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4/25)
  • 4장

    목린의 혼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따라가는 이들은 아버지 익문과 그녀의 소중한 친우 다섯 명이 전부였다. 위험한 여행길이니만큼 최소한의 사람들을 데려가야 했다. 단월도에서 귀혈족의 마을까지는 이렇게 거대한 배로 나흘 정도가 걸렸고, 이틀째가 되자 목린과 그녀의 친구들은 서서히 바깥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처소는 배의 지하에 있었고, 바다를 이리도 오래 건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기회이기도 했다. 아무리 무서운 귀혈족이 배 안을 꽉꽉 채우고 있다고 한들 호기심이 자못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얘들아, 우리 꼭 붙어서 다니자.”

    “모두 손 잘 잡고 있어!”

    결국 모두 똘똘 뭉쳐 복도에 나왔다.

    귀혈족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언영이 그중에서도 더 큰 것일 뿐, 사실 목린은 친구들 무리에서 가장 장신이었다. 그래서 목린이 가장 전방에서 양팔을 옆으로 뻗고, 친구들을 보호하는 자세로 앞서 걸어갔다. 그 뒤에선 다섯 명의 조그만 여인이 서로에게 틈 없이 달라붙었다.

    지나가는 귀혈족이 모두 그들을 째려봤다.(째려보지 않았다) 하던 일을 멈춘 그들의 눈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안 그래도 키도 작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니니 더욱 귀여워서 그랬다) 목린 일행에게는 목숨을 건 불안한 모험이었다.

    여차여차하여 배의 갑판으로 향하는 계단에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틈으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여섯 명의 여인들은 최후의 심호흡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상쾌한 바람이 그들을 환영했다. 기가 죽었던 그들도 내심 올라오길 잘했다 결정 내릴 정도로 청청하고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목린이 신이 나서 친구들을 향해 몸을 틀던 그 순간이었다.

    이런 여유도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저기 봐!”

    “아!”

    몇 해 전에 목린이 언영과 함께 맞닥뜨린 식인 물고기는 지금 발견한 것에 비하면 올챙이였다. 목린을 주먹 하나로 비틀 수 있을 정도로 징그럽고 거대한 바다 괴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새하얀 그것은 꼬리만 한 번 휘둘러도 배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압도적이었다. 세 개나 되는 충혈된 눈알을 징그럽게 깜박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귀혈족 사람들이 쾌활한 웃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이어서 괴물의 팔, 다리, 얼굴에 엉겨 붙어 그것의 피부를 무기로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마침내 그것이 괴성을 내지르며 균형을 잃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통이 선박 위에 쿵 눌러앉았다. 귀혈족은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며, 운반하기 쉽도록 도끼를 쥐고 그것의 팔다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에구머니나!”

    온순한 초족 사람들의 눈에는 바다 괴물이나 그것을 웃으면서 죽이는 귀혈족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장 뒤에 있던 친구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가장 눈물이 많은 친구는 바로 울음보를 터뜨리며 목린의 품에 안겨 들었다. 목린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모두에게 의견을 물었다.

    “얘들아, 우리 그냥 아까 있었던 지하로 내려갈까……?”

    다행히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모두 한마음으로 입을 모았다.

    “그,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다시는 올라오지 말자.”

    여섯 여인은 다시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와 다시 지하로 갔다. 뻥 뚫린 하늘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도했다. 하지만 조금 전 그들을 사로잡은 충격의 여흔은 아직 표정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

    “어, 내 방으로 갈래……?”

    목린이 아무거나 생각나는 것을 제안했다. 결국엔 아까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자는 말이었지만,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모두 만장일치로 마음이 같았다.

    “그래!”

    “그래! 어서 가자! 얼른!”

    잠시 뒤 여인들은 목린의 처소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귀혈족은 초족 사람들에게 부러 좋은 방을 대접해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목린의 방이 가장 깨끗하고 넓었다.

    목린은 처소에 가져온 소박한 보따리를 풀었다. 사람들이 이별 선물로 직접 만들어 준 소박한 장신구가 많았다. 특히나 여인들 모두 덕복이 만들어 준 귀걸이를 손에 쥐어 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덕복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능통했다.

    “예쁘다…….”

    “덕복 오라버니는 예전부터 손재주가 좋았어.”

    “맞아, 맞아.”

    “심성도 착하시고.”

    “얼굴도 나름 괜찮으시지 않아?”

    “의원 아저씨랑 족장님이랑 친하시니까 원래대로였다면 목린이는 덕복 오라버니랑 연이 맺어졌을 텐데…….”

    한 여인이 눈치 없이 중얼거렸다가 옆에 앉은 친우에게 가볍게 찰싹 손바닥을 맞았다. 목린은 모든 과정을 못 보고 못 들은 척했다.

    “쉿! 넌 눈치 없게 그런 얘긴 여기서 왜 하니?”

