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장(2권) (6/25)

6장

언영은 신음을 내며 그 자리에서 목린에게 즉각 달려들었다. 어리둥절하던 사이 목린의 몸이 바닥에 눕혀졌다.

“서방……!”

언영이 입술을 뜨겁게 겹친 탓에 뒤따라오던 말은 먹혀들어 갔다.

언영의 손이 벌벌 떨면서 목린의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고 문질렀다. 허겁지겁 매만지는 서툰 솜씨는 어제보다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엄지로 젖꼭지 부근을 찍어 누르자 목린은 반사적으로 팔딱 튀어 올랐지만, 건장한 남성의 육신이 완전히 찍어 눌렀다. 언영은 목린의 몸에 반응이 오는 곳을 집중적으로 문질렀다. 목린은 할딱거리며 언영의 팔을 세게 붙잡았다.

“목린아, 내가 눈치가 없어서…… 미안해.”

언영이 목린의 얼굴 위에 신음을 토해내며 사과했다.

하고 싶다는 얘기가 없어서 정말로 꺼리는 줄 알았다. 하여 혼자 욕정을 삭이고 있었는데, 목린이 직접 다가와 유혹할 줄은 몰랐다. 목린이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몰라준 사실이 미안했다. 그리고 이토록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그녀가 고마웠다. 적극적인 귀혈족이라고 해서 늘 자신만만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또한 부끄러울 때, 수줍을 때가 가끔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잘할게.”

목린의 치마를 허리까지 급하게 끌어 올렸다. 드러난 다리를 쓰다듬고 서둘러 안에 입은 속곳을 벗겼다. 입술로 목린의 목과 얼굴을 계속 찍어댔다.

어두워서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서로의 거친 숨소리가 더 크게 와닿았다. 언영은 이미 바깥에 나와 있던 두꺼운 귀두를 움켜쥐고 서툴게 목린의 구멍을 찾았다. 어제 한 번 이미 큰 거사를 치렀으나 여전히 더듬더듬 길을 헤맸다.

“서방님!”

“아아, 목린아…….”

서로의 생식기가 맞닿았을 뿐인데도 언영은 전율에 젖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솔직한 신음을 거리낌 없이 내며 목린의 몸에 제 몸을 비볐다. 천이 비벼지는 적나라한 소리가 어둠을 꿰뚫었다. 목린의 얼굴마저 절로 붉어질 정도로 야릇했다.

언영은 입구를 찾았지만 뻑뻑하고 좁은 그곳은 넣게 해 달라 아우성을 내지르며 물을 뚝뚝 흘리는 귀두를 거부했다. 언영은 우왕좌왕하다가 얼른 목린의 몸을 녹여 낼 목표를 갖고 음순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그리고 안에 있는 음핵을 빠르게 벅벅 문질렀다. 목린의 가는 허리가 들썩거렸다. 다리가 자유분방하게 사방으로 움직였다. 언영이 그중 하나를 쥐고 제 어깨 위에 걸쳤다. 파르르 떨리는 목린의 발목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서방님, 흐읏!”

“목린아, 목린아…….”

이어서 언영은 머리를 숙여 목린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 목린아. 괜찮아.”

목린이 흐느끼며 호소했다.

“보지 마세요…….”

“어떻게 목린이는 여기도 예쁘지?”

“안 보인다면서…….”

그는 얼굴을 서서히 그곳에 가까이했다.

“안 돼요! 그거 마시면 안 돼요! 안 돼, 서방님! 안 돼!”

언영의 입술이 음부에 닿았다. 그는 주변에 묻은 물 또한 혀를 바깥에 내밀고 굴리며 핥았다. 목린은 고개를 저으며 울먹였다. 언영은 혀를 구멍에 밀어 넣어 아직 나오지 못한 것마저 샅샅이 찾아다녔다. 오래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목린아.”

언영은 목린의 야릇한 안에 코를 파묻고 나른하게 말했다. 목린은 답 없이 천장을 보며 떨리는 숨소리만 냈다.

“너무…… 좋아.”

언영은 그 자세에서 손을 뻗어 목린의 가슴을 쥐었다. 단단히 올라온 작은 양쪽 젖꼭지를 꼬집자 목린의 입에서 바로 반응이 나왔다.

“끄으…….”

“소리 참지 마, 목린아.”

“으으, 하아…….”

“계속 듣고 싶어.”

“서방, 아, 서방님.”

끙끙대며 이름을 부르는 호소에 동한 언영은 곧이어 두 번째로 목린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보다는 나았으나 여전히 찢는 듯한 고통이 목린의 머리를 강타했다.

“서방님, 아파요!”

“미안해, 미안.”

“아아!”

나머지도 마저 넣기 위해 언영은 목린의 허벅지를 각각의 손으로 안고 당겼다. 힘없는 나뭇가지 끌려가듯이 목린의 몸이 단번에 쑤욱 내려가고 언영은 목린의 안에 터질 듯이 꽉 들어찼다. 목린이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

속을 꽉꽉 채우는 묵직함이 생생히 느껴지는 탓에 새어 나온 목린의 목소리도, 몸통도 같이 벌벌 떨렸다. 그녀는 울먹이면서 언영의 목에 팔을 둘렀다. 언영은 계속 목린의 등을 토닥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목린아. 너만 보면 자제가 안 돼서……. 너무 예뻐서…….”

커다란 살 기둥에 맞춰 내부가 쩌억 벌어지고, 그는 그녀의 허리를 쥐며 흔들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에 맞춰 목린의 안이 찔꺽거리며 벌어지고 오므려졌다. 암흑 탓에 어렴풋이 보이는 목린의 윤곽을 언영이 홀린 듯 쳐다보았다. 흥분한 그의 허리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아윽, 아! 아아! 읏! 아!”

목린의 가슴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언영은 헐떡거리며 허리를 굽혀 그것을 세게 움켜쥐었다. 목린이 더 긴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완전히 활처럼 휘게 했다. 허리를 잡고 퍽퍽 들어오는 언영의 힘은 이 상황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체를 회전시키는 언영의 동작은 확실히 어제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한 손으로 목린의 뒷머리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몸을 감싸며 일정한 박자에 맞춰 단단한 허벅지를 쿵쿵 움직였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너무 좋은지 헐떡거리며 몸을 부르르 움직였다.

언영은 목린의 정수리와 이마에 꾸욱꾸욱 입을 맞추며 계속 움직였다.

“목린아, 하아, 목린아……. 좋아해. 많이 좋아해.”

“아, 아읏! 아앙!”

“우리, 예쁜 아이들 많이 낳고, 오래오래 화목하게…….”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언영이 갑자기 돌같이 몸을 굳혔다. 이상한 침묵이 찾아왔다. 질척이던 방사가 어색하게 끊겼다.

그때 잠깐이나마 목린의 직감이 예리하게 움직였다.

“……코피예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목린이 눈을 위로 빼꼼 들고 묻자 언영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언영은 팔로 목린의 머리통을 안아 제 가슴팍에 바짝 갖다 붙였다. 혹시 모르니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 상태에서 하반신을 유연하게 휘며 퍽퍽퍽 들이박았다. 가녀린 몸통을 절반으로 갈라내 뒤흔드는 엄청난 몸짓에 목린의 입에서 연이어 신음이 갈라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자극에 맥을 못 추렸다. 코피는 머릿속에서 날아간 지 오래였다.

