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7/25)
  • 7장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어. 승마는 기술만 배우면 끝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에 앉아만 있어도 긴장되었다.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옆에서 따라 걷는 언영이 그녀와 그녀의 말을 든든히 잡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평한 땅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봄의 중간 지점에 다다른 하늘은 청정했다. 한쪽에서는 농사꾼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추를 심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반듯한 자세로 뛰고 있었다. 평화로운 낮이었다.

    목린은 최대한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으며 오로지 제게 놓인 임무, 말을 타는 일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잠깐 고개를 돌리면 꼭 잘 모르는 사람하고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며칠 전 현오에게 얼굴을 맞은 언영을 일으켜 준 행동이 마을에 일파만파 퍼졌다. 목린은 그게 무슨 대수냐 생각했지만 귀혈족은 그리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디서든 벅차오르는 눈빛이 목린의 주변에 따라붙었다. 지금도 저쪽에서 달리며 훈련 중인 이 중 몇몇이 이쪽을 힐끗힐끗 보고 있을 게 뻔했다. 목린에겐 이 모든 상황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귀혈족이 아직도 많이 무서웠다.

    그래도 목린은 얼른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고삐를 꽉 쥐고 옆에서 들리는 언영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말도 살아 있는 애야.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생각이 있고, 지능도 높아. 말을 탄다는 건 결국엔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과 똑같아. 나한테 네가 배울 수 있는 건 대화하는 기술이 전부고, 실제로 말과 친해지는 역할은 오로지 네 몫이야. 대화하는 법을 안다고 바로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건 아니듯이.”

    언영이 목린과 정면의 길을 번갈아 눈에 담으며 옆에서 쾌활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말이 걸어가면서 그 위에 앉은 목린의 몸이 아주 가볍게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아침에는 그것만으로도 죽겠구나 속으로 신음을 내뱉으며 앓았는데, 얼마 지났다고 금방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고 해도 꾸준히 신경 써야 하는 게 바로 관계잖아. 이것도야. 말을 탄다는 건 그 말과 친해지는 과정이야.”

    목린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천천히 끄덕였다. 친해지는 과정. 그 두 어절을 속으로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꽤 어렵네요…….”

    “하지만 정말 잘하고 있어! 얘도 너를 많이 좋아하나 봐. 성격도 순하고.”

    목린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말이 처음에는 하도 무심한 표정을 짓길래, 어려운 상대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미세한 변화가 잇따랐다. 목린이 다가가면 다른 이들이 올 때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목린이 말을 걸면 얌전히 마주 보고 경청해 주었다. 목린이 탄성을 내며 은빛의 체모를 쓰다듬어 주면 조용히 눈을 감으며 그 손길을 즐길 줄 알았다.

    지금도 느릿느릿 지루하게 걷고 있는데, 불평 하나 없는 동료였다. 이렇게 별 탈 없이 연습을 즐기고 있는 상황도 이 사랑스러운 말의 조용한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라 목린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름은 정해 줬어?”

    언영은 뿌듯하게 은색 말을 쳐다보며 물었다. 목린에게 이 아이를 골라 준 게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싱글벙글하였다. 몇 년 전부터 목린이 줘야 한다고, 마을 마구간에 있던 애를 데려가지 말아라 주민들 앞에서 못 박아 두었다고 한다.

    목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직이요.”

    친해지는 과정. 그렇다면 더욱 아무렇게나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래 고민해서 정말 예쁜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어요. 륭이란 이름만큼요.”

    “이름만큼 예쁜 짓만 하면 다행일 텐데 말이지.”

    언영이 슬그머니 옆을 노려보며 말했다.

    사실은 셋이서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속도로 측면에서 언영의 애마(愛馬) 륭 또한 그들에게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술에 취한 말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리라 목린은 생각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륭은 오로지 옆을, 정확히는 목린의 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혀가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그 아래로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상황을 몰랐다면 어디 크게 아팠다고 오인했을 터이다.

    언영은 팔짱을 끼고 륭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좋냐?”

    륭이 두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끄덕거렸다. 콧김이 뿌우뿌우 터져 나왔다.

    한편 옆에서 날아오는 강렬한 시선에도 은색의 말은 흔들림 한번 없었다. 이쯤 되면 그냥 불쌍해서라도 한번 쳐다봐 줄 법도 한데, 도도한 그녀는 작은 관심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아예 륭을 없는 녀석 취급하며 표정 없이 정면만을 똑바로 응시했다. 목린이 몸통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언영은 눈에 연민을 담아 제 오랜 친구를 쳐다봤다. 나오는 언사는 까칠해도 륭의 몸통을 정답게 매만지는 손길은 애정이 넘쳤다.

    “칠칠치 못하긴.”

