀며 한쪽을 가리켰다. 다비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아까는 없었던 하얀 천에 검은색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교육이 끝나기 전까지 쟁취한 자와 지키지 못한 자를 정하지 못한다면, 징벌을 받게 된다.】
“저건…….”
“저것이 규칙이니까 둘 다 지킬 수는 없습니다.”
메이브는 순간 다비드의 목소리에 아까 신관이 말했던 규칙을 떠올렸다.
‘다섯, 일주일. 성년식을 치르는 날까지 해당 교육과 규칙을 제대로 이수해 주세요. 해당 교육과 규칙, 주의 사항을 제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면 징벌을 받게 됩니다.’
웃기게도, 첫 번째 교육에서 둘 다 순결을 지킬 수 없었다. 신관이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주의 사항을 제대로 따라 주지 않은 거였고, 그렇게 된다면 징벌을 받게 된다는 말이었다.
결국 지금 눈앞에 있는 메인수인 다비드가 아니면, 자신이 바닥에 깔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상황으로 볼 때 다비드는 쉬이 깔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의 눈은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자신이 조금만 긴장을 놓치면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깔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어떻게 해서 다비드의 힘을 억눌렀다고 해도, 억지로 그를 탐하면 그 뒤에 후유증이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다비드는 글자가 적혀 있던 천을 가리키던 손으로 자신의 얼굴 옆을 내려쳤다. 쿵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손바람에 날려 작게 흔들렸다.
놀란 마음에 눈은 커다랗게 떠지고, 숨은 한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칠 건지, 지킬 건지.”
정해져 있는 답이었지만 억울했다. 분명, 실베스타 데이비드는 메인수였다. 공이 아니라 수였는데, 저 몸부터 행동이 어떻게 수라고 소설에 적혀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메이브가 정말 또라이였기에 저런 공처럼 힘이 강하고 예쁘면서도 잘생긴 다비드를 깔고 뭉갠 걸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었다면 운이 나쁘게 다비드의 룸메이트가 자신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소설 속에서 메이브가 다비드를 만난 건 신전 그 이후의 이야기였던 것 같으니 말이다. 소설 속에서도 신전에 관한 이야기가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니 지금 제가 다비드의 룸메이트가 되었으나, 원래였다면 다른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말 또라이였던 원래의 메이브가 저 큰 다비드를 억누르고 괴롭혀 망가트렸는지도 몰랐다.
“……왜 제가 굳이 순결을 뺏겨야 하는 거죠? 제가 당신을 안을 수도 있지 않나요?”
메이브는 자신이 오히려 주겠다고 말하는 게 이상할 거라 생각하며, 눈앞에 있는 다비드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제가 당신한테 깔립니까?”
그 말을 꺼내는 다비드의 표정이 어쩐지 어이없다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메이브도 그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눈앞에 있는 다비드는 제 몸과 다르게 덩치가 훨씬 컸으니 말이다.
만약 몸만 본다면 순결을 빼앗기는 것은 자신일 것이 분명했다. 또한, 힘을 쓴다고 해도, 이길 것 같지도 않았다.
“……순결을 빼앗기면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다비드 님께 순결을 그대로 드릴 것 같나요? 그리고, 다비드 님이 말씀하시는 선택지가 결국은 같은 말인데, 제가 정하면 무엇이 달라지는 겁니까?”
어차피 바칠 건지, 지킬 건지 묻는다는 것은 자신이 바친다고 말해도 자신을 깐다는 말이었고, 자신이 지킨다고 말해도 강제적으로 한다는 말과 같았다.
“합의하고 하는지, 아니면 강제로 하는지 달라질 뿐이죠.”
덤덤하게 대답하는 다비드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던 것도 잠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그의 몸과 자신의 몸이 틈 없이 붙었다.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단단한 다비드의 다리에 놀라 두 다리를 오므렸지만, 그마저도 틈을 벌려 한 번에 힘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답은?”
위치에 따라서 차별이 있다는 말은 지켰는지, 아니면 지키지 못했는지에 따른 차별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번 정해진 위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이번만 당하고 말자는 것이 아니라 당하고 나면 그 뒤는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을 겪어도 바꿀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다비드 님,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순결을 빼앗기면 어떤 일이 있을지 저도, 다비드 님도 모르지 않나요?”
주변에 분홍색 머리카락이 없고, 어디를 둘러봐도 없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다비드가 메인수라는 것과 같았다. 이미지가 다르다 해도, 그가 메인수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 자신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다비드에게 실베스타 데이비드냐 물었고, 그가 그렇다고 대답했어도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만약 눈앞에 있는 다비드와 원래 메인수의 이미지와 다르다 할지라도, 만약 정말 그가 데이비드가 맞다면, 그를 강제로 어떻게 해서라도 깔게 되었을 때 분명, 그의 마음 안에 자신에 대한 원망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끝은 그 19금 신이 가득한 소설 속처럼, 자신의 끝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죽고 싶지 않아 등장인물과 만나기 싫었고, 죽지 않기 위해 잘해 주자고 생각했다. 그렇다 해서 깔리는 것은 아플 것 같아 고민되는 것이 맞았다. 지금까진 보는 것을 좋아했지,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약속 하나를 하겠습니다.”
“……약속이요?”
“메이브, 당신의 말대로 무언가 손실이 있거나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제가 지켜 주는 것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국, 모든 것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메이브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제게 바친다면,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아프지 않게. 그 말이 자신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주위에서는 고통 섞인 비명들이 뒤섞여 들려왔다.
“또한, 그 뒤에 당신이 받을 차별이 무엇이라도 제가 도와주겠죠.”
“……그 말, 믿어도 되는 건가요?”
솔직히 차별이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지 모르기 때문에 선뜻 다비드에게 순결을 바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정황상으로는 다비드가 데이비드인 것은 맞는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아니라면 자신만 병신 같은 짓을 한 게 아닌가.
“믿지 못한다고 해도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잖습니까?”
너무 당당하게 말하자 할 말이 사라졌다. 그의 말이 맞았다. 소설에서는 성년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성년식을 치르고 난 메이브가 그 뒤에는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정도로 나왔을 뿐이다. 그 뒤에 메인수인 데이비드에게 집착했다는 정도로 나왔기에,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데이비드가 왜 수가 되었는지에 대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무심하면서도 저 연녹색 눈에서는 작은 희열을 품고 있었다. 왜,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다비드가 미친 것이 아닌 이상, 지금 상황에서는 기뻐할 일도, 즐거워할 일 또한 없었다.
“…….”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답을 할 수가 없다. 눈앞에 있는 다비드는 이제 만난 지 겨우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호구이고 멍청하며 정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메이브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순결을 지키고 싶다 하더라도, 저보다 훨씬 큰 다비드가 저를 억눌러 깔아 버리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비드의 말처럼,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거였으니 말이다.
어차피 순결을 바치는 것 빼고 다른 것을 선택했을 때 제게 후회밖에 없다면, 차라리 저 말래도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몰랐다.
“제가 바친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게 증거를 주실 수 있어요?”
“증거?”
자신의 말을 따라 하는 다비드의 말투에서 어떤 증거를 원하느냐고 묻는 것처럼 들려왔다. 만약 다비드가 메인수가 맞았다면, 집착광공의 미친 또라이 메이브가 메인수에게 깔리는 거였다.
이야기가 완벽하게 틀어지니, 자신은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메인수가 아니라 해도 언젠가 이것을 빌미로 도와 달라고 말하면 한 번쯤은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신 이름, 성까지 저한테 제대로 말해 주세요.”
고개를 똑바로 들고 자신의 성기를 허벅지로 누르고 있는 다비드를 올려다보았다. 살짝 몸을 비틀어도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다리 안에 들어가 있는 다비드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그것으로 증거라 할 수 있나?”
솔직히 다비드의 말은 맞았다. 겨우 상대방의 이름을 듣는 것으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그의 이름을 들으면 그가 메인수인지, 메인수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다비드가 그 입으로 ‘실베스타 데이비드’라고 말한다면. 더는 메인수가 어디 있는지 찾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혹시나 그가 데이비드가 아니라 해도, 이 신전에 메인수가 없다는 뜻이니 메이브에게는 아쉬운 것은 없었다.
아까 자신이 물었던 것에 다비드가 대답한 것은 맞았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본인 입으로 이름을 말해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도, 제 순결을 바치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내가 아쉬울 것 같은데. 난 네 이름을 다 알지 못하니까.”
맞는 말이었다. 이름을 알려 달라 했을 때 전체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지금 다비드의 이름이 거짓된 이름이라는 뜻과 같았다. 거짓된 이름을 쓰는 자가, 다른 사람이 진실한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멍청하게 자신은 지금 원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언젠가 다비드 님이 알아야 하는 일이죠. 저는 지금 제가 믿을 수 있게 다비드 님의 제대로 된 이름을 증거로 듣고 싶은 거니까요.”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고민이 되는지 살짝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건강해 보였고, 몸과는 다른 얼굴도 솔직히 취향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팬심 같은 느낌이었다. 저런 얼굴을 가진 사람을 깔고 싶다든가, 아니면 깔리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해 본 적이 없었다.
“실베스타 데이비드.”
천천히 귓가에 박혀 오는 이름이, 두근두근 뛰고 있던 심장을 밑으로 끌어 내리는 것 같았다. 눈앞에 있는 다비드가 데이비드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가 메인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자신의 목숨 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번 들은 이름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입으로 내뱉은 만큼, 눈앞에 있는 다비드는 결국 제가 찾고 있던 실베스타 데이비드. 이 소설의 메인수였다.
“……왜 다비드라고 말했는지도 알려줄 수는 없겠죠?”
“집에서 불리던 애칭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메이브 당신이 내게 순결을 바친다고 해석해도 되는 겁니까?”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떨려서? 그건 아니었다. 이제 진짜 잡아먹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메인수라는 것을 알았으니 깔리는 것은 당연했고, 이제 와서 했던 말을 주워 담아 거짓말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데이비드라는 이름과 애칭인 다비드라는 이름이 너무나 달라서, 메인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을 욕했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게 메인수의 애칭이라고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바보 같았다.
애초에, 이 신전 안에 연분홍색 머리카락은 눈앞에 있는 다비드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부터 문제였는지도 몰랐다.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 말밖에 없었다.
“처음이니까…….”
왠지 이 말을 꺼내는 것이 가장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목덜미가 뜨듯해지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다비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약속했던 것처럼 아프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몸 돌려.”
존댓말을 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반말을 내뱉는 모습은 왜인지 조금 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을 빨리 헤쳐나가고 싶은지도 몰랐다.
“…….”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있던 단단한 허벅지가 멀어졌다. 성기에 문질러졌던 단단한 허벅지 때문인지, 아니면 메이브의 몸이 쾌감에 약한 건지, 죽어 있던 성기가 머리를 조금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한숨을 목구멍 깊이 내리누르며 한 걸음 물러나 자유로워진 몸을 가볍게 움직여 벽에 몸을 돌렸다. 하얀 벽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 누르며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벽을 짚었다.
“한 손으로 옷 들여야지. 내가 잘 보이게.”
“안 들면…….”
“어차피 순결을 바쳐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허벅지에 닿은 거친 손가락이 라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자, 그 손끝에 걸린 하얀 옷 끝이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둥글게 튀어나온 엉덩이뼈를 지나 작게 들어간 허리에 닿는 뜨거운 손바닥이 간지러우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손가락으로 살살 허리 라인을 문지르면서 옷을 말아 올리는 행동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곤 딱딱한 벽에 이마를 문질렀다.
“하…….”
한숨이 작게 내쉬어졌지만 숨을 다시 들이켜면서 벽을 짚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말려 올라간 옷은 더러워지거나 찢어지면 자신의 손해였기에 둘둘 돌려 쇄골 근처까지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얀 옷에 감추어져 있던 붉은 기가 약간 돌고 있는 유두는 꼭, 금방 열린 과실 같아 보였다. 메이브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내쉬자,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에 작고 탐스럽게 튀어나온 유두는 하얀 옷에 감추어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허리가 생각보다 가는데.”
옷 위에 드러난 등 근육은 확실히 운동을 한 것처럼 툭 튀어나온 부분도 있었으나, 쩍 벌어진 어깨와 다르게 밑으로 내려갈수록 허리가 움푹 들어갔다. 등줄기를 따라 휘어진 허리 라인을 다비드가 손끝으로 문지르자 놀란 듯 어깨를 움츠리며 떠는 하얀 몸을 숨죽이며 내려다보았다.
허리를 지나 튀어나온 골반과 불룩한 엉덩이는 꼭, 커다란 복숭아를 붙여 놓은 것처럼 살짝 붉은빛을 머금고 있었다.
