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어떻게 그 독을 먹고도 멀쩡할 수 있지? 바로 피를 토하며 즉사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초족과 귀혈족 각각의 의원은 눈 깜빡할 사이에 친해졌다. 둘이서 함께 부상자들을 안내하고 이끄는 과정에서 빠르게 우정을 쌓아 나갔다. 현재 그들은 불가사의한 한 가지 주제에 푹 빠져 있었다.
그들은 언영이 깨어났다고 해서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는 동안에도 꼭 언영을 옆에 가까이 두고 뒤늦게 발작을 하진 않는지, 열이 나진 않는지 틈틈이 확인했다. 그 정도의 독을 먹고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지나칠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나 언영은 그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목전에서 뒤집고 있었다.
“설마 이미 내성이 생겼었던가? 하지만 어떤 경로로?”
초족의 의원이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언영은 빠르게 회복하는 중이었다. 다시 코피를 흘리며 고꾸라질 것이라 예상했던 두 의원의 생각을 배반하고, 그는 어느새 자리에 편하게 앉아 느긋한 표정으로 목린과 눈을 맞출 여유까지 생겼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단단히 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언영아.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
귀혈족의 의원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옛날처럼 언영에게 말을 낮추며 물었다.
“그 녀석이 뿌리는 독에 내성이 생겼을 만한 경험이 있어?”
“글쎄요. 독을 먹었던 일이라면……. 최근엔…….”
언영이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았더라면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거기엔 산만 한 크기의 짐승의 갈아 낸 뼈, 벌레의 찌든 내장, 전설 속 괴물이 품은 맹독, 각종 짐승의 배설물까지! 온갖 위험한 것이 잔뜩 들어 있단 말이다!’
‘예? 사, 사, 사실입니까? 그런 걸 왜 제자에게 주십니까?!’
하나 언영은 머리가 좋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 번 주워 먹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언영이 웃으며 말했다. 언제 그의 죽음에 오열했냐는 듯, 귀혈족 의원은 한심하단 눈으로 언영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지켜본 순간 목린이 발끈하여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서방님께선 제가 했던 사소한 행동이나 말 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억하시는걸요. 이렇게 사려 깊은 분은 또 없으세요. 정말 똑똑하시단 말이에요.”
언영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코 아래를 한 손으로 가렸다. 그의 귀가 새빨갰다.
목린의 목소리가 꽤 컸기 때문에 주변에서 쉬고 있던 이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편히 모여 앉아 괴귀의 사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또 단월도를 예전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들이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목린의 주장을 엿들은 그들이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도 현오가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다가와 서서 물었다.
“언영이가 셈하는 거 보신 적 있으십니까?”
목린은 언영의 어깨가 움찔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현오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셈이요? 숫자 관련하여 말씀하신 건가요?”
“네. 언영이가 정말 셈을 못 해서 예전에 자기 스승님 속을 다 뒤집어 놨었지요.”
“흐음…….”
목린은 다시 언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새빨개진 언영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목린은 대충 어깨를 으쓱이고 다시 자신만만하게 현오를 응시했다.
“그건 그 당시 서방님께서 어리셔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무척 잘하실 거예요! 뭐든 물어보세요!”
“저, 목린아…….”
언영이 목린의 어깨를 조심스레 쥐었다. 목린은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 활기차게 말했다.
“괜찮아요. 분명 잘하실 거예요!”
“으음…….”
말을 흐리는 언영의 목에서 식은땀이 났다. 옆에 있던 현오가 발을 까딱거리며 신나게 말했다.
“뭐든지요? 방금 그 말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뭐, 정말 뭐든지라면 오늘이 두 분이 처음 만난 지 며칠째 되는 날인지 셈을 하여 구해 보라는 터무니없는 질문도 가능…….”
“1791일.”
언영이 갑자기 현오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답지 않게 낮고 진지한 어투였기에 주변 이들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목린은 언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현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웃었다.
“너 외워 뒀구나.”
“……아니.”
언영이 약간 쑥스러워하는 낯빛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현오의 눈이 커졌다.
“뭐?”
“그러면 서방님, 제 생일은 앞으로 얼마 남았을까요?”
목린은 언영의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물었다. 언영은 그녀와 강렬하게 눈을 맞추며 뜨겁게 답했다.
“225일.”
목린이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돌아갔다. 우주의 지혜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현오는 허겁지겁 주변을 돌아다니며 여기서 셈을 제일 잘한다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그가 발 빠르게 돌아다닌 끝에 한 초족 청년이 모두의 앞에 끌려왔다.
언영이 사실은 이제껏 제 비상한 두뇌를 멍청한 척 숨겨 왔을지 모른다는 상황에 분위기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자신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그래도 주언영보다는 낫다고 자부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콧김을 훅훅 내뿜으며 주먹을 꽉 쥔 자세로 모여들었다. 초족 청년은 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청년이 준 답은 앞서 언영이 말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모두가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자신이 위험에 처한 줄 알고 얼른 흐느끼며 자리에서 도망쳤다.
“뭐야, 너!”
“서방님 역시 대단하세요!”
목린이 환하게 웃으며 언영의 품에 다시 한번 와락 안겨들었다. 날카롭게 대답을 한 건 언제고, 다시 언영은 바보같이 히죽거리며 두 팔로 목린의 등을 감쌌다.
“…….”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익문이 두 사람을 매서운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언영이 모두를 구해 줬다곤 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지우지 못할 과거가 있으니. 그래도, 어떻게 삶이 늘 자기 좋은 대로 흘러갈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목린의 삶에 관한 문제였고, 목린이 저렇게나 좋아한다면……. 정말 저 멍청이를 버리고 못 살겠다면……. 역시…….
익문이 혼자 서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세 어린아이가 쪼르르 걸어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주화영이라고 합니다.”
“주혜영이라고 합니다.”