    “……솔직히 둘이 정말 똑같은데.”

    “응? 뭐라고?”

    제대로 듣지 못한 언영이 되묻자 혼잣말을 중얼거렸던 목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

    갑자기 정면에서 바람이 세게 들이닥쳤다.

    아침부터 활발히 움직였던 터라 옆으로 땋아 내린 목린의 머리는 거의 풀려 있었다. 바람의 손길에 순종적으로 따르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사방으로 화려하게 퍼뜨려졌다.

    “읏…….”

    이대로 앞을 바라보기엔 너무 눈이 따가워 목린은 살며시 눈꺼풀을 닫았다.

    계속 몸이 긴장하고 있었더니 꽤 더웠던 차다. 그래서일까, 바람의 재롱이 기분 좋은 토닥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좁혀져 있던 목린의 미간이 반듯하게 펴지고 사랑스러운 미소가 입가를 차지했다. 새뽀얀 볼이 귀엽게 여물었다. 힘이 바짝 들어가 움츠러졌던 어깨를, 마치 날개를 사방에 펼치듯이 자랑스럽게 폈다. 바람을 몸소 즐겼다.

    그녀의 아래에 있던 말 또한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눈을 감았다. 은빛의 털이 나풀거리게 놔두었다. 마치 빛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착시를 자아냈다.

    갑작스러웠던 바람이 다시 다른 곳으로 발차한 건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목린은 약간 몽롱한 얼굴로 눈을 다시 서서히 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꿈같았다. 뒤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던 머리카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간의 일탈을 부정하며 그녀의 등 뒤에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았다.

    “……?”

    다시 자세를 잡고 언영을 쳐다본 목린은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언영은 정신 나간 낯으로 목린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턱이 아래로 뚝 떨어진, 누가 드러난 앞니를 모두 뽑아가도 모를 정도로 어벙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옆에 있는 륭의 얼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목린에게서 눈을 못 떼며 언영이 손으로 더듬더듬 허리춤의 호리병을 뽑아 마셨다. 하지만 정신이 완전히 다른 데 팔려서 턱 아래로 주룩주룩 쏟아냈다. 그리고 두 모금 정도 남았을 때 그는 팔만 움직여 륭의 입에도 좀 먹여 주었다.

    목린은 무슨 일이 생겼나 어리둥절 주변을 살폈고 그녀의 말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래에서 푸르르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사방을 관찰해도 특이한 기색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리송한 기분을 남긴 목린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언영이 그녀에게 바투 다가와 달라붙었다. 간절한 눈길을 담아 그의 아내를 올려다보았다.

    “목린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안 될까?”

    “아, 많이 바쁘세요?”

    조금만 더 타고 싶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영에게 일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영과 친한 그 허현오라는 사람이 오늘 언영 대신 일을 떠맡게 됐다며 툴툴거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진심으로 성을 낸 것은 아니고, 그는 목린과 언영에게 대신 둘이서 좋은 시간 보내라고 음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언영을 때린 전적이 있는지라 목린의 눈엔 결코 곱게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후 할 일이 딱히 없는 언영이 이런 대낮에 벌써 관두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남을 가르치는 일이 지루할지도 몰랐다. 하긴, 언영은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 이리 굼벵이처럼 움직이는 그녀가 반가울 리 없었다.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낸다고 속으로 뿌듯했던 게 무색하게 목린은 다시 주눅 들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어서. 응?”

    언영은 초조한 목소리로 팔을 뻗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품에 안기며 목린은 말에서 천천히 내렸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내려온 후, 발을 땅에 디디려고 했다.

    하지만 언영이 품에서 목린을 놔주질 않았다. 여전히 발이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목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언영을 바라봤다. 언영은 목린을 꽉 붙들어 안은 상태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목린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뇌까렸다.

    “주변에 할 만한 곳……. 없겠지.”

    “네?”

    몇 번을 더 근처를 흘기던 언영은 끝내 무언가를 포기했다. 그리고 조급하게 륭의 위에 올라탔다. 그의 팔에 안긴 목린도 아슬아슬하게 함께했다. 목린은 언영의 팔을 더 꽉 안으며 매달렸다.

    “당장 집으로 가자.”

    “네? 잠깐만요! 제 말은요?”

    “여기 놔두면 누군가가 알아서 마을 마구간에 옮겨 줄 거야. 아니면 알아서 우릴 따라오겠지. 야, 가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언영이 다급하게 고삐를 쥐었다. 하지만 느긋하기 그지없는 륭의 몸짓은 그와 완벽히 대비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륭은 좋아하는 상대를 여기 두고 떠난다는 것에 불만이 거셌다.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엽게 머리를 젓고 있었다. 언영이 이를 악물고 제안했다.

