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이후 언영과 목린은 각자 따로 가마에 태워져 이동했다. 목린이 마침내 땅에 다시 발을 디디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어떤 커다란 기와집의 방에 옮겨진 상황이었다.
“저기……?”
목린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높여 봐도 문 너머는 침묵을 일관했다. 어디서나 시끄러운 언영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제대로 아는 골목 하나 없는 마을에서 멋대로 밖에 나가기는 무서웠다. 결국 목린은 침착하게 소식이 들려오기를 내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방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침상이었다. 단월도엔 지나친 사치를 원하는 게 아닌 이상 저 정도로 크고 넓은 곳에서 수면을 취할 이유가 없었다.
‘여긴 언영 님의 방인 건가?’
아무래도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무기나 널찍한 분위기를 보아하니 맞는 것 같았다. 목린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두 손을 맞대고 손가락을 꼬았다.
‘그런데 내가 왜 언영 님의 방에 혼자 있는 거지?’
보호자가 늘 곁에 필요한 영유아가 아닌 이상,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는 단월도에서는 부부와 자식 사이를 막론하고 모두 각방을 썼다. 상대의 승낙 없이 남의 공간에 들어오는 건 매우 무례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불손을 저지른 목린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얼른 허둥지둥 나무 판문이 있는 방향으로 발을 뗐다가, 역시 바깥은 무서워 결국 관두었다. 그리고 주뼛주뼛 다시 등을 돌리고 넓은 방을 마주 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몰래 염탐 중이진 않을까 고민하는 양 그녀의 눈동자가 겁에 질린 채 양쪽을 돌아다녔다.
그래. 이유가 있으니까 가마를 들어 준 사람들이 그녀를 여기로 안내했을 것이다. 언영도 곧 돌아올 테고, 가만히만 있으면 무례하다고 여기진 않을 것이다. 목린은 그렇게 자신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리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발은 조심스레 주변을 향해 뻗어 나갔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구경만 할 것이다.
“…….”
가장 거대한 것이 침상이었을 뿐, 평범한 초족 여인에겐 낯선 것이 이 공간 안에 매우 수두룩했다. 그나마 지난 몇 해 동안 귀혈족 쪽에서 꾸준히 진기한 패물을 보내 주어 조금은 익숙해졌다. 우측 선반에 나란히 진열된 사람 상체만 한 호랑이나 말 조각상은, 아마 오늘 처음 봤으면 졸도했을 것 같이 위협적이었다.
‘뭐? 호랑이를 본 적이 없어? 말도?’
‘……?’
몇 해 전 언영은 단월도에 방문했다가 목린에게 충격받은 표정과 함께 물었다. 목린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뭔 대수라는 표정에 언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언영은 다시 방문했을 때 열 마리 정도 되는 상태 좋은 말과 함께 등장했다. 섬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하하, 혼인해서 우리 마을로 오면 내가 진짜 잘 가르쳐 줄게!’
말하고 눈도 마주치기 무서워하는 목린의 어깨를 안으며 언영이 당시에 쾌활하게 약속했었다.
목린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상의 옆과 위에는 선반이 가까이 붙어 있었는데, 두 가구의 색이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보아하니 임시로 갖다 놓은 것 같았다. 선반에는 수십 개의 잔이 가지런하게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안에 든 무색의 액 또한 소름 끼칠 정도로 양이 비슷했다.
‘혹시 언영 님이 아까 계속 마시던 그건가?’
목린은 살짝 고개를 숙여 킁킁 향을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없었다. 의문스러웠지만 더는 혼자 알아 낼 방법이 없고, 그 외에도 구경거리가 많았기 때문에 끝내 뒤로 물러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한편 같은 시각, 바깥에서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는 장신의 사내가 있었다.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언영의 얼굴에 근심이 만연했다.
‘목린이는 경험이 많아. 웬만하면 만족하지 못할 거야.’
그는 해맑게 웃으며 혼인하면 한 달 동안 방에서 나오기 싫다던 목린이를 떠올렸다. 목린이가 그토록 적극적인 표정을 보이고 신나서 재잘거린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것은 자신감을 가진 자와 쾌락을 아는 자만의 여유였다. 사내놈들과 같이 싸우고 주먹질만 하고 다니느라 여자 가슴 한 번 제대로 보거나 만져 본 적 없는 언영에겐 먼 세상의 이야기였다.
‘진정하자. 진정해. 목린이도 자랑스럽다고 해 줬어.’
그의 크기가 자랑스럽다고 해 준 목린을 보고 그 자리에서 일을 저지를 뻔했다. 목린이는 정말이지 하늘에서 내려온 마음씨 착한 선녀가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정도로 얼굴도 말하는 것도 예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도 그만큼 목린에게 보답해야 했다. 언영은 부족한 그를 사랑해 주고(이 부분에 대해선 의혹이 남아 있지만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자) 그를 위해 고향까지 자발적으로 떠난(이 부분도 일단은 보류하도록 하겠다) 목린을 위해 최고의 헌신을 갖다 바치고 싶었다.
서로에게 몸을 맞대고 일찍 친근하게 구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귀혈족의 성문화 또한 매우 발달했다. 그래서 언영 또한 어디서 얻어들은 건 많았다. 어떻게 해야 여자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지 이론은 충분히 습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목린이를 데리고 함께할 상상을 하니 언영은 부끄러워서 절로 몸이 비비 꼬이는 것 같았다. 괜히 훅훅거리며 벽을 짚고 팔굽혀펴기를 백 번 시행했다. 잠시 뒤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아내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치러야 할 일이다. 그 또한 오늘을 미치도록 고대해 오긴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제일 간절하게 기다린 밤이었다. 덕분에 아랫도리가 얼마나 자주 뜨거워졌던가.
긴장된 탓에 턱에 힘이 불끈 들어간 상태로 문을 열어젖혔다. 다소 요란한 소리에 벽을 구경 중이던 목린의 등이 절로 돌아갔다. 발그스름한 그녀의 얼굴이 귀여웠다.
“언영 님. 아니…….”
‘괜찮아. 괜찮아.’
언영은 뺨이 약간 빨개진 목린을 보며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물론 지금의 목린 또한 눈알이 빠질 것 같이 예쁜 건 분명하나, 아까 홀린 듯이 구경했던 그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까도 손 안 뻗고 용케 버텼으니 지금도 참을 수 있었다. 주먹을 꽉 쥐며 그리 생각했다.
하나 그때 목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고쳤다.
“서, 서방님.”
언영은 속으로 행복의 비명을 내질렀다. 다리 사이가 바로 묵직해지며 불룩 튀어나왔다. 하나 순진한 목린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셨, 오셨어요?”
언영은 빠른 걸음으로 잽싸게 걸어가 선반에 올려져 있던 물 잔 하나를 벌컥벌컥 해치웠다. 그리고 목린이 그게 무엇이냐 묻기도 전에 텅 빈 잔을 탕 내려놓고 목린의 지척에 성큼성큼 다다랐다. 그 상태에서 팔을 뻗어 목린의 아담한 몸에 그대로 둘렀다.
“어머나!”
팔까지 꽉 압박되어 꽁꽁 갇힌 상태에서 목린의 몸이 들려지고, 마침내 입술이 뜨겁게 부딪혔다. 목린의 발이 땅을 찾듯이 살짝 꼬물거렸다. 언영은 목린의 도톰한 입술을 빨다가, 이어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벌어진 틈으로 절박하게 침범했다. 목린은 눈을 말없이 감으며 그의 갈구를 얌전히 받아들였다.
그 상태에서 길고 탄탄한 언영의 다리 또한 움직였다. 목린을 가뿐히 든 채 침상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혹시라도 충격이 가지 않게 한 손으로 목린의 머리를 똑바로 받히고 함께 아래로 풀썩 쓰러졌다.
“아앗!”
목린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들이켰다. 언영이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희열에 떨었다. 다소 끈적끈적하게 이어지던 접문을 끊고, 쪽쪽 귀여운 소리를 내며 목린의 사랑스러운 코, 입, 뺨 부근에 쉬지 않고 입술을 꾹꾹 눌러댔다. 받치고 있는 목린의 가는 목덜미를 손끝으로 소중하게 쓰다듬었음은 물론이었다. 목린은 잔잔하게 떨리는 그의 품에 가둬져 눈을 끔뻑거렸다.
한참을 부드럽게 목린에게 제 흔적을 새기던 언영은 잠시 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입술을 뗐다. 허리를 살짝 띄워 목린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그녀를 압박하고 있던 팔도 풀었다.
“목린아.”
언영은 제 옷을 먼저 훌러덩 반 정도 벗었다.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언영의 널따란 어깨와 또렷한 빗장뼈, 꽉 잡혀 부푼 가슴 근육이 바깥에 해방되었다.
삽시간에 목린의 안면 전체에 경악이 스며들었다. 그의 커다란 근육질 가슴을 헉하고 바라보다가 얼른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언영이 그 상태에서 서서히 내려와 몸이 맞닿으려 하자 목린은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서방님, 밥, 밥은…….”