“아! 아! 아! 서방님! 아아!”

아래에 찌부러진 목린이 자극에 몸부림치며 난리를 부릴 때 언영이 동시에 그녀의 안에 듬뿍 흔적을 남겼다.

“하아, 하아…….”

모든 걸 털어낸 언영은 숨을 고르기 위해 뒤로 물러섰고, 목린은 곧장 옆으로 굴렀다. 그의 품에서 탈출한 목린은 엎드려 누우며 헐떡거렸다. 언영은 그 시간을 틈타 뒤에서 몰래 코에서 일어난 출혈을 처리했다.

“목린아, 미안해. 이젠 정말, 천천히 다정하게 해 줄게.”

이젠 괜찮겠다 싶었을 때 언영은 다시 목린에게 다가갔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나신을 쓰다듬고 주무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의 애정이 다분한 손길은, 사방이 어제처럼 밝지 않기 때문일까 딱히 부담스럽고 두렵진 않았다.

다음 순간, 언영이 목린의 빗장뼈에 곧장 얼굴을 파묻었다.

* * *

눈을 떴을 때 목린은 혼자였다. 서방님은 어디 계실까 생각하며 허리를 일으키는데, 찌릿찌릿한 고통 탓에 바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와 동시에 밤에 있었던 일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영은 그 이후로도 두 번 정도 더 그녀의 안에 사정했다.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미 첫 번째 사정 때부터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끌려가다시피 몸을 섞었다. 그저 언영이 잡고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암흑 속에서 그가 그녀에게 바치는 입술과 손길에 감정의 파도를 떠맡겼다.

그에게 그녀의 몸을 보인다는 부담감이 없으니 더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아직도 다리 사이를 꿰뚫는 고통은 버거웠지만, 애정이 넘치는 애무를 오래 받으면 언젠가부터 잠깐이지만, 입에서 작은 신음이 절로 녹여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그가 그녀를 뒤에서 안고 가슴을 주무르며 들어왔을 때, 목린은 이미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언영이 희열에 차올라 내뱉는 신음도 제대로 안 들렸다. 아마 기억이 맞는다면 그 이후 거의 바로 잠에 빠졌을 것이다. 걸어온 기억이 없으니, 언영이 직접 그녀를 안아 들고 이동한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떠오르는 질문은 바로 그의 행방인데…….

정신이 맑아진 목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런데 서방님, 코피 흘리신 거 아니었나?’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만 넘어가고 말았는데, 분명 언영이 중간에 이상한 행동을 보인 때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아니, 오해인가? 솔직히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 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을 가질 수 없었다.

목린은 몸을 일으켰다. 허벅지가 너무 아팠다. 다리를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벌린 채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서방님!”

대낮에 태양이 하늘에 활짝 피어올랐다. 언영의 존재는 시야에 들어오는 그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서방님, 어디 계세요!”

디딤돌을 밟고 내려와 마당을 서성였다. 저번에 보았던 짓다 만 마구간에 가 보려다가, 어젯밤 그 일이 벌어졌던 방 아래에 여전히 놓여 있는 언영의 신을 발견했다. 목린은 절뚝거리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그쪽으로 향했다.

“서방님!”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목린이 벌컥 문을 열었다.

“목린아!”

언영은 엉거주춤 바닥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몸집 뒤로 무언가를 열심히 숨기고 있는 듯 움직임이 다소 뻣뻣했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언영은 갑옷이 아닌 편하고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덩치가 산만 했다.

“저는 괜찮아요……. 서방님은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아, 나는 그러니까, 그…….”

목린이 방에 쪼르르 걸어 들어와 언영의 등 뒤를 살폈다. 당황한 언영이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가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제 입으로 먼저 토로했다.

“바닥을 닦고 있었어. 어제 흔적은 깨끗이 지우는 게 좋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의 등 뒤에는 양동이며 각종 청소 도구가 놓여 있었다.

목린은 염려가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코피를 닦고 계셨던 건 아니지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피는 무슨! 하하하!”

언영이 손까지 휘저어 가며 말했다.

“혹시 어디 미편하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의원님을 뵈어야 해요.”

“하하하! 아니라니까! 목린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하하하! 어서 나가자! 마침 다 끝났어! 하하하!”

언영이 자리에서 바로 벌떡 일어섰다. 호탕하게 웃으며 두 걸음 내디뎠을까, 바로 왼편으로 기우뚱했다.

“서방님!”

목린이 언영의 팔을 바로 붙잡았다. 언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곧게 허리를 펴고 활발하게 말했다.

“나는 괜찮아!”

“출혈이…… 너무 많으셨던 거 아니에요……?”

“아, 아니라니까? 하하하!”

마당을 함께 거닐며 목린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으나 언영이 칼로 베어내듯 바로 그것들을 모두 부정했다. 이 상황에서 목린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언영의 말이 맞을 수도 있으니 끝까지 제 의견을 고집하기도 좀 그랬다. 결국 눈으로 본 증거는 없으니 말이다.

“서방님, 이거 많이 드세요…….”

그래서 목린은 언영과 마주 보고 식사를 하며 그의 밥 위에 몸에 좋은 반찬을 가지런히 올려놓아 주었다. 아무래도 좋은 음식을 먹으면 피를 덜 흘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기반하여 보인 행동이었다. 또한 서방님께서 좋은 걸 많이 드셔야 목린의 기분도 좋고 말이다. 하지만 밥을 우걱우걱 씹다가 목린의 행동에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이는 언영을 맞닥뜨리는 것도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서방님, 울지 마세요!”

“모인아(목린아)…….”

언영은 오히려 목린을 더 걱정했다. 허리와 허벅지가 아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목린을 미안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보며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녀에게 아직은 이런 행위가 부담스럽다는 것도 잘 숙지하고 있었다.

이어서 언영은 목린에게 아픈 데를 눌러 주겠다고 했다. 목린이 엎드려 눕고 그가 그 위에서 허벅지를 만져주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호리병 같은 걸 벌컥벌컥 마시더니, 혼자 어디 잠깐 가 있을 테니 절대로 그를 찾지 말라고 하며 몸을 일으켰다.

두어 시진 후 돌아온 언영은 짓다 만 마구간을 손보겠다며 나섰다. 목린은 그 일을 제대로 도와줄 수는 없었지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언영의 손에다가 바로 쥐여 주는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목린은 마구간의 용도를 물었다.

“응? 당연히 우리 말을 데려와야지.”

“우리 말이요?”

“아, 아직 륭이를 못 봤구나? 네가 여기 온 날 너무 시간이 없어서 보여 주질 못했네. 내 말이야.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 네 말도 선물해 줄게.”

“아, 안 주셔도 괜찮은데…….”

무서우면 무서웠지, 말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 한번 느껴 보지 못한 목린은 차마 싫다는 말은 못 하고 그렇게 얼버무렸다.

얼마 시간이 지나 목린은 몸을 씻으러 떠났다. 언영 또한 오늘까지 마치고자 한 지붕을 완성하면 이대로 쉴 생각이었다.

“하아.”

목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언영은 이마에 손을 짚으며 갈등했다.