“……옷 내려가지 않게 잘 잡고 있어.”
귓가에 다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뜨듯해진 목덜미 뒤로 숨결이 내려앉았다. 간지러우면서도 그 부분이 더 열에 들뜨게 만드는 것 같았다. 숨을 멈추며 목을 움츠리자, 부드러우면서도 축축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읏…….”
“최대한 아프지는 않게 해 줄게.”
존댓말과 반말이 교차하였다. 어떨 때는 딱딱하게 들리면서도 또 어떨 때는 저렇게 툭툭 던지는 반말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꼭, 밤에만 성격이 바뀌는 게 저런 것을 가리키며 하는 말 같았다.
이제 곧 원작 메인수에게 잡아먹힌다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원작이 시작하기 전에, 원작을 파괴해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
목덜미에 쪽쪽 가볍게 내려앉는 입술이 간지러워 옷자락을 잡고 있는 손끝에 힘을 줘야 했다. 손끝은 파르르 떨렸고, 힘이 들어간 끝은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려 갔다.
감고 있는 눈 또한 파르르 떨려 왔고, 목덜미에서 천천히 내려가는 숨결에 허리를 작게 떨 수밖에 없었다.
허리를 붙잡으며 느릿느릿하게 문지르는 그 손길은 마디마디와 손바닥이 거칠었다. 굳은살이 박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눈을 질끈 감은 상태로 숨을 슬슬 들이켜며 한 번씩 숨을 멈춰야 했다.
“엉덩이에 너무 힘주지 마. 손가락이 들어갈 때 아플 겁니다.”
움푹 들어가 있는 척추 선을 따라 다비드의 입술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하얀 피부를 타액으로, 축축한 붉은 살덩이로 핥을 때마다 놀란 듯 떨리는 몸이 혀를 따라 느껴졌다.
다비드의 다리가 서서히 굽혀지고 허리 라인을 따라 내려가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 끝에서 멈추었다.
“……후.”
열기가 섞여 있는 더운 숨결이 엉덩이 골 사이에 내려앉는 것이 느껴지자, 절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둥근 엉덩이의 바깥쪽 부분이 움푹 들어가며 근육이 도드라졌다.
허리를 문지르던 손이 몸을 쓸어내리며 엉덩이에 닿았을 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자…… 잠깐만.”
“어차피 잠깐만 참으면 그렇게 안 아픕니다.”
본인이 안 박힌다고 막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둘 다 안 하면 안 될까 생각하면서도 그러다가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서웠다.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며 문양이 가득한 벽면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옷자락을 움켜쥐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엉덩이, 힘 풀라고 말했는데.”
“윽……!”
둥근 엉덩이를 깨무는 행동에 허리를 움찔 떨며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메이브의 하얀 엉덩이 위로 이빨 자국이 새겨지고 엉덩이의 근육이 풀어졌을 때, 다비드는 손으로 여리고 말랑거리는 살을 움켜쥐며 벌렸다.
“흡!”
놀라 숨을 삼키는 소리가 다비드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벌어져 있던 어깨가 왜소해 보일 정도로 움츠러들었고, 엉덩이 위로 상체가 작게 떨렸다. 무서운지 하얀 살을 벌려 드러난 구멍이 뻐금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처음이라고 말한 것이 거짓은 아닌 듯, 꽉 다물어져 있는 붉은색 구멍이 보였다.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덤덤한 목소리가 몇 번을 귓가에 닿았지만, 그래도 처음이라는 공포가 온몸을 잠식해 갔다.
원래 처음이 힘든 거라고 모두가 말을 한다. 처음만 힘들 뿐, 다음은 쉽다고. 하지만 그 말은 말만 쉬운 것이고, 막상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지금도 그랬다. 자신은 이미 바친다고 말했으나, 막상 곧 잡아먹힌다는 생각에 깊고 깊은 공포가 발끝부터 천천히 감겨 와 온몸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아!”
놀란 탄식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메이브의 엉덩이를 벌려 붉은색 구멍을 혀로 핥은 다비드는 쭉 뻗은 혀로 구멍을 두드리며 눌렀다.
주름 사이사이를 핥으며 입술을 오므려 빨아들이기를 반복했다. 메이브의 구멍이 움찔움찔 떨려 왔고, 엉덩이에도 힘이 들어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움찔댔다.
다비드의 손이 메이브의 살결을 힘주어 움켜쥔 상태로 구멍 주변을 혀로 충분히 핥은 뒤, 반쯤 굽히고 있던 다리를 들어 올렸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 주변을 손등으로 거칠게 문지르고, 한 손으로 엉덩이 골 사이를 비비대며 밑으로 내려갔다.
“자…… 잠깐만, 잠깐만요. 다비드 님…….”
다비드의 손끝이 구멍에 닿았을 때 눈앞이 캄캄해졌다. 진짜 저곳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무서워 온몸이 떨려 왔다.
“아니…… 아니, 잠깐. 누르지 마시고!”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지는 않았으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손끝으로 구멍을 눌렀다가 떨어트리기를 반복했다. 그게 느낌이 이상해서 어쩔 줄 모르며 몸을 살짝 비틀어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눈매가 반쯤 내려앉아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얼굴과는 다르게, 휘어 버린 눈꺼풀 안에 있는 연한 녹색 눈동자는 어둡게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 속에 보이는 열기와 희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살짝 붉어진 볼과 위로 휘어진 입꼬리가 얼마나 다비드가 즐거워하는지 빤히 보였다.
“풀어야 아프지 않을 텐데. 아픈 것 좋아합니까?”
“아…… 아픈 건 싫어하는데…….”
“그러면 왜 그럽니까?”
“느…… 느낌이 이, 이상해서…….”
“흠…….”
이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곳에 들어간다는 게 무서웠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구멍을 두드리는 손끝이 꼭 입을 벌린 맹수처럼 느껴졌다.
낮게 고민하는 모습에 긴장하며 다비드를 바라보자, 그의 얼굴이 천천히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왔다.
“다, 다비드 님?”
갑자기 얼굴을 내미는 행동에 고개를 뒤로 물리려 하자, 자신의 턱과 함께 볼을 움켜쥔 단단한 손아귀에 도망갈 수조차 없었다.
부드러운 볼을 누르는 억센 손길에 치열이 억눌려 아팠다. 입을 벌린 상태로 몸을 떨자 다비드의 얼굴이 코끝이 서로 스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면 긴장 좀 풀어 드리죠.”
“……뭐!”
자신의 입술과 맞닿은 거친 입술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몸은 갑자기 돌려져 다비드의 가슴과 자신의 가슴에 부딪쳤고, 엉덩이를 누르는 손목과 구멍을 두드리는 손길은 여전했다.
마주 보고 있는 연녹색 눈동자는 너무 진득한 감정이 뒤섞여 있어 어둡고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벌어진 입 안으로 축축하고 두꺼운 살덩이가 들어왔다.
“읍!”
치열을 핥으며 여린 살을 혀로 핥는 행동에 입 안이 간지러우면서도 뜨거웠다. 서로의 혀가 얽혔고, 자신과 다비드의 타액이 뒤섞였다. 여린 천장을 혀로 핥으며 입 안 곳곳을 움직이는 바람에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가득해져 입술을 따라 흘러내리는데도 입 안을 헤집는 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우으…… 윽!”
구멍을 두드리던 손끝이 한순간에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밑이 벌어지는 고통에 두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옷을 쥐고 있던 것도 잊고 다비드의 어깨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다비드는 반쯤 내리깐 시선으로 붉어진 메이브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는 떨려 왔고, 그 눈 안에 투명한 눈물이 가득해졌다. 연한 자색의 눈동자가 눈물에 흐려졌을 때, 키스로 입 안을 더욱 거칠게 헤집고 뻑뻑한 구멍 안에서 손가락을 넣었다가 빼냈다.
메이브의 눈이 서서히 감기자 투명한 눈물이 아롱지며 볼 아래로 흘러내렸고, 흐려졌던 자색의 눈동자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는 고통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고, 아픈지 미간에는 주름이 생겨났다.
“흐우……!”
손끝으로 억누르고 있던 볼이 아프지도 않은지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버둥대는 메이브에, 다비드가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입술에 거칠게 문지르던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떨어트렸다.
“하으…… 윽, 하아……!”
메이브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멍 안에 손가락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어깨를 움칠움칠 떨며 다비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자…… 잠깐. 윽!”
목소리 끝은 갈라졌고, 고통과 뒤섞인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다비드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으읏, 윽! 아, 아파……!”
다비드에게 깔린다고, 이야기를 벗어나 살아남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래에 들어간 손가락이 생각보다 더욱 아팠다. 빠져나갈 때마다 안에 달라붙은 내벽들이 딸려 나가는 것만 같았다.
눈앞이 화끈거렸고, 입에서는 앓는 소리만 계속 내뱉어졌다. 귓가에 타인들의 고통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사이로 들뜨고 간드러진 신음이 들릴 때마다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저런 신음이 들려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통을 참기 위해 여린 살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목 뒤를 쓸어내리는 손길과 구멍 안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손가락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듯했다.
결국, 감았던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흐, 아윽…….”
“조금만 참아.”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곳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아픈데, 그 말이 나오느냐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그저 어깨를 떨고 다비드의 어깨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아랫입술을 짓누르고 깨물었다. 아프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생겨났고 눈앞은 뜨듯해지면서 핑핑 돌았다.
“아, 아프…… 아프다고!”
결국 손가락이 구멍 안으로 다시 파고들어 갔을 때 고통을 참지 못하고 다비드에게 소리치듯이 외쳤다. 문지르던 이마를 들어 올려 눈물에 젖은 얼굴로 다비드를 바라보자 그는 잠깐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파?”
“…….”
갑자기 반말로 다정하게 묻는 말에, 소리치던 자신이 머쓱해져 입이 꾹 다물어졌다. 잠깐 생각해 보면 이 바보 같은 상황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만, 결국 한 가지를 가리키는 선택지를 주었고, 그 선택지를 선택한 건 자신이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정말 싫었다면, 죽을 때 죽더라고 다비드에게 반항할지도 몰랐다.
애초에 깔리지 않고, 그를 깔아뭉개 이 상황을 벗어나려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건 지금도 다비드의 손아귀의 힘과 덩치에 밀려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다비드는 소설 속에서 메이브에게 감금을 당해 가둬졌는지, 분명 지금의 그의 힘과 체격이었다면 메이브를 기절시키거나 억압하며 도망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제가 당한 만큼 돌려줄 수도 있었을 거였다.
“……아파요.”
아픔과 울음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끅끅 소리 내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곳을 손가락이 들어올 때마다 꽉 닫혀 있는 살이 갈라지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안에 들어가 있는 손가락은 빠지지 않았지만, 그 주변은 얼얼하고 골반이 벌어진 것처럼 아릿하게 아팠다.
“조금만 참으면 아프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
“……정말, 조금…… 윽, 조금만 참으면…… 돼요?”
고통에 긴장을 했는지 관자놀이가 파르르 떨려 눈매까지 덜덜 떨리는 것 같았고, 찡그러진 표정을 풀어낼 수가 없었다.
조금만 참으면 이 고통이 사라진다는 말은 다디단 과실을 입에 물려주는 것처럼 들려왔다. 심호흡하듯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다비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살짝 휘어 있는 눈매는 여전했다. 아직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이는 것에 심장이 두근거리지는 않았고, 솔직히 좀 언짢았다.
자신은 아파 죽겠는데, 눈앞에 있는 다비드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에 속에서 화가 뒤끓어 올랐다.
“그래, 잠깐만 참으면 돼.”
“그럼…… 빨리해요. 진짜 아프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예민해진 청각에 고통 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낮으면서도 야한 신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돌리고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지금 눈앞에도 깔린 남자가 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벌겋게 물들어서 움찔움찔 몸을 떨고 있었다.
고개는 들려졌고, 목엔 붉은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반쯤 풀려 있는 눈은 살짝 흔들렸으며, 그의 입에서는 달뜬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비드의 말처럼, 잠깐의 고통을 참으면 저 남자의 모습처럼 아프지는 않고 이상하게 망가지는 것일까,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들을 생각하면 분명 깔리는 남자들은 다 좋아했다. 아프지 않고 좋아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아픈지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아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아프면 어깨를 더 힘줘서 잡든지, 아니면 물든지 해서 잠깐 참아.”
“그러…… 으윽!”
대답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멈추어 있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고 아까와는 다르게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안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구멍을 벌렸다.
처음의 고통은 거짓이었던 것처럼 살이 벌어졌고, 안에서 돌아다니는 손가락에 허리가 뻐근해지면서 욱신거렸다.
“아파……!”