목린이 위태로운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언영은 입을 맞추느라 바빴다.
“으응. 응.”
그는 목린의 얼굴과 목에 입술을 비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목린은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언영의 두껍고 단단한 흉곽이 뚜렷한 골을 만들고 있었다. 목린은 겁에 질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분명 밥을 먹기로 했는데……. 눈물이 살짝 터져 나왔다.
“흐흑, 밥…….”
“응, 그래. 그래.”
언영은 목린의 손과 단단히 깍지를 꼈다. 그의 상처 많은 손등에 굵직한 핏줄이 단단히 튀어나왔다. 목린은 다리를 살짝 비틀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흐윽, 밥은, 언제…….”
목린의 입술과 목에 얼굴을 깊이 묻고 쪽쪽거리던 언영도 이젠 더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놓칠 수 없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목린이가 고대하던 것에 맞춰 주는 중이었다. 지금 눈물이 나온다면 원인은 하나였다. 상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리라. 목린이가 만났던 사내들에 비하면 그의 실력이 형편없음이 틀림없었다. 아직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비교되다니. 언영의 머릿속이 질투와 절망과 미안함으로 혼잡해졌다.
“목린아. 목린아, 미안해. 응?”
언영은 고개를 들고 목린의 눈에 맺힌 이슬을 보며 귓가에 다정하고 초조하게 속삭였다. 목린은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바아아아압…….”
“응? 봐? 그래, 보고 있어. 우리 목린이 너무 예쁘다.”
언영은 눈물이 떨어지는 목린의 눈에 끊임없이 입술을 쪼아댔다. 다정함이 넘쳐흐르는 그의 행동에도 목린의 울음은 금방 그치지 않았다. 언영은 당혹스러워하며, 오늘로서 그의 부인이 된 여인의 옆선을 떨리는 왼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여체의 부드러운 곡선이 잘 느껴졌다. 달래 주려고 했던 행동인데 어째 이상한 결과를 낳았다. 언영의 얼굴로 더욱 열이 몰리고 손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날뛰었다.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옷에서 손을 뗀 그때였다.
“어…….”
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옷 옆면이 뜯겨 나갔다. 한 땀 한 땀 귀하게 만든 혼례복의 최후는 그렇게도 짧았다.
잠깐 끔찍한 정적이 지나갔다. 언영은 제 손에 남은 옷 쪼가리를 망연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목린은 그 자리에 시간이 멈춘 양 누워 있다가 이내 아까보다 더 큰 울음을 터뜨렸다.
“으, 흐윽, 흐윽…….”
“목린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뚝. 괜찮아. 내가 똑같은 옷 다시 구해다 줄게. 괜찮아. 울지 마. 응?”
언영이 목린을 안으면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기를 어르듯이 목린을 안고 둥기둥기 달랬다. 등을 계속 토닥여 주고 동그란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목린은 언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흐느꼈다. 언영이 새 신부의 귓가에 전혀 통하지 않을 말을 다정하게 중얼거렸다.
“우리 목린이, 이 옷 엄청나게 좋아했구나…….”
하지만 입이랑 손으로 금이야 옥이야 챙겨 주고는 있으면서도, 언영의 눈은 욕망을 못 이기고 자꾸만 찢어진 틈으로 보이는 목린의 뽀얀 옆구리를 훑었다. 미안해서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이 딱 봐도 부드러운 속살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숨이 거칠어졌다. 목린의 등을 쓸어주던 손을 뻗어 선반의 물 잔 중 하나를 잡고 꿀꺽꿀꺽 해치웠다.
“옷 바로 구해다 줄 테니까, 응? 목린아, 그만 울자.”
언영은 이어서 목린의 머리에 달린 무거운 장식들을 일일이 빼 주었다. 눈물로 초롱초롱한 목린의 귀여운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혹시라도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을까 염려하며 정성스럽게 움직였다.
마지막까지 모두 빠짐없이 빼내니 힘이 들어간 채 올라갔던 머리카락이 등 뒤로 사르르 퍼뜨려졌다. 옆으로, 뒤로, 아니면 양쪽으로 꼼꼼히 땋은 모습만 많이 봐 왔다. 처음으로 보게 된 거의 엉덩이까지 내려앉은 고운 물결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리따웠다. 게다가 향기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언영은 넓은 어깨를 굳히며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 목린을 끌어안으며 다급하게 입술을 내리꽂았다. 이제 참는 건 한계였다.
목린의 입 안을 정열적으로 돌아다니며 황홀함을 만끽했다. 넓은 근육질의 어깨로 목린을 점점 압박해 갔다. 질척한 소리가 났다. 목린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어색하게 언영의 옷깃을 잡아 뜯었다.
목린의 안면에 짙은 한숨을 토해내는 언영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붉은 기운은 목덜미와 귀에도 넓게 번졌다. 그는 눈을 감고 목 아래서부터 끓어오르는 소리를 냈다. 목린을 숨 막히게 끌어안았다. 비록 천이 중간에 막고 있어도 뇌리가 쾌락으로 들썩거렸다. 두 몸이 질척하게 비벼졌다. 그가 초점 잃은 눈과 함께 기쁨에 젖어 신음했다.
“너무 좋아…….”
한편 목린은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아니니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진 파악하고 있었다. 섬의 후손을 잇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긴 하지만, 부적절한 쾌락에서 헤엄치는 행위는 타락했다고 여겼다. 따라서 상대의 몸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방에서 매우 간소화되게 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배운 적이 없었다.
언영은 목린의 목덜미에 코와 입을 깊숙이 묻고 있었다. 목린은 조용히 훌쩍이며 더듬었다.
“안…….”
“아, 목린아.”
목린이 당황하며 몸을 옆이나 뒤로 빼는 듯 씰룩거리면 언영이 다시 또 금방 몸을 바짝 붙였다. 휘두를 수도 있을 것 같이 굵고 무거운 게 자꾸 그녀의 허벅지를 때렸다.
언영의 손이 서서히 목린의 가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의 손이 네 개로 보일 정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헐떡거리며 목린의 옷고름을 손가락으로 쥐는 데에 간신히 성공했다. 남은 한 손으로는 얼른 다른 물 잔을 허겁지겁 들이켰다. 목린은 겁에 질린 눈으로 상황을 숨죽여 지켜보다가 끝내 연약한 옷고름이 뜯겨지자 짧고 작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살짝 틀었다. 그 과정에서 목린의 뽀얀 한쪽 가슴이 바깥으로 살짝 드러났다.
턱이 빠질 것같이 언영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인 그의 눈동자는 수줍게 나온 목린의 통통한 젖꼭지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그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목린은 뒤늦게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으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려고 했다.
“보지 마세요……!”
언영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목린의 나머지 옷도 찢겨내듯 옆으로 벗겨내 나머지 한쪽 가슴도 드러나게 했다. 큼지막한 두 손이 조심스럽게 양쪽 가슴으로 내려앉았다. 목린은 숨 쉬는 것을 멈췄다.
“예쁘다…….”
그가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윤기 나는 속살이 언영의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반짝거렸다. 그의 입술 사이에서 떨리는 숨이 연이어 새어 나왔다. 몇 번 긴장하여 침을 삼키는가 싶더니 이내 언영은 입술을 벌려 목린의 오동통한 가슴 한쪽을 입에 쏘옥 머금었다. 목린이 숨을 들이켜며 허리를 튕겼다.
언영의 뜨거운 숨이 유륜을 감싸고, 그의 혀끝이 목린의 젖꼭지 위에서 움직였다. 입술이 말랑한 살을 물고 계속 움직였다. 빨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터져 나왔다. 그의 등이 흥분으로 마구 떨렸다.
목린이 창백한 얼굴로 몸을 비틀면 언영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따라와 엉겨 붙으며 세게 쭙쭙 빨아들였다. 계속 도망가려고 하는 목린의 몸을 결국엔 언영이 두 손으로 세게 붙잡아 안았다. 그의 이가 살짝 가슴을 깨물었을 때 목린은 크게 히끅거렸다.
언영은 한참 뒤에 침으로 젖은 입술을 뗐다. 자신의 타액으로 젖은 목린의 가슴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이내 그 안에 얼굴을 묻고 헐떡거렸다. 속살 냄새를 들이마시며 그의 넓은 어깨가 기쁨으로 마구 들썩거렸다. 그의 눈빛이 흐릿했다.
“……왜 그래, 목린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목린이 여전히 울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자마자 언영은 표정을 바꿨다.
“목린아. 목린아! 왜 그래? 괜찮아?”
단순히 글썽이는 게 아니라 흐느끼는 얼굴이었다. 눈은 붉게 충혈되고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다. 누워 있느라 눈물이 옆으로 흘러 귀까지 줄줄 내려갔다. 이 정도로 울고 있었는데도 욕정에 빠져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이 엄습했다. 물을 끼얹은 것처럼 언영의 이성이 되돌아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별로였어?”