오늘 밤은 과연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가. 목린이와 한방에서 같이 멀쩡히 잠만 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제는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기에 목린이 덜 부담을 느껴서 허락한 것뿐이었다. 아까 허벅지만 좀 만졌는데도 바로 참을 수 없어 몰래 빼고 왔으니 말 다 했다. 따로 자자고 하면 목린이가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그를 걱정할 것 같았다. 목린이는 아직 밝은 곳에서 몸을 섞을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또 어두운 곳에서 코피를 쏟아 가며 했다간 과연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다, 그래도 어두운 곳에서 약을 잘 챙겨 먹는다면…….

목린이와 어떻게 자연스러운 사랑을 나눌 것인가 고민하는 언영의 손은 마구간 지붕의 균형을 잡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어, 잠깐.”

그러고 보니 욕통에서 홀로 파정한 뒤 깔끔하게 뒤처리를 했던가.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워낙 이성이 나가서 제대로 확신을 내릴 수 없었다. 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 * *

한편 목린 또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게 그렇게 좋으실까…….’

욕통에 앉아 쉬고 있던 목린은 반쯤 물에 잠긴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언영은 목린의 가슴에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게걸스레 물고 빤 자국이 이곳저곳에 선명했다. 물에 젖어 촉촉해진 피부와 겹쳐 더욱더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목린도 자신의 가슴이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주물러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괜찮았다. 하지만.

‘그래도 서방님 가슴이 더 크신 것 같던데…….’

눈으로 봐도 확실히 그랬고…… 손에 가득 쥐고 주물러 보면 더더욱 확실할 것 같았다. 목린은 서방님이 정말 깊게 잠들면 한 번 도전해 보고픈 마음이 생겼다.

‘내가 서방님이라면 서방님 가슴 만지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목린은 가슴이 그렇게 좋으면, 왜 그렇게 큰 가슴을 두고 그녀의 것에 집착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목린이 보기에 언영의 가슴은 부담스럽고 징그러운 면모가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이 좋으니 유지하는 게 아니겠는가. 결국 깊이 생각할수록 더 꼬이는 것 같아, 목린은 다 털어내듯 욕통에서 몸을 일으켰다.

촤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목린의 나신이 드러났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미려한 몸이 물에 젖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젖은 머리카락이 뽀송뽀송한 엉덩이에 착 달라붙었다. 얇은 허리 위에 달린 말랑한 가슴을 목린의 손이 다시 한번 쥐었다. 멀뚱히 내려다보며 이렇게 하면 그렇게 좋을까 생각했다. 물방울 하나가 젖꼭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음란해 보였다.

한참을 주물러 보던 목린은 그때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얼른 입구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입을 쩌억 벌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언영과 눈이 제대로 마주쳤다.

경악한 목린은 얼른 팔로 가슴을 가리며 바로 자리에 첨벙 주저앉았다. 물이 사방으로 튀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곤혹스러운 얼굴은 붉게 변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으로 달려오는 언영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언영은 허리춤에 매달았던 호리병을 꿀꺽꿀꺽 바로 비우고 저 멀리 내던졌다. 그리고 목린이 몸을 숨긴 욕통 안으로 헐떡이며 짐승같이 들어왔다. 아까 목린이 앉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주룩주룩 흘러넘쳤다.

언영의 현재 모습은 며칠을 굶은 육식동물을 방불케 했다. 이글거리는 눈을 번득이며 입으로 무서운 숨소리를 냈다. 그의 팔 사이에 갇힌 목린은 겁에 질려 더 몸을 웅크리며 몸을 떨었다.

언영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잡은 나무욕통이 움켜쥐었던 그 모양대로 으드득 부러졌다. 목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것을 쳐다보았다. 반면 언영의 눈은 목린의 나체에만 고정되었다.

언영은 부서진 욕통 조각 또한 그냥 아무 데나 던지고, 가슴을 가리고 있는 목린의 팔목을 양손으로 쥐었다. 목린은 그대로 언영의 힘을 따라 팔을 바깥쪽으로 벌려야만 했다. 밝은 대낮에 가슴이 완전히 사내의 앞에 모습을 보였다.

“서방님! 너무 밝아요! 아!”

언영의 두 손이 목린의 가슴을 가득 쥐고 우악스럽게 주물렀다. 목린이 허리를 연속해서 휘는 바람에 물이 계속 넘실거렸다.

언영은 말을 하는 법을 모르는 야생동물처럼 굴었다. 허억거리며 목린의 가슴을 한 움큼 쥐어짰다. 그의 옷 또한 다 젖어서 안이 비쳤다.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하는 그는 욕통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쪼그라든 목린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언영의 입에서 애타는 신음이 끓어올랐다. 만지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목린의 엉덩이가 붕 떠올랐다. 언영은 물로 젖은 그녀의 가슴을 급하게 입에 집어넣고 혀를 굴렸다. 손으로는 부드러운 등을 계속 어루만지며 감탄했다. 젖꼭지 끝이 혀로 문질러질 때마다 목린은 짧은 신음을 터뜨리며 언영의 젖은 어깨를 붙잡았다.

언영은 애매하게 벌어진 목린의 다리를 잡아끌어 그의 허리에 두르도록 했다. 그리고 이미 젖어서 굵은 허벅지에 달라붙은 하의를 벗었다. 굵다란 성기가 곧장 튕겨 나왔다. 언영은 허덕이며 목린의 허리를 더 꽉 안고 자리를 맞추었다. 서툴렀던 어제와는 다르게 바로 위치를 찾아 입구를 벌리고 꾸덕꾸덕 들어갔다. 목린은 옷이 쩍 달라붙은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방님……!”

“아!”

언영이 머리를 아래를 숙이고 신음을 내며 정신없이 허리를 튕겼다.

욕통은 두 남녀가 교접하기에 좋은 공간은 아니었다. 퍽퍽 차올라지면서 목린의 몸은 가장 구석으로 쏠렸다. 그녀는 언영의 목에 팔을 두르며 거의 죽지 않기 위해 매달렸다. 신음이 나오려는 입 안에 언영이 혀를 밀어 넣었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서로에게 엉겨 붙었다.

목린이 등지고 있던 욕통 부분이 결국 작살났다. 밖으로 물이 콸콸 쏟아져 나갔다. 당황한 목린이 숨을 멈췄다. 언영은 지금 상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꾸준히 짐승처럼 허리를 쿵쿵 튕겼다. 축축하게 젖은 목린의 길이 언영의 것에 맞춰 쩍쩍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물에 젖은 두 사람의 몸도 같이 단단히 합쳐진 음부만큼이나 습윤하고 흥건하지는 않았다.

향기로운 목린의 나신을 끌어안은 언영의 팔이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올랐다. 그의 근육질 엉덩이가 발작을 일으키듯 열심히 움직였다.

“하아!”

경탄에 젖은 헐떡거림과 함께 언영은 목린의 내부에 뜨거운 것을 풀어냈다.

목린의 팔과 다리가 모두 축 늘어졌다. 언영이 그녀를 들고 어딘가로 옮기는 동안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그런 목린의 얼굴에 언영이 가는 길에도 쉬지 않고 입술을 퍼부었다.

축축한 바닥이 아니라 깔끔한 곳에 목린의 등이 닿았다. 눈꺼풀을 닫고 있던 목린은 안도감과 함께 쏟아지는 편안함을 느꼈다. 젖은 몸이 조금 거슬렸지만 이대로 잠에 빠지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배를 가운데에 두고 언영의 튼튼한 허벅지가 자리 잡았다. 목린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언영이 목린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젖어서 달라붙던 옷은 모조리 찢어버린 온전한 근육질의 나신이었다. 몸 전체에 두꺼운 굴곡이 가득했다.