홀 안에 있는 깔린 남자들은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간혹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다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왜 이리 아래는 화끈거리고 아파지는지. 눈가는 따가웠고, 수도를 튼 것처럼 눈에서 주룩주룩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여린 살을 깨물고 입술을 깨무는 고통보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 강했다.
“음, 생각보다 깊은가?”
뭐가 깊은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저 고통을 참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손가락이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을 때, 처음으로 고통이 아닌 다른 감각을 느꼈다.
“흐읏!”
입이 벌어지며 놀라 커진 눈으로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입술 끝과는 다르게, 드디어 찾았다는 것처럼 만족스럽게 올라간 다비드의 입술이 보였다.
“이제 덜 아플 거야.”
“자, 잠깐. 아…… 아흑. 이, 이상…… 읏!”
다비드의 손가락이 따듯한 안에서 유난히 불룩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건드렸다. 눈앞에 있는 메이브의 몸이 움츠러들어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메이브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당황한 듯 보였다.
다비드는 입이 마른다는 생각을 하며 꽉꽉 조여지는 구멍과 내벽에 뻐근한 손가락으로 안을 휘저으며 튀어나온 전립선을 손끝으로 꾹꾹 눌렀다.
“흐, 아으……!”
메이브의 두 다리가 작게 흔들리며 무릎이 굽혀졌다. 한순간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으나 다비드의 단단한 팔뚝이 메이브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반쯤 죽어 있던 메이브의 성기가 점점 고개를 들어 올려 다비드의 아랫배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이제 안 아프지?”
덤덤하게 말하는 다비드의 목소리에 메이브의 고개가 작게 가로저어졌다.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 다비드의 손가락이 문질러지는 구멍은 여전히 화끈거리며 아팠으나, 안의 어떤 부분을 누를 때마다 허리가 저릿해지며 알 수 없는 쾌감이 온몸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미 단단하게 발기되어 있는 다비드의 성기와 힘이 들어가는 메이브의 성기가 서로 문질러졌다.
“흡, 이…… 이상해…….”
“어디가 이상한데?”
“읏…….”
“말해 봐. 어디가 이상해?”
살짝 고개를 숙인 다비드가 메이브의 귓가에 속삭이며 둥근 귓바퀴를 혀로 핥았다. 축축하게 츄읍츱, 물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척주 선과 허리가 저릿해지는 느낌에 메이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숨을 들이켰다.
“흐, 아…….”
“응? 말해 봐. 뜨거워? 아니면 너무 느껴서 당황스러운가?”
다비드의 말이 맞았다. 처음은 간지러웠고, 그 뒤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쾌감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혼자 진득한 젤을 손바닥에 묻혀 성기를 붙잡아 흔드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서로의 살갗이 부딪치고 문질러지며 쿠퍼액이 흐르는 자신의 성기는 어딘가 고장 난 것만 같았고, 힘이 풀린 것처럼 떨리는 두 다리는 이상했다.
다비드의 몸에 매달려 어쩔 줄 모르는 메이브의 모습에, 다비드는 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핥아 축이며 허리를 붙잡아 지탱하던 손을 살짝 내려 메이브의 엉덩이를 붙잡아 벌렸다.
벌어진 엉덩이의 살짝 풀려 있는 구멍에 틈이 생겨났다. 다비드의 손가락이 오므려지며 메이브의 작은 틈 사이로 손가락을 비집고 집어넣었다.
“흐윽, 읏……!”
야한 신음 속에 당황스러워하는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하면서도 떨리는 두 눈은 쾌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것 같았다.
어깨에 손톱이 박히며 손끝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힘을 주고 있는 손조차 힘이 계속 풀리는 것처럼 느껴지자, 다비드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메이브의 몸을 벽에 밀어붙였다.
“읏!”
놀라 몸을 떨면서 숨을 몰아쉬는 메이브의 붉어진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눈물을 그렇게 흘리더니 살짝 부어 버린 눈두덩과 벌어진 입술 사이에 타액이 조금 흘러내려 반들반들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메이브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문지르던 다비드는 어느 정도 풀어진 구멍에 손가락 세 개를 집어넣으며 엉덩이를 움켜쥐던 손을 떨어트렸다.
어깨를 잡고 있는 메이브의 손을 붙잡은 다비드는 자신의 성기와 메이브의 성기가 서로 문질러지는 성기를 잡게 했다.
“서로 기분이 좋아야지.”
쿠퍼액인지, 아니면 전립선액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려 메이브의 성기는 축축해졌다. 그 끝부분에 손을 내려놓게 만든 다비드는 그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감싸며 천천히 불룩 튀어나온 귀두를 지나 밑동까지 메이브의 손과 함께 힘을 주며 움직였다.
“흐아……! 자, 잠깐……. 읏!”
메이브가 고개를 꺾으며 숨을 들이켜려고 입을 벌린 순간, 다비드의 고개가 내밀어져 메이브의 붉고 부푼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쳤다.
놀라 움찔 떠는 몸은 느끼고, 입술에 혀를 집어넣으며 전립선을 문지르는 손끝에 힘을 주자 들썩거리는 작은 몸에 다비드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후으…… 웁…….”
입술에 눌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해 억눌린 소리가 잇새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헐떡이는 메이브의 얼굴이 천천히 무너졌다.
처음엔 무서워서 잔뜩 굳어 있던 얼굴이 처음 느껴 보는 쾌락에 살짝 무너지고 구겨졌다. 그런 표정과는 대비되게 들뜬 얼굴과 촉촉하게 젖어 있는 눈가가 더 야해 보이는 걸 모르는지, 입 안에 얽혀 오는 혀에 도망가기 급급했다.
“우……읏!”
천천히, 어쩌면 빠르게 움직이는 손길에 메이브의 허리가 작게 들썩이며 구멍을 조여 왔다. 성기를 감싸 쥔 손이 밑동에서 기둥을 타고 올라가 벌겋게 부푼 귀두의 툭 튀어나온 살덩이를 문질렀다. 쿠퍼액과 전립선액이 흘러내리는 귀두 끝에 손가락이 스쳐 지나가며 문질러졌다.
찌걱찌걱, 야한 물소리가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후으…….”
귀두에서 밑동까지 내려갔다 올라가며 움직이는 손길에 살갗이 두드려졌다. 탁탁, 살갗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메이브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다비드는 생각보다 구멍이 풀어진 것을 느끼고 손가락을 천천히 구멍 안에서 빼내며 메이브의 입술에 맞닿았던 자신의 입술을 떨어트렸다.
“하악, 하으…….”
고개를 푹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가빠하는 메이브를 지켜보던 다비드는 성기를 감싼 손을 떨어트리며 애액이 묻은 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입을 벌려 혀를 내민 다비드가 손가락과 그 사이에 묻은 애액을 천천히 혀로 핥으며 숨을 몰아쉬는 메이브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어느 정도 풀렸으니까, 별로 안 아플 거야.”
“……흐, 하아…… 하악…….”
거칠게 숨을 몇 번이나 몰아쉬었다. 아무리 숨을 들이켜고 내쉬어도 숨이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몸 돌려. 곧 끝나니까.”
덤덤한 다비드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뜬 것처럼 들려왔고,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메이브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을 때, 자신의 성기와 맞닿아 있는 다비드의 성기가 보였다.
방 안에서 발기하면 자신보다 조금 크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발기할 대로 발기해 핏줄이 불룩 튀어나온 성기가 이렇게 닿아 있으니 확실히 두께와 길이가 자신의 성기보다 조금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저 커다란 것이 자신의 구멍 안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벌겋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저…… 저거. 저거 안 들어가요! 흐…… 못. 못 들어가요!”
더듬더듬 말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를 넘어서 저게 안으로 들어오면 분명 찢어지고 아플 것이 분명했다.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다비드를 쳐다보았으나, 그는 웃고 있었다.
“손가락 네 개가 들어갈 정도로 풀었어. 아프지 않을 거고, 들어갈 거야.”
“……아, 아플 거예요. 분명!”
사라졌던 공포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았을 때, 자신의 손을 잡는 단단한 다비드의 손이 느껴졌다. 입에 고여 있는 침을 삼켜 냈다. 목울대가 살짝 위아래로 흔들리며 마른 목구멍을 적셨다.
다비드는 자신의 손을 붙잡은 상태로 천천히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한번 네가 문질러 봐. 수월하게 들어갈 테니까.”
“그…… 그만. 자, 잠깐만!”
다비드의 손에 붙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좀처럼 빼낼 수가 없었다.
천천히 엉덩이 골을 지나 구멍에 닿은 손가락에 눈을 질끈 감았을 때, 억지로 펴진 손가락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놀라 힘이 들어가자 구멍이 조여 오며 손가락을 물었고, 속 안의 따듯한 내벽이 술렁거리며 수축했다. 손가락이 압박되며 조여 올수록 안으로 들어간 자신의 손가락의 느낌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수월하게 들어가는 손가락이 믿어지지도 않았고, 손가락 하나가 이제는 아프지 않다는 것을 믿을 수도 없었다.
“……아.”
“봐. 수월하게 들어가잖아.”
손가락을 구멍 안에 넣은 상태로 굳어 있는 메이브를 바라보며 웃은 다비드는 넣었던 손가락을 빼고 메이브의 몸을 돌렸다.
한 번에 돌아간 몸은 놀라서 고장이 난 건지,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건지 약간 삐거덕거렸다. 메이브의 허리를 감싸며 손으로 불룩 튀어나온 가슴을 움켜쥐었다.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운 살결을 움켜쥐며 다비드는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메이브의 엉덩이 골 사이에 문질렀다.
“기…… 기다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건지 다비드의 품 안에서 메이브가 발버둥 쳤으나,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의 몸을 힘주어 안은 상태로 턱을 어깨에 기대어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분명, 아프지 않고 기분이 좋을 거야. 메이브.”
“싫…… 싫어! 싫어 데이비드!”
“음,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좋지만, 역시 애칭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는데.”
당황했는지, 반말을 하며 반항하는 메이브를 힘으로 누른 다비드는 쿠퍼액으로 축축해진 귀두를 벌렁거리는 구멍에 문질렀다. 속 안으로 빨아드릴 것처럼 뻐끔거리는 구멍은 다비드의 성기 끝을 작게 키스하며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제…… 제발!”
“지키지 않고 바친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무서운 거야?”
“……읏…….”
“괜찮아, 메이브. 너와 한 약속은 지킬 테니까.”
괜찮다는 말에 안 하겠다는 걸까 잠깐 희망을 품은 것도 잠시였다. 한순간 구멍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성기에 메이브의 고개가 꺾여 다비드의 어깨에 머리가 닿았다.
살이 벌어지고 뼈가 벌어지는 것처럼 커다란 성기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허윽!”
숨이 턱 막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덜덜 떨리는 메이브의 몸이 다비드의 몸에 기대어 떨려 왔다.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의 가슴을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불룩 튀어나온 체리와 같은 유두를 손톱으로 긁으며 한순간에 허리를 움직여 성기의 밑동까지 안으로 밀어 넣었다.
“흐…… 아읏!”
내벽들이 벌어졌다가 조여 오며 다비드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그런 내벽을 뚫고 지나가 깊이 자리 잡은 전립선을 귀두의 끝으로 누르며 두드리자, 메이브의 허리가 휘었다.
메이브의 아랫배 근육이 수축하며 단단히 힘이 들어가던 찰나, 자극이 심했던 성기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문양이 새겨져 있던 곳에 진득한 정액을 투툭 떨어트렸다.
“쌌네?”
“흐, 아…….”
쾌감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메이브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작은 신음과 앓는 소리만을 내뱉고 있었다.
다비드는 그런 메이브의 볼에 입술을 문지르며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끝이 아니라는 듯, 다비드가 움직이는 허리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던 성기가 빠져나갔다.
성기에 들러붙어 조여 오던 내벽들까지 빠져나가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감각에 메이브의 몸이 움칠 떨려 오는 순간, 귀두 끝이 구멍에 걸쳐졌던 성기가 다시 한번 안쪽 깊은 곳까지 찔러 넣었다.
“흐…… 아흑!”
내벽 하나하나를 문지르고 구멍을 비비는 성기에 메이브의 고개가 작게 떨려 왔다. 힘이 들어가 핏줄이 도드라진 목선을 따라 혀로 핥은 다비드가 움푹 들어간 어깨 라인에 입술을 문질렀다.
하얀 살결이 흥분과 쾌감에 점점 붉게 변해 갔다. 퍽퍽, 빨라지는 허리 짓에 메이브의 몸이 들썩였고, 둥근 엉덩이가 짓눌러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떠는 메이브를 다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그의 움직임은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하……읏! 응! 아흑!”
“거봐…… 후, 아프지 않잖아?”