“주선영이라고 합니다.”
한결같이 공손한 자세의 아이들은 익문에게 호감을 샀다.
“주 서방의 누이들이로구나.”
그들을 바로 알아본 익문이 답했다. 첫째 화영이 예의 바르게 답했다.
“예. 저희 오라버니를 용서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니……. 우리야말로 고맙구나.”
어린 세 꼬마를 본 익문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사건이 해결된 뒤, 오늘 죽이게 된 괴물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익문에게 친절하게 경황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익문도 녀석이 바닷속에 쭉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말을 제대로 믿지 않았다.
사실은 이들이 섬에 오면서 그 괴물도 같이 딸려 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괴물의 이빨 중 하나에 얼마 전 실종된 초족 사람의 옷이 껴 있던 것으로 보아 그 추측은 거짓으로 판명 났다. 다시 말해 저 괴물은 언제라도 섬에 찾아올 수 있었단 뜻이다.
“만일 우리끼리만 있을 때 녀석이 바다 밖으로 나왔더라면…… 아마 지금쯤 한 명도 빠짐없이 잡아먹혔을 거다. 아니, 단월도라는 섬이 사라졌었겠지.”
익문은 월진과 언영에게도 조금 전에 가서 고맙단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사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조금 무서웠다. 저쪽에서 ‘우리의 힘을 이용해 섬을 지키니까 좋냐’는 식으로 나와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초족을 지배하려고 들진 않을지…….
하나 그런 걱정은 모두 쓸데없었던 것으로 판명 났다. 월진은 허리를 숙이려는 익문의 행동을 극구 만류하며 오히려 그를 정답게 끌어안았다. 언영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히 굴었다. 처음 보는 부족 사람들까지도 몰려와 익문에게 다정하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런 이웃이라면…… 마음을 조금은 열어도 나쁠 것 없겠지.
“사실 오라버니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저희 셋이 가지고 온 물건이 있습니다.”
“있습니다!”
“오라버니를 살려 달라고 족장님을 설득하려고 갖고 왔는데, 필요 없어졌지만 그래도 드리고 싶어요!”
“싶어요!”
익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한번 확인차 물었다.
“나?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냐?”
아이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족장님.”
“허허…….”
귀혈족이라지만 야무지고 귀여운 소녀들의 모습에 주름진 익문의 얼굴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동시에 어렸던 목린이도 생각나 마음이 뭉클해졌다. 저 시절에 우리 목린이는 이 아비 주겠다고 그 조그만 손가락으로 야무지게 꽃 화관을 만들어 주곤 했었는데, 이 귀여운 아이들은 무얼 줄지…….
“받으세요!”
“받으세요!”
“받으세요!”
“끼아아아악!”
하지만 해골 화관을 받자마자 그런 가슴 따뜻한 회상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혜영이 화관을 흔들자 해골들끼리 부딪치며 달각달각 소리가 났다.
“귀여운 소리도 나요!”
“끄아아아아악!”
“아버지!”
멀리서 비명을 듣고 상황을 파악한 목린이 달려왔다. 쓰러지는 익문을 뒤에서 안고 함께 앉았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헉, 헉…….”
“받다 보면 익숙해져요!”
* * *
“흐흐흐흐흐흐…….”
늦은 밤, 사내의 이상한 웃음소리가 목린의 방을 채웠다.
목린은 원래 이 섬에 살았을 때의 자신의 방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언영도 같이 들어와 자게 되었다. 당연히 침상 크기가 맞지 않는지라 언영은 잔뜩 웅크린 채였다. 솔직히 이대로 언영이 다 나았다고 치부하고 넘어가도 괜찮은가 목린은 걱정이 앞섰지만, 아무리 봐도 그의 몸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여 의원들도 팔팔한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흐……. 목린이가 나를 사랑해. 정말로 나를 사랑해. 나한테 사랑한다고 해 줬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린을 뒤에서 끌어안은 언영은 잠이 들긴커녕 더욱더 히죽거렸다. 이대로 죽어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엉엉 울고, 온몸을 날리며 싸우고, 그렇게 기상천외하던 하루를 마치고 마침내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까 웃음이 끊이질 않는 거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뒤집힌 상황은 물론이고……. 아니, 뭐니 뭐니 해도 목린이 그를 사랑한다고 해 주지 않았는가. 이보다 더 멋진 일이 또 뭐가 있다고.
하나 그의 품에 안겨 계속 저 웃음을 들어야 하는 목린은 죽을 맛이었다.
“부끄러워요…….”
목린은 바닥에 얼굴을 대고 웅얼거렸다.
“언젠가 사랑한다고 말하려 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남들 다 들을 수 있게……. 아버지랑 오라버니랑 마을 사람들이랑 다…….”
어느 순간부터 목린은 울기 시작했다. 훌쩍거림이 점점 커졌다. 언영은 당혹스러워하며 목린의 팔을 뒤에서 쓰다듬었다.
“목린아…….”
“게다가 알고 보니 서방님은 딱히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고, 혼자서 난리 피운 것 같아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요.”
“미안해. 응?”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데……. 서방님 죽을까 봐…….”
“목린아, 정말 미안.”
언영은 목린의 볼에 자잘하게 입을 맞추며 손을 움직였다. 팔을 쓰다듬던 손은 서서히 부드럽게 항로를 바꾸었다.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와 말랑한 가슴이 끝에 살며시 닿은 그때. 두 사람을 에워싸던 침묵도 함께 산산이 조각났다.
목린은 몸통을 거의 엎드리며 언영의 손길을 피했다. 바닥에 얼굴을 완전히 묻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 안 줄 거예요. 서방님 혼자 서방님 가슴 만지고 노세요.”
“아……!”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목린아…….”