    “식사 시간에 쟤랑 둘이서만 나란히 건초 먹게 해 줄게.”

    생기를 찾은 륭의 눈에서 야망이 번쩍거렸다. 흑마는 곧바로 전광석화와도 같이 달음박질했다.

    * * *

    언영과 목린의 집 앞에 당도한 륭은 자랑스럽게 울었다. 이만큼의 빠르기라면 육지의 모든 부족을 통틀어도 으뜸갈 정도였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위에 올라탄 목린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엄청난 속도에 머리가 윙윙거렸다.

    “고마워. 마을 마구간에 가 있어.”

    언영이 먼저 바닥에 땅을 딛고, 그 뒤에 몸에 힘이 다 빠져 흐느적거리는 목린을 내려주었다. 한쪽 팔로는 목린을 감싸 안고 다른 손으로 륭을 다정하게 툭툭 쳤다. 그들의 집에 위치한 마구간은 아직도 건축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보상은 제대로 해 줄게.”

    륭이 신나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사랑인 은마(銀馬)를 찾으러 떠나는지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갔다.

    어느새 두 사람만이 골목 앞에 남았다. 목린은 어질어질한 정신을 가다듬고 언영을 바라보았다.

    “저, 서방님. 대체 무슨 일…….”

    언영이 머리를 푹 숙이고 목린의 입술을 거칠게 빨아들였다. 물고, 빨고, 핥고 난리가 났다. 어떻게든 땅에 붙어 있으려는 목린과, 반대로 얼른 그녀를 안고 방 안으로 데려가려는 언영 사이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목린의 발끝이 애처롭게 바닥을 긁었다.

    “서방님……! 아직 대낮…….”

    목린이 고개를 저으며 피하면 다시 언영이 목린의 턱을 잡아 쥐고 제 쪽으로 돌렸다. 정확히 아홉 번 입술 위에 쪽쪽 제 거라고 흔적을 펴 바른 뒤 깊이 혀를 집어넣고 눌러 찍었다. 두 팔에 목린을 숨 막히도록 안고 입을 맞춘 상태에서, 파닥파닥 몸을 움직이는 그녀를 집 안으로 뒤뚱뒤뚱 데려갔다.

    겨우 벗어날 틈이 잠깐 생겼을 때 목린이 작게 말했다.

    “현오 님이……!”

    언영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목린의 입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이 나오자,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여전히 붙잡히긴 했으나 목린에게 숨 쉴 틈은 주어졌다. 목린은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누가 지나갈지 모르는 이런 골목에서 입술을 진하게 지분대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속눈썹이 귀엽게 떨렸다.

    “현오 님이 지금 서방님 대신 바쁘게 일하고 계실 텐데 이런 일로 시간을 때우시면…….”

    “난 또 뭐라고……. 알 바 아냐.”

    뜻밖의 이름이 거론되길래 무슨 일인가 호기심을 가졌던 언영이 짧게 웃었다. 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달라붙어 목린의 입술을 장악했다.

    “아!”

    열심히 목린의 입술 위에 쫍쫍거리며 언영은 몸으로 대문을 열었다. 압박된 목린의 팔이 귀엽게 파닥이던 바로 그때였다.

    “저, 실례합니다.”

    목린은 화들짝 놀라며 언영을 밀어냈다. 물론 그가 움직여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대신 목린이 최대한으로 등을 뺐다.

    막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차에 한 젊은 귀혈족 여인이 부부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영보다 작고 목린보다 큰 그녀의 얼굴에는 긴박함이 가득했다.

    “부탁인데 고민 좀 들어주세요.”

    언영은 마지못해 목린에게서 천천히 떨어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리 목린과 종일 달라붙고 싶다고 해도, 직접 집 앞까지 찾아온 절박한 손님을 내치진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늘 상황이 좋지 않았던 터라 언영은 표정을 얼른 고치고, 다소 심각한 낯빛으로 여인에게 다가갔다. 목린은 반대쪽으로 등을 돌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두 손으로 뺨을 찹찹찹 때리며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가라앉혔다.

    그러던 와중에 믿기지 않은 말을 듣게 되었다.

    “아니, 저는…… 목린 님을 뵈러 왔어요. 여기서, 아주 잠깐이면 되어요.”

    * * *

    “반나절 말을 타고 이동하면 현족이 사는 마을이 있어요.”

    두 사람만 남도록 언영은 먼저 집에 들어갔다. 처음엔 그도 함께 남아서 이야기를 듣고자 했지만, 들키고 싶지 않다는 여인의 완곡한 주장에 결국 물러섰다. 목린은 불안한 마음을 거두지 못하고 대문 앞에서 여인과 단둘이 마주했다. 왜 하필 여인이 그녀를 택했는지 오리무중이었다.