아프지 않았으나, 그 뒤로 찾아온 쾌감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두 눈에서는 고통인지 쾌감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앞은 흐렸고, 온몸을 크게 두드리는 것 같은 쾌감이 두려울 뿐이었다.
“흐……아!”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쾌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서도 눈앞이 흐릿했다. 눈을 감으면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비드의 가슴과 문질러지는 허리는 축축했고, 점점 빨라지는 움직임에 벌어진 다리는 굽혀지며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의 움직임에 꺼덕거리며 앞뒤로 흔들리는 성기는 다시 단단하게 발기되기 시작했다.
“하윽! 아읏!”
“괜찮아. 참지 마.”
낮은 목소리가 들뜬 숨과 함께 귓가에 들려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문질러지는 구멍이 점점 뜨거워지고, 부딪치는 엉덩이는 얼얼했다. 메이브의 새하얀 엉덩이가 점점 붉어지며 구멍에서 빠져나왔다가 들어가는 성기는 벌겋게 변해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으나 사정을 하지는 않았다.
다비드의 손이 메이브의 온몸을 감싸 안아 들며 한 손으로 발기한 성기를 붙잡았다.
“아…… 안 돼!”
메이브의 고개가 빠르게 흔들렸다. 땀에 축축하게 젖어 있는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었으나 다비드는 흉포한 움직임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점점 빨라지는 움직임에 눈앞이 흐려지던 찰나, 다비드의 움직임이 멈추며 안으로 뜨듯한 무언가가 가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흐……아!”
그걸로 사정을 한다는 게 웃길 정도로, 발기한 성기 끝에서 진한 정액을 다시 벽 위로 뿌리며 힘없이 다비드의 몸에 기대어 축 늘어졌다.
다비드의 성기가 느릿하게 구멍 안에서 빠져나왔다. 붉은 구멍이 작게 벌렁거릴 때마다, 속을 가득 채웠던 정액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허벅지로 흘러내렸다.
“하아…… 흐, 하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자신의 몸을 천천히 돌려 감싸 안은 다비드의 행동에 힘없이 고개를 들어 어쩐지 후련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올려다보았다.
체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받아들이는 쪽이 더 체력을 더 소모하는 건지 알 순 없었으나 지금 당장 자고 싶을 뿐이었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다비드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자, 그의 쿵쿵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위치가 정해진 것 같으니, 그에 따른 위계질서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석상 앞에 앉아 있던 신관이 천천히 나무 의자에서 일어났다. 단체로 뒤섞여 섹스를 하던 그곳에 몇몇은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 있는 상태로 경련하듯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었고, 몇몇은 지친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몸이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 벌써 옷이 찢어진 사람도 보였고, 머리는 산발에 상처를 입은 사람도 간혹 보였다.
아마 누가 위를 선정하느냐고 크게 다툰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다비드에게 자신의 순결을 바치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과 다비드 또한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곳의 규칙 중, 매일 아침 자신의 음욕을 덜어 내기 위해 잔 안에 정액을 담아야 한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천천히 하는 말을 들으며 설마 하는 생각에 힘없는 고개에 힘을 주고 신관을 쳐다보았다.
“오늘의 위치는 성년식이 치러지는 그날까지 반복되며, 잔 안에 정액을 담을 때까지 오늘 방을 함께 사용하는 자의 순결을 가져간 자들은 그들의 손을 묶어 성기를 붙잡지 않게 하고, 오로지 그 안에 성기를 넣어 절정에 이르게 해 정액을 잔 안에 담게 만들어야 합니다.”
신관의 말에 주변이 술렁거리며 모두 당황해하자, 신관이 천천히 바닥에 엎어져 있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을 지나 자신과 다비드를 한번 쳐다보며 말을 이어 갔다.
“또한 쟁취하거나, 지키지 못한 자라고 말하는 것만큼, 쟁취한 자와 지키지 못한 자의 대우는 달라집니다.”
결국 내가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대우가 다르지 않다면 지킬 필요도, 쟁취할 필요도 없는 것이니 말이다.
신관이 발을 크게 구르고, 발로 바닥을 내려치며 소음을 만들자, 굳게 닫혀 있던 문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문이 열리며 신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손에 검은색 목줄과 하얀 끈을 가지고 온 신관들은 바닥에 엎어진 자들 중, 허벅지와 구멍에서 정액이 흘러내리는 자들에게 다가갔다.
자신도 예외는 없었다. 익숙한 다니엘이 검은색 목줄과 하얀 끈을 들고 다가왔다.
“결국 지키지 못했군요.”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신관의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지키지 못한 자들은 지금부터 목줄을 착용하며, 손목을 등 뒤로 묶고 생활해야 합니다.”
사람의 대우가 아니었다. 신관의 목소리를 들으니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목줄을 들고 다가오는 다니엘의 모습에 메이브는 두려움으로 주춤주춤 몸을 움직여 다비드의 품에 파고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신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목줄과 끈 하나로도 믿을 수가 없는데, 아직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신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식사를 할 때에도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을 쟁취한 자들의 성기를 품어야 하며, 그들이 밥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의 소중한 정액을 먹고 일주일 동안 생활해야 합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만약 다비드가 자신이 아닌 누군가와 같은 방이 되었고, 그가 만약에 밑에 깔려서 저런 일을 당했다면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자신의 음욕을 잔에 덜어 내게 해 줄 쟁취한 자들의 성기를 빨아 그들의 음욕을 그 몸으로 삼켜야 합니다.”
가까이 다가온 다니엘이 코앞에서 멈추어 서자, 다비드가 자신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착용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식사는 제대로 챙겨 주고 배려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진득한 관계가 끝이 났다고, 다시 존댓말을 하는 다비드가 어이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힘없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늘어진 상태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그런 자신을 이해하는지 다니엘이 목줄을 들고 있는 손을 뻗어 자신의 목에 가죽끈을 덧대고 목 뒤를 묶어 고정했다.
손가락 한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틈밖에 없었고, 목에 감싸인 목줄에 살갗이 살짝 쓸려 불편했다.
“잠을 자기 전, 빼앗긴 자들은 지급한 물건을 착용해야 하며, 일어난 후에도 쟁취한 자가 빼주지 않을 경우 그것을 착용한 상태로 교육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해 줄 물건이 무엇일지는 몰라도, 분명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신전은 미쳐 있었다. 정상이 아니었다. 만약 신을 받든다면 그것은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신이 아니라 음욕의 신을 받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쟁취한 자들은 매일 아침 자신의 음욕을 빼앗긴 자에게 주며, 밥을 먹을 때에도 자신의 성기를 넣은 상태로 빼앗긴 자에게 밥을 먹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팔이 묶여서 생활할 그들이 신께 다가갈 수 있도록 온몸을 깨끗하게 씻겨 주어야 합니다.”
신관의 입에서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껄끄러웠다.
“손이 불편한 그들의 옷을 빨아 줘야 합니다. 그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지급된 물건을 착용시켜 줘야 하며, 매일 아침 빼앗긴 자가 음욕을 덜어 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신관은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미 순결을 빼앗겨 버린 자들의 목에는 검은색 목줄이 착용되었다.
다니엘 또한 하얀 끈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몸을 돌려 두 손을 등 뒤로 가져가자, 다니엘은 그런 자신의 손을 교차시켜 손목을 붙잡게 만들고는 그 위로 하얀 끈을 둘러 단단하게 매듭을 묶고 손과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교육은 끝났습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여섯 번이 남았으며, 마지막 교육까지 이수한 자들만이 성년식을 치를 수 있습니다. 방 안에 들어가 각자에게 지급된 물건을 확인하고, 사용해야 될 물건을 착용해야 합니다. 이상, 모두 이제 방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신관은 그 말을 하며 더러워진 하얀색 카펫을 밟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활짝 열려 있는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몸을 돌려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더러워진 몸과 옷은 신께 불경하니, 찢어진 옷은 버리도록 하고 더러운 몸과 옷은 깨끗하게 씻어 내시길.”
신관은 그 말을 끝으로 홀 안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목줄과 끈을 착용하게 만든 신관들 또한 하나둘 홀 안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다니엘만이 자신을 한번 쳐다보고, 다비드를 한번 바라보며 몸을 살짝 숙이고 몸을 돌려 홀에서 사라졌다.
“…….”
“이제 돌아가죠.”
다비드의 손이 허리를 감아 자신이 넘어지지 않게 부축해 주었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느리게 걸음을 옮겨 진한 밤꽃 냄새가 나는 홀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긴 복도를 걸어 104번 팻말이 달린 방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잔인했다. 성년식에서 망가진 메인수였던 데이비드는 성년식이 끝나 신전에서 벗어나도 집착광공이었던 메이브의 손아귀에 붙잡혀 이리저리 굴렀고, 그 뒤에도 공 후보 몇 명에게 붙잡혀 19금 떡을 쳤다.
망가져서 살았을지도 모르겠으나, 망가졌기에 더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데이비드가 망가질 일은 없었고, 자신이 데이비드를 붙잡아 망가트릴 일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등줄기가 오싹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걸리는 것 같았다.
“메이브 님?”
“아, 아니에요…….”
멍하니 서 있다가 열린 방문에도 들어가지 않고 있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다비드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신을 차리고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편한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방 안으로 들어갔다. 허리는 욱신거리고 뻐근했으며, 구멍은 화끈거렸다. 두 다리는 힘이 없어 덜덜 떨려 왔다.
침대가 보이는 순간 있는 힘, 없는 힘을 끌어모아 침대로 걸어가 궁둥이를 붙이고 주저앉았다.
“하아…….”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잠깐 숨을 작게 몰아쉬려는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쉬면 안 된다는 것 같아 굳은 몸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다비드가 걸음을 옮겨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다니엘은 두 손에 커다란 상자 두 개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와 근처에 있는 탁자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중 위에 있던 상자는 자신의 침대 위에 올려놓았고, 다른 상자는 다비드의 침대에 올려놓은 뒤 다니엘은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 말을 끝으로 알 수 없는 상자를 내려놓은 다니엘은 방에서 나갔다.
다니엘이 나간 방에는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근처에 서 있던 다비드가 걸음을 옮겨 침대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한숨을 살짝 내쉬며 옆에 자리 잡은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뚜껑이 닫힌 상자가 왜 이리 불안한지 심장이 쿵쿵 뛰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상자 뚜껑을 붙잡고 싶어도 등 뒤로 묶여 있는 손 때문에 뚜껑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다비드는 자신의 침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편지?”
다비드는 목을 긁듯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상자 속을 내려다보았다. 상자 크기와는 다른 작은 편지 한 장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다비드가 손을 넣어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하얀색 편지지를 손가락에 걸고 뒤집어 주변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문양도, 흔적도 없는 편지지였다. 다비드는 손가락으로 편지지의 끝을 붙잡고 한쪽으로 찢기 시작했다.
지이익. 종이 뜯는 소리와 함께 편지지가 찢어지자 그 안에서 하얀색 편지를 꺼냈다. 반으로 접혀 있던 편지를 펼쳐 검은색 글자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지키지 못한 자는, 쟁취한 자가 사용하거나 착용시키는 것을 전부 이행해야만 한다.】
단지, 그 말만이 편지에 적혀 있었다. 다비드는 잠시 편지에 적혀 있는 것을 바라보다가 힐끔 비어 있는 상자 안을 내려다보았다. 다비드의 상자는 편지밖에 들어 있지 않았으니, 아마 편지에 적혀 있는 사용하거나 착용시키는 무언가는 메이브의 상자 속에 들어가 있다는 소리였다.
다비드는 잠시 말없이 편지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두 손이 묶여 있는 상태로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메이브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에게 다가가 그 앞에 있는 상자 위에 편지를 내려놓았다.
“…….”
아무도 말하지 않는 방 안에는 작은 숨소리만 감돌았다. 고개를 숙인 상태로 편지에 적혀져 있는 글귀를 계속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을 읽어도 적혀져 있는 검은색 글자가 바뀌는 것이 아닌데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 다비드가 상자에 올려놓았던 종이를 들어 옆에 침대와 붙어 있는 선반에 던지듯 했다.
“메이브 님.”
“……네.”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래도 다비드를 완전히 믿을 순 없었으나, 차별이 무엇이라도 도와준다는 그 말을 떠올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일주일이 어떤 시간이 될지 몰라도 다비드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욱신거리는 허리는 분위기와 맞지 않게 아팠다. 이제는 자는 것도, 일어나고 나서의 자유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먹는 것마저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었고, 움직임의 자유도 사라졌다는 것이 억울했다.
하지만 멍청한 건 자신이었다. 몇 번이나 도망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 성년식에 가기 전날 집에서 가지 싫다고 울면서 난리를 쳤을 수도 있었고, 출발하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도망갈 수도 있었다. 이곳에 도착해도 몇 번은 더 선택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싫다면, 성년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관이 말했다.
