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어쩌면 그곳에서
“이 새끼야, 자면 안 돼! 어?”
눈발이 새하얗게 날렸다. 한기가 차오른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엘런이 하는 말이 점점 멀어졌다. 의식이 자꾸만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엘런이 초췌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녀석이 하는 말이 점점 아득해졌다. 눈꺼풀이 무겁고 팔다리가 다시금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그루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꽉 잡아. 병신같이 떨어지지 말고.”
엘런이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간신히 일어났지만, 다리 밑으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엘런은 다시금 이동할 곳을 찾았다. 적어도 몸을 녹일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가 덜덜 떨리고 마비된 몸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엘런이 허공에 원을 그리자, 빠른 속도록 터널이 만들어졌다. 엘런이 나를 던지다시피 원 안으로 밀어 넣었다. 중력을 잃을 것처럼 몸이 붕 떠올랐다. 엘런도 원 안으로 들어온 순간, 미끄러지듯 터널 아래로 몸이 사정없이 추락했다.
온몸이 뻐근하게 저렸다. 뺨에 닿은 모래알이 따끔따끔했다. 면도날로 맨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인지. 온화하고 따듯한 공기가 추위에 절었던 몸 위로 쏟아졌다. 엘런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나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동상으로 언 손과 발이 움직일 때마다 아렸다.
검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크고 웅장한 파도가 한 번씩 집어삼킬 듯이 치솟았다가 흐트러지듯 떨어졌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거대한 파도 위로 투명한 유리 공들이 보석처럼 떠다니는 게 보였다. 바다 반대편은 끝도 없는 모래가 펼쳐진 사막이었다. 수십 개의 모래 산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그 크기와 높이가 웅장해 괜히 심장 한편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우린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게 뭘까?”
“어떤 거?”
“저 유리 공 같은 거.”
엘런이 고갤 돌려 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저렇게 반짝이는 게 그루는 아닌 것 같고. 기억의 파편 같기도 했다. 엘런이 겁도 없이 검은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날렵하게 접영을 하면서 물 위를 떠다니는 유리 공 하나를 손에 쥐었다. 유유히 물살을 가르고 헤엄쳐 나온 엘런이 내 앞에 유리 공을 내려놓았다.
투명한 공이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들어 흔들어보았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공이 발열하듯 열을 내뿜기 시작했다. 순간 뜨거워 얼른 그것을 내려놓았다. 순간, 엘런이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꿈 조각 같은데?”
“뭐?”
“본 적 있어. 그때 내가 본 건 삼각뿔 모양이었는데, 이것과 느낌이 아주 비슷해.”
“꿈 조각이라면.”
“네가 기억하지 못하고 완전히 잊어버린 꿈. 그게 이런 조각이 돼서 떠다니는 거야.”
“그럼 여기 어딘가에 꿈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는 거야?”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닐걸?”
이상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르고 꽉 막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 차분하게 가라앉은 심장이 느껴졌다. 끝과 끝이 없는 광활한 바다가 좀 전 들떴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넘실거리고 있었다. 꿈 조각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는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태, 태오야.”
엘런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고갤 돌려 보니, 색소가 빠진 사탕처럼 흐릿하게 점멸되고 있는 엘런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무의식은 이물질이나 다름없는 엘런을 밖으로 밀어낼 것이었다. 반희용의 무의식에 접근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다시 올게.”
“여긴 두 번째 단계야. 저 밑바닥이랑 달라. 여길 어떻게 찾을 건데.”
가장 밑바닥의 무의식은 하나지만, 두 번째 단계인 이 공간은 수십, 수만 개의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언제든 증폭하고 변형 가능한 무궁무진한 정신세계이며 의식과는 별개로 무의식으로 움직이는 곳이라 아무리 헤르셔라고 해도 다시 이곳을 찾아 들어오는 건 불가능했다.
“하 씨발. 기태오!”
“반드시 갈게.”
“헤매지 말고.”
“…….”
“꼭, 돌아와.”