언영이 초조하게 목린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몸통을 제자리에 돌려보고자 힘을 쓰는 듯 안 쓰는 듯 조절하며 그녀를 자기 품에 당겼다. 하나 끌어당겨지려고 하면 목린은 다시 잽싸게 어깨를 틀고 숨었다. 언영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안 돼요.”
작지만 단호하게 목린이 말했다. 언영은 불안해하며 더듬거렸다. 구름 위를 거닐던 기분이 끝내 바닥까지 삽시간에 추락했다.
“목린아, 나는…… 나는 내 가슴 재미없어.”
“저는 재밌어요. 아……!”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내뱉은 목린이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아주 잠깐 고요한 침묵이 앉았다가 다시 날아갔다.
“그래? 흐흐흐흐흐흐…….”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던 언영은 실실 웃으며 제 몸에 둘린 옷을 빠르게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사르르 천이 벗겨지는 소리를 최대한 귀에서 내쫓으며 목린은 바닥에 얼굴을 비볐다. 앓는 신음이 뭉개져 나왔다.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흐으으으응…….”
“목린아. 여기 있으니까 마음껏 만져.”
어느새 상의를 벗고 상체를 드러낸 언영이 말했다. 목린의 어깨를 잡아 몸통을 돌려 버리고, 제 큼지막한 맨가슴을 그녀의 코앞에 바로 들이댔다. 목린은 기겁하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언영은 물러나긴커녕 더욱 밀착해 가슴을 목린의 얼굴에 비비적거렸다.
“뭐 하시는 거예요!”
“다 네 거야.”
“숨이! 안 쉬어져요!”
“내 가슴을 가져!”
목린은 간신히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 피했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목린의 독특한 반응이 귀여워 언영은 굳이 토 달지 않고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옷을 다시 걸치는 것도 잊고 바른 자세로 곧게 허리를 펴고 앉아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렸다.
“저 건들지 말고 이렇게 주무세요.”
목린이 심각한 표정으로 쥐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밧줄이었다.
바닥과 천장을 잇는 나무 기둥 같은 것이 방에 있고 목린은 언영을 그쪽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언영이 움직이지 못하게 기둥과 함께 그를 단단히 결박했다.
진지하게 들어와선 하는 짓이 상반신을 벗은 남편을 밧줄로 묶어 두기라니. 하는 짓이 귀여워 언영의 입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굳이 목린의 앙증맞은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목린의 둥근 정수리를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엔 목린이 마냥 귀여웠다. 목린을 얕잡아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만, 그래도 그가 조금의 힘만 주거나 간단히 손만 움직여도 이쯤은…….
‘어?’
풀리지 않았다.
살짝 팔에 힘을 준 언영은 예상보다 단단한 결박에 꽤 놀랐다. 아니, 꿈쩍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목린은 지난가을 다인에게 끈을 제대로 묶는 법도 배웠다. 절대로 풀 수 없고 검으로 잘라 내는 수밖에 없는 매듭 묶기였다.
“안 풀리죠?”
그의 약간 당황한 표정을 읽은 목린이 뿌듯하게 물었다. 어둠 속에서도 수줍은 미소가 빛이 났다. 목린은 몸을 살짝 뒤로 옮겨 언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고 자신이 방금 막 해 놓은 짓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언영의 근육질 상체는 기둥에 꽁꽁 묶여 있고 다리는 마치 반항하듯 양쪽으로 벌어져 있었다. 툴툴거리는 듯한 언영의 표정과 단단히 압박된 무거운 몸을 보면 마치 그를 함락한 듯해, 목린에게 흐뭇한 감정을 선사했다.
목린은 이어서 언영의 상체를 계속 빤히 바라보았다. 밧줄은 그의 몸통을 휘감고 있었지만, 완전히 틈 없이 가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울퉁불퉁한 팔뚝, 터질 것 같은 오른쪽 가슴의 젖꼭지, 두꺼운 복근이 바깥에 살짝 나와 있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그의 젖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왜, 왜 그래.”
목린이 심각한 표정으로 가슴을 지그시 쳐다보자 당황한 언영이 최대한 몸을 비틀며 말했다.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을 알고 있었으나 언영은 속으로 부정하며 속삭였다.
목린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무릎을 이용해 언영의 앞에 바짝 기어 왔다. 그리고 눈을 똥그랗게 들고 검지를 들며 말했다.
“만져 보고 싶게 생겼어요.”
“뭐? 아!”
목린의 손끝이 언영의 젖꼭지를 살짝 톡 건드리고 떠났다.
손가락 끝이 아주 잠깐 닿았을 뿐인데 언영이 짧은 신음을 내며 무너졌다. 목린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다시 손가락을 뒤로 내뺐다.
……그랬다가 다시 내밀었다.
“무슨 짓을 또 하려고! 안 돼. 안 돼, 목린아, 안 돼, 그 손 치워! 안 돼!”
여름의 악몽이 다시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목린은 다시 눈을 반짝이며 다시 언영의 젖꼭지를 만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 오랜 시간 검지로 꼬옥 누르고 지나갔다. 아까와 다를 바 없이 언영이 헐떡이며 허리를 크게 튕겼다.
목린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언영은 그 모습이 무서웠다.
“목린아!”
목린은 한 손을 언영의 심장이 뛰고 있을 언영의 왼쪽 가슴에, 다른 한 손을 그의 팔에 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가 부드러운 입술로 아까까지 손으로 건드렸던 것을 조심스레 머금었다.
언영은 아픈 사람처럼 울었다. 답답함을 호소하듯 유일하게 자유로운 발로 바닥을 쿵쿵 내려치기도 했다. 그의 낮은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은 신음이 입에서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래도 목린은 계속 빨았다. 그가 그녀에게 해 주는 것처럼, 사랑을 담아 입에 머금고, 혀로 굴리고, 입술을 잔뜩 비볐다. 언영의 가슴에 짚은 손에서 그의 심장이 난동을 피우는 소리가 고스란히 와닿았다.