언영의 손이 그의 큼지막한 손으로도 쥐기 버거운 그의 다리 사이 살기둥을 쥐고 있었다. 상처가 많은 손가락이 위 아래로 쓸고 문질렀다.

“…….”

그의 눈동자가 누워있는 목린의 얼굴과 벌거벗은 젖가슴 위를 빠르게 돌아다녔다. 그러자 손에 감겨 있는 양물 또한 바로 힘을 되찾고 뻣뻣이 몸을 세웠다.

표정 없이 그런 음란한 행위를 하고 있는 거대한 언영의 모습은, 목린의 마음 한구석을 철썩 들어 올렸다가 내려놨다. 동시에 정액과 함께 섞인 애액이 울컥 그녀의 다리 사이로 터져 나왔다.

언영은 휙 빠르게 몸통을 숙였다. 성기를 잡지 않은 손으로 목린의 목 뒤에 손을 넣은 다음 격렬하게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곧바로 혀가 섞였다.

이것이 겨우 시작이었다.

약속한 대로 한 달간 두 사람 모두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 * *

“좋은 아침!”

해가 뜨자마자 오랜 훈련에 몸이 적응된 언영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는 쾌활한 목소리로 아침을 알렸다. 그의 널따란 어깨와 가슴팍에는 목린이 남긴 잇자국이 연이어 박혀 있었다.

언영은 다시 몸통을 숙이며 옆에 누운 목린을 끌어안았다. 뒤집어 누운 목린의 위에 가볍게 달라붙어 목과 귓불을 자연스럽게 핥았다. 잠시 뒤 목린이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깨어났다. 간지러워서 피하려는 목린의 가녀린 허리를 언영이 큼지막한 손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목린아, 오늘은 같이 마을을 돌지 않을래?”

그녀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제가…….”

목린은 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웅얼거렸다. 아직도 잠에서 깨지 못했는지 음성이 다소 몽환적이었다.

“제가 살아 있어요, 서방님…….”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속삭였다.

“죽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야? 우리 목린이가 왜 죽어? 나랑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아야지, 으하하하하!”

“아아!”

언영은 앉은 자세에서 두 팔로 목린을 번쩍 들어 올려 흔들었다. 얼떨결에 그의 머리 위로 번쩍 솟아오른 목린은 겁에 질려 팔다리를 헤엄을 치듯 팔다리를 흔들었다.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이어서 언영은 목린을 품에 꽉 안고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커다란 손은 어여쁜 새색시의 허벅지를 벌렸다. 어젯밤 색사의 흔적이 그 사이에서 허옇게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목린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언영이 이어 허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다정하게 속살거렸다.

“오늘 같이 마을을 돌자. 내가 사람들도 소개해 주고, 맛난 것도 많이 먹여 줄게.”

목린이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을 때였다. 돌연 바깥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음이 두 사람의 뜨거운 숨소리 사이를 파고들어 왔다.

발기한 양물을 목린에게 은근하게 비비고 있던 언영은 정신이 퍼뜩 돌아온 듯 낮게 중얼거렸다.

“누군가의 집이 무너졌나 보군.”

“네?”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가 주먹으로 벽을 격파해서 집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거든. 너무 그렇게 보지 마! 자주 있는 일인 걸. 나가서 도와줘야겠어.”

목린은 언영이 옷을 다 차려입을 때까지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다. 언영이 급하게 나가면서 무언가를 외칠 즈음에야 더듬더듬 응답했다.

“내가 필요하면 밖에 나와서 아무한테나 부탁해. 내가 당장 달려올게!”

“네, 네.”

정말로 한 달을 이러고 살았다.

‘고향 사람들의 얼굴을 이제 어떻게 보지? 귀혈족 사람들은 얼마나 나를 천박하다 생각할까.’

가까이 다가와서 얼굴을 들이미는 언영과 그의 거목과도 같은 몸집, 몸을 잔뜩 감싸고 있는 울퉁불퉁한 근육은 여전히 조금은 무서웠다. 셀 수 없이 많이 맨살을 함께 맞대고야 말았지만, 눈에 담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서툴지만 부드럽고 진심 어린 손길은 언제부턴가 목린의 몸을 따뜻하게, 천천히 달구어냈다. 돌덩이 같은 그의 몸에 파묻혀 얼굴로 쏟아져 내리는 그의 입맞춤을 받아들이면 언젠가부터 몸이 녹아내렸다. 그 이후부턴 다른 곳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몸 깊은 곳에 언영이 푹 들어오면 허리가 휘고 기분이 붕 떠올랐다. 그렇게 되면 더욱 안달 난 표정으로 달라붙어 그녀를 달래주는 그의 행동이 좋았다. 처음에는 할 줄 몰라서 무식하게 힘으로만 계속 몰아붙이며 끙끙거리기 바빴던 언영은 막바지에 가서 요령을 알았다. 필요할 때는 근육 진 둔부를 흔들며 휘몰아치고 가끔은 습윤하게 뭉그적거릴 줄을 알았다.

서로를 알고 지냈던 지난 4년 동안보다도 더 많은 입맞춤을 얼굴에 잔뜩 받았다. 언영은 잠에 빠질 때도 목린을 팔에 가두고 입술을 쪽쪽 달콤하게 빨아 대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낯선 이의 품에서 어떻게 편히 잘 수 있을까 했던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 되었다. 거대한 언영을 쉬지 않고 받아들이다 보면 몸이 지쳐서 저절로 눈이 감기고 팔다리에 힘이 풀렸다.

왜 초족이 옛날부터 이런 행동을 금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공상에 빠져 누워 있던 목린도 결국 너무 늦지 않게, 우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이대로 뻔뻔히 지내다간 천벌을 받을 게 뻔했다. 한 달간의 행동에 대한 사죄라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아직은 바깥으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하기 무서웠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하는 게 좋았다.

밥을 먹고 정리하고, 씻고, 매끄러운 나무로 만든 궤의 빗장을 열어 보았다. 그간 한 번도 챙겨 입지 않은 외출용 복장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모두 귀혈족의 의복으로, 목린에게는 직접 걸치긴 너무나도 어색한 것들이 즐비했다.

갖가지 의복마다 섬세함이 돋보이고 목린의 몸에 착 맞는 것을 보면 언영 쪽에서 매우 신경 썼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손으로 잠깐 들어만 보아도 묵직한 무게가 실감이 나는 그 갑옷을 몸에 걸치고픈 의향은 없었다.

결국 목린은 고향에서 가지고 온 소박한 보따리를 꺼내 들었다. 몇 안 되는 초족 의상 중에 하나를 몸에 걸쳤다. 허벅지까지 닿는 옅은 분홍색의 유(저고리)와 그보다 저 짙은 빛깔의 예쁜 주름치마였다. 쿵쿵거리는 심장을 의식하며, 목린은 대문을 열고 골목에 나왔다. 그렇게 본격적인 귀혈족과의 삶에 발을 디뎠다.

* * *

마을 공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변에 놓인 바위나 나뭇등걸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이들도 있었고 아예 바닥에 퍼질러 눕는 것을 택한 이들도 상당했다. 그 어떤 것도 허용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어쨌거나 그들의 관심을 모조리 얻고 있는 자는 가운데에서 열띤 목소리로 설명 중인 한 청년이었다.