    “이미 다 지나간 거 얘기해서 뭐 해?”

    “그냥 안타까워서 그렇지…….”

    맞은 게 억울했는지 그 여인의 표정에 울상이 가득했다.

    “그래도 그렇지. 주언영 그 사람도 함께 살기 나쁜 자는 아닐걸.”

    조용해졌다.

    “…….”

    이틀 전 섬을 뒤흔들었던 ‘내 아이를 낳아 줘’가 아직도 그들의 귀에 생생히 울렸다.

    그날 낭떠러지에서 이성이 완전히 나가 버린 목린은 울먹이면서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그가 한 말이 뭐였든 상관없었다. 빨리 다시 땅에 내려놔 달라고 팔을 뻗었다. 언영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안으면서, 아직 이렇게 감동하지 말라고, 우리의 혼인 생활은 이제 시작이라고 뜨겁게 속삭였다. 이 일 때문에 익문은 배에서 종일 앓아누웠다. 결국엔 멀미로 번져서 밤에도 끙끙거리다가, 현재는 대낮에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날을 회상하면서 목린은 치맛자락을 매만지며 딴청을 부렸고, 가장 성격이 밝은 여인이 애써 활발하게 입을 떼며 침묵을 깼다.

    “덕, 덕복 오라버니가 너무 말도 안 되게 친절하신 거지! 그래! 주언영 그 사람 정도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맞아, 맞아!”

    모두가 어색하게 대화를 이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한번 입에 올라온 덕복 얘기는 더욱 크기를 키웠다.

    “내 생각에 덕복 오라버니께서 목린이를 어릴 때부터 마음에 담아 두신 것 같았어. 그래서 특히 더 목린이를 아끼셨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구나.”

    “그래. 목린아, 기억나? 우리 요만했을 때. 너 넘어져서 나랑 같이 의원님 댁에 갔는데 그때 덕복 오라버니께서 너 다친 거 보고 엄청 안절부절못하셨잖아.”

    다시 조용해졌다. 그 누구도 이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단지 쉽사리 꺼낼 수 없음이다. 그리고 모두 알고 있었다.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국 목린의 옆에 앉은 가장 눈물이 많은 친구가 목린을 끌어안으며 훌쩍거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모두가 속에 응어리져 있던 안타까움을 순식간에 토해냈다.

    “불쌍한 목린이, 흑흑흑!”

    “저런 사람들이랑 어떻게 살아?”

    “저건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지!”

    모두 목린의 치맛자락을 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친구를 붙잡는 줄 알 정도로 분위기가 어두웠다. 목린도 차마 그녀를 위해 진정으로 울어 주는 친구들에게 쉬이 뭐라고 입을 열 수 없었다.

    “목린아!”

    그때 갑자기 문이 활짝 열렸다. 목린의 친구들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우당탕 뒤로 넘어졌다. 목린은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언영 님, 오셨어요!”

    “목린아, 내가 배 구경시켜 줄게!”

    곳곳에서 언영을 필요로 했으며, 그는 주기적으로 배의 현 상황을 보고받거나, 직접 살피러 다녔다. 하여 의외로 배에서 언영과 목린이 함께한 시간은 얼마나 없었다. 지금도 언영은 힘을 쓰다가 급하게 달려왔는지 넓은 가슴을 살짝 들썩거리고 있었다.

    “저, 그러면 제 친구들은…….”

    “친구들?”

    사방에 엎어져 오열 중인 목린의 친구들의 존재를 언영은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성큼성큼 세 발짝 만에 목린의 코앞에 오더니,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네가 너무 눈부셔서 그 주변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그리고 곧바로 목린의 세상이 뒤집혔다. 언영이 그녀를 어깨 위에 둘러업은 탓이다. 그가 신나게 웃으며 복도로 나가는 모습을 방에 남은 목린의 친구들이 망연자실하게 쳐다보았다.

    언영은 즐겁게 배에 관해 설명해 주었지만 정작 목린이 귀담아들을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었다. 언영은 목린이 아주 기본적인 배의 사실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평생 그런 사람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하여 그의 설명에는 당연히 목린이 알아들을 거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잦았다. 그는 쾌활했지만, 그녀에게 의도적이지 않게 불친절했다.

    또한 목린은 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런 기본적인 그 원리 그 자체에 호기심이 쌓였지만 언영은 그 부분에 대해선 일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귀혈족이 어떻게 이런 배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배가 다른 부족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목린에게 잘 보이고 싶어 귀여운 허풍도 함께 떨었다. 하나 목린이 애초에 그 다른 부족을 잘 알지 못하므로 그가 과시하는 장점들은 그녀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목린은 설명받는 내내 의도치 않게 뚱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언영에게 자주 보여 줬던 그 표정이 공포이든, 두려움이든, 아니면 언영이 착각하는 대로 수줍음이든, 최소한 이 세 감정은 상대에게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무심한 낯빛은 약간 다른 이야기이다. 언영의 말을 어떻게든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해도, 눈앞에 보이는 색다른 풍경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렸다.