잔뜩 질척해지고 나서야 목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벌벌 떨리는 그의 몸통을 뜯어보며 그와 느리게 눈을 맞추었다. 그의 얼굴이 어찌나 시뻘겋던지 목과 쇄골의 색깔부터 현저히 차이 났다.
“제발.”
그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바지 앞섶은 당장 터질 것 같이 부풀어 무언의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가 목린과 눈을 맞추며 간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목린아, 풀어 줘, 제발…….”
“사랑해요.”
목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제가 많이 사랑해요, 서방님.”
“아으…….”
목린의 입술이 언영의 몸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의 아름다운 입술부터 시작해서 굵은 목을 훑었다. 쇄골 위에 살포시 얹어 가기도 했다. 입을 맞출 때마다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윽!”
“사랑해요.”
언영을 사랑한다. 그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서 들어설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사랑해요.”
그의 살결이 보이는 데라면 모조리 입을 맞추었다. 팔에도, 가슴에도, 몸통을 저 아래로 숙여 복부에도. 목린의 숨결이 성기 쪽에 스치자 언영이 이를 악물고 탁한 신음을 내뱉었다.
“사랑해요.”
쾌감이 일었다. 이 상황에서 그의 몸이 동하고 있다는 게. 그녀를 향해서 그가 성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저 모습을 보면서. 목린은 이제 그런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목린은 다리를 쩍 벌려 언영의 허리와 기둥에 두르며 그와 가까이 마주 앉았다. 언영은 도무지 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되레 아까 전 그 괴물과 싸울 때의 모습이 훨씬 이성적이고 차분했다.
“이, 이게 대체, 뭐 하는…….”
“서방님, 저…… 아래가 젖었어요.”
목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며 언영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서방님만 만졌는데도 이렇게 젖어요…….”
언영이 집에 없었던 가을 동안에, 여자들에게 배워 온 것을 써먹을 때가 왔다.
목린의 촉촉하게 젖은 속곳이 그에게 닿았다. 그리고 목린이 더욱 바짝 하체를 붙여 바지 속에 숨겨진 그의 양물에 조금씩 비비기 시작하자, 그는 고통과 쾌락이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괴로워했다.
“하아, 제발! 풀어!”
“안 돼요. 부끄러운 거 너무 많이 해서 못 풀어드려요.”
목린이 언영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고개를 저었다. 표정만 보면 초야가 뭔지도 모르던 그 당시 앳된 소녀 모습과 똑같은데, 언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매미처럼 달라붙어 질척거리게 하반신을 비비는 태도는 요염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아까 그놈이랑 한 번 더 싸울래. 이, 이건…….”
언영에겐 낮에 벌어진 전투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무서웠다. 그러자 목린이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서방님은 저보다 그 괴물이 더 좋다는 거예요?”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언영이 더듬거리며 해명했다. 이어서 당장 덧붙였다.
“응? 풀어, 목린아. 아무 짓도 안 할게. 좀 불편해서 그래. 풀어만 주면 얌전히 잠만 잘게.”
아무리 목린이 순진하더라도 저런 말에 속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등골이 오싹해진 목린은 다시 순진한 태도를 되찾으며 몸을 살짝 뒤로 내뺐다. 갑자기 다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서, 서방님 오늘 무리하셨으니까 이대로 주무세요.”
“뭐? 이대로?”
그의 눈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이미 파정해 버려 그의 바지가 흥건히 젖은 채였다. 하지만 다시 또 발딱 일어섰는지 크게 부풀어 있다.
“기, 기다리면 가라앉지 않을까요?”
목린이 언영의 목에 감았던 팔을 풀고 멀어지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영을 향한 마음이 벅차올라 저지르기는 했는데 뒤늦게 당혹감이 치솟았다. 목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도망치듯 몸을 뒤로 조금씩 뺐다. 그에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이대로 끈을 풀어 줬다가 무슨 짓을 당하게 될지가 더 무서웠다.
그런데…….
언영의 얼굴이 시뻘게지고 이마 위로 핏줄이 돋아났다. 그가 이를 악물자 두꺼운 팔이 부들부들 심하게 떨렸다. 언영의 안면 근육이 모두 흉악스럽게 뒤틀렸다.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목린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투두둑. 칭칭 감겨 있던 밧줄의 한 부분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말도 안 돼……!”
목린이 숨죽여 속삭였다. 뒤따르던 말은 짐승처럼 달려오는 언영의 입술에 파묻혀 나오지 못했다.
* * *
다음 날 아침. 목린과 언영은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그들의 단잠을 깨운 주범은 새어 들어오는 햇살도, 새들의 지저귐도 아니었다. 바로 집 앞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었다.
“무슨 일일까요?”
목린이 화들짝 놀라며 언영에게 물었다. 그리고 다급히 주변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밤에 있었던 언영과의 격렬한 관계 탓에 집이 무너져서 그런가 싶었는데, 다행히 벽은 멀쩡해 보였다.
대충 귀 기울여 들어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다였다. 아무래도 직접 나가서 상황을 살펴야할 듯했다. 목소리를 파악해 보니 초족이건, 귀혈족이건, 아니면 다른 부족이건 상관없이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 벌어졌길래 이들을 아침부터 한곳에 모이게 한 걸까. 두 사람은 내심 불안에 빠졌다. 거의 옷만 바로 챙겨 입고 뛰어나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들이닥칠까 봐 크게 걱정했던 목린은, 처음 나와서 눈을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이 대충 인사만 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허무함에 빠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들이 목린을 보기 위해 모이진 않았다는 뜻이다. 한데 옆을 보니 언영을 향한 반응도 대충 비슷하다. 그렇다면 뭐지? 목린은 혼란에 빠졌다. 아버지를 뵙기 위해 집합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의문은 목린이 집 주변을 돌고 돌아 뒤로 향했을 때 풀렸다.