    머리를 위로 질끈 묶은 훤칠한 키의 그 여인은, 비록 목린과 생김새가 아주 다르지만 피부를 보아하니 그녀 또래가 확실했다. 하나 단순히 비슷한 나이라고 담화를 부탁하는 경우는, 적어도 이 마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목린이 대충 길가를 훑어만 봐도 젊은 여인들이 충분히 널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여인을 이곳까지 이끌었는지 알 수 없었다.

    목린이 계속 머리를 굴리는 동안, 여인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고민이 많았는지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중이었다.

    “거기에 제가 마음에 담은 남자가 살고 있어요.”

    목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오로지 제 짝사랑이지만, 그간 노력해 온 덕에 그분도 제게 약간의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그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까요? 목린 님이라면 아실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목린 님에 대한 얘기를 익히 들었어요!”

    여인의 절박함이 목소리와 행동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몸통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을 맞잡는 자세는 간절하기까지 했다.

    “아…….”

    목린은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그동안 귀혈족에 약간은, 아주 약간은 익숙해져서 잊고 살았지만, 결국엔 그들은 무서운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군사를 이끌고 초족의 섬에 들이닥쳤던 것처럼, 다른 이들의 거처 또한 꾸준히 침략해 왔을 것이다. 초족은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 ‘현족’이라는 이들은 초족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 있거나, 아니면 보다 더욱 참혹한 피해를 보는 중일지도 몰랐다. 여러 가지로 복잡할 터이다.

    여인의 가족은 뭐 하러 그런 놈이랑 사느냐, 그냥 노예로 써먹으라고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끝내 일가친척을 설득한다고 한들, 정작 마음에 담은 그 사내가 자존심과 증오 탓에 완전히 마음을 닫고 여인을 거절할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왜 여인이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굳이 그녀를 찾았는지, 목린은 이해했다. 그 남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주변에 그녀뿐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과연 이 여인을 마음 편히 도와줘도 되는가 걱정이 속에 서렸다. 사내 입장에서 얼마나 이 여인의 구애가 버겁고 부담스러울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도 약간의 관심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파멸과도 같은 사이는 아닌 것 같아 목린은 조심스레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담한 주먹을 꽉 쥐고 신중하게 물었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 마음을 표현하셨나요?”

    “들어주시는 거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여인은 목린의 안색이 워낙 좋지 않았던 터라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동안은 여기서부터 그 마을까지 무거운 쌀을 직접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며 힘을 과시했어요.”

    목린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손까지 내저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안 돼요!”

    “네?”

    “그분은 오히려 힘으로 통제하려 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죽임을 당할까 봐 무서워할지도 몰라요!”

    목린은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삼아 말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요? 대체 왜……?”

    여인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투였다. 목린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을 써 보세요! 이를테면…….”

    뭐가 좋을까. 목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목린과 언영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아래에 꽃핀 민들레에 눈길이 갔다.

    목린은 쭈그리고 앉아 그것을 뽁 하고 잡아당겼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여인의 눈앞에 보여 주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의 의아한 표정을 보며 밝게 말을 이었다.

    “이런 꽃을 가지고 가락지나 화관을 만들어 주면 분명 좋아할 거예요.”

    하지만 여인은 목린의 제안이 달갑지 않은 듯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걸요? 나쁘진 않겠지만 그래도, 쌀 드는 게 훨씬 쉽고 인상적이고 멋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요! 쌀은 절대 들지 마세요!”

    “알았어요. 꼭 시도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목린 님.”

    그렇게 끝날 것이라고 목린은 생각했다. 별일 아니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변화는 사흘 뒤에 벌어졌다.

    “목린 님! 고맙습니다! 그이랑 바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어요!”

    “앗!”

    목린이 집을 둘러싼 돌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주변에 핀 꽃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저번에 왔던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나더니 친밀하게 목린을 품에 안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목린의 어깨를 스스럼없이 친밀하게 부여잡고, 여인이 열렬히 토해냈다.

    “목린 님 말씀이 옳았어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제 색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어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모두에게 널리 알릴 거예요!”

    그냥 예의상 덧붙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며칠 있다가 진행된 두 사람의 혼례식에서 일은 벌어졌다.

    언영과 목린은 어느 정도 자리가 널찍한 뒤쪽에서 두 남녀가 가약을 맺는 모습을 구경했다. 앞에서 하늘로 무기를 던지고 환호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보며 목린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저 자리에 섰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언영은 목린의 옆에 바짝 붙어 연신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받으세요!”

    한편 언영의 막냇누이 선영은 두 사람 주변을 빨빨거리며 어른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글을 쓰는 데 자신감이 생긴 선영은 요즘 짧은 문장을 써서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저번 주에 잡은 꿩의 혈흔으로 적었다는 무시무시한 빛깔의 ‘혼인 축하해요’는, 목린의 눈엔 결코 좋은 의도로 보이지 않았으나, 그건 여기서 그녀 혼자뿐의 생각인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선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직접 허리를 굽혀 선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감동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이들도 종종 발견되었다.