    “…….”

    언영은 말없이 그 모습을 살폈다.

    그날은 언영이 목린과 처음으로 서먹하게 작별한 날이었다, 다시 목린을 처소 앞에 데려다주는 언영의 얼굴은 약간 안 좋은, 심란한 감정 위에 가면을 덧씌운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목린은 그런 사소한 점을 알아차릴 만큼 언영에 대해서 예리하지 않았다.

    “그러면 언영 님,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목린이도 잘 자. 푹 쉬어!”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배가 육지에 도착했다.

    * * *

    항구에는 많은 귀혈족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언영이 차기 족장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초족 사람이 이 바닥에 땅을 딛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귀혈족 사람들은 이 새로운 손님들을 맞이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백 명도 넘는 것 같아.”

    “백 명이 뭐야, 오백 명도 넘겠다!”

    물론 목린의 친구들에겐 환영이 아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들은 마치 잡혀 오는 기분을 느끼며 서로의 팔을 붙잡고 의지했다.

    “하하하하하하하!”

    가장 앞에서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는 이는 언영의 모친이자 귀혈족의 족장인 월진이었다. 그녀가 두 팔을 하늘로 뻗었다.

    “목린아! 우리 아가! 하하하하하하하!”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언영이 제 옆에 서 있던 목린의 무릎 뒤에 손을 넣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목린이 허둥지둥 언영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래, 우리 목린이 한 번 안아 보자!”

    언영은 배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목린과 함께 하늘로 튀어 올랐다. 사방에서 더 큰 함성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땅으로 완벽하게 뛰어내린 후 다다다다 모친을 향해 뛰어갔다. 언영과 월진은 마치 아기를 다루듯 손으로 목린을 주고받았다. 언영이 두 손을 내밀어 얌전히 가슴께에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목린을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목린이, 곱기도 하지.”

    “그, 그동안 평안하시었……. 꺄악!”

    월진은 서너 번 정도 목린을 안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서 바닥에 내려놓는가 싶더니, 목린의 두 손을 함께 맞잡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목린아, 네가 내 가족이 된다니 참으로 기쁘구나! 하하하하!”

    월진은 제자리에서 돌았고, 그녀에게 손만 붙잡힌 목린의 몸통이 돌면서 허공에 붕 떠올랐다. 목린의 전신은 뒤집어 눕혀진 상태에서 슁슁거리는 소리를 내며 회전했고, 귀혈족 사람들은 그런 그녀의 몸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쳐 자리를 양보한 상태에서 손을 들고 열광했다.

    “하하하하!”

    월진이 여전히 몸을 돌리며 쾌활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지켜보던 월진의 남편이자 언영의 부친도 따라서 웃었다.

    “하하하하!”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귀혈족 사람 또한 그 웃음에 크기를 더했다.

    월진이 움직임을 멈추고 놔주자마자 목린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이마를 문지르며 숨을 고르는데 그녀의 시야에 다정한 손이 뻗어졌다.

    “많이 어지러우냐?”

    언영의 부친인 윤근이었다.

    “내 아내가 좀 흥이 많단다.”

    “……언영 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으셨군요.”

    윤근 또한 몇 번 단월도에 언영과 월진을 따라서 온 적이 있어서 목린과 초면이 아니었다. 월진이 윤근보다 아주 약간 더 키가 컸고 몸이 옆으로 불었지만, 목린에겐 윤근 또한 여전히 외적인 측면에서 버거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네 몸이 생각보다 매우 약하구나.”

    목린은 이 정도면 누구든 몸이 무너지는 게 정상 아니겠냐고 반박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을의 어린이들과 함께 훈련을 받지 않겠니?”

    “훈련……이요?”

    “그래. 이 정도 어지러움은 금방 해결할 수 있어. 우선 하루에 팔굽혀펴기 오백 번 정도면…….”

    “오백 번이요……?”

    “언영이도 여섯 살 때 했던 거네.”

    목린은 느리게 눈을 끔벅였다.

    “익문!”

    한편 월진은 목린의 아버지를 향해 반가워 달려갔다.

    “오랜만이네, 익문!”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익문은 바로 굴욕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울음을 삼키며 부탁했다.

    “아무쪼록 우리 목린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평생 섬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려울 테니, 부디……. 목린이가 실수를 해도, 착한 아이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하, 그럼. 그럼!”

    월진이 다정하게 익문의 어깨를 내려칠 때마다 그의 허리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꺾였다.

    “목린아, 언젠가 내 누이들을 보여 주겠다고 했지! 차례대로 화영이, 헤영이, 선영이야.”

    사라졌던 언영이 인파를 뚫고 다시 등장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뒤따라오는 이들은 세 명의 어린 소녀였다. 꼬리처럼 한 줄로 쪼르르 붙어서 나타났다.