사람들이 둘러싼 중심에는 두 마리 말이 있었다. 다름 아닌 봄비와 륭이었다. 다행히 륭의 부상은 그리 깊지 않았다. 살짝 절뚝거리긴 하였으나 워낙 튼튼한 녀석이라서 큰 걱정은 쓸데없다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지금도 륭은 멀쩡히 서 있었다.
두 발로.
두 말의 교합은 이제 막 끝나 가는 중이었다. 땅에 닿지 않은 륭의 두 앞발은 봄비의 몸통을 안았고, 봄비의 뒤를 기다란 기둥이 반복적으로 쑤시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연인이었다.
그리고 륭의 얼굴이 유독 더 뜨겁고 지쳐 보였다.
파정을 끝낸 륭은 봄비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곳에서 달아나고픈 모양새였다. 봄비를 그렇게나 좋아하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목린이 말의 교합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가을에도 어쩌다가 한 번 눈에 담았다. 신기한 광경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고작 이 일 하나 때문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돌아가 달라고, 아버지께서 잠에서 깨실까 걱정된다고 입을 열려던 차였다.
그때 갑자기 도망가는 륭의 앞을 봄비가 막아섰다. 신나게 달려온 봄비가 엉덩이를 상대의 앞에 내밀었다. 륭은 ‘또 하자고?’라는 표정으로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쩌억 벌렸다.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늘을 찌를 듯 폭소했다. 이 상황에 절대 웃을 수 없는 륭만이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하나 봄비가 어딜 가냐는 듯 으르렁거리자 그것도 멈추고 몸을 웅크렸다.
륭은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다시 뒤에서 봄비를 안았다. 흘레붙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낄낄거렸다. 반응들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이 처음 벌어진 것은 아닐 성싶었다.
목린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옆에서 언영이 배를 잡고 쓰러질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대지가 파릇파릇한 색상을 피워내고, 새로운 시작을 만끽할 수 있는 계절, 봄이었다.
“와하하하!”
단월도의 어느 소박한 초가집에서 대낮에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언영은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정겹게 끌어안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목린과 익문이 있었다. 목린의 얼굴에는 고운 미소가 꽃피어 있었고, 익문의 낯빛 또한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에는 언영의 상체보다 조금 큰 아름다운 회화가 놓여있었다.
목린과 언영 두 사람이 혼인한 지 이제 한 해가 지났다. 단월도 재건을 돕기 위해 둘 다 얼마 전부터 쭉 섬에 머물고 있었다. 그동안 목린은 직접 언영을 위해서 초족 의복을 며칠에 걸쳐 완성했다. 지금도 입고 있었다. 언영이 덩치가 크고 늠름하다는 건 줄곧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옷을 입혀 놓으니 나머지 초족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가 두드러졌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청색의 유(저고리)와 허리춤에 두른 두루마기는 그의 대지와도 같이 넓은 어깨와 훌륭한 골격의 상체를 돋보이게 했다.
처음 언영에게 이 옷을 입힌 날, 목린은 너무 좋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서방님 정말 멋있어요……!’ 하며 수줍게 감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몸이 바로 동한 언영이 찢다시피 옷을 벗으며 목린을 덮치려 해서 그간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뻔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이런 선물을 조금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그날의 전투를 감명 깊게 본 어느 할머님께서 언영과 목린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겼다. 익문의 안내에 따라 할머니의 거처로 발을 옮긴 부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림 안에 그려진 건 언영이 쓰러지고 목린이 그의 옆에 주저앉은 그때였다. 혈흔으로 젖어 거대한 몸을 눕히고 있는 그는 역사에 오래오래 남을 위대한 영웅처럼 그려졌다. 무릎을 꿇고 사랑을 속삭이는, 비통에 잠긴 여인과 함께 어우러져 세상에 다시없을 웅장한 분위기를 내보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했다.
“제가 살면서 본 그림 중에 가장 훌륭합니다! 유일하게 거슬리는 게 있다면 제가 이 정도로 멋있지는 않다는 점이에요. 하하하!”
그때 목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언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응?”
“아니에요, 서방님 멋있어요.”
두 시선이 얽히고 목린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언영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몸을 목린 쪽으로 더 가까이하고 흥분하며 물었다.
“정말? 내가 이 정도로 멋있었어?”
“네. 서방님 그날 정말 멋있으셨어요. 지금도 멋있어요. 서방님은…… 늘 멋있어요……!”
초족 사람들 앞인지라 목린은 다소 부끄러워하면서도, 눈을 맞추고 끝까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목린아……!”
언영은 감격에 차올라 바로 목린의 몸을 끌어안았다. 똥그래진 목린의 눈이 너무나도 귀여워 몸이 떨렸다. 그대로 입술을 내리꽂으려다가, 서로의 숨결이 얼굴이 닿는 가까운 거리에서 움찔 놀라며 정지했다.
얼마 전 목린이 그에게 말한 부탁이 퍼뜩 떠올랐다.
‘서방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응? 뭔데?’
‘저…… 섬에서는 입 맞추는 행동을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언영이 당황해하기 전에 그녀는 즉시 말을 덧붙였다.
‘다름이 아니라, 아직 저희 섬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려워해요. 많이 놀라는 것 같아요.’
단월도에 있으면서도 언영은 아무 데서나 자리를 잡고 목린을 무릎에 앉힌 후 한 시진 이상 얼굴을 쭈압쭈압 빨아 주기 일쑤였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늘 못 볼 거 봤다는 표정으로 지나갔다. 물론 언영은 몰랐다.
언영은 고개를 휙휙 돌려보았다.
“…….”
두 사람의 입맞춤 직전인 모습에 익문의 표정이 불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눈이 선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은 그보다 나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팔 벌려 환영하고 있는 건 아닌듯했다.