“상자 뚜껑을 먼저 열어 보겠습니다.”
팔을 천천히 당겨 힘을 주자, 하얀 끈에 단단히 묶여 있는 손목이 당기며 살갗을 문지를 뿐 풀어지지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한숨을 속으로 삼켜 내고 다비드가 상자 뚜껑을 붙잡아 들어 올리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이거는?”
솔직히 자신이 발랑 까져서 상자 안에 성인 도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걸로 괴롭혀진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안에 들어가 있는 물건은 반원으로 휘어 있는 쇠로 만든 정조대와 검은색 끈, 그리고 어디에 써야 할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하얀색 앞치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정조대는 지키지 못한 자들이 성기를 붙잡을 수 없게 정조대를 착용시키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따지고 보면 등 뒤로 손이 묶여 있는 상태로 성기를 만질 수도 없었다.
검은색 끈의 의미는 알 수가 없었고, 앞치마는 왜 들어가 있는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도 편지지가 들어가 있네요.”
하얀 앞치마 위에 올려진 하얀 편지지를 꺼낸 다비드는 편지지를 뒤집어 뒤편도 한번 둘러보고는 편지지를 뜯었다. 투둑툭, 지익. 편지지가 뜯기고 그 안에서 종이를 꺼낸 다비드는 손가락으로 접혀 있는 편지를 펼쳤다.
【지키지 못한 자는 인권이 없다. 성년식을 치르는 그날까지 지키지 못한 것을 가져간 쟁취자의 말이 무엇이든 들을 수밖에 없다.】
아마 말을 듣지 않는다면, 신관이 말했던 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이걸 착용하고 자라는 것 같죠?”
다비드의 손이 상자 안으로 들어가 차가운 정조대를 들어 올렸다. 손으로 고리 사이사이를 문지르며 돌리는 행동에 숨을 서서히 들이켰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 같은데요.”
“그래서 이름, 정말 안 알려 주실 겁니까?”
“…….”
이미 자신은 이름을 말해 주었는데, 그게 자신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비드를 올려다보았다. 굳이 이게 원래 이름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다비드 님이 알아내셔야죠.”
불편한 팔에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등 뒤로 묶인 팔은 뻐근해지고 점점 더 아파 왔다. 인상이 써지고 저리는 팔을 작게 흔들며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등 뒤가 아니라 앞으로 묶어 주면 안 돼요?”
“그러고 싶다만, 등 뒤로 묶어서 생활해야 한다고 신관이 말했으니까요.”
“……그러면 엄지손가락만 묶어 주면 안 돼요? 어차피 풀지도 못하고 묶여 있는 거잖아요.”
한번 동영상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엄지손가락 두 개를 맞대고 케이블 타이를 걸었을 때 풀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손목과 손가락 끝까지 단단히 묶여 있는 하얀 끈 때문에 손끝에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저리면서 끝이 떨려 왔다. 이러다가 괴사하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앞서 있던 다비드가 자신의 등 뒤로 걸어왔다.
“……진짜 손가락만 묶어 주는 거예요?”
사르륵, 끈을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점점 피가 통하는 손끝부터 당겨 오면서 저렸다.
“차별이 무엇이라도 최대한 도와준다고 말했잖아요.”
“……약속은 잘 지키시네요.”
“증거로 본명을 물었으면서, 믿지는 않았나 봅니다?”
하얀색 끈이 풀어져 자유로워진 팔을 한번 꾹꾹 주무르고는 다시 등 뒤로 가져갔다. 손가락 부분에 거친 손끝이 문질러지고 엄지손가락이 맞닿았다.
“……솔직히 저희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걸 믿을 수 없으면 제가 멍청한 거죠.”
“그런데 왜 믿는다고 말했습니까?”
다비드의 손에 들려 있는 하얀 끈이 메이브의 손가락 주변을 감아 단단하게 묶었다. 남은 끈을 손바닥 주변에 가볍게 감고는 한쪽 손목에 붕대를 감듯이 감아 단단하게 매듭을 지었다.
“……어차피 거기서 누군가는 깔려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한다면, 솔직히 지켰으면 된 거 아닙니까?”
덤덤하게 말하는 다비드의 말은 맞았다. 지켰으면 됐다. 끝까지 당하지 않고 지켰으면 되었으나, 그 말이 우스웠다. 메인수라는 것을 알았고, 잘못하다가 자신의 목숨 줄이 날아가는데, 어떻게 그걸 지키면서 메인수를 억눌러 그를 깔아뭉갤 수 있을까.
만약 자신이 순결을 지키면서 메인수인 그를 어떻게 해서 밑에 눌렀다고 해도, 그 커다란 원망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지금 저희가 서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지 못했겠죠.”
한숨을 작게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만약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다비드를 깔아 버렸다면, 분명 지금 방 안은 숨을 못 쉴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을 것이다.
혼자 희생해서 그래도 편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다만, 앞으로 일주일 동안 벌어질 일들에 눈앞이 캄캄했다.
“상황이 그래서 메이브 님의 순결을 가져가기는 했으나, 그만큼 잘 챙겨 드리고 지켜 드리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는 얼굴의 다비드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한다는 소리가 저 말이라, 무슨 개소리냐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
“아뇨. 다비드 님, 저와 약속 하나 해요.”
미쳤다고, 다비드와 계속 함께 다닐 생각은 없었다. 신전에서 성년식이 끝나면 끝이었다. 더는 만날 생각도 없었다. 메인수와 같이 얽히다 보면 다른 공 후보도 얽힐 텐데,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싫었다.
19금 소설인 만큼, 이 세상에 있는 공들도 또라이였다. 자신이 빙의한 메이브만 보더라도 납치하고 수와 닮은 자를 먹겠다고 노예 시장까지 가는 또라이인데, 다른 녀석들도 정상은 없었다.
오직 정상이었던 메인수조차 망가져 버린 세상이었기에, 살기 위해, 그리고 원하는 대로 돈을 떵떵거리고 쓰며 놀기 위해서 메인수의 곁에서 도망을 가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약속입니까?”
“제 순결을 가져가서 절 지켜 줄 필요도, 잘 챙겨 줄 필요는 없어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만.”
“신전 안에서 제 편의만 지켜 주세요. 그리고 성년식이 끝나면, 끝.”
말을 이어 갈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다비드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가는 듯 보였다.
“더는 서로 만나지 말자고요.”
왜 저기서 기분 나쁘다는 듯 표정이 굳어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솔직히 만난 지 하루가 채 되지도 않았고, 성년식이 끝나면 헤어질 사이었다. 그 후에 엮이면 서로 보기 껄끄러울지도 모른다.
지금도 몸을 한번 섞었고, 앞으로도 일주일간 어떻게든 몸을 섞을 수밖에 없다. 그런 관계가 신전 밖으로 나간다 해서 달라지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밖으로 나가서 다비드와 만나 관계를 하러 어딘가로 가지 않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는, 그런 얄팍한 관계일 뿐이었다.
“왜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다비드의 얼굴에, 자신 역시 그가 왜 저렇게 표정을 살짝 일그러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 분명한데, 그 인연을 왜 붙잡고 가려고 하는지 멍청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제가 왜 계속 만나야 하는 건데요?”
정말 순수한 의문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무릎에 내려와 있는 손가락을 움켜쥐고는 한숨을 작게 내쉬는 다비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어린아이가 잘못했을 때 한숨을 쉬는 부모의 모습처럼 비쳤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있습니다.”
“네, 알아요. 근데 그 책임, 저한테 질 필요 없으니까 성년식이 끝나면 서로 각자 갈 길 가자고요.”
다비드가 진지한 얼굴로 하는 말에 바로 말을 꺼냈다. 우직한 건지, 아니면 다정한 건지 모를 성격이 답답했다.
물론, 그거 한번 한 게 자신이 살았던 삶을 통틀어 처음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로 한 사람이 자신을 책임진다거나 끝까지 도와주는 것은 싫었고, 그게 메인수였기에 더더욱 싫었다.
“일주일, 성년식이 끝나면 모든 것을 잊고 서로 갈 길 가는 거로 약속해 줘요.”
“하…… 제가 책임을 지면 좋은 거 아닙니까? 실베스타가 백작 가문인 것은 알고 있을 텐데요.”
그 백작 가문보다 에녹 가문이 더 직위가 높았다. 에녹은 공작 가문이었고, 실베스타는 백작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면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는 것과 같았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과 다비드의 고개가 방문을 향했을 때 문이 열리고 다니엘이 트레이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식사 시간입니다.”
다니엘이 말을 하며 트레이에 올려져 있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하나둘, 중간에 자리한 선반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릇에 담겨 있는 수프는 한 사람이 먹기에는 양이 많아 보였고, 다른 그릇에 있는 고기 또한 한 사람의 양이라기엔 많은 듯 보였다. 다만, 그것을 끝으로 트레이에 올라와 있는 음식은 없었다.
“아까 교육과 주의 사항을 들었던 것처럼, 쟁취한 자가 지키지 못한 자의 음식을 먹여 주어야 합니다.”
“……알겠으니까 나가 보시죠.”
“아니요. 제대로 규칙을 따르는지 담당하는 신관들이 확인해야 합니다.”
“……아까 했던 걸로 구멍이 많이 부어 있습니다. 지금 하면 분명 아파할 텐데 꼭 해야 합니까?”
다비드가 얼굴을 구기며 하는 말에 다니엘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묵묵히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식사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벌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벌은 쟁취한 자가 아닌 지키지 못한 자가 받게 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모든 것이 지키지 못한 사람이 불리했다. 만약 쟁취한 자가 일부러 지키지 못한 자에게 규칙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떤 벌일지 모르는 것을 억울하게 받는다는 것과 같았다.
다니엘은 그것에 대해서 유하게 해 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하얀색 신관복 주머니를 뒤져 안에 들어가 있는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식사 시간이 시작하기까지 5분 남았습니다.”
움칠, 그 말에 몸이 작게 떨릴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은 시계를 집어넣으며 묵묵히 선반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린 입 안의 살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벌을 받기 싫다면 저 좆같은 규칙을 이행해야 했다.
“뭐 해요? 제 편의를 봐주신다고 했으니, 벌을 받지 않도록 도와주셔야죠.”
“하…… 제기랄.”
“…….”
저렇게 욕할 정도로 자신이 싫은 것일까 고민했다. 그렇게 싫다면 굳이 지켜 준다든가, 책임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거다.
침대에서 일어나 음식이 놓여 있는 선반으로 걸어가려는 찰라,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엎어질 것처럼 휘청거리다 무릎 관절이 꺾이며 주저앉을 뻔했다.
한순간에 자리에서 일어난 다비드가 자신의 몸을 감싸 안으며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차가운 바닥에 몸이 고꾸라져 얼굴이 부딪혔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작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천천히 내쉬었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어깨를 감싸는 단단한 손이 느껴졌다. 몸이 끌어당겨져 다비드의 어깨를 기대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식사가 차려져 있는 선반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허리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다비드가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던 찰나, 가만히 망부석처럼 서 있던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다니엘의 말에 다비드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는 듯 다니엘을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고 의자를 가리키며 웃었다.
“의자에 앉는 것은 쟁취한 자여야 하며, 쟁취한 자가 지키지 못한 자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내뱉어지는 말에 어깨와 허리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키지 못한 자, 메이브 님이 다비드 님의 다리에 올라가 성기를 안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다비드 님이 그것을 도와주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허탈하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돌려 다비드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다짐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다니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일주일이었다. 일주일만 지나면 메인수든, 다른 등장인물이든 신경 쓰지 않고 공작 가문의 돈을 펑펑 쓰면서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편히 쉬자고 생각했다.
“……빨리 앉으세요. 다비드 님.”
“하…….”
“어차피 일주일간은 이렇게 생활해야 하는 게 달라지지도 않고, 다비드 님이 안 하시면 제가 벌을 받게 돼요.”
벌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특히나 지금처럼 자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벌을 받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미쳤다고 생각하고, 미친 것 같은 신전의 성년식 규칙을 지키면 지켰지, 작은 실수를 해서 벌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니까 빨리 앉아요.”
고갯짓으로 의자를 가리키자 다비드가 작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 상태로 앞의 나무 의자에 주저앉아 다리를 살짝 벌렸다.
반쯤 죽어 있는 성기는 아직 씻지 않아 정액과 쿠퍼액이 조금 말라붙어 있는 게 보였다. 이 상태로 어떻게 성기를 집어넣어야 할까 고민했다. 다비드가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며 흔들려고 하는 순간, 망부석처럼 서 있던 다니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비드 님.”
“……또 뭐 할 말 있습니까?”