    “목린 님!”

    “목린 님!”

    “목린 님! 안녕하세요!”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서 여태까지 언영의 세 누이들이 단월도를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목린은 배에 올라탄 이래로 처음으로 안도했다. 다행히 귀혈족에도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그것이 당연함을 알면서도 직접 눈으로 담기 전에는 믿기 힘들었다.

    세 명의 어린아이들은 키가 조금씩 달랐지만 그래도 모두 목린의 허리나 가슴 근처에 머물렀다. 머리는 모두 풀고 있거나 한 가닥으로 묶은 상태였고, 검은 갑옷을 착용하기는 하였으나 아무래도 본연의 덩치가 너무 작은 탓에 목린에게조차 위협이 되지 못하였다.

    목린은 살짝 무릎을 꿇고 소녀들과 눈을 맞추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니 이곳에서의 삶이 약간은 나아 보였다. 모두 미묘하게 언영을 조금씩 닮은 것도 흥미로웠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요. 잘 부탁…….”

    “이거 제가 정말 아끼는 건데 목린 님 드릴게요!”

    가장 가운데에 있던 혜영이 환하게 웃으며 목린을 향해 해골 머리를 내밀었다.

    “꺄악!”

    “음? 흐흐흐흐하하하흐흐…….”

    목린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저도 모르게 언영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끙끙거렸다. 언영은 화들짝 놀라 그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입을 가득 찢었다. 목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바로 다음 날에 혼례식이 있는 터라, 목린과 익문이 언영의 가족과 함께 나눈 저녁 식사는 다소 단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단조롭다고 해도 대만찬이 아니라는 얘기지, 여러 명이 모두 둘러앉은 탁자 위에는 풍부한 음식이 가득했다. 목린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음식을 향해 젓가락을 뻗어 보려 하다가도, 맞은편에서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언영과 그의 세 누이들을 보고 머뭇거리길 반복했다.

    “귀한 여식을 데려가는 것이니 우리 쪽에서 방문하는 게 옳았는데. 미안하네, 익문. 아들의 고집이 워낙 완강해서. 대신 그만큼 완벽한 혼례를 준비하였으니 걱정 말게나. 하하하!”

    월진이 호탕하게 서두를 열자, 익문은 식사를 멈추고 두 손을 아래에 모으며 말했다.

    “저로선 오히려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라곤 그저, 우리 목린이가 건강하고 아프지 않게 사는 것뿐입니다…….”

    “하하! 걱정하지 말래도! 익문 자네는 겁이 너무 많아! 누가 들으면 우리가 납치혼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목린이와 언영이는 천생연분이 아닌가! 서로 예쁘게 사랑하고 있고.”

    “…….”

    “이를 계기로 초족과 우리 귀혈족은 서로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된 것이네.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나!”

    다음 날 아침, 목린은 혼례복을 갖춰 입고 화장을 마친 채로 앉아 있었다.

    밝은 적색의 옷 위에서 화려한 금빛 자수가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늬를 과시하고 있었는데, 겨우 오늘 하루를 위해서 이 옷을 만드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각고의 노력이 들었을지 목린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이토록 맑고 고운 색감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을 차치하고, 숨이 뚫리는 듯한 가벼운 느낌과 부드러운 감촉은 한 번 입으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었다. 게다가 현재 머리를 가득 차지하고 있는 장신구까지 거론하면 끝도 없었다. 틀어 올린 머리가 좀 무겁기는 했지만, 면경을 보니 다 잊어버렸다.

    유리 속에 수줍게 앉아 있는 월궁항아는 목린에게 너무도 가깝고도 먼 미인이었다. 목린이 눈을 깜박이자 천하일색의 여인 또한 큼지막한 눈으로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인 빛깔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더듬거려 보는데 상대방이 그대로 따라 했다.

    “목린아, 오늘 정말 예쁘다.”

    “내가 살면서 본 여인들 중에 가장 아름다워.”

    “목린이 미간만 닮아도 소원이 없겠다.”

    그러나 이렇게 칭찬을 연거푸 쏟아붓는 친구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어둠의 그림자가 누워 있었다.

    “고마워, 얘들아.”

    목린이 면경에서 시선을 거두고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이 억지로 내보이던 밝은 모습이 동시에 죽어 버렸다.

    “흑, 흐흑……. 이렇게 예쁜데 어쩌다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얘들아. 나는 정말 괜찮아. 그만 울어.”

    목린이 애써 차분하게 답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들이 눈가에 묻은 눈물을 옷으로 눌러 찍으며 웅얼거렸다.

    “그 사람이 실수로 널 쳐서 죽여 버리면 어떡해.”

    “널 못 보고 깔고 앉아 뭉개 버리기라도 하면?”