언영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뽀뽀를 자제하길 바란다고 했지, 금한 적은 없다. 또한 남의 시선 탓이라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하면 되는 것이다.
언영은 몸을 일으키며 목린을 번쩍 안아 들었다. 앉아 있던 목린이 당황하여 허둥지둥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언영은 두 어르신을 돌아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저, 목린이랑 뽀뽀 좀 하고 오겠습니다.”
“뭐……?”
익문의 표정이 더욱 흔들렸다. 목린은 눈을 감으며 미간을 확 찡그렸다. 너무도 민망하여 여기서 바로 사라지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언영은 목린을 안고 빠르게 집 밖으로 달려 나왔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무엇보다 목린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남편이 되어서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귀혈족과 초족 사이에 그런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배우고 나서부터 언영은 더욱더 목린의 말을 귀담아 듣는 데 애썼다. 그는 얼른 입 맞추고 싶어서 초조하게 물었다.
“목린아, 여긴 어때? 여기서 뽀뽀할까? 여긴 괜찮아?”
“…….”
“아니면 저기 그늘에 가서 할까?”
“…….”
“그러면 여기서 한 다음 저기로 가서 또 할까? 응? 응? 목린아?”
언영은 눈을 감고 화를 조절 중인 목린을 흔들며 연이어 물었다.
“응? 목린아? 응? 응? 응? 응? 응?”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물어봐요!”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린의 입술이 언영의 입술에 먹혀들어 갔다. 따스하고 담백하게 언영은 목린을 사랑해 주었다. 함께 맞닿아 서로의 달콤함을 음미하는 입술이 뜨거웠다. 이대로 녹아내릴 것만 같은 입맞춤이었다. 목린도 언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열정적으로 응했다. 누가 더 적극적이고, 소극적이고 할 것 없이 똑같이 사랑을 주고받았다.
“저, 서방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여운이 가시지 않아 아직도 이마를 맞댄 상태에서 목린이 속삭였다. 농익은 분위기 속에서 언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뜨겁게 답했다.
“말해 봐. 목린이 말은 다 들어줄게.”
“저……. 귀 좀…….”
목린의 부탁대로 언영이 얼굴을 내밀었다. 목린의 입술이 조곤조곤 그 뒤에서 움직였다.
잠시 뒤 언영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먼저 서방님께 알려 드리고 그다음에 천천히……!”
목린이 황급히 내던졌다. 하지만 너무 흥분하여 콧김을 흉흉하게 내뿜고 흰자가 엄청나게 보일 정도로 눈을 시퍼렇게 뜬 언영은, 아무리 그를 마음에 담게 되었더라도 좀 무서웠다. 이대로 두면 그대로 폭발할 것 같아 결국 목린은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요. 말해도 돼요…….”
“아기 생겼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영이 시원하게 내질렀다.
원래도 목린을 안 놓아주던 언영이지만 이번엔 특히나 더 심했다. 양팔로 계속 끌어안고 옆에서 쉬지 않고 그녀의 이마와 정수리, 볼에 입술을 쭈압쭈압 갖다 댔다. 보고 있는 사람이 이대로 목린이 찌부러지진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축하해요!”
“축하한다!”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중제비를 돌며 섬 전체에 회임 소식을 떠벌린 누구 덕분에, 목린이 한때 살았던 초가집 앞에서 곧장 잔치가 열렸다. 목린과 각별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얼굴만 익숙했던 아주머니들도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타났다.
“목린이가 좋아하는 음식 많이 싸다 줄게.”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돼요.”
언영의 품 안에서 구겨진 목린이 고개를 최대한 도리도리 저으며 거절했으나, 얼굴에 떠오른 순수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언영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목린의 몸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외쳤다.
“모두 감사합니다! 하하하! 이대로라면 순탄하게 열다섯 명까지 충분히 낳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적이 찾아왔다.
익문이 그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굳었다. 목현의 부인 예서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다른 손으로는 남편의 손을 붙들었다. 단월도 주민들의 얼굴에 떠 있던 순박한 미소가 점차 희미해졌다.
“하하하하하!”
오로지 언영의 웃음소리만이 쾌활하게 울려 퍼졌다.
“열…… 열다섯이라니, 주 서방. 귀혈족은……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나……?”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익문이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질문을 던졌다. 납득할 수 있는 말이 돌아오길 바랐는데 언영의 답변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원래는 스물을 바랐는데 줄였습니다! 하하하!”
초족 사람들이 비밀스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줄여 준 건 고맙지만, 그, 우리 목린이가…… 버틸 수 있는지 잘 모르겠네. 우린 귀혈족이 아니라서 몸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
“목린이는 장인께서 걱정하시는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부족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초족 사람들이 이젠 크게 술렁였다. 대회에 대해 잘 모르는 그들은 대충 엄청 험악한 싸움판을 머릿속에서 연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목린아, 네가 정말…… 바라는 일이냐……?”
“네……. 어떻게든 노력해 보려고요.”
목린이 진지하게 말했다.
언영은 목린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면 물었지, 그의 소망은 잘 요구하지 않았다. 늘 목린을 예뻐해 주며 그를 그녀에게 맞춰 주려고 애썼다. 특히 오해가 풀리고 난 이번 겨울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여전히 서툴지만 그래도 더 귀 기울여 듣고, 신경 써 주려고 매 순간 애썼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게 바로 열다섯 명의 아기였다. 그래서 들어주고 싶었다. 그녀 또한 언영과의 아이가 기대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목린아, 이 아비는 걱정되는구나. 그게 가능…… 할지…….”
“괜찮아요. 서방님께서 옆에서 많이 도와주실 거예요.”
목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는 언영은 어색해진 분위기도 모르고 목린의 뺨에 뽀뽀하며 좋아죽느라 바빴다.
* * *
아쉽지만 이별의 순간이 왔다.