“쟁취한 자는, 본인의 성기를 만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키지 못한 메이브 님께서 다비드 님의 성기를 세워 넣어야 합니다. 또한.”
주머니에서 다시 시계를 꺼낸 다니엘은 무심한 눈으로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을 힐끔 쳐다보고는 눈앞에 서 있는 메이브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3분 남았습니다.”
“잠깐만요, 다니엘 님. 그건 먼저 말을 해 주셨어야…….”
“부당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랬다면 지켰으면 됐습니다. 결국 메이브 님은 지키지 못했고, 이 규칙을 따른다고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행하지 못하면 벌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하며 딸칵, 소리 나게 시계를 두드리는 다니엘의 모습에 허망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2분 남았습니다.”
자신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어떻게든 해야 했다.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주춤주춤 다비드를 바라보며 무릎을 굽혀 주저앉았다.
비릿한 향기가 감도는 성기에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려 왔다. 두 손은 묶여 있기에 움직일 수 없었고, 엉덩이로 문지르는 거로 2분 안에 다비드의 성기를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세우려면 펠라티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남자의 것을 곧잘 빨고 남자와 성관계를 해보았다면 쉬웠을지도 모르겠으니, 자신은 그런 적이 없었다. 보고 들은 것만 많았지, 직접 해 본 것은 이제 처음이어서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1분 남았습니다.”
“메이브 님, 잠깐이면 됩니다. 물로 입을 헹궈 드릴 테니까.”
다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자신을 기다려 주지 않고 빠르게 흘러갔고, 작은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고민하지 않고 성기를 빨았다면 벌을 받지 않았을 텐데, 자신은 결국 다비드의 성기를 빨지 못했다. 1분 동안, 다비드의 성기를 빨아 단단하게 만들고 그 성기를 구멍 안에 밀어 넣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메이브 님.”
딱딱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릎을 꿇고 다비드의 다리 안에 주저앉은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간이 다 됐습니다. 식사 시간을 지키지 못하셨네요.”
“……하, 손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요. 3분이라는 시간이 남았을 때, 바로 성기를 키웠다면 시간을 지킬 수 있었을 겁니다.”
“…….”
다니엘의 말은 맞았다. 결국 비릿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성기에 입술을 가져다 대지도 못했다. 벌을 받기 싫은 것보다 말라비틀어진 정액이 묻어 있는 성기를 핥는 것이 더 싫었던 것 같았다.
예전에 혼자 자위를 했을 때, 손가락에 묻어 있는 정액을 한번 먹어 본 적이 있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텁텁해지면서 비릿했던 그 맛이 떠올라 더더욱 다비드의 성기를 핥으며 빨 수가 없었다.
마음은 이미 몇 번이나 그의 것을 핥고 빨면서 성기를 키워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하지만추가 마음과 몸은 다르다고, 이미 무릎 꿇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은 결국 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심한 벌은 아닙니다.”
“……아.”
다니엘의 목소리에 약간의 희망으로 올라왔다. 이 미칠 것 같은 곳에서 심한 벌이 아니라는 소리는 그나마 긴장이 된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 주었다.
그렇게 받기 싫다 생각했으면서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안도하는 자신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자신의 침대에 올려 있는 상자로 다가가는 다니엘의 모습을 가만히 바닥에 주저앉아 지켜보았다.
다니엘은 상자 안에 손을 뻗더니 그 안에 있는 검은색 끈을 꺼내 들었다.
“……그건.”
“이게 첫 번째 실수로 인한 벌입니다.”
“……첫 번째?”
“앞으로 실수를 많이 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점 더 강한 벌이 찾아오니 유의해 주세요.”
다니엘이 검은색 끈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왔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끈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상태로 두 팔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다.
“자, 잠깐만.”
당황한 목소리로 고개를 뒤로 물리며 피하려고 했으나, 다니엘의 손이 더 빨랐다. 눈두덩이 주변은 부드러우면서도 검은색 천이 가려지더니 단단하게 당겨져 머리 뒤쪽으로 묶이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들어서 눈을 질끈 감은 상태로 귀를 기울였다.
“두 번째 수업까지, 눈을 가린 끈을 풀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식사 시간을 지키지 못한 벌입니다.”
“……두 번째 수업도 있나요?”
“두 사람이 성년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하루에 한 번씩 교육을 받게 됩니다.”
눈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각이 보이지 않자 청각이 예민해졌다. 천천히조용히 다니엘이 움직이는지 사르륵, 옷가지 스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귀를 쫑긋 기울여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을 뜨고 싶어도 뜰 수가 없었고, 작은 틈으로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하아…….”
쥐 죽은 것처럼 고요한 방 안에 서로의 신음 소리만 들려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긴장했던 몸에 힘을 풀려고 노력했다.
“교육……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다니엘은 분명 교육을 듣고 성년식을 치를 자격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뜻은, 교육을 듣고 자격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였다. 한숨을 삼키고 눈을 질끈 감으며 최대한 열심히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어떻게 해서든, 이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호한 말에 묻혀 있는 진실성이 느껴졌다. 다니엘의 말은 교육을 듣지 않는다 해도 어떤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해서 교육을 이수시킨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래도 이수를 못 할 수도 있잖아요.”
목소리 끝은 떨려 올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교육도 마쳤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교육은 얼마나 미쳐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라 해도 쉽게 지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이수를 못 하면 벌을 받는 겁니다. 벌을 받으며 교육을 다시 들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성년식의 자격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
도망을 간다고 하더라도 붙잡혀 끌려오리라 하는 말과 같았다. 그 벌이 무엇이기에 첫 번째 교육을 진행했던 신관도, 지금 눈앞에 있는 다니엘 신관도, 계속 ‘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일주일 동안 정말 지옥과 같은 경험을 얻을 것 같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늦어진 식사를 진행하셔야 합니다.”
뚜벅뚜벅,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서서히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것처럼 들려왔다. 눈을 감고 있는 상태로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움직였다.
“벌을 받는다 해도, 식사는 무엇이든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쟁취한 다비드 님의 정액이든, 아니면 선반에 올린 맛있는 음식이든 상관없이 무언가는 드셔야 합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다니엘의 목소리에 입술을 살짝 벌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몸을 움츠렸다.
이미 다비드의 다리 사이에 들어와 앉아 있기에 어디로 고개를 돌리고, 어디를 향해 고개를 내밀면 다비드의 성기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코끝에 비릿한 향기가 풍겼다. 곧 코끝을 톡톡 쏘는 것 같은 짙은 향기에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거부감은 덜했다.
“후우…….”
들이켰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밀었다. 입술을 문지르며 뜨듯한 무언가가 볼을 누르고 지나쳤다. 점점 내민 얼굴에 코끝을 무언가가 간지럽혔다. 입술을 살짝 벌리자 낮은 다비드의 신음이 머리 위쪽에서 들려왔고, 거친 무언가는 입 안으로 들어와 꺼끌꺼끌하고 거친 느낌이 들게 했다.
“……그곳이 아닙니다, 메이브 님.”
“아, 죄송해요. 안 보여서…….”
“조금만 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세요.”
다비드의 목소리를 따라 스르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입술 끝에 부드러우면서도 딱딱한 듯한 무언가가 닿았다.
“후…….”
낮은 숨소리를 들으며 숨을 들이켜고는 입을 벌렸다. 축축한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문질러졌던 그것을 혀로 핥아 내자 거칠면서도 거슬거리는 무언가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 아까 다비드의 성기에 묻어 굳어 있던 하얀 정액일 것 같았다.
코는 마비가 된 것처럼 비릿하고 톡톡 쏘는 강한 향기는 사라졌으나, 입 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맛은 마비가 된 코를 뚫고 비릿한 향기를 맡게 만드는 것 같았다.
“천천히 입을 벌리고, 고개를 살짝 뒤로 물려 봐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지금, 문득 다비드의 표정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했다. 들리는 목소리에 가라앉고 억눌린 것 같은 음욕이 느껴졌다.
그의 표정은 지금 일그러져 있을지, 아니면 덤덤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천천히 눈앞에 다비드의 모습을 그리며 얼굴이 붉어져 있고, 눈은 반달처럼 휘어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내밀었던 고개가 뒤로 슬며시 물러나며 입을 크게 벌렸다. 끼익, 의자 밀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입술 끝을 두드렸다.
뜨거우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를 느끼며 혀를 내밀어 입술에 닿아 있는 그것을 혀로 핥자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열기에 뒤섞기고 약간의 신음과 더운 숨소리가 섞인 소리는 어쩐지 아래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그대로 얼굴을 다시 내밀어.”
존댓말은 다시 반말이 되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헤집는 것 같은 손길에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가 천천히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혀로 핥고 있던 그것은 서서히 입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혀를 누르며 들어오는 그것이 점차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불룩 튀어나온 것 같은 뜨듯한 무언가를 혀로 핥으며 차츰 무릎걸음으로 앞을 향해 다가갔다.
입 안으로 느릿하게 들어오는 그것은 점점 단단해지기를 반복하더니, 때때로 작게 꿈틀거리며 예민한 입천장을 두드렸다.
“후우…….”
입에 고인 타액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최대한 벌리고 있는 입에 턱은 뻐근하게 아파졌고 넣어도, 넣어도 이상하게 그 끝이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혀로 툭툭 단단하고 불룩 튀어나온 것을 문지르며 고개를 앞으로 내밀자, 목구멍에 닿은 끝부분에 헛구역질이 몰려왔다. 움찔, 몸을 떨며 고개를 물리려 하자 머리카락을 잡는 거친 손길과 함께 목구멍 깊숙이 한 번에 단단한 그것이 밀려 들어왔다.
“우욱…… 욱!”
목구멍 깊이 들어오는 그것에 숨구멍이 턱 막혀왔다. 몸을 버둥거리며 어깨를 들썩였지만, 엄지손가락이 단단히 묶여 있어서 주먹을 움켜쥐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뒷머리는 단단한 손아귀에 억눌렸고, 코끝은 거친 무언가가 계속 문질러졌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손이 자유로웠다면 다비드의 허벅지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긁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을 것이다.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도망갈 수가 없었다. 숨은 턱턱 막혀오고 감고 있는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색 천을 적셨다.
“우욱…… 욱!”
숨은 점점 쉬기가 힘들어졌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머리를 누르는 손길은 거칠었고 숨쉬기 힘들 만큼 누르고 있는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묶여 있는 두 팔을 들썩거리며 입을 최대한 벌려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쉬어 버린 목구멍이 뜨거웠고, 비벼지며 깊이 들어오는 성기에 헛구역질이 몰려왔다.
“하아…… 큭.”
메이브가 삼키지 못한 타액이 거품이 되어 다비드의 성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음모에는 타액이 묻어 진득하게 털이 엉켰고, 어깨를 들썩이며 두 팔을 흔드는 몸은 점점 반항이 강해졌다.
온몸이 붉어지며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을 때, 다비드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켜고는 메이브의 얼굴을 붙잡아 입 안에서 성기를 끄집어냈다.
“커흑. 컥……!”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거센 기침을 토해 냈다. 컥컥, 기침하는 얼굴은 붉디붉은 과실과 같이 벌겋게 변했고, 입술 주변에는 타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세엑 색, 숨을 몰아쉬며 거칠게 기침을 몇 번 내뱉은 메이브는 얼굴이 다비드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로 입술을 벌린 채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밥 먹어야지.”
“흐…… 하악. 흐헉…….”
목구멍에 문질러진 성기에 목 안은 따가웠고, 벌어진 입술 안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것이 급급해서 무슨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눈가는 따가웠고, 눈을 누르며 가려진 끈은 눈물에 적셔져 얼굴에 들러붙었다.
“일어나, 메이브.”
낮게 메이브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다비드는 가라앉은 눈으로 벌겋게 변해 들뜬 얼굴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분명 눈물에 촉촉하게 젖어 있을 것이 분명한 눈이 검은색 끈에 가려져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손끝으로 메이브의 눈가를 덮고 있는 검은색 끈을 쓸어내렸다. 콧등을 지나간 끈은 눈두덩을 누르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 부분에 검은색 끈이 짙게 물들어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메이브, 일어나야지.”
다비드의 입꼬리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고, 연녹색의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나며 메이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마리의 맹수가 자신이 붙잡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날이 벼려진 눈으로 메이브를 내려다보면서도 그 목소리는 진득한 눈빛과 달리 다정했다.
“도와줄까?”
“하으. 자…… 흐… 잠깐만. 히…… 힘이 없어서…….”
끈에 눈이 가려진 메이브는 그런 다비드의 표정과 눈빛을 볼 수 없었다. 그저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다비드의 거친 행동에 욕설이 목구멍 끝까지 튀어나왔으나, 여기서 욕을 내뱉고 다비드와 사이가 안 좋게 되면 메이브만 손해였다.