    “괜찮아. 여태까지 그런 일 없었는걸. 앞으로도 없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친우들의 어깨를 다독여 주는 목린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짜 마음이 있어 하는 혼례도 걱정될 텐데 하물며 그 반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목린은 겉으로는 감정을 은폐하며 스스로에게 계속 위안의 한마디를 던졌다.

    ‘괜찮아. 이게 끝나고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배를 타고 이곳 마을로 오는 과정에서 함께 식사를 할 때 벌어진 일이었다. 언영은 목린의 옆에 앉아서 함께 먹었다. 수많은 반찬 중에서도 요상하게 계속 장어만 먹고 있는 언영을 목린은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에 걸쳐 이 상황이 반복되자 목린은 결국 식사 도중 용기를 내어 조곤조곤 물었다.

    ‘언영 님, 다른 맛있는 것도 많아요. 왜 계속 장어만 드세요?’

    언영은 돌발적인 질문에 즉각 답을 하지 못하고 눈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어색하게 답하는 그의 얼굴이 불같이 타올랐다.

    ‘그야…… 당연히.’

    그의 눈동자가 분주하게 방황하다가 결국 목린과 눈을 마주쳤다. 답을 열심히 기다리듯 반짝거리는 목린의 얼굴을 본 언영은 허둥지둥 다시 시선을 피했다.

    ‘한 달 내내 너 행복하게 해 주려고……!’

    언영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우렁차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뻘건 얼굴을 아래로 푹 숙이며 부리나케 도망쳐나갔다. 목린은 왜 언영의 동료들이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지난번에 언영이 배 내부를 구경시켜 줬을 때였다. 웬 사내들 서너 명이 ‘형님!’ 또는 ‘주언영!’ 하고 외치며 쿵쿵쿵쿵 언영을 향해 달려왔다. 목린은 뽀르르 달려가 언영의 뒤에 숨었다. 하지만 이미 사내들이 목린을 멀리서 발견하고 다가온 터라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그들이 한결같이 벙실벙실 웃으며 목린을 향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언영 형님에게 말씀은 자주 들었습니다. 저도 종종 섬에 방문하곤 했는데 멀리서 뵙기도 했고요.’

    ‘아, 네…….’

    ‘그리고, 엄청 뜻밖이었습니다. 초족은 굉장히 수줍음이 많던데.’

    ‘예?’

    사내들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초야를 한 달 동안 진행하고 싶다 강건하게 견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굉장하십니다!’

    ‘아, 그것은, 저는 그저 지나가는 길에 말했을 뿐인데 언영 님께서 귀 기울여 들어주셨어요. 그 점에 대해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린이 언영을 힐끔 올려다보며 말했다. 언영은 갑자기 헛기침을 심하게 여러 번 토해내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구경하는 사내들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떠나질 않았다.

    ‘목린 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형님과 코흘리개 시절부터 벌거벗고 강가에서 놀던 사이입니다. 그러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형님은 크기로 따지면 귀혈족의 지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크기요?’

    ‘마필(馬匹, 말)도 형님의 것 옆에 두면 초라해집니다. 과장 좀 보태어 오늘 저희가 죽인 바다 괴물이 그나마 견줄 만한 상대입니다.’

    ‘네……. 그, 그래요?’

    목린은 어색하게 끄덕였다. 무슨 말이 오가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물어보기엔 이들이 모두 너무 무섭게 생겼다. 식사량을 얘기하고 있다고 넘겨짚을 뿐이었다.

    ‘부끄러워하잖아!’

    언영이 목린의 멍한 표정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설레 하시는 표정인데요.’

    ‘너야말로 너무 감싸시는 것 아니냐. 보기와 달리 적극적인 분이심이 분명한데.’

    한 명이 언영의 새빨개진 목과 귀를 바라보며 은근한 눈길과 함께 놀렸다

    ‘부끄러워하는 건 너잖아.’

    ‘시끄러워, 입 닥쳐!’

    언영은 두 손으로 후방에서 목린의 귀를 막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얼른 여기를 뜨고 싶었는지 그 상태에서 목린을 번쩍 들고 성큼성큼 걸음을 뗐다. 목린의 목 아래가 가볍게 달랑거렸다. 아무도 없는 복도까지 후욱후욱거리며 도망쳐온 언영은 그제야 목린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후우…….’

    언영은 목린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갑자기 아무 잘못도 없는 벽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곤 충격적이게도, 손을 벽에 짚고 계속 세게 그 위에 이마를 박길 반복했다.

    쾅! 쾅! 쾅!

    목린은 대경실색하며 언영에게 팔을 뻗고 허둥거렸다.

    ‘언영 님! 언영 님!’

    ‘아악! 아악!’

    쾅! 쾅! 쾅!

    ‘언영 님, 왜 그러세요! 나중에 혹 생겨요!’

    ‘부끄러워! 부끄러워!’

    쾅! 쾅! 쾅! 그의 덩치가 어마어마해서일까, 정말 당장이라도 벽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굉음을 뚫고 목린이 급하게 외쳤다.