목린은 떨면서 고개를 간신히 저었다.
“아, 아,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밥…….”
“목린이는 말도 정말 착하게 해.”
언영은 목린을 세게 끌어안았다. 숨이 막혀서 목린은 말을 멈췄다. 그의 맨가슴과 자신의 가슴이 겹쳤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와중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별로였구나.”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여기까지 하고 그만하자.”
눈물 탓에 시뻘게진 눈을 크게 뜨고 목린은 언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가벼움이라곤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과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게. 난 괜찮아.”
언영은 손으로 목린의 눈물을 닦아 주고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많이 미안해.”
“…….”
“여기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
“이제 안 할게. 제발 울지 마.”
빈말이 아니었다. 아까 전 뜨거웠던 숨소리와 눈빛은 어디 가고, 다소 침착한 얼굴로 언영은 목린의 몸을 계속 안아 계속 토닥거려 주었다.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으나 싫어서 울고 있는 목린을 품을 정도로 발정 난 짐승은 아니었다. 아니, 목린의 이런 모습을 보니 저절로 머리가 차게 식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둘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언영은 목린의 눈 밑에 여전히 맺혀 있는 약간의 눈물을 검지로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그 과정에서 눈이 마주쳤다. 목린이 살짝 쉰 목소리로 속삭이듯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평생 안 할 거예요?”
언영의 손가락이 어색하게 멈췄다.
“……응. 네가 싫다면.”
망설이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결심하듯 언영이 입술을 뗐다.
“어쩔 수 없잖아.”
목린은 언영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는 법을 잊은 양 크고 깊은 눈동자가 끊임없이 언영을 마주했다. 뜨겁게 날아오는 시선을 본 언영은 계속 침착하게 굴다가 갑자기 허둥거렸다. 그의 귀가 붉었다. 뜨거워지는 얼굴을 가리려는 것처럼 언영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저, 그, 옆방에서 잘 테니까…….”
목린은 멀어지려는 언영의 굵은 팔뚝을 살짝 잡았다. 언영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보며 목린이 용기를 내 내뱉었다.
“저는, 괘…… 괜찮아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언영의 턱이 아래로 쩍 벌어졌다. 그리고 그 입 안으로 물 다섯 잔이 연이어 들어갔다. 목린이 그것이 무어냐 물어보려고 하는데 다시 자리에 누운 그가 그녀의 몸을 묵직하게 덮었다.
“목린이는 어떻게…… 피부도 이렇게, 하아, 부드럽고.”
언영이 제 얼굴을 목린의 뺨에 비비며 어쩔 줄을 몰랐다. 목린은 언영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예쁘지 않은 데가 없고…….”
언영의 손이 목린의 엉덩이 근처를 더듬거렸다.
“서방님……!”
“미안해, 내가 잘하지 못해서.”
귀혈족은 잠자리에서, 특히 가장 황홀한 날일 초야 때 제 여자를 절정으로 보내지 못하는 남자를 가장 우매하게 보았다. 마음에 담은 여인을 위해 그 정도의 정성도 보여 주지 못하는 치들이라 비웃었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언영은 자신 또한 그 안에 끼게 될 것을 상상하니 식은땀이 저절로 났다.
“평생 보듬어 주고 아껴 줄게. 언제나 지켜 줄게.”
목린의 얼굴에 입술을 꾹꾹 눌러대며 말했다. 기다란 손가락이 목린의 말랑거리는 엉덩잇살을 파헤쳐 들어갔다. 엉덩이를 꾹꾹 주물거리면서 언영은 상대의 표정을 계속 살폈다. 결국 목린이 참지 못하며 속삭였다.
“쳐다보지는 마세요! 아…….”
목린이 허덕거리며 울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물 탓에 얼굴에 젖어 달라붙었다.
“왜, 너무 예뻐…….”
“예쁘지 않아요! 으응!”
언영은 닿는 곳이라면 아무 데나 목린의 얼굴에 쪽쪽거렸다. 오뚝한 콧방울을 뽁 빨아들이다가 촉촉한 눈물을 살금살금 핥으며 쪼아 대고, 귀여운 신음이 터져 나오는 입술을 제 것과 겹쳐 문질렀다. 아래에 있는 그의 손은 점점 목린의 치마를 위로 끌어올렸다.
“서방님, 느낌이 이상해요. 저는, 저는…….”
“품에 안기 딱 좋아. 안고 자면 잠이 잘 올 것 같아.”
제 위에 누워있는 조그만 여인을 가득 감싸며 그렇게 기쁘게 탄식했다.
“이런 거, 나쁜 거…….”
“나쁜 거 아니야, 목린아. 우리 둘이, 이렇게 열렬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뜻이잖아.”
언영은 목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뜨겁게 말했다. 잔뜩 흥분한 터라 말 중간중간에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울지 마, 목린아. 내가 잘해 줄게. 노력할게.”
“흐윽…….”
녹을 것 같은 말랑거림에 언영은 떨리는 한숨을 내쉬며 목린의 아랫입술을 물고 진득하게 쭉 빨았다. 그의 목소리가 감탄에 젖었다.
“목린이는…… 가슴도 정말 예쁘고…….”
“그런 말…….”
목린은 손등으로 눈물을 지워 내며 속삭였다.
“그런 말은 원래 하면 안……. 아!”
언영이 귓불을 빨기 시작하고 목린은 허리를 꼬았다.
“아, 응! 서방님!”
언영의 호흡이 초조했다. 귀에 바람을 불어넣고 말랑거리는 귓불을 몇 번 입술로 물다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목덜미를 쓰다듬고 빗장뼈를 지분대다가 결국 목린의 젖꼭지를 다시 입에 쏙 담았다.
“서방님!”
입술로 머금고 혀로 빠르게 핥았다. 집중적으로 갈구했다. 입으로 적나라한 빠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더 아래로 들이밀었다. 그걸로도 부족해 허덕이며, 목린의 등 뒤에 손을 넣고 제 곁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손이 떨려서 목린의 마른 상체도 같이 흔들렸다. 서툴지만 끈질기게 애무하고, 끊임없이 쪽쪽거리고 나서야 겨우 놓아주었다.
그는 나머지 다른 한쪽 가슴으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등을 안지 않은 손은 잔뜩 빨고 난 뒤 축축해진 젖꼭지를 비틀며 짰다.
“하아, 정말…… 미칠 것 같아.”
말랑한 목린의 가슴살에 이마를 기대며 언영이 탄식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목린의 기분이 오묘해졌다.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젖가슴 양쪽을 촉촉하게 만들어준 뒤에 언영은 목린의 배로 온전히 몸을 틀었다. 가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가 허리와 배꼽 주변에도 입술을 파묻고 살 내음을 맡았다. 한마디로 그가 건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 행위에 푹 빠졌는지 발랄하던 입이 꾹 다물리고 귀와 목 또한 터질 것 같이 붉어진 언영이었다. 처음으로 갖는 여인의 몸이 이리도 달았다. 그녀의 살 냄새에 온몸을 맡기고 전율했다.
언영은 목린의 치마와 속곳도 마저 내렸다. 그리고 그 앞으로 머리를 숙였다.
“잠깐만요!”
목린은 두 손을 아래로 뻗어 그곳을 가리려 했다.
“여긴 보지 마세요, 제발!”
“왜? 우리 목린이는 여기도 분명 끝내주게 예쁠 것 같은데.”
목린은 고개를 빠르게 도리도리 저었다. 울먹이며 말했다.
“여긴 너무 부끄러워요…….”
“알았어. 목린이가 싫어하면 안 할게.”
“많이 싫어요. 이상한 물도 나오고…….”
“이상한 물이 나와?”
목린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언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전신이 쾌감에 장악당해 이성을 이렇게 가다듬어야 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끝내 걸치고 있던 의복을 마저 벗어 던졌다. 하나도 빠짐없이.
“아!”
언영의 오롯한 나신을 본 목린의 감상은 한 문장으로 축약될 수 있었다.
“무, 무, 무서워요…….”
초족이 아무리 끊임없이 후손을 낳아도 저렇게 떡 벌어져 발달한 늑골을 가진 이는 탄생하지 않을 성싶었다. 저런 선골(仙骨)은 귀혈족 내부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당당한 풍채는 방을 삽시간에 압도했다. 커다란 가슴과 오로지 근육으로 단단히 뭉친 복근이 험난한 길처럼 울퉁불퉁했다.
꼿꼿이 뻗은 성기는 저걸 어떻게 달고 다니나 싶을 정도로 무거워 보였다. 거대한 몸과도 부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혼자만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묵직했다.
언영은 선반에 있는 약을 또 한 번 마시느라 목린의 중얼거림을 놓치고 말았다.