목현은 남들보다도 더 먼저 바다에 나와 있었다. 그는 미리 배를 준비 중인 귀혈족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례지만, 제 매제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부인과 함께 계시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목린이 또한 보이지 않아서.”
목현은 언젠가 언영과 단둘이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혹시 모른다. 의외로 마음이 잘 맞을지도. 아직 마땅히 그럴 기회를 잡지 못해서 잠깐이나마 얘기하고자 이렇게 미리 그를 찾아다닌 것이다. 혹시 뒤에 오고 있나 싶어 후방을 확인하고 있을 때 귀혈족 사람이 정겹게 목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기 있습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은 위쪽이었다.
절벽이다.
언영이 목린을 들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위치, 익숙한 각도, 익숙한 자세였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첫째를 순산해 줘!”
순산해 줘- 순산해 줘- 해 줘- 해 줘- 해 줘- 줘- 줘-
“…….”
귀혈족 사람이 발랄하게 물었다.
“찾으셨다 말씀드릴까요?”
“……되었습니다.”
목현은 손으로 얼굴을 쓸며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 *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추운 겨울, 단월도의 어느 초가집 안.
사내의 괴성이 바깥까지 기어 나와 눈바람 사이를 누볐다.
“목린아! 내가 정말 미안해! 다시는 열다섯 명 낳자고 하지 않을게! 아인 필요 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 목린아! 목린아아아!”
언영은 진통이 시작된 목린의 손을 부여잡고 소리 질렀다. 눈물을 질질 짜내는 그의 얼굴은 완전히 무너진 지 오래였다.
몇 주 전, 목린은 보다 안정적인 정신 상태를 위하여 단월도에 있는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태어날 때부터 줄곧 알아온 이들과 익숙한 자연에 둘러싸여야 더 마음이 편할 테고, 그러면 더 좋은 순산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목린이 아무 문제 없이 간단히 아이를 낳을 수 있으리란 언영의 기대는, 임신 초기부터 허물어졌다. 목린은 자주 앓고 힘들어했다. 하필이면 단월도에서만 재배되는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언영이 바로 배를 타고 구하러 떠난 적도 있었다. 그랬기에 마지막을 앞두고 단월도에 온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목린의 임신 과정이 예상과 달랐음을 깨달은 후로부터 언영이 그동안 가장 두려워한 바로 그날이었다.
“목린아, 정말 미안해! 네가 이 정도로 힘들어할 줄은 몰랐어! 다 내 잘못이야! 제발 견뎌 줘! 부탁이야! 난 너 없이 못 살아!”
옆에서는 산파와 그녀의 도우미들이 아이를 받을 준비를 끝내 가고 있었다. 물을 떠 오고, 피를 닦을 천을 가져왔다.
바닥에 드러누운 목린의 얼굴은 비를 맞고 온 것처럼 이 한겨울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언영은 부들거리는 목린의 손과 깍지를 끼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눈을 감고 있는 목린을 보니 괜히 초조해진 것이다.
“족장 자리는 나중에 누이들한테 넘기면 돼! 후계자는 필요 없어! 목린아! 말을 해! 제발! 잠들지 마! 안 돼애애애애애!”
애써 아득바득 고통을 속으로 인내하고 있던 목린의 입술이 아주 천천히 벌어졌다. 미간을 좁히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시끄러워…….”
“……아, 미안.”
언영은 당혹스러워하며 얼른 몸을 뒤로 뺐다.
목린이 종종 언영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한 적은 있어도, 저렇게 이를 긁듯이 짜증을 낸 적은 없었다. 너무도 낯선 모습에 적응을 어려워하며 그가 쭈뼛거릴 때, 갑자기 목린이 목을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삼킬 수 없는 고통이 들이닥쳤다.
“아아아!”
“목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당황한 언영이 내지른 고함에 목린의 비명이 완전히 묻혔다.
목린은 허덕거리며 아무거나 잡고 버틸 것을 찾았다. 팔을 사방에 휘젓다가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언영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그러자 되레 언영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왜? 이거 뜯고 싶어? 마음껏 가져! 마음껏 뜯어가! 난 너를 위해선 대머리도 될 수 있어, 목린아!”
그는 울먹이면서 목린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그리고 머리를 스스로 뜯으며 부르짖었다.
“가져가! 얼른 가져가! 얼른 내 머리 뽑아가! 목린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목린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귀가 너무 아팠다.
다른 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했는지 머지않아 초족 여인들 다섯 명이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언영의 팔과 몸통을 뒤에서 잡고 방에서 끌어내기 시작했다. 언영이 심하게 몸을 뒤틀며 토해냈다.
“왜 이래, 이거 놔! 목린아! 목린아아아아!”
“제발 좀…… 데려가요……!”
“목린아아아아아아아! 사랑해!”
언영은 마지막까지 시끄럽게 퇴장했다. 굳게 닫힌 문 앞에 멀거니 서서 울었다. 안에서 목린의 비명이 들리면 주먹으로 내려치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고, 목린이 괜찮은 거냐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사람이 안에서 나오며 아예 소리 지르는 것까지 금하자 그마저도 멈춰야 했다. 그는 작게 흐느끼며 목린이 앓고 있는 방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목린이…… 어흐어…… 흐억…….”
언영은 비틀거리며 문 앞 마루 위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도저히 가만히 서 있어선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러다가 줄곧 여기 함께 가만히 있었던 목현과 눈이 마주쳤다.
“형님…….”
“진정하세요, 매제. 목린이는 잘 해낼 겁니다.”
“형니이이임…….”
목현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언영은 허리를 축 늘어뜨리더니 목현의 품에 자연스럽게 기댔다. 목현의 몸이 뻣뻣해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안에서 목린이 또 한 번 비명을 내질렀다. 돌덩이만 한 언영의 어깨가 겁쟁이처럼 움찔거렸다. 목현은 저도 모르게 그를 도닥여 주기 시작했다.