    ‘그런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자랑스러운 거예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음식을 친절히 만들어 준 사람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행동이리라.

    ‘저도 그런 언영 님이 자랑스러워요……!’

    언영은 허리춤에 달린 호리병 하나를 뜯어내듯이 뽑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눈 깜박할 새에 손바닥만 한 것에 든 물을 빠르게 목 뒤로 넘기더니, 목린을 묵묵히 끌어당겨 안았다. 그 상태로 꽤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런 점을 창피하게 여기셨구나. 목린에겐 언영의 새로운 면모를 알 수 있었던 꽤 특별한 순간이었다.

    아무튼 그 당시 사내들의 반응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였으나, 대체 장어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히 건져낼 수 있었던 건 한 달이라는 계획이 틀어지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 정도의 기간 동안 맛난 것만 먹다 보면 기분은 풀어질 테다. 그리고 목린을 위해 벌써 귀혈족이 그 정도의 배려를 보여 주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육이 되어 먹히는 건…… 아무리 언영 님이 내게 관심이 식더라도 피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적어도 사람으로서의 대접은 받는 것 같다.

    ‘우리 부족의 미래를 위해!’

    그렇게 조그만 주먹을 말아 쥐며 긍정적으로 생각을 돌리던 중이었다.

    옆에 서 있던 친구들이 난데없이 목린의 등 뒤에 벌어진 일을 보고 숨을 멈췄다. 목린도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귀에 달린 화려한 금귀고리가 딸랑거렸다.

    “언영 님.”

    언영은 혼례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색이 고급스러운 느낌이 두드러지는 맑은 청색인 것을 제외한다면 목린의 것과 자수의 모양도 같고, 전체적인 모습을 봤을 때 목린의 옷과 완벽한 비슷한 색깔로 맞춤이었다. 함께 나란히 서 있기 위해서 태어난 의복처럼 보였다.

    목린이 그가 단단한 갑옷을 걸치지 않은 것을 본 게 오늘로 두 번째였다.

    언영은 타고난 기골이 특출났다. 하여 갑옷을 입지 않은 지금도 넓고 장대한 몸은 지금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옆으로 널따랗게 벌어진 어깨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미(美)를 과시하는 혼례복으로도 저런 위압적인 무게를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타인에겐 되레 더한 두려움으로 다가올 터였다.

    게다가 그는 지금 웃고 있지 않았다. 가만히 있을 때의 그의 날렵한 이목구비는 이전에 벌였던 모든 행보를 순간 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수려하면서도, 냉기가 뚝뚝 흘렀다.

    언영의 눈이 목린을 담았다.

    “…….”

    그의 턱이 아래로 툭 빠질 것처럼 벌어졌다. 목린은 옷매무새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이제 나가면 되는 건가요?”

    “…….”

    언영은 답하지 않았다. 크게 벌어진 입은 닫힐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 미동 없이 혼자 시간이 멈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얼굴에 그 흔한 웃음기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목린은 똘망똘망한 눈을 깜박거렸다.

    “언영 님?”

    “…….”

    “목린아, 우리는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을게.”

    “으응.”

    목린의 친구들이 언영을 스치고 빠져나갔다. 언영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요지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그의 눈동자는 목린의 얼굴에 내리꽂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목린은 허둥지둥 등을 돌렸다.

    “저, 언영 님. 머리만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같이 나가요.”

    “…….”

    목린은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아 단장을 마무리했다. 면경의 구석진 곳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붙박인 언영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홀린 듯이 바라보더니, 서서히 손을 뻗기 시작했다. 얼빠진 얼굴을 보니 팔 또한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목린을 갈구하며 점점 더 거리를 좁혔고, 면경으로 이 상황을 당혹스럽게 지켜보던 목린은 결국 볼을 붉히며 등을 돌렸다.

    목린과 눈이 마주친 언영의 올라갔던 팔이 다시 재빨리 내려갔다.

    “…….”

    하지만 정신 나간 표정은 한결같았다. 목린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목을 치켜들고 다소곳하게 물었다.

    “언영 님, 그냥 걸어 나가면 되는 건가요?”

    “…….”

    목린도 바보는 아니었다. 언영이 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고 두 사람 다 얼굴색이 울긋불긋했다. 이대로 더 있다간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목린은 부랴부랴 조그만 몸을 움직였다.

    “우, 우리 어서 나가요!”

    목린이 먼저 앞서 뽀르르 걸어갔다.

    언영이 그 자리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는 멀어지는 목린을 보고 바로 걸음을 뗐다. 다리가 긴 그는 순식간에 목린을 따라잡았다. 대신 그는 정면을 바라보지 않았다. 고개를 틀고 목린의 정수리만 내려다봤다. 앞으로 뭐가 날아와도 모를 것 같이. 목린은 애써 모른 척하고 계속 발을 디뎠다.