목린은 엉덩이를 살금살금 뒤로 뺐다. 구석에 몰린 초식동물처럼 몸을 움츠렸다. 언영의 두 무릎이 모두 침상 위로 올라오는데, 근육으로 딴딴한 허벅지 사이로 덜렁거리는 굵은 살 기둥밖에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목린은 몸통을 아예 뒤집고 엉거주춤 도망가려고 했다.
“목린아.”
언영이 팔로 입가를 한번 빠르게 닦으며 훌쩍 다가왔다.
“꺄악!”
언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얼른 등을 숙여 한쪽 팔을 뻗고 목린의 허리를 뒤에서 낚아챘다. 그가 불안정한 숨결 사이로 거칠게 토해냈다.
“나도 그 자세로 해 보고 싶었어.”
그녀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착각한 언영의 목소리에 스며든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언영의 다부진 복근과 가슴이 목린의 등과 틈 없이 맞닿았다. 굵직한 기둥이 의도치 않게 목린의 엉덩이를 벅벅 비볐다. 목린의 턱이 달달 떨렸다.
“이대로, 이대로 넣을까, 목린아?”
언영이 헐떡거리며 물었다. 한 손으로 제 성기를 쥐고 가까이 갖다 댔다. 하나 이 모든 게 처음인지라 정확히 어디에 입구가 있는지 모르는 언영이 방황했다. 귀두가 이곳저곳에 질척이자 목린이 더 겁에 질렸다.
“미안해, 내가 너무 못하지? 잠시만…….”
언영이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무엇보다도 언영이 더 허둥대는 이유는 바로 눈앞에 들어오는 목린의 뽀송뽀송한 엉덩이였다. 저기에 시선이 팔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삽입은 뒤로 미루었다. 대신 그의 머리는 아래로 숙여졌다.
언영은 몸을 빼고 아래로 숙여 토실토실한 목린의 엉덩이를 입에 담고 빨기 시작했다. 잇자국이 나지 않을 정도로 살짝 깨물어 보며 쩝쩝거렸다. 코를 위에 뭉개며 살 냄새를 잔뜩 음미했다. 너무 좋아서 사방팔방에 뽀뽀했다.
목린이 경악하며 몸을 내뺐다. 하나 언영의 눈엔 귀여운 앙탈 정도로 보여서 단순한 교태라 착각하고 그는 더욱 열심히 살을 빨아 주었다. 목린이 발길질까지 할 정도가 되어서야 문제임을 깨닫고 물러섰다.
목린은 언영이 그녀를 놔주자마자 얼른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엎드려 누워 몸을 웅크리고 홀로 훌쩍거렸다. 언영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목린을 부드럽게 불렀다.
“목린아.”
목린은 대답하는 대신 몸을 더 웅크렸다. 오열이 더욱 커졌다. 언영이 그 위로 제 거대한 상체를 덮었다.
“목린아, 괜찮아. 응? 울지 마. 왜 그래, 부끄러워서 그래?”
언영이 목린의 어깨를 잡았고 목린은 더 깊숙이 얼굴을 묻었다. 언영은 목린의 가냘픈 몸을 다정하게 문지르며 속삭였다.
“부끄러운 거 아니야. 이리 와.”
“아래는 보지 말라고 했는데…….”
“미안해. 너무 미안해.”
목린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머리카락을 귀 뒤에 넘겨 주고 볼에 계속 입을 맞췄다. 다행히 목린은 살짝 굳어 버리긴 했지만 아까처럼 발로 차면서 저항하지는 않고 가만히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언영은 한참을 입을 맞추고 옆구리를 토닥거려 주며 달랬다. 그녀의 정수리에 끊임없이 입 맞추며 물었다.
“목린아, 그렇게 울면 다음 날에 눈 퉁퉁 부어. 물론 내 눈엔 그래도 예쁘겠지만 괜찮겠어?”
여전히 얼굴을 아래에 숨기고 있던 목린의 울음소리가 그 말에 조금 사그라들었다.
“목린아. 우리 아기 만들자, 아기.”
언영은 목린의 몸을 돌려 그의 팔을 벤 채 옆으로 눕게 했다. 언영의 등에 목린이 완전히 가려졌다. 여전히 그녀를 뒤에서 안은 상태에서 그녀의 뺨을 문질러 보고 입도 맞추며 살살 구슬렸다. 그는 눈물범벅이 된 목린의 얼굴이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귀두 끝이 목린의 엉덩이에 문질러지고 목린에게 둘린 언영의 팔이 쾌감으로 떨렸다. 이어 드디어 구멍 근처에 닿았다 싶었을 때 경험이 없는 언영이 그 감촉에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아주 약간 파정했다. 목린의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주변으로 파바박 쏟아졌다. 목린이 그 자리에서 굳었고 언영은 낮은 신음을 내며 목린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여전히 다소 거뜬히 선 성기를 목린의 허벅지 사이에 넣고 비볐다. 흉측하리만큼 거대해서, 목린이 아래를 바라보면 허벅지 사이에 끼어 왕복 중인 기둥이 고스란히 보였다. 목린은 침상을 잡아 뜯었다. 쓱쓱 넣고 흔들 때와 유사한 자세로 언영이 하체를 움직이자 목린의 아래가 애액과 정액으로 질척해져 엉망이 되었다. 목린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상한 느낌을 무시했다.
그때 언영이 충격적인 말을 한 마디 던졌다.
“우리 목린이 닮아서 귀엽고 말랑말랑한 아기. 응? 열다섯 명 낳으려면 빨리해야지.”
목린은 제 귀를 의심했다.
“열다섯이요……?”
목린이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틀며 물었다. 언영이 천진난만하게 눈웃음쳤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응!”
목린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목린을 향해 언영이 다시 머리를 숙였다.
“잠깐, 잠, 서방님, 잠깐…….”
입만 열려고 하면 바로 언영이 혀를 밀어 넣어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의 입맞춤은 노골적으로 너와 함께 아이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보여 주었다. 목린은 언영의 팔을 쥐고 허덕거렸고 그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양 언영이 내려다보면서야 목린이 말문을 틀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이 낳아, 낳아야 해요……?”
“우리 열일곱 명이 함께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해 봐.”
언영은 목린과 이마를 맞댄 채 키득거렸다. 물론 목린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목린이 너와 그런 화목한 대가족을 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 내 최고의 꿈이야.”
생각만 해도 행복한지 언영은 입꼬리를 내리지 못하며 목린의 얼굴에 제 얼굴을 비볐다. 목린은 살짝 버둥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서방님, 열다섯은 너무 많아요. 조금만…… 낮춰 주세요. 아니, 많이 낮춰 주시면 안 될까요?”
“응? 왜?”
언영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목린의 나신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목린은 울음을 삼키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서방님께서 어디든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셨는데, 열다섯 명이면…… 저 힘들어서 집 밖에 나오기도 힘들어요. 그, 그러니까…….”
“보니까 주변에선 잘만 나서서 싸우던데?”
주변이라 함은 목린과는 너무도 다른 귀혈족이었다.
특히 세 누이를 연달아 낳은, 부족 최고의 대장부 어머니를 일컬었다. 언영에겐 초족 같은 사람들은 어떤지 알 방법이 없었다.
“우리 목린이도 할 수 있어!”
언영이 쾌활하게 외쳤다. 목린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모, 모, 못할 것 같아요.”
“괜찮아. 목린이 할 수 있어. 안 해 봐서, 부끄럼이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넌 누구보다 강하고 멋진 사람이야.”
언영은 뻣뻣이 굳은 목린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입맞춤을 잇기 위해 머리를 숙였다. 코가 거의 맞닿고 입술이 입술을 먹으려 할 때 목린이 다소 강하게 저항했다. 목을 세게 비틀고 입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강렬히 고개를 돌렸다.
“서방님, 이번엔 제 말 좀 제발 들어 주세요…….”
“항상 잘 듣고 있어!”
언영이 실실 웃으면서 목린의 가슴을 주물렀다.
“저, 저 정말 열다섯 명은 안 될 것 같아요…….”
“왜?”
“그거야 당연히!”
매사 차분하다는 말을 듣는 목린마저도 이제 차오르는 울분을 견딜 수 없었다. 목소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슴을 애무해 주는 언영의 손을 쥐고 외쳤다.
“아이 가지는 건 장난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이러는 것도 처음인데 첫날부터 갑자기 아이를 갖자고 하시면 저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언영이 돌연 한 대 맞은 표정을 하고 목린의 어깨를 쥔 탓에 그대로 뒷말은 먹혀들어 갔다. 그가 목린의 앞에 어두운 표정으로 바짝 다가왔다.
“처음이야?”
“네?”
입술 끝이 올라가지 않은 언영의 표정은 정말 무서웠다. 순간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목린은 움츠러들었다.
그때 언영이 더 크게 내질렀다.
“처음이야?!”
목린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다른 남자랑 정말 이런 적 없어?!”
언영이 추궁하듯 외쳤다. 목린도 이젠 정말 한계였다. 돌아오는 그의 질문은 더더욱 어이가 없었던 탓이다.
“그건 당연하잖아요! 아!”