    “어어!”

    신나게 달려 다니던 선영은 아직 나눠주지 못한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떨어뜨렸다. 그것만으로도 안타까운데, 하필이면 발이 먼저 뻗어 나가는 큰 실수 또한 잇따랐다.

    “오라버니이…….”

    “왜 그래, 우리 선영이. 응?”

    아까만 해도 까르르 웃던 누이가 울먹거리며 다가오자, 언영은 무릎을 굽히고 선영과 눈높이를 맞추며 팔을 뻗었다. 선영은 발에 찍혀 더러워진 종이를 보여 주었다. 언영은 얼른 누이를 안아 머리를 토닥거려 주었다.

    서간이 무섭게 생겼다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선영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목린 또한 선영을 위로해 주려 허리를 굽힌 그때였다.

    “이 모든 게 단월도에서 오신 목린 님 덕분입니다!”

    갑자기 저 앞쪽에 있던 신부가 목린이 서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쩌렁쩌렁 내지른 것이다.

    모두의 얼굴이 목린을 향했다. 목린이 안 보이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나무에 올라타거나, 옆 사람에게 잠시 몸을 틀어 달라 부탁하는 방법 등으로 그녀를 눈에 애써 담았다.

    수백 명이 모여 있던 자리에 적막이 찾아왔다.

    “…….”

    목린은 어설프게 숙인 허리를 서서히 다시 들었다. 그 모습을 따라 귀혈족 사람들의 눈동자도 위로 올라갔다.

    “…….”

    목린과 귀혈족이 어색하게 서로를 주시했다.

    아직 목린은 언영네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이렇다 할 친목을 쌓지 않았다. 귀혈족이 무서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붙박여 살았다. 언영이 대가족을 염두하고 고른 기와집이라 쓸데없이 넓어서 그렇게만 살아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안에서 꽃 가락지를 만들거나, 청소를 하거나, 식물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웠다.

    언영이 들뜬 표정으로 같이 마을을 돌자고 제안하면 몸이 좀 안 좋다고 거절을 하거나, 나가게 된다 한들 언영의 옆에 달라붙어 눈동자만 도르르 굴리며 주변을 구경했다. 종종 사방에서 귀혈족이 열렬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음이 느껴질 때마다 목린은 어떻게든 몸을 움츠리며 회피했고, 그만큼 부끄러워하는 목린을 구태여 붙잡을 정도로 귀혈족은 무례하진 않았다. 다만 언제나 그녀와 대화 나눌 기회를 놓쳐 아쉬워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이럴 때 당장 환호하여 상대를 추켜세웠을 귀혈족이 갑자기 잠잠했다. 어제 공터에서 조심스레 오고 간 논쟁이 하나 있었다. 새로 오신 초족의 목린 님께서 혹시 우리를 싫어하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목린은 살기를 품은(아니다) 귀혈족의 형형한 안광을 홀로 받아쳐 내야 했다.

    “응?”

    여기서 유일하게 목린을 바라보지 않는 이는 언영과 그의 품에 안긴 선영뿐이었다. 누이를 달래느라 바빠 신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언영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부 그의 부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목린이 모두의 관심을 받으니 언영은 기꺼웠다. 신이 나서 언영은 목린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고 그녀를 번쩍 올리며 자랑했다.

    “하하하하!”

    언영이 웃자 모두가 따라서 웃었다.

    “하하하하하!”

    즐거움이 사방에 파도쳤다.

    “하…… 하하.”

    목린도 마지못해 입술 끝을 억지로 올렸다. 그녀의 미소를 본 귀혈족 사람들의 눈이 보물을 발견한 양 초롱초롱 빛났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였다.

    “목린 님!”

    목린의 어색한 미소는 귀혈족에게 ‘허락’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날부로 서서히 목린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개는 지난번 신부의 말을 듣고 찾아온, 사랑에 절박한 이들이었다. 처음엔 눈도 못 마주치고 더듬거리며 말을 하던 목린의 목소리는 갈수록 또박또박해졌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긍정적으로 따스하게 받아 주는 귀혈족의 태도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치마 속에 숨겨진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덜덜거렸지만 애써 점점 태연한 척을 할 수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 * *

    호롱불이 방을 은은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그 안에서 언영과 목린이 마주 보고 앉았다. 언영이 조금 전에 미리 들이켠 호리병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언영은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목린을 내려다보았다. 굳게 다물린 입술이 그의 진지한 심정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목린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바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목린의 얼굴쯤은 쉽게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언영의 손이 앞으로 뻗어 나왔다. 옆으로 땋아 내린 목린의 머리카락을 등 뒤로 조심스레 넘겨주었다.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옮겨 준 손은 떠나지 않았다. 그대로 목린의 어깨를 쥐었다가 빗장뼈를 훑고, 천천히 내려가 가슴을 살살 어루만졌다. 손가락 끝이 유륜이 있는 부분을 지그시 누르자 목린의 얼굴이 붉게 익었다.