나는 고갤 끄덕였다. 흐릿하던 육체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다가 훅 하고 꺼져버렸다. 흔적도 없이 엘런이 사라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꿈의 조각을 집어 들었다. 저항하기 힘든 몽롱함이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이대로 의식을 놓으면 나는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
몇 겹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어떤 것도 가늠할 수 없었다. 엘런이 사라지고 난 후 나는 끝도 없이 펼쳐진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배고픔이나 피로감은 없었지만, 끊임없이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악력에 자꾸만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엘런은 잘 돌아갔을까. 선규호를 만났을까. 보고 싶어. 보고 싶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얼굴에.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점점 몸이 축축 처졌다. 언제 그루가 나타나 나를 삼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꿈을 연결할 아주 작은 고리만 있어도 꿈을 설계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도무지 앞이 캄캄했다. 검은 물결이 바람을 타고 솟구치는 게 보였다. 커다란 해일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커다랗게 몸을 펼치고 덮쳐왔다. 풍경이 아스라이 무너져 내려고 있었다.
나는 뒷걸음치다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들고 있던 꿈의 조각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꿈이 담긴 조각들이 빛을 내며 허공 위를 날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손을 뻗어 조각 하나를 움켜쥐었다. 어째서 이걸 깨닫지 못했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조각이 내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꿈. 의식에서 지워버렸던 꿈 조각이 나를 살릴 열쇠가 되어주리라는 걸 달았다.
무의식과 꿈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손에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재빠르게 꿈을 생성하고 손에 있던 조각에 설계한 꿈을 연결했다. 호흡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을 뜨자 모랫바닥을 뚫고 금박 장식이 달린 문이 세차게 솟아올랐다. 둥실둥실 허공에 떠오른 문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팔을 뻗어 빠르게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벌컥 문을 열고 빠르게 몸을 숨겼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내 방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거실을 가로질렀다. 밤이 깊었는지 고즈넉한 밤공기가 감돌았다. 형의 방문 앞에서 나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내 꿈이라서 형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눈앞에 선규호가 들어왔다. 놀란 눈동자가 맞닿는 순간. 가슴이 뜨겁게 조여들었다.
“…형.”
문 앞에 서서 얼음처럼 굳은 선규호가 나를 쳐다봤다. 눈에 고인 눈물이 소리도 없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고운 얼굴이 금세 흐트러졌다. 속눈썹을 떨굴 때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걸 보는데 꼭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미안해.”
“…….”
“진짜, 촬영 끝나자마자 가려고 했는데.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라서….”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진짜. 잘못했어.”
“…….”
“여기서 죽는 줄 알았어. 다신 형 얼굴도 못 보고….”
선규호가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나 역시 힘껏 선규호를 팔에 감고 번쩍 안아 들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서로의 입술을 찾아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었어.”
데일 듯이 뜨거운 혀가 얽혔다. 선규호를 품에 안아 든 채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한 호흡이 입술 새로 자꾸만 샜다. 뜨겁게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침대에 선규호를 눕히고 그대로 올라탔다. 우리의 시선이 다시금 겹쳐졌다.
“기태오.”
“…….”
“내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아. 알아. 다 알아. 그래서 죽을 것 같았어.”
달뜬 호흡을 내쉬던 선규호가 내 목에 팔을 감았다.
“알면 다시 키스해줘.”
입술이 다시금 겹쳐졌다. 호흡이 자꾸만 속도를 모르고 뛰어댔다. 선규호의 턱을 감싼 채 깊게 입을 맞추었다. 몇 번이고 닿았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흣, 태오야! 하읏.”
형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잡아 내렸다. 잔뜩 흥분한 성기를 그러쥐었다. 내 손길에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형이 신음했다. 뺨과 귓불을 물었다가 목선을 핥고 내려와 쇄골을 깨물었다. 연약한 살결에 잇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나는 혀로 자국을 핥으면서 깊게 살결을 빨았다.
“하아. 으. 읏. 태오야. 읏.”
흥분한 형의 소리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빨리 선규호 안에 속하고 싶었다. 가슴 아래로 입술을 옮겼다. 납작한 배에 입을 맞추고 천천히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핑크빛 귀두가 야릇하게 젖어 있는 게 보였다. 그대로 형의 성기를 입안 가득 물었다. 혀로 귀두 끝을 자극하면서 야릇한 소릴 흘리며 발기한 좆을 빨기 시작했다.
“하으. 싫, 으읏. 태오, 태오야. 거긴.”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선규호가 내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밀어 넣고 나를 밀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작 성기를 빨리는 것만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터질 듯이 울부짖었다. 엉덩이 입구를 건드리며 좁고 야릇한 주름들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급하게 절정을 맞이한 형이 내 입안에 정액을 쏟아냈다. 달콤한 체액이 혀를 타고 목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놀란 선규호의 엉덩이를 바짝 당겨 혀로 할짝거렸다. 절정감이 가시지 않은 달큼한 육체가 내가 주는 쾌락에 착실히 반응하고 있었다. 입구를 넓히면서 자극하고 있는데, 형이 나를 불렀다.