목린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얼른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죄송해요! 목소리를 높일 생각은…….”
“흐흐흐흐흐하하하하하하!”
언영의 입이 양옆으로 찢어졌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분명 웃고 있는 표정인데 안면 근육이 모두 활발하게 움직여서 무서워 보였다.
“하하하하하하하!”
목린은 어깨를 움츠리고 눈을 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언영의 웃음이 시끄럽게 고막을 때렸다.
“하하하하하하!”
이어서 언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선반 한쪽에 있는 남은 물 잔을 모조리 휩쓸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거라면, 안에 약이 담겨 있다면 모조리 잡아 제 입에 밀어 넣었다. 두 잔을 함께 잡아 함께 들이켜기도 했다. 위치를 잘못 잡아 목을 타고 몸통으로 흘러내리는 것들은 언영의 근육을 번들번들하게 빛냈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새를 목린이 걱정스레 올려다보았다.
“서방님, 저번부터 계속 뭔가를 마시고 계시는데 이상한 건 아니지요?”
목린은 근처에 있는 이불을 쥐고 몸 앞부분을 가리며 무릎으로 일어섰다. 선반에 있는 모든 물 잔을 꿀꺽꿀꺽 나신의 상태에서 비우고 있는 그를 두려운 눈으로 관찰했다.
언영은 과하게 뜨거운 눈으로 목린을 쳐다보더니, 마지막으로 마신 물 잔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리고 목린이 제 몸을 가린 이불을 힘주어 뺏어 들었다. 목린이 당황할 새도 없이 언영은 그것을 정성스럽게 목린의 엉덩이 뒤쪽에 둘러 주었다.
목린은 다시 침상 위에 소중하게 눕혀졌다. 그녀가 깨질세라 천천히 정성을 들여 옮겨 주는 언영의 커다란 손이 뜨겁게 떨렸다.
“목린아…….”
언영은 목린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목린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열렬한 애정을 토해내는 그의 눈은 부담스러웠고, 근육으로 단단한 그의 가슴은 심지어 그녀의 것보다 더 커 보였다. 그의 뚜렷한 복근도 무서웠고 무엇보다 다리 사이 기둥에는 눈을 둘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이 정말 열다섯 명 낳아야 해요?”
“그 얘긴…… 좀 나중에, 나중에 하자.”
언영이 한 손으로 목린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훈련으로 까슬까슬해진 그의 엄지가 목린의 젖꼭지를 부드럽게 누르고 돌렸다.
“안 들어갈 것 같아요…….”
언영의 두꺼운 귀두가 목린의 허벅지 사이에 뭔가를 펴바르듯 다소 거칠게 문질러졌다. 언영이 기분 좋은지 동물 같은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목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여기 너무 밝아요……. 아!”
언영이 음핵 위를 축축해진 귀두 끝으로 둔탁하게 비볐다.
“신음 참지 마, 목린아.”
언영이 다정하게 속살거렸다. 목린은 거칠게 목을 휘저었다.
“안 돼요.”
“더 듣고 싶어. 목린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
“안 되는데……. 으으으응.”
“귀여워. 너무 귀여워.”
목린이 자극에 굴복하고 전율하자 언영은 정신없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제대로 삽입을 위해 자리를 잡으니 목린과 입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언영은 목린의 몸을 두 팔로 와락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와 정수리에 계속 사랑을 속삭였다. 목린은 그의 아래에 완전히 파묻혔다. 목린의 안에 들어가기 위해 서툴게 자리 잡는 언영의 근육 진 둔부가 꿈틀거렸다. 커다란 성기는 멋대로 껄떡거려 그 자신조차도 조절하기 어려워했다.
조심스럽게 끼워 넣자마자 꽉 조여들었다.
목린이 비명을 지르고 언영은 당황하며 목린의 몸을 덜덜 떨리는 팔로 둥기둥기 흔들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 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목린의 속살이 쫀득하게 빈틈없이 그의 남성에 달라붙었다. 언영은 이를 악물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목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입으로 닦아 주고 싶었지만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목린의 동그란 머리는 그의 넓은 가슴팍에 파묻혔다.
언영은 목린의 뒤통수를 안고 다시 서툴게 밀어 넣었다. 어떻게 힘을 조절해야 할지 모르고 너무 머릿속이 불타올라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칠게 쑥 들어갔다. 아까 전보다 깊은 삽입이 오자 목린은 울면서 언영의 등을 애매하게 끌어안았다. 몸이 완전히 조각나는 것 같았다. 그의 성기 끝이 가장 깊은 곳에 문대질 때 엄청난 자극과 고통이 휘몰아쳤다. 마치 체내 깊숙이 잠식해 있던 새로운 것을 깨우는 듯했다.
“아, 목린아. 목린아…….”
언영은 본능에 따라 팍팍 허리를 흔들었다. 두꺼운 허벅지가 근육으로 팽팽해졌다.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믿을 수 없이 기다란 기둥이 쑤걱거렸다. 목린의 가슴과 제 몸이 비벼지는 황홀함에 그는 정신이 아득했다. 행위에 미쳐 신음을 토해냈다.
목린은 언영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서방님, 몸이, 찢어질 것 같아요.”
“하아, 미안해.”
언영은 목린과 입술을 비비고 눈물을 빨아 주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허리를 아무리 굽혀 보아도 목린의 안에 들어간 상황에선 불가능했다.
결국, 언영은 목린의 몸통을 통째로 안고 들어 올리기로 했다. 그는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 상태에서 위로 하체를 쿵쿵 튕겨 올렸다.
“이제 됐다.”
언영은 목린의 귀여운 뺨과 입술을 핥으며 탄식했다.
“아윽…….”
공중에 띄워져 언영에게 대롱대롱 매달린 목린의 종아리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풀어 헤쳐진 머리 또한 엉덩이골 주변에서 찰랑거렸다. 언영은 그녀의 얼굴에서 입술을 떼지 않았다.
“신음, 하아, 참지 마, 목린아. 아아…….”
어느새 땀으로 젖어 끈적해진 목린의 토실한 엉덩이를 주무르며 그가 말했다.
“서방님, 서방님……. 저기요…….”
감정의 극대화 속에서 목린은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고 속삭였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흐리멍덩했다. 언영은 꾸준히 허리를 팍팍 처 올리며 다정하게 물었다.
“으응?”
“밥……. 끝나고 먹어요?”
“응, 그래. 응. 응.”
언영은 허리를 더욱 빨리 움직였다. 목린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억누르며 간신히 속삭였다.
“뭐 먹는데요?”
언영은 목린의 몸을 쓰다듬는 데 정신이 팔렸다. 목린은 다소 끈질기게 물었다.
“반찬이, 뭐예요?”
“허억, 반찬은…….”
언영은 말을 끊고 목린을 다시 침상에 풀썩 내려놓았다. 이어 목린의 두 허벅지를 잡아 제 쪽에 당겼고, 덕분에 목린의 엉덩이와 마른 복부가 붕 떠올랐다. 그 상태에서 언영이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목린의 배가 위아래로 들썩이고 빠르게 흔들리는 언영의 머리카락 주변으로 땀이 튀겼다. 그의 입이 후욱거리는 거친 호흡을 빠르게 반복했다. 두 몸이 맞닿을 때마다 툭툭거리는 소리가 났다.
목린은 질문을 더 이을 수 없었다. 몸이 갈라지고 있었다. 입에서는 평생 내보지 않은 고음의 교성이 의지를 배반하며 튀어나왔다. 머리가 찌릿찌릿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두 사람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언영은 출렁거리는 목린의 가슴을 넋 놓고 내려다보았다.
잠시 뒤 언영이 몸통을 목린과 가까이 숙였다.
“목린아…….”
아무리 입에 약을 들이부어도 소용없었다.
목린의 깊숙한 내부에 처음 그의 씨를 듬뿍 쏟아내는 그 순간, 땀에 젖어 아래 깔린 목린의 모습을 눈에 담은 순간 그의 쾌락 또한 팽창했다.
결국 그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목린의 머리 바로 옆으로 후드득 끊임없이 쏟아져 하얀 침상을 검붉게 물들였다.
목린은 경악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무섭게 생긴 귀혈족 남자가 그녀를 팔 사이에 가두고 피를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악귀처럼 생겼다.
아까 언영과 한 몸이 되어 그와 몸을 쿵덕쿵덕 섞었을 때는 온몸의 혈관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면, 이번엔 모든 힘이 밖으로 날아가는 기분을 절감했다.
목린은 어깨를 펴고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뜬 채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바로 얼어붙었다. 순식간에 고개를 옆으로 픽 떨구고 눈을 감았다.
“……목린아?”
언영은 초조하게 목린을 불렀다. 목린은 답이 없었다. 언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목린아, 밥 줄게! 일어나! 목린아!”
언영은 그녀의 몸통을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안겼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이 흐느적거렸다. 눈을 뜰 생각이 없는 목린의 차분한 낯빛을 내려다보며 언영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목린아!”