“나도 처음엔 믿기 힘들었어. 주언영 그 단순무식한 녀석이 여자를 마음에 담다니 말이야. 본인 말로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다는데, 뭐 믿을 수가 있어야지.”

뒤로 질끈 묶은 머리가 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그는 언영과 가장 친한 벗이었다. 허현오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관심을 즐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여자가 궁금했어. 도대체 어떤 모습이 언영이를 사로잡았는지.”

한 달 만에 언영이 거리로 나왔다. 당연히 마을 모든 이들의 관심을 한 번에 받았다. 새색시는 어디 갔냐고, 힘들어서 못 나오는 거냐고 사람들이 짓궂게 물었으며, 그 말을 들은 언영의 귀가 시뻘게지는 꼴은 볼만했다.

“그리고 그분께서 초야를 한 달간 치르고 싶다고 해서 언영이가 한 달 치 업무를 미리 밤을 새워서 나흘 만에 끝내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지. 아! 주언영을 휘어잡으려면 그 정도의 패기는 있어야 하는구나!”

평소에 차기 족장으로서 언영은 마을의 순찰을 돕거나, 어머니의 업무를 분배받아 수행하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귀혈족 사람들은 진지하게 동의했다. 솔직히 덩치가 왜소하고 수줍음이 무척 많다는 이유로 초족에게 약간의 선입견을 품었었다. 하나 이제 새로운 가족이 된 목린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이가 틀림없었다.

귀혈족 사람들이 최고로 삼는 인간상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누구보다도 빨리 목린과 우정을 쌓고 싶었다. 새로운 벗을 만들 생각에 그들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게다가 전에 언영 형님이 죽을 뻔한 걸 구해 준 적도 있다면서요.”

“그렇지, 그렇지.”

과거 목린이 식인 물고기를 죽인 날이 수면에 떠올랐다. 측면에서 입술을 뗀 사람을 향해 현오가 손가락을 튕기며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안 보이셨는데, 무예를 갈고닦으셨음이 틀림없다.”

구석에 팔짱을 끼고 있었던 중년의 남성 또한 진지하게 말하자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주억거렸다. 목린을 향한 감동과 존경으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보통 인물이라면 제 실력을 뽐내고 싶은 욕심이 만발할 터인데, 목린은 의복도 그렇고 평소 모습도 그렇고, 무난하기 짝이 없다. 겸손한 것이다. 두툼하게 키운 몸을 자랑하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귀혈족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주었다.

“역시 족장의 피가 흐르는 자를 사로잡는 사람은 뭔가 다르군.”

“그러니까 목린 님한테 예를 갖춰라. 특히 너희들!”

현오는 공터에 모인 이들 중에서도 가장 수다스러운 어린 청년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고. 언영이를 사로잡았다는 데서 이미 그분은 지존이시다! 정말 멋있는 분이야.”

“예!”

그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기, 실례합니다.”

그런데 그때,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공터에 새로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목린이었다. 그녀의 사뿐사뿐한 걸음걸이가 모두의 눈을 사로잡았다.

목린이 입은 예쁜 빛깔의 천은 대개 칙칙하고 어두운색인 귀혈족의 갑옷과 확연히 상이해서, 그녀의 존재는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눈에 띄었다. 공터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같은 곳으로 돌아갔다.

마치 목린과 귀혈족 무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현오는 얼른 양쪽으로 팔을 넓게 뻗었다. 괜히 시끄럽게 굴지 말고 목린의 말에 귀 기울여 주자는 신호였다. 그러자 모두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오로지 현오의 허벅지에 앉아 있던 꼬마만이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기 위해 목을 뒤로 꺾고 숨을 들이마셨다. 현오는 재빨리 늦기 전에 그 꼬마에게 아프지 않을 정도로 꿀밤을 먹였다.

소름 끼치도록 조용해졌다.

목린은 적나라한 흥분이 감도는 귀혈족 수십 명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았다. 다리가 치마 속에서 후들거렸다. 귀혈족 사람들 모두 코에 불을 뿜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멸에 가까워 보이는 저 얼굴을(아니다) 평생 마주해야 한다니 소름이 돋았다.

언영이 생각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과거 잠시 안도했었다. 하지만 이곳에 뿌리 잡고 살기 위해서는 언영 말고 다른 귀혈족과의 교류 또한 불가피했다. 그것은 전혀 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목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당이 어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하다고, 타락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어디 빌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를 알지 못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며 주변을 쫑쫑거리며 발견한 곳이 이 공터였다. 조금만 더 살펴보고 혼자 있는 사람한테 가 조용히 물어볼걸. 목린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질문이 끝나고도 침묵은 그 자리에 계속 고집을 부리고 앉았다. 갑옷 덕에 안 그래도 훈련으로 넓어진 어깨가 더 부각되는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이 뜨거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잠시 뒤, 그나마 현오가 먼저 엄지로 마을의 중심을 차지하는 산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정말 천천히 가리키기 시작했다.

“저쪽 귀룡산 입구 근처에…….”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모두의 입에서 폭발적으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더는 참지 못한 이들이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몸을 던졌다.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

“아니요, 제가!”

“아닙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내가 갈 거야!”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든 목린의 눈에 띄기 위해서 자신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높이 휘둘렀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목린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아니에요! 혼자 갈 거예요! 가, 가, 가, 감사합니다!”

목린이 팔을 휘저으며 빠르게 말했다. 그리고 등을 돌리고 부랴부랴 자리를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 도망치는 그녀를 귀혈족 사람들은 붙잡을 수 없었다. 목린과 하루라도 빨리 친해지고 싶은데, 겸손하고 멋있는 그녀에겐 자신이 볼품없어 보일까 싶어 다가가기 망설여졌다. 결국 흉악한 무기를 높게 치켜들었던 그들의 표정이 단체로 슬퍼졌다.

* * *

혼자서 어떻게 길을 찾나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산 입구에 다다르니 금방 신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목린은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내부가 비어 있음에 크게 안도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사람들의 끈질긴 시선을 받아 왔던 차다. 신당에서마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숨이 턱 막혔다.

놀라운 크기의 팽나무 아래에 원뿔형으로 놓인 커다란 돌무더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두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신당 건물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위패가 가지런히 배치되고 그 위에는 벽에 그림이 걸려있다. 목린은 그 고즈넉한 내부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죄송해요……. 서방님이랑 너무 즐겼어요……. 다음부터는 더 자제하도록 할게요.”

고개를 푹 수그린 목린의 눈에서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른 손목으로 쓱쓱 닦아내며 훌쩍거렸다.

“고향에서 배운 것보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서방님이랑 더 할게요. 죄송해요…….”

그리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눈을 떴다. 부디 진심이 전해졌기를 바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바로 앞에 앉아 그녀를 줄곧 올려다보고 있던 어린아이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친 건 바로 그때였다.

“왜 울어요?”

목린은 그대로 뒤로 넘어질 뻔했다. 팔을 휙휙 돌리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날뛰던 심장 위에 손을 얹고 간신히 진정했다. 떨리는 날숨을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는데 조금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어느샌가 언영의 어린 세 누이가 그녀의 주변에 기웃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목린 님!”

“목린 님!”

“목린 님!”