꾹 눌러 참자고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젓고 숨을 몰아쉬자, 겨드랑이에 단단한 손이 들어오더니 자신의 몸이 덜렁 들려졌다.
“어……어. 하으. 하?”
숨을 몰아쉬며 한순간에 몸이 일으켜진 것에 놀라기도 잠시였다. 몸이 한 번에 돌려지고는 단단하고 뜨거운 무언가에 궁둥이가 닿았다. 딱딱한 끝이 오금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다비드의 허벅지 위에 내려앉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을 크게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폐 깊은 곳에 숨을 집어넣어 천천히 내쉬었으나 한번 부족해진 숨은 좀처럼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다.
“하…… 하아. 흡…….”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메이브 네가 엉덩이를 움직여서 넣어야 해.”
목덜미에 뜨듯한 숨결이 닿았고, 곧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어 왔다. 그 소리가 너무 세세하게 귓가에 박혀 들어오는 것 같아 어깨를 움츠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잠깐……만.”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이 상태로 음식을 먹다가는 목에 걸려 뱉어 내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따가운 목구멍과 눈물이 흐르는 눈두덩은 점점 부어오는 것처럼 뜨듯했다. 차라리 끈에 눈이 가려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울어서 눈가가 벌겋게 변한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니까, 다행이었다.
메이브의 눈매는 날카롭게 올라가 있어서 눈물을 흘려 부어 버리면 꼴사나워 보일 것 같았다. 못생겨 보이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무리 잘생기고 예쁘게 생겨도 울어서 얼굴이 부어 버린 사람 중에서 잘난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메이브 또한 잘생긴 것은 맞았으나, 하도 울어서 눈덩이가 붕어처럼 부풀어 버리면 못생길 것 같았다.
“……하.”
좀 더 늦어졌다가 다른 벌이 찾아올까 봐 힘없는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축축하면서도 뜨거운 그것이 엉덩이 골 사이를 문질렀다.
허리를 움직이며 몸을 앞뒤로 살살 움직였지만 좀처럼 구멍 안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주먹을 움켜쥐었던 손가락을 최대한 펴고 엉덩이 골에 걸리는 뜨거운 그것을 힘주어 구멍 아래로 보내려고 노력했다.
“으…….”
생각과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생각은 벌써 구멍 안에 저 단단한 것을 집어넣고 조금 쉬고 싶다고 소리치고 있는데, 몸은 아무리 움직여도 자신의 타액으로 축축해진 성기의 끝이 계속 미끄러져 이상한 곳으로 엇나갔다.
눈으로 보고 움직였으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 벌을 받는 상황에서 눈을 가린 천을 벗겨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다니엘이 다른 벌을 주기 전에 구멍에 성기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으……후!”
구멍 끝에 귀두가 닿았을 때 천천히 엉덩이를 내려앉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으나, 단단한 그것은 메이브의 손끝을 지나 엉덩이 골 위로 올라가 꼬리뼈를 두드렸다.
“제발…… 진짜!”
화가 올라올 지경이었다. 답답하고 짜증이 몰려왔다. 그것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렇게 해도 저 성기를 집어넣을 수 없다는 거였고, 자신의 순결을 날름 가져가 버린 메인수 같지도 않은 다비드는 편하게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이브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때 다비드의 입가의 미소는 점점 진득해졌다. 의자 걸이에 손을 올려놓은 상태로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몸을 내려다보았다.
근육이 하나같이 움찔움찔 떨리고 쩍 벌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몸에 입 안이 말라가는 것 같아 다비드는 혀로 입술 주변을 핥으며 메이브의 벌겋게 변한 목덜미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5분 안에 쟁취한 자의 것을 품지 못하면 다음 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니엘이 조용히 메이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비드의 얼굴이 천천히 돌아가 다니엘을 쳐다보았을 때, 다니엘 역시 고개를 살짝 돌려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누구도 지지 않을 것처럼 날카롭게 벼린 눈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
다비드의 포근해 보이는 연녹색 눈이 시리게 변해 가는 것을 본 다니엘은 자신이 어떤 말이나 이후의 교육에 대해서 메이브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고 해도, 이 상황이 바뀌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발…… 진짜!”
결국 화가 뒤섞인 목소리가 메이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묶여 있는 두 손을 힘주어 움켜쥔 상태로 다시 엉덩이를 살살 움직여 다비드의 귀두 끝을 구멍에 문질렀다.
조금 더 늦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점점 강도가 높아진다는 벌은 그 뒤에 어떤 벌이 기다릴지 무서웠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엉덩이를 내리자, 드디어 살갗을 벌리며 단단한 성기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흡…… 읏.”
예민해진 살갗을 문지르며 들어오는 것에 놀라기도 잠시, 골반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지려는 찰나 천천히 내리던 엉덩이가 한순간에 밑으로 당겨졌다.
“아흑!”
고개가 위로 꺾이고 허리를 활처럼 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비드의 행동에 덜덜 떨리던 다리가 쭉 뻗어지고 몸을 움찔거리며, 꺾여 있던 고개가 숙여진 메이브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한순간의 쾌감 때문인지, 아니면 부어 있던 구멍을 벌려 성기를 밀어 넣어서 그런지, 하얀 살결이 점점 붉게 변해 갔다.
힘이 들어가는 몸에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은 점점 조여졌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했고, 안의 붉은 살들도 움찔거리며 떨려 왔다.
“메이브, 이제 밥 먹어야지?”
웃는 소리와 함께 골반의 불룩 튀어나온 뼈를 문지르며 속삭이는 다비드의 목소리에 목을 움츠렸다. 눈도 뜨지 못하고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촉각도, 청각도 예민해진 것 같았다.
천천히 골반을 문지르던 손이 몸 선을 따라 올라왔다. 투박한 손바닥이 열이 올라온 살갗을 문질렀다.
뜨듯하면서도 가려운 것 같은 느낌에 움찔움찔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파고들어 가 있는 성기는 작게 꿈틀거릴 때마다 부어 있는 전립선을 두드렸다.
열기가 아래에 몰리고 작은 세포 하나하나마저 몰려 버린 것같이 성기가 발기하는 것이 느껴졌다.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려던 찰나에 가슴을 쓸며 올라온 굳은살이 박여 있는 손끝이 입술을 문질렀다.
“입 벌려야 먹여 줄 수 있어.”
“…….”
이대로 먹으면 분명히 체할 것 같았다. 체하지 않는다고 해도 속이 더부룩해질 것은 분명했다.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 안 돼. 밥은 제대로 먹어야지.”
다비드가 메이브의 볼을 검지로 누르며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짓누르며 벌리게 했다.
굳게 닫혀 있는 치열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자, 다비드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엉덩이를 살짝 움직였다.
“아……흣!”
놀라 벌어진 입 안으로 다비드의 손가락이 밀려들어 갔다. 메이브의 입술이 꾹 다물어지려 했으나 입 안에 들어가 있는 손가락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밥만 먹으면 편히 쉴 수 있잖아.”
“……그러면 조금만…… 주세요. 진짜…… 속 안 좋으니까…….”
“알겠어.”
잔뜩 갈라지고 울음기가 섞여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작은 메이브의 목소리를 들은 다비드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식탁에 내려져 있는 숟가락을 들어 고기가 들어 있는 수프를 가득 담아 메이브의 입가에 가져갔다.
“조금 식어 있으니까 먹기는 괜찮을 거야.”
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메이브의 입가에 뜨듯해진 숟가락이 닿았다. 머뭇거리며 멈추는 사이에 벌려져 있는 입 안으로 천천히 진득한 수프가 흘러 들어갔다. 다비드의 품 안에 가둬진 메이브의 몸이 움칠 떨려 왔고, 아직 입 안에 들어가 있는 손가락에 입을 다물지도, 그렇다고 벌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가만히 있자 입에 들어가 있던 손가락이 천천히 빠져나왔다.
반쯤 벌어져 있던 입술을 다물고 입 안에 머금어진 고소한 수프를 혀로 굴리며 목구멍 안으로 삼켜 냈다. 속이 뜨듯해지는 느낌과 함께 입 안에 고소하면서도 끝맛이 씁쓸한 수프에 혀를 움직여 입술 주변을 살짝 핥았다.
“속이 안 좋다고 했으니까, 수프 위주로 먹여 줄게. 더 못 먹겠으면 말해.”
“……네.”
다비드의 성격을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존댓말을 하다가 반말을 했고, 원작 메인수라고 하기에는 성격이 조금은 강압적인 듯 밀어붙였다.
이런 성격을 가진 그가 갑자기 왜 수가 되어 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설 속에서 보았던 삽화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만약, 원래의 메인수였던 다비드, 아니 데이비드가 수가 되면서 이리저리 굴려지며 근육이 빠져 왜소하게 변한 게 아닐까 하는, 가장 이상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아기 새가 된 것처럼 입을 벌려 기계처럼 다비드가 먹여 주는 수프를 몇 번이나 입 안에 넣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어느 정도 되자 아랫배가 부푸는 느낌과 함께 배가 불러왔다.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주먹을 쥐고 있던 손으로 다비드의 아랫배를 두드렸다.
“더는 배불러서 못 먹어요.”
어느 정도 숨이 안정적으로 변했고, 뜨듯한 수프를 먹은 몸은 데워진 듯 따듯해졌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내쉬기를 반복하며 눈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몸을 살짝 돌려 다니엘이 있을 법한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식사 끝났는데, 쉬어도…….”
“안 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기며 부정의 말이 들려왔다. 순결을 지키지 못한 자는 사람도 아닌지, 복지도 없고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요? 쟁취한 자가 식사를 끝내지 않아서요?”
허탈한 목소리로 설마 정말 이것일까 생각하면서 말을 내뱉자, 목소리가 들려왔던 쪽에서 잠시 말이 없었다. 정말 자신이 했던 말이 사실이었는지 의아하던 찰나에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직 메이브 님의 순결을 가져간 다비드 님의 식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하.”
이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피로가 몰려와 쾌감과 열기가 감도는 몸은 둔해졌다. 온몸에 힘을 풀고 등을 기울여 다비드의 가슴에 등을 붙이고 기댄 상태로 고개를 푹 숙였다.
“……다비드 님.”
“……음?”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메이브는 나른한 숨을 작게 내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루가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짧은 시간에 너무 고된 일을 많이 당했다.
순결을 잃고, 밥을 먹을 때 이 상태로 구멍에 성기를 집어넣고 있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피곤한 몸뚱이는 자고 싶다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긴장을 조금만 풀어도 잠들 것 같은 상황에 눈도 뜰 수가 없어 졸음은 빠르게 몸을 잠식해 갔다.
“저, 조금만 자도…….”
될까요? 그 말은 끝까지 나올 수가 없었다.
“자기 위해서는 다비드 님이 메이브 님께 정조대를 착용시켜 주어야 합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에는 잠깐 졸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다비드는 축 처진 몸으로 자신의 몸에 기대어 있는 메이브를 내려다보며 물었으나, 다니엘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들어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쟁취한 자는 지키지 못한 자가 잘 수 있게 지급된 물건을 착용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 규칙입니다.”
“융통성이 없네. 그러면 신관님 당신이 상자에 가까운데 정조대 좀 가져다줄 수는 없습니까?”
“다비드 님이 착용시켜야 하는 물건은 제가 만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뭐, 이 상태로 안아 들어서 정조대를 착용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식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다비드의 목소리는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피곤함에 절어 버린 몸에 그의 목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잠깐만 자고 일어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졌으나, 그러다가 벌을 받게 되면 더 억울할 것 같아 아랫입술을 깨물며 졸음을 쫓으려고 노력했다.
“네.”
다비드의 말에 단호한 대답만을 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에서 어이없는지 작은 웃음과 한숨이 뒤섞인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어차피 신관이니, 교육이 아닌 다른 것은 물어봐도 상관없습니까?”
“네, 교육이 아니라 다른 것을 물어보신다면 그것에 대한 것은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성년식을 치르는 것에 이러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일반적인 신전에서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텐데.”
다비드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는 것처럼 들려왔다. 어쩐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 같아 다비드에게 기대었던 몸을 살짝 떨어트리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허리를 감으며 가슴을 누르는 팔에 떨어지지 못하고 다시 그의 가슴에 기댄 상태로 있어야 했다.
“여기 신전은 어떤 신을 섬기는 겁니까?”
다비드가 물었던 말은, 자신 역시 궁금했기에 귀를 기울였다. 일반적인 신전이었다면 음욕을 덜어 낸다고 방 안에서 자위를 시키지도 않았을 것이고, 순결을 지키거나 가져가는 사람에 대한 것 또한 없을 터였다.