* * *
마치 누군가가 뼈를 꾹꾹 눌러 댄 것만 같았다.
‘배고파…….’
눈꺼풀을 닫은 채로 목린은 제 배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눈을 떴다.
벽에 기대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언영이 보였다. 몸이 틀어져 있는 방향을 보면 잠들기 전까지 쭉 목린을 지켜본 듯했다. 목린은 두 눈을 깜박였다. 무슨 상황인지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알아내 보려 했다. 한데 그와 동시에 언영의 눈도 번쩍 떠졌다.
“목린아!”
언영이 울부짖었다. 너무 목소리가 커서 목린은 될 수만 있다면 손으로 귀를 막았을 것이다. 그 대신 작은 몸을 조금씩 뒤로 내뺐다. 하나 그마저도 언영이 단번에 불쑥 다가와 부담스럽게 얼굴을 들이미니 소용없었다.
“잠깐 앉아 있으려 했는데 잠들어 버렸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언영이 쩌렁쩌렁 외쳤다. 목린의 몸을 끌어안고 계속 흔들었다.
“네가 혼절해서 옷을 급하게 입힌 후 업고 밖에 나갔어! 한밤중에 의원님 댁에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갔어! 네가 죽는 줄 알고 정말 걱정했어!”
“어, 어떡해…….”
목린의 눈에 이슬이 고였다. 언영이 얼마나 한밤중에 난장판을 피웠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의원은 물론이고 동네방네 모든 사람을 깨웠을 것이다. 그저 목린의 이름을 외치기만 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테지만……. 혹시라도 쓰러지기 전에 벌어진 문란한 일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내질렀다면, 그것만큼의 봉변도 없을 것이다.
울먹거리는 목린의 얼굴을 확인한 언영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호들갑을 떨며 목린의 머리를 제 가슴팍에 당겨 안았다.
“울지 마, 목린아!”
“윽!”
푹신하고 거대한 언영의 가슴에 얼굴이 틈도 없이 맞닿았다. 숨을 쉬기 위해 목린이 얼굴을 떼려고 하면 언영이 외려 그녀의 뒤통수를 더 눌러 댔다. 그가 경건하게 외치고 있었다.
“감동하지 않아도 돼! 네 남편으로서 당연한 도리였어.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서방님 가슴이……!”
“목린이는 정말 너무 마음씨가 여리고 착해!”
목린의 얼굴이 한참을 더 문질러지고 나서야 떼어졌다. 오뚝 올라온 코는 어느새 하도 비벼져 붉게 변해 있었다. 언영이 그 위에 입술을 올려놓고 쪽쪽거렸다.
“네가 일찍 일어나서 다행이다. 밥 차려 놨으니까 곧 가져올게.”
그렇게 언영은 폭풍처럼 잽싸게 사라졌다. 목린이 말을 걸 틈도 없었다. 정신이 완전히 맑게 돌아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언영이 자리를 떠나고 나니 목린에게도 주변을 살펴볼 시간이 생겼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보아하니 확실히 밤은 아니었다. 갖추어 입은 옷으로 슬쩍 눈길을 내려보니, 처음 보는 편한 복장이었다.
옷을 입혀 줬다고 했다. 그리고 찝찝함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의식이 없던 그녀의 몸을 그가 잘 닦아 준 것이 분명했다. 목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밤에 있었던 일이 야금야금 머릿속을 장악했다. 많던 호롱 덕분에 밝은 방에서 그녀의 몸통을 어루만지던 언영의 손과 입술의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목린아, 밥 먹자!”
언영이 밥상을 들고 신나게 입장했다. 한눈에 봐도 으리으리한 상 위의 음식들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단순히 언영이 직접 만든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혼인을 기념하여 많은 이웃들이 맛난 반찬을 기꺼이 보내 주었다. 한 달이라는 초야를 잘 버티라는 마음에 정력에 좋다는 음식들을 듬뿍 싸 주었다. 상의 기둥이 부러지겠다 농담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반찬이 가득했다.
목린은 다소 우울한 얼굴로 젓가락을 들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맛이 넓게 퍼져 있었지만, 지금의 비통함이 쉬이 사라질 리 없었다.
“……맛있어요!”
사라졌다.
“정말 맛있어요.”
젓가락이 알록달록 처음 보는 음식을 향해 겁도 없이 뻗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밥 위에 아무 반찬이나 올려놓고 입안에 가득 넣으면 낙원이 바로 이곳이었다.
“…….”
언영은 목린의 맞은편에 앉아 부인의 먹는 모습을 헤벌쭉 웃으며 구경했다.
“저, 서방님도 얼른 드세요.”
식사에 푹 빠져 있던 목린이 뒤늦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영은 수저만 간신히 들었을 뿐 제대로 먹지도 않았다.
“아니야. 목린이 먼저 많이 먹어.”
“하지만 서방님께서 준비해 오셨는데…….”
“난 이미 있던 음식을 차린 것뿐이야. 그리고 목린이 먹는 것만 봐도 나는 배불러.”
언영은 대수롭지 않게 낯간지러운 말을 던졌고 목린은 몰려오는 부끄러움을 감추려 고개를 픽 숙였다. 언영이 싱글벙글 웃었다. 공기 중에 돌연 떠도는 분위기가 퍽 예사롭지 않았다.
“목린아.”
언영은 잠깐 내려놓아 진 목린의 왼손을 잡고 진지하게 입술을 뗐다. 목린은 오른손에 쥔 젓가락을 입에 넣고 빨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영의 손가락이 부드러운 목린의 손등을 쓸었다.
“오늘이 우리가 부부로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야. 어젯밤, 함께 사랑을 속삭이며 하나가 되었잖아.”
“네에…….”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자. 우리라면 함께 완벽하게…….”
그때 난데없이 밖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이닥쳤다. 언영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 달간 초야인 거 다 아는데 누가 겁도 없이 들어왔을까.”
다시 열심히 움직이던 목린의 젓가락이 주춤거렸다. 그녀는 눈을 못 마주치며 물었다.
“저…… 혹시 서방님, 초야라는 게, 먹는 게 아니고……. 설마…….”
그때 돌연 밖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목린이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언영의 미간이 좁아졌다.
“너와 같이 온 친우들 아냐?”
목린은 서둘러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서며 답했다.
“네, 맞아요.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친구들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영 예사롭지 않았다. 목린은 종종걸음을 치며 밖으로 나섰다. 몸이 뻐근했다.
공기의 냄새가 지금이 화사한 아침임을 알렸다. 새벽의 흐릿함도 사라진 걸 보면 꽤 늦은 아침임이 분명하다. 항상 잠에서 깨어 맞이하던 고향이 아니다 보니 모든 풍경이 어색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목린아…….”
“왜 그래? 아버지나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
목린은 마당을 지나친 후 대문을 열고, 다섯 명의 여인들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황급하게 물었다. 일정에 의하면 오늘 오후에 익문과 목린의 친우들은 섬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혼례식 내내 초족 사람들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혹시라도 우울한 마음에 기반하여 안 좋은 일이라도 저질렀을까 싶어 초조해진 목린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여기 계시지 않은 아버지가 걱정이었다.
“왜 그래? 어서 말해 줘.”
“우리, 봤어.”
“봤어…….”
한밤중에 목린의 친구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넓은 처소에 누워 있었다. 두 발로도 못 걷던 아기 시절부터 늘 함께 붙어 다니던 소중한 인연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는 게, 낮에 있었던 혼례식에서 제대로 실감 났다. 달이 하늘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쉽게 꿈나라에 빠지는 여인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찢어지는 고함이 들렸다.
‘의원님!’
몇 해 동안 언영의 ‘목린아!’를 돌아온 터라 그 목소리의 주인을 모를 수가 없었다. 여인들은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고 문을 아주 살짝만 열어보았다.
‘의원님! 목린이가!’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커다란 형체가 품에 뭔가를 안고 달려 나가고 있었다. 불안해진 목린의 친구들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안 그래도 목린이 말했던 것처럼 밤에 성대한 잔치가 없어서 불안했던 차다. 목린은 저번 주까지만 해도 ‘그래도 언영 님께선 맛있는 거 많이 주신다고 하셨어.’라고 수줍게 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축제는커녕, 혼례식이 끝나자마자 언영과 목린은 가마를 타고 어떤 기와집으로 떠났다.
게다가 목린의 친구 중 하나는 귀혈족 사람들이 오후에 나눈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신부 쪽에서 한 달 동안 집에서 나가지 말자고 했다더군.’
‘허어, 생긴 것과 다르게 화끈하시구먼! 대단하신 분이야.’
‘둘이 들어갔다가 셋이 나오게 생겼다니까!’