“태오야.”
“응?”
“빨리 해줘.”
“아직. 조금 더 풀어야 해.”
“어서.”
“아플 거야.”
“상관없어.”
애가 탔다. 여기가 정말 꿈인지, 무의식의 끄트머리인지. 눈앞의 선규호 때문에 달아오른 몸이 미칠 것 같다. 나는 그대로 몸을 숙여 선규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목덜미에 손을 넣어 그대로 안아 일으켰다. 허벅지 위에 선규호를 앉히고 나를 내려다보는 선규호와 눈을 맞췄다. 부드러운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열이 오른 붉은 뺨을 손으로 감싸면서 입술을 맞추었다. 춥, 추읍. 입술이 부딪히는 야릇한 소리가 귓가를 달궜다.
규호가 내 목에 팔을 감고 좀 더 혀를 놀렸다. 잔뜩 성이 난 성기를 엉덩이골 사이에 문질렀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내 허벅지에 앉아 있던 선규호가 내 것을 움켜쥐었다. 헉, 하고 숨이 저절로 탁해졌다. 가느다란 다섯 개의 손가락이 내 것을 잡고 입구에 가져가는 게 느껴졌다. 입술 새로 거친 숨이 쏟아졌다. 쫀득한 입구에 귀두 끝이 닿는 게 느껴졌다. 틈도 없이 다물려 있는 촘촘한 주름 사이로 살을 갈랐다. 한껏 고조된 선규호의 표정이 야릇해서 좆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내 성기를 아래로 물고 체중을 실어 천천히 몸을 내렸다. 선규호 몸 안으로 내 좆이 천천히 먹히는 게 느껴졌다. 비좁은 내벽이 뜨겁게 내 것을 조여댔다. 읏.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풋내기처럼 몸 안으로 진입하는 것만으로도 사정할 것 같았다. 매끈한 허릴 양손으로 잡고 하체를 느리게 튕겼다. 나는 선규호를 올려다봤다. 내 위에 올라타 나를 내려다보는 선규호와 눈이 마주쳤다. 흥분으로 물든 두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깊게 박힌 성기가 느릿하게 내벽을 긁어댔다. 귓불과 목선 어깨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몸이 예뻐서 나는 자꾸만 입을 맞췄다. 뾰족하게 세운 젖꼭지를 잇새로 물자, 선규호가 가느다랗게 떨어대는 게 느껴졌다.
“하으. 핫. 하으. 흣. 태, 태오야!”
반대쪽 젖꼭지를 입술 가득 물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네가 예뻐서 나는 좀 더 허릴 당겨 깊게 내 것을 삽입했다. 앙증맞은 젖꼭지를 혀로 핥으면서 깊게 빨아들였다. 네가 괴로운 듯 나를 밀었지만, 나는 놔주지 않았다. 놓으면 네가 사라질 것 같았다. 불안하기 이를 데 없는 꿈의 조각을 타고 넘어온 이 공간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었다.
불같이 선규호를 끌어안았다.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가 뜨겁게 나를 두드렸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네가 나를 꽉 조이고 있어 숨이 차올랐다. 절정에 다다른 성기를 쳐올렸다. 뻑뻑하게 내 것을 꽉 물고 있는 좁은 입구를 사정없이 들락거렸다. 극도의 사정감이 치달았다. 빼냈던 페니스를 단박에 꽂아 넣으며 깊게 정액을 토했다. 선규호의 입술을 찾아 입을 맞췄다. 몇 번이고 그 입술에 쪽쪽 거리면서 힘껏 당겨 안았다. 놓치면 사라질 것 같았다. 이대로 영영 못 볼 것처럼, 또다시 무기력한 무의식의 세계로 떨어질 것만 같아, 몸이 덜덜 떨렸다.
“기태오.”
선규호가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작게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가 너무 달콤해 나는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선규호를 꽉 끌어안았다. 너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시선이 다시금 맞닿았다. 네가 다시 나를 불렀다.
“태오야, 돌아가자.”
꿈이 아닌 현실 세계로.
< 끝 >