세 소녀가 목린의 몸에 친근하게 달라붙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탓에, 어린애치고는 무게가 나갔다. 그러나 목린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아이들을 반겼다. 그래도 덩치 큰 어른들보다야 어린이가 훨씬 마음 놓였다.

아이들은 거의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목린에게 친근하게 물었다.

“목린 님 왜 울어요?”

“오라버니가 슬프게 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서방님께선 무척 좋은 분이세요.”

목린이 얼른 고개를 저으며 해명하자 첫째인 화영이 들고 있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해괴망측한 것을 꺼냈다.

“이것보다 좋아요?”

징그러운 뼈로 만든 목걸이였다. 화영은 그것을 목린의 코앞에 들이댔다.

“목린 님 주려고 한 달 내내 같이 만들었어요!”

“만들었어요!”

막내 선영이 두 손을 번쩍 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맙…… 습니다. 너무, 예뻐요.”

목에 걸어 주려고 하는 시도를, 머리가 헝클어질 것 같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손으로 간신히 그것을 쥐어 잡았다. 아이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그걸 목에 차면 즉각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한데 아가씨들께서 여긴 어쩌다 오신 거예요?”

“목린 님 찾다가 신당 쪽으로 가셨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어머니랑 아버지께서 목린 님을 찾고 계셔요!”

“두 분이요?”

망설일 필요 없었다. 목린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서방님의 부모님이라니, 가장 대하기 어려운 두 사람이 찾는다는데 늦게 가서 좋아질 일 하나 없었다.

“그러면 어서 가는 게 좋겠어요. 길을 안내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럼요!”

세 소녀 중 첫째와 둘째는 각각 목린의 오른손과 왼손을 차지했고, 막내는 목린의 치마를 뒤에서 쥐고 쪼르르 쫓아왔다.

형제자매라고는 오라버니 하나뿐이었던 목린에게 갑자기 나타난 어리고 귀여운 여자아이 셋은 아무리 그녀에게 이상한 선물을 준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귀혈족이라도 반가운 존재였다. 또한 귀혈족의 마을에는 맡기 좋은 싱그러운 숲 냄새가 났다. 단월도와는 달리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이 많은 모습도 신기했다. 이곳 사람들은 무서웠지만 풍경을 즐기는 데는 하등 문제가 없었다.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다면 더 흔쾌히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분이 왜 저를 찾고 계실까요? 부디 안 좋은 소식은 아니길 바라요…….”

걱정이 얼굴에 두리뭉실하게 피어오른 목린과는 달리, 언영의 세 누이는 팔짝팔짝 기뻐서 튀어 오르느라 바빴다. 목린하고 잡은 손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목린 님 너무 좋아요!”

“좋아요!”

“목린 님 저희랑 친구 해요!”

“친구 좋아요. 세 분과 친구 할 수 있다니 영광이에요.”

목린이 미소 지으며 말하자 세 아이의 얼굴에 일제히 함박웃음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에서 언영이 겹쳐 보여서 목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더욱 올렸다.

“저야말로 영광이에요!”

“목린 님 너무 예뻐요!”

“제가 오라버니였어도 첫눈에 반했을 것 같아요!”

“가족이 모두 정말 쾌활하고 긍정적이신 것 같아요.”

“목린 님!”

가장 뒤에서 쫄래쫄래 걸어오던 막내 선영이 귀엽게 외치자 모두 걸음을 멈췄다. 목린은 친절히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몸을 굽히고 앉았다.

“왜 부르셨어요?”

“목린 님을 위해 서간도 적었어요! 요즘 글쓰기를 배우고 있어요!”

선영은 콧물을 벅벅 닦으며 해맑게 말했다. 귀혈족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천진난만한 모습이라 목린은 제 심장이 사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저를 위해서요?”

“목린 님이랑 가족이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제 감정을 담았어요.”

“어머나, 고마워요.”

선영이 곱게 좁힌 종이를 건넸다. 목린은 두근두근한 심정과 함께 그것을 그 자리에서 펼쳤다. 하지만 펼치자마자 보이는 검붉은 색의 향연에 그녀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제가 처음 잡은 짐승의 피로 적었어요!”

선영이 뿌듯하게 말했다. 목린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고, 고마워요. 선영 님 올해 나이가 몇이라고 했죠?”

“다섯 살이요!”

“네……. 편지 내용이 너무 좋아요. 저 감동하였어요.”

비록 다시 펴 볼 엄두가 나지는 않는 서간이었으나 삐뚤빼뚤하게 피로 쓰인 ‘목린 님 사랑해요’라는 문장에는 어린아이의 정성이 돋보였다. 목린이 미소를 지어 보이자 세 아이가 크게 기뻐하며 목린을 더욱 끌어안았다.

화영, 혜영, 선영이 목린을 데리고 간 곳은 마을의 커다란 마구간이었다. 가뜩이나 말을 무서워하는 목린이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차마 어린애들에게 티도 내지 못하며 끙끙거리는데, 마침 마구간 앞에서 대기 중이던 월진과 윤근이 그녀를 발견했다.

“목린아!”

두 사람이 먼저 목린을 향해 우다다다 달려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달려오는 시부모를 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목린 또한 치맛자락을 잡고 두 분을 향해 속도를 높여야 했다. 쫑쫑 달려가며 숨 가쁘게 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게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

월진이 목린을 꽉 안아 드느라 인사가 묻혔다. 월진은 그 상태로 목린을 잡고 마구간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 월진의 딱딱한 갑옷에 얼굴이 부딪친 목린의 코가 빨개졌다. 목린은 아픈 것을 티도 못 내고, 월진의 품에서 혼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통을 삭였다.

“우리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목린의 발이 땅에 닿고, 미처 목린이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월진이 그녀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목전에 놓인 것을 발견한 목린의 동그란 눈이 쉼 없이 커졌다.

아까는 월진과 윤근에게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왜냐하면 목린이 여태까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말이 얌전히 서 있기 때문이었다.

기실 단월도에는 말이 없었고, 살면서 본 말이라곤 언영이 섬에 선물해 준 애들이 전부였지만 목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보다 아름다운 애는 그 어딜 뒤져봐도 찾기 힘들 터다.

말의 털은 흰색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반짝였다. 자신이 풍기는 그 고고함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검은 눈동자는 기묘한 오만함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 아래에서 존재를 돋보이는 새까만 눈은 빨려 들어갈 것처럼 매혹적이었다.

웅장한 신화를 갖고 태어난 공주님 같았다. 앞에 서 있는 자신이 보잘것없이 느껴질 정도로.

목린은 말을 병적으로 무서워하고 피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예외였다. 은색의 털은 말을 목린마저도 한번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하게 반들거렸다. 게다가 표정은 또 어떠한가. 길고 검은 눈에 담긴 왠지 모를 도도함과 새침함이 밉상이긴커녕 사랑스러웠다. 그녀도 모르는 새 홀린 듯 구경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가 제 것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언영의 누이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즐겁게 웃으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화영이 양손을 하늘에 뻗고 신나게 외쳤다.

“우와! 너무 예뻐요! 목린 님이 이 말하고, 륭이랑 오라버니하고 넷이서 함께 있으면 한 폭의 그림일 것 같아요!”

“륭이요?”

목린은 그 이름이 왠지 익숙했다.

“오라버니의 흑마요!”