    언영이 지난번에 말하길, 초족과 귀혈족의 혼례식에 큰 차이는 없되, 그저 귀혈족이 조금 더 시끄러울 뿐이라 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나, 당시 그는 조금 더 그 차이점을 강조했어야만 했다.

    목린과 언영이 야외로 나오자 수백 명의 귀혈족 사람들이 두 손을 들고 괴성을 내질렀다. 목린은 그들이 웃고 있는 건지 화난 건지 표정만으로 확언할 수 없었다. 남녀노소 전부 붉은 얼굴로 콧김을 내뿜으며 열광하는 이들은 방금 막 전쟁에서 압승을 거두고 온 집단과 다름없었다.

    “와아아아아!”

    귀가 곧 터질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목린과 언영이 걸어 나갈 길을 제외하곤 모든 곳이 갑옷을 입은 거대한 이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 사이의 길을 걸어 나가는 목린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우연히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쪽에 줄지어 선 이들과 정통으로 눈을 마주쳤다.

    “우어어어어!”

    “백목린!”

    그들이 광란적으로 내질렀다. 목린은 숨을 들이켜고 어깨를 벌벌 떨었다.

    앞으로 계속 가서 보니, 더 자리가 여유로운 뒤쪽에 빠져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고, 신나서 하늘에 활을 쏴 대는 연인도 존재했다. 언영의 어린 세 누이는 거대한 나무 위에 올라타 공중제비를 돌고, 언영의 모친이자 마을의 족장 월진은 남편 윤근과 함께 두 손을 잡고 방방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 안에서 겁먹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친구들과 아버지가 보였다. 그들은 귀혈족의 다소 적극적이다 못해 어지러운 행각을 입을 못 다문 채 구경하고 있었다.

    “와아아!”

    “으아아악!”

    신이 난 어떤 귀혈족 사람이 목린의 친구 한 명과 어깨동무를 했다. 이어서 그 옆의 사람도, 또 그 옆의 사람도, 나란히 서서 어깨를 맞대고 왔다 갔다 했다. 기다란 파도가 펼쳐졌다.

    “주언영! 백목린! 주언영! 백목린!”

    “주…… 주어…… 주언…… 백…… 모, 목…….”

    목린의 친구가 울음을 터뜨리며 그들을 억지로 따라 했다. 목린은 그 모습이 안타까워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얼른 고개를 돌려 이번엔 언영을 쳐다봤다.

    “…….”

    언영은 아까와 같은 그 낯빛이었다. 사방에서 꽥꽥거리는데도 목린을 빼곤 아무것도 그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했다. 지금 그의 앞엔 목린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마 그 강렬한 얼굴을 쭉 마주할 수 없어 목린은 민망함을 감추고 얼른 다시 정면을 마주했다.

    억겁과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언영과 목린은 사람 한 명 누울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가운데를 화병, 여러 가지 과일, 촛대 등이 놓인 초례상이 지키고 서 있었으나, 그 높이가 높진 않아 오늘 부부의 연을 맺는 그들은 충분히 서로의 얼굴을 계속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물론 혼례식 내내 상대의 얼굴을 꾸준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당돌한 신부는 손에 꼽았고, 목린은 그 안에 속하지 않았다. 평범하고 수줍음 많은 새색시들이 그러듯이 머리를 아래로 푹 수그렸다. 하지만 언영의 뜨거운 시선을 꾸준히 느낄 수 있었다. 조용히 말하기보단 늘 손을 들고 제 의견을 당당하게 전달할 것 같은 귀혈족마저도 슬슬 언영의 정신 나간 표정을 보고 주변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극대화되는 술렁거림이었다.

    ‘어, 잠깐만.’

    처음엔 당혹스러웠던 목린은 이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거면 어쩌지?’

    어쩌면 저렇게 쳐다보는 것이 귀혈족의 혼례식 관습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너무 예뻐서 쳐다봤다는 건 처음부터 착각이었을지도. 아니, 그렇게 처음부터 확신했던 자신이 바보였으리라. 목린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화끈거렸다. 결국 목린은 눈치를 보며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불안해서 똥그래진 목린의 눈과 언영의 강렬한 동공이 서서히 함께 만났다. 그리고 목린은 상대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의 넓은 가슴이 떨리는 게 보였다.

    언영은 허리에 차고 있는 호리병 중에 하나를 쥐고 급하게 안에 든 것을 입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과연 저런 행위가 혼례식 중간에 허용되는 건지 의문스러웠지만, 누가 막을 새도 없이 재빨랐다. 그리고 호리병을 마시는 동안에도 목린을 계속 쳐다봤다. 목린의 혼란스러움은 점점 더 가중되기만 했다.

    언영은 이번에 배를 타고 그녀를 데리고 올 때부터 저 호리병들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귀혈족이 사용하는 독이나 무기가 아닐까 싶어 그냥 물어보지 않고 넘어갔는데 뭔지 한 번이라도 물어볼걸. 이제 와 약간 후회되었다.