첫 번째 교육부터 자신의 순결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누군가의 순결을 빼앗으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만약 교육이 있다 하면 그것은, 명상이나 기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음욕의 신인 타니아 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 음욕의 신을 섬기면서 매일 아침 음욕을 덜어 낸다고?”
19금 소설 속이라 혹시 이 미친 신전이 음욕의 신을 섬기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그게 정말 사실이라는 것에 어이없기까지 했다.
사실 따지면 웃긴 거였다. 음욕을 덜어 내 몸을 깨끗하게 만들라고 하고는 누군가에게 박히거나 박으라는 교육은 모순이었다. 어쩌면 신관이 말했던 깨끗한 몸은, 이리저리 범해져 멍청하게 망가져 버린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 사람이 속에 있는 음욕을 뱉어 내면, 그것은 타니아 신께 힘이 되며 그 힘이 두 사람의 머리를 쓸어내려 축복을 줄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
다비드가 이를 갈며 다니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서서히 반쯤 감겨 있던 다니엘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은색의 머리카락과는 대비되는 푸른색 눈동자가 똑바로 다비드의 연녹색 눈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그때 포기하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성년식을 치르지 않는 이상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다니엘이 찬찬히 말하며 손가락으로 메이브를 한번 가리키고는 자신의 목을 툭툭, 건드렸다.
“왜 순결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목에 검은색 목줄을 착용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다니엘의 입꼬리가 스르르 말려 올라갔다. 긴장감에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검은색 가죽 목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목줄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아났다.
“쟁취한 자는 힘든 일이 없습니다. 어차피 박고 싸고 먹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다니엘의 입에서 덤덤하게 뱉어지는 말은 신관이 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힘들 일 또한 없죠. 일이라고는 자신이 순결을 가져간 자를 챙기는 것인데, 챙기지 않아도 쟁취한 자들에게 좋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그저 지키지 못한 자가 벌을 받을 뿐이니까요.”
다니엘이 메이브와 다비드가 앉아 있는 의자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렇다면 지키지 못한 자가 불쌍하겠죠. 원치 않는 성기를 받아들여 섹스를 해야 하며, 그 안에 원망스러운 남자의 정액을 품어야 하고, 씻겨 주지 않는다면 두 손이 등 뒤로 묶여 있는 지키지 못한 자는 원망스러운 정액을 자신의 안에 품은 상태로 빼내지를 못하니까요.”
두 걸음. 다니엘은 의자에 앉아 있는 다비드와 그의 품 안에 가둬진 메이브를 바라보며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침마다 원망스러운 남자의 성기를 빨아야 하고, 그 정액을 자신의 목구멍 속으로 삼켜야 합니다. 정말 끔찍하고 절망감에 파묻힐 겁니다.”
다니엘의 푸른색 눈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 두고 다니엘은 걸음을 멈추며 눈을 살짝 내리깔아 의자에 앉아서 메이브를 품 안에 안은 상태로 귀를 막고 있는 다비드를 내려다보았다.
“잠을 잘 때도 정조대를 착용시켜 주지 않는다면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보통, 몰래 자면 괜찮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잠들기 전 신관들은 방 안에 들어와 지키지 못한 자가 정조대를 착용했는지 착용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합니다. 자, 그럼 만약 착용하지 않았다면 저희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잠을 잘 수 없도록 무언가를 한다는 소리겠지.”
“맞습니다. 다비드 님은 생각보다 똑똑하군요. 순결을 가져간 자들의 성기로 헤집어진 구멍 안에 거칠고 두꺼운 나무 딜도를 박아 넣어 놓습니다. 엉덩이에는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식물의 즙을 구멍 안과 밖에 흘러넘칠 만큼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지키지 못한 자는 속이 가려워 혼자 엉덩이를 덜덜 떨며 밤새도록 허리를 뒤흔드는 겁니다.”
다니엘의 말을 듣고 있던 다비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다니엘은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모르는 건지, 표정은 한없이 덤덤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밥 또한 지금은 다비드 님이 메이브 님께 식사를 챙겨 주었으나, 보통 챙겨 줄 것 같습니까? 옷은 찢어발겨 버리고 식사는 주지 않아 자신들의 정액을 먹입니다. 일주일, 그 안에 지키지 못한 자들은 망가지며 근육이 있던 몸도 곯아 왜소하게 만들어집니다. 자, 그러면 목줄은 왜 했을까요?”
“……하, 미쳤군.”
다비드가 이를 갈며 하는 말에 다니엘은 진득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상태로 다비드를 내려다보았다.
“음욕의 신 타니아 님께 힘을 주는 그들이 도망가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도망가는 순간, 그 목줄에 감긴 신력으로 인해 이 신전 밖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는 겨우 저 위에 옷을 빨 수 있는 호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 벗어나면.”
다니엘이 손가락으로 목깃에 가려진 목 부분을 툭툭 건드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목줄이 당겨져 처음 교육했던 홀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 그렇게 잡혀 온 지키지 못한 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푸른색 눈동자 위로 번들거리는 감정이 드러났을 때, 다비드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메이브가 듣지 못하게 두 손으로 메이브의 귀를 힘주어 눌렀다.
“더는 도망갈 수 없도록 제대로 교육을 시켜 주는 겁니다. 하루 동안 끊임없이 자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로 쾌락만을 느끼게 만들죠. 그렇게 망가진 자들은.”
다니엘이 천천히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 신전을 위해, 우리의 신 타니아 님의 신력이 되어 음욕을 배출하는 겁니다.”
다니엘은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겨 방문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문고리를 잡은 상태로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고 있는 다비드의 가라앉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니 지금 품 안에 있는 메이브 님이 소중하다면, 벌을 받지 않게 노력해야 할 겁니다.”
다니엘은 그 말을 끝으로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방음이 잘 되고 있었던 건지, 방문이 열리는 순간 고통스러워하는 비명 소리가 잠깐 들렸다가 문이 닫히며 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비드는 메이브의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떨어트렸다. 멍한 표정으로 움칠, 몸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은 메이브가 몸을 살짝 비틀어 다비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왜 귀를 막은 거예요?”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면서 몸을 돌리는 메이브를 내려다보는 다비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메이브가 두 눈이 가려져 있어서 잔뜩 구겨지고 굳어진 표정을 감출 수가 있었다.
“목줄이 왜요? 이거 안 좋은 거예요?”
“메이브, 네가 이곳에 있는 동안 네가 지켜 주라고 말했지?”
“……아, 네. 이곳에 있는 동안에만…….”
“네 말대로 이곳에 있는 동안 지키고, 나가고 나면 네 뜻에 따를 테니,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메이브, 넌 내 말을 들어야 할 거야.”
무언가 안 좋은 말을 들은 건지, 다비드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 건지 물어보고 싶어도,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목소리에 차마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괜히 기분 나쁜 사람 건드렸다가 화를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았다.
“……일주일, 아니 이제 6일 동안 말만 잘 들으면 된다는 거예요?”
갑자기 다비드가 책임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제 뜻을 따른다는 것이 의아했다. 목줄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궁금했으나, 목소리가 굳어 있는 것에 표정 또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아아, 6일. 그동안 내가 챙겨 줄게.”
“……벌 받기 싫으니까 벌만 받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만 해도 돼요.”
분명 다니엘과 다비드가 서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았다. 목줄 이야기가 끝나고 먹고 싸고 자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 뒤로는 제대로 듣지 못했으나, 아마 상황상 지키지 못한 자가 불리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했다.
밥을 먹여 주지 않는 것에도 지키지 못한 자가 잘못한 것이었고, 아무리 벌을 받기 싫어서 쟁취한 자에게 매달려도 그가 해 주지 않는다면, 결국 지키지 못한 자가 모든 벌을 받는 거였다.
“……벌 같은 거 받지 않게 해 줄 테니까 내가 하는 말은 꼭 들어.”
다비드의 일그러진 얼굴을 메이브는 보지 못했다. 단지 목소리에 묻어나는 진득한 분노에 어쩌면 정말 좋지 않은 말을 들었구나, 혼자 생각할 뿐이었다.
소설 속에는 성년식에 관련한 내용이 없었다.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떠한 일이 벌어졌었는지 자신은 알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가 이 소설에서 저 다비드를 깔고 뭉개며 계속해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 그가 벌을 받았다면, 아마 반쯤 미쳐 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또라이가 가득한 소설 안. 그중에 또라이에 빙의했고, 이제는 메인수인 다비드와 공에 빙의한 자신의 위치가 뒤바뀌어 버린 상황이었다.
“……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메인수 같지도 않았고, 만약 처음에 다비드가 자신에게 이름을 제대로 말했다면, 메인수가 맞는지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솜사탕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과 연녹색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가 진짜 이름을 말했다 해도 영원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에 들어가 있던 삽화와 그 안에 있었던 작은 글귀의 외모 묘사와는 지금의 외모가 확실히 차이 났다.
“피곤하다고 했었지?”
“아…… 네.”
“정조대 채워 줄 테니까 일어나.”
딱딱하게 굳어 있는 말투에 움찔 몸을 작게 떨고는 두 다리로 제대로 바닥을 디디며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느릿느릿 구멍에서 빠져나가는 성기의 느낌이 도드라지게 느껴져 입에서 들뜬 숨이 내쉬어졌다.
한숨을 조용히 들이켜고 내쉬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아무리 힘을 주고 있지만, 떨리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무릎이 굽혀져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런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을 때, 그쪽으로 몸을 기대고 조용히 보이지 않는 걸음을 옮기자 한순간에 몸이 뒤집어져 침대에 앉혀졌다.
“아…….”
덜렁덜렁 무슨 짐짝처럼 한 번에 들리는 자신의 몸이 이상했다. 분명 거울에서 봤을 때는 근육도 좀 있고, 어깨도 약간 벌어진 편이라 무게가 나갈 것 같았는데, 막상 다비드에게 번쩍번쩍 가볍게 들리자 근육이 아니라 물살인가 하는 의문까지 생겨났다.
“차가울 거야.”
“……아, 네.”
처음과 달리 존댓말을 하지 않는 다비드가 조금은 어색했다. 관계를 할 때면 성격이 드러나는지 반말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했을 때에는 존댓말을 했던 그가 갑자기 반말을 하는 게 의아했다.
무언가 화가 잔뜩 올라서 주체하지 못하고 표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읏…….”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발기한 성기를 누르고 살갗을 문지르며 올라왔다. 뜨듯한 성기 주변에 닿는 차갑고도 무거운 것이 밑동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것도 따로 착용해야 해.”
자신의 고환을 스치듯이 지나가는 차가운 것의 느낌은 이상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자 찰칵찰칵, 고리에 거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아랫부분이 무거워졌다.
얼굴을 살짝 가로저으며 눈을 가리고 있는 끈을 약간 흐트러트려 보려 했지만,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끈은 흘러내릴 것 같지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
“……다비드 님은요. 안 주무세요?”
“……저도 곧 잘 겁니다.”
“그러면 저 먼저…… 좀 잘게요.”
한 번에 찾아온 모든 것에 머릿속은 복잡했고,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깊은 심연의 끝에서 손이 뻗어져 나와 발목을 움켜쥐고 목을 부여잡아 자신을 끌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느릿느릿 침대에 누워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묶여 있는 손에 똑바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으려 노력했다.
곧 그마저도 깊어지는 수마에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깨를 쓸어내리는 투박하면서도 뜨듯한 체온을 느끼며 몰려오는 수마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
“메이브?”
다비드가 작은 목소리로 메이브를 불렀지만,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는 메이브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려 물기가 묻어 있는 볼을 손끝으로 살살 문질렀다. 홍조가 올라온 볼을 지나 콧잔등 부분이 붉어져 있는 곳을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메이브.”
시체처럼 자는 메이브는 작은 투정도 하지 않고 몸을 움츠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더운 숨을 살며시 내쉬는 메이브를 지켜보던 다비드는 등 뒤에 묶여 있던 하얀 끈을 차분히 풀어냈다. 그러자 손목에 감겨 있던 끈이 사르륵, 몸을 쓸며 풀어지고 손가락에 단단히 싸맸던 끈을 풀었다.
손목에 남은 붉은색 자국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다비드는 이리저리 구겨져 땀과 정액이 튄 더러워진 하얀 옷을 벗겨 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일어나지 않는 메이브를 이따금 쳐다보다가 그의 두 팔을 들어 올려 손을 풀지 못하게 단단히 손목을 묶고 침대 헤드에 매듭을 묶은 뒤에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쪽에 밀린 이불을 끌어당겨 메이브의 몸 위에 덮어 준 다비드는 한 손에 메이브의 옷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다비드가 나가 버린 방 안에는 고른 숨소리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