언영은 단월도에 방문할 때 구태여 제 말을 데리고 오지 않고 걸어 다녔다. 하여 이름만 들었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오늘 종일 타고 다니시던데 못 보셨어요?”

“네. 아침 이후로 서방님을 뵌 적이 없어서요.”

그리 답하면서도 목린은 은빛의 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말도 제 주인을 알아보는 양 목린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우들하고 같이 마을 순찰을 하고 계시던데요!”

“아!”

세 누이 중에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혜영이 갑자기 저쪽 너머를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저 언덕 위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태양은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동안 인상 깊은 황혼의 빛을 전파했다. 단언컨대 언덕 꼭대기에서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는 언영과 그의 말이 빛의 총애를 가장 독차지했다.

언영 말고도 세 명의 사람이 더 있었지만, 가장 전방에서 허리를 우뚝 펴고 말 위에 앉아 있는 그의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는 이는 전무했다.

한 치의 밝은 기운도 용납하지 않는 그의 냉엄한 얼굴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분위기 탓에 마을이 그를 우러러보는 중인 인상을 남겼다.

타오르는 노을이 언영의 몸에 진득하니 눌러앉아 건장한 육체와 각진 턱, 뚜렷하고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강조했다. 멀리서 보여도 또렷한 눈매와 털이 빽빽하고 모양이 잘 빠진 눈썹이 아름다운 비율로 그의 안면을 차지했다. 선선한 바람이 그의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놀았다.

무겁고 두꺼워서 이질감만 느껴지던 그의 부담스러운 육체가 처음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가 타고 있는 새까만 윤기 나는 말 또한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

목린은 잠시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장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윤근과 월진은 듬직하게 자란 아들을 뿌듯이 지켜보다가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목린을 발견하곤 씨익 웃었다.

언영은 계속 하늘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여기서는 들리지 않지만 제 후방에 같은 자세로 있는 세 명의 친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곧이어 할 말이 떨어졌는지 입이 굳게 다물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다정하게 살짝 툭툭 말의 옆얼굴을 쳤고, 륭이라고 불린 흑마는 알아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언덕을 내려갈 채비였다. 그 과정에서 언영은 무심코 아래를 보았고, 그러자마자 바로 목린과 눈이 마주쳤다.

목린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죄를 저지른 것처럼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언영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아름답던 냉철함이 와르르 무너졌다. 덕분에 쿵쿵 요란하게 움직이던 목린의 심장도 안정을 되찾았다.

“목린아!”

언영은 다급하게 말의 고삐를 당겼다. 말이 화들짝 놀라는 게 목린에게서도 보였다.

“목린아! 하하하하! 목린아!”

뒤에 있던 자신의 세 친구도 버리고 언영은 목린을 향해 무작정 돌격했다.

아내를 보고 흥분한 언영의 눈엔 뵈는 게 없었다. 고삐를 성급하게 튕기며 허덕거렸다. 어떻게든 빨리 달려가고 싶어서, 본인이 달리는 것도 아닌데 입을 쩍 벌리고 안간힘을 썼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지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종래엔 그냥 아예 엉덩이를 띄우고 저돌적으로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륭은 매섭게 변한 주인에게 적응할 수 없는지 뛰어오면서도 짜증을 내듯이 울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는 길이라 우당탕 시끌벅적하게 내려오는 말의 발이 보기 아슬아슬하게 꼬이고 있었다. 게다가 점점 속도가 붙고 있음은 물론이다.

목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걸 어찌하나 발을 동동 구르며 주변을 보는데, 전전긍긍하는 건 그녀뿐이다. 윤근, 월진, 언영의 세 누이 모두 언영을 벅차오르는 얼굴로 구경하고 있었다.

“목린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

평지를 밟기 시작한 말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언영의 눈과 말의 눈에서 다른 의미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둘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꺄아아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목린은 몸을 떨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아버지와 오라버니, 친구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

킁킁.

그렇게 긴박하게 뛰어오면서도, 결국 안정적으로 목린의 코앞에 멈춰 선 륭은 머리를 숙여 목린의 손등 냄새를 맡았다.

목린은 용기를 내어 손가락만 살짝 벌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각각의 손 중지와 약지 사이만 틈을 내어 시야를 천천히 확보했다.

“목린아!”

그 사이로 언영의 눈이 부담스럽게 불쑥 나타났다.

목린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에서 손을 뗐고, 그와 동시에 언영이 목린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끼워 넣었다. 제 머리보다도 목린을 높게 두둥실 들어 올렸다.

“보고 싶었어!”

“서방님, 주변에 가족이 다 계시는데……!”

“오늘 종일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 내 색시! 내 여자! 내 목린이!”

언영은 목린과 눈높이를 맞추고 입술을 지분댔다. 목린의 힘없던 반대는 그대로 먹혀들어 갔다.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언영의 가족은 두 사람을 마냥 흐뭇하게 구경하더니 옆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주었다.

붉게 부어오를 때가 되어서야 언영은 쫍쫍거리던 입술을 놔주었다. 입술이 얼얼해서 목린이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언영은 묘한 표정으로 목린의 복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목소리에 알게 모르게 기운이 빠져있었다.

“내가 준비한 옷 안 입었네…….”

“네?”

“아니야. 오늘도 예쁘다고.”

언영은 얼른 표정을 바꿨다. 실실 웃으며 목린을 땅에 내려놓고 신비로운 은색의 말을 향해 다가섰다. 안면에 가득 자리 잡은 뿌듯함이 그가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얘를 벌써 만났구나!”

“네, 너무 예뻐요.”

이번에는 정말 진심이었다.

“마을 마구간에서 계속 기르던 녀석인데, 보자마자 너한테 줘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아직 이름도 없어. 목린이 네 마음대로 지어 줘도 돼. 야, 륭.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

륭은 언영에게 화가 났는지 시선을 피하며 툴툴거리고 있었다. 부러 언영에게서 거리를 두며 마음이 토라졌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표출했다. 목린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늘 말이라면 무조건 무섭게 여기고, 일단 겁부터 먹으며 거리를 두기 바빴다. 이런 귀여운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외면하는 척하면서도 목린의 시선을 느끼긴 하는지, 륭은 계속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말길 반복했다. 단언컨대 륭의 입장에서도 목린이 신기한 존재이긴 할 터였다. 륭의 머뭇거림을 눈치챈 목린은 더욱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았다. 결국, 말은 졌다는 듯 목린을 향해 휙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륭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당장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야, 왜 그래?”

언영은 적잖이 당황했다.

히히히히히힝-! 륭이 앞발을 하늘로 치켜들며 신나게 울었다. 몸통을 양쪽으로 들썩거렸다. 어찌나 신났는지 혀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시 땅에 내려온 앞발로는 바닥을 연속으로 때려대며 관심을 갈구했다. 처음엔 언영만큼 혼란스러워하던 목린은 머지않아 륭이 발견한 자가 그녀가 아님을 깨달았다.

륭의 맑은 눈이 꽂혀 있는 대상은 바로 목린의 측면에 얌전히 서 있던 은빛의 말이었다.

“…….”

오히려 그 상대는 슬쩍 무심한 눈길을 보내고 아예 몸을 틀어 버렸지만 말이다.