‘어쩐지 족장님이 요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시더라고. 손주를 기대 중이시겠구먼.’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다섯 명의 여인들은 그래서 해가 뜨자마자 우당탕 밖으로 나섰다. 무서웠지만 이곳에 앞으로 살 게 될 목린이의 삶에 비하면야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었다. 가마가 움직였던 길을 따라 그대로 따라갔다. 그러자 거대한 기와집이 하나 보였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초조하게 서 있는데, 마침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왔다. 주언영이었다. 여인들은 얼른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때, 힐끔 언영의 움직임만 눈으로 뒤따르던 그들의 안색을 삽시간에 파리해지게 만드는 일이 펼쳐졌다.
‘피…….’
언영은 침상에 까는 요를 팔 가득 담고 밖에 나왔다. 새하얀 천을 듬뿍 적신 건 누가 봐도 (코)피였다. 단순히 몇 방울 떨어진 게 아니었다. 흠뻑 붉게 물들어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저 정도로 많은 혈흔은 자연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린이 어떡해…….”
그래도 목린이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게 보였기에, 아무리 극악무도하고 더러운 놈들일지라도 아끼는 아내에겐 예를 갖출 것이라 믿었다. 4년간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에 어느 순간 방심하고야 만 것이다.
“엄청 많이 흘렸던데…….”
모두 각자 목린의 손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목린은 영문을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구 한 명 붙잡고 물어보려고 해도 제정신인 애가 없었다. 새벽부터 눈물 콧물 다 뽑으며 목린에게 엉겨 붙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한 친우의 “피……. 피…….” 하는 웅얼거림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조금 이해했다.
“내 피 아니야. 서방님이 흘리신 피야.”
“뭐?”
모두가 동시에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목린은 팔을 뻗으며 설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걱정하지 마. 서방님께선 나쁜 사람은 아니셔. 나보다 가슴이 더 크셔서 처음 보고 엄청 무섭긴 했지만 괜찮아.”
물론 어제 너무 무서워서 떨고 기절까지 했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화 차이로 인한 오해가 생겼던 게 분명했고, 그렇다면 단순히 그 사건으로 언영을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고 목린은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언영을 지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준 밥이었다. 목린은 음식에 매우 약했다.
목린의 친우들은 차분히 설명하는 그녀를 입을 허어 벌리고 쳐다보았다.
목린이 언영에게 공격을 가했다는 건 더한 경악을 선사했다.
친우들이 받은 충격을 이해하지 못한 목린은 잠시 멀뚱거리다가, 이어 갑자기 번뜩 생각난 말을 이었다.
“저, 아버지께는 말씀드리지 말아 줘. 안 그래도 심란해하실 텐데, 걱정을 더 얹어 드리고 싶지는 않아.”
“……알았어.”
“부탁할게.”
어느새 그친 눈물을 닦아내며 이구동성으로 여인들이 답했다. 모두 얼떨떨한 표정을 가리지 못했다. 순한 목린이가 밤에 그런 아내로 변할 줄은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목린과 언영은 나갈 준비를 했다. 한 달간의 초야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초족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건 배웅해야 했다. 목린은 어제 있었던 일로 인해 몸이 조금 불편했고, 걸음걸이를 보고 눈치챈 언영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한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목린이 그녀의 목에 팔을 감게 했다. 처음에는 목린에게 이런 자세로 이동하는 것이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따라붙는 덩치 큰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언영의 어깨에 머리를 묻으면 되니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초야’에 오해가 있었던 점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제 와서 잘못 알았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가 언영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까 봐 목린은 겁이 났다. 어제 그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던 모습만 봐도 이날을 얼마나 고대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떡하지. 목린은 울상을 지으며 언영의 어깨에 더 얼굴을 가렸다. 언영은 헤벌쭉 웃으며 목린을 더 꽉 끌어안았다.
목린의 아버지 익문과 그녀의 친우들은 항구에 서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우들은 다가오는 부부를 보자마자 숨을 멈추며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다행히 익문은 어젯밤에 있던 소란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처소는 마을 변두리에 있던 가장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익문은 귀혈족 사람들 남녀노소가 항구에서 건네주는 다양한 선물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러든 말든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일을 좋아하는 귀혈족은 마냥 기분이 좋은 듯했다.
“아버지, 기회가 되면 찾아갈게요……!”
“목린이랑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장인! 감사합니다!”
마침내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익문은 언영의 품에 안긴 목린을 향해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족이 올라탄 배가 바다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배에 있는 사람들과 육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서로가 보일 때까지 계속 손을 들고 흔들었다. 목린의 친구들은 아침에 들은 놀라운 소식 때문에 여전히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아버지가 작은 점으로 보이기 시작할 무렵 목린의 뺨을 타고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괜찮아.”
언영이 옆에서 그 위에 입을 맞추었다.
“이제 돌아가자.”
목린은 훌쩍거리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영은 계속 목린의 등을 토닥여 주며 그들이 함께 살 게 된 기와집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을 발견한 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행복한 초야를 축하해 주었다. 부러움의 눈길도 많았다. 목린은 더욱 민망해져 언영의 품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기와집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다른 이유로 목린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한 달을 보낼지, 진실을 언영에게 말해 줘야 하는지, 만약 또 기절하게 되는 건 아닌지 다양한 걱정이 마음 가득 스며들었다.
“저, 어제는 많이 놀랐지.”
갑자기 위에서 언영이 다정하게 말했다. 목린이 화들짝 놀라 올려다보니 언영이 난처한 표정으로 목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와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하는 말이 다소 진지했다.
“기절까지 할 정도로 너한테 무리일 줄은 몰랐어. 네가 먼저 하자고 하기 전엔 하지 않을게. 어젠 정말 미안했어.”
목린은 눈을 크게 떴다. 언영은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대답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잠시 뒤 목린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목린에겐 당연히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목린은 단순히 자신의 안위만 우선시하면서 행동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서방님……. 원하시던 건데…….”
“당연하지. 나는 네 의사가 훨씬 중요하니까.”
언영이 싱긋 웃으며 목린을 다정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런 언영에게 뭐라 답해 줘야 할지 몰라 목린은 어색하게 그의 어깨를 만졌다. 괜찮다고, 어서 오늘도 하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 해서 좋은 생각이라고, 밤일은 훨씬 나중으로 미루자고 흔쾌히 응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도 않았다.
“……집 구경시켜 줄까?”
“네.”
어색한 정적을 뚫고 들어온 제안에 목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영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는지 재빨리 목린을 안은 채로 뛰어나갔다.
의외로 집 구경은 다소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목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집은 넓었고, 언영은 방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얼마나 많은 사소한 부분을 신경 썼는지 신나게 떠들었다. 없는 게 없었다. 목린이 좋아할 텃밭과 조그마한 연못도 존재했다. 무슨 용도로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부엌의 바로 옆에는 짓다 만 마구간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목린이 마침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예쁜 집인데…… 두 사람이 살기에는 많이 넓은 것 같아요.”
목린은 언영의 목에 두른 팔의 자세를 어색하게 살짝 고쳤다. 구조를 다 외우는 데도 며칠이 걸릴 것 같았다. 언영이 활기차게 끄덕이며 목린을 다시 제대로 바로잡아 안았다. 엉덩이를 다시 든든히 안자 목린의 몸이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목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언영을 더 꽉 붙들었다.
“응! 우리 아이들이 함께 살 집이니까. 그래도 열다섯 명에겐 좁아서 아마 한 여섯 명 낳았을 때 더 큰 새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
“여기가 우리 아이들로 시끌시끌할 모습을 상상해 봐. 얼른 하루라도 빨리 낳아야…….”
두 사람의 시선이 어색하게 부딪혔다. 언영은 고개를 홱 젖혀 애꿎은 하늘을 노려보았다.
“물론 며칠 늦어져도 상관없어! 며칠이든, 몇 주든, 몇 달도 괜찮아. 몇 년은…….”
언영이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몇 년은, 어, 그것도…… 괜찮아…….”
“…….”
“저, 혹시 집이 넓어서 청소하는 게 걱정이라면 그거야말로 가장 쓸모없는 고민이야. 여기선 어린애들이 청소를 돕는 일로 푼돈을 벌거든.”
슬슬 하늘이 황혼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정신없던 하루는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늦은 오후와 저녁, 애매한 시간의 중간을 건너는 중인 하늘의 빛깔이 오묘했다. 두 사람은 잠시 모든 것을 잊고 풍치를 만끽했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높다란 귀룡산이 경치의 아름다움을 받쳐 주었다. 위로 높이 뻗어 나가는 새의 움직임에 희망찬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이곳에서 서방님과 함께 저녁을 맞이하게 될까. 목린은 갑자기 몰아쳐 온 방대한 미래에 관한 생각에 몸이 간지러웠다. 그때 언영이 나직하게 물었다.
“씻을래?”
목린은 언영 쪽으로 멀뚱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고 언영은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의 귀가 새빨갰다.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나는, 오늘 나갔다 왔으니까 피로도 풀 겸, 그저…….”
목린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장 준비해 줄게! 다 씻고 나오면 같이 식사하자!”
언영은 곧바로 도망치듯 목린을 내려놓고 얼른 자리를 떴다.