    언영은 무르익는 목린의 표정을 면밀히 살피며 더 손가락을 움직였다. 천 안에 감춰진 귀여운 젖꼭지 중심을 손톱으로 조금씩 긁었다.

    “읏……. 서방님…….”

    목린을 주먹을 꼬옥 쥐었다.

    “서방님, 간지러워요…….”

    목린은 언영의 손 위에 제 손을 덮고 힘을 주었다.

    “자꾸 거기만 만지시면 부끄러워요…….”

    “우리 사이에 뭐 어때. 이리 와, 목린아.”

    언영은 벙글벙글 웃으며 목린의 몸을 한쪽 팔로 안으며 제 품 안에 가뒀다. 가슴을 소중하게 애무하는 큼직한 손은 멈추지 않았다. 고개 숙인 목린의 얼굴이 언영의 넓은 어깨에 묻혔다.

    “그러면 다른 데도 만져 줄까? 어디가 좋을까?”

    “그런 말으으은…… 하지 말고…….”

    목린은 언영의 목에 얼굴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바깥에 나온 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언영은 목린의 아래턱을 쥐고 그녀가 자신을 올려다보게 방향을 돌렸다. 겁먹은 토끼처럼 말똥거리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한 번 봐 주고 입술을 다정하게 겹쳤다.

    부드럽게 섞여 오는 언영의 혀를 맞이하며 목린도 살며시 눈을 닫았다. 풍성한 속눈썹이 잠깐 날갯짓을 하듯 떨렸다.

    그러나 외부에서 날아온 외침에 달아오른 분위기가 일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목린 님!”

    목린의 눈이 동글동글 커졌다.

    “괜찮아. 쉿.”

    목린이 다른 데에 한눈 팔리지 않도록 언영이 이마를 맞대고 빠르게 속삭였다. 부러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젖꼭지를 더욱 예민하게 꼬집고 눌렀다. 목린이 숨을 들이켜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언영은 달래듯 그녀의 이마와 볼에 열정적으로 입을 맞추고, 서서히 범위를 넓혀 목린의 가슴 전체를 그러쥐고 힘을 주어 주물럭거렸다.

    하지만 또 그때였다.

    “목린 님!”

    “……그만! 그만! 그만! 그만!”

    참다못한 언영은 몸을 뒤로 빼고 머리를 싸매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반면 목린은 약간 망가진 옷매무새를 다잡으며 서둘러 외쳤다.

    “곧 나가요!”

    “히히히히힝!”

    어제 마구간이 완성되었다. 륭 또한 밖에서 신나게 울음을 내며 제 존재를 알렸다.

    언영은 이리저리 위로 뻗친 머리카락을 놔주고, 지친 표정의 얼굴을 손으로 벅벅 비볐다.

    “목린이 네가 착해서 다 받아 주니까 지금도 무례하게 찾아오는 거야. 가끔은 쳐내도 돼.”

    “거절하기엔 다들 너무 무섭게 생기셔서…….”

    목린이 작게 웅얼거렸다.

    “응? 뭐라고?”

    “아니에요!”

    목린은 치맛자락을 잡고 서둘러 일어섰다.

    “그러면 오늘 온 분까지만 받아 드릴게요. 서방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망연자실한 표정의 언영을 뒤로하고 목린이 내달렸다.

    솔직히 말해 목린 또한 늦은 밤의 객이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찾아온 부부 중에 수염이 부숭부숭한 아저씨가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를 상기시켰고, 늦은 밤 방문한 것이 사실 설기떡을 선물로 주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짜증이 사르르 녹았다. 음식을 본 목린의 얼굴에 금세 활기가 불어났다. 부엌에 있는 창고로 보관하러 가는 길에도 참지 못하고 야금야금 조금씩 뜯어 먹었다.

    “안녕, 얘들아.”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륭과 그녀의 은마가 있는 마구간을 찾았다. 바닥에 놓인 짚을 더 가지런히 정리해 주며 인사를 나누었다.

    “늦었으니까 자야지, 좋은 꿈 꿔.”