은색의 말이 도도한 발걸음으로 먹이를 향해 떠나버리자 륭의 움직임도 멎었다. 며칠은 굶은 것처럼 보이는 륭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언영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급하게 멋대로 언덕을 내려오기는 했지만 속으로 좀 미안하긴 했는지 얼른 사과 또한 덧붙였다.

“야! 괜찮아? 아까는 미안해, 응?”

아끼는 말이 특이한 행동을 보여 주니 언영은 점점 초조해졌다. 상심한 듯 보이는 륭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목린은 저편에서 목초를 무심한 표정으로 씹고 있는 그녀의 말과, 슬픈 얼굴의 륭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러 번 왔다리갔다리 하며 구경하다가 끝내 확신이 서서 미소를 지었다.

“언영 님 말이 제 말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뭐?”

언영이 황당해하며 목린을 돌아봤다. 하지만 정말 자세히 보니, 륭의 시선이 꽂힌 방향이나 특이한 태도에 담긴 의미가 지나치게 뻔했다.

언영은 장난스레 코웃음을 치며 륭에게 잔소리를 날렸다.

“너도 이제 여덟 살이라 이거냐?”

륭은 그것을 알아들은 양 툴툴거렸다. 언영의 표정이 더 험악해졌다. 하지만 그 모습이 무섭긴커녕 되레 짓궂어 보여서, 목린은 저도 모르게 푸흐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소리를 들은 언영의 얼굴이 재빨리 돌아갔다.

“…….”

그는 목린의 은은한 미소를 넋이 나간 듯 내려다보았다. 때마침 식사를 마친 은빛 말이 서서히 그녀의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도도하면서 신비로운 눈빛은 목린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목린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륭이가 고작 여덟 살일지는 몰라도, 사람 나이로 치면 언영 님께서 저희 섬에 오셨을 때보다 훨씬 성숙할 것 같은데요.”

“목린아…….”

손에 부드럽게 감기는 말의 털은 목린의 혼을 순간 완전히 빼앗았다. 그래서 언영이 갑자기 바짝 달라붙어 그녀를 가까이서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네가 내게 이렇게 소리 내서 웃어 준 거, 오늘이 처음이야.”

언영의 뜨거운 두 손이 목린의 얼굴을 감쌌다. 그 안에 소중하게 감싸인 귀여운 이목구비가 움찔 놀랐다. 언영의 타오르는 불과 같은 눈빛에 웃음기는 없었다. 가끔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이럴 때마다 목린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얌전히 감쳐물었다.

언영의 허리가 굽혀졌다. 아까 전 그 장난스러운 입맞춤이 아닌, 정말 진지한 애정의 표현을 하기 위함이다. 목린의 얼굴이 더 단단히 잡히고 턱이 위로 들어 올려졌다. 또렷하면서도 매섭게 잘 빠진 언영의 눈이 서서히 감기고, 그가 안정적인 입맞춤을 위해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긴장한 목린도 커다란 눈으로 언영을 초롱초롱하게 올려다보다가, 끝내 눈꺼풀을 닫으려 했다.

“맞아라!”

하지만 난데없이 둔탁한 소리와 같이 언영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어? 정말로 맞았네.”

눈 깜빡할 사이에 언영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옆으로 누워 한쪽 볼을 감싸며 끄응 신음을 내뱉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입에 담긴 피를 바닥에 퉤 하고 내뱉었다.

목린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몸을 굳히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초면에 실례합니다.”

한편 언영을 때린 당사자는 측면에서 그런 그녀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목린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흘겨보았다. 왠지 익숙하다 했더니 아까 공터의 중앙에 있었던 그 사내였다. 뒤로 머리를 질끈 묶은 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터져 나왔다.

“언영이 친구 허현오라고 합니다. 이 녀석이 목린 님께서 앞에 계시면 정신을 못 차려서 날아오는 주먹도 못 볼 거라 내기를 걸었거든요.”

그렇게 뻔뻔히 말한 현오는 옆에 서 있는 여인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조금 전까지 언영과 함께 언덕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던 바로 그 세 사람 중 둘이 이 남녀였다.

“야, 봤지? 내놔.”

“흥.”

여인이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풀더니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은 덩어리를 현오에게 거칠게 던졌다. 사내는 씨익 웃으며 그것을 신난 표정으로 낚아챘다. 목린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사내가 해명이랍시고 던진 말은 되레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선사할 뿐이었다.

“왜 그런 내기를……! 서방님!”

목린은 허둥지둥 몸을 숙여 언영의 어깨를 쥐고 일으켜 앉혔다. 내기를 거론하지 않던 나머지 한 명의 사내가 말없이 그녀를 도와주었으나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핏기가 사라진 목린의 얼굴은 금세 되돌아오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눈물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많이 아프세요?”

“목린아…….”

언영은 눈이 풀려 있었다. 다만 그것이 아파서라던가, 목린이 생각하는 그 이유 탓은 아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나를 걱정해 주는 거야……?”

치고 때리는 장난이 흔한 귀혈족에게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의 행동은 무례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언영이 그를 때린 경험도 여럿 있었다. 지금 이 주먹은 간지럼 태우기였다.

“고작이라뇨, 맞는 소리가 그렇게 컸는데!”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목린은 손이 떨렸다. 도대체 왜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분노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언영의 가족 또한 가만히 방관 중이었다.

“목린아…….”

언영은 목린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고 함께 일어섰다. 시선이 같을 정도로 목린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언영은 작열하는 눈으로 목린을 주시하다가 이내 그녀를 제품에 바짝 당겨 안았다.

“목린아, 너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몸이 꽉 압박되면서 목린은 헉하는 짧은소리를 내뱉었다. 언영은 목린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눈물이 살짝 고였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정돈하는 중이었다. 지나가던 주변인들이 숨죽이고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먼저 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건 언영을 때린 그 사내였다. 현오가 먼저 기다렸다는 듯 느리게 손뼉을 쳤다. 그는 울음을 참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를 따라 했다. 그에게 은 덩어리를 던져 준 여인도, 언영의 모친과 부친도, 언영의 세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에 그들을 구경하러 붙은 행인들도 똑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어느덧 감동의 기운이 물결쳤다.

“우리 마을에 진정하게 사랑을 할 줄 아는 분이 오셨구려.”

어떤 할아버지가 하늘에 두 팔을 뻗고 외쳤다. 나이를 배신한 근육 진 팔뚝이 울퉁불퉁했다.

당황한 목린은 쭈뼛거렸다. 주변이라도 살피려고 고개를 틀려 하자 언영의 큼지막한 손이 그녀의 뒷머리를 안아 버렸다. 목린의 오뚝한 코가 언영의 어깨에 꾹 짓눌렸다.

언영은 울음을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말하지 않아도 알아. 네가 나를 많이 사랑하는 거. 부끄러우면 말하지 않아도 돼. 이미 잘 알고 있어.”

“……?”

월진과 윤근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거칠게 비벼 닦았다. 어린 세 누이도 서로의 손을 잡고 훌쩍거렸다.

은을 던져 준 여인 또한 눈물을 찔끔 흘리고, 조금 머쓱해졌는지 현오의 어깨를 주먹으로 퍽 때렸다. 그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흔들렸다. 그는 어깨를 문지르며 힐끔 그녀를 노려보더니, 이번엔 제 주머니를 열어 아까 받았던 은을 다시 돌려주었다.

예쁜 노을이 목린과 언영의 머리 위에 두 사람을 응원하듯 풍성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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