모든 일은 다 언영이 하고 목린은 몸만 움직이면 됐다. 목린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어떻게든 도우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언영은 무시하고 목린에게 계속 밥을 먹였다. 특히 어제 기절시킨 게 미안하여 더 그랬다.
밥상을 치우며 언영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긴장감에 목이 조였다. 붉어진 얼굴을 목린에게 들킬까 부끄러웠다.
“저, 목린아. 혹시라도 마음의 준비가 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해. 내가 어젯밤보다 훨씬 부드럽게 해 줄게. 어젠 처음이라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랬어.”
목린은 대답이 없었다. 언영은 몰래 이를 악물었다.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누가 들어도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 여인과의 교접에 미친 사내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얼른 급하게 덧붙였다.
“아니,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물론 하고 싶은 건 맞는데, 무엇보다 먼저 제안한 건 너였으니까. 그렇다고 네가 그런 쪽으로만 밝힌다는 뜻은 아니고, 물론 밝히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그때 끼긱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언영이 급하게 얼굴을 들었다. 목린이 너무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는 줄 알고 당황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목린은 되레 방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어? 나갔다 왔어?”
“네. 밤하늘이 예뻐서요.”
“……그래.”
목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없었던 사이 방의 분위기가 기묘해졌다.
“저기, 할 말 있으세요?”
“아, 아니야.”
언영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리 위로 밥상을 치켜들며 서둘러 달려 나갔다. 목린은 치맛자락을 잡고 황급히 쫄래쫄래 따라갔다.
“서방님! 그렇게 옮기면 위험해요!”
* * *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수면 시간이 다가왔다. 자기 전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마쳤다. 언영은 일부러 일을 만들어 내며 이 순간을 뒤로 미루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목린은 언영과 함께 어제 같이 있었던 똑같은 방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저, 서방님.”
“으으, 응?”
“오늘도 동침하는 거예요?”
평생 혼자 자 왔던 목린은 누군가와 함께 밤을 공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누워서 잠만 자는 밤이라도 버거웠다. 특별히 언영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언영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오늘 내내 맑던 언영의 얼굴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 같이 자기…… 불편할 정도로 어제 힘들었어?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서 자요!”
목린은 언영의 새끼손가락을 잡고 서둘러 침상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행히 언영은 다시 표정을 되찾고 목린의 뒤를 그대로 쫓아갔다. 언영이 먼저 자리에 눕고 목린이 그 옆에 서먹함을 애써 무시하며 자리 잡았다. 언영은 목린의 머리 아래에 팔베개를 해 주고 몸통을 목린 쪽으로 돌렸다. 지나친 가까움에 목린의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띠고 다정하게 인사했다. 어제만큼 방이 밝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안심하는 중이었다.
“서방님, 자, 잘 자요.”
“그래. 목린이도 잘 자.”
언영이 팔베개를 해 주지 않은 손으로 목린의 팔목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내 등을 틀어 옆에 있던 호롱불을 완전히 껐다. 시꺼먼 어둠이 방을 먹었다.
작위적인 침묵은 목린의 심장을 갉아먹었다.
‘불편해.’
눈을 감고 있었지만 목린은 쉬이 잠에 빠질 수 없었다. 평생을 혼자 잤는데 갑자기 덩치가 산만 한 사내의 품에서 평소처럼 수면을 취해 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언영이 놀랄까 봐 얼음처럼 굳은 자세로 침착하게 있지만 사실 속이 초조하게 뒤틀렸다.
그녀의 머리를 단단히 받쳐 주는 팔도, 몸 위에 올라와 있는 커다란 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무시하기 힘든 것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사내의 뜨거운 숨소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곳에서 자도 되겠냐고 청하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목린아, 자?”
잠시 뒤 언영이 낮게 속삭였다.
목린은 부러 눈을 꾹 감고 자는 척을 했다. 깨어 있는 것을 들켜 봤자 어색한 분위기에서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보다 더 끔찍해지면 끔찍해졌지, 나아지지도 않을 일을 굳이 사서 하지 않았다.
“목린아.”
언영이 여러 번 더 이름을 불렀으나 목린은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혹시라도 들킬까 염려하느라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언영은 목린의 감긴 눈과 둥그런 이마를 다소 오랜 시간 빤히 주시했다. 그리고 목린의 목 아래에 놓인 제 팔을 슬그머니 빼냈다. 부인에게 달라붙은 커다랗고 듬직한 몸을 조금씩 눈치를 보며 떼어냈다. 목린이 잠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커다란 육신을 다소 어색한 발걸음으로 슬금슬금 옮겼다. 그는 마지막까지 목린이 누워 있는 곳을 힐끔 보면서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
혼자가 되자마자 목린의 커다란 눈이 뜨였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금방 돌아오리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언영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엔 마음이 좀 편했던 목린도 이젠 소식 없는 남편 때문에 많이 불편해졌다. 차라리 그때 깨어 있다고 알려 줘야 했을까. 허공을 쳐다보는 목린의 눈에 걱정이 내려앉았다.
‘어쩌면 서방님께서도 나와 함께 있는 게 불편하셨을지도 몰라.’
그래서 다른 방에서 눈을 붙이고, 이른 새벽에 다시 들어와 마치 계속 여기 누워 있었던 양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목린 또한 지금이 어색하긴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방이 여기만큼 편할지 모르겠네.’
아까 둘러봤을 때 확인했는데 침상이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다른 데에도 덮고 잘 이불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겨울이 완전히 떠나고 추위와는 이별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밤이 마냥 따뜻하다고 착각하기엔 오산이었다.
이 마을에 오면서 목린 쪽에서도 다양한 패물을 준비하긴 했으나 그간 언영이 그녀의 고향을 위해 해 준 것에 비하면야 턱도 없었다. 마음 편히 받아먹고만 있으니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언영의 마음이 식고 초족을 습격하려 할지도 모르니까, 미리 죄를 덜기 위해 평소에 그를 위해서도 뭐라도 해야 했다.
목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있던 여분의 이불을 꺼냈다. 등을 뒤로 굽히고 낑낑거리며 그것을 품에 안았다. 그 상태에서 엉거주춤 밖으로 나왔다.
“언영 님! 서방님!”
시원한 밤공기가 목린을 화사하게 반겼다. 선선한 바람이 풀어헤쳐진 목린의 머리를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언영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넓은 마당은 적막했다. 목린은 아래 놓여 있는 제 신을 신고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이런 집을 밤에 혼자 거닐고 있자니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높였다.
“서방님! 이거 덮고 주무세요……!”
목린의 발걸음이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쫑쫑거리며 서방님이 어디 계실까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발견한 문 아래에 언영의 신이 놓여 있었다. 목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걸음을 더 빠르게 했다.
목린 또한 신을 벗고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눌린 무언가를 토해내는 듯한 음성이었다.
“목린아…….”
“네, 서방님!”
어떻게 서방님은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알고 계실까. 참 신기하다고 목린은 생각했다.
“목린아, 아……. 하아…….”
하지만 바로 밝게 대답을 드렸는데도 언영은 계속 다소 불안정한 목소리로 목린을 불렀다.
‘어디 편찮으신가?’
목린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고 보니 어제 후드득 쏟아낸 코피의 양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어디가 좋지 않다면 언영이 알아서 의원을 만날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늘 긍정적인 그가 증상을 가벼이 무시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 여기서 저렇게 앓는 건 목린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진한 목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 목린아…….”
“서방님, 혼자만 그렇게 앓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목린은 느리게 문을 열면서 들어갔다. 먼저 예고도 없이 들어가는 게 무례한 행동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를 기반으로 추론하건대 지금의 언영에게는 직접 일어서 문을 열어 줄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프면 말을 할 것이지. 안타까움이 물씬 파도쳤다.
어둠은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었다. 눈을 찡그리며 애써 내부의 상황을 확인해 보니, 언영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어깨를 앞으로 굽힌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마나 아픈 건지 그는 아직도 목린이 들어온 줄도 몰랐다.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끙끙 앓았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를 쥐고 손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린아…….”
“서방님.”
목린은 조용히 다가와 언영의 옆에 앉았다. 그의 어깨에 들고 온 따뜻한 이불을 살며시 덮어 주었다.
그제야 언영은 목린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가 숨을 멈추며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 버렸다. 그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목린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촉촉하게 고였다.
“서방님, 괜찮아요. 제게 숨기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서방님의 아내잖아요.”
목린은 어둠을 휘저으며 손을 뻗어 언영을 찾았다.
“아프지 마세요, 서방님…….”
지금은 멈췄지만 아까 불안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언영의 손을 맞잡아 주기 위함이다.
“어……?”
언영의 손을 잡겠다고 내밀었는데, 이상한 게 잡혔다. 언영의 어깨 또한 충격으로 들썩거렸다. 이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목린은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
‘먹을 건가?’
하지만 확신이 생기지 않아 그것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목린(木隣) 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