    사방이 어둑해진 시간에도 륭의 번득이는 눈은 식을 줄을 몰랐다. 좋아하게 된 암컷과 단둘이 같은 마구간을 공유하게 된 이후로부터 늘 저 모양이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옆에 서 있는 미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

    그녀는 그런 륭을 없는 취급 하며 눈을 도도한 표정으로 내리깔다가, 목린이 등장하자 조금 표정을 바꾸었다. 눈을 조금 더 또렷하게 뜨고 앞발을 약간 움직였다. 얌전한 그녀가 보이는 가장 적극적인 애정 표현임을 이제 목린은 알고 있었다.

    오묘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말이 풍기는 우아함은 죽지 않았다. 목린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손끝에 미안함이 배어 있었다.

    “네 이름은 곧 지어줄게. 의미 있는 단어로 정하고 싶은데, 바로 와 닿는 게 없어. 미안해.”

    그냥 들어도 예쁜 말, 입에 담기만 해도 마음이 찡해지는 그런 단어를 찾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신중하게 이름을 골라 주고 싶었다. 약간 미안하긴 하지만 그만큼 기다린 보람을 안겨 주고 싶기도 했다.

    진심이 전해졌는지 말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깊이 있게 목린을 마주 보았다. 목린은 아쉬운 듯 그녀의 빛나는 털을 몇 번 더 매만져 주고 자리를 떠났다.

    다시 원래 있었던 방으로 몸을 옮겼다. 나가기 직전까지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언영은 그녀가 문 앞까지 왔는데도 조용했다. 사실 목린은 그가 바로 뛰쳐나오다 못해 그녀를 어깨에 안아들고 옮길 거라 예상했던 터라, 더욱 상황을 기이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그가 보이지 않자 당황했다.

    “서방님?”

    문 앞에 서서 내부를 들여다보니 모든 게 그대로인데 언영만이 보이지 않았다. 목린은 발을 내딛기 전에 다시 고개를 돌려 바깥쪽을 쳐다보았지만, 어둑한 밤하늘 아래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리송한 표정의 목린이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뗐다.

    그와 거의 동시에, 보이지 않게 벽에 붙어 있던 언영이 잽싸게 목린을 덮쳤다.

    목린이 짧은 비명을 지를 때 언영이 목린의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무릎을 굽혀 목린의 엉덩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목린이 안에 입은 속곳을 모두 아래로 끌어 내렸다. 목린이 경악하여 내질렀다.

    “서방님!”

    언영은 너무 좋아서 실실 웃으며 그녀의 살결에 코를 비비적거렸다. 몰랑몰랑한 엉덩잇살을 두 손으로 쥐고 쩌억 벌려 사랑스러운 음부를 드러냈다. 혀를 최대한으로 쭉 내밀고 끝으로 그 위를 스윽 핥아내자 목린이 상반신을 꺾었다.

    “아아!”

    언영은 계속 혀를 날름거리며 목린의 다리 사이를 샅샅이 핥았다. 목린은 옆에 보이는 벽에 손을 짚고 의지 삼아 몸을 기댔다.

    언영의 두 손은 그녀의 다리를 뒤에서 안았다. 보들보들 뽀얀 허벅지를 위아래로 쓱쓱 쓰다듬었다. 맨살이 손에 촉촉하게 닿았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손가락 끝으로 두툼한 살을 벌려 음핵을 만지작거렸다.

    “서방님! 잠시만!”

    언영의 혀 놀림이 빨라질수록, 그의 손가락이 더 대담하게 움직일수록, 목린의 무릎에 힘이 풀려 점점 다리가 굽혀졌다. 그녀의 우물에서 감로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고 언영은 신이 나 그것을 혀로 핥아 마셨다.

    물이 한 방울씩 뚝뚝 떨어져 바닥까지 적시자 목린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녀의 엉덩이 사이에 코를 박고 혀를 할짝거리고 있는 언영을 무시하고 몸을 휙 틀었다. 언영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목린은 말려 올라간 치마를 다시 꼼꼼히 내리며 훤히 드러난 맨다리를 가렸다. 예쁜 자태를 그리는 목린의 두 하얀 다리를 언영이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치마 속으로 사라지자 아쉬움에 혀로 입술을 핥았다.

    “미안해, 목린아.”

    “부끄럽게…….”

    “목린이 너무 예뻐서 그랬어. 여기 와서 앉아 봐.”

    언영은 다리를 엇갈리게 해 앉은 정좌 자세를 갖추고 무릎을 손으로 탁탁 쳤다.

    “응? 어서.”

    목린은 말을 따르지 않고 어색하게 섰다. 복숭아같이 둥근 얼굴이 언영을 초조하게 했다. 결국 그가 먼저 참지 못하고 팔을 뻗어 목린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목린은 짧게 소리를 지르더니 언영의 가슴에 등을 맞대며 엉덩방아 찧듯 주저앉았다. 다리가 어색하게 옆으로 벌어졌다. 당황하며 허둥지둥 정갈한 자세로 오므리려고 하는데 언영의 손이 훨씬 빨랐다. 그가 옆으로 넓게 퍼진 치마를 쑥쑥 당겨 목린의 매끈한 다리를 허벅지 중간까지 훤히 드러나게 했다.