    “저기.”

    목린의 측면에서 혼례식 진행을 돕던 중년의 여인이 나지막하게 목린의 귀에 속삭였다.

    “고개를 숙이셔야 합니다.”

    “앗, 네!”

    부끄러움 탓에 목린의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그 상태에서 또 언영과 눈이 마주쳤다. 입술을 오므리고 어쩔 줄 몰라 버벅거리는 목린을 본 언영의 동공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못 할 불길이 타올랐다. 흉통이 큰 그의 장신이 모조리 보이지 않는 힘에 사로잡혔다.

    그는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또 다른 호리병을 허겁지겁 꺼내 들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를 쥐고 연달아 꿀꺽꿀꺽 마셨다. 그의 굵은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악단이 언영과 목린을 위해 성대한 연주를 하는 동안 언영은 허리에 달고 있던 호리병 열 개를 전부 비웠다. 바닥을 보고 있는 목린의 귀엔 노랫소리보다 언영이 삼키는 소리가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맞절을 했다. 맞절하는 동안에도 언영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목린의 움직임만 샅샅이 살피느라 그가 몸을 굽히는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주변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들리는데도 언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려 절을 하는 동안에 목린을 더 가까이 보려고 몸통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목린의 얼굴만 대신 물들었다. 상기된 동글동글한 볼을 숨기기 위해 더욱 아래로 몸을 숙였다.

    힘이 들어간 그의 손가락이 어렴풋이 보였다.

    조금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낯선 감정에 뒤늦게 당황했을 때, 수많은 환호가 목린의 머릿속을 바로 하얗게 만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아까 입장할 때보다 갑절은 더 우렁찬 귀혈족의 함성이 혼례식의 막을 내렸다. 월진은 익문에게 울면서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고, 익문은 어색하게 월진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귀혈족 사람들은 목린의 조그만 친구들을 안아 들며 기뻐했다. 입에서 불을 내뿜는 사람도 있었다.

    “후…….”

    목린은 어질어질한 감정을 애써 뒤로 넘기며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언제 다가왔을까, 바로 앞에 언영의 발이 보였다. 그의 듬직한 체구가 목린의 시야를 독차지했다. 목린은 예쁘게 칠한 입술을 감쳐물었다. 이대로 고개를 들긴 살짝 부끄러웠다.

    언영을 알게 된 지도 어느덧 네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목린도 어느 정도는 그의 행동을 추측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녀의 허리를 번쩍 들어 올리고 하하하하! 웃으며 얼굴 이곳저곳에 쪽쪽쪽 뽀뽀를 찍어 대리란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저돌적인 행동에 적응했지만, 그렇다고 좋아한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하나 그렇다고 거절할 수 있는 처지인가. 그건 또 아니라서 뻣뻣한 자세로 그가 그녀를 안아 들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언영이 무릎을 꿇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가만히 목린을 올려다보았다.

    “언영 님…….”

    언제나 목린을 들어 올려 제게 눈을 맞추게 하던 언영이 처음으로 먼저 몸을 숙여 왔다. 목린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아까부터 내내 졸졸 쫓아다니던 구애의 시선이 이제 아래에서 그녀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다 큰 청년인 언영에게서 어린 소년에게서나 발견될 수줍음과,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심각한 각오와 다짐이 함께 공존했다.

    그러자 생각과 걱정이 많은 목린도 조심스럽게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언영이 큰 의미를 담고 보인 행동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그들의 생활을 미리 보여 주는 행동이기를. 낯선 환경 속에서 외롭고 힘들 그녀를 위해서 지금처럼, 예전과 달리 그가 먼저 그녀에게 맞춰 다가오기를.

    우리가 함께 쌓는 추억이, 아름다운 건 바라지도 않으니, 후에 돌이켜봤을 때 괜찮았다고. 나쁘지 않았다고, 그렇게 편안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삶이기만을 바랐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니까…….

    “…….”

    언영이 한쪽 손을 뻗어 목린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주 귀하고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듯이 소극적인 움직임이었다. 목린이 조금이라도 더 지금의 분위기에 심취했다면 이대로 넋을 놓고 그의 손길에 온몸을 기댔을 것이다.

    그의 엄지가 목린의 입술에 다가갔다. 다홍빛의 아랫입술이 엄지가 힘을 주는 대로 부드럽게 눌렸다. 그 장면을 응시하는 언영의 동공에 목린을 향한 갈망이 힘껏 타올랐다.

    목린이 먼저 눈을 감았다.

    그가 다가오기 쉽게 아래로 몸을 더 숙였다.

    잠시 뒤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 위로 떨리는 입술이 경건하게 포개져 왔다.

    모든 귀혈족 사람들 또한 이번만큼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뜨습고 다정한 그 정감에 목린은 저도 모르게 편하게 몸을 내맡겼다.

    조금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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