언영이 훌쩍거렸다.
“형니이임……. 다 소인의 잘못이겠지요……?”
“예. 다 매제 잘못입니다.”
“으허으으어…….”
목현이 다소 덤덤히 말했고 이는 언영의 오열을 더 부추기는 결과만 낳았다. 목현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농이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매제께서도 목린이도 이런 일이 처음이지 않습니까.”
“흐아으어어…….”
“뚝. 그만. 괜찮아요. 하아, 내가 어쩌다가…….”
5년 전 초족들에게, 나중에 주언영을 품에 안고 달랠 일이 생긴다고 전하면 과연 몇 명이나 그의 말을 믿을까. 살다 살다 이런 일이 올 줄은 몰랐다고 목현은 이마를 쓸며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있는 여인의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우면 안 됐다. 끝까지 주변을 지키고 있는 이는 언영과 목현뿐이었다. 목린의 친우들을 비롯한 주민들은 종종 찾아와 기웃거렸다. 목린의 아버지 익문 또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싶어 했지만 두 사내가 말렸다. 추운 날씨에 그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목현은 자신의 허벅지에 거의 엎드려 있는 언영의 어깨를 토닥였다.
“매제, 자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언영이 천천히 숙였던 등을 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목현의 얼굴에 경악이 스며들었다. 악귀를 본 양 몸을 뒤로 뺐다.
“매제, 눈이.”
“예?”
“눈이……. 앞은 보이는 겁니까?”
울다 지친 언영의 눈은 퉁퉁 부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예. 괜찮습니다.”
언영은 몸을 일으키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여기 계속 앉아 계시느라 힘드셨을 터이니 소인이 물을 한 잔 떠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내딛는데 앞에 보이는 길에 확신이 없어 조금씩 비틀거렸다. 목현은 팔을 뻗으며 얼른 내뱉었다.
“아니, 아닙니다. 잘못 걸려 넘어지기 전에 돌아오세요.”
그리고 그때였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줄곧 차분함을 가장하던 목현도 이번엔 벌떡 일어섰다. 언영과 목현 둘 다 헐레벌떡 닫힌 문 앞에 달려와 섰다. 아기의 울음은 계속 들리는데 아직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 못해 초조함만 더해졌다.
참다못한 언영이 결국 부숴 버릴 듯 문을 열어젖히려고 하던 그때였다. 안에서 분만을 도와주던 여인 중 하나가 얼굴을 바깥으로 빼꼼 내밀었다. 땀 때문에 얼굴에 머리카락이 더덕더덕 달라붙은 모습이 내부에 있었던 기나긴 사투를 대변했다. 그녀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지쳤지만 들뜬 목소리였다.
“들어와도 되어요. 아드님이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큰 아기는 난생 처음 보아요!”
언영이 바로 달려들었다. 키가 커서 안에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살짝 숙여야 했다.
“목린아아아!”
“꺄아아아악!”
퉁퉁 부어서 눈이 사라진 언영을 보고 목린이 비명을 질렀다. 언영은 또다시 눈물을 질질 짜며 두 팔 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목린아!”
“꺄악! 오지 마!”
“목린아, 진정하렴! 네 남편이야!”
목현이 언영의 뒤에서 외쳤다. 그제야 목린도 조금씩 진정했다.
“서방님……!”
목린의 작은 얼굴은 피로함이 눅눅히 배어 있었지만, 기쁨으로 반짝거리는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했다. 허리를 펴고 앉은 그녀의 품에는 방금 막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기가 안겨 있었다.
언영은 목린의 바로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굳은살 박인 손끝이 아이의 쭈글쭈글한 피부에 스쳤다. 언영의 몸에 전율이 일었다.
“너, 너……. 목린이 이렇게 아프게 하고……. 너…….”
언영이 더듬거렸다. 한 방 맞은 것처럼 부어오른 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목린이 희미하게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서방님.”
“너…… 얼굴도 쭈글쭈글 못생겼으면서 감히…….”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담한 아이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는 언영의 손길엔 애정과 감동이 듬뿍 넘쳐나고 있었다.
“너무 작아…….”
그가 감격 어린 표정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까칠한 손가락이 아이의 조그만 볼을 아주 살짝, 정말 살짝 눌렀다.
“어떻게 이렇게 작지…….”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이렇게 큰 신생아는 처음 본다고 하셨어요.”
“…….”
언영은 대답 않고 자신과 목린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의 결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눈두덩이가 퉁퉁해진 탓에, 이마에 주름이 잡힐 때까지 눈을 부릅떠 눈동자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눈물이 계속 흘러서 쉽지 않았다. 자꾸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의 근육질 몸이 바람에 휘날리는 수풀처럼 떨렸다.
목린이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녀 또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녀가 울면 언영이 왜 우냐고, 우리 목린이 울지 말라고 오히려 본인은 더 울면서 그녀를 달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동이 벅차오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방님이랑 우리 아이 둘 다 눈이 부어서 못 뜨는 거 봐요. 두 사람 정말 똑같이 생겼어요.”
“내가 이렇게 못생겼어……? 그런데도 내가…… 좋아……?”
언영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으며 목린과 시선을 맞췄다. 목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웃음을 참는 듯 입술을 오므렸다. 그 상태에서 따스한 눈웃음을 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그녀의 눈 끝에도 살짝 이슬이 맺혔다.
언영은 다급히 목린의 뒤통수를 안고 고개를 꺾어 목린과 입술을 부딪쳤다. 부드럽게 온갖 애정을 담아 목린에게 쏟아부었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아기의 손을 끈끈히 붙잡았다.
뜨거운 애정 행각 탓에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사람들에게 알려 줘야겠다며 도망치듯이 밖으로 달아났다.
그렇게 아기가 두 사람의 품에 안전히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