    “목린아. 나는 네가 치마를 입을 때면 뒤집어 까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어.”

    언영이 목린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나긋나긋하게 속살거렸다. 두 손으로는 그녀의 뽀얀 다리를 여유롭게 쓱쓱 쓰다듬었다. 목린이 어깨를 오므리며 간신히 내뱉었다.

    “그런데 저는 치마…… 치마밖에 안 입는걸요.”

    “맞아. 매일 그런 생각밖에 안 한다는 뜻이야.”

    목린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언영은 뒤에서 그녀의 옷고름을 풀고 유를 옆으로 벗겨 냈다. 동그랗고 예쁜 가슴이 모습을 보이자마자 숨을 들이켜며 그것을 움켜쥐었다.

    언영은 목린의 옆얼굴에 정신없이 입 맞추며 가슴을 부드럽게 애무했다. 자신의 가슴이 희롱당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목린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언영의 검지가 붉은 젖꼭지를 꾹 누르자 짧게 헐떡거리며 엉덩이를 씰룩였다. 직접적으로 양물에 뭉그적거리며 닿는 자극에 언영이 탁한 숨을 내쉬었다.

    “예뻐. 예뻐.”

    언영이 목린의 오른쪽 뺨에 입술을 꾹 세게 짓눌렀다. 양손으로는 그녀의 젖꼭지를 꼬집듯이 누르고 비볐다. 목린의 입에서 수줍은 신음이 못 참고 나왔다. 두 다리를 비틀고 오므리며 열기에 휩싸였다.

    “서방님, 놔주세요……!”

    간질거리는 느낌을 참을 수 없어 목린이 몸을 꼬았지만 언영은 그녀를 더욱 단단히 가두었다. 얼른 바지를 벗어 딱딱하게 발기된 물건을 살짝 드러내고, 아래에서 위로 팍 후벼 파며 들어갔다. 목린이 신음을 내며 목을 뒤로 꺾었다.

    “아, 아, 아, 아, 아앙!”

    언영은 앉은 자세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자비한 힘을 이용해 위로 쳐올렸다. 허리에 휘감긴 언영의 팔을 의지 삼아 붙든 목린의 가녀린 몸이 쉬지 않고 들썩거렸다. 언영은 출렁이는 목린의 한쪽 가슴을 움켜쥐고 뺨에 뜨거운 숨을 내뿜었다.

    “목린아, 너도 나와, 같이, 움직이면 좋겠어.”

    “네, 네?”

    “너도 함께, 즐거워하는 게 내 눈에, 보였으면 좋겠어.”

    언영이 거칠게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목린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함께요?”

    “그래……. 내가 이렇게 올려 치면.”

    “아응!”

    언영이 뿌리 끝까지 박아 넣자 목린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언영은 그런 목린의 땀으로 젖은 옆얼굴을 입술로 정신없이 더듬었다.

    “너도 함께 움직이는 거야.”

    “그런 부끄러운 걸, 어떻게…….”

    “부끄러운 거 아니야. 서로 사랑하는 거야.”

    목린이 아무것도 못 하고 얼버무릴 때 언영이 다시 한번 뒤로 뺐다가 퍽 쳐올렸다. 맨살이 부딪쳐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목린이 가녀린 허리를 떨었다.

    언영은 인내심을 가지고 느리게 왕복했다. 목린은 서툴게 언영이 해 보자는 대로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살짝 어긋났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몸이 본능을 따라 움직였다. 서서히 두 사람의 움직임이 제 짝을 찾은 듯 맞아떨어지기 시작하고 언영은 목린을 꽉 끌어안고 떨었다.

    “옳지, 옳지.”

    그가 기쁨에 젖어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까처럼 빠르게 팍팍 목린의 동굴을 쑤셨다. 그에 맞춰 상대의 움직임도 더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목린은 부끄러움도 잊고 언영의 뜨거운 육체에 몸을 맞춰 열심히 엉덩이를 움직였다.

    “아아, 목린아…….”

    언영이 마침내 목린을 구겨질 듯이 안으며 안에 씨를 뿌렸다. 목린은 다리를 쩍 벌린 민망한 자세로 그를 받았다. 저쪽에 세워진 면경 안에 그녀가 얼마나 추한 자세를 하고 있는지가 보였지만 팔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언영이 다시 거칠게 입을 맞추고 목린을 바닥에 눕혔다. 사내의 힘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의 속에 들끓는 애정을 충분히 털어내기까지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쉬이 잠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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