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장 (24/25)
  • 24장

    조그만 소년은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주변을 경계했다. 그 자세를 유지하며 앞으로 조심조심 뛰어갔다. 동작만 보면 암살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도적이었고, 아이는 혼자서 꽤 그 행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흠이 하나 있다면 이곳은 소년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인, 바로 그의 거처라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척을 숨기며 걸어간 소년은 대문 앞에 도착했다. 이제 저걸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치면 됐다. 그러면 모든 게 성공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잡았다!”

    “아아, 아버지!”

    뒤에서 두툼한 손이 날아오더니 소년의 허리춤을 낚아챘다. 소년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튀어 올랐다. 어느새 그는 장신의 남자의 팔에 껴 팔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거의 다 됐었는데!

    “또 수련 빠지려고 그러지!”

    언영이 아들을 내려다보며 일침을 가했다.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상연은 처음엔 고개를 열렬히 저으며 부정했다. 하나 아버지의 엄한 무표정을 마주하니 대들고픈 생각이 일순에 쪼그라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결코 무서운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워 보이는 척은 잘했다. 어머니가 그런 무표정을 보고 설레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더욱 엄숙한 표정을 짓는 데 몰두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꿈틀거리거나 콧구멍을 벌렁대는 탓에 실패했지만.

    그러나 언영은 정말로 조금이나마 화가 난 상태였으므로, 지금의 표정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은 금방 꼬리를 내렸다.

    “맞기는 맞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라니까요! 은평 스승님은 매번 저한테 틈만 나면 이상한 동작을 가르쳐 주시려고 한단 말이에요!”

    “모든 건 배워 뒀을 때 쓸모 있다.”

    “아니요, 그런 춤은 절대 쓸모없을 것 같습니다!”

    상연은 강력히 반발했다.

    언영은 한숨을 내쉬며 상연을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가까이서 아들과 눈을 맞추었다.

    아까보다 훨씬 다정한 목소리로 언영이 낮게 말했다.

    “그래도 들어. 너 자꾸 빠진다고 하면 네 어머니께서 많이 걱정하셔. 그러다가 나중에 네가 정말 듣고 싶은 수련 있을 때 어머니께서 극구 반대하신다?”

    “…….”

    상연의 마음이 흔들렸다. 언영도 아들의 낯빛을 보고 눈치챘다. 하지만 그건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래도 은평 스승님 수업은 정말 안 될 것 같습니다. 자꾸 저한테 이상한 동작을 따라 해 보라 시키신단 말입니다.”

    “…….”

    언영은 아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기세등등한 상연의 눈에서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고집을 보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건 내가 내일 당장 은평이한테 말해 줄 테니까 오늘만이라도 가.”

    상연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언영은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어린 시절의 그와 아주 빼닮은 얼굴을 가지고선 하는 행동의 절반은 언영이 옛날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능수능란한 잔꾀였다.

    언영은 상연의 어깨를 정답게 한쪽 팔로 안으며 바짝 붙었다.

    “저번에 갖고 싶다고 했던 검 구해다 줄게.”

    “정말요?”

    이제야 상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래.”

    “알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결을 보긴 했다만, 언영은 계속 찝찝하기만 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아들을 여전히 한쪽 팔로 안고 나머지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었다. 이 조그만 사고뭉치는 여태껏 언영이 마주한 모든 사람과 그 밖의 짐승들을 포함해서 가장 곤란한 상대였다.

    “얘를 진짜 어쩌지. 야, 너 때문에 머리카락 빠지고 목린이가 나한테 정떨어지면 다 네 잘못이야.”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또 언영을 한 대 후려쳤다.

    “그게 왜 제 잘못이에요! 못생겨지는 아버지 잘못입니다!”

    “뭐?!”

    언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영의 허리에도 오지 않는 상연은 순간 아버지의 덩치에 흠칫 놀라며 허리춤에 끼고 있던 목각 검을 빼 들었다.

    사실 상연 또래의 귀혈족 아이들은 이미 그 나이에도 진짜 무기를 달고 다녔지만, 그런데도 이런 장난감을 상연이 갖고 있는 이유는 어머니 목린이 아들이 다칠까 봐 너무나도 걱정했기 때문이다.

    상연은 언영의 허벅지를 쿡쿡 찔러냈다.

    “맞아라! 맞아라!”

    “아아. 아아아. 나 죽는다.”

    언영이 몸을 비틀며 아픈 척을 했다. 그에 맞서 상연은 더욱 열심히 목각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잠깐만. 그래도 아버지한테 죽어라가 뭐냐!”

    “거의 죽어라!”

    “그래. 그건 좀 낫다.”

    “어머니께서 너무 슬퍼하지 않으실 정도로 죽어라!”

    언영은 맞지도 않은 가슴 쪽을 부여잡으며 장난에 더욱 몰입했다. 무릎을 꿇으며 무너지는 척을 하려고 했을 때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언영의 귀를 녹였다.

    “두 사람 뭐 하는 거예요?”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본 언영은 그 순간 너무 눈이 부셔서 손으로 시야를 가려야만 했다.

    “아아아악!”

    측면에서 경국지색이 강림하고 있었다. 갈수록 더 예뻐지는데 벌써 이렇게 눈이 부시면 어쩌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

    “상연아, 그 검 내려놔! 위험해!”

    전혀 날카롭지 않은 목검이라고 한들 목린의 반응은 진지했다. 상연이 허리 위로 조금의 날카로운 것만 들고 있어도 기절초풍했다. 팔을 뻗으며 콩콩 뛰어왔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본 아들은 절대 ‘어머니께선 너무 겁이 많으십니다!’ 하고 받아치지 않았다. 되레 어머니의 관심을 더욱 갈구하듯, 소매를 걷더니 손목에 난 아주 흐릿한 상처를 보여 주었다.

    “어머니, 저 여기 다쳤어요.”

    “어머나!”

    목린이 자리에 앉아 상연과 눈을 맞추었다. 아들의 팔을 부드럽게 잡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많이 아팠겠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언영은 어이가 없다 못해 부족할 지경이었다.

    “고작 저런 걸 가지고 꾀병은…….”

    귀혈족으로서의 체면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툴툴거리는 언영과 달리 목린은 진지했다. 상연의 손을 잡아 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오늘 수련은 쉬어야겠다.”

    “그건 무슨 소리야. 고작 저런 상처 가지고?”

    황당해진 언영은 이번엔 크게 말했다.

    언영과 목린은 서로를 많이 사랑했고, 두 사람은 상연을 만나자마자 바로 그 아이 또한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작 감정 하나로 모든 걸로 해결된다는 건 허상인지라,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많은 탈이 있었다.

    ‘옳지! 옳지! 하하하하하!’

    상연이가 태어난 지 갓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 언영은 상연과 ‘귀혈족의 아버지’답게 놀아 주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걸터앉아 자신의 머리보다 훨씬 높게 아기를 던져 주었다. 옆에선 다인이 불을 휘두르며 노래를 열창했다.

    ‘자, 우리 모두 어깨를 펴고! 드넓은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저 높은 강산 위 용의 아가리! 다 같이 힘을 합쳐 찢어 버리자!’

    ‘꺄하하!’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상연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상연이 재밌어? 하하하하하! 어, 목린아!’

    측면에서 걸어오는 아내를 본 언영의 입이 크게 찢어졌다.

    목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그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승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낯빛이 끔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린은 옆으로 풀썩 쓰러지며 기절했다. 다인과 언영이 경악하며 튀어 올랐다.

    ‘목린아! 정신 차려!’

    ‘목린아!’

    귀혈족과 초족이 아기를 키우는 방식은 너무나도 극단적으로 차이 났다.

    목린을 기절시키면서까지 상연을 키우고 싶지는 않은 언영은 자기 방식대로 놀아 주는 것을 얼른 관두었다. 그리고 목린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열심히 의사를 물었다.

    목린이 답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안아 주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기로 했다.

    따뜻한 태양을 받으며 두 사람이 함께 마루에 걸터앉았다. 목린은 방금 막 잠든 상연을 아주 조용히 얌전하게 안고 있었다. 언영은 그가 안고 있겠다고 했지만 목린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거절했다.

    언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네.’

    목린은 상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그와 별개로 언영은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뒷머리를 긁적이고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러면 상연이가 너무 지루해하지 않을까? 한 번 날려 주…….’

    날린다는 말에 목린의 동공이 무섭게 떨리기 시작했다. 언영은 얼른 팔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야! 날리진 않을 거야! 진정해, 목린아! 그러니까, 함께 뛰면서 산에 올라갔다 온다든가…….’

    목린의 눈이 여전히 떨렸다.

    ‘싸움을 보여 준다든가…….’

    이젠 어깨까지 같이 떨렸다.

    ‘아니면, 아니면 멀리서 번쩍번쩍한 불구경이라도……! 목린아! 정신 차려! 그냥 구경이잖아!’

    그렇게 얼마간은 목린이 원하는 방식을 따랐다. 하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귀혈족의 마을에 살면서 끝까지 이렇게만 애를 키울 수는 없다는 결론에 두 사람 다 도달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합의를 봐야 할까 전전긍긍하던 중에 목린이 먼저 양보했다.

    ‘상연이는 계속 이 마을에서 살아갈 거고, 아마 이 부족을 다스리게 될 테니까요. 이쪽 문화에 맞춰 기르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물론 말이야 쉬웠다.

    상연이 뭐만 하려고 하면 옆에서 두 손을 꽉 쥐고 떨었다. 얼굴도 너무 창백해져서 상연이 말하고 걷고 어느 정도 생각할 수 있을 정도까지 자랐을 땐, 그가 직접 걸어가 ‘어머니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일곱 살이 된 상연이 잠시 마을을 떠나 반년 동안 수련을 받으러 가게 된 날이, 근래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이었다.

    ‘우리 상연이한테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상연이도 벌써 일곱 살이야.’

    ‘겨우 일곱 살인데…….’

    상연이 잠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소식에 목린은 요즘 계속 틈만 나면 울먹거렸다.

    ‘잘못해서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우리 상연이.’

    ‘내가 일곱 살 때는 저 산꼭대기에 혼자 올라가서!’

    언영이 과거 자신의 영웅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으려던 순간 상연이 목린의 품에 와락 안겼다.

    ‘어머니, 저 무서워요.’

    ‘이것 봐요! 상연아, 괜찮아. 그런 거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황당해진 언영의 입에 크게 벌어졌다.

    정말 진지하게 말하자면, 언영 또한 상연이 귀혈족의 문화를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상연은 귀혈족이기 이전에 그저 하나의 사람이었다. 후에 한 부족을 이끌게 될 족장이 된다고 해도 이건 매한가지였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크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아들이 초족처럼 자라고 싶다고 하면 흔쾌히 알았다 할 생각이었다.

    하나 언영의 아들이자 월진의 손자 아니랄까 봐, 기실 상연은 또래 아이들 중에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 허현오가 전에 한 번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어째 상연이가 주언영보다 주언영을 더 닮았다고. 그리고 그 문장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생긴 것도 언영을 그대로 갖다 놓은 수준이라 목린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았다. 얼굴도 언영보다 조금 더 날카로우면 날카로웠지, 결코 목린이 보인다고 할 수 없었다. 상연의 움직임을 볼 때마다 마을 웃어른들은 과거로 돌아가 언영을 다시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나이부터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니 분명 훌륭한 거목이 될 거라는 찬사가 주변에서 쏟아졌다.

    하나 어머니의 관심이 좋은 상연은 언제부턴가 조금만 다쳐도, 조금만 힘들어도 목린에게는 울면서 달라붙었다. 언제나 놀 궁리에 빠져 있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목린만이 늘 상연을 걱정했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마을 아이들 중에 최강인데, 제대로 각 잡고 움직이면 어떤 실력이 나올지는 언영도 감히 상상하기 무서웠다. 게다가 목린 앞에서 꾀를 부리는 걸 보면 머리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처음에 언영은 ‘다행이다! 내 머리를 이어받진 않았구나!’ 하며 진심으로 감격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는 목린을 보면 매번 안타까웠다. 아무리 말해 줘도 목린은 믿지 않았다.

    ‘우리 상연이, 힘들면 스승님께 꼭 말하고. 너무 위험한 건 하지 말고. 알았지?’

    ‘네, 어머니!’

    ‘조심히 잘 다녀와야 해……!’

    결국 목린은 끝까지 참다가 상연을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언영은 잠시 목린을 달래 주는 것도 까먹고 황당해서 입을 멍하니 벌렸다. 얼른 갔다 오라고 엉덩이를 팡팡 때려 주는 어미가 있으면 모를까, 겨우 이런 일로 눈물을 보이는 귀혈족 어머니는 역사상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언영은 목린을 일으켜 세우고 자기 품에 안았다. 목린의 정수리에 계속 입을 맞춰 주고 등을 쓰다듬었다.

    ‘어머니…….’

    목린이 이렇게 울 줄은 몰랐던 상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부모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제가 제일 강합니다! 제가 다 이겨서 올 거…….’

    상연은 말을 잇다 말고 아버지의 으스스한 무표정에 흠칫 물러났다.

    ‘주상연.’

    ‘예, 예. 아버지.’

    ‘잘 갔다 와라.’

    ‘예…….’

    ‘거기선 네 그 귀여운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

    상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 상연이 걱정돼서 어떡해요. 밥은 잘 먹었을까요? 가는 길에 어디 다치지는 않았을지…….’

    ‘괜찮을 거야.’

    ‘제가 걱정할 걸 아니까, 일부러 자기가 가장 강하다고 거짓말도 할 줄 알고……. 마음만은 벌써 다 컸어요.’

    ‘…….’

    언영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의 한쪽 팔에 안겨 있는 목린의 이마와 볼에 쪽쪽거렸다. 목린과 나란히 누워 있는 그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 언영의 머릿속에 아들을 생각할 틈 같은 것은 없었다. 오늘만을 기다렸다. 앞으로의 일정을 모두 비워뒀다. 밤낮 가리지 않고, 뜨거웠던 예전의 초야처럼 목린이와 종일 흘레붙을 수 있다. 흥분한 그의 숨이 거칠어졌다. 품에서 목린의 기척이 느껴지니 절로 몸이 더 불끈불끈 달아올랐다.

    언영은 여전히 훌쩍이는 중인 목린의 가슴에 다정하게 토닥여 주는 척, 은근슬쩍 손을 올렸다. 그리고 한 번 쓰다듬으며 살짝 주물렀다. 군침이 돌았다. 얼른 홀딱 벗겨 버린 다음 쪽쪽 빨고 싶었…….

    언영의 행복한 상상은 목린이 바로 상체를 세워 앉으면서 끝이 났다. 어둠 속에서도 목린의 분노한 얼굴은 제 감정을 분명히 드러냈다.

    ‘서방님은 상연이가 힘들어하고 있을 텐데 지금 이런 거 할 마음이 생겨요?’

    목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언영의 귀를 후볐다.

    ‘아니, 저, 나는…….’

    언영도 얼른 헐레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손을 뻗어 목린을 품에 안고 달래듯 해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목린이 제 몸을 끌어안고 진저리치듯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언영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목린아. 내 말 좀 들어 봐.’

    ‘나빴어요……!’

    ‘여태까지 모든 애들이 다 안전하게 돌아왔다고! 귀혈족한텐 식은 죽 먹기 같은 일이야. 진짜라니까? 걱정할 필요 하나 없어! 지금쯤 신나게 배 긁으면서 자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우리 상연이는 다른 귀혈족보다 약하잖아요.’

    ‘누가! 대체 누가 그래?’

    언영이 두 팔을 벌리며 물었다. 목린은 휙 몸통을 돌리며 언영을 외면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었다.

    ‘상연이 돌아올 때까지 따로 잘 거예요.’

    ‘목린아!’

    이전에도 한 번 각방을 쓴 적이 있었다. 잡아먹겠다고 해서 목린이 기절했던, 두 사람이 혼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며칠 안 됐던 그 기간은 언영을 처절한 기분으로 내던졌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언영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내가 잘못했어, 목린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제발 각방만은 안 돼!’

    ‘아들 목숨이 위험한데 가슴 생각이나 하는 남편이랑은 같이 눕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 손만. 응? 손만 잡고 잘게! 손만 잡고 아무 짓도 하지 않을게. 제발 각방만은 안 돼! 목린아! 목린아! 목린아!’

    하나 아들의 일 앞에서 목린은 꿋꿋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로 나가려는 목린을 붙들고, 언영은 차라리 자신이 나가겠다며 그녀를 돌려세웠다. 마지막으로 그가 사라질 때까지도 냉랭하던 목린의 눈빛을 본 언영은 억장이 무너졌다.

    그날 밤 어떻게 잤는지도 언영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충 보이는 아무 방에나 들어가서 처참한 표정으로 널브러졌다. 퀭한 눈으로 멀거니 앉아 있다가 해가 뜰 때 즈음 잠이 들어서, 다시 눈을 떴을 땐 약간 늦은 아침이었다.

    언영은 허둥지둥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목린이 가장 있을 법한 장소인 부엌으로 가 보았더니 역시나, 눈물로 얼굴이 퉁퉁 부은 목린이 밥을 짓고 있었다. 언영의 눈에는 저 얼굴도 마냥 예뻤다.

    ‘목린아…….’

    언영을 본 목린은 바로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심장이 결렬되는 것 같았지만 언영은 꾹 참고 목린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나…… 너무 외로웠어.’

    이어서 솥을 닦고 있는 목린을 뒤에서 안으며 애처롭게 속삭였다. 튼실한 두 팔 안에 그녀의 허리를 꽉꽉 가두었다.

    하지만 목린의 등에 더 기대려던 언영은 목린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 떨어져야만 했다.

    ‘손대지 말아요!’

    ‘목린아……!’

    언영이 흔들리는 표정과 함께 속삭였다. 보통은 아까처럼 그렇게 애정 어린 행동으로 달라붙으면 목린의 화는 쉽게 스멀스멀 녹아내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목린이 다시 또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훌쩍거렸다.

    ‘우리 상연이야말로 지금 분명 외롭게……!’

    ‘전혀 외롭지 않을 게 분명하다니까!’

    새로 만난 스승님과 친우들 사이에 둘러싸여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는 건 물론, 시간도 무척이나 빨리 갈 것이 자명했다.

    ‘여기서 나가세요!’

    ‘이리 줘. 내가 할게.’

    ‘나가요!’

    목린은 바위 같은 언영의 몸을 두 손으로 낑낑 밀어냈다. 형편없는 힘이었지만 너무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은 나머지 언영은 그대로 밀려나 밖으로 내쫓겼다.

    그날 밤도 또 각방을 썼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날, 언영은 전날과 다른 입장을 취하며 다가갔다.

    ‘목린아, 미안해.’

    ‘…….’

    ‘네 말이 맞아. 상연이가 걱정되는 것도 당연했어. 사실 우리 귀혈족 입장에선 별일 아니지만, 네게는 엄청난 근심을 안겼겠지. 정말 미안해.’

    목린은 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언영을 올려다보았다. 언영은 불안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목린아…….’

    그러나 더는 참을 수 없어 두 팔을 양쪽으로 살짝 벌리며 성큼 목린 쪽으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

    목린이 움찔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언영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목린아!’

    ‘아직 화 풀린 거 아니에요.’

    목린이 홱 고개를 돌리며 반대쪽으로 몸을 틀었다. 힘이 풀린 언영의 팔이 아래로 축 내려갔다.

    이후로도 며칠간 목린은 사과의 여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너 왜 그래, 표정이?’

    목린이와 황홀한 나날을 보내고 돌아오겠다고 하던 언영이 죽을 낯빛으로 나타나자 현오가 당황해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언영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을 손으로 비비다가 되레 상대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일인데.’

    ‘뭐?’

    ‘너는 무슨 일인데 그렇게 낯빛이 좋아.’

    ‘아…….’

    현오의 입술 끝이 행복감을 못 이기고 올라갔다.

    ‘그래, 너한테만 특별히 먼저 알려 주마.’

    ‘뭔데 그래.’

    ‘나와 다인이, 드디어 혼인하기로 했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얼굴을 쓸던 언영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너희 둘…… 그런 관계였어? 언제부터?’

    ‘뭐라고?!’

    현오가 두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짰다.

    ‘칠 년이 넘었다, 칠 년이!’

    언영은 나자빠질 정도로 등을 뒤로 뺐다.

    ‘뭐어어어어?’

    ‘‘뭐어어어어’? 지금 누가 할 소린데. 그러고도 네가 벗이냐?!’

    ‘전혀 알려 주지 않았잖아!’

    ‘그걸 말해 줘야 알아? 전에 검에 다는 장신구도 나랑 다인이한테 똑같은 거 네가 선물해 줬잖아.’

    ‘그건 목린이가 고른 거야.’

    언영은 납득하지 못해 발을 구르며 흥분하는 현오를 한참 동안 진정시켜야 했다. 목린이도 모자라 이제 현오한테까지 미움받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언영은 마침 마구간에 있다가 나오는 목린과 눈이 바로 마주쳤다. 놀란 목린이 조그마한 어깨를 움찔거리며 바로 등을 틀었다. 언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으나 여기서 그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신 혼인 소식은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돌아선 그녀의 등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현오랑 다인이 혼인한대.’

    ‘네? 정말이에요?’

    그저 잠깐 그 말만 내뱉고 떠나려고 했던 언영은 목린이 두 손을 모으며 그에게 쪼르르 돌아오자 당황했다. 어린 소녀처럼 목린은 귀엽게 몸을 들썩거렸다.

    ‘잘되었어요. 내일 바로 언니한테 찾아가야겠어요!’

    두 손을 모은 채 쫑알거리는 목린을 언영은 빤히 내려 보았다. 방긋 미소 지으며 들떠 있던 목린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다. 언영과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발그레 붉혔다.

    ‘아…….’

    목린은 바로 몸통을 어색하게 휙 틀었다.

    ‘아직 용서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아기 다람쥐처럼 우다다다 빠른 걸음으로 도망갔다.

    언영은 머리카락을 쥐어짰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용서받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목린이가 좋아하는 게 뭐가 있지? 내가 잘하는 게 뭐가 있지? 언영은 계속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한 가지 답에 도달했다.

    * * *

    노을이 질 즈음에 목린은 륭과 봄비네 가족에게 먹이를 주고 마구간을 나왔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쪽에서 우지끈 장작을 패는 소리가 들렸다. 목린의 발걸음이 천천히 그쪽으로 향했다.

    ‘……?!’

    노을이 언영의 벌거벗은 상체를 강렬하게 덮고 있었다. 목린의 눈이 또르르 굴러떨어질 것처럼 커졌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그의 두꺼운 등 근육이 높게 도끼를 들고 장작을 내려칠 때마다 유혹적으로 질겅질겅 움직였다. 굵은 뼈대를 둘러싼 두꺼운 몸에 군살이라고는 없었다. 빽빽이 배를 차지하는 복근 사이로 땀 몇 방울이 미끄러져 흘러갔다.

    이후 언영은 지쳤는지 들고 있던 도끼를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그리고 살짝 미간을 찡그린 표정으로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젖혔다. (아직 탈모 낌새는 전혀 발견되지 않으니 상연이 말대로 못생겨질 걱정은 안 해도 되게 해 주는)머리카락을 두 손을 이용하여 뒤로 쓱 멋있게 쓸어 넘겼다. 그 상태에서 가만히 사색에 잠겼다. 그의 근육질 가슴이 차분히 호흡에 따라 앞뒤로 움직였다.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예술이었다.

    ‘…….’

    그 상태에서 언영은 들썩이려는 눈썹을 힘을 주고 참으며, 아주 조금 실눈을 떠 목린의 반응을 살폈다.

    정말 다행히도, 목린은 그의 기대에 걸맞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노을 아래 남편의 아름다움을 떨리는 표정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언영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이대로 원만하게 화해까지 가면 됐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턱이 달달 떨리며, 결국 자세의 안정성이 천천히 깨지기 시작했다.

    목린은 비정상적으로 들썩거리는 언영의 커다란 가슴을 보고 환상 속에서 빠져나왔다. 화들짝 놀라며 그의 가슴을 이상한 것 쳐다보듯 바라보다가, 도망치듯 자리를 부리나케 떠났다. 언영이 뒤늦게 팔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안 돼!’

    언영이 속으로 내질렀다.

    그나마 목린의 마음을 녹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몸으로 유혹하기마저도 처참히 실패했다. 언영의 거인 같은 어깨가 방금 막 부모에게 혼나고 온 어린아이의 것처럼 불쌍하게 축 늘어졌다.

    언영은 다시 옷을 주워 입는 것도 잊고 위에만 벗은 채로 터덜터덜 마당을 거닐었다. 오늘도 그 외로운 방에서 혼자 울적하게 잠들 생각을 하니 걸음걸이에도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원래는 두 사람의 방인 목린의 방 앞을 지나던 차였다. 문이 살짝 열리고 있었다.

    언영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목린과 다시 마주하는 어색한 순간은 그도 그렇게 환영하진 못했다.

    ‘……?’

    하지만 문이 조금 열리고 한참이 지나도, 그녀는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닫지도 않았다. 언영의 눈이 천천히 커지기 시작했다.

    ‘혹시…… 들어와도 된다는 의미……?’

    그리고 그 생각에 장단을 맞추듯, 안에서 목린이 작은 기침을 했다. 언영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는 우당탕 달려 나갔다.

    ‘아하하하하하하!’

    두 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고 온 그는 거슬리는 문을 두 손으로 잡아 아예 뽑아 버렸다. 그러자 등을 보이고 새침하게 누워있는 목린이 보였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목린은 천천히 언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완전히 용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해하는 태도가 보여서…….’

    싱글벙글 웃으며 문을 망가뜨리는 언영을 보고 목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언영은 문을 바닥에 내던진 다음 다시 두 손을 하늘 위에 펼치며 목린에게 달려갔다.

    ‘하하하!’

    ‘옷을 왜, 왜 입지 않고 있어요!’

    ‘하하하하하!’

    언영이 위에서 그녀를 덮치려고 했다. 등을 돌린 채 목만 돌려 얼굴을 삐죽 내밀었던 목린은 이제 완전히 엎드린 채, 앞으로 기어가 도망가려고 했다. 팔뚝을 써서 한 뼘 정도 조금 앞으로 움직였을까, 그때 목린의 두 종아리가 모두 뒤에서 잡혔다.

    ‘아!’

    언영은 도망가려던 목린을 아래로 질질 끌어 내렸다. 벌어진 목린의 양쪽 허벅지가 그의 허리에 닿았다. 그는 몸통을 숙여 목린의 옷을 북북 찢어발겼다. 목린은 대체 뭐 하는 거냐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약간 기대 어린 눈으로 그의 행위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상연도, 언영과 목린도 다른 장소에 다른 방식으로 훌륭히 몸을 쓰고 돌아왔다. 상연은 약간은 철이 들긴 했는지, 옛날만큼 징징거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린애인지라 어머니에게 이런 식으로 간혹 가다 투정을 부렸다.

    “우리 상연이, 많이 아팠지?”

    목린은 상연을 안고 뺨에 입을 맞춰 주려고 했다. 그러자 상연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뽀뽀는 아버지께서 어머니한테 쉬지 않고 하는 일이었다. 너무 질리게 보다 보니 이젠 징그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뽀뽀는 사양이었다.

    “싫어요!”

    “아, 요즘 애들은 별로 안 좋아하니?”

    목린은 곧바로 몸을 뒤로 빼며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눈썹이 귀엽게 아래로 처졌다.

    “미안해…….”

    “아니, 어머니, 저는…… 그러니까…….”

    “주상연.”

    상연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아비인 언영이 무섭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내뿜는 스산한 기운이 마치 주변이 불타고 있는 무서운 착각을 일으켰다. 재밌는 아버지는 가끔 이렇게 변하실 때가 있었다.

    “아버지, 그게……!”

    “감히 어머니의 뽀뽀같이 귀한 것을 거절해?”

    곧게 뻗은 언영의 어깨가 잔잔히 떨렸다. 그의 동공에 음울함이 깔렸다. 이제 상연은 거의 울음을 터뜨릴 기세로 외쳤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버지!”

    “에이, 그럴 수도 있지요. 너무 상연이 혼내지 마세요.”

    목린이 언영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자 언영의 표정이 다시 태양을 만난 해바라기처럼 활짝 펴졌다. 그가 목린을 돌아보며 신나게 제안했다.

    “목린아. 기분 상했지? 내가 대신 뽀뽀해 줄게!”

    “아……!”

    언영의 팔이 목린의 허리를 휘감았다. 목린이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흐흐흐, 이리 와!”

    “안 돼요!”

    최근에 목린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거리를 거닐던 목린은 지난번에 상연의 낭독 수업 스승을 만났다. 반갑게 다가가니 그분은 영웅을 만난 것처럼 활기차게 기뻐하더니, 지난번에 상연이 발표했다던 시를 주섬주섬 꺼내 보여 주었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읽어 내리는 목린의 안색이 갈수록 파리해졌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맨날 뽀뽀를 하신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뽀뽀를 하신다.

    하루는 자다가 너무 용변이 급해 밖에 나왔는데, 그때도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뽀뽀하는 소리가 문을 뚫고 들려왔다.

    우리 마을의 평화는 어머니의 얼굴이 지킨다.

    어머니 최고.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수년 동안 귀혈족과 같이 살 맞대고 살았지만 이런 건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상연이의 낭독을 듣고 모두가 일어나 박수갈채를 날렸습니다.’

    ‘…….’

    ‘족장님 부부께서 이리도 금슬이 좋으시니, 저희도 뿌듯하여요!’

    ‘네. 고맙습니다…….’

    목린은 허리를 최대한으로 꺾고 입술을 들이대는 언영의 가슴팍을 낑낑 밀어냈다.

    “나중에 많이 해요. 상연이 앞에서는 좀 그래요…….”

    “……뭐, 네가 원한다면.”

    언영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물러섰다.

    예전의 그 혈기 넘치던 청년 시절보다 세월이 조금 지난 지금, 언영의 성격과 외향 모두 조금이나마 더 묵직하고 차분해졌다. (비록 여전히 목린에게 홀려서 놓치는 경우가 잦았음에도)목린의 말에 하나하나 귀 기울이려 애썼다.

    언영이 목린의 허리에 둘렀던 팔을 내려놓았다.

    “어!”

    하지만 아래로 떨어지려던 그의 손을 목린이 다시 잡아 들었다.

    “서방님, 손이!”

    목린은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의 눈길이 향한 곳은 바로 오늘 아침, 언영의 손가락에 난 새 상처였다. 언영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응? 이거 별거 아냐. 그냥 잠깐 스친 건데.”

    “어떡해요. 서방님 멋있는 손이…….”

    언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목린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몸통을 아래로 살짝 숙이며 물어왔다.

    “내 손이 멋있어?”

    “서방님은 다 멋있으세요.”

    목린은 언영의 까칠한 손이 마치 보석이기라도 한 양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언영은 절로 입술이 꿈틀거렸다. 이런 일로 아프다고 떼를 쓰면 귀혈족으로서의 자격 박탈이겠지만, 막상 힘없는 애 취급을 당하니……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상연이 녀석이 왜 저러는지 묘하게 알 것 같기도 하고…….

    “얼굴도 멋있으시고, 어깨도 멋있으시고, 또…… 정말 다 멋있으세요.”

    뭔가 더 말하려고 했던 목린이 끝에 황급히 얼버무렸다.

    하지만 바로 앞에 서 있었던 언영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얼굴이 멋있다고 했을 때 목린은 언영의 얼굴을 보았다. 어깨가 멋있다고 했을 때 그녀의 눈동자는 그의 어깨를 향했다. 그리고 얼버무렸을 때의 눈동자는 그보다 더 아래, 어깨보다, 가슴보다, 복부보다도 아래인 그곳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시선만으로도 절정에 차오를 수 있음을 언영은 오늘 배웠다.

    “아!”

    언영이 두 팔로 목린을 와락 끌어안으면서 그녀의 몸이 그와 세게 부딪쳤다. 언영은 더 틈을 주기는커녕 꽉꽉 목린을 팔에 가두고 상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훈련은?”

    “아니야, 상연아. 오늘은 가지 않아도…….”

    언영의 품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목린이 끼어들었다. 상연은 두 사람을 징그럽다는 듯 쳐다보고 휙 고개를 돌렸다.

    “갔다 올 겁니다! 어차피 여기 계속 있어도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뽀뽀하시는 것밖에 못 볼 텐데…….”

    “상연아!”

    눈만 겨우 내보인 목린이 당황하여 외쳤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하하! 잘 다녀와라!”

    “상연아아!”

    * * *

    흐느끼는 듯한 여인의 교성과 먹이를 앞에 둔 짐승 같은 숨소리가 함께 섞여 음탕한 소리를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격정적으로 푹푹 이어지는 허리 짓을 끝으로 언영이 옹골찬 육체를 살짝 떨며 사정했다.

    마지막까지 쏟아낸 뒤 그는 후련하다는 듯 옆으로 몸을 돌려 벌러덩 누웠다. 살짝 벌어진 종마와도 같이 두꺼운 허벅지 사이로, 세 번째 다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람한 것이 반동에 맞추어 크게 덜렁거렸다. 물렁물렁한 상태에서도 지나치게 거대하고 징그러웠다.

    목린은 언영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고 언영은 눈을 감고 기분 좋게 웃으며 한쪽 팔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목린의 손가락이 언영의 복근과 가슴 근육을 더듬고, 발가락은 짓궂게 움직이며 그의 허벅지를 부러 살살 긁었다. 언영은 웃음을 참으며 후희를 즐겼다.

    “서방님. 원하는 게 하나 있어요.”

    목린이 언영의 가슴 위에 뺨을 기대며 속삭이듯 귀엽게 말했다. 언영은 광대가 터질 것 같이 흐뭇하게 웃으며 목린의 동그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와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답했다.

    “뭔데? 뭐든 다 들어줄게.”

    “정말이에요?”

    “당연하지.”

    애초에 그의 귀여운 여인은 이렇게 무언가를 요구해 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러니 언영으로서는 오히려 지금이 환영할 만한 상황이었다. 동서남북 온갖 곳을 다 파헤쳐서 바로 대령해 줄 터이니, 얼른 그 원하는 것을 말해 주길 바랐다.

    “저 둘째 갖고 싶어요. 상연이 동생이요.”

    “…….”

    언영은 입술이 말려 올라간 그 상태에서 얌전히 굳었다.

    침묵이 조용히 흘러갔다.

    잠시 뒤 눈은 여전히 웃은 채 얼어붙은 상태에서 언영의 입술만 잠깐 모양을 바꾸었다.

    “뭐?”

    “서방님 이제 약초 그만 드시고 우리 같이 둘째 만들어요!”

    목린이 언영의 위에 팔딱 몸을 뒤집어 누우며 활기차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정신을 차린 언영도 목소리를 높였다. 당황한 표정으로 급하게 반대했다.

    “그건 안 돼! 절대 안 돼!”

    “네? 다 들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맞지만……. 그래도 안 돼! 그것만은 안 돼! 상연이 하나만으로도 벅차.”

    “전엔 열다섯 명 갖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땐 내가 뭘 몰랐을 때잖아?”

    목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얼굴을 아래로 떨구었다. 언영은 목린의 벌거벗은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알잖아. 목린이 네가 걱정돼서 그래.”

    목린이 아이를 가졌던 열 달, 그리고 나머지 회복하는 기간에 언영은 살면서 평생 겪을 모든 마음고생을 맛보았다. 특히나 목린이 그렇게 힘들어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그것도 모르고 열다섯이나 낳자고 하여 얼마나 미안하고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 길을 다시 한번 걸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너무 무서워서 의원이 수태를 막는 약초를 줬음에도, 그러니 괜찮다고 누누이 말해 줘도 혹시 몰라서 처음 얼마 동안엔 관계도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엔 처음이 아니라 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의원님께도 여쭈어봤는데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일은 아닐 거라 하셨고요. 그때보다 제 몸 상태도 훨씬 좋아요.”

    “찾아가서 물어봤어?”

    “네!”

    언영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목린이 아양을 떨며 사랑스럽게 칭얼거렸다. 아, 정말 지금 이 모습은 예뻐 죽겠는데 마냥 기뻐할 수도 없고, 그런데 정말 예뻐서 환장할 노릇이고…….

    “서방님, 이번엔 저 닮은 아기 낳고 싶어요.”

    순간 목린을 닮은 여자아이를 상상한 언영의 입꼬리가 바보같이 벙긋 올라갔다. 하나 그것도 잠시, 얼른 다시 이성을 가다듬고 그가 말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또 나만 닮은 녀석 나오면 어떡하려고.”

    “그러면 셋째도 낳아요.”

    언영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목린이 얼른 덧붙였다.

    “농이었어요. 한 명만 더 시도해 봐요.”

    “나는…….”

    “네? 서방님…….”

    목린이 귀엽게 칭얼거리며 그의 성기를 가볍게 손으로 쥐었다. 그 이후로 아침까지 그의 이성은 멀리 날아가 돌아오지 않았다.

    * * *

    따뜻한 봄 바다 앞에 모인 초족 사람들이 들썩이고 있었다.

    귀혈족 이외에도 다른 부족들과 함께 긍정적인 교류를 시작한 지 벌써 여섯 해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바로 이번 봄, 처음으로 단월도가 부족 연합 대회 개최를 맡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 없어 하는 초족 사람들을 위해서 귀혈족은 특별히 사흘 정도 더 일찍 도착하여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손을 건네 왔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들은 귀혈족의 방문을 설렘 반 두려움 반인 마음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익문, 목현, 그리고 목현의 아내 예서와 두 사람이 낳은 아들이 특별히 더 앞으로 나와 바다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목현은 익문의 얼굴을 잠시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술을 뗐다.

    “아버지. 기다리시는 표정이 이전보다 한결 편해지신 것 같습니다.”

    익문은 아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주 서방의 누이들이 이제 다 컸으니…….”

    지난 수년간 언영의 열정적인 어린 누이들이 익문에게 선물을 준답시고 괴상망측한 것을 건네곤 했다. 아이들은 어려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은 어른도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 순수한 생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익문은 지난 세월 동안 그들의 선물을 얌전히 받아 주었다.

    하나 이젠 언영의 막냇누이인 선영까지도 사리 분별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다시는 진짜같이 생긴 피를 흘리는 괴물 인형을 받고 기쁜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덕에 익문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았다.

    “온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푸른 물결을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그 위에 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십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선함은 새파란 바다를 가로지르며 당당하게 존재감을 키웠다.

    익문은 초조하지 않은 척 입술을 깨물었지만,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근질근질한지 제자리에서 살짝 뛰었다.

    “아버지!”

    “목린아!”

    저 멀리 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익문은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목린 또한 선박의 가장 앞부분까지 뛰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 상연과 언영까지 같이 합세해서 초족을 향해 환하게 인사했다. 언영은 목린의 어깨를 한쪽 팔로 감싸 안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보고 싶었습니다!”

    “하하하하하!”

    그가 웃자 뒤에 있던 나머지 귀혈족도 함께 웃었다.

    배가 가까이 올수록 익문의 눈에 목린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의 옆에서 얼른 뛰어나가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 상연이나, 옆에서 헤벌쭉 웃고 있는 언영이나, 그리고.

    언영의 팔에 안겨 있는, 귀여운 아기까지.

    “조부님!”

    “조심하거라! 다친다!”

    배가 멈추기도 전에 상연이 바다로 뛰어내렸다. 얕은 바다라 무릎까지만 살짝 젖었다. 전혀 괘념치 않아 하며 상연은 익문 일행을 향해 신나게 달려갔다.

    아이의 얼굴에서 목린의 흔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언영의 아이였지만 그래도 목린이 낳았는데 어떻게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익문은 두 팔을 벌려 달려오는 손자를 맞이했다. 볼 때마다 더 커지고 더 강해지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상연아. 어서 오렴!”

    “조부님! 조부님 드리려고 몰래 가져왔습니다!”

    상연은 허리에 달고 있던 작은 주머니 안을 부스럭거리더니 이내 속에서 칼자국이 징그럽게 새겨진 짐승의 날카로운 뿔을 꺼냈다.

    “…….”

    “머리에 차고 다니세요! 족장답고 매우 멋질 겁니다!”

    “……정말 고맙구나.”

    익문은 떨떠름해하며 받았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참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목현이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아버지!”

    뒤이어 목린이 그들 쪽으로 빠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높게 틀어 묶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귀엽게 딸랑거렸다.

    “목린아! 천천히 와도 된단다!”

    “상아도 데려왔어요.”

    어느새 언영에게서 아기를 건네받은 목린이 밝게 말했다. 익문의 표정이 환해졌다.

    “상아야! 보고 싶었다!”

    “끼아!”

    눈이 얼굴에 절반만큼 크다 해도 좋을 만큼 크고 초롱초롱한 아기가 두 팔을 위로 번쩍 펼쳤다. 상아가 해맑게 웃자 주변에서 바라보던 모든 이들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익문은 꿀이 떨어지는 눈과 함께 중얼거렸다.

    “우리 목린이 어렸을 때랑 어찌나 똑같은지.”

    목린이 익문의 팔에 상아를 건네주었다. 아기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익문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아담하고 통통한 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었다.

    “아. 그아. 갸.”

    “옳지, 옳지. 나를 알아보는구나. 하하하……. 으아아아악!”

    상아는 턱 아래로 자라는 익문의 하얀 수염을 덥석 쥐고 잡아당겼다. 목린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상아야!”

    “으아아아아아악!”

    상아는 신난 표정으로 익문의 수염을 위아래로 흔들고 놀았다. 잔인한 광경과는 어울리지 않은 순수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둥둥 떠 있었다. 목린과 언영이 간신히 힘을 써서 떼어냈다.

    * * *

    대회는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귀혈족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목현은 별 무리 없이 초족을 잘 이끌 수 있었다. 목린의 가족 중에서는 이번에 언영이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첫 시합에서부터 누이인 화영이를 만나 장렬히 패배했다.

    많이 기대했던 상연이 축 처진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아버지 바보…….”

    “…….”

    언영은 입을 악물고 꾹 참았다.

    일찍 탈락해 버린 언영 탓에 목린네 가족은 일찌감치 함께 자리를 잡고 둥글게 앉아 있었다. 상아는 언영의 무릎에 앉아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계속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모두 아기가 정말 예쁘다고, 어머니를 닮아 엄청난 미인이 될 것 같다고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그러면 언영이 어깨를 들썩이며 뿌듯하게 웃었다. 상아의 조그만 손을 쉬지 않고 조물조물하며 즐거워했다.

    그때 옆에 가만히 앉아 주전부리를 씹고 있던 상연이 활기찬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어머니!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으응?”

    “아버지 어머니는 어쩌다가 만나셨습니까? 이렇게 떨어져서 사셨는데…….”

    순진한 눈으로 물어보는 상연과 달리 그의 두 부모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어색한 침묵이 그들을 둘러쌌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목린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낯빛을 정리하고 부드럽게 웃었다.

    “아버지께서 보고 싶단 이유로 매번 배를 끌고 찾아오신 거란다. 바쁘고 할 일도 많으셨을 텐데 어떻게든 짬을 내어 사 년 동안이나…….”

    목린의 말끝이 흐려졌다.

    “서방님?”

    “빠!”

    얼굴이 굳은 언영의 눈가가 빠르게 붉어지고 있었다. 상아의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는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뻗어 언영의 가슴팍을 짧게 때렸다.

    그의 바위 같은 어깨가 천천히 떨리기 시작했다. 상연은 살짝 등을 뒤로 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상연아. 너는 절대로 이 아비를 따라 하면 안 된다.”

    “예?”

    근엄한 아버지의 답에 상연은 눈을 끔벅였다. 그리고 잇따르는 첨언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와 네 어머니의 혼인은 약탈혼이나 다름이 없었다.”

    “예에에?”

    상연이 자리에서 헐레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귀혈족이 어떤 부족이던가. 사랑과 우애를 가장 중요시하는 부족이 아니었던가. 약탈혼이라 함은, 한쪽의 일방적인 강제성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런 짓을 한 놈은 사지가 찢겨 죽어 마땅했다. 한데 다른 이도 아닌, 이 부족의 지도자가 그런 끔찍한 짓을 벌였고 또 이제껏 그 누구도 그를 끌어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 이는 단순히 아버지를 향한 배신감으로 그치지 않았다. 부족 전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아니야!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런 게 아니란다.”

    목린이 두 팔을 허둥지둥 흔들며 부정했다.

    “순탄치 않은 관계였던 건 사실이지만 설명할 수 있는 사연이 있어서…….”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눈이 시뻘게진 언영이 고함을 내지르고 목린은 초조하게 말했다.

    “서방님!”

    “아버지, 실망입니다!”

    “싫다는 어머니를 내가 억지로 데려왔다! 내가 네 어머니를 강제로 범했다아아! 내가 천하의 나쁜 놈이다!”

    “아니에요, 서방님! 주변에서 다 쳐다보고 있어요!”

    목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외쳤다.

    사실이었다. 다소 자극적인 언사는 주변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모두 힐끔거리며 그들 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린 상아는 초족 옷을 입은 언영의 품에서 계속 꾸물거렸다. 평소 입는 옷과 달리 넓게 벌어지고 얇은 깃 부분을 작은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부풀어 터질 것 같이 큰 아버지의 커다란 맨가슴을 본 상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턱으로 침이 떨어졌다.

    “다시는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상연은 언영을 똑바로 노려보며 외쳤다. 누가 언영의 아들 아니랄까 봐, 무서울 때는 나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언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라. 미안하다, 아들아!”

    “한집에서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시는 마주치기도 싫습니다! 어머니와 상아하고 집을 나가겠습니다!”

    “상연아, 자리에 앉아 내 말 좀 들어 보렴!”

    목린은 상연의 손을 쥐며 절박하게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왜 숨기고 계셨습니까!”

    “네가 더 크면 말해 줄 생각이었단다. 하지만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자랑스럽게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뽀뽀하는 내용의 시를 지었습니다!”

    언영의 눈이 순간 신나게 번쩍였다.

    “그게 사실이야? 나는 못 들었는데…….”

    상연의 험악한 눈빛에 언영이 잠깐 말을 멈췄다.

    “……물론 계속 못 들어도 돼.”

    “그런 시를 지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번이라도 언질을 주셨더라면!”

    “그게 왜 네 어머니 때문이냐! 오롯이 내 잘못이다! 어머니한텐 목소리를 높이지 마라!”

    언영이 정색하고 호통쳤다.

    그 모습이 무서워 상연은 움찔 떨었다. 어깨를 떠억 벌리고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언영은 아들인 상연이 봐도 두렵게 생겼다. 하지만 겁에 질렸던 것도 잠시. 어린 소녀였던 어머니께서 저런 남자의 협박을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울분이 터졌다. 그래서 입을 크게 벌리고 대항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분연히 말문을 트려던 순간 상연은 굳어 버리고 말았다.

    “……!”

    그 소리는 아주 작아서, 귀가 매우 밝거나 가까이 있는 이가 아니면 들을 수 없었다.

    쭙쭙쭙.

    “……?”

    동시에 얼어 버린 상연과 언영을 목린이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목린은 몸을 기울여 언영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쳤다.

    “서방님?”

    그리고 그때, 얼굴을 가까이 한 목린의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쭙쭙쭙쭙.

    “어……?”

    소리는 언영의 옷 안에 머리를 넣고 있는 상아 쪽에서 나고 있었다.

    목린의 떨리는 손가락이 언영의 깃을 더 벌렸다. 조그만 머리통이 서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아는 열심히 언영의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그녀의 구겨진 미간에서 열중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목린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으악…….”

    상연은 뒷걸음질 쳤다. 주변에서 그들을 쭉 지켜보던 사람들까지도 흠칫 놀랐다. 먹던 것, 잡고 있던 것 등등을 손에서 툭 떨어뜨렸다.

    “…….”

    언영은 멍하니 상아를 내려다보았다. 입이 벌어지고 눈동자가 거세게 떨렸다. 쭙쭙쭙. 아무리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상아는 조그만 손으로 언영의 두꺼운 흉부를 열심히 눌렀다.

    “상아야!”

    뒤늦게 정신 차린 목린이 얼른 팔을 뻗어 상아를 잡았다. 언영으로부터 떼어내려고 살짝 힘을 주어 당겼으나 아기는 거칠게 다리를 휘둘러 발버둥 쳤다.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반항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조심해! 상아 다쳐.”

    언영이 두 손으로 상아를 안전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정말 젖을 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상연이 울면서 멀리 달려가 버렸다.

    “으앙, 이상해!”

    “상연아! 가지 마!”

    목린이 팔을 뻗으며 외쳤다.

    “서방님! 서방님도 정신 차리세요!”

    언영의 영혼이 밖에 나가 있었다. 넋을 놓은 그의 눈이 흐리멍덩했다. 목린이 어깨를 흔들어도 똑같았다.

    “서방님!”

    “아아아아아앙!”

    아무리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상아가 마을이 떠나가라 울었다.

    * * *

    대회는 무사히 끝이 났다.

    상연은 잠시 방황하다가 목현에게 달려갔다. 귀혈족에겐 이제 진저리가 난다며 초족으로 받아달라고 곧은 자세로 부탁했다. 목현은 상연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네 아버지 때문이니?’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럼 누구 때문이겠느냐.’

    목현은 잠시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목린에게 찾아갔다. 목린은 목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떡해요, 오라버니.’

    ‘……일단 지금은 매제 얼굴을 보기도 싫어하고, 너는 만나면 거짓말만 할 거라 믿고 있더구나.’

    목현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자신이 어떻게든 육지로 돌아가기 전에 설득해 볼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목린은 언영을 데리고 숲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와 단단히 손으로 깍지를 꼈다. 상아는 익문에게 잠시 맡기고 왔다. 시원한 숲 냄새가 그들을 감쌌다. 하지만 마냥 청록색의 향연에 감탄만 하기엔, 언영은 호기심을 지울 수 없었다.

    “어디 가는 거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목린은 그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자신 있게 다리를 휘저어 가는 걸 보면 목적이 분명한데 알려 줄 마음은 없는 듯했다.

    “얼마 전에 갑자기 생각났어요.”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목린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조그만 물건들을 숨겨 두던 비밀 장소였다. 갈참나무 아래. 다행히 수년 전 괴물의 습격을 받지 않은 곳이었다. 목린은 익숙하게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쥐어 땅을 파냈다. 목린의 추억이 그 안에 있었다.

    언영 또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구경하다가, 목린이 날카로운 석경 조각을 겁도 없이 손으로 직접 잡으려고 하자 팔을 뻗으며 다급히 막았다.

    “조심해! 그러다 긁혀.”

    “서방님, 원금화 생각나세요?”

    손을 그대로 멈추고, 여전히 아래를 보는 상태에서 목린이 조용히 물어왔다. 놀란 언영이 말없이 눈을 깜박였다. 너무도 난데없이 나온 말이라 반응이 늦어졌다.

    “제가 예전에 여기서 보았다고 했었잖아요.”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의 시초였다. 덕분에 언영은 목린에게 꽃을 구해다 주기 위해 섬으로 왔다. 모든 오해가 풀리고, 알고 보니 깊은 바닷속에 계속 살면서 언제 섬으로 올라올지 몰랐던 괴물을 죽이는 쾌거까지 이루었다. 만일 하나라도 틀어졌다면 지금쯤 단월도와 목린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먹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 평화를 되찾은 이후에도 몇 번의 수색이 계속되었지만 목린이 봤다던 원금화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기대를 끝까지 놓지 못한 언영이 약 사 년 전 마지막으로 뒤져 본 게 끝이었다.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렇다 할 소식은 전혀 없었다.

    “목린이 네가 끝까지 더 찾아보고 싶다면 내가 쭉 도와줄 수 있어.”

    그뿐만 아니었다. 언영은 목린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아요.”

    “……?”

    “제가 원금화를 보았던 날, 그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대요. 햇빛도 쨍쨍하고. 그리고 제 손에 피가 엄청 묻어 있었대요.”

    그리 말하는 목린의 손이 석경과 더 가까워졌다. 언영이 빠르게 외쳤다.

    “조심하라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 석경을 가지고 놀다가 햇빛이 반사되고, 꽃이 반짝이니 어린 저는 황금색 꽃이 있다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요?”

    언영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목린은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닐 수도 있지만요. 뭐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목린은 다 털어 버린 표정으로, 편안한 웃음과 함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운치를 관찰했으나 언영은 그러지 못했다. 무슨 답을 해 주어야할까? 아니라고, 운명의 연인을 보내 준다는 원금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하기엔 그들은 이미 커 버린 어른이었다. 그렇다고 저 말에 동의하자니 그동안 꽃을 찾아온 시간이 너무도 허무해지는 것 아닌가.

    그때 하늘을 보며 목린이 중얼거렸다.

    “흔하디흔한 민들레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목린에게 원금화가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왔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수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줄곧 퍽 신경 써 왔다는 뜻 아니겠는가. 위로해 주어야겠지. 언영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런데 그보다 목린이 더 빨리 입을 벌렸다.

    “그리고 전 민들레가 좋아요. 민들레 같은 사랑도 좋아요.”

    언영의 말이 목 뒤로 쑥 넘어갔다. 목린은 그제야 다시 고개를 돌려 언영과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서방님께 제가 원금화를 드리고 싶었던 건…… 왜인지 모르게 멋있게 들렸기 때문이에요. 엄청나게 운명적인 사랑처럼 느껴지잖아요. 드물고, 격정적이고, 신비스럽고, 비극과 기쁨이 공존하는……. 하지만, 분명 그런 사랑도 가슴 떨리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 만큼 배짱이 있지 않아요. 오히려…….”

    목린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늘 주변에 함께 있지만, 그런데도 눈에 들어오면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그런 굴곡 없는 사랑도 저는 좋아요.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곧바로 첨언했다.

    “아니,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들의 사랑이 최고라고 인정받을 필요 없었다.

    어차피 서로가 알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서방님, 그러니까 제가 이런 호사를 누릴 기회를 주셔서 정말 고마…….”

    언영이 격정적으로 입을 맞췄기 때문에 그녀는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언영은 한 손으로는 목린의 뒤통수를, 다른 한 손으로는 목린의 몸통을 안고 절박하게 끌어안았다. 처음부터 수줍은 시도도 없이 바로 뜨겁게 들어왔다. 목린도 언영의 목에 열렬하게 팔을 두르고 함께 영혼을 섞었다.

    어느새 언영은 나무에 기대어 앉고 목린이 옆으로 안겨 있는 자세가 되었다. 목린이 이제 첫사랑을 시작한 소녀처럼 수줍게 올려다보면, 언영이 다정다감하게 미소 지으며 마치 아기를 재우듯 그녀의 몸을 톡톡 두들겼다.

    “잠깐 눈 좀 붙일게요.”

    “그래.”

    목린이 마음 놓고 언영의 어깨에 얼굴을 반쯤 파묻었다. 언영의 손끝이 목린의 발그레한 뺨과 도톰한 입술을 떠날 줄을 몰랐다. 잠든 그녀의 얼굴이 새끼 토끼처럼 순했다.

    언영이 한참을 넋을 놓고 감상하고 있는데,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덩굴 사이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알고 있던 언영이 태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저기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아버지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 떵떵거리고 얼마 되지 않아, 상연은 바로 그 맹세를 어겨야만 했다. 그의 의지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바로 아버지를 감시하고 어머니를 지켜내기 위함이다.

    상연은 숲으로 단둘이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고 기함하며 뒤따랐다. 물론 귀가 좋은 언영은 처음부터 그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지만,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민첩하게 따라가면서도 상연의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지려고 하면, 또 뽀뽀하려고 하면 어디를 공격해야 좋을지. 어떻게 공격해야 한 방에 성공할 수 있을지…….

    어머니께서 먼저 아버지께 민들레 얘기를 꺼내며 고백하기 전까지는.

    의도치 않게 모든 것을 엿들은 상연의 기분이 이상해졌다. 물론 아직 아이인지라 두 어른 사이에 오간 모든 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랑은 인간이 뗄 수 없이 살아가는 것.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계심을, 그것도 매우 열렬히 사랑하고 계심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쉿.”

    혼란스러워하는 상연을 바라보며 언영이 검지를 제 입에 갖다 댔다. 잘못해서 목린이 깨기를 바라지 않았다.

    상연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최대한 사뿐사뿐 깃털처럼 가볍게 걸어왔다. 언영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머니 정말 예쁘시지?”

    “네…….”

    마침내 상연이 바로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 언영이 작게 물었다. 상연은 눈이 감긴 목린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며 속삭이듯이 답했다.

    그때 언영이 짧게 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상연아.”

    “예, 아버지.”

    “저번에 그 얘기는……. 상연이 네가 좀 더 크면 더 자세히 설명해 주마.”

    “…….”

    상연은 천천히 눈동자를 돌려 언영을 바라보았다. 언영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게 있고 진지했다.

    “나를 따라 하지 말라는 말은 진심이다. 어머니께선 이미 용서했다고 하시지만 나는 과분한 사랑을 매일같이 받고 있어.”

    “…….”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마찬가지로 주변 이들에게 베풀면서, 내가 느낀 기쁨을 더 널리 뿌리는 것.”

    “네.”

    “너도 그럴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다른 건 바라지 않아.”

    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평소의 아버지를 존경하는 표정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 아버지. 드리고픈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상연은 바로 입을 여는 대신, 새근새근 자는 목린을 잠시 쳐다보더니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버지.”

    “응?”

    “크면 어머니와 혼인하고 싶습니다.”

    “뭐